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사탕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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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08회 작성일 20-01-17 17:36본문
화이트 데이가 어느새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가슴 한 구석이 마구 아려서 도대체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플수록 더 아름다운 기억이 된다던데, 제겐 그렇지도 않아서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마냥 휘청거리게 됩니다. 주지도 못할 업소용 누룽지 캔디를 해마다 사며 내년에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지만 전 올해도 누룽지 캔디 한 봉지를 사고야 말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은영, 주위에 있기만 해도 무척 좋은 향기가 나서, 앞을 보고 있어도 몇 걸음 뒤에 은영이가 왔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싱거운 농담에도 깔깔 거리며 웃고, 조금만 슬픈 영화를 보고 오기라도 하면 눈 주위가 벌게지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저 역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음……, 그러니 제가 스물한 살 섣부른 열정이나 성급함으로 그녀를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이야기 하고 싶네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십년 전의 전 콤플렉스 덩어리에다 무지 소심해서 짝사랑의 대상을 앞에 두고서도 적어도 다섯 발자국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빼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런 제게 아무런 불만도 없었기도 했고요. 그저 눈길이 닿는 곳에 은영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공간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꽉 차도록 충만해지는 시간이었으니 무슨 서운함이 있었겠어요. 그냥 하루하루가 즐겁고 성실한 시간이었다는 것 정도가 그 시절 기억하는 제 일상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은영이가 보일 때가 있어서 가끔 눈을 감고 길을 걷다 건물에 부딪쳐서 안경이 부서진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떻게 하루 하루가 즐겁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행복했던 시간은 영원히 기억될 뿐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건지, 제게도 은영이에게서 떨어져 지내야만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흔적도 없이, 소문도 없이 훌쩍 그녀가 사라지고 말았던 겁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랑이라 확신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보처럼 계속 눈물만 흘리며 그녀가 갈만한 곳이나 장소를 탐문했습니다. 다행히 은영이는 학교에서도 꽤나 유명한 예쁜 아이였고, 사랑스런 그녀를 찾으려는 시도는 나 따위를 제외하고도 많고도 많았습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셔주며,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했습니다. 심장을 도려내버린 사람처럼 핏기없는 얼굴로 그녀의 뒤를 추적했습니다.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 생기는 소문들은 결코 아름답지 못합니다. 은영이가 자취를 감춘 후 그녀를 둘러싼 더러운 소문들이 하나씩 둘씩 생겨났습니다. 아기를 가졌다. 배가 불러오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집안이 망했다. 집안이 망해서 단체로 야반도주를 했는데, 은영이에게까지 사채직원들이 붙을지도 몰라 몸을 피한 것이다라는 소문은 양반이었습니다. 유성의 어느 술집에 가서 빈아를 찾으면 은영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말을 하는 한 학년 위의 형에게 마시고 있던 술을 뿌리고 얻어터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런 아이가 술집이라니요.
사실 고백하자면 전 그 술집에 찾아가 빈아라는 호스테스 아가씨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빈아라는 사람조차 없었고, 전 내심 안도하면서도 은영이를 믿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못나게 생각됐었습니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은영이는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제 안에선 체크무늬 분홍남방을 입은 은영이가 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졌습니다. 2학년이 되었고, 군대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이미 몇 번을 다녀와서 그 곳엔 없는 것이 확실해진 은영이의 고향 집 주소에 그동안 좋아했던 마음을 적은 편지를 붙이고선 입대를 했습니다. 대전에서 서울역으로, 서울 역에서 의정부역으로 가는 내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말만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습니다.
군대는 저와는 맞지 않는 조직이었습니다. 싫은 소리를 하기 싫고, 욕도 하지 않고,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제가 그 모든 일을 억지로 해야 했습니다. 제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 사람을 질책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전 스스로를 침몰시켜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겐 독한 녀석이라는 평판과 쓸만한 후임이라는 말도 안되는 타이틀이 이미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너무 싫어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 나가게 되는 외박이나 외출 땐 목욕탕에 들어가 살갗이 벗겨질 때까지 때를 밀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더러워지는 내 자신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 찌들어 가며 내가 매달렸던 것은 은영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매일 매일 군사우편을 보내면서도 답장 한 번 받지 못하는 절 후임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지만, 하루의 의식처럼 저녁이면 규격 편선지에 꾹꾹 볼펜을 눌러가며 은영이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다. 내일은 무슨 훈련을 하는데, 후임들이 잘 해서 다른 사람을 질책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다를 썼습니다. 그렇게 일년 정도의 시간이 또 지났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계속해서 쓰는 것은 힘이 들었습니다. 하릴없이 편지를 쓰다가도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흔들림 없던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은영이에게 난 그저 가까이에 늘 있는 친구였을 뿐이라는 아픈 사실을 모른 척하며 혼자만의 마음을 똑바로 보게 되면서 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온전한 사랑은 서로 마음을 나누며 커져가는 것이지, 혼자만 우긴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좋아하던 마음을 접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되었으니까요. 마음을 잃고 전 점점 더 독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구 후임들을 다그쳤고, 그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고 구겨진 표정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내겐 사람의 마음이란 없었습니다.
희연이를 알게 된 것이 그 무렵이었습니다. 희연이는 내가 있었던 독서토론 동아리의 후배였는데, 여자동기들에게 보낸 내 편지를 보고서는 내게 위문편지를 보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죠. 희연이의 편지는 마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만 평 정도 되는 넓은 땅의 가운데서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내 주머니 안의 손난로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사랑에 아직 눈을 뜨지도 못한 아기새처럼 난 희연이에게 집중하고 또 집착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돌아온 학교는 전과 달랐습니다.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사회를 향한 거대한 분노의 꼭지도 찾을 수 없었고, 낭만도 우정도 없이 그저 취업준비에만 열중하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좀비 같은 학생들로 가득 찬 도서관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전 정신없는 학교를 떠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비 이만 원 정도만 들이면 대한민국에서 찾아갈 수 없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책 두어 권을 가방에 싸들고, 고구마를 몇 개 쪄서 크린 랩에 넣고는 강원도며, 대천이나 전주를 쏘다녔습니다. 집착하는 내가 싫었던지 희연이와의 연애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난 형체가 없는 바람같이 이리 저리로 떠돌았습니다.
은영이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은영이가 내 시선에서 사라진 후 3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은영이의 고향 집 근처인 예산을 여행하다가 그래도 들리고 싶어 찾았던 은영이의 동네에서 은영이 이모를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흔하지만 그 가족에겐 더없이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당하고, 어려워진 가세를 추스를 틈도 없이 빚보증 문제가 일어나고, 도피하듯 떠난 중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국제미아처럼 모든 소식이 끊겼다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땐 그냥 그렇구나 했었지, 애달프거나 가슴이 미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은영이는 제게 오래된 기억이었을 뿐, 나눈 추억이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대전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미래에 대한 걱정도 되었기도 했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내게 실증이 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를 공부해서 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준비기간이 모자란 탓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실망은 없었습니다. 내년엔 되야지라는 마음으로 공부에 열중을 했는데, 시험에 같이 실패한 선배가 술을 먹자 했습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선배였기 때문에 안된 마음에 따라간 술자리에서 난 은영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호스테스가 되어 있는 은영이는 오히려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은영이보다 더 세련되고 예쁘더군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눈에 쉽게 기억되는 나를 보자 얼굴이 하얗게 변해 룸을 나가는 은영이를 보자 이상한 심술이 일어났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나간 은영이의 가게 이름을 물어 솔지란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찾아가 은영이를 불렀습니다. 방에 들어와 나를 본 은영이는 뭔가를 체념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으며 담배를 찾아 꺼내 물고는 길게 내뿜더군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주문한 술을 따 그녀에게 따라주고는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했습니다. 그녀의 어깨에 내 손을 걸치고는 노회한 술꾼처럼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기고는 그녀의 뺨에 키스를 했습니다. 잠시 화를 내려던 은영이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마시더군요. 분한 걸 참아내는 것처럼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실망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괜히 화가 났습니다. 엉망으로 취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서 나는 여전히 좋은 향기 때문에 자꾸만 그 때의 내가 생각났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아니 그저 한 공간에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제가요.
10분 정도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직 혼자니?"
"아니...."
술집을 뛰어나와 고시관으로 향했지만 전혀 잠들 수 없었습니다. 가여웠습니다.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여자를 술집에 다니게 하는 남자라니요.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에겐 좀 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원하지도 않는 은영이에게 억지로 친절을 베풀려고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인데, 역시 그 것도 내 욕심일 뿐이더군요. 바라지도 않는 것을 스스로 바라야만 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음 날 사흘 째 찾아간 가게에서 그녀는 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웨이터를 통해 그녀가 쓴 쪽지를 받았습니다.
"네가 준 편지들. 그것 때문에 살 수 있었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몇 번이나 그랬었는데, 네가 쓴 편지들을 읽느라 죽지 못했어. 편지가 끊기고 나선 분했어. 그래서 또 살 수 있었어. 네 앞에 여전히 아름다운 나로 다시 서고 싶었어. 나 같은 게 뭐라고라는 말은 하지 않을래. 난 장은영이니까. 네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의 여자였으니까. 그래도 앞으론 날 찾지 말아줄래. 내가 네 앞에 다시 설 때까지. 어디든 길은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해. 알겠지."
그녀는 그녀였습니다. 쓸쓸히 걸어오는 길에 예림옥이라는 콩나물국밥집 간판이 보였습니다. 허해진 속을 달래려 들어가 콩나물 국밥을 시켜 한 그릇을 먹는데, 뉴스에서 화이트데이란 말이 나오더군요. 계산을 하고 나오며 먹지 않던 카운터의 누룽지 사탕을 몇 개 집어들었습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13일의 새벽입니다. 늦도록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밤이 기네요.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은영, 주위에 있기만 해도 무척 좋은 향기가 나서, 앞을 보고 있어도 몇 걸음 뒤에 은영이가 왔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싱거운 농담에도 깔깔 거리며 웃고, 조금만 슬픈 영화를 보고 오기라도 하면 눈 주위가 벌게지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저 역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음……, 그러니 제가 스물한 살 섣부른 열정이나 성급함으로 그녀를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이야기 하고 싶네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십년 전의 전 콤플렉스 덩어리에다 무지 소심해서 짝사랑의 대상을 앞에 두고서도 적어도 다섯 발자국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빼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런 제게 아무런 불만도 없었기도 했고요. 그저 눈길이 닿는 곳에 은영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공간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꽉 차도록 충만해지는 시간이었으니 무슨 서운함이 있었겠어요. 그냥 하루하루가 즐겁고 성실한 시간이었다는 것 정도가 그 시절 기억하는 제 일상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은영이가 보일 때가 있어서 가끔 눈을 감고 길을 걷다 건물에 부딪쳐서 안경이 부서진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떻게 하루 하루가 즐겁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행복했던 시간은 영원히 기억될 뿐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건지, 제게도 은영이에게서 떨어져 지내야만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흔적도 없이, 소문도 없이 훌쩍 그녀가 사라지고 말았던 겁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랑이라 확신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보처럼 계속 눈물만 흘리며 그녀가 갈만한 곳이나 장소를 탐문했습니다. 다행히 은영이는 학교에서도 꽤나 유명한 예쁜 아이였고, 사랑스런 그녀를 찾으려는 시도는 나 따위를 제외하고도 많고도 많았습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셔주며,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했습니다. 심장을 도려내버린 사람처럼 핏기없는 얼굴로 그녀의 뒤를 추적했습니다.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 생기는 소문들은 결코 아름답지 못합니다. 은영이가 자취를 감춘 후 그녀를 둘러싼 더러운 소문들이 하나씩 둘씩 생겨났습니다. 아기를 가졌다. 배가 불러오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집안이 망했다. 집안이 망해서 단체로 야반도주를 했는데, 은영이에게까지 사채직원들이 붙을지도 몰라 몸을 피한 것이다라는 소문은 양반이었습니다. 유성의 어느 술집에 가서 빈아를 찾으면 은영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말을 하는 한 학년 위의 형에게 마시고 있던 술을 뿌리고 얻어터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런 아이가 술집이라니요.
사실 고백하자면 전 그 술집에 찾아가 빈아라는 호스테스 아가씨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빈아라는 사람조차 없었고, 전 내심 안도하면서도 은영이를 믿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못나게 생각됐었습니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은영이는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제 안에선 체크무늬 분홍남방을 입은 은영이가 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졌습니다. 2학년이 되었고, 군대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이미 몇 번을 다녀와서 그 곳엔 없는 것이 확실해진 은영이의 고향 집 주소에 그동안 좋아했던 마음을 적은 편지를 붙이고선 입대를 했습니다. 대전에서 서울역으로, 서울 역에서 의정부역으로 가는 내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말만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습니다.
군대는 저와는 맞지 않는 조직이었습니다. 싫은 소리를 하기 싫고, 욕도 하지 않고,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제가 그 모든 일을 억지로 해야 했습니다. 제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 사람을 질책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전 스스로를 침몰시켜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겐 독한 녀석이라는 평판과 쓸만한 후임이라는 말도 안되는 타이틀이 이미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너무 싫어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 나가게 되는 외박이나 외출 땐 목욕탕에 들어가 살갗이 벗겨질 때까지 때를 밀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더러워지는 내 자신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 찌들어 가며 내가 매달렸던 것은 은영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매일 매일 군사우편을 보내면서도 답장 한 번 받지 못하는 절 후임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지만, 하루의 의식처럼 저녁이면 규격 편선지에 꾹꾹 볼펜을 눌러가며 은영이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다. 내일은 무슨 훈련을 하는데, 후임들이 잘 해서 다른 사람을 질책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다를 썼습니다. 그렇게 일년 정도의 시간이 또 지났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계속해서 쓰는 것은 힘이 들었습니다. 하릴없이 편지를 쓰다가도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흔들림 없던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은영이에게 난 그저 가까이에 늘 있는 친구였을 뿐이라는 아픈 사실을 모른 척하며 혼자만의 마음을 똑바로 보게 되면서 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온전한 사랑은 서로 마음을 나누며 커져가는 것이지, 혼자만 우긴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좋아하던 마음을 접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되었으니까요. 마음을 잃고 전 점점 더 독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구 후임들을 다그쳤고, 그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고 구겨진 표정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내겐 사람의 마음이란 없었습니다.
희연이를 알게 된 것이 그 무렵이었습니다. 희연이는 내가 있었던 독서토론 동아리의 후배였는데, 여자동기들에게 보낸 내 편지를 보고서는 내게 위문편지를 보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죠. 희연이의 편지는 마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만 평 정도 되는 넓은 땅의 가운데서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내 주머니 안의 손난로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사랑에 아직 눈을 뜨지도 못한 아기새처럼 난 희연이에게 집중하고 또 집착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돌아온 학교는 전과 달랐습니다.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사회를 향한 거대한 분노의 꼭지도 찾을 수 없었고, 낭만도 우정도 없이 그저 취업준비에만 열중하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좀비 같은 학생들로 가득 찬 도서관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전 정신없는 학교를 떠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비 이만 원 정도만 들이면 대한민국에서 찾아갈 수 없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책 두어 권을 가방에 싸들고, 고구마를 몇 개 쪄서 크린 랩에 넣고는 강원도며, 대천이나 전주를 쏘다녔습니다. 집착하는 내가 싫었던지 희연이와의 연애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난 형체가 없는 바람같이 이리 저리로 떠돌았습니다.
은영이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은영이가 내 시선에서 사라진 후 3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은영이의 고향 집 근처인 예산을 여행하다가 그래도 들리고 싶어 찾았던 은영이의 동네에서 은영이 이모를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흔하지만 그 가족에겐 더없이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당하고, 어려워진 가세를 추스를 틈도 없이 빚보증 문제가 일어나고, 도피하듯 떠난 중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국제미아처럼 모든 소식이 끊겼다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땐 그냥 그렇구나 했었지, 애달프거나 가슴이 미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은영이는 제게 오래된 기억이었을 뿐, 나눈 추억이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대전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미래에 대한 걱정도 되었기도 했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내게 실증이 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를 공부해서 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준비기간이 모자란 탓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실망은 없었습니다. 내년엔 되야지라는 마음으로 공부에 열중을 했는데, 시험에 같이 실패한 선배가 술을 먹자 했습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선배였기 때문에 안된 마음에 따라간 술자리에서 난 은영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호스테스가 되어 있는 은영이는 오히려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은영이보다 더 세련되고 예쁘더군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눈에 쉽게 기억되는 나를 보자 얼굴이 하얗게 변해 룸을 나가는 은영이를 보자 이상한 심술이 일어났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나간 은영이의 가게 이름을 물어 솔지란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찾아가 은영이를 불렀습니다. 방에 들어와 나를 본 은영이는 뭔가를 체념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으며 담배를 찾아 꺼내 물고는 길게 내뿜더군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주문한 술을 따 그녀에게 따라주고는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했습니다. 그녀의 어깨에 내 손을 걸치고는 노회한 술꾼처럼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기고는 그녀의 뺨에 키스를 했습니다. 잠시 화를 내려던 은영이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마시더군요. 분한 걸 참아내는 것처럼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실망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괜히 화가 났습니다. 엉망으로 취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서 나는 여전히 좋은 향기 때문에 자꾸만 그 때의 내가 생각났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아니 그저 한 공간에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제가요.
10분 정도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직 혼자니?"
"아니...."
술집을 뛰어나와 고시관으로 향했지만 전혀 잠들 수 없었습니다. 가여웠습니다.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여자를 술집에 다니게 하는 남자라니요.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에겐 좀 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원하지도 않는 은영이에게 억지로 친절을 베풀려고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인데, 역시 그 것도 내 욕심일 뿐이더군요. 바라지도 않는 것을 스스로 바라야만 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음 날 사흘 째 찾아간 가게에서 그녀는 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웨이터를 통해 그녀가 쓴 쪽지를 받았습니다.
"네가 준 편지들. 그것 때문에 살 수 있었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몇 번이나 그랬었는데, 네가 쓴 편지들을 읽느라 죽지 못했어. 편지가 끊기고 나선 분했어. 그래서 또 살 수 있었어. 네 앞에 여전히 아름다운 나로 다시 서고 싶었어. 나 같은 게 뭐라고라는 말은 하지 않을래. 난 장은영이니까. 네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의 여자였으니까. 그래도 앞으론 날 찾지 말아줄래. 내가 네 앞에 다시 설 때까지. 어디든 길은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해. 알겠지."
그녀는 그녀였습니다. 쓸쓸히 걸어오는 길에 예림옥이라는 콩나물국밥집 간판이 보였습니다. 허해진 속을 달래려 들어가 콩나물 국밥을 시켜 한 그릇을 먹는데, 뉴스에서 화이트데이란 말이 나오더군요. 계산을 하고 나오며 먹지 않던 카운터의 누룽지 사탕을 몇 개 집어들었습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13일의 새벽입니다. 늦도록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밤이 기네요.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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