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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어서도 젖을 빠는 남자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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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28회 작성일 20-01-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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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어서도 젖을 빠는 남자
내 나이 정확하게 말하여 금년으로 만 62살 먹은 준 노인 급이다.
요즘이야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기는 하지만 이미 손자까지 봤으니 할아버지이고 할아버지란 것은 노인이란 뜻이지만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기에 앞에 준 자를 붙여서 눈 노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 노인이 지금도 거의 매일 젖을 빨아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
전날 낮이든지 밤이든지 젖을 빨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여 아무 일도 하지를 못 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나의 출생과도 아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게 된 경위와 지금은 누구의 젖을 빠는지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겠다.

난 6.25전쟁이 한참이던 해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도 한 달 만에 엄마는 밭에서 풀을 매다가 어느 편의 전투기인지 모르는 전투기의 공습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지금도 아흔이 넘은 나이에 나보다 겨우 다섯 살 많은 할멈을 구해서 데리고 우리와 함께 살지 않고 따로 집을 지어서 살 정도로 왕성한 정력을 가진 아버지에게 태어난 지 겨우 한 달 밖에 안 된 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나를 맡은 것은 시집도 안 간 고모였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 적을 난 하루 종일 물고 살았고 고모의 젖은 아가씨들 젖답지 않게 퉁퉁 불어서 볼썽사나울 정도로 변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젖동냥을 해 줄 아이 엄마를 수소문을 하던 중에 군대에 간 남편이 전사를 한 세 달 나보다 생일이 빠른 딸아이를 둔 여자를 알아내어 아버지의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하였고 그 덕에 고모는 나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새엄마는 젖을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와 나에게 각각 하나씩 물리고 키웠다.

최근에도 마누라의 젖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아 제키자 마누라는 나를 데리고 정신신경과를 찾았다.
마누라가 시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며 시어머니가 죽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며 또 고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의사선생에게 모조리 하자 의사선생은 엄마가 죽고 두 달간 처녀였던 고모의 마른 젖만 빨고 미음으로 연명을 한 것이 젖에 대한 애착으로 변하여 나이가 먹고도 젖을 빠는 것이 습관화가 되었는데 유년기 아이들이라면 고칠 수가 있지만 이미 육십 년 이상을 고착화 된 것을 이제야 고치려고 한다면 자기로서도 방법이 없다면서 젖을 빨게 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난 새엄마의 풍성한 젖가슴의 젖을 거의 입에서 때지 않았다고 한다.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나보다 두 달 빨리 태어난 누나의 경우 돌이 되기 전에 젖을 때었지만 나의 경우 젖을 안 주면 동네가 떠내려가라는 듯이 울어 대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에게 계모가 다 저렇지 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젖을 물려야 하였고 초등학교에(당시는 국민 학교)입학을 하고도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새엄마의 가슴을 열고 젖을 빨은 것이다.

한편 새엄마는 아버지의 재취 마누라가 되었지만 말이 좋아 마누라이지 나의 젖엄마에 불과하였다.
아버지가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한두 번 집에 들르면 많이 들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고모를 비롯한 이웃사람들도 새엄마에게 아이를 낳기를 권하였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새엄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혼잣말을 하곤 하였는데 그 말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나타났다가 엄마가 힘들여 벌어놓은 돈만 가지고 나가면 그 돈이 떨어 질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아버지가 집에서 있지 말기를 바랐는지 모를 일이다.
왜?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새엄마의 젖을 빨지 못 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로 기억을 한다.
당시에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는 독방을 사용하였지만 난 항상 엄마 곁에서 엄마 젖을 빨며 잠을 잤다.
그날도 새엄마 젖을 만지며 빠는데 엄마의 입에서 평소보다 끈끈하고 가냘픈 신음이 나왔다.
그러더니 한참을 빨아 제키자 새엄마의 손이 잠옷 대신 입고 자는 일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딘가 모르지만 마구 문지르며 신음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나의 손 하나를 엄마의 일 바지 속으로 넣었고 새엄마가 손바닥으로 새엄마의 보지둔덕을 문지르는 것을 알았다.
난 새엄마의 손을 옆으로 제키고 내가 새엄마 보지를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새엄마는 처음엔 당혹해 하였으나 가만히 나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새엄마의 신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렇게 계속 문지르는 과정에서 여자 보지구멍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던 나였지만 어떻게 된 셈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손가락 하나가 새엄마의 보지구멍에 들어갔고 그러자 새엄마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으스러지듯이 끌어안으며 거칠게 숨을 쉬자 싫지 않다는 것을 알고 손가락을 넣고 마구 후볐다.

그전까지만 하여도 어르고 달래며 나를 독방에서 자게 하려던 새엄마가 그날 이후로는 되레 나를 끌어안고 자는 것을 즐거워하였고 그런 나는 엄마의 일 비자 안에 손을 넣고 손가락으로 엄마의 보지구멍을 마구 후비며 젖을 빨았다.
그것이 반복이 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또 다른 변화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이 아니라 엄마도 나의 고추를 주물럭거렸고 그렇게 되면 나의 고추는 성을 내었지만 그리 싫은 느낌이 아니었다.

오학년 때의 일이지 싶다.
내 고추 아니 좆이라고 할 만큼 실하여졌고 그런 것을 알고 새엄마는 일 바지와 팬티까지 벗어버리고 나에게도 팬티를 벗게 하더니 새엄마 몸 위로 올라와 젖을 빨라고 하기에 새엄마 몸 위에 올라가 젖을 빠는데 새엄마의 손이 밑으로 내려오더니 엉덩이를 조금만 들라고 하더니 나의 좆을 잡고는 엄마 보지구멍 입구에 대고는 엉덩이를 내리라고 하자 내렸더니 나의 좆으로는 포근한 느낌과 따뜻한 느낌이 교차하여 전하여졌다.
그리고 새엄마가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흔듦으로서 나는 새엄마와 좆 물은 나오지 않는 상태였지만 빠구리까지 하는 단계로 발전을 하였다.
그리고 육학년에 올라가서 드디어 새엄마가 바라던 대로 좆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엄마 보지에 좆 물을 뿌리는 진정한 빠구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새엄마는 아주 부지런 하였다.
종갓집 종손이랍시고 밖으로만 도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5,000평이 넘는 논과 3,000평에 가까운 밭은 소작을 주지 않고 인부를 사서 쓰더라도 직접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가 달라고 하는 대로 돈을 주면서도 논밭을 늘렸고 늘어난 논밭은 나와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 명의로 일정 비율씩(6:4) 등기를 해 주었다.

일 년 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때가 있었으니 음력 시월에 거행이 되는 시제였다.
시제 때가 되면 몇 칠전부터 문중의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음식을 만드는 부산을 떠는 것이고 집이 넓다고는 하지만 그때만은 아버지도 문중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였기에 새엄마와 함께 자야 하였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새엄마의 젖을 빨지 못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사 음식을 준비하여야 하는 총괄 책임자이기에 부정을 타는 일을 하여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좋아하던 나와의 빠구리고 마다하였다.
그러다 보니 음력 시월이 가까워 오면 나는 초초해 지기 시작하였고 온 몸에서 땀이 철철 흐르기까지 하면 새엄마는 나를 조용히 광으로 불러들여 젖을 빨게 하여 안정감을 되찾도록 만들어주고는 밖으로 나가 지시를 하였다.
그런 새엄마는 아버지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 하였지만 문중 어른들로부터는 칭찬이 자자하였고 그러면 그건 마치 자기가 가정을 잘 다스려서 그렇게 된 것처럼 아버지는 생색을 내곤 하였으나 새엄마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과 말을 안정을 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여 나와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중학교 이학년 때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와 사이에 문제가 발생을 하고 말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겨우 두 달 뿐이 차이가 나지 않는 새엄마가 데리고 온 딸이었지만 나는 꼭 누나를 누나로 대우를 해 주었다.
물론 그건 새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도 하였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겠지만 난 깍듯이 누나를 누나로 대접을 하였다.

금방 앞에서 언급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십 몇 대(대 수를 이야기하면 추리를 하여 알 수가 있을 것으로 보아 성씨와 몇 대 종손인지는 밝히지 않는다고 제보자가 말하였음)종손이기에 문중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셨고 또 새엄마도 아버지와 문중 일에는 의견이 동일하였다.
아버지보다 항렬이 높은 어른이 돌아가신 것이다.
요즘이야 삼일장이 대세이고 삼우제도 장례를 치른 자리에서 제를 지내고 바로 탈상을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니 우리 문중에 큰 어른이 돌아가시면 지금도 적어도 오일장은 치르며 탈상도 첫 제사를 모신 후 탈복을 하는데 그때는 칠일장이 당연한 것이었고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문중 아낙네들은 집에 갈 생각을 말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재취를 들기는 하였지만 종가 댁 맏며느리인 새엄마는 문중 일이라면 아버지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하는 분이라 아버지를 따라 초상이 난 집으로 간 것이다.

그날 밤 부엌에서 물소리가 났다.
살금살금 다다가 문틈으로 훔쳐보았더니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요즘이야 시골에도 집집마다 샤워 시설이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부엌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누나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자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젖가슴이 바로 그것이었다.
난 누나가 아직 젖가슴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건 새엄마가 나의 버릇 즉 젖만 보면 빨려고 덤벼든다는 것을 알았기에 광목으로 젖가슴을 단단하게 묶어 젖가슴이 아직 나오지 않게 보이려고 하였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물론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나보다 두 달 생일이 빠른 누나도 중학교 이학년이나 되는 내가 아직도 엄마의 젖을 빨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젖가슴을 본 이상 나에게 두려운 것이라고는 없었다.
바로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고 놀란 누나의 행동은 무시하고 난 바로 누나의 젖꼭지를 빨아버렸다.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누나는 당혹해 하였으나 나의 버릇을 아는지라 이내 침착해 지며 젖만 빨라고 애원을 하였고 난 그러마하고 계속 젖꼭지를 빨자 누나는 아랫도리의 물기를 닦더니 팬티와 치마를 입었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말치더니 목욕을 하던 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정리를 하더니 나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이미 새엄마와 빠구리까지 하는 나는 누나의 심리를 대충 파악을 한 후였다.
부엌에서 처음 누나의 젖꼭지를 빨 때는 당혹해 하였으나 빠는 강도와 시간이 흐르자 누나도 엄마처럼 신음소리를 내었고 그 신음소리는 기분이 나빠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흥분을 하여 내는 소리라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고 누나가 차분하게 자신의 젖을 나에게 빨리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방안으로 가자 누나는 의자에 앉더니 빨라고 하였다.
난 그런 자세로 빨면 오래 빨지 못 한 뿐더러 불편하다며 누우라 하였다.
누나는 생각을 하더니 이불 위에 누었다.
난 누나 몸 위에 오르지 않고 누나의 몸과 기역자 형태로 누운 후 누나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빨았다.
새엄마의 젖가슴이 조금 축 늘어진 반면 크기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주무르기에 아주 좋은 젖가슴이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처음 빨기 시작을 하였을 때는 젖꼭지가 거의 젖가슴에 숨어 있는 것 같았으나 부엌에서 잠시 빨았을 뿐이었는데도 방으로 들어와 빨려고 하니 누나의 젖꼭지는 마치 내 좆이 새엄마가 주무르거니 보지구멍에 박기 전에 성을 내어 발기가 되듯이 누나의 젖꼭지도 성이 난 듯이 튀어 올라 있었다.

누나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신음소리도 커지기 시작하자 나의 몸은 마치 자동 장치가 되어 있는 듯이 점점 누나의 몸과 나란히 하려고 움직이고 있었고 누나가 나의 머리를 힘주어 누를 때는 내 몸을 누나 몸 위에 포개어져 있었다.
그리고 좆으로 누나의 보지둔덕을 문지르며 공략을 해 나가고 있었다.
누나는 나의 가슴을 밀칠 것으로 예상을 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두 다리로 내 엉덩이를 감고는 양발로 엉덩이를 눌렀다.
자신감이 충만하여 졌다.
누나의 치마를 위로 당겼다.
그리고 바지 단추를 풀고 좆을 끄집어내었다.(요즘은 지처가 대세지만 당시에는 단추를 대부분 달았음)
거추장스러운 것은 오로지 누나의 팬티뿐이었다.
하지만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초상집에 가지 않았더라도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르는 사람이고 엄마는 항상 집에 있겠지만 문중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하는 사람이기에 적어도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들를 사람이 아니기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누나의 반응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비록 팬티 위이지만 보지둔덕을 문지르다 보면 누나의 팬티 옆 맨살에 닿기도 하였는데도 누나는 몸을 옆으로 빼려 들지 않고 엉덩이를 들어 더 나의 좆을 보지둔덕이 밀착을 시키려 하였다.
누나의 그런 행동에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기세였고 그 기세는 나로 하여금 누나의 팬티를 옆으로 제키도록 하는 용기를 주어 손을 밑으로 내려 누나의 팬티를 잡고 옆으로 제키려 들자 누나의 손이 나의 팔목을 잡았으나 힘은 거의 없고 누나의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난 좆을 누나 보주둔덕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거칠어진 호흡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젖을 빨면서 좆을 보지둔덕에 대고 문지르는 내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
두 다리로 내 엉덩이를 감고 있던 양발이 엉덩이를 향해 거 힘주어 눌렀다.
난 누나가 이미 이렇게 된 것 박아달라고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나의 좆으로 하여금 누나의 보지 금에 대고 문지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점점 엉덩이에 힘을 주며 보지 금을 따라 상하로 이동을 시켰다.
어느 순간 누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새엄마 보지구멍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 하였던 마치 나의 좆을 자를 것 같은 압박을 좆으로 전달 받자 놀란 나머지 누나의 젖을 빨다말고 젖가슴을 짚고 생체를 들고 밑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나의 하얀 팬티에 검붉은 피가 점점 번져나가고 있었고 팬티 틈으로 들어가 있던 나의 좆을 누나 보지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새엄마의 보지구멍에 이어서 누나의 보지구멍도 나의 전용 물받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난 새엄마의 눈을 피하여 누나와도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빠구리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의 완전한 물받이가 되어버린 누나로부터 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새엄마와 나는 앞에 말하였듯이 초등학교 오학년 때부터 좆 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빠구리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육학년에 올라가서 좆 물이 나오는 빠구리를 하였는데 누나는 이미 육학년 때 내가 자기 엄마하고 빠구리를 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자위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혼자서 숨어 자위를 할 때는 별로였지만 나와 자기 엄마가 빠구리를 하는 광경을 훔쳐보며 하는 자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나오고 절정에 올라서 입을 틀어막고 자위를 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었고 또 나의 좆이 자기의 보지구멍의 처녀막을 뚫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누나와 나 사이의 비밀은 그리 오래 가지를 못 하였다.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 직전 누나가 입덧을 하기 시작하였고 딸의 입덧에 놀라 새엄마가 딸인 누나를 다그치자 누나는 나와 빠구리를 하고 있다고 고백을 하였고 방학이 시작 된 뒷날 새엄마는 부랴부랴 딸인 누나를 데리고 우리가 사는 곳에서 떨어진 도시로 가서 검사를 받고 임신이 확실하자 바로 중절수술을 시키고는 인근 약국이란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콘돔을 말 그대로 박스 체 사서 커다란 박스에 담아서 집으로 왔고 자기도 나와 빠구리를 하는 사이라 딸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던지 나에게 자기는 물론이고 누나와 할 때도 항상 끼고 하라고 시켰다.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당시에는 분뇨도 비료로 사용하였기에 사용하고 난 콘돔을 버릴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생각 끝에 사용하고 난 콘돔을 장작으로 불을 때는 부엌의 아궁이에 버렸고 부엌은 거의 매일 고무 타는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제사나 문중 일로 문중 아낙네들이 와서 부엌일을 하면서 무슨 부엌에서 고무 타난 냄새가 가시지를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자 새엄마는 나에게 사용하고 난 콘돔을 부엌 아궁이에 넣지 못 하게 하고 모으라고 하자 모아서 주면 새엄마는 그것을 모아 밭을 갈러 나가면서 밭으로 가지고 가 밥 옆의 기슭에 땅을 파서 묻어버렸다.
그렇게 나와 새엄마 그리고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나보다 겨우 두 달 생일이 빠른 누나는 내가 군대에 가는 날까지도 거의 매일 빠구리를 하였다.

군대 3년(요즘이야 2년도 많다고 야단이지만)동안 나로서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훈련소에서의 6주는 그야말로 악몽 주에서도 악몽을 꾸는 것 같은 그런 생활이었다.
여자의 젖을 빨기는커녕 여자 구경도 못 하였으니 말이다.
딸딸이로 해결?
엄마가 나를 낳고 한 달 만에 폭격으로 사망하고 처녀였던 누나의 마른 젖을 빨다가 새엄마가 오고부터 군대에 입대를 하는 날까지도 엄마와 누나의 젖을 빨아온 나로서는 딸딸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딸딸이 열 번 치느니 젖을 한 번 빠는 것이 나에게는 좋았고 쾌감을 느꼈으며 안정감을 찾았으니 말이다.
하루하루가 불편한 날이었지만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힘든 이야기를 새엄마나 누나에게 편지로도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이야 어쩌는지 모르지만 군사우편은 먼저 항상 상급자가 읽어보고 난 후에 우리에게 주던지 집으로 보내졌으니 말이다.
명색이 새엄마이고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군대에 온 놈이 새엄마와 누나 젖을 빨고 싶어 미치겠다는 내용을 적을 수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생활 속에서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갔고 6주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았다.
자대 배치를 받은 주 토요일 새엄마가 부대로 면회를 왔다.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대로 말이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 5시까지 외박이 허용이 되었다.
부대에서 신고를 마치기 무섭게 난 새엄마하고 먼저 숙소를 정하였다.
숙소를 정한다는 것은 핑계였고 새엄마의 젖을 빨면서 빠구리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나도 나였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6주나 굶은 새엄마도 대단하였다.
아들과 엄마 사이로 보았던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새엄마를 보는 눈이 달라졌을 정도로 시끄럽게 신음을 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엄마나 나는 그런 눈치에는 신경을 쓰지 아니하였다.
땀을 한참 빼 후에 새엄마와 난 여관에서 나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술도 마셨다.
그리고 새엄마는 나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거리가 멀어서 자주 오지 못 한다며 소대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였다.
다음 날 귀대를 하니 마침 수대장님께서 당직이었고 새엄마하고 면담을 하였다.

요즘이야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초짜 장교들에게도 대우가 좋았던 시절이 아니고 박봉으로 살던 초짜 장교였던 소대장에게 새엄마는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를 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내주 토요일이면 나에게 외박을 허락하도록 만들어주고 갔고 또 나에게 많은 돈을 주고 갔다.
그 덕에 난 매 주 토요일이면 외박을 나와 부대 부근의 술집으로 가 작부를 품고 술을 마시다가 젖을 빨며 빠구리를 하였다.
그도 하루 이틀이지 나와 상대하는 작부들이 점점 나를 피하였다.
아니 나와 하룻밤을 보낸 경험을 가진 작부들은 다시는 나와 잠자리를 하려 들지 않았다.
빠구리를 몇 탕 하고 곱게 재우는 경우가 없이 밤새도록 젖을 빨아 제키니 아침에 작부들의 젖꼭지는 불어터져서 아파 죽어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상대는 항상 신참 작부가 나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가끔 새엄마나 누나가 면화를 왔을 경우에는 새엄마나 누나와 여관으로 가서 즐겼다.

그렇게 군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기 몇 십 대 종손인데다가 그 종손의 외동아들이다 보니 빨리 혼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 문중 어른들의 의견이었고 문중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던 아버지는 물론이고 문중일이라면 앞장을 서던 새엄마도 나와 빠구리를 하는 사이였지만 문중 어른들의 말을 무시 하지 못 하고 문중 어른들의 주선에 따라 맞선을 몇 번이나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난 지금의 마누라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문중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양반 집안의 규수로 후덕하다는 것이었고 아무리 문중 어른의 추천으로 맞선을 보았지만 세상이 세상인지라 데이트를 몇 번 하게 되었고 서로 마음에 든다는 것을 확인하자 난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합방을 해 보자고 부추겼고 마누라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식 날짜를 받고는 나와 잠자리를 하였다.
마누라도 숫처녀였다.
거기다가 새엄마만큼 젖가슴도 대단히 풍성하였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이미 마누라의 젖꼭지는 불어터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빠구리보다 젖을 많이 빨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기 몇 칠 전 새엄마는 나의 마누라가 될 여자를 조용히 불러서 내가 젖꼭지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을 해 주고 이해를 부탁하였다.
물론 새엄마하고 또 새엄마가 데리고 온 누나하고 빠구리를 하는 관계란 사실은 빼고 말이다.

문중 어른들과 친지들을 모신 가운데 마누라 집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처갓집에서 이틀의 잔치와 신행을 온 우리 집에서는 무려 닷새 동안 잔치가 벌어졌고 죽어 나가 소만도 두 마리나 되었고 돼지도 다섯 마리나 죽어 나갔으며 쌀도 열 가마 이상 소비가 되었으며 읍에 있던 술도가에서는 술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우리 집으로 모조리 배달이 될 정도였다.

신혼살림은 우리 집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생각을 하였던 난 대입 준비를 하여야 하였기에 집에서 읍내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로 하였고 또 새엄마는 며느리가 가풍을 알아야 한다며 시댁에서 살기를 권하였다.
일 년 조금 넘는 동안 집에서 신혼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마누라의 눈을 피하여 새엄마와 누나와 빠구리도 하였고 젖도 빨았다.
대학에 무난히 입학을 하게 되자 나와 내 마누라는 내가 다닐 학교 근처에 집을 얻고 살림을 살면서 대학에 다녔다.
물론 학자금이며 생활비 그리고 새엄마가 대학 입학 기념으로 사준 자가용 유지비도 새엄마가 매 달 보내주었다.
그리고 양반이라고는 하지만 찌들듯이 가나하여 고등학교 밖에 졸업을 하지 못 한 마누라에게도 대학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이는 물론 종갓집 며느리이기에 문중에서 대우를 받게 하려면 대학 정도는 나오게 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기도 하였지만 일 년 조금 넘게 살아 본 결과 생각보다 시샘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매주 주말이면 시골집으로 들리는데 시샘이 많은 마누라가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주말에도 평소처럼 n나를 따라 시골집에 들르지 않고 집에 남아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학원에서 매주 주말마다 하는 특강을 받으러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내 예상은 정중하였다.
마누라는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하였다.
방이면 방 욕실이며 목실 변기 앞이면 변기 앞 냉장고 문이면 문마다 마누라는 암기를 하여야 할 쪽지를 만들어 붙여놓고 외우는 정도였고 시골집에 가자고 하면 학원 특강을 받아야 한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러면 혼자 시골집으로 내려가 새엄마하고 새엄마가 데리고 온 겨우 두 달 먼저 태어난 누나의 젖을 빨면서 빠구리를 하였다.
이듬해 마누라도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간다기에 마침 주말이라 시골집에 갔는데 이튿날 마누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다는 연락과 함께 시골집으로 온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고 누나와 빠구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와 누나 등 뒤에서 끌어안고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는데 마누라가 나타나더니 어디까지 간 것이냐고 띠지고 묻기에 가끔 젖가슴만 주물렀다고 변명하자 마누라는 시누인 누나에게 6개월 안으로 시집을 가지 않으면 문제를 크게 만들겠다고 시어머니인 새엄마에게 통첩을 하였고 새엄마는 부랴부랴 누나의 혼처를 구하였는데 이웃 마을의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성실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을 사위로 낙점을 찍고 결혼을 시킴으로 그 문제는 유야무야가 되어버렸다.
대신 내가 시골집으로 간다고 하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여도 나를 따라 내려와 감시를 하였다.
그때부터 난 마누라에게 일거수일수족을 감시를 받는 어려운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난 감시를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내 명의로 된 논밭이 많았고 아버지의 재산 역시 내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난 사업은 싫었다.
또한 마누라도 내가 사업을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내 명의로 된 논밭은 새엄마가 관리를 잘하여 주어서 해가 가면 갈수록 늘었으면 늘었지 중지는 않았다.
그 덕에 나의 월급보다 새엄마가 관리하여 들어오는 소작료가 다 많은 해도 있었다.
새엄마는 논밭은 소작을 주면서 한 마지기 당 얼마씩 일정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수확량에 따라 일정 비율을 받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소작인이 덕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날씨가 안 좋아 수확량이 적을 경우 나는 손해지만 소작인은 큰 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작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새엄마가 관리를 하는 논밭은 소작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 안달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도 마누라의 나에 대한 감시는 소홀해 지지 않았다.
새엄마와 빠구리를 하려면 새엄마와 마누라 이렇게 셋이서 술판을 벌려야 하였다.
그리고 새엄마와 합작을 하여 마누라를 집중 공략을 하여 뻗게 한 다음 그도 안신이 안 되어 광으로 숨어들어 광에서 젖을 빨며 빠구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새엄마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도 칠십이 되지도 않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집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러다 보니 논밭 및 과수원을 관리를 할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가 없이 난 탐탁지 않아 하는 마누라를 설득을 하여 다니던 화사에 사표를 내고 귀농을 하였다.
집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하나 있는 아들에게 혼자 살게 하고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마누라의 감시를 피할 수가 있었다.
아들이 먹을 밑반찬을 하여 아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다녔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아들 집으로 가면 나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누나는 과수원의 창고로 부리나케 달려와 나에게 젖을 빨게 하며 빠구리를 하였다.
그건 지금도 계속이 되고 있다.
하지만 누나를 마누라는 우리 집에 어머니 기일에도 발걸음을 하지 못 하게 한 탓에 나와 몰래 만나서 빠구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 할 것이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으로 허덕인다기에 귀농을 종용하였으나 귀농을 하게 되면 장가들기가 힘들다며 도시에서 그대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하였던 동료에게 아들 취업을 부탁을 하였더니 우리 집에 있는 곳에서 차로 달려 삼십 분쯤 가면 있는 자그마한 도시의(누나가 내 아이를 임신을 하여 엄마하고 같이 가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도시임)지점에 근무를 할 사람이 필요한데 사내에서 지원자가 없어서 고민이라며 한 오년만 지방에서 근무를 하면 자기가 본사로 책임지고 끌어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이야기를 아들에게 전하자 아들은 거기서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아들은 본사에서 연수를 받고 세 달 만에 집을 전세로 세를 놓고 인근 도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자만 우리 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아가씨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두 달 전 며느리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우리 군의 새마을부녀회에서 다른 나라의 영농 방법을 견학을 6막 7일의 일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면서 말이다.
마누라가 견학을 떠난 날 오후 한 시경 아무리 기다려도 점심밥을 먹으라는 말이 없기에 무심결에 손자 이름을 부르면서 며느리 방문을 열었다.
며느리가 누워서 잠이 든 상태였고 손자는 그런 엄마의 젖을 빠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난 돌아버리고 말았다.
며느리의 퉁퉁 불은 젖가슴을 보고서 말이다.
다시 며느리의 젖가슴을 보면서 난 며느리를 깨웠다.
며느리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더니 그때서야 젖가슴을 숨겼다.
빨고 싶다고 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느리가 벽시계를 보더니 점심 걱정을 하였다.
며느리의 젖가슴을 보는 순간 이미 난 배고픔도 사라졌고 오로지 한 번 빨아보았으며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말을 못 하고 난 집에서 나와 과수원으로 올라가버렸다.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하였지만 내 눈에는 퉁퉁 불은 며느리의 젖가슴만 눈에 어른거렸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가자 며느리가 저녁이 준비 되었다고 하며 식사를 하라고 하였다.
점심도 굶은 상태였지만 저녁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식탁에서 서 자세로 소주 한 병을 병나발을 불었고 김치 한 조각이 안주의 전부였다.
며느리가 앉자 식사를 하라고 하였으나 난 며느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퇴근한 아들이 식사를 하자고 하였으나 생각이 없다고 거절을 하였다.
다음 날 아침도 먹지를 않았다.
아니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점심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점심부터 아침까지 굶어서 일어서기도 힘들어 과수원에 올라가지도 못 하고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었으나 오로지 며느리 젖가슴만 눈에 아른거렸다.
며느리가 점심을 드시라고 하였으나 난 꼼짝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이며 천장만 응시하였다.

잠시 후 며느리가 조용히 들어오더니 문을 닫고 나에게 물었다.
자기 젖가슴 때문이냐고 말이다.
시어머니인 마누라가 이미 며느리에게 시아버지인 내가 젖에 대한 집착 성을 가지고 있으니 주의를 하라고 하더라 하면서 말이다.
부정을 하기 싫어서 난 며느리에게 그렇다고 시인을 해버렸다.
며느리는 대범하였다.
젖만 빨지 다른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자 며느리가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빨라고 하였다.
빨게 해 주려면 편안하게 누어서 빨게 해달라고 했다.
며느리가 눕자 난 누나에게 처음 하였던 것처럼 몸 위에 오르지 않고 며느리의 몸과 기역자 형태로 누운 후 며느리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빨았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폭격으로 죽고 고모의 마른 젖을 빨다가 재취로 들어온 새엄마의 젖을 빨며 성장하다가 빠구리로 진행이 되었고 이어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나보다 겨우 두 달 생일이 빠른 누나의 젖을 빨고 그리고 빠구리로 이어진 후 마누라를 만나 젖을 빨며 빠구리를 시작한 이후 며느리의 젖까지 빨고 주무르게 된 것이었다.

며느리도 여자였다.
마구 빨아 제키며 주무르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을 한 것이었다.
누나의 경우 호흡이 거칠어지자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었지만 며느리라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어서 계속 빨고 주무르기만 하였다.
순간 며느리의 손이 매 머리 위로 얹히는가 싶더니 강하게 눌렀다.
가만히 있는 것이 며느리의 그런 행동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몸을 움직여 며느리와 나란히 하고 젖을 빨며 주무르자 며느리의 다리가 내 다리에 걸렸고 그리고 내 다리를 자기 다리 위로 올리게 만들어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며느리 몸 위로 몸을 포개버린 것이다.
며느리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긴치마를 위로 달려 치맛단을 배까지 올리고 파자마 안에 든 발기 된 좆으로 며느리의 보지둔덕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며느리의 손이 파자마 안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파자마를 조금 내리고 나의 좆을 해방을 시켜주었다.
그러더니 며느리의 엉덩이가 들리는가 싶더니 나의 좆이 며느리 맨살에 닿았음을 느끼게 하였다.
며느리가 팬티를 밑으로 내려버린 것이다.
며느리 보지 금에 대고 상하로 문지르려 드는 순간 며느리의 양발이 내 엉덩이를 감싸는가 싶더니 미끄러지듯이 나의 좆이 며느리의 보지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나를 낳아준 엄마가 폭격으로 죽고 고모의 마른 젖을 빨다가 재취로 들어온 새엄마의 젖을 빨며 성장하다가 빠구리로 진행이 하였고 이어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나보다 겨우 두 달 생일이 빠른 누나의 젖을 빨고 그리고 빠구리로 이어진 후 마누라를 만나 젖을 빨며 빠구리를 시작한 이후 며느리의 젖까지 빨고 주무르며 빠구리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며느리는 내가 계속 젖을 빨고 주무르며 펌프질을 하자 신음이 나오지 못 하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숨을 헐떡이며 몸부림을 치며 나의 좆 질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좆 물을 며느리 보지구멍 안에 싸기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좆 믈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자 나를 밀치더니 얼굴을 붉히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난 손자에게 젖을 먹이기만 하면 며느리 몸 위에 올라가 나머지 젖을 빨았고 그리고 빠구리도 병행하였다.
아들이 퇴근을 하면 분위기는 아주 서먹서먹하였지만 출근을 하고 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내가 며느리 방으로 가든지 아니면 며느리가 수시로 내 방으로 와서 젖을 빨게 하며 빠구리까지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마누라가 집에 돌아오자 나나 며느리나 불안하고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랬지만 며느리도 나처럼 시아버지인 나의 좆 맛에 길들여지고 있었는데 시어머니라는 커다란 장벽에 막혀 시아버지인 나에게 젖을 빨게 하지 못 하고 또 좆 맛을 보지 못 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였다.
외국 견학을 다녀온 마누라는 견학 도중에 군 새마을부녀회의 감투를 하나 쓰고 온 것이다.
감투를 쓴 마누라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으로 도는 시간이 많았다.
나와 며느리는 마누라와 시어머니의 대외 활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마누라는 지금도 대외 활동을 하면서 전폭적인 나와 며느리의 지원에 감사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와 며느리가 마누라와 시어머니에게 감사를 할 일인데 말이다.

하여간 난 예순이 넘은 지금도 마누라가 집을 비운 낮이면 과수원의 창고에서 며느리나 아님 새엄마가 데리고 와 나에게 조교를 당하였던 누나를 불러들여 젖을 빨고 주무르면서 부수적인 빠구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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