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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거울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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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721회 작성일 20-01-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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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천성으로 살아간다지만 어떤 경우에든 천성 조차도 바뀔 기회를 맞게 마련이다.
특히 감성에만 의존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면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이성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천방지축 있을 수 없는 일들에만 메달려 사는 망나니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작은 감동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지금 처한 상황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야 내 가슴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갚지 못할 빚 때문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테니.

"이차 가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일행들을 떠밀며 이차를 강행했다.
주머니속에서 돈을 듬뿍 꺼내들며 아가씨들에게 팁을 주며 지금 파트너 그대로 이차를 가기로 했었다.
"전 이차 안가요."
"뭐? 넌 뭔대 안간다는거야?"
하필이면 오늘의 물주인 내 파트너가 파토를 낸단 말인가 싶어 언성을 높였다.
"좋아, 그럼 니 팁은 없어. 받고 싶으면 따라 오던지."
"안돼요. 팁 주세요. 이차는 싫어요."
일행들을 먼저 나가도록 한 후 주인을 불렀다.
"손님, 쟨 이차 안가는 조건으로 일하니까 봐주세요."
"뭐야? 그런게 어딨어. 손님이 원하면 당연히 가는거 아냐?"
"딴 애를 데려가세요. 암튼 쟨 안되요."
"맘대로 하슈, 난 팁 못주니까."
다른 애들 팁과 술값만 계산하고 술집 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매서운 추위 때문에 이빨이 달달 떨려왔다.
두터운 외투를 귀끝까지 치껴 올리며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걷고 있다.
뽀도독 거리는 소리가 옷깃을 통해서도 크게 들린다.
"이봐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차 안나가겠다고 버티던 아가씨가 뛰어 오고 있다.
"팁 주고 가야죠."
"난, 이차 가는 조건으로 팁 계산한거야. 싫으면 냅두고..."
"이차 안가요. 일차 팁만 주시면 되잖아요."
"아가씨, 좋아. 그럼 동네 한바퀴만 돌고 줄게."
"싫어요. 빨리 팁만 주세요."
"세상이 하얗게 변했잖아.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싶지 않아?"
"새벽에 오는 눈 많이 봤어요. 그냥 눈일 뿐인데요 뭐."
"그랬군. 난 새벽 눈을 보니 반가워.
십여분만 함께 걸어줘. 그럼 이차는 강요하지 않을테니까."
"알았어요."
두 사람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만 택해 걸었다.
다정한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걸었다.
십분간의 휴전.
펑펑 쏟아지는 솜사탕 같은 눈을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 하며 걷고 있다.
"추워요, 아저씨."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걸쳐줬다.
"이런데 일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형편이 나쁘면 어딘들 못 있겠어요?
전 가난해요. 돌봐야할 식구들도 많고..."
"이차는 안가봤어?"
"만지고 빨고 그런 수모는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잠까지 자야할 정도는 아니에요."
"손님들이 나처럼 짓궂을 텐데..."
"심한 사람들 많아요. 그래서 힘들어요."
"오늘도 나 때문에 상심했겠군?"
"힘들었어요. 전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퇴근한거야?"
"먼저 퇴근했어요. 팁 못받으면 안될 사정이라서."
"미안, 술 집 여자는 모두 이차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거든."
"안그런 사람들도 많아요."
"술 취하면 그런 생각은 못하게 되지."
"아저씬 근처 회사 다녀요?"
"응, 저기 큰 건물 있지? 거기 다녀."
"돈 많아요?"
"많지는 않지만 없어서 궁상 떨지도 않아."
"그럼 십만원 줄 수 있어요?"
"필요해?"
"꼭 필요해요."

눈을 밟고 걷는 다는 것은 마음도 순화되는 모양이다.
그토록 얄미웠던 아가씨지만 팔짱을 끼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을 뿐인데도 순순히 거금 십만원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양복 주머니 속에서 십만원을 꺼내서 아가씨에게 건넸다.
환한 미소가 차가운 날씨를 따뜻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마워요."
"짓궃은 내가 미웠지?"
"술 취하면 다 그렇죠 뭐. 아저씨는 따뜻할꺼라 첨부터 생각했어요."
"그럼 모른척 하고 이차 따라오지 그랬어?"
"전 술집여자가 싫어요. 더구나 이차는 죽기보다 싫고요."
동네를 얼추 한바퀴 돌았는지 좀전의 술집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시 들어갈꺼야?"
"아뇨, 집에 갈꺼에요."
"그럼 괜히 추운데 한바퀴 돌았나보네. 어서 집에가봐."
"아저씨, 큰 길까지 같이 걸어요."
걸었던 그 길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나 있었다.
또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지나간 발자국에 맞춰 또 발을 넣어 본다.
"재미있어요."
"허, 어릴 때 많이 해본 놀이였지."
아가씨는 다시 팔짱을 끼며 어깨에 기대어 왔다.
"추워서 얼어 줄을 것만 같아요."
"어쿠야, 난 외투를 벗어 덮어주기까지 했는데 동태되야겠네."
"아저씨, 외투 돌려줄까요?"
"아냐, 행복한 동태가 될래."
언제 다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정해진 두사람은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깡충깡충 뛰기도 하며 짧은 순간의 만남 조차도 즐거워했다.
"저희 집에까지 데려다 줘요."
"어딘데?"
"저 언덕 위에 있어요. 비탈길이라서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되네요."
"한밤에 온 눈이라 연탄재 구하기도 어려워서 미끄럽겠구나?"
"이런 밤이면 집에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요."
"좋아, 그럼 집까지만 데려다 줄게."
언덕을 오르는 길은 그다지 미끄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려오는 길이 아득할 수 있겠다 싶다.
"여기가 내 방이에요."
허름한 양철집에 약간은 찌그러진 문틀짝이 맞춰진 방을 가리켰다.
"잠시 들어왔다 가세요."
"신발을 벗으면 눈이 수북하게 쌓이겠는걸?"
"방으로 들고 들어가요."
헛간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초라한 방 한구석에는 얇은 이블 한채만 놓여 있다.
먹다 남은 밥을 다시 먹었는지 밥상 위에 음식물이 그대로 놓여 있기도 하다.
"이렇게 살아?"
"저도 깔끔한 여자였는데 부모형제들 때문에 악착같이 돈 벌어서 송금하면 라면 먹기도 힘들어요."
"밤이 늦었으니 이만 가볼게."
"아저씨, 장가 갔어요?"
"아냐, 결혼할 여자는 있는데 곧 하게 될꺼야."
"오늘밤 자고 가시면 안돼요?"
"이차는 죽어도 싫다며..."
"이차는 정말 싫어요. 전 죽어도 그런 짓 안할꺼에요."
"그런데 나보고 자고 가라면 어떻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제가..."
아가씨는 걸레로 방을 대충 치운 다음 이부자리를 펼쳤다.
불을 끄고 희미한 불빛만 나오도록 작은 전구불을 켰다.
하얀 속살이 스르르 들어나며 미끄러지듯 나신이 이불 속에 뭍혀 버렸다.
서둘러 옷을 벗고 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손이 차갑다.
작은 손이 가슴위에 얹혀 진다.
작은 입김이 어깨 위에 들이 부어진다.
바들거리는 다리 하나가 조심스럽게 내 다리 위에 걸쳐진다.
자세를 옆으로 틀어 아가씨를 마주 보며 살짝 안아 들였다.
약간 온기가 회복된 손으로 작지만 뽀얀 젖가슴을 덮어본다.
파르르 떨리는 몸짓을 못 본척하며 허리께를 안아본다.
뜨거워 불끈거리는 물건이 아랫배를 찌르고 있다.
할닥이며 떨고 있는 몸 위로 내 몸무게를 실어 본다.
두 다리를 활짝 벌리며 남자의 물건을 받아 들이는 질구의 빡빡함이 느껴진다.
술집여자가 빡빡해 봤자라는 생각에 혼신을 다해 물건을 밀어 넣어 버렸다.
짧은 순간 엄청난 장애를 만났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자궁 깊숙이 물건을 밀어 넣었다.
하늘을 쪼갤 것 같은 비명이 터졌다.
그 비명 속을 내 질러 달리는 말처럼 질타하며 정복해 버렸다.
하얀 속살과 찰진 허벅지와 가녀린 팔들이 늘어져 버릴 정도로 밤새도록 압박해 버렸다.
그녀는 오랜 시간 아픔을 호소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내겐 들리지 않았다.
한 참이 지나서야 받아 들인 물건을 의식했는지 두 다리가 허리를 감기 시작했다.
정복한 그 땅에 짙은 액체를 자궁 깊숙이 뿌렸다.
으스러질 정도로 허리를 조여대는 작은 팔을 느꼈다.
어깨며 목이며 머리 끝까지 부등켜 안고 흔들어 대던 작은 팔을 느꼈을 뿐이다.

긴 잠이 쏟아진다.
여명이 밝아오며 감긴 눈썹 사이로 햇살이 걸릴 때,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뭐야? 벌써 일어났어?"
"여기, 컵 라면이에요."
이불을 걷어냈다.
붉은 선혈 한점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처녀였어?"
아가씨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유를 얻고 싶었어요. 나를 버릴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내가 어떻하면 되지?"
"바라는게 없어요."

몇일 후 술의 힘을 빌려 또 그 술집을 찾았다.
아가씨는 그 날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인이 투덜댔다.
언덕 위에 쓰러져가는 초라한 집에서도 그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꽃이 폈다.
눈이 내린다.
꽃이 또 폈다 진다.
눈이 내린다.
또 꽃이 핀다.

엄청난 추위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밟지 않은 눈만 골라 밟으며 팔짱끼며 동네를 돌던 그 아가씨가 생각난다. 이름 한번 물어 보지 못한 좁은 속내를 아쉬워 한다. 다만 메스컴을 통해 그녀를 닮은 것 같은 사람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감지됐지만 딱히 그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너무 쉽게.
그 사람이 가진 현재의 모습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읽어 버렸던 지난 날들에 대한 추억 속에서 이제는 함부로 남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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