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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협 일룡전기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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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62회 작성일 20-01-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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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파 장문인 일성검 고준척의 망나니 아들, 고진내는 하룻밤에 금 한 냥 요금을 내야 머물 수 있는 제일객잔의 특실에서 사천특산의 검남춘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총관정춘수에게 진상을 부리고 있었다.
“가져오라고! 돈을 내겠다는데 왜 가져오지 못한다는 거야.”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검남춘은 사천성주가 외부로 반출을 금지시킨 특산품이라, 구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늦어도 모레까지는 제 목을 걸고서라도 준비시키겠습니다.”
“정향이는? 정향이는 어디에 갔냐고. 혹시 두 탕 뛰는 것 아니야? 내가 다른 방에다 들여보내지 말랬지.”
“공자님. 지금 시간을 보십시오. 이제 겨우 점심 때꺼리가 지났습니다. 여긴 홍루도 아니고, 홍루라도 영업을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입니다. 정향이는 저녁 영업이 시작되면 정말로 독점으로 여기 특실로 배정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자네 나온 배를 보아하니 욕심이 좀 많겠는데 말이야. 내 돈을 좀 주지. 금 다섯 냥이면 어떤가. 자네 일 년 월급보다 많을 거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내 한 가지만 묻지. 정향이를 기적에서 빼내려면 얼마나 들어? 얼마의 계약으로 묶여 있어? 정확한 내역을 알아온다면 금 다섯 냥을 주지. 어때. 생각이 있어?”
“계약조건을 알아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 건 제 직업적 양심이라는 정신적인 부분과 평생 직장이라는 경제적 부분을 동시에 잃을 수도 있는 일이라서……. 다소 간의 위험수당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만.”
“하하. 그 놈. 얼굴이 두껍더니, 욕심이 만장이로세. 좋아. 금 열 냥을 더하지. 열닷냥이면 항주에서도 작은 기루를 꾸릴 돈이니 만족하겠지?”
“하루만 기다리십시오. 정향이와 검남춘, 기적의 내용까지 한꺼번에 들고 찾아뵙지요.”
“하하.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그 말이 정답이야. 하하하.”

자기보다 서른 살은 더 많을 총관을 비웃으면서도 내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고진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힘들여 살아본 적도, 누군가를 공경하면서 어려워한 적도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무가의 아들로 태어나, 무공에 재능은 없었지만, 그 천착한 재질에 대한 포한을 가진 채 좌절만 되풀이해 온 일생을 불쌍히 여긴 일성검의 과보호 때문에 진내가 하지 못할 일은 적어도 사천 안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가의 여인에게 지분거리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직계도 아닌 방계의 여인에게 일성검이 직접 무릎을 꿇어 사죄하고서 위험을 벗어날 정도였으니, 개차반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된 일면에는 너무 자식사랑이 넘치는 잘난 아비를 둔 탓도 있었던 것이다.

고진내를 술에 절여놓고 난 총관 정춘수가 객잔의 주인 이자겸을 찾아, 고진내의 일을 보고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정향의 문제는 최근 이자겸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다. 안휘제일 기녀를 보유한 객잔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로인해 돈을 쓸어 담고도 있지만, 계약기간이 눈꼽만큼 남았다는 것이 벽옥의 티였던 것이다.
“정총관, 생각해 봤어? 내가 오늘까지 방법 좀 생각하라고 했지?”
“큰 돈을 쥐어주는 방법밖엔 없지 않겠습니까?”
“돈을 준다고 될까? 도척이 놈에게 채이고 난 다음부터는 앓는 게 일인데.”
“그래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사실, 업계에 소문이 안 나 그렇지. 정향이의 계약이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걸 알면, 안휘 성내의 모든 기루에서 영입전쟁을 벌일 겁니다. 특실의 봉처럼 들여앉히겠다는 고관대작과 무림고수들, 부호들만 줄을 세워도 대소산까지는 줄을 설겁니다.”
“그러니까 말이지. 무슨 방법이 없겠냔 말이야. 고작 그런 이야기 듣자고 비싼 밥 먹이는 게 아니니까. 제대로 된 말을 하라고.”
“일단, 계약기간을 허위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일단 계약서를 조작해서 새로 만드는 겁니다. 가짜수결을 위조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일단 서류를 만들어두고, 기막혀 하는 정향이를 돈으로 포기시키는 이중작전을 쓰는 거지요.”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것도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악역을 맡아서 위조 서류를 디미는 겁니다. 그리고 잔뜩 협박을 하고 있으면, 주인 어른이 나중에 달래면서 돈을 들이미는 겁니다.”
“그건 괜찮은 방법이지만, 지금 천금을 줘도 마다하는 형편인데. 아무래도 철금련쪽 방회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 아니야?”
“안됩니다. 달래는 방법을 쓰고, 안되면 속이는 방법을 써야지, 위협하는 방식이 되면, 도척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최여사의 힘이 발휘될지도 모르고요.”
“최여사라면 복강상단의 그…….”
“예. 소문의 그녀입니다. 도척이 놈을 따라다니는 무슨 회의 실질적인 힘이기도 한데, 정향이와 오랜 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군. 이도저도 안되면 미리 팔아버리는 걸로 하자고. 몸값이 한참 올랐으니까 팔아버리고, 돈 챙겨서 안휘를 뜨자고.”
“예. 주인어른.”

그 시각 종리 추섬과 도척은 천성사의 연등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종리 추섬의 호위인 추섬은 외부에 나설 땐 늘 3장 이내의 위치에서 근접경호를 했는다. 그런데 천성사는 더더구나 강호의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 이래저래 강호 사파의 영애로서 적이 많은 추섬의 입장으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딱 들러붙어 있는 추헌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지만, 연인간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그녀는 추헌을 불러 심부름을 시킨다.
“추헌, 제일객잔에 세 식경 후에 간다고 예약을 좀 하고 와.”
“안됩니다. 천성사는 위험지역입니다. 아가씨의 목숨은 아가씨 혼자의 목숨이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하는 고리타분한 말을 너도 하려는 거야?”
“아닙니다. 아가씨의 목숨은 제 아내와 아이의 목숨이기 때문에 전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글쎄.”
“추헌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부처님의 법력을 느끼는 것도 같이 하면 더 좋은 일일 테니, 추헌님이 곁에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공, 상공은 저와 둘이 있는 것이 그렇게 싫은신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종리 누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제겐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종리 추섬이 얼굴을 붉혔다. 철혈의 여인, 종리 추섬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그것은 근접 경호를 위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는 추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추헌은 자신의 다섯 살 짜리 딸 희민이 생각났다. 고물거리는 고것도 나중에 남자를 알게 되면 저렇게 되겠지. 괜히 입맛이 써지는 추헌이었다.

외총관 방일서가 들고 온 홍련의 출관소식은 단번에 잔치분위기의 정검방을 침묵에 빠뜨렸다. 옥골선풍의 얼굴에 남자치곤 가녀린 체구를 가져서, 종종 남색을 탐하는 색마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던 안휘의 옥기린 진대호는 습관처럼 서시의 쓴 웃음을 지었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얼굴에 회의실에서 차를 준비하던 시비들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발견한 진대호는 조건반사처럼 즉각 샤방한 꽃미소를 날렸다. 사실, 홍련과의 악연도 이렇게 자신의 모습에 반한 여자들에게 날리는 반응덕에 이뤄진 거였다. 잘생긴 얼굴에 감탄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보답을 주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이 남자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소가주를 보고 있는 방일서의 속은 이만저만 타는 것이 아니었다. 철흑련이라는 강남 최고 흑도방파가 자리잡고 있는 탓에, 안휘무림에선 전통의 남궁세가가 있다하더라도 흑도의 힘이 십분지 칠정도를 차지했다. 정검방이라는 작은 방회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진휘로의 작은 구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뿐인데, 이런 때에 철흑련에 자기 부인의 속곳이라도 언제든 바칠 수 있는 사검방과의 충돌은 아무래도 곤란했다. 더구나 그 홍련이 누군가? 홍돈이라는 여자에겐 치욕적인 별호로 놀림받고 있긴 하지만, 철흑련의 부련주 혈검 마태도 탐내서 자신의 진전을 나눠줄만한 절정고수가 아닌가.

“외총관, 무슨 방법이 없겠소. 만약 홍련이 더한 고수가 되어, 대호를 욕심낸다면 그 제안을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이…….”
“아직 나온 것도 아니고, 일단 출도가 사실로 확인되면, 역시 도척을 활용하는 것이.”
“오, 그래. 도척이 있었지. 내일 날이 밝는대로 도척을 우리 방회로 불러들이게. 부탁을 하는 수 밖에 없겠어.”
“싫습니다. 아버지.”

몇 안되는 방회의 수뇌가 모두 도척을 유일한 희망처럼 말할 때, 안휘의 옥기린 진대호가 마뜩치 않는 듯, 회의실의 탁자를 치면서. 자신의 아버지 진형춘의 눈을 도전적으로 노려봤다. 남궁세가의 이공자 자칭 미검랑 남궁자추, 안휘성 행정관 사진, 철흑련 파천멸마대주 멸마도 구환과 일룡 도척, 그리고 자신을 합쳐 안휘오공자라 불리고 있었지만, 자신과 비교해 배경이 좋은 다른 삼공자와 달리, 고작 정육점 주인이면서도 타고난 미색하나로 일룡이라는 칭호를 받는 도척을 내내 질시해 왔기 때문이다. 무공에 대한 자질도, 앞으로 이뤄나갈 미래도 다른 사공자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 다른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남궁세가의 이공자 자추와는 달리, 내세울 것이라고는 그 역시 잘생긴 얼굴 뿐이었기 때문에 생긴 경쟁심리였다. 더구나. 일룡이라니. 원래 일이라는 숫자와 용이라는 신수의 이름은 모두 이 얼굴에 바쳐져야 할 찬사가 아니란 말인가.
다행히 일룡에 대한 옥기린 진대호의 경쟁심리를 모르는 사람이 모인 사람들 중 없었기 때문에 회의는 아무런 문제없이 파했고, 외총관 방일서는 수하를 시켜, 모퉁이 정육점에 기별을 넣어, 내일 아침에 찾아와달라는 전언을 전했다.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종리 추섬을 철흑련의 정문까지 배웅한 도척이 모퉁이 정육점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이미 정육점 안에는 애일룡회의 여섯 여자들이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복강상단의 안주인 최미혜, 안휘제일기녀 정향. 안휘지현의 부인 안연홍, 무적신창의 아내 교현, 남궁세가의 적손 남궁혜등 유명짜하지 않는 여인이 없었지만, 가장 먼저 쪼르르 달려가 도척의 품에 안긴 건 호화루의 동기 초희였다. 특별히 꽃미소를 날리지 않아도, 화복에 건혜를 신지 않아도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 무심한 눈길의 일룡은 그 존재감이 남달랐다. 초희를 한쪽 팔로 들어 안고, 묵직하지만 감미로운 목소리로 누님들 안녕하셨습니까를 말하는 순간, 다섯 명의 여인들은 오줌을 지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라버니. 정검방에서 사람이 왔었어요. 정검방주님의 진현을 차리는 데 고기가 필요하다고, 수량과 단가를 상의하러 내일 아침에 오시라고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장영감님은?”
“제가 알아서 한다고 해서요. 술 한 잔 하고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어요.”
“잘했다. 그런데, 교누님은 오랜만이시네요.”

직접 지명을 받은 교현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본 호위로 따라온 무적신창의 수제자 감동이 눈을 찌푸렸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부 무적신창은 사실 무공에 비해 용모가 좀 달리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저따위 도부 따위에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감동이 후일 반드시 손을 봐줘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문밖이 시끄러웠다.
청성의 골칫덩어리 아들, 고진내가 정향을 찾으며 진열된 전시용 고기를 마구 헤집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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