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협 일룡전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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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96회 작성일 20-01-17 17:37본문
"이보게. 자네도 소문을 들었는가?"
"무슨 소문?"
"제일객잔의 시비들 중 제일 예쁜 아이가 있지 않는가?"
"누구? 아! 그 엉덩이가 착 올라붙은 정향이 말인가?"
"그래. 그 정향이가 모퉁이 정육점의 그 도척이 놈에게 고백을 했다네."
"뭐야? 어떻게 됐대?"
"그게 사실이야?"
안휘성 원경대로 뒷골목의 초입에 위치한 선술집 원경옥에선 저녁 무렵이면 늘 그렇듯, 탁배기 냄새와 하루 종일을 돌아다닌 장돌뱅이들의 농짓거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부분이 음담인 그들의 대화에 꼬마 점소이 유빈은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시전의 대경상단에다 절강에서 가져온 옥지환을 20개나 팔아치워, 본의 아니게 술을 사고 있는 정대삼이 그런 유빈을 보며 껄껄 웃는다.
"이 놈! 네 놈이 뭘 안다고 얼굴을 붉히는 게야. 사내꼭지는 뗀 게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뭘 더 드시겠습니까?"
"이 놈의 식당이야 뭐 뻔 하지 않겠느냐. 싼 안주 하나랑 화주를 좀 가져오너라."
"두돈냥 이면 됩니까?"
"그래."
엉덩이를 치는 정대삼을 질색하는 눈길로 쳐다본 유빈이 혀를 내밀며 멀어져가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예전 소식입니다. 도척형이 어제 배달하러 왔을 때 물었는데, 사귈 마음이 없답니다."
"그래? 너 이리 와서 이 오리 다리를 하나 먹거라. 그래 그 도척이 놈 여태 누구를 사귄 적이 있느냐?"
정대삼의 일가이자 미곡전의 수석사환으로 일하는 정대명이 어린 점소이 유빈을 끌어 들이더니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안휘의 원경대로 뒷거리에선 도척의 모든 소식이 돈이 되는 형편이었다. 내일 성공하는 장사를 시작하려면 일단 도척의 소식을 기본적으로 세 개쯤은 확보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엔 이 원경옥의 어린 점소이 유빈만큼 싸게 먹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정보장사꾼를 동원할 수 없는 초년의 장사치들에겐 상식이었던 것이다. 쩝쩝 거리면서 오리 다리 하나를 야무지게 베어 먹은 유빈이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빨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 아니다. 한 2년 전쯤에 그 홍돈 누나랑 사귀었었죠."
"에? 뭐라고 그 인간흉기 말이냐?"
"예. 꽤 진지했었어요. 사검방의 홍돈 누나가 정검방의 그 잘난 얼굴...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 그 옥골의 대제자를 좋아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는데요. 홍돈 누나가 우리 집에서 매상 기록을 세웠거든요. 얼마였더라 하여튼 술값으로 금화가 나왔었거든요. 그 정도로 떡이 된 누나를 배달왔다 돌아가던 도척이 형이 업어서 집으로 옮겼고. 아, 그 땐 저도 따라갔었거든요. 형 등에 다 토하고 완전 개진상이었는데요."
"아따. 그놈 입 한 번 걸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도척이가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돼지를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어?"
"그게 아니고, 홍돈 누나가 다음 날 도척이 형 찾아가서 따졌거든요. 순결한 처녀의 둔부를 주물락 거렸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둔부를 주물락 거리다니?"
"업고 가느라 어쩔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책임지기로 했다?"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어길 수 없다면서. 잠시 사귀었죠."
"그런데 어떻게 헤어졌어. 그 홍돈이라면 불문곡직 혼인신고부터 하려고 했을 터인데."
"그 소식을 들은 철흑련의 종리 아가씨가 홍돈 누나에게 암살자를 붙이는 바람에...."
좌중이 침묵에 빠진 순간,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사내 하나가 돼지고기 덩어리를 어깨에 메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식당으로 들어왔다.
"유빈이 이놈.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니까."
"아니. 형. 그게 아니고. 여기 이 아저씨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유빈이 꽁무니를 빼는데, 정대삼이 도척을 보며 은근한 눈으로 물었다.
"여자가 그렇게 들러붙는데, 아직 총각은 아니겠지?"
묵직한 도척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직 총각입니다. 도무지 짬이 없네요. 어르신은 괜찮으십니까. 창증이 도지셨다는데요."
"아니. 네가 어떻게 우리 아버님일을 알아."
"이따 저희 정육점으로 들리세요. 제가 약방 소민이에게 부탁해서 창증에 좋은 단방약문을
구했거든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서로 아끼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남자가 봐도 멋진 웃음을 싱긋 날린 도척이 돼지고기를 주방에 가져다 주고 돌아오더니 정대삼을 일별하고는 곧 차양을 걷고 나가버리자. 여기저기서 한 숨이 터졌다.
"어머 어머, 난 숨을 못 쉬겠더라. 어디 하나 모자란 곳이 없어."
"그 피부 봤니. 캄캄한 곳에서도 그냥 빛이 번쩍하더라."
그렇게 여인네들의 수다가 곧바로 이어졌다.
장미촌의 전문호객꾼 왕삼은 손님을 장미촌으로 끌어들이고, 그 손님이 마신 주대의 2할을 챙긴다. 호객꾼들 사이의 암묵적인 비용은 원래 일할 오푼이지만, 왕삼은 이미 이 일을 30여년이나 해온 인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호객꾼에겐 정말로 재수가 없는 날이다. 가지고 다니는 다소 길이가 짧은 장죽에 담배 이파리를 채우고 장미촌 건물 처마에 기대서서 우산을 쓰거나 도롱이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중 심신이 지친 자가 없는 지를 관찰하던 왕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검방의 외총관 방일서였다.
"어이 방총관. 비도 오는데, 객고나 풀고 가시지."
"왕노인. 지금 내가 좀 바빠서 말이오."
"정검방 외총관이 원성대로 뒷거리엔 웬일이오."
"그저 우리 아이들 월봉을 주는 날이 오늘이라, 혹 무슨 사단이나 생기지 않을까 해서 단속차원에서 온 것이오."
"그래? 이상한 걸. 정검방 월봉지급일은 사흘 후가 아닌가?"
"사검방이랑 날짜가 같다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 시비가 생겨서 말이오."
"하긴, 홍련이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준비가 좀 필요하기도 할게야."
"홍련이라니요. 혹시 홍돈 말입니까?"
"그래. 곧 폐관을 마친다더구만."
"아이들도 그렇고, 우리 대호도 그렇고 일단 한달정도는 외출금지를 시켜야 겠군요. 고맙소. 이걸로 돌아가실 때 목이라도 축이시오."
"자네도 수고하게."
홍돈이 돌아오다니. 전혀 예정이 없던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달이 있으면 방주 진형춘이 정검방이라는 방회를 아들인 진대호에게 물려주고 뒷방 늙은이로 여생을 보내게 되어 이취임식 준비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지경인데. 방일서로서는 온통 짜증이 나는 일 투성이었다.
아이들을 단속할 때가 아니다. 방회로 돌아가 홍돈대책을 몇 안되는 고위급들과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일서가 인정로에 있는 방회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챙챙하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선 싸움이라도 난 듯 했다. 모른 척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귀에 번쩍 들리는 외침이 있었다.
"도척이다. 도척이야!"
"도척님이 오셨어!"
방일서는 무릎을 쳤다. 그래 홍돈일이라면 아니, 여자문제라면 도척이상가는 사람이 없지.돼지고기라도 잔뜩 팔아주고서, 좀 구슬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발을 놀렸다.
싸움의 주인공은 정검방의 일대 제자인 노상과 사검방의 외찰대 대원 진혁이었다. 노상은 방일서가 다음대의 외총관으로 공을 들이는 정검방 유수의 기재였는데, 도척이 나타난 것으로 싸움이 중재될 것 같아 방일서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노상이 진혁에게 망신을 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훤칠한 키의 도척이 고기칼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형님들,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겝니까?"
"아무리 도척 너라도 지금은 상관하지 마라. 이건 사내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니까."
"이야기나 좀 해 주십시오. 뒷거리에서 싸움이야 여반장으로 있는 일이지만, 칼을 빼든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여인들도 아이들도 있는데요."
"그건 저 비겁한 진혁이 녀석에게 물어라. 저 놈이 먼저 칼을 뽑았으니까."
"항! 네 놈이 먼저 남의 여인에게 추파를 던졌지 않느냐?"
"남의 여인이라니요. 노상형님. 정말입니까?"
"흥! 남의 여인이라니. 그 여인이 어찌 진혁 너같은 소인배의 여인이라는 거냐. 난 정향 아가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널 용서할 수가 없다!"
쯧쯧하는 소리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방일서는 돌연 변한 구경꾼들의 동정어린 시선들이 이상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다가 미곡전의 정대명이 보였다. 방일서가 다가가서 정대명에게 물었다.
"아니. 왜 갑자기 다들 혀를 차는 것이오."
"아. 방총관님 아니십니까? 실은 그 정향이 저 도척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요즘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이 요즘 우리 뒷거리의 가장 큰 소문이라오. 그런데, 저 둘이 그 걸 모두 모르다니 정검방도 너무 소식이 느린 것 아닙니까?"
"아. 노상도 나도 합비까지 기동훈련을 다녀왔다가 어제 도착했소. 그런 일이 있었소. 쯧쯧."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노상이 갑자기 칼을 도척에게 겨누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말이 진짜냐? 네가 정향 아가씨를 거절했느냐. 그래서 오늘 그렇게 얼굴이 안 돼 보였던 것이냐?"
"조금 사실과 다릅니다. 정향 누이는 제가 거절한 것이 아니라, 정향 누이에게 제가 거절당한 것입니다. 정향 누이가 보는 저와 원래의 전 좀 다르더군요. 제 진면목을 알고 나니 흥미가 없어 하시더라고요. 정향 누이야 형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무인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사람이 없어서 돼지고기나 잘라 파는 저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까지야 있겠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혁이 갑자기 칼을 들어 도척쪽으로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네 놈의 거짓말이다. 난 알고 있었단 말이다. 정향 아가씨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면서 네 놈이 고기를 파는 모퉁이 정육점 쪽을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죽어라 이놈!"
찔러들어가던 진혁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화려한 궁장을 한 여인 하나가 도척 앞에 서더니 곧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냈다.
"그러게. 상공의 옆엔 우리 추헌을 두어야 한다니까요. 이런 자들에게 불의의 변이라도 당한다면 사검방 사람들이 불쌍해지잖아요. 상공을 해한 죄로 제 손에 모두 죽어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종리 누님 오셨습니까?"
새빨간 궁장의 여인 종리추섬의 등장이었다.
종리추섬은 도척과 추헌이라는 호위에게 제압당한 두명의 무인들을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짝짝 두 번 손뼉을 쳤다. 그리고 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다들,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잘 알 텐데요. 이 추섬이 뜨는 곳에 횡액이 그치지 않는다는 걸요.”
찔끔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종리추섬이 머문 곳엔 혈향이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신의 무위도 무위지만, 호위인 추헌의 솜씨는 놀라워서 소문으로는 소림사 방장이라도 암살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 추헌을 표현하는 안휘 무림의 중평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종리추섬의 그 기괴한 성정은 또 어떠한가.
다들 흩어지고 남은 곳엔, 사검방의 외총관 방일서만이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아. 당신은 왜 꺼지지 않고 거기 있는 거죠? 본 아가씨의 말을 먼지 같이 허투루 듣는 건가요?”
“아니오. 다만 죄 없이 같이 도매금 취급을 당한 우리 아이를 받아가려고 기다렸던 거요. 노상을 내어 준다면 즉시 발길을 돌리겠소.”
“노상이라. 저기 저 자 말인가요? 우리 상공에게 소리를 지르고 의심했던……?”
“아니오. 종리아가씨. 그는 어제 훈련에서 복귀해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해 무지했던 것 뿐이오. 아가씨께서 큰 마음을 쓰셔서 아량만 베풀어주신다면, 노상이 다시는 도척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도록 정검방 차원에서 단속을 하겠습니다.”
“좋아요. 사검방의 외총관이라더니 혀가 꽤나 매끄럽군요. 상공도 보고 계신 마당이니 오늘은 특별히 용서하죠. 대신 상공의 돼지고기를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100근씩 사도록 해요.” “예.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도척! 부탁하네.”
“필요치 않으시면 그러지 마세요. 방총관님.”
“아니야. 안 그래도 아이들 내내 수고를 해서 고기를 좀 먹이려 했지. 내일부터 100근씩 일주일동안 보내주게. 가격은 내 미리 치름세.”
방일서가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은자를 꺼내, 도척에게 주문한 돼지고기 값을 치르고, 도망치듯, 노상을 끼고 사라졌다. 늘 떠들썩한 원경대로의 뒷골목엔 어울리지 않는 적막함이 도척의 모퉁이 정육점을 감싸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오직 종리추섬만이 화사한 차림새를 뽐내고 있었다.
“상공, 언제쯤이면 상공의 마음을 제게 줄 건가요. 전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지만, 세상의 못된 소문에 상공이 계속 연관되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요.”
“종리누님, 누님은 누님 스스로를 좀 더 아끼셔야 해요. 어찌 대 철흑련의 무남독녀께서 이 천한 돼지고기 장사꾼을 좋아하신다 하십니까. 모든 사람에겐 그에게 맞는 격이 있는 겁니다. 더구나 누님은 정혼자도…….”
순간, 종리추섬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눈으로 호위인 추헌을 불러 뭔가 지시를 내리려 했다. 그 것을 본 도척이 놀라 뛰어나왔다.
“안 됩니다. 추헌님. 움직이시지 마세요.”
“상공! 왜 그러시나요.”
“못난 저 때문에 남궁세가의 차남이 죽는다면, 그로 인해서 철흑련과 남궁세가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면 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떨어지겠습니까?”
“역시. 제겐 상공뿐이세요. 상공. 잠시 가게를 접어두시고, 저와 천성사의 연등이라도 보러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누님의 뜻을 거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하지만, 누님. 언제나 이렇게 떼를 써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어린애가 될 뿐입니다. 저처럼 일가붙이 없는 쓸쓸한 인생에겐 좀 더 따뜻하고 온유한 성정을 가진 성숙한 여자가 더 어울릴 듯 하네요.”
찾아온 목적을 이뤄 기분이 좋아졌던 종리추섬은 얼굴을 찡그려졌지만, 곧 기분을 푼 듯 도척의 돼지고기 냄새가 밴 팔을 잡아 팔짱을 끼곤, 추헌을 앞세워 원경대로를 벗어났다. 종리추섬과 도척 일행이 사라진 대로에 사람이 가득찬 물이 넘치듯 쏟아졌다.
뒷거리의 초입에서 홍루의 기녀들 선물용 꽃을 파는 송노파가 혀를 쯧쯧 찼다.
“철흑련도 성세가 다 될 때가 된 것인가? 흑장미 하나를 꺽지 못하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 강남은 철흑련의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시면서.”
“우리네 같은 인생이 뭐 그런 걸 신경쓰고 살았나. 그나저나 도척이 인물은 인물이야. 저 정신없는 종리추섬이 저렇게 목을 매고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야.”
“괜히 일룡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홍루 자운몽의 일꾼인 중노미 양씨가 두부장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송노파를 향해 한 마디를 씹듯 내뱉고는 양쪽에 든 물지게를 지고 위태위태 길을 걸었다. 물을 뜨다 튄 것인지 젖은 바지 아래로 바싹 마른 엉덩이가 북어를 보는 듯 했다.
"무슨 소문?"
"제일객잔의 시비들 중 제일 예쁜 아이가 있지 않는가?"
"누구? 아! 그 엉덩이가 착 올라붙은 정향이 말인가?"
"그래. 그 정향이가 모퉁이 정육점의 그 도척이 놈에게 고백을 했다네."
"뭐야? 어떻게 됐대?"
"그게 사실이야?"
안휘성 원경대로 뒷골목의 초입에 위치한 선술집 원경옥에선 저녁 무렵이면 늘 그렇듯, 탁배기 냄새와 하루 종일을 돌아다닌 장돌뱅이들의 농짓거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부분이 음담인 그들의 대화에 꼬마 점소이 유빈은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시전의 대경상단에다 절강에서 가져온 옥지환을 20개나 팔아치워, 본의 아니게 술을 사고 있는 정대삼이 그런 유빈을 보며 껄껄 웃는다.
"이 놈! 네 놈이 뭘 안다고 얼굴을 붉히는 게야. 사내꼭지는 뗀 게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뭘 더 드시겠습니까?"
"이 놈의 식당이야 뭐 뻔 하지 않겠느냐. 싼 안주 하나랑 화주를 좀 가져오너라."
"두돈냥 이면 됩니까?"
"그래."
엉덩이를 치는 정대삼을 질색하는 눈길로 쳐다본 유빈이 혀를 내밀며 멀어져가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예전 소식입니다. 도척형이 어제 배달하러 왔을 때 물었는데, 사귈 마음이 없답니다."
"그래? 너 이리 와서 이 오리 다리를 하나 먹거라. 그래 그 도척이 놈 여태 누구를 사귄 적이 있느냐?"
정대삼의 일가이자 미곡전의 수석사환으로 일하는 정대명이 어린 점소이 유빈을 끌어 들이더니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안휘의 원경대로 뒷거리에선 도척의 모든 소식이 돈이 되는 형편이었다. 내일 성공하는 장사를 시작하려면 일단 도척의 소식을 기본적으로 세 개쯤은 확보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엔 이 원경옥의 어린 점소이 유빈만큼 싸게 먹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정보장사꾼를 동원할 수 없는 초년의 장사치들에겐 상식이었던 것이다. 쩝쩝 거리면서 오리 다리 하나를 야무지게 베어 먹은 유빈이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빨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 아니다. 한 2년 전쯤에 그 홍돈 누나랑 사귀었었죠."
"에? 뭐라고 그 인간흉기 말이냐?"
"예. 꽤 진지했었어요. 사검방의 홍돈 누나가 정검방의 그 잘난 얼굴...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 그 옥골의 대제자를 좋아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단칼에 거절당했는데요. 홍돈 누나가 우리 집에서 매상 기록을 세웠거든요. 얼마였더라 하여튼 술값으로 금화가 나왔었거든요. 그 정도로 떡이 된 누나를 배달왔다 돌아가던 도척이 형이 업어서 집으로 옮겼고. 아, 그 땐 저도 따라갔었거든요. 형 등에 다 토하고 완전 개진상이었는데요."
"아따. 그놈 입 한 번 걸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도척이가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돼지를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어?"
"그게 아니고, 홍돈 누나가 다음 날 도척이 형 찾아가서 따졌거든요. 순결한 처녀의 둔부를 주물락 거렸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둔부를 주물락 거리다니?"
"업고 가느라 어쩔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책임지기로 했다?"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어길 수 없다면서. 잠시 사귀었죠."
"그런데 어떻게 헤어졌어. 그 홍돈이라면 불문곡직 혼인신고부터 하려고 했을 터인데."
"그 소식을 들은 철흑련의 종리 아가씨가 홍돈 누나에게 암살자를 붙이는 바람에...."
좌중이 침묵에 빠진 순간,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사내 하나가 돼지고기 덩어리를 어깨에 메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식당으로 들어왔다.
"유빈이 이놈.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니까."
"아니. 형. 그게 아니고. 여기 이 아저씨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유빈이 꽁무니를 빼는데, 정대삼이 도척을 보며 은근한 눈으로 물었다.
"여자가 그렇게 들러붙는데, 아직 총각은 아니겠지?"
묵직한 도척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직 총각입니다. 도무지 짬이 없네요. 어르신은 괜찮으십니까. 창증이 도지셨다는데요."
"아니. 네가 어떻게 우리 아버님일을 알아."
"이따 저희 정육점으로 들리세요. 제가 약방 소민이에게 부탁해서 창증에 좋은 단방약문을
구했거든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서로 아끼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남자가 봐도 멋진 웃음을 싱긋 날린 도척이 돼지고기를 주방에 가져다 주고 돌아오더니 정대삼을 일별하고는 곧 차양을 걷고 나가버리자. 여기저기서 한 숨이 터졌다.
"어머 어머, 난 숨을 못 쉬겠더라. 어디 하나 모자란 곳이 없어."
"그 피부 봤니. 캄캄한 곳에서도 그냥 빛이 번쩍하더라."
그렇게 여인네들의 수다가 곧바로 이어졌다.
장미촌의 전문호객꾼 왕삼은 손님을 장미촌으로 끌어들이고, 그 손님이 마신 주대의 2할을 챙긴다. 호객꾼들 사이의 암묵적인 비용은 원래 일할 오푼이지만, 왕삼은 이미 이 일을 30여년이나 해온 인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호객꾼에겐 정말로 재수가 없는 날이다. 가지고 다니는 다소 길이가 짧은 장죽에 담배 이파리를 채우고 장미촌 건물 처마에 기대서서 우산을 쓰거나 도롱이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중 심신이 지친 자가 없는 지를 관찰하던 왕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검방의 외총관 방일서였다.
"어이 방총관. 비도 오는데, 객고나 풀고 가시지."
"왕노인. 지금 내가 좀 바빠서 말이오."
"정검방 외총관이 원성대로 뒷거리엔 웬일이오."
"그저 우리 아이들 월봉을 주는 날이 오늘이라, 혹 무슨 사단이나 생기지 않을까 해서 단속차원에서 온 것이오."
"그래? 이상한 걸. 정검방 월봉지급일은 사흘 후가 아닌가?"
"사검방이랑 날짜가 같다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 시비가 생겨서 말이오."
"하긴, 홍련이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준비가 좀 필요하기도 할게야."
"홍련이라니요. 혹시 홍돈 말입니까?"
"그래. 곧 폐관을 마친다더구만."
"아이들도 그렇고, 우리 대호도 그렇고 일단 한달정도는 외출금지를 시켜야 겠군요. 고맙소. 이걸로 돌아가실 때 목이라도 축이시오."
"자네도 수고하게."
홍돈이 돌아오다니. 전혀 예정이 없던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달이 있으면 방주 진형춘이 정검방이라는 방회를 아들인 진대호에게 물려주고 뒷방 늙은이로 여생을 보내게 되어 이취임식 준비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지경인데. 방일서로서는 온통 짜증이 나는 일 투성이었다.
아이들을 단속할 때가 아니다. 방회로 돌아가 홍돈대책을 몇 안되는 고위급들과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일서가 인정로에 있는 방회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챙챙하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선 싸움이라도 난 듯 했다. 모른 척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귀에 번쩍 들리는 외침이 있었다.
"도척이다. 도척이야!"
"도척님이 오셨어!"
방일서는 무릎을 쳤다. 그래 홍돈일이라면 아니, 여자문제라면 도척이상가는 사람이 없지.돼지고기라도 잔뜩 팔아주고서, 좀 구슬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발을 놀렸다.
싸움의 주인공은 정검방의 일대 제자인 노상과 사검방의 외찰대 대원 진혁이었다. 노상은 방일서가 다음대의 외총관으로 공을 들이는 정검방 유수의 기재였는데, 도척이 나타난 것으로 싸움이 중재될 것 같아 방일서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노상이 진혁에게 망신을 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훤칠한 키의 도척이 고기칼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형님들,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겝니까?"
"아무리 도척 너라도 지금은 상관하지 마라. 이건 사내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니까."
"이야기나 좀 해 주십시오. 뒷거리에서 싸움이야 여반장으로 있는 일이지만, 칼을 빼든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여인들도 아이들도 있는데요."
"그건 저 비겁한 진혁이 녀석에게 물어라. 저 놈이 먼저 칼을 뽑았으니까."
"항! 네 놈이 먼저 남의 여인에게 추파를 던졌지 않느냐?"
"남의 여인이라니요. 노상형님. 정말입니까?"
"흥! 남의 여인이라니. 그 여인이 어찌 진혁 너같은 소인배의 여인이라는 거냐. 난 정향 아가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널 용서할 수가 없다!"
쯧쯧하는 소리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방일서는 돌연 변한 구경꾼들의 동정어린 시선들이 이상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다가 미곡전의 정대명이 보였다. 방일서가 다가가서 정대명에게 물었다.
"아니. 왜 갑자기 다들 혀를 차는 것이오."
"아. 방총관님 아니십니까? 실은 그 정향이 저 도척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요즘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이 요즘 우리 뒷거리의 가장 큰 소문이라오. 그런데, 저 둘이 그 걸 모두 모르다니 정검방도 너무 소식이 느린 것 아닙니까?"
"아. 노상도 나도 합비까지 기동훈련을 다녀왔다가 어제 도착했소. 그런 일이 있었소. 쯧쯧."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노상이 갑자기 칼을 도척에게 겨누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말이 진짜냐? 네가 정향 아가씨를 거절했느냐. 그래서 오늘 그렇게 얼굴이 안 돼 보였던 것이냐?"
"조금 사실과 다릅니다. 정향 누이는 제가 거절한 것이 아니라, 정향 누이에게 제가 거절당한 것입니다. 정향 누이가 보는 저와 원래의 전 좀 다르더군요. 제 진면목을 알고 나니 흥미가 없어 하시더라고요. 정향 누이야 형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무인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사람이 없어서 돼지고기나 잘라 파는 저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까지야 있겠니."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혁이 갑자기 칼을 들어 도척쪽으로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네 놈의 거짓말이다. 난 알고 있었단 말이다. 정향 아가씨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면서 네 놈이 고기를 파는 모퉁이 정육점 쪽을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죽어라 이놈!"
찔러들어가던 진혁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화려한 궁장을 한 여인 하나가 도척 앞에 서더니 곧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냈다.
"그러게. 상공의 옆엔 우리 추헌을 두어야 한다니까요. 이런 자들에게 불의의 변이라도 당한다면 사검방 사람들이 불쌍해지잖아요. 상공을 해한 죄로 제 손에 모두 죽어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종리 누님 오셨습니까?"
새빨간 궁장의 여인 종리추섬의 등장이었다.
종리추섬은 도척과 추헌이라는 호위에게 제압당한 두명의 무인들을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짝짝 두 번 손뼉을 쳤다. 그리고 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다들,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잘 알 텐데요. 이 추섬이 뜨는 곳에 횡액이 그치지 않는다는 걸요.”
찔끔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종리추섬이 머문 곳엔 혈향이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신의 무위도 무위지만, 호위인 추헌의 솜씨는 놀라워서 소문으로는 소림사 방장이라도 암살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 추헌을 표현하는 안휘 무림의 중평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종리추섬의 그 기괴한 성정은 또 어떠한가.
다들 흩어지고 남은 곳엔, 사검방의 외총관 방일서만이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아. 당신은 왜 꺼지지 않고 거기 있는 거죠? 본 아가씨의 말을 먼지 같이 허투루 듣는 건가요?”
“아니오. 다만 죄 없이 같이 도매금 취급을 당한 우리 아이를 받아가려고 기다렸던 거요. 노상을 내어 준다면 즉시 발길을 돌리겠소.”
“노상이라. 저기 저 자 말인가요? 우리 상공에게 소리를 지르고 의심했던……?”
“아니오. 종리아가씨. 그는 어제 훈련에서 복귀해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해 무지했던 것 뿐이오. 아가씨께서 큰 마음을 쓰셔서 아량만 베풀어주신다면, 노상이 다시는 도척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도록 정검방 차원에서 단속을 하겠습니다.”
“좋아요. 사검방의 외총관이라더니 혀가 꽤나 매끄럽군요. 상공도 보고 계신 마당이니 오늘은 특별히 용서하죠. 대신 상공의 돼지고기를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100근씩 사도록 해요.” “예.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도척! 부탁하네.”
“필요치 않으시면 그러지 마세요. 방총관님.”
“아니야. 안 그래도 아이들 내내 수고를 해서 고기를 좀 먹이려 했지. 내일부터 100근씩 일주일동안 보내주게. 가격은 내 미리 치름세.”
방일서가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은자를 꺼내, 도척에게 주문한 돼지고기 값을 치르고, 도망치듯, 노상을 끼고 사라졌다. 늘 떠들썩한 원경대로의 뒷골목엔 어울리지 않는 적막함이 도척의 모퉁이 정육점을 감싸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오직 종리추섬만이 화사한 차림새를 뽐내고 있었다.
“상공, 언제쯤이면 상공의 마음을 제게 줄 건가요. 전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지만, 세상의 못된 소문에 상공이 계속 연관되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요.”
“종리누님, 누님은 누님 스스로를 좀 더 아끼셔야 해요. 어찌 대 철흑련의 무남독녀께서 이 천한 돼지고기 장사꾼을 좋아하신다 하십니까. 모든 사람에겐 그에게 맞는 격이 있는 겁니다. 더구나 누님은 정혼자도…….”
순간, 종리추섬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눈으로 호위인 추헌을 불러 뭔가 지시를 내리려 했다. 그 것을 본 도척이 놀라 뛰어나왔다.
“안 됩니다. 추헌님. 움직이시지 마세요.”
“상공! 왜 그러시나요.”
“못난 저 때문에 남궁세가의 차남이 죽는다면, 그로 인해서 철흑련과 남궁세가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면 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떨어지겠습니까?”
“역시. 제겐 상공뿐이세요. 상공. 잠시 가게를 접어두시고, 저와 천성사의 연등이라도 보러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누님의 뜻을 거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하지만, 누님. 언제나 이렇게 떼를 써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어린애가 될 뿐입니다. 저처럼 일가붙이 없는 쓸쓸한 인생에겐 좀 더 따뜻하고 온유한 성정을 가진 성숙한 여자가 더 어울릴 듯 하네요.”
찾아온 목적을 이뤄 기분이 좋아졌던 종리추섬은 얼굴을 찡그려졌지만, 곧 기분을 푼 듯 도척의 돼지고기 냄새가 밴 팔을 잡아 팔짱을 끼곤, 추헌을 앞세워 원경대로를 벗어났다. 종리추섬과 도척 일행이 사라진 대로에 사람이 가득찬 물이 넘치듯 쏟아졌다.
뒷거리의 초입에서 홍루의 기녀들 선물용 꽃을 파는 송노파가 혀를 쯧쯧 찼다.
“철흑련도 성세가 다 될 때가 된 것인가? 흑장미 하나를 꺽지 못하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 강남은 철흑련의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시면서.”
“우리네 같은 인생이 뭐 그런 걸 신경쓰고 살았나. 그나저나 도척이 인물은 인물이야. 저 정신없는 종리추섬이 저렇게 목을 매고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야.”
“괜히 일룡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홍루 자운몽의 일꾼인 중노미 양씨가 두부장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송노파를 향해 한 마디를 씹듯 내뱉고는 양쪽에 든 물지게를 지고 위태위태 길을 걸었다. 물을 뜨다 튄 것인지 젖은 바지 아래로 바싹 마른 엉덩이가 북어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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