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香氣) - Renewal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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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20-01-17 17:36본문
한바탕의 격렬한 섹스가 끝나고 나는 선생님의 따뜻한 품안에 안겨 천천히 숨을 골라갔다. 땀에 젖어 더 없을 정도로 밀착 된 피부 가득 느껴지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살갗이 더없이 기분 좋게 느껴졌고, 머리를 받쳐주는 푹신한 유방이 그 어떤 베게보다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직 섹스의 여운에 잠긴 듯 한 가쁜 숨소리와 함께 잔잔한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해오는 감촉과 그를 통해 전해져 오는 뜨거움이 그 포근함과 따뜻함을 더해온다.
그렇게 잠시 미육의 침대에 파묻혀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의 눈에 선생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많이 지쳤는지 선생님이 눈을 감은 채 색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눈 밑의 고운 볼은 아직도 방금 전의 정사의 여운이 남았는지 붉게 상기 돼 있었고 촉촉이 젖어 있는 앵두 같은 입술사이로는 귓가에 생생하게 들릴 만큼 고운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새어나왔다.
<괜찮으세요??>
<어...괜찮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가볍게 미소를 띄우며 대답하는 선생님의 얼굴은 그 말과는 다르게 가득 지친 기색이 완연해 오히려 더욱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죄송...해요...>
<뭐가 또 죄송한데??>
<그냥...이것 저것...모두 다요...>
내가 봐도 정말 한심한 말이다..언제나 할 건 다 해 놓고 결국에는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는다. 책임지지 못 할일을 져놓고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만 내뱉는 한심한 인간.. 지금의 내가 그런 인간이다..
<하아...역시 어리네...강혁이...>
<네??>
<어리다구....니가....>
내 나이 이제 열여덟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린데 살짝 웃으며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놀리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기분이 쳐지는 게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이리와봐..>
<네??>
<이리 와서 선생님 옆에 누워 보라고...>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살살 두들기며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팔을 뻗어서...이렇게 하고 나머지 한손으로...이렇게...하고>
내가 옆에 눕자 선생님은 내 팔을 잡고 자신의 머리 밑으로 집어 넣고 나머지 한손을 자신의 잘록한 허리로 얹게 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지시에 별 저항 없이 인형처럼 손을 맡겨갔다.
<그리고...그대로 팔을 접어봐...>
선생님의 말에 뻗은 팔을 접어 가자 내 팔의 영역 안에 있던 선생님의 작은 몸이 자연스레 내 품으로 쏙 들어왔고 선생님 역시 아무 저항 없이 사뿐하게 내 속으로 들어와 내 턱 밑으로 머리를 기대며 고운 팔을 내 가슴께에 얹어 수박 같은 젖가슴을 붙여왔다. 그렇게 내 품안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육체가 가득 느껴져 왔다. 맞닿은 피부를 타고 솜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전해져와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그래...그냥 이럴 땐..그냥 이렇게 안아주면 돼...알았어??>
고개를 들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귀여운 웃음을 짓는 선생님. 그 모습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근데... 너 이런 거 안 배웠어??>
<이..이런걸 어디서 배워요...>
내가 꾼도 아니고.. 여자랑 자봐야 얼마나 자봤다고..
<왜?? 너 그 교육용 책 있잖아...거기서 안 가르쳐줘?? 크크>
또 그 얘기냐?? 쪽팔리게... 역시 선생이라 기억력이 좋나 보다.
<그...그런거 안 써있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딨냐..이게 제일 핵심인데...역시 독학만 해서 뭘 몰라...>
이거..아주 꼬투리 잡았구만...사정없이 찔러 대는데??
<그...그건 실습 위주만 적어 놔서 그래요..>
나도 참 은근히 쓸데없는 자존심이 많은 놈인가 보다...이런 변명까지 하는 걸 보면..
<그래?? 근데..그렇게 여자를 대해??>
<어..땠는 데요??>
<몰라서 물어?? 거칠고, 배려없고, 막무가내에, 난폭하고...>
선생님이 손가락까지 들고 세어가며 한 마디 한 마디 내 뱉을 때마다 내 가슴의 이쪽저쪽 여러 방향에서 사정없이 뜨끔 뜨끔거려 왔다. 이런..너무 직설적이야...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날 죽이는구나..
<등등등...정말..꽝!! 전체 성적으로 말하자면 가..집에 가다!!>
누가 선생 아니랄 까봐 그새 성적 까지 매겼나 보다..근데 전체 평균 가라니!!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미까지는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남겨 놓아 그 아래로는 넘어가 본적이 없는 난데..가라니..그것도 완전가라니!!마지막 결정타에 한없이 무너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쪽팔림에 얼굴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뭐야...실망한거야??평균이 생각보다 못 나와서??그럴 수도 있지..사람이 첨부터 잘할 수는 없는 거니까..담에 잘하면 되잖아..안 그래??>
사람 내장 다 후벼 파놓고 후시딘만 발라주면 다냐?? 이제 와서 위로는...그리고 또 담에 언제 이럴 일이 있다고...
순간 쪽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내 입술 위에 스치듯 선생님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져 갔다.
<뭐...성적은 안 좋았지만 학생평가는 좋았으니까...>
뭔 소리야?? 학생평가는 뭐고??
<그러니까..조금은...아니...조금 많이...좋았다고..거칠고 막무가내에 배려 없는 평균 가 짜리였지만 그래도 정말...기분 좋았다고...이건 그 상이고~히히>
이 사람은 정말 자신이 선생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선생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얼굴로 역시 너무나 사랑스러운 말을 나에게 속삭이며 귀엽게 미소 지어 왔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정말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 보지만 그보다 먼저 몸이 반응해 안고 있는 두 팔에 힘이 들어가 버려 가슴팍에 느껴지는 젖가슴이 짓눌리는 탄력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저....선생님...>
<응??>
<저...그게....키스...해도 되요??>
강아지 같이 귀엽고 동그란 눈에 살짝 놀란 기색이 스쳐지나 갔지만 이내 선생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려갔다.
<하고 싶어??>
<그게....네....>
창피하다...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로 피부를 맞대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 간단한 마음의 요구 한마디가 더 창피한 느낌이다.
<그럼 해...>
<네??>
<하라구...키스....강혁이 니가 하고 싶은 데로..>
그렇게 허락의 말과 함께 선생님이 눈을 감으며 입술을 내밀듯 살짝 고개를 치켜들어 온다.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듯 살포시 내 몸 위에 얹어 놓은 손과 키스를 기다리는 듯 한 사랑스러운 얼굴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천천히 입술을 내려갔다.
진하진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져 간다. 입술이 겹치고 부벼지고 눌려지는 어찌 보면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포근함과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기분 이었는지 사랑스러운 한숨을 더하며 입술을 움직여 왔다.
어제 누나와 했던 약간은 격정적인 입맞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연인을 대하는 듯한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입맞춤 이라고 할까?? 달콤한 딸기향이 나는 것 같다.
근데...누나라....누나?? 순간 내 빛이 머리를 가로지르듯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선생님의 입술에서 내 입을 떼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8시가 거의 다 된 시각.. 젠장...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왜 그래??>
감미로운 키스가 끊어진 탓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내가 이상해 보인건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타액의 막을 입힌 작은 입술과 양 볼에 물든 붉은 빛이 당장이라도 다시 한번 안고 키스를 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워 보였지만 지금 으로서는 그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저..그게...>
띠리리리리~~띠리리리리~~
왔다...!! 타이밍 기막히네...때마침 아래층에서 부터 울리는 문의 벨소리에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도 미쳐 대답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뛰쳐 내려와 방에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집고 허겁지겁 입어갔다. 갑자기 분주해진 내 움직임에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래?? 그리고... 밑에 누가 온거야??>
저승사자!! 이 상태로 마주치면 나를 황천길로 인도해줄 사람이다.
<지금...누나가 온 것 같아요..>
<정말??!! 어떡해??>
그건 나도 묻고 싶은 말입니다. 놀랐다고 하기엔 너무나 귀여운 표정으로 눈망울을 떠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탄할 틈도 없이 나는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며 옷을 입어 나갔다.
(야~~!! 한강혁!!)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점점 더 마음이 다급해져 갔다. 들키면 진짜 죽음이다... 어제 그런 짓 해놓고 하루도 안 지나서 다른 여자랑 이런 짓 한 거 알면..지옥의 문을 볼지도 모른다..그 뒤의 상황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제가 우선 밑에 내려가서 시간 좀 끌테니까 선생님은 옷 입고 좀 있다가 천천히 내려오세요..>
<아..알았어...>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는 방밖으로 나와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서는 내 예상대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누나가 나를 찾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왔....어??>
<야...너 누님이 부르시는데 빨딱빨딱 안 움직이냐??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군기가 아주 싹 빠졌네..>
우리 집이 언제부터 5분 대기 하는 군대가 됐는지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려 갔다.
<어.그게....방에..있느라고...일찍 왔네??>
<일찍은 무슨...맨날 오던 시간에 온 건데...근데..현관에 못 보던 여자 신발이 있던데.. 뭐야?? 누구 왔어??>
의아한 듯 물어 오는 누나의 말에 가뜩이나 무겁게만 느껴졌던 심장이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철렁 주저앉아갔다. 이런 게 뜨끔 이라는 건가...
<어.....그...그게....손님이 왔어..>
<손님?? 누구??>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며 머뭇거리던 찰나 계단을 타고 선생님이 천천히 내려왔다. 아까 내가 주었던 셔츠를 입고 맨발로 사뿐사뿐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누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누구야..??>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네요..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방금까지 하던 일이 묘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또 학교에서의 관계가 묘하고..암튼 묘한 관계다...
<혹시...여자...친구냐??>
그냥 내뱉은 것 같은 무심한 말투였지만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욱 무섭게 나를 압박해왔다.
<아..아냐!! 그런 거...그게...인사해..이분은 우리 담임 선생님이야.>
<담임...선생님??>
뭔가 생뚱맞은 소개에 누나는 이내 얼굴을 풀며 약간 황당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그렇게 바라 보지마.. 나도 황당하니까..
<안녕하세요...강혁이 담임을 맡고 있는 유지민이라고 합니다..>
<아...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깍듯한 인사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는 누나의 얼굴은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가지 않는 듯 당황의 빛이 가득하다. 누나의 갈색 빛의 두 눈은 연신 나를 보며 어찌된 일이냐고 무언의 물음을 던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못 본 척 어색한 웃음만 지은 채 서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하지..아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세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분위기 이상하네...안되겠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아..그래...손님을 너무 오래 세워 두게 했네..죄송해요..앉으세요....>
<네..>
나의 제안에 선생님과 누나는 이내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나 역시 쇼파에 앉기 위해 선생님 옆에 엉덩이를 붙이려 할 때였다.
<넌 왜 거기 있냐??>
<응??>
<손님이 왔는데 차를 끓여 와야지...왜 거기 그러고 있냐고..>
그걸 왜 당연히 내가 해야 되는 것처럼 말하는 지 이해는 되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갔다.
<아..알았어..>
<진짜 센스 없기는...애가 아직 어려서 좀 눈치가 없어요..이해하세요..>
<아뇨..귀여운데요..뭘..>
다 큰 여자 둘이서 어린애 하나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습이 참 화기애애해 보이네요..
보기 좋습니다..아주.. 나를 내친 두 여자를 위해 차를 타며 거실을 보니 선생님과 누나는 내 뒷담화 이후 이제야 말문이 트였는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시라고요??>
<네...영어를 맡고 있어요...>
<아....근데...생각보다 젊으셔서 약간 놀랐어요..>
<예...작년에 부임했거든요..>
<아..실례지만 나이가..>
<26이요.>
<정말요?? 많아 봐야 한 스물 한두 살로 보이는데...>
<네??...아니예요....>
<아뇨...진짜로 그렇게 보여요...강혁이 자식..아니 강혁이는 좋겠네요 이런 미인 선생님이 담임이라서..>
<별 말씀을..누님분도 저보다 훨씬 이쁘신데요..키도 크시고 얼굴도 이쁘시고..강혁이가 자랑스러워 하겠어요..이런 누님 둬서..>
<아뇨...그거야 뭐..하하..>
아주 쌩쑈를 해라..지금 무슨 칭찬 합시다 찍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확실히 색깔이 다른 두 미인이 서로 웃으며 얘기하고 있으니까 주위가 환해지는 것이 항상 보았던 거실이 어딘가 특별한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듯하다.
선이 살아있는듯 한 오똑하고 높은 코와 약간 드세보이면서도 꽤나 도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눈매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누나. 그와 다르게 강아지 같은 귀여운 눈과 약간 통통하면서 날카롭지 않은 고운 턱선 그리고 아기 같은 동안의 피부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는 선생님. 비슷하면서도 둘은 확실히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둘 다 이쁘고 누가 봐도 눈이 돌아 갈만 한 미인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리고 슬쩍 눈앞의 저 두 여자들이 어제 오늘 내 품에 안겨 쾌락에 몸부림 친 여자들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뭔지 모를 뿌듯함과 행복함이 밀려들어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묘한 상황이 긴장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차 나왔어요...>
커피 두 잔을 선생님과 누나의 앞에 내려놓은 나는 선생님의 옆자리에 걸터 앉아갔다.
<근데..저희 집엔 어쩐일로..>
드디어 참았던 물음을 던지 듯 조심스럽게 누나가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다.
<그냥... 가..가정방문 겸 해서 오셨데..>
<가정방문??>
<네...제가 요번에 새로 부임한지 얼마 안돼서 애들을 잘 모르거든요..그래서 부모님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애들이 랑도 친해질 겸 해서 몇 일전부터 한명씩 가정방문을 하고 있어요..>
미리 준비라도 해놓은 것처럼 선생님은 줄줄 말을 이어갔다. 신기하다...이거 어디 미리 써놓고 말하는 거냐?? 뭐 이리 술술이야..
<아..그러시구나..전 또 우리 강혁이가 무슨 사고 쳤나 했죠..>
<아뇨..오늘은 강혁이 집을 방문하는 날이라서 온 거예요..미리 연락 못 드리고 옷 점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숙여 갔다. 그 모습에 그제서야 누나는 약간 이해가 가는 듯 웃음을 띄어갔다. 대단하다..저 천하의 한 여사를 속여 넘기는 분위기다..18년 넘게 살면서 시도는 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 못했던 일인데..
<아뇨..요즘 같은 때에 일일이 찾아다니시면서 얘들 챙기기 쉽지 않을 텐데..정말 대단하시네요..>
<뭘요..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요..>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띄우며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이거 진짜 꾼 아냐?? 아까 일도 그렇고.. 뭔 선생님의 이렇게 거짓말을 잘해?? 완전 연기 수준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감이다...
<그건..그렇고..지금 입고 있는 옷은...>
누나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선생님의 옷을 바라보았다. 부푼 가슴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묘한 야릇함을 풍기는 마법의 셔츠. 역시 내 예상 대로였다. 충분히 없던 오해도 불러 일으킬만한 옷이다..
<제 옷에 뭐가 묻어가지고 좀 빌려 입었어요..>
역시 다시 한 번 준비라도 한 듯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선생님.. 존경 스럽다...그냥 그길로 나가세요.. 미래가 밝습니다..
<그래요??..그럼 제 옷 빌려 드릴께 제 옷 입으세요..아무래도 남자 옷 보다는 여자 옷이 나을 테니까..>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사실은...제가 좀 치수를 크게 입어서요..웬만 한건 잘 안 맞거든요...>
<아...네...>
하긴 내가 봐도 선생님이 누나의 옷을 입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른 건 다 맞는 다 쳐도 저 문제의 가슴만은 어떻게 처리가 안 될 것 같았다. 둘 다 만져보고 겪어본 정확한 나의 판단으론 누나의 가슴도 보통 여자들에 비하면 상당한 볼륨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지만 선생님의 저 가슴에 비하면 좀 모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근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은근히 잔인하다...이 여자..저런 말을 웃으면서 하는 거 보면,,, 분명 악의 없이 한 말이겠지만..콕콕 정곡을 제대로 지른다. 그 예로 방금 전의 말로 우리 천하의 한 여사가 한방 먹은 듯 허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가시게요??>
<네..너무 늦게까지 폐를 끼친 것 같네요...그럼 다음에 다시 한번 연락 드리고 찾아 뵙겠습니다.>
<아뇨..제가 학교로 한번 찾아 뵐께요..>
<네...그럼 나중에 뵐게요..>
그렇게 무사히(?) 기나긴 가정 방문이 끝나고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 나는 함께 집밖을 나왔다. 집밖은 한산했다. 그렇게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모두 집에 들어갔는지 거리는 조용하기 그지없었고 간간히 들려오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뭐라고 말을 시켜볼까 했지만 아까의 일도 있고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조용히 발걸음만 옮겼다.
<이쁘시네..누나..>
순간 조용히 딴 곳을 바라보며 걸음만 걷고 있던 선생님이 정적을 깨고 말을 걸어 왔다.
<네?? 아.. 뭐...생긴것만 그렇지 하는 짓은 완전 남자에요..왈가닥에 맨날 때리기만 하고 속만 썩이고...거기다 반찬 투정은 어찌나 하는지..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되구..암튼 말론 다 못해요..>
말을 하다 보니까 한숨만 나온다. 나 정말 이런 거 다 견디고 사는 거야?? 가슴이 아프다.
<말은 그래도 엄청 좋아하나 보네?? 누나를...>
내 얘기를 어떻게 들으면 그런 판단이 나올까?? 판단의 근거가 심히 궁금하네요..
<네?? 그래 보여요?? 어디가요??>
<응..그냥 느껴져..강혁이가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말 하나하나에서..>
말 그대로 하나하나에 다 욕밖에 없었는데..
<그런가?? 뭐..하나밖에 없는 누나니까요..좋은 점도 약간은 있고..>
그 좋은 점이 일 년에 개기월식 보는 것 보다 보기가 힘들어서 문제지
<후후..부러워..그런 누나를 둔 너도..너 같은 동생을 둔 너희 누나도..>
<선생님은 혼자라고 하셨죠?? 그게 더 좋지 않아요?? 이쁨도 더 많이 받고??>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지.. 그리고 솔직히 난 형제가 더 있었음 좋겠다 하고 생각했거든.. 혼자는 너무 외로워서..>
쓸쓸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듯 말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어딘가 슬픔과 아쉬움이 엿보인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혼자보단 둘이 낳다. 지금의 나만 봐도 누나가 없는 집을 상상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상상은 하기도 싫고..
<근데..오늘 너희 누나한테 죄송해서 어떡해...>
<뭐가요??>
<그냥 거짓말 한 것도 그렇고...아까 우리 일도 그렇고...그냥 죄송스럽네..선생이 되가지고 학부모한테...그것도 제자 앞에서 거짓말이나 하고..하아...나 나쁜 선생이지??>
<뭐..어쩔 수 없었잖아요..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했으면 전 지금 쯤 땅 파고 들어갈 준비해야 했을 겁니다..날 아주 죽일테니까..
<그래도...>
여전히 아까의 거짓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선생님은 여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걷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시나?? 아까는 봉이 김선달 마냥 거짓말도 잘만 하더만... 하긴 뭐.. 교사라는 직업에 그렇게 열정적이고 열심히 인 선생님이니까...그런 작은 거짓말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저 모습 보니까 괜시리 미안해진다..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죄송해요...>
<응?? 뭐가??>
<따지고 보면 저 때문에 거짓말 하신거 잖아요..>
<아냐~~니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괜찮아..>
<그래도..>
<괜찮다니까..정말..살다보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거지 뭐... 안그래??하하>
오히려 축 처진 내 어깨를 선생님이 두들기며 날 위로 해온다. 뭔가 좀 이상하다..좀 전까지만 해도 반대였는데...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주택가를 빠져나와 큰길이 보이는 곳에 다 달았다. 아무도 없이 한산 했던 주택가와는 다르게 큰길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거리를 밝히는 화려한 간판 불빛, 그 아래에서 웃고 떠들며 오다니는 사람들, 휴일의 끝자락을 즐기듯 벌써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여기저기 껄렁껄렁 회합을 열고 있는 양아치들, 험악한 인상으로 거리를 노다니는 덩치 좋은 사내들..뭔가 점점 활기찬 분위기하고는 멀어지는 것 같지 않아??
<이제 그만 들어가봐..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께.>
<아뇨..집 앞까지 모셔다 드릴께요..밤길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저런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혼자 보낼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멀쩡하게 지나가다가도 다음 날 피사체로 방송 출연 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정말이지 여자가 혼자 다니기엔 너무 험악하고 위험하다.
<괜찮네요...애도 아니고 혼자가도 돼..>
차라리 애면 걱정을 안 하지...애가 아니라서 걱정하는 거지..
<요즘에 밤에 여자 혼자 다니면 얼마나 위험한데요...거리에 늑대 같은 놈들이 득실득실 쌓였어요..>
<그 중에서 니가 제~~~~일 늑대 같잖아..안그래??>
<그..그거야...>
가끔씩 보면 이 여자 정말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데가 있다...분명히 악의 없이 한 말인데 묘하게 사람 신경을 긁는게....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선생님 정말 괜찮아...정 위험하다 싶으면 냅다 뛰면 돼는 거고..그리고 누가 나 같은걸 잡아 가?? 봐봐 돈도 없어 보이잖아..>
탈탈 털어 보라는 듯이 선생님이 귀엽게 팔을 팔랑 거리며 미소를 지어 간다. 그러니까 그 미소가 위험하다니까...
돈은 모르겠고 확실한건 그 몸은 돈 보다 비싸 보인다는 거다...하늘색 치마 밑으로 곱게 뿌리내리며 아래로 이쁘게 뻗은 다리. 남자 옷마저도 감당 못하고 솟아오른 저 풍만한 가슴. 범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보이는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같은 얼굴.. 하나하나 다 반짝이는 보석 같다. 돈으로 환산하면...뭐 환산법을 모르니까 대충 넘어가고...암튼 엄청 비쌀 것 같다.
<안돼요..그래도..제 말 들으세요...>
<알았어... 그럼 택시...택시 타는 곳 까지만 데려다 줘..그럼 됐지??>
<요즘 택시 혼자 타는 게 얼마나 위험한데요..그럼 저랑 같이 타요..>
<뭐하러 번거거롭게 그래..그냥 나 혼자 타고 갈께..>
<위험해서 안된다니까요..>
<괜찮다니까...>
몇 번이나 서로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정말이지..내 주위에는 어떻게 된게 내 말 듣는 인간이 이렇게 없냐?? 아주 짜증난다 짜증나..
<몰라요!!그럼 선생님 맘대로 가세요!!>
<뭐야..?? 화난거야??>
<몰라요..그냥 가세요..전 바로 집으로 갈테니까..>
<정말 화났나보네..뭘 그거 가지고 화를 내??>
<화 안났어요..그러니까 신경쓰지마시고 혼자 편하게 가세요..전 그럼 들어가 볼께요..>
<야.. 그러구 가면 어떻게 선생님 마음 불편하게...>
<불편할게 뭐 있어요..제가 뭐라고...그냥 가세요..>
<치..알았다 그냥 갈꺼다.. 너두 잘가라!!>
<네..그럼 학교에서 뵐께요..>
냉랭한 목소리로 등을 돌린 채 얼굴도 보지 않고 인사한 나는 천천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지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맘대로 하라고해... 나두 뭐 자기 안 바래다주면 편하고 좋다 이거야..누군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줄 아나?? 사람 걱정해주는 줄도 모르고... 혼자 가다가 깡패나 만나라!!
얼마쯤 걸어갔을까 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나의 몸은 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근데..진짜 깡패 만나면 어쩌냐?? 요즘엔 인신매매범도 많다는데.. 그리고 지금 시간에는 술취한 놈들도 많을 테고...하아... 진짜... 하여튼 난 너무 맘이 약해서 탈이다..으이구...
마음을 정한 나는 몸을 돌려 선생님을 찾기 위해 큰 거리로 뛰어갔다. 여기저기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선생님은 벌써 어디로 가셨는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워낙에 눈에 띄는 외모에 눈에띄는 옷차림이라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벌써 택시타고 갔나?? 아니지..선생님 여기 지리도 잘 몰라서 택시 어디서 타는지도 모를 텐데.. 그럼 어딨는거야.. 한참을 거리를 뛰어 다니며 배회하던 내 눈에 저 멀리 편의점 앞에서 웬 남자와 서있는 선생님이 들어왔고 나는 쏜살같이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도착해서 보니 남자는 술이 취했는지 연신 비틀거리며 선생님의 가는 손목을 붙잡고 억지로 끌어 당겨대고 있었다. 술에 찌든 와중에서도 본능은 살아있는지 초점을 잃고 풀린 눈을 희 번득 거리며 선생님의 몸을 징그럽게 훑어갔다. 소름끼치는 그 눈빛에 선생님은 안간힘을 쓰며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여자로서 건장한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지 조금씩 남자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것 봐...내 말 안 듣더니만...
<왜 그래...빼지 말고 나랑 좋은데 가자니까..뭐 혼자인 사람끼리 좋잖아...응??>
<저..아저씨... 저 혼자 아니거든요..저 결혼 했어요...그러니까 이 손 좀 놓고...가주세요..>
<에이...거짓말 하지마..결혼 한 여자가 이렇게 밤 늦게 그런 차림으로 쏘다니나?? 그러지 말고..나랑 가자..>
하여튼 저 놈의 복장이 문제다. 보기만 해도 오해의 탑을 쌓을 것 같은 오묘한 복장..답엔 꼭 잠바를 드려야겠다. 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보..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술 취한 사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는 어느새 선생님 옆에 다가선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역시 갑자기 내가 나타난 것이 놀라웠는지 아님 반가웠는지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네..제 아낸데..무슨 일이죠??>
보기에 변태 치한처럼 생긴 사람이었지만 상대는 어른이다. 무턱대고 정의의 사도처럼 나섰다가 마찰이 생기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나지만 옆에 계시는 선생님이 더 곤란해 질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방향으로 말을 꺼내야만 했다. 하지만...속을까? 그래도 내가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결혼 했다 그러면 안 믿지 않을까??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다.
<저..그..그게..>
태연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선생님을 아내라고 부른 나의 모습에 그 남자는 당황을 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선생님을 잡아끌던 우악스러운 손은 등 뒤로 감춘 지 오래였다. 믿는...거냐??
<여보..무슨 일이야?? 이분은 누구고 아는 사람이야??>
<어??..아..아뇨...모르는 분이예요..>
선생님 역시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을 여보라고 부르는 나의 행동에 잠시 놀란 듯 말을 더듬었지만 이내 내 뜻을 눈치 챈 듯 내 말에 말을 맞춰갔다. 하여튼 연기하난 잘한다니까..
<저..실례지만 저희 아내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남자를 보며 우선 정중하게 물었다. 강하게 나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상대는 술에 취한 취객이 었다. 한마디로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다. 그런 상대에게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면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에 나는 우선 정중하게 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로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아..뇨..그냥..여자분 혼자..계시기에..그냥 걱정 돼서...>
<그러시군요.. 전 혹시 제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려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서 경찰을 부를 생각이었는데..다행이군요...>
<아...아닙니다..절대 아닙니다..전 그냥.. 아무튼 남편 분이 계시다니까 전..이만..>
경찰을 부른 다는 말에 놀란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그 사내는 허겁지겁 우리를 지나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도망가는 게 급했던지 벗겨진 신발을 신지도 않은 채 손에들고 뛰어 가는 우스꽝 스러운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술을 먹을 라면 좀 곱게 먹지.. 참..나이 먹어서 저러구 싶을까.. 난 나중에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근데...믿네..내가 남편이라는 거.. 내가 그렇게 겉늙어 보이나?? 왠지 모르게 일은 잘 풀렸는데 서글프다..18살에 결혼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걸 믿다니...그건 그렇고...
나는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아까의 남자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선생님은 내 팔을 꼭 끌어 안고 있었다. 많이 놀랐는지 내 팔을 타고 선생님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져 온다.
<괜찮으세요?? 다친덴 없으시고요??>
<어..괜찮아...그냥..그냥..조금..놀랐어...>
가늘게 목소리까지 떠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왔다.
<그러게 제가 바래다 드린다고 했잖아요!! 이게 뭐에요!! 이런 꼴이나 당하고!!>
<니..니가 먼저 갔잖아!! 뒤도 안돌아 보고 갔으면서...>
<선생님이 가라면서요!!>
<가란다고 진짜 가냐??!! 남자라면 여자를 끝까지 책임을 질줄 알아야지!!>
아니..이 여자가.. 자기가 가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씨이...얼마나 무서웠는데...막 남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고 막 뭐하냐고 물어보고.. 여기 지리도 잘 모르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러게 그 옷이 문제라니까... 그건 그렇고..다 나 때문이라고??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걱정 되서 왔더니만...
<그래서 어떡할까요??그냥 갈까요??>
<가!! 그냥 가!!>
<진짜죠??>
<그래...가라구..>
<진짜가요??>
조금씩 사그라 드는 목소리에 내가 다시 한번 되묻자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렸다.
<알았어요..그럼 이번엔 진짜 갈께요.. 안녕히 가세요..>
등을 돌려 돌아가려던 나는 내 팔을 잡아오는 선생님의 손에 걸음을 멈췄다.
<가...지마...>
<뭐라고요??>
<가지..말라고..>
<가라면서요..>
<가지말라구!!....혼자가기 무서워......데려다 줘...>
진즉에 그럴 것이지.. 이럴거 왜 팅기나?? 근데..디게 귀엽다...자기가 말해 놓고도 창피 했는지 얼굴 빨개 진 것도 그렇고 주눅 든 저 표정도 그렇고... 완전 선생이 아니라 애랑 노는 것 같다니까...누가 제자고 누가 선생인지 정말 도통 모르겠다. 뭐..그런게 선생님의 매력이긴 하지만...
<선생님...다 왔어요..선생님...>
오늘의 일과가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서 머리를 내 무릎에 배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선생님을 나는 조심스럽게 깨워갔다. 이 여자는 정말 아무데서나 정말 잘 자는 것 같다.. 이거 안 좋은 습관인데..
<으음...어딘데??>
<집 앞이에요...>
<아..그래...깜박 잠들었나보다..하흠...>
조그마한 입을 벌리며 귀엽게 하품을 한 선생님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 택시기사에게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뭐 내가 내려고 했지만 낼 돈이 없는 관계로(학생이 뭔 돈이있어!!) 선생님이 내셨다. 요즘 생활비도 빠듯하다.. 힘드니까 그냥 넘어가라..
<여기가 선생님이 사는데예요??>
<어..저기 7층이 우리 집이야..>
<아...좋네요...아파트도 이쁘고...>
<그지?? 여기 근처에 산책로랑 약수터도 있어서 다른데 보다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아..
밤에 보는 야경도 멋지고.. 좀 학교에서 먼게 좀 흠이긴 하지만 뭐 그 정도야 차가 있으니까 별 문제 될건 없고..>
확실히 선생님이 말 한대로 였다. 아파트가 마치 숲에 세워진 것처럼 아파트 주변으로 푸른 나무들이 곱게 심어져 있어 아파트의 삭막함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저 멀리로 보이는 잘 정돈된 길에는 옆으로 가지런히 싶은 나무와 잔디들이 상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데는 아파트 값이 장난이 아닐텐데..여기서 집하나 살려면 돈 얼마나 들어요??>
<어?? 모르..겠는데..내가 산게 아니라서...>
<모르긴 몰라도..웬만한 집보다 더 나갈 것 같은데...>
<그래??..하하..>
내 말이 이상했는지 선생님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왜 웃냐?? 요즘에 부동산 상식은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기본상식이라고.. 미리부터 알아둬야지 나중에 좋아요..뭘 모르시는 구만..
<그럼..전 이만 가볼께요..>
<그냥....가게??>
<네?? 그럼요??>
<아니..이왕 왔는데..올라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지...>
<아뇨..괜찮아요.. 시간도 너무 늦었고..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도 남들이 보기엔 안 좋고..>
<뭐 어때..제잔데..>
<그래도..선생님한테 안 좋은 소문 생기면 안 되잖아요...>
솔직히 나도 한번 올라가고 싶었다. 학교의 누구나가 동경하는 미인교사의 집에..하지만 동네에서 퍼지는 나쁜 소문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요 몇 년 동안 반상회나 아주머니들과 만나면서 알만큼 알게 된 있는 나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소문이라는 거 잘못하면 사람 인생 망친다..정말 조심해야 한다.
<난 정말 괜찮은데...>
<아뇨..제가 불편해서 그래요..차는 다음에 마실께요..>
<그래 그럼...>
약간 아쉬운 듯 선생님이 한숨을 흘려갔다. 혼자 사셔서 쓸쓸하신가 보다..
<그럼... 우리 잠깐 걸을래??>
<네??>
<그냥...차에서 잤더니 좀 답답해서..시원한 바람도 쐬고 정신도 차릴 겸해서..>
<괜찮으시겠어요?? 내일 학교는..>
<나는 괜찮아...너는 어때?? 괜찮겠어?>
<저야..뭐..상관은 없죠...>
집에 가야 할 것도 없고...무엇보다 이런 미인과의 산책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니까..설사 밤을 새야한다 해도 상관은 없다.
<그래..그럼 저쪽에 산책로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선생님의 권유에 나는 천천히 숲길처럼 놓여 진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겨갔다. 나무로부터 나오는 듯 기분 좋은 숲 냄새를 풍기는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자 온몸 가득 상쾌함이 퍼져왔다. 그 상쾌함에 나는 숨을 가득 들이키며 그 산뜻함을 한껏 느껴갔다.
<좋지..여기??>
<네..마음이 편안해 지는 게 숲에 온 느낌이 들어요..기분 좋은데요..>
<그지?? 나도 뭐 안 좋은 일 있으면 나와서 바람을 쐬는데 그때마다 여기서 숲 냄새를 맡으면 막 기분이 편안해지고 좋아지는 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
<그럴 것 같아요..>
정말이다. 도시에선 좀처럼 느낄수 없는 신선한 향기가 폐를 정화 시키는 느낌이다. 마치 도시가 아닌 숲에 놀러온 느낌이다. 아파트 내에 이런 장소가 있다니..말 그대로 친환경 아파튼가 보다.. 아파트 값이 비싸겠는데...
<저..있잖아..오늘일 말야...>
<네??>
<그거..우리가..그거 한거...>
아마도 아까 우리가 했던 섹스를 말하는가 보다. 선생님은 좀처럼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한참을 머뭇거려갔다.
<걱정 마세요..저 괜한 오해 같은 거 안할 테니까..>
<응?? 오...해??>
<혹시나 선생님이 제가 좋아서 그런 짓을 하셨다고는 생각안하니까...제가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고..>
솔직히 그렇다. 능력 좋고 학벌 좋고, 거기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까지 못 잊고 있는 선생님이 나 같은 놈을 거기다 제자인 나를 좋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분명 아까의 일은 선생님이 약해진 마음에 내가 어떻게 운 좋게 그렇게 접근해서 생긴 그냥 사고일 뿐이었다. 나 역시도 그거 하나만 가지고 물고 늘어질 정도로 최악인 놈도 아니었고..그냥 어쩌다 생긴 사고 정도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오늘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로!!선생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게 이거 맞죠??>
내 물음에 선생님은 얼굴을 굳힌 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겠지..뭐...소문나면 안 좋은 건 선생님이니까..선생님이 학생이랑 얽혀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일이니까..
<너는...어때?? 그러고... 싶어??>
<네??>
<너는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거야??...>
솔직히 나는 아니다..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더 깊은 사이를 맺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냥 이대로 오늘처럼 마음을 터놓고 얘기 하고 싶고 좀 더 친하게 장난도 치며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육체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선생님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무책임한 말이다. 그런 마음도 없는데 내 욕심만으로 선생님을 귀찮게 한 다는 건.. 그리고 원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네...전 그냥 지내던 데로 선생님으로 지내고 싶어요..그게 저한테도 편하고 선생님한테도 좋은 걸테니까요..>
어쩔수 없다..여기서 솔직히 말하면 더 멀어질게 뻔하니까...그래도 솔직히 나는 선생님의 대답에 아뇨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아니 라고 말할까?? 선생님과 계속 하고 싶다고 선생님을 계속 안고 싶다고 말할까??
<진심...이야??>
어느새 선생님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나를 응시하는 그 맑고 사랑스러운 두 눈이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네...진심이예요..>
역시 말하지 못했다. 그래..이게 최선이다.. 더 바라지말자..
<하아....그래...>
뭔가 아쉬운 걸까?? 안타까운 듯 옅은 한숨을 내쉬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잠깐 사실을 말해볼까 다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메우듯 풀벌레 우는 소리가 둘사이에 잔잔하게 울려 퍼져갔다.
<강혁이는.. 어떤 여자애를 좋아해??>
<저요??>
<응..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 그럽니다..
<음..저는..그냥 별거 없어요.. 이효리같은 몸매에 김태희 같은 얼굴 그리고 문근영처럼 마음도 착한 ..그런 여자가 좋더라고요...크크>
진짜 이런 여자 있으면 난 진짜 당장 프로 포즈 할거다..뭐 그쪽이 날 좋아해야 결혼 할 수 있는 거지만..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저런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그 상상만으로도 말이다..아~~행복해... 근데... 왜 그렇게 보시나?? 그런 벙찐 표정으로..내가 뭐 잘못 말했나??
<왜 그러세요??>
<아니...이제 알았어...>
<뭘요??>
<니가..여자 친구 하나 없는 이유...>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라고.. 이건 이상형이야!! 이상형!!
<그리고..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너는...>
악담 하는 거냐?? 얼굴 가득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 하지마!!
<뭐..이..이런 건 이상형이고...전 그냥..자연스러운 게 좋아요..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잖아요..얼굴이 이쁜 걸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같이 있다보면 빛이 나는 그런 사람.. 내 눈에 그 빛이 보이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좋아요..>
<빛이나?? 혹시 대머리 좋아해??>
지금 그걸 개그라고 하나..?? 개콘 첫회 부터 다시 봐라..
<그게 아니라..그냥..자연스러운 여자요..그냥 이렇다할 꾸밈없이도 빛나는 여자..>
<그게 뭐야..너무 막연하잖아...그런 여자가 어딨어?>
<어딘가에 있겠죠...그런 여자가..>
정말 있을까?? 내가 말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여자가 있을지도 그리고 있다 해도 나의 곁에 있을지도.. 당장 내일 누굴 만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그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나의 그녀인지...당연한 얘기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언제 내 옆에 다가올지 또 어떻게 만나 어떻게 사랑하게 될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될지...궁금하고 설레이고 기대가 되는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왜 그래?? 갑자기 웃고...>
<제가요??>
<어...>
<그랬나?? 후..그냥 웃음이 나와서요...>
<뭔데?? 뭐 때문에 웃었는데..같이 좀 웃자..>
<별거 아니예요..신경쓰지 마세요..>
<피...치사해서 안 듣는다...>
별걸 가지고 다 치사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삐졌다는 걸 광고라도 하듯 토라진 아이처럼 얇은 입술을 삐죽거려 갔다. 이런 나이답지 않은 귀여운 표정은 대체 어서 나오는 거냐?? 나도 좀 배워보자... 아주 표정 하나하나가 애교다.. 이건..
<선생님은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데요??>
<나?? 음...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는 없는데.....그런 거 생각 해본적도 없고..>
<그래도...대충 이런 사람이 좋다...그런거 있잖아요...>
내 말에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듯 말을 멈췄다.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위로 올리며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
<음...글쎄..잘 모르겠네...히히>
생각 안 나는지 선생님은 귀엽게 혀를 빼물고 웃음을 흘려갔다.
<근데....신경..쓰이는..사람은..있어...>
어딘가 모르게 수줍게 말하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신경...쓰이는 사람?? 아...맞다...그분...죽었다는 그 사람이구나...아직도 많이 좋아 하시지... 왠지 기분이 조금 그렇네... 뭘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안 궁금해?? 누군지??>
<별로요...그냥 뭐 사람이겠죠...>
뭔지 모를 아쉬움에 내가 땅을 차며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자 선생님이 그런 게 어딨냐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 뭐야...나는 물어봤잖아..>
<뭘 물어봐요...물어봐야 남자겠죠...>
<너 진짜...그래!! 안 말할래!! 죽을 때까지 내가 먼저 말해주나 봐라!!>
뭐야..왜 저래?? 그리고 먼저는 뭐야?? 생뚱맞기는.. 선생님은 뭐가 그리 화났는지 등을 홱 하고 돌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가요??>
<어디가긴 집에 가지!!>
지가 걷자고 해놓고 지 멋대로 가네...하여튼 여자들이란 지 멋대로야.. 몰라..나두 그냥 갈래.. 선생님과 반대방향으로 등을 돌려 걸어가려던 나는 이내 다시 걸음을 바꿔야만 했다. 젠장..혼자 갈려니까 조낸 무섭다...막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랑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같고..여기 길도 모르는데...젠장...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누가 쫓아올까 무서워 쫄래쫄래 선생님의 뒤를 쫓아갔다. 진짜 무서운 건 딱 질색이다.
아직 섹스의 여운에 잠긴 듯 한 가쁜 숨소리와 함께 잔잔한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해오는 감촉과 그를 통해 전해져 오는 뜨거움이 그 포근함과 따뜻함을 더해온다.
그렇게 잠시 미육의 침대에 파묻혀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의 눈에 선생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많이 지쳤는지 선생님이 눈을 감은 채 색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눈 밑의 고운 볼은 아직도 방금 전의 정사의 여운이 남았는지 붉게 상기 돼 있었고 촉촉이 젖어 있는 앵두 같은 입술사이로는 귓가에 생생하게 들릴 만큼 고운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새어나왔다.
<괜찮으세요??>
<어...괜찮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가볍게 미소를 띄우며 대답하는 선생님의 얼굴은 그 말과는 다르게 가득 지친 기색이 완연해 오히려 더욱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죄송...해요...>
<뭐가 또 죄송한데??>
<그냥...이것 저것...모두 다요...>
내가 봐도 정말 한심한 말이다..언제나 할 건 다 해 놓고 결국에는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는다. 책임지지 못 할일을 져놓고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만 내뱉는 한심한 인간.. 지금의 내가 그런 인간이다..
<하아...역시 어리네...강혁이...>
<네??>
<어리다구....니가....>
내 나이 이제 열여덟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린데 살짝 웃으며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놀리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기분이 쳐지는 게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이리와봐..>
<네??>
<이리 와서 선생님 옆에 누워 보라고...>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살살 두들기며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팔을 뻗어서...이렇게 하고 나머지 한손으로...이렇게...하고>
내가 옆에 눕자 선생님은 내 팔을 잡고 자신의 머리 밑으로 집어 넣고 나머지 한손을 자신의 잘록한 허리로 얹게 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지시에 별 저항 없이 인형처럼 손을 맡겨갔다.
<그리고...그대로 팔을 접어봐...>
선생님의 말에 뻗은 팔을 접어 가자 내 팔의 영역 안에 있던 선생님의 작은 몸이 자연스레 내 품으로 쏙 들어왔고 선생님 역시 아무 저항 없이 사뿐하게 내 속으로 들어와 내 턱 밑으로 머리를 기대며 고운 팔을 내 가슴께에 얹어 수박 같은 젖가슴을 붙여왔다. 그렇게 내 품안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육체가 가득 느껴져 왔다. 맞닿은 피부를 타고 솜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전해져와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그래...그냥 이럴 땐..그냥 이렇게 안아주면 돼...알았어??>
고개를 들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귀여운 웃음을 짓는 선생님. 그 모습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근데... 너 이런 거 안 배웠어??>
<이..이런걸 어디서 배워요...>
내가 꾼도 아니고.. 여자랑 자봐야 얼마나 자봤다고..
<왜?? 너 그 교육용 책 있잖아...거기서 안 가르쳐줘?? 크크>
또 그 얘기냐?? 쪽팔리게... 역시 선생이라 기억력이 좋나 보다.
<그...그런거 안 써있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딨냐..이게 제일 핵심인데...역시 독학만 해서 뭘 몰라...>
이거..아주 꼬투리 잡았구만...사정없이 찔러 대는데??
<그...그건 실습 위주만 적어 놔서 그래요..>
나도 참 은근히 쓸데없는 자존심이 많은 놈인가 보다...이런 변명까지 하는 걸 보면..
<그래?? 근데..그렇게 여자를 대해??>
<어..땠는 데요??>
<몰라서 물어?? 거칠고, 배려없고, 막무가내에, 난폭하고...>
선생님이 손가락까지 들고 세어가며 한 마디 한 마디 내 뱉을 때마다 내 가슴의 이쪽저쪽 여러 방향에서 사정없이 뜨끔 뜨끔거려 왔다. 이런..너무 직설적이야...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날 죽이는구나..
<등등등...정말..꽝!! 전체 성적으로 말하자면 가..집에 가다!!>
누가 선생 아니랄 까봐 그새 성적 까지 매겼나 보다..근데 전체 평균 가라니!!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미까지는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남겨 놓아 그 아래로는 넘어가 본적이 없는 난데..가라니..그것도 완전가라니!!마지막 결정타에 한없이 무너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쪽팔림에 얼굴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뭐야...실망한거야??평균이 생각보다 못 나와서??그럴 수도 있지..사람이 첨부터 잘할 수는 없는 거니까..담에 잘하면 되잖아..안 그래??>
사람 내장 다 후벼 파놓고 후시딘만 발라주면 다냐?? 이제 와서 위로는...그리고 또 담에 언제 이럴 일이 있다고...
순간 쪽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내 입술 위에 스치듯 선생님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져 갔다.
<뭐...성적은 안 좋았지만 학생평가는 좋았으니까...>
뭔 소리야?? 학생평가는 뭐고??
<그러니까..조금은...아니...조금 많이...좋았다고..거칠고 막무가내에 배려 없는 평균 가 짜리였지만 그래도 정말...기분 좋았다고...이건 그 상이고~히히>
이 사람은 정말 자신이 선생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선생님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얼굴로 역시 너무나 사랑스러운 말을 나에게 속삭이며 귀엽게 미소 지어 왔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정말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 보지만 그보다 먼저 몸이 반응해 안고 있는 두 팔에 힘이 들어가 버려 가슴팍에 느껴지는 젖가슴이 짓눌리는 탄력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저....선생님...>
<응??>
<저...그게....키스...해도 되요??>
강아지 같이 귀엽고 동그란 눈에 살짝 놀란 기색이 스쳐지나 갔지만 이내 선생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려갔다.
<하고 싶어??>
<그게....네....>
창피하다...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로 피부를 맞대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 간단한 마음의 요구 한마디가 더 창피한 느낌이다.
<그럼 해...>
<네??>
<하라구...키스....강혁이 니가 하고 싶은 데로..>
그렇게 허락의 말과 함께 선생님이 눈을 감으며 입술을 내밀듯 살짝 고개를 치켜들어 온다.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듯 살포시 내 몸 위에 얹어 놓은 손과 키스를 기다리는 듯 한 사랑스러운 얼굴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천천히 입술을 내려갔다.
진하진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져 간다. 입술이 겹치고 부벼지고 눌려지는 어찌 보면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포근함과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기분 이었는지 사랑스러운 한숨을 더하며 입술을 움직여 왔다.
어제 누나와 했던 약간은 격정적인 입맞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연인을 대하는 듯한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입맞춤 이라고 할까?? 달콤한 딸기향이 나는 것 같다.
근데...누나라....누나?? 순간 내 빛이 머리를 가로지르듯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선생님의 입술에서 내 입을 떼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8시가 거의 다 된 시각.. 젠장...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왜 그래??>
감미로운 키스가 끊어진 탓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내가 이상해 보인건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타액의 막을 입힌 작은 입술과 양 볼에 물든 붉은 빛이 당장이라도 다시 한번 안고 키스를 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워 보였지만 지금 으로서는 그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저..그게...>
띠리리리리~~띠리리리리~~
왔다...!! 타이밍 기막히네...때마침 아래층에서 부터 울리는 문의 벨소리에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도 미쳐 대답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뛰쳐 내려와 방에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집고 허겁지겁 입어갔다. 갑자기 분주해진 내 움직임에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래?? 그리고... 밑에 누가 온거야??>
저승사자!! 이 상태로 마주치면 나를 황천길로 인도해줄 사람이다.
<지금...누나가 온 것 같아요..>
<정말??!! 어떡해??>
그건 나도 묻고 싶은 말입니다. 놀랐다고 하기엔 너무나 귀여운 표정으로 눈망울을 떠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탄할 틈도 없이 나는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며 옷을 입어 나갔다.
(야~~!! 한강혁!!)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점점 더 마음이 다급해져 갔다. 들키면 진짜 죽음이다... 어제 그런 짓 해놓고 하루도 안 지나서 다른 여자랑 이런 짓 한 거 알면..지옥의 문을 볼지도 모른다..그 뒤의 상황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제가 우선 밑에 내려가서 시간 좀 끌테니까 선생님은 옷 입고 좀 있다가 천천히 내려오세요..>
<아..알았어...>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는 방밖으로 나와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서는 내 예상대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누나가 나를 찾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왔....어??>
<야...너 누님이 부르시는데 빨딱빨딱 안 움직이냐??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군기가 아주 싹 빠졌네..>
우리 집이 언제부터 5분 대기 하는 군대가 됐는지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려 갔다.
<어.그게....방에..있느라고...일찍 왔네??>
<일찍은 무슨...맨날 오던 시간에 온 건데...근데..현관에 못 보던 여자 신발이 있던데.. 뭐야?? 누구 왔어??>
의아한 듯 물어 오는 누나의 말에 가뜩이나 무겁게만 느껴졌던 심장이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철렁 주저앉아갔다. 이런 게 뜨끔 이라는 건가...
<어.....그...그게....손님이 왔어..>
<손님?? 누구??>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며 머뭇거리던 찰나 계단을 타고 선생님이 천천히 내려왔다. 아까 내가 주었던 셔츠를 입고 맨발로 사뿐사뿐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누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누구야..??>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네요..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방금까지 하던 일이 묘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또 학교에서의 관계가 묘하고..암튼 묘한 관계다...
<혹시...여자...친구냐??>
그냥 내뱉은 것 같은 무심한 말투였지만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욱 무섭게 나를 압박해왔다.
<아..아냐!! 그런 거...그게...인사해..이분은 우리 담임 선생님이야.>
<담임...선생님??>
뭔가 생뚱맞은 소개에 누나는 이내 얼굴을 풀며 약간 황당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그렇게 바라 보지마.. 나도 황당하니까..
<안녕하세요...강혁이 담임을 맡고 있는 유지민이라고 합니다..>
<아...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깍듯한 인사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는 누나의 얼굴은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가지 않는 듯 당황의 빛이 가득하다. 누나의 갈색 빛의 두 눈은 연신 나를 보며 어찌된 일이냐고 무언의 물음을 던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못 본 척 어색한 웃음만 지은 채 서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하지..아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세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분위기 이상하네...안되겠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아..그래...손님을 너무 오래 세워 두게 했네..죄송해요..앉으세요....>
<네..>
나의 제안에 선생님과 누나는 이내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나 역시 쇼파에 앉기 위해 선생님 옆에 엉덩이를 붙이려 할 때였다.
<넌 왜 거기 있냐??>
<응??>
<손님이 왔는데 차를 끓여 와야지...왜 거기 그러고 있냐고..>
그걸 왜 당연히 내가 해야 되는 것처럼 말하는 지 이해는 되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갔다.
<아..알았어..>
<진짜 센스 없기는...애가 아직 어려서 좀 눈치가 없어요..이해하세요..>
<아뇨..귀여운데요..뭘..>
다 큰 여자 둘이서 어린애 하나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습이 참 화기애애해 보이네요..
보기 좋습니다..아주.. 나를 내친 두 여자를 위해 차를 타며 거실을 보니 선생님과 누나는 내 뒷담화 이후 이제야 말문이 트였는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시라고요??>
<네...영어를 맡고 있어요...>
<아....근데...생각보다 젊으셔서 약간 놀랐어요..>
<예...작년에 부임했거든요..>
<아..실례지만 나이가..>
<26이요.>
<정말요?? 많아 봐야 한 스물 한두 살로 보이는데...>
<네??...아니예요....>
<아뇨...진짜로 그렇게 보여요...강혁이 자식..아니 강혁이는 좋겠네요 이런 미인 선생님이 담임이라서..>
<별 말씀을..누님분도 저보다 훨씬 이쁘신데요..키도 크시고 얼굴도 이쁘시고..강혁이가 자랑스러워 하겠어요..이런 누님 둬서..>
<아뇨...그거야 뭐..하하..>
아주 쌩쑈를 해라..지금 무슨 칭찬 합시다 찍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확실히 색깔이 다른 두 미인이 서로 웃으며 얘기하고 있으니까 주위가 환해지는 것이 항상 보았던 거실이 어딘가 특별한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듯하다.
선이 살아있는듯 한 오똑하고 높은 코와 약간 드세보이면서도 꽤나 도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눈매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누나. 그와 다르게 강아지 같은 귀여운 눈과 약간 통통하면서 날카롭지 않은 고운 턱선 그리고 아기 같은 동안의 피부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는 선생님. 비슷하면서도 둘은 확실히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둘 다 이쁘고 누가 봐도 눈이 돌아 갈만 한 미인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리고 슬쩍 눈앞의 저 두 여자들이 어제 오늘 내 품에 안겨 쾌락에 몸부림 친 여자들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뭔지 모를 뿌듯함과 행복함이 밀려들어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묘한 상황이 긴장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차 나왔어요...>
커피 두 잔을 선생님과 누나의 앞에 내려놓은 나는 선생님의 옆자리에 걸터 앉아갔다.
<근데..저희 집엔 어쩐일로..>
드디어 참았던 물음을 던지 듯 조심스럽게 누나가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다.
<그냥... 가..가정방문 겸 해서 오셨데..>
<가정방문??>
<네...제가 요번에 새로 부임한지 얼마 안돼서 애들을 잘 모르거든요..그래서 부모님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애들이 랑도 친해질 겸 해서 몇 일전부터 한명씩 가정방문을 하고 있어요..>
미리 준비라도 해놓은 것처럼 선생님은 줄줄 말을 이어갔다. 신기하다...이거 어디 미리 써놓고 말하는 거냐?? 뭐 이리 술술이야..
<아..그러시구나..전 또 우리 강혁이가 무슨 사고 쳤나 했죠..>
<아뇨..오늘은 강혁이 집을 방문하는 날이라서 온 거예요..미리 연락 못 드리고 옷 점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숙여 갔다. 그 모습에 그제서야 누나는 약간 이해가 가는 듯 웃음을 띄어갔다. 대단하다..저 천하의 한 여사를 속여 넘기는 분위기다..18년 넘게 살면서 시도는 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 못했던 일인데..
<아뇨..요즘 같은 때에 일일이 찾아다니시면서 얘들 챙기기 쉽지 않을 텐데..정말 대단하시네요..>
<뭘요..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요..>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띄우며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이거 진짜 꾼 아냐?? 아까 일도 그렇고.. 뭔 선생님의 이렇게 거짓말을 잘해?? 완전 연기 수준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감이다...
<그건..그렇고..지금 입고 있는 옷은...>
누나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선생님의 옷을 바라보았다. 부푼 가슴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묘한 야릇함을 풍기는 마법의 셔츠. 역시 내 예상 대로였다. 충분히 없던 오해도 불러 일으킬만한 옷이다..
<제 옷에 뭐가 묻어가지고 좀 빌려 입었어요..>
역시 다시 한 번 준비라도 한 듯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선생님.. 존경 스럽다...그냥 그길로 나가세요.. 미래가 밝습니다..
<그래요??..그럼 제 옷 빌려 드릴께 제 옷 입으세요..아무래도 남자 옷 보다는 여자 옷이 나을 테니까..>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사실은...제가 좀 치수를 크게 입어서요..웬만 한건 잘 안 맞거든요...>
<아...네...>
하긴 내가 봐도 선생님이 누나의 옷을 입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른 건 다 맞는 다 쳐도 저 문제의 가슴만은 어떻게 처리가 안 될 것 같았다. 둘 다 만져보고 겪어본 정확한 나의 판단으론 누나의 가슴도 보통 여자들에 비하면 상당한 볼륨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지만 선생님의 저 가슴에 비하면 좀 모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근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은근히 잔인하다...이 여자..저런 말을 웃으면서 하는 거 보면,,, 분명 악의 없이 한 말이겠지만..콕콕 정곡을 제대로 지른다. 그 예로 방금 전의 말로 우리 천하의 한 여사가 한방 먹은 듯 허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가시게요??>
<네..너무 늦게까지 폐를 끼친 것 같네요...그럼 다음에 다시 한번 연락 드리고 찾아 뵙겠습니다.>
<아뇨..제가 학교로 한번 찾아 뵐께요..>
<네...그럼 나중에 뵐게요..>
그렇게 무사히(?) 기나긴 가정 방문이 끝나고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 나는 함께 집밖을 나왔다. 집밖은 한산했다. 그렇게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모두 집에 들어갔는지 거리는 조용하기 그지없었고 간간히 들려오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뭐라고 말을 시켜볼까 했지만 아까의 일도 있고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조용히 발걸음만 옮겼다.
<이쁘시네..누나..>
순간 조용히 딴 곳을 바라보며 걸음만 걷고 있던 선생님이 정적을 깨고 말을 걸어 왔다.
<네?? 아.. 뭐...생긴것만 그렇지 하는 짓은 완전 남자에요..왈가닥에 맨날 때리기만 하고 속만 썩이고...거기다 반찬 투정은 어찌나 하는지..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되구..암튼 말론 다 못해요..>
말을 하다 보니까 한숨만 나온다. 나 정말 이런 거 다 견디고 사는 거야?? 가슴이 아프다.
<말은 그래도 엄청 좋아하나 보네?? 누나를...>
내 얘기를 어떻게 들으면 그런 판단이 나올까?? 판단의 근거가 심히 궁금하네요..
<네?? 그래 보여요?? 어디가요??>
<응..그냥 느껴져..강혁이가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말 하나하나에서..>
말 그대로 하나하나에 다 욕밖에 없었는데..
<그런가?? 뭐..하나밖에 없는 누나니까요..좋은 점도 약간은 있고..>
그 좋은 점이 일 년에 개기월식 보는 것 보다 보기가 힘들어서 문제지
<후후..부러워..그런 누나를 둔 너도..너 같은 동생을 둔 너희 누나도..>
<선생님은 혼자라고 하셨죠?? 그게 더 좋지 않아요?? 이쁨도 더 많이 받고??>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지.. 그리고 솔직히 난 형제가 더 있었음 좋겠다 하고 생각했거든.. 혼자는 너무 외로워서..>
쓸쓸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듯 말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어딘가 슬픔과 아쉬움이 엿보인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혼자보단 둘이 낳다. 지금의 나만 봐도 누나가 없는 집을 상상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상상은 하기도 싫고..
<근데..오늘 너희 누나한테 죄송해서 어떡해...>
<뭐가요??>
<그냥 거짓말 한 것도 그렇고...아까 우리 일도 그렇고...그냥 죄송스럽네..선생이 되가지고 학부모한테...그것도 제자 앞에서 거짓말이나 하고..하아...나 나쁜 선생이지??>
<뭐..어쩔 수 없었잖아요..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했으면 전 지금 쯤 땅 파고 들어갈 준비해야 했을 겁니다..날 아주 죽일테니까..
<그래도...>
여전히 아까의 거짓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선생님은 여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걷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시나?? 아까는 봉이 김선달 마냥 거짓말도 잘만 하더만... 하긴 뭐.. 교사라는 직업에 그렇게 열정적이고 열심히 인 선생님이니까...그런 작은 거짓말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저 모습 보니까 괜시리 미안해진다..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죄송해요...>
<응?? 뭐가??>
<따지고 보면 저 때문에 거짓말 하신거 잖아요..>
<아냐~~니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괜찮아..>
<그래도..>
<괜찮다니까..정말..살다보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거지 뭐... 안그래??하하>
오히려 축 처진 내 어깨를 선생님이 두들기며 날 위로 해온다. 뭔가 좀 이상하다..좀 전까지만 해도 반대였는데...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주택가를 빠져나와 큰길이 보이는 곳에 다 달았다. 아무도 없이 한산 했던 주택가와는 다르게 큰길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거리를 밝히는 화려한 간판 불빛, 그 아래에서 웃고 떠들며 오다니는 사람들, 휴일의 끝자락을 즐기듯 벌써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여기저기 껄렁껄렁 회합을 열고 있는 양아치들, 험악한 인상으로 거리를 노다니는 덩치 좋은 사내들..뭔가 점점 활기찬 분위기하고는 멀어지는 것 같지 않아??
<이제 그만 들어가봐..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께.>
<아뇨..집 앞까지 모셔다 드릴께요..밤길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저런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혼자 보낼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멀쩡하게 지나가다가도 다음 날 피사체로 방송 출연 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정말이지 여자가 혼자 다니기엔 너무 험악하고 위험하다.
<괜찮네요...애도 아니고 혼자가도 돼..>
차라리 애면 걱정을 안 하지...애가 아니라서 걱정하는 거지..
<요즘에 밤에 여자 혼자 다니면 얼마나 위험한데요...거리에 늑대 같은 놈들이 득실득실 쌓였어요..>
<그 중에서 니가 제~~~~일 늑대 같잖아..안그래??>
<그..그거야...>
가끔씩 보면 이 여자 정말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데가 있다...분명히 악의 없이 한 말인데 묘하게 사람 신경을 긁는게....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선생님 정말 괜찮아...정 위험하다 싶으면 냅다 뛰면 돼는 거고..그리고 누가 나 같은걸 잡아 가?? 봐봐 돈도 없어 보이잖아..>
탈탈 털어 보라는 듯이 선생님이 귀엽게 팔을 팔랑 거리며 미소를 지어 간다. 그러니까 그 미소가 위험하다니까...
돈은 모르겠고 확실한건 그 몸은 돈 보다 비싸 보인다는 거다...하늘색 치마 밑으로 곱게 뿌리내리며 아래로 이쁘게 뻗은 다리. 남자 옷마저도 감당 못하고 솟아오른 저 풍만한 가슴. 범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보이는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같은 얼굴.. 하나하나 다 반짝이는 보석 같다. 돈으로 환산하면...뭐 환산법을 모르니까 대충 넘어가고...암튼 엄청 비쌀 것 같다.
<안돼요..그래도..제 말 들으세요...>
<알았어... 그럼 택시...택시 타는 곳 까지만 데려다 줘..그럼 됐지??>
<요즘 택시 혼자 타는 게 얼마나 위험한데요..그럼 저랑 같이 타요..>
<뭐하러 번거거롭게 그래..그냥 나 혼자 타고 갈께..>
<위험해서 안된다니까요..>
<괜찮다니까...>
몇 번이나 서로 같은 말만을 되풀이 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정말이지..내 주위에는 어떻게 된게 내 말 듣는 인간이 이렇게 없냐?? 아주 짜증난다 짜증나..
<몰라요!!그럼 선생님 맘대로 가세요!!>
<뭐야..?? 화난거야??>
<몰라요..그냥 가세요..전 바로 집으로 갈테니까..>
<정말 화났나보네..뭘 그거 가지고 화를 내??>
<화 안났어요..그러니까 신경쓰지마시고 혼자 편하게 가세요..전 그럼 들어가 볼께요..>
<야.. 그러구 가면 어떻게 선생님 마음 불편하게...>
<불편할게 뭐 있어요..제가 뭐라고...그냥 가세요..>
<치..알았다 그냥 갈꺼다.. 너두 잘가라!!>
<네..그럼 학교에서 뵐께요..>
냉랭한 목소리로 등을 돌린 채 얼굴도 보지 않고 인사한 나는 천천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지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맘대로 하라고해... 나두 뭐 자기 안 바래다주면 편하고 좋다 이거야..누군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줄 아나?? 사람 걱정해주는 줄도 모르고... 혼자 가다가 깡패나 만나라!!
얼마쯤 걸어갔을까 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나의 몸은 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근데..진짜 깡패 만나면 어쩌냐?? 요즘엔 인신매매범도 많다는데.. 그리고 지금 시간에는 술취한 놈들도 많을 테고...하아... 진짜... 하여튼 난 너무 맘이 약해서 탈이다..으이구...
마음을 정한 나는 몸을 돌려 선생님을 찾기 위해 큰 거리로 뛰어갔다. 여기저기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선생님은 벌써 어디로 가셨는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워낙에 눈에 띄는 외모에 눈에띄는 옷차림이라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벌써 택시타고 갔나?? 아니지..선생님 여기 지리도 잘 몰라서 택시 어디서 타는지도 모를 텐데.. 그럼 어딨는거야.. 한참을 거리를 뛰어 다니며 배회하던 내 눈에 저 멀리 편의점 앞에서 웬 남자와 서있는 선생님이 들어왔고 나는 쏜살같이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도착해서 보니 남자는 술이 취했는지 연신 비틀거리며 선생님의 가는 손목을 붙잡고 억지로 끌어 당겨대고 있었다. 술에 찌든 와중에서도 본능은 살아있는지 초점을 잃고 풀린 눈을 희 번득 거리며 선생님의 몸을 징그럽게 훑어갔다. 소름끼치는 그 눈빛에 선생님은 안간힘을 쓰며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여자로서 건장한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지 조금씩 남자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것 봐...내 말 안 듣더니만...
<왜 그래...빼지 말고 나랑 좋은데 가자니까..뭐 혼자인 사람끼리 좋잖아...응??>
<저..아저씨... 저 혼자 아니거든요..저 결혼 했어요...그러니까 이 손 좀 놓고...가주세요..>
<에이...거짓말 하지마..결혼 한 여자가 이렇게 밤 늦게 그런 차림으로 쏘다니나?? 그러지 말고..나랑 가자..>
하여튼 저 놈의 복장이 문제다. 보기만 해도 오해의 탑을 쌓을 것 같은 오묘한 복장..답엔 꼭 잠바를 드려야겠다. 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보..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술 취한 사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는 어느새 선생님 옆에 다가선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역시 갑자기 내가 나타난 것이 놀라웠는지 아님 반가웠는지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네..제 아낸데..무슨 일이죠??>
보기에 변태 치한처럼 생긴 사람이었지만 상대는 어른이다. 무턱대고 정의의 사도처럼 나섰다가 마찰이 생기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나지만 옆에 계시는 선생님이 더 곤란해 질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방향으로 말을 꺼내야만 했다. 하지만...속을까? 그래도 내가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결혼 했다 그러면 안 믿지 않을까??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다.
<저..그..그게..>
태연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선생님을 아내라고 부른 나의 모습에 그 남자는 당황을 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선생님을 잡아끌던 우악스러운 손은 등 뒤로 감춘 지 오래였다. 믿는...거냐??
<여보..무슨 일이야?? 이분은 누구고 아는 사람이야??>
<어??..아..아뇨...모르는 분이예요..>
선생님 역시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을 여보라고 부르는 나의 행동에 잠시 놀란 듯 말을 더듬었지만 이내 내 뜻을 눈치 챈 듯 내 말에 말을 맞춰갔다. 하여튼 연기하난 잘한다니까..
<저..실례지만 저희 아내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남자를 보며 우선 정중하게 물었다. 강하게 나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상대는 술에 취한 취객이 었다. 한마디로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다. 그런 상대에게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면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에 나는 우선 정중하게 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로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아..뇨..그냥..여자분 혼자..계시기에..그냥 걱정 돼서...>
<그러시군요.. 전 혹시 제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려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서 경찰을 부를 생각이었는데..다행이군요...>
<아...아닙니다..절대 아닙니다..전 그냥.. 아무튼 남편 분이 계시다니까 전..이만..>
경찰을 부른 다는 말에 놀란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그 사내는 허겁지겁 우리를 지나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도망가는 게 급했던지 벗겨진 신발을 신지도 않은 채 손에들고 뛰어 가는 우스꽝 스러운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술을 먹을 라면 좀 곱게 먹지.. 참..나이 먹어서 저러구 싶을까.. 난 나중에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근데...믿네..내가 남편이라는 거.. 내가 그렇게 겉늙어 보이나?? 왠지 모르게 일은 잘 풀렸는데 서글프다..18살에 결혼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걸 믿다니...그건 그렇고...
나는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아까의 남자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선생님은 내 팔을 꼭 끌어 안고 있었다. 많이 놀랐는지 내 팔을 타고 선생님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져 온다.
<괜찮으세요?? 다친덴 없으시고요??>
<어..괜찮아...그냥..그냥..조금..놀랐어...>
가늘게 목소리까지 떠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왔다.
<그러게 제가 바래다 드린다고 했잖아요!! 이게 뭐에요!! 이런 꼴이나 당하고!!>
<니..니가 먼저 갔잖아!! 뒤도 안돌아 보고 갔으면서...>
<선생님이 가라면서요!!>
<가란다고 진짜 가냐??!! 남자라면 여자를 끝까지 책임을 질줄 알아야지!!>
아니..이 여자가.. 자기가 가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씨이...얼마나 무서웠는데...막 남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고 막 뭐하냐고 물어보고.. 여기 지리도 잘 모르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러게 그 옷이 문제라니까... 그건 그렇고..다 나 때문이라고??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걱정 되서 왔더니만...
<그래서 어떡할까요??그냥 갈까요??>
<가!! 그냥 가!!>
<진짜죠??>
<그래...가라구..>
<진짜가요??>
조금씩 사그라 드는 목소리에 내가 다시 한번 되묻자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렸다.
<알았어요..그럼 이번엔 진짜 갈께요.. 안녕히 가세요..>
등을 돌려 돌아가려던 나는 내 팔을 잡아오는 선생님의 손에 걸음을 멈췄다.
<가...지마...>
<뭐라고요??>
<가지..말라고..>
<가라면서요..>
<가지말라구!!....혼자가기 무서워......데려다 줘...>
진즉에 그럴 것이지.. 이럴거 왜 팅기나?? 근데..디게 귀엽다...자기가 말해 놓고도 창피 했는지 얼굴 빨개 진 것도 그렇고 주눅 든 저 표정도 그렇고... 완전 선생이 아니라 애랑 노는 것 같다니까...누가 제자고 누가 선생인지 정말 도통 모르겠다. 뭐..그런게 선생님의 매력이긴 하지만...
<선생님...다 왔어요..선생님...>
오늘의 일과가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서 머리를 내 무릎에 배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선생님을 나는 조심스럽게 깨워갔다. 이 여자는 정말 아무데서나 정말 잘 자는 것 같다.. 이거 안 좋은 습관인데..
<으음...어딘데??>
<집 앞이에요...>
<아..그래...깜박 잠들었나보다..하흠...>
조그마한 입을 벌리며 귀엽게 하품을 한 선생님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 택시기사에게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뭐 내가 내려고 했지만 낼 돈이 없는 관계로(학생이 뭔 돈이있어!!) 선생님이 내셨다. 요즘 생활비도 빠듯하다.. 힘드니까 그냥 넘어가라..
<여기가 선생님이 사는데예요??>
<어..저기 7층이 우리 집이야..>
<아...좋네요...아파트도 이쁘고...>
<그지?? 여기 근처에 산책로랑 약수터도 있어서 다른데 보다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아..
밤에 보는 야경도 멋지고.. 좀 학교에서 먼게 좀 흠이긴 하지만 뭐 그 정도야 차가 있으니까 별 문제 될건 없고..>
확실히 선생님이 말 한대로 였다. 아파트가 마치 숲에 세워진 것처럼 아파트 주변으로 푸른 나무들이 곱게 심어져 있어 아파트의 삭막함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저 멀리로 보이는 잘 정돈된 길에는 옆으로 가지런히 싶은 나무와 잔디들이 상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데는 아파트 값이 장난이 아닐텐데..여기서 집하나 살려면 돈 얼마나 들어요??>
<어?? 모르..겠는데..내가 산게 아니라서...>
<모르긴 몰라도..웬만한 집보다 더 나갈 것 같은데...>
<그래??..하하..>
내 말이 이상했는지 선생님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왜 웃냐?? 요즘에 부동산 상식은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기본상식이라고.. 미리부터 알아둬야지 나중에 좋아요..뭘 모르시는 구만..
<그럼..전 이만 가볼께요..>
<그냥....가게??>
<네?? 그럼요??>
<아니..이왕 왔는데..올라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지...>
<아뇨..괜찮아요.. 시간도 너무 늦었고..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도 남들이 보기엔 안 좋고..>
<뭐 어때..제잔데..>
<그래도..선생님한테 안 좋은 소문 생기면 안 되잖아요...>
솔직히 나도 한번 올라가고 싶었다. 학교의 누구나가 동경하는 미인교사의 집에..하지만 동네에서 퍼지는 나쁜 소문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요 몇 년 동안 반상회나 아주머니들과 만나면서 알만큼 알게 된 있는 나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소문이라는 거 잘못하면 사람 인생 망친다..정말 조심해야 한다.
<난 정말 괜찮은데...>
<아뇨..제가 불편해서 그래요..차는 다음에 마실께요..>
<그래 그럼...>
약간 아쉬운 듯 선생님이 한숨을 흘려갔다. 혼자 사셔서 쓸쓸하신가 보다..
<그럼... 우리 잠깐 걸을래??>
<네??>
<그냥...차에서 잤더니 좀 답답해서..시원한 바람도 쐬고 정신도 차릴 겸해서..>
<괜찮으시겠어요?? 내일 학교는..>
<나는 괜찮아...너는 어때?? 괜찮겠어?>
<저야..뭐..상관은 없죠...>
집에 가야 할 것도 없고...무엇보다 이런 미인과의 산책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니까..설사 밤을 새야한다 해도 상관은 없다.
<그래..그럼 저쪽에 산책로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선생님의 권유에 나는 천천히 숲길처럼 놓여 진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겨갔다. 나무로부터 나오는 듯 기분 좋은 숲 냄새를 풍기는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자 온몸 가득 상쾌함이 퍼져왔다. 그 상쾌함에 나는 숨을 가득 들이키며 그 산뜻함을 한껏 느껴갔다.
<좋지..여기??>
<네..마음이 편안해 지는 게 숲에 온 느낌이 들어요..기분 좋은데요..>
<그지?? 나도 뭐 안 좋은 일 있으면 나와서 바람을 쐬는데 그때마다 여기서 숲 냄새를 맡으면 막 기분이 편안해지고 좋아지는 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
<그럴 것 같아요..>
정말이다. 도시에선 좀처럼 느낄수 없는 신선한 향기가 폐를 정화 시키는 느낌이다. 마치 도시가 아닌 숲에 놀러온 느낌이다. 아파트 내에 이런 장소가 있다니..말 그대로 친환경 아파튼가 보다.. 아파트 값이 비싸겠는데...
<저..있잖아..오늘일 말야...>
<네??>
<그거..우리가..그거 한거...>
아마도 아까 우리가 했던 섹스를 말하는가 보다. 선생님은 좀처럼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한참을 머뭇거려갔다.
<걱정 마세요..저 괜한 오해 같은 거 안할 테니까..>
<응?? 오...해??>
<혹시나 선생님이 제가 좋아서 그런 짓을 하셨다고는 생각안하니까...제가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고..>
솔직히 그렇다. 능력 좋고 학벌 좋고, 거기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까지 못 잊고 있는 선생님이 나 같은 놈을 거기다 제자인 나를 좋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분명 아까의 일은 선생님이 약해진 마음에 내가 어떻게 운 좋게 그렇게 접근해서 생긴 그냥 사고일 뿐이었다. 나 역시도 그거 하나만 가지고 물고 늘어질 정도로 최악인 놈도 아니었고..그냥 어쩌다 생긴 사고 정도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오늘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로!!선생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게 이거 맞죠??>
내 물음에 선생님은 얼굴을 굳힌 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겠지..뭐...소문나면 안 좋은 건 선생님이니까..선생님이 학생이랑 얽혀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일이니까..
<너는...어때?? 그러고... 싶어??>
<네??>
<너는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거야??...>
솔직히 나는 아니다..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더 깊은 사이를 맺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냥 이대로 오늘처럼 마음을 터놓고 얘기 하고 싶고 좀 더 친하게 장난도 치며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육체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선생님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무책임한 말이다. 그런 마음도 없는데 내 욕심만으로 선생님을 귀찮게 한 다는 건.. 그리고 원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네...전 그냥 지내던 데로 선생님으로 지내고 싶어요..그게 저한테도 편하고 선생님한테도 좋은 걸테니까요..>
어쩔수 없다..여기서 솔직히 말하면 더 멀어질게 뻔하니까...그래도 솔직히 나는 선생님의 대답에 아뇨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아니 라고 말할까?? 선생님과 계속 하고 싶다고 선생님을 계속 안고 싶다고 말할까??
<진심...이야??>
어느새 선생님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나를 응시하는 그 맑고 사랑스러운 두 눈이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 말았다.
<네...진심이예요..>
역시 말하지 못했다. 그래..이게 최선이다.. 더 바라지말자..
<하아....그래...>
뭔가 아쉬운 걸까?? 안타까운 듯 옅은 한숨을 내쉬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잠깐 사실을 말해볼까 다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메우듯 풀벌레 우는 소리가 둘사이에 잔잔하게 울려 퍼져갔다.
<강혁이는.. 어떤 여자애를 좋아해??>
<저요??>
<응..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 그럽니다..
<음..저는..그냥 별거 없어요.. 이효리같은 몸매에 김태희 같은 얼굴 그리고 문근영처럼 마음도 착한 ..그런 여자가 좋더라고요...크크>
진짜 이런 여자 있으면 난 진짜 당장 프로 포즈 할거다..뭐 그쪽이 날 좋아해야 결혼 할 수 있는 거지만..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저런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그 상상만으로도 말이다..아~~행복해... 근데... 왜 그렇게 보시나?? 그런 벙찐 표정으로..내가 뭐 잘못 말했나??
<왜 그러세요??>
<아니...이제 알았어...>
<뭘요??>
<니가..여자 친구 하나 없는 이유...>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라고.. 이건 이상형이야!! 이상형!!
<그리고..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너는...>
악담 하는 거냐?? 얼굴 가득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 하지마!!
<뭐..이..이런 건 이상형이고...전 그냥..자연스러운 게 좋아요..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잖아요..얼굴이 이쁜 걸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같이 있다보면 빛이 나는 그런 사람.. 내 눈에 그 빛이 보이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좋아요..>
<빛이나?? 혹시 대머리 좋아해??>
지금 그걸 개그라고 하나..?? 개콘 첫회 부터 다시 봐라..
<그게 아니라..그냥..자연스러운 여자요..그냥 이렇다할 꾸밈없이도 빛나는 여자..>
<그게 뭐야..너무 막연하잖아...그런 여자가 어딨어?>
<어딘가에 있겠죠...그런 여자가..>
정말 있을까?? 내가 말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여자가 있을지도 그리고 있다 해도 나의 곁에 있을지도.. 당장 내일 누굴 만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그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나의 그녀인지...당연한 얘기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언제 내 옆에 다가올지 또 어떻게 만나 어떻게 사랑하게 될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될지...궁금하고 설레이고 기대가 되는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왜 그래?? 갑자기 웃고...>
<제가요??>
<어...>
<그랬나?? 후..그냥 웃음이 나와서요...>
<뭔데?? 뭐 때문에 웃었는데..같이 좀 웃자..>
<별거 아니예요..신경쓰지 마세요..>
<피...치사해서 안 듣는다...>
별걸 가지고 다 치사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삐졌다는 걸 광고라도 하듯 토라진 아이처럼 얇은 입술을 삐죽거려 갔다. 이런 나이답지 않은 귀여운 표정은 대체 어서 나오는 거냐?? 나도 좀 배워보자... 아주 표정 하나하나가 애교다.. 이건..
<선생님은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데요??>
<나?? 음...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는 없는데.....그런 거 생각 해본적도 없고..>
<그래도...대충 이런 사람이 좋다...그런거 있잖아요...>
내 말에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듯 말을 멈췄다.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위로 올리며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
<음...글쎄..잘 모르겠네...히히>
생각 안 나는지 선생님은 귀엽게 혀를 빼물고 웃음을 흘려갔다.
<근데....신경..쓰이는..사람은..있어...>
어딘가 모르게 수줍게 말하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신경...쓰이는 사람?? 아...맞다...그분...죽었다는 그 사람이구나...아직도 많이 좋아 하시지... 왠지 기분이 조금 그렇네... 뭘 기대했던건 아니지만...
<안 궁금해?? 누군지??>
<별로요...그냥 뭐 사람이겠죠...>
뭔지 모를 아쉬움에 내가 땅을 차며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자 선생님이 그런 게 어딨냐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 뭐야...나는 물어봤잖아..>
<뭘 물어봐요...물어봐야 남자겠죠...>
<너 진짜...그래!! 안 말할래!! 죽을 때까지 내가 먼저 말해주나 봐라!!>
뭐야..왜 저래?? 그리고 먼저는 뭐야?? 생뚱맞기는.. 선생님은 뭐가 그리 화났는지 등을 홱 하고 돌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가요??>
<어디가긴 집에 가지!!>
지가 걷자고 해놓고 지 멋대로 가네...하여튼 여자들이란 지 멋대로야.. 몰라..나두 그냥 갈래.. 선생님과 반대방향으로 등을 돌려 걸어가려던 나는 이내 다시 걸음을 바꿔야만 했다. 젠장..혼자 갈려니까 조낸 무섭다...막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랑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같고..여기 길도 모르는데...젠장...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누가 쫓아올까 무서워 쫄래쫄래 선생님의 뒤를 쫓아갔다. 진짜 무서운 건 딱 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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