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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의 하루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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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97회 작성일 20-01-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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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의 하루



사막... 난 사막에 가고 싶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 때문이라지만, 내가 사막에 가보고 싶은 건, 별을 보고 싶어서야. 사방 천지 모래뿐인 땅과, 사방천지 별 뿐인 하늘. 아마 사막에서 보는 하늘은 이렇게 서울에서 보는 하늘과는 많이 다를 거야. 아니, 아니지, 감히 사막의 하늘과 서울의 하늘을 비교하다니. 오, 신이시여, 잠시지만 저의 불경을 용서하소서. 물론 사막이 모두 모래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흙과 돌만 있는 황무지, 화성 같은 곳도 많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내가 갈 사막은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일 텐데. 또 사막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낭만적일 것 같지만, 막상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싸워야 하고, 밤에는 또 추위에 시달려야 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기는 해. 하지만 그것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충분히 준비를 하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사막에 가보겠다면서 그 정도 고생쯤이야 각오를 해야지. 근데, 그거 알아? 남극에도 사막이 있다는 거. 남극. 그래, 난 사막에 갔다 온 다음에는 남극에 갈 거야.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빙산이 늘어져 있겠지? 거기서는 빙산이 하늘에 비친데. 마치 물에 우리 모습이 비치는 것처럼. 신기하지 않아? 뭐, 언젠가 TV에서 누가 나와서 그게 과학적으로는 이렇고 저렇고 무슨 현상이니, 뭐니, 씨부렁거리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은 잘 기억 안 나. 그런 게 왜 중요하지? 그냥 보고 신기하고, 멋있으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TV에서 남자가 가을을 타고, 여자가 봄 타는 걸 가지고 호르몬 분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지랄하는 걸 봤어. 진짜 개지랄 아냐? 그러는 지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이 감정은 호르몬 분비에 따라서 어떠어떠한 변화를 가져와서 심장이 뛰고, 그에 따라 혈액순환이 빨라지면서 어쩌구... 그렇게 생각할까? 그냥 편하게 느끼면 되는 거 아냐? 편하게. 그래, 내가 사막에 가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일 거야. 여기는 너무 답답해. 사막에서 촘촘히 박힌 별을 보면서, 소리를 질러보고 싶어. 아무 소리나 말이야. 하다못해... 그래, 야호라는 말 한 마디라도 내지르면 되지, 뭐. 중요한 건 어떤 소리를 내지르느냐가 아니라, 그냥 소리를 내지른다는 거야. 어떤 과학적인 현상에 의해서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그냥, 사랑을 느끼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 아냐?


소년과 소녀는 옥상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옥상 끝에 위태롭게 걸터 앉아있었지만, 10층 아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 사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말로 하자면 주상복합 건물쯤 되겠지만, 이 건물은 꽤 오래전에 지어졌다. 아래층은 모두 상가고 맨 위에만 가정집이었다. 원래 설계가 그렇게 되었던 것인지, 무허가로 가정집을 지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년은 이런 소녀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집 위에 있는 이 옥상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오늘은 이 집이 비는 날이었다. 식구들 모두 시골집에 볼 일 있다고 내려가고, 소녀는 다른 핑계를 대고는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소녀는 소년을 위해서 그랬다. 소녀도 역시 소년이 옥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은 언제나 틈만 나면 소녀의 집 옥상에 오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늘 집에 계시는 엄마 때문에 소녀는 소년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 한번은 소년이 하도 청을 해서, 부모가 모두 잠든 다음에 소년이 옥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준 적도 있었다. 결국 새벽에 부모가 일어나기 전에 소년은 나가야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부모는 내일 오후에나 올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마음 푹 놓고 둘 만의 옥상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배 안 고파? 라면 끓여 먹을까?”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소녀가 말했다. 두 사람은 아예 옥상 위에 텐트를 치고, 가스버너와 라면, 소주, 기타 군것질 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옥상 위의 야영. 두 사람만의 야영이었다.


라면에 소주까지 한 잔 마신 두 사람은 텐트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팔로 소녀에게 팔베개까지 해 주었다. 소년은 자신이 다 큰 어른인 듯 행동했고, 소녀는 그런 소년이 믿음직스러웠다.

“저기 봐봐. 장구 모양으로 보이는 별들.”
“장구 모양?”
“그래, 사물놀이 할 때 쓰는 장구.”
“아, 저기?”
“그래, 보이지?”
“응.”
“저 별자리가 오리온자리야. 겨울에 별자릴 찾으려면 우선 저 오리온자리부터 찾아야 돼.”
“겨울? 지금은 여름인데?”
“하하, 여름에도 보이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저 오리온자리를 기준으로 찾는 게 편하다는 거지. 그 다음에는 저기 밝은 별 있지?”
“저거?”
“그래, 저 별이 세상에서 제일 밝은 시리우스라는 별이야.”
“에이....”
“응? 왜?”
“제일 밝은 별은 북극성이잖아?”
“아니야, 북극성은 마흔아홉 번째 밝기밖엔 안돼. 시리우스는 ‘눈부시게 빛난다’는 뜻이야. 동양에서는 ‘천랑성’이라고 불렀었어.”
“천랑성?”
“응, 하늘의 늑대라는 뜻인데, 큰개자리라고 들어봤지?”
“응.”
“저 시리우스 옆에 있는 별들을 쭈욱 그리면, 늑대나 개 모양이 나타나거든. 여긴 도시라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저 자리가 큰개자리야.”
“야, 동양에서는 늑대, 서양에서는 큰개, 그렇게 불렀네?”
“그렇지.”

소녀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응? 왜?”
“에구~ 요 녀석, 아는 것도 많아요.”

소녀는 자신의 한쪽팔로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누운 채 소년의 코를 잡아 살짝 비틀며 말했다. 소년은 아프다며 엄살을 부렸지만, 소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소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소녀는 금세 항복을 외치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런 소녀의 행복한 웃음을 더 듣고 싶었다. 어차피 이 곳은 아무도 없는 10층의 옥상 위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간질이며 장난치다보니, 어느 사인가 소녀가 소년의 위로 올라와 있는 형상이 되었다. 순간, 두 사람은 멋쩍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담배를 찾았다. 그때였다. 소녀가 소년의 위로 그대로 엎드렸다. 그리고는 소년의 목을 감싸 안았다. 소년은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 말 없이 소녀의 등을 안았다. 소녀의 가슴을 느낀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기묘한 자세로 5분쯤인가를 있다가 소년은 어렵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녀가 소년의 입에 키스를 한 것이었다. 소년은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여기서 자신이 당황하게 되면 어색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소주에 약간은 달떠 있던 두 사람은 모두 입술과 입술이 닿는, 새로운 느낌에 취하고 있었다. 입술은 부드러웠다. 소년은 조금 전에 마신 소주 때문인지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소녀의 가슴을 만졌다. 소녀는 움츠리며 소년의 손을 피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방어는 아니었다. 두어 번의 물리침이 있은 후, 소년은 난생 처음 여자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옷 위였지만. 소년은 자세를 바꾸어 소녀를 자신의 밑에 눕게 했다. 그리고 소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풀었다. 아직 가슴은 보이지 않았지만, 브래지어 끈이 살짝 보였다. 소년은 소녀의 눈치를 봤다. 소녀는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무언의 승낙 같았다. 소년은 단추 하나를 더 풀었다. 브래지어 밑으로 가슴이 조금 보였다. 소년은 브래지어 위로 가슴을 만졌다. 소녀의 입에서 작은 탄식 같은 신음이 나왔다. 소년은 흠칫- 손을 뗐지만, 소녀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소년은 다시 소녀의 브래지어 위로 가슴을 만지며 소녀에게 입을 맞췄다. 소녀는 그대로 소년의 입을 받아들였다. 소년은 입맞춤을 하면서 소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다 풀었다. 소녀의 몸이 보였다. 하얀 브래지어와 치마 사이로 소녀의 하얀 살결이 소년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느꼈다. 소년은 아까부터 아플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는 자신의 성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소녀의 치마를 벗기고 싶었지만, 소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겁이 났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소년이 소녀의 배꼽을 쓰다듬었다. 소녀의 배가 움찔 반응을 보였다. 소년은 다시 소녀의 눈치를 봤다. 소녀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소년은 그런 소녀의 모습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고 있었다. 소년은 고마운 마음에 소녀에게 다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브래지어를 위로 올렸다. 그 곳에는 아직 덜 여문 선 분홍빛 젖꼭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은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봤다. 소녀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소년은 소녀의 젖꼭지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혀로 살짝 핥았다. 소녀는 애써 신음소리를 참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녀는 부끄러웠다. 자신의 신음소리를 소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이미 경험이 있는 걸로 오해할까봐 두려웠다. 소년은 동영상에서 이미 많이 봤던 대로 소녀의 젖꼭지를 빨았다. 또 어디선가 부드럽게 하는 것을 여자가 더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것 같았기 때문에 최대한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랫배가 점점 더 아파왔다. 소변이 마려운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소년은 조급해졌다. 그러나 소년이 소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하자, 소녀는 소년의 손을 잡았다.

“거기는 안 돼.”

하지만 이미 소년은 참을 수 없었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무시한 채 치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제발...”

하지만, 그새 팬티가 만져졌다. 팬티 주위로 후끈 달아오른 소녀의 열기가 느껴졌다. 팬티가 만져지고도 소녀는 몇 번이나 소년의 손을 잡았지만, 이미 소년이 자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팬티 위로 손을 얹었다. 축축했다. 그리고 팬티 위에서 소녀의 집을 찾았다. 느껴졌다. 소녀가 ‘아-’ 하는 탄성을 냈다. 좋아하는 걸까,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은 다시 팬티 위를 문질렀다. 소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년은 알몸이 된 소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소년은 서둘러서 소녀의 치마를 내렸다. 이제 소녀의 몸에는 팬티만 걸쳐졌다. 소년은 소녀의 팬티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팬티를 잡았다. 소녀도 이제 포기한 듯 더 이상 저항을 하지 않았다. 소년은 소녀의 팬티를 내렸다. 아담한 숲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소녀의 집이 살며시 보였다. 소년은 소녀의 집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경황이 없었다. 서둘러 자신의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소녀의 집 안으로 들어섰지만, ‘아-!’하는 비명에 깜짝 놀라 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아프냐고 물었다. 소녀는 괜찮다고 했다. 소년은 다시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들어갔다. 소년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우주가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 이런 기분인가, 소년이 생각할 때, 소녀는 다시 신음소리를 냈지만,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뻑뻑했지만, 어느새 움직임이 원활해지고 있었다. 소녀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애써 삼키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애써 무시했다. 그때, 소년은 또 다른 배설의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자위를 통해서 그 느낌의 정체는 알고 있었던 터라 두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서둘러 사정을 했다.

소년은 잠시 동안 황홀경에 젖어있던 일이 꿈인 것만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년은 그대로 소녀 위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소녀도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그대로 있다가 소년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팠어?”
“아냐, 괜찮아.”

소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소녀가 애써 삼키고 있는 눈물의 흔적을 본 것이었다. 소년은 더욱 미안해졌다. 서둘러 일어나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가 소년의 등을 잡았다.

“그냥, 그대로 있어. 그대로 있어줘.”

소년은 다시 소녀 위에 엎드린 채로 가만히 소녀를 안았다. 소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 여름 햇빛에 달궈진 옥상의 열기로 텐트 안이 후끈 달아오른 뒤였다. 한증막 같은 더위를 느낀 소녀는 서둘러 텐트 밖으로 나가려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소년을 뒤늦게 인식했다. 저 얼굴.... 저 얼굴이 내 첫 남자의 얼굴이다. 소녀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뭔가 모를 뿌듯함. 그리고 이런 말들로 설명되지 않는 또 무언가... 소녀는 어젯밤에 소년이 한 말을 생각했다.

‘그냥, 사랑을 느끼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 아냐?’

소녀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랬다. 그냥,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회적인 잣대, 시선들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였다. 지금 소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고, 소년의 감정 역시 진실하다고 믿었다. 그럼 된 거였다. 그냥, 그렇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였다. 소녀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텐트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시계를 봤다. 11시였다. 어휴- 소녀는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밤새 라면과 술 등을 먹고 마신 주위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오후에 부모님가 오기 전에 옥상을 말끔히 치우고, 또... 사랑스러운 소년에게 밥도 직접 해 먹이고 싶었다.

그때였다! 옥상 밑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부모는 오후에 온다고 했었는데... 큰일이었다. 물론, 평소에 소녀의 부모가 옥상에 자주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올라오면 경을 칠게 뻔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를 죽일지도 몰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년만 없어도 잔소리 조금 들으면 될 일이었지만, 소년과 같이 밤을 샌 것을 알면 그대로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밤새 소년과 한 일을 눈치 채기라도 한다면... 끔찍했다.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소녀는 서둘러 소년을 깨웠다. 그때 밑에서 어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오늘 날씨 좋네! 여보 이불 갖고 나와요! 옥상에 이불 널게”

소녀는 화들짝 놀라 소년을 깨웠다. 그러나 소년은 술기운 때문인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소녀는 당황했다. 그렇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소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울먹이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두 끝이었다. 어머니가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옥상이었다. 그러고 나면...

“여보! 아예 이 참에 빨아버리지?”
“그럴까요?”

신의 음성과도 같은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어머니는 옥상 바로 앞에서 다시 마당으로 내려갔다. 소녀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맥이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소년을 깨워야 했지만, 손이 떨려서 제대로 깨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소녀는 다시 서둘러 소년을 깨웠다.


소년이 일어난 지 10분이 넘게 지나도록 두 사람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내리쬐는 뙤약볕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야, 이불 빨래는 얼마나 걸리냐?”
“몰라.”

여자애가 그런 것도 모르냐며 소녀를 돌아봤을 때, 소녀는 많이 아픈 듯, 아랫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어디가 아픈지, 배가 아픈 것인지 물어봤지만, 소녀는 신경질적으로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소년은 난감했다. 소녀를 위해서라면 당장 내려가서 약이라도 사와야겠지만, 그랬다가는 소녀의 부모님한테 발각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이 뙤약볕에 아픈 채로 그대로 둔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어제 일 때문에...? 소년은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났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도저히 못 참겠어. 너 이쪽 보지 마!”

소녀는 일어서서 한쪽 구석으로 가면서 소년에게 그쪽을 못 보게 했다. 소년은 그제야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단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소년은 피식- 웃으며 반대편 옥상 끝 난간에 걸터앉았다. 소녀의 오줌줄기 소리가 들렸다. 묘한 흥분을 느낀 소년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뒤돌아서 볼일을 보는 소녀의 보름달 같은 하얀 엉덩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소녀의 오줌 줄기가 보였다. 그때 소녀가 고개를 돌리면서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 모두, 고개를 휙- 돌려 외면했다. 소녀는 부끄러웠고, 소년은 키득이며 웃었다. 저 여자가 내 여자다, 하는 생각에 소년은 왠지 뿌듯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바로 소녀의 꿀밤이 소년의 머리에 작렬한 것이다. 소년은 어쭈, 하는 표정으로 소녀를 돌아봤지만, 소녀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소년은 풋- 웃으면서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소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이미 지난밤에 경험을 해서인지, 소년도 소녀도 비교적 자연스러웠다. 소녀도 옆 난간에 걸터앉았다. 모르긴 몰라도 얼추 이불 빨래가 끝나갈 시간이 다 되었을 것 같았다.

“이젠 어쩌지?”
“글쎄? 뛰어내릴까?”

소년의 농담에 소녀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자살은 아무나 하나...? 소녀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자살할 용기 가지고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은 우습다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자살을 택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소녀가 자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교과서적인 말 때문이 아니라, 왜 도피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자살은 분명 도피였다. 그럼에도 오죽하면 자살을 했을까,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도피만은 싫었다. 부딪혀야 했다. 삶은 몸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몸으로 부딪히고, 저항하고,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누군들 이런 쨍쨍한 햇빛 아래의 옥상에 있고 싶겠는가? 더군다나 한 여름에. 결국 자신도 지금 이 순간은 도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달리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런 것일까? 소녀는 잠시 자살을 이해할 것도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지금 소녀는 도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퇴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서. 이것은 삶의 문제였다. 적어도 죽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적잖게 우스웠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일까, 하고 소녀는 생각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광고가 어떤 건지 알아?”

소년이 물었다.

“?”
“청바지 광고였나? 왜, 남자하고 여자 둘이서 벽을 부수면서 달려가잖아. 그러다가 끝내는 건물을 뚫고, 높은 나무를 따라 뛰고, 그러다가는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떻게 됐는데?”
“히힛-, 사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달까지 뛰어 갔던가, 아니면 우주로 날아들었던가?”
“피- 거짓말.”
“야, 넌 텔레비전도 안 보냐? 그 광고 되게 자주 나왔었는데. 얼마나 멋있었는지 알아? 사방이 꽉 막힌 벽을 뚫고, 하늘까지 뛰어간다는 게. 나도 그렇게 달려서 저 하늘 너머로 갈 수 있다면 좋겠어.”
“하늘까지도 안 바래. 저 밑으로만 내려 갈 수 있어도 이렇게 옥상에 갇혀있지는 않을 텐데.”
“흐흐, 그런가? 근데, 왜 어머니는 안 올라오시고 마당은 저렇게 시끄럽냐? 어머니 올라오시면 자살소동이라도 벌여서 용서받으려고 했는데.”
“이그-”

소녀는 또 꿀밤이라도 놓을 듯이 소년을 장난스레 흘겨봤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올라와도 벌써 올라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또 정말 소년의 말처럼 마당은 왁자했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금살금 마당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잔뜩 웅크린 채 마당을 정탐하던 소녀는 순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마당의 평상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모여 막걸리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의 어머니는 어르신들 접대를 하느라 빨던 이불도 마당 한쪽에 치워놓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는 텐트 위에 과자 봉지 같은 것을 쌓아서 조금이라도 짙은 그늘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나으련만, 바람 한 점 불어주지 않았다. 그동안 아쉬운 대로 햇볕에 데워진 미지근한 물이라도 마시며 갈증을 달랬지만, 이제는 그 물마저도 다 떨어졌다. 배도 고파오고, 갈증도 나고,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년과 소녀는 무인도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차라리 무인도라면 지나가는 배가 구해주기나 바라겠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것을 바랄 수도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들을 발견할까봐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께 걸릴 것에 대한 걱정도 처음처럼 크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면역이 되는 모양이었다. 또는 눈앞의 작은 고민이 그 뒤에 닥칠 커다란 고민을 덮었는지도 몰랐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소녀의 모습이 섹시해 보였다. 소년은 소녀의 땀을 혀로 삼켰다.

“뭐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고 싶어?”
“아니, 목말라서.”

소년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땀에는 염분이 있어서 더 목마르게 되는 거 몰라?”
“그런가? ...그럼, 침은?”

소년의 말에 소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실, 소년은 어제 소녀에게 사막에 대해서 말하면서 한 가지 빠트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막에서의 섹스였다. 물론 사막에 대해서 얘기할 때만 해도, 섹스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상상일 뿐이었지만,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꿈이었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자면서 꾸게 되는 꿈. 소년이 처음으로 몽정을 할 때였다. 그 꿈에서 소년은 사막에서 여자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 위에는 외로운 독수리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노려보며 선회하고 있었고, 사막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소년은 여자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여자의 쇄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선명한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그리고 꿈이라서 그랬겠지만,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도 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느낌이 나중에 형상화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모래사막에서 소년과 여자는 둘 만의 세계를 만끽했었다. 그런데 지금 불현듯, 그때의 꿈이 떠오른 것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입에 고인 침을 소녀에게 넣어 주었다. 그 순간, 두 사람에게 더럽다던가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소년과 소녀는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도 잊고 입맞춤을 하며 서로의 목을 적셔주었다. 지난밤에는 어색하고 서두르느라 사실 그 기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두 사람의 입술은 상대의 입술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서로의 침을 넘겨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프렌치 키스가 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부드러운 혀를 느꼈다. 아마도 소녀의 혀는 소녀의 젖꼭지처럼 선 분홍빛일 것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의 손은 자연스레 소녀의 가슴을 향했다. 소녀도 지난밤과는 달리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손은 소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그 안으로, 그리고 브래지어 안으로 바로 향했다. 소년은 소녀의 작고 아담한 가슴을 쥐었다. 아-, 하는 탄식이 소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소년은 계속 입을 맞춘 채로 소녀를 텐트 아래 눕혔다. 소녀도 소년을 원한다는 듯, 순순히 누웠다. 소년은 소녀의 치마는 그대로 둔 채 팬티만 벗겼다. 소녀는 지난밤과는 달리 똑바로 눈을 뜨고 소년을 보고 있었다. 소년은 웃통을 벗고,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소녀에게 들어가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순간, 두 사람은 긴장했다. 혹시라도 아래 마당까지 들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아무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지난밤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소년은, 최대한 소녀가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천천히 삽입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갔다. 소녀도 수동적으로만 있지 않았다. 소년의 몸동작에 따라 자신의 엉덩이를 움직였다. 여전히 아프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소년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최대한 소리를 자제하며 조심스럽게 하나가 되어 갔다. 소년은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풀어헤쳐진 블라우스 밑으로 드러난 소녀의 쇄골에서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고, 소녀의 가슴에서도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더욱 깊이 소녀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소년은, 깊이, 최대한 깊이 들어갔다. 소녀는 소년의 등을 꼭 안았다. 소년은 자신의 뿌리까지 빠져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소녀는 자신의 뱃속까지 소년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더 들어갈 곳도, 이미 더 받아들일 곳도 없는 두 사람은 그럼에도 보다 더 깊이 서로를 느끼기 위해 최대한 밀착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소년은 다시 사정을 했다. 소녀는 소년을 모두 받아들이려는 듯, 마지막까지 짜내듯, 그렇게 힘을 주고 있었다. 성급하게 사정을 한 소년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 좀 더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정을 하고 난 뒤였음에도 다시 소녀에게 들어갔다. 그리고는 조금 전의 부드러움 대신, 거친 몸짓을 하고 있었다. 소녀의 몸은 소년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소년의 땀이 턱에서 소녀의 가슴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이 소년의 엉덩이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소년은 다시 사정을 했다. 그리고도 아쉬운 마음에 쉬이 소녀의 몸에서 나오지 못한 채 소녀를 안고 있었다.

“임신하면 어쩌지?”
“......”

소년도 임신에 대한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눈앞의 본능이 그 후에 닥칠 두려움을 밀어냈던 것이었다. 그것은 소녀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년보다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소년을 사랑하고 믿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모두 소녀가 안게 될 몫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두려움... 그랬다. 방금 전의 행위는 어쩌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가올 두려움을 잊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몰랐다. 실제로 전쟁 중에는 강간을 제외하더라도 섹스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는 종족번식의 본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어떤 두려움이 있을 때 섹스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커지는지도 몰랐다. 젠장... 소년은 혼잣말을 했다. 그냥, 섹스를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그냥,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지,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그것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였음에도,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무시했다. 미안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아무리 어른인 척해도 소년은 아직 어렸다. 또 하나의 두려움이 생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옥상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잠시 동안의 유희로 두려움을 잊을 수는 있었지만, 그 뒤의 두려움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또 하나의 두려움까지 안게 되었다. 소년은 애써 웃으며 소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했지만, 소년도 소녀도 모두 알고 있었다. 걱정 안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당장은 옥상에서 내려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마당에서는 여전히 잔치가 끝날 줄 모르고 있었다.

후둑- 후둑-

그때였다.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텐트 안으로 피했다. 마당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소란스러웠다.

“호랑이가 시집가네.”

소녀가 말했다.

“그럼 니가 호랑이냐?”

소년이 묻자, 소녀는 피식- 웃었다. 소녀의 웃음이 소년에게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게 해줬다.

“아, 좋다.”

텐트 바로 앞에서 내리는 소나기는 옥상 위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튀어 오르는 빗방울들.... 두 사람은 한참동안 멍하니 그 빗방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소년이 텐트 밖으로 나갔다.

“뭐해? 더운데 샤워하자!”
“?”

소년은 소나기를 즐겼다. 두 팔을 벌려 온 몸으로 소나기를 맞으며 혼자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시원해 보였다. 소녀도 따라 나갔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비가 내리는 하늘을 똑바로 봤다. 눈으로 빗물이 쏟아져도 감지 않았다.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빗속에서 두 사람은 빙글빙글 돌며 자신들만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카니발. 하지만 그들의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소나기가 그쳤다.

옥상에 고인 빗물이 맑은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아직 남아있는 소나기의 시원함에 두 사람은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봤다. 비에 흠뻑 젖은 하얀 블라우스가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 몸... 소년은 몸에 달라붙은 옷 속에 숨어있는 소녀의 몸을 생각했다. 그 몸이 온전히 자기 것이었다. 소년은 소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다시 소녀의 얇고 부드러운 혀가 느껴졌다. 비온 뒤의 상쾌함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콤함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 잔치가 끝난 마당에서 소녀를 찾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의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혹시 외박한 거 아냐? 밤에 전화도 안 받고!”

!!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옥상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를 두둔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며 더욱 화를 내고 있었다. 결국, 소녀의 부재는 부모들의 부부싸움으로 발전되었고, 그 끝은, 들어오기만 들어와. 다리몽둥이를 모두 부러뜨릴 테니까, 하는 아버지의 말로 끝이 났다. 소녀는 마당에 평상이 있는 것이 이렇게 원망스러워본 적이 없었다. 평상만 없었더라도 부모는 집 안에 들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렇게 평상에서 저녁도 먹고 평상에서 잘게 뻔했다. 해가 떨어져도 몰래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었다. 소년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때였다! 삐리리~~!! 텐트 안에 있던 소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당황한 소녀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소년이 서둘러 휴대폰 플립을 열어 소녀에게 건넸다. 어머니였다. ‘너 어디니?’하는 전화 저편의 소리와, ‘누구야? 소연이냐?’하는 마당에서의 아버지 소리가 함께 들렸다. 모두 끝장이었다. 옥상으로 올라오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텐트, 술병, 담배... 옥상 위의 상황을 본 소녀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소년과 소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갑자기, 소녀의 아버지는 옥상 한쪽에 있던 빗자루를 들고 소녀에게 달려갔다.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웅크리며 꺅-!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는 욕을 해대며 소녀를 빗자루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빗자루 든 손을 잡고 말렸다. 아버지는 소년도 때렸다. 소년은 차라리 자기가 맞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듯, 아무 저항 없이 맞았다. 아팠다. 어머니가 올라왔다. 어머니는 미쳤다며 아버지를 말리고 나섰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밀쳤다. 어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아버지가 다시 소년을 때리기 시작하자, 소녀는 울면서 소년을 감싸 안았다. 소녀의 등 위로 매가 내리쳐졌다. 악-! 소녀가 등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소년은 화가 났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래요!”
“뭐, 뭐?!!”

아버지는 소년의 갑작스런 기세에 놀란 듯, 잠시 주춤 거렸지만 이내 다시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뭘 잘못했는지 몰라?! 몰라서 물어?!!”

소년은 빗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래, 노려보면 어쩔 거냐? 칠거야? 이 호래자식 같은...”

빗자루를 잡고 있는 소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이 났다.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소년은 생각했다. 그 옆에서 소녀는 신음을 하며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빗자루 잡은 손을 놓으라며 소년의 뺨을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소년은 다시 아버지를 노려봤다. 얼굴과 몸 곳곳에 선명한 상처와 땀, 눈물로 얼룩진 소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소녀의 아버지를 때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소년의 손에서 빗자루를 뽑아 다시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웅크린 채 다시 맞았다.

“그만 해! 아빠, 그만 해!!”
“이 년이 뭘 잘했다고...!”

아버지는 다시 소녀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다시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소녀는 아버지가 소년을 때리지 못하게 방패막이되기로 결심한 듯, 아버지를 잡은 채 그대로 맞고 있었다. 소녀는 맞으며 쿨럭쿨럭 기침을 해댔다. 피. 소녀의 상처에서 피가 났다! 소년은 눈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아버지를 밀쳐냈다. 아버지가 떠밀려 넘어졌다.

“이 자식이 어른을 쳐?!”

아버지를 향해 날라들던 소년의 주먹이 소녀의 고함에 멈춰 섰다.

“그러지마! 그러지마... 제발...”

소녀는 소년의 팔을 잡았다. 소년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움찔해 있던 아버지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 막 되먹은 자식! 감히 누굴 치려고...!!”

아버지가 다시 소년을 빗자루로 내려쳤다. 소년은 다시 빗자루를 잡으며 아버지를 똑바로 노려봤다. 아버지와 소년은 둘 다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결국 소년이 먼저 빗자루를 놨다. 다시 아버지의 매가 쏟아졌다. 소년은 이를 악문 채 아버지를 똑바로 노려보며 고스란히 매를 맞았다. 다시 소녀가 가로막고 섰다.

“저리 안 비켜!”
“아니... 안 비킬 거야. 얘 보내줘. 날 때리면 되잖아.”

소녀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소녀의 상처를 보며 부들부들 떨던 아버지가 소리치며 다시 소녀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래! 죽어라! 죽어~!!!”

악- 비명을 지르며 소녀가 다시 맞기 시작할 때, 참지 못한 소년이 주먹으로 아버지를 쳤다. 아버지는 실제로 맞은 충격보다도 어린 소년이 자신을 쳤다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순간 멍해졌다. 소년은 다시 아버지를 칠 듯이 주먹을 세우다가, 허탈하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씨팔..., 여긴 너무 답답해... 사막으로 갈 거야. 사막으로 가서... 별이 될 거야...”
“?”

아버지는 소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소년의 손을 꽉 잡는 소녀의 손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 허망한 소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소년과 소녀는 돌아서서 옥상 끝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옥상에서 뛰면 우주까지 이어진 나무가 나올까? 그 광고처럼!”
“사막에는 갈 수 있을 거야!”
“그래!”

사막으로 가서... 별이 되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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