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특별한 사랑방식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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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20-01-17 17:40본문
연주는 내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나도 가슴속이 먹먹해지고 있었다.
“그 동안 힘들었구나...”
“어이, 거기서 뭐 해? 우리 먼저 간다.”
박 선배는 계산을 하면서 연주와 내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네.”
박 선배와 미미가 어디론가 떠나고 연주와 나는 거리에 나왔다.
몇 시간만 있으면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그러나 강남의 유흥가는 여전히 활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남자들은 지갑을 돈으로 가득 채우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여전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고, 여자들은 그 남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 자신들의 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그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배고프지 않아?”
“괜찮아요. 선생님은요?”
“음...멸치국수가 먹고 싶기는 한데...”
“그럼 저 집으로 가요.”
연주가 말한 멸치국수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 거리에서 삶을 영위하는 여러 부류의 군상(群像)들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있었다.
아가씨들, 삐끼들, 발레파킹을 하는 사람들, 술꾼들......
“후와, 맛있다. 연주도 좀 먹어.”
“아뇨, 전 됐어요.”
연주가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연주의 미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주의 미소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작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멸치국수를 먹고 근처 커피하우스에 왔을 때였다.
나는 연주가 룸살롱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연주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단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연주는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꼬여버린 것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았나 보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연주는 눈을 내리 깔고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댈 뿐이었다.
연한 화장기가 있는 연주의 얼굴은 참으로 고왔다. 단정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여전히 연주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창밖에는 어슴푸레 밝아오는 빛 속에 희미하게 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다. 연주는 말을 아꼈다. 그 모습이 더욱더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다.
서울 근교에 있는 조그마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그 대학으로 가는 길목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개나리....그 노란색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귀여운 색일 것이다.
연주와 처음 만난 것도 개나리가 활짝 피어나던 계절이었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나는 아담한 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된 교정에는 체육복을 입은 여중생들이 체육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이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 선생님이 그 반을 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중학교 3학년의 한 반을 담임하라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을 때를 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갑자기 담임선생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들어오자 아이들의 소란은 서서히 잠잠해져 갔다.
나는 교단으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섰다.
“반장 누구지?”
어떤 여자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데요.”
“이름이 뭐야?”
“김 연주입니다.”
그것이 나와 연주의 첫 만남이었다.
첫 눈에도 단정한 이미지를 주는 아이였다.
얼굴은 너무도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연주의 몸은 이미 많이 성숙해있었다. 교복 상의가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가슴이 불룩 앞으로 나와 있었고, 그 나이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훨씬 컸다. 길게 쭉 뻗어 내려진 다리가 중학교 3학년 여자애의 다리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새 담임선생님이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선생님. 여친 있으세요?”
어떤 여자아이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잔뜩 기대감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음...없어. 여러분 모두가 이제부터 나의 여친일 거야.”
“꺅!!!!”
아이들은 내 대답에 환호성을 질렀다.
연주는 그저 미소만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연주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아이들을 잘 이끌어 갔다.
그만큼 아이들은 연주를 자신들의 리더로서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도 늘 잘했다.
“김 연주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일등을 했다. 박수 좀 쳐주지...”
아이들은 연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학생인 연주였지만 연주는 거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일진들조차 연주만큼은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나의 교직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과 작별을 하는 마지막 종례 때 아이들은 펑펑 울었다.
연주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던 연주였다.
내가 새로 일하게 될 대학 교정에도 개나리가 한창이었다.
여대생들의 옷차림은 따뜻한 계절을 맞아 한껏 가벼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행복해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연주가 있어야 할 곳은 강남의 룸살롱이 아니고 바로 이런 대학의 캠퍼스여야 하는 데 말이다. 나는 가슴 속이 또 다시 먹먹해지면서 대학에서의 첫 강의를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4년 전 여자중학교에서의 첫 수업 때처럼 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느낌이었다. 학생들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수업태도가 좋았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강의에 몰입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수업을 마치고 한 숨을 돌렸다.
나는 구내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봄볕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 의식의 흐름은 또 다시 연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나는 연주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뭐? 거길 또 가자구? 하하하. 야! 나 오늘 안 돼.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박 선배와 함께 가려던 내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혼자서 룸살롱에 간다? 나는 자발적으로 룸살롱과 같은 장소에 간 적이 없었다. 더욱이 혼자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연주를 만나러 가려면 ‘써니 힐’에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머! 혼자 오셨어요?”
마담 윤아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반겼다.
“아..네...”
“박 사장님은요?”
“아...박 선배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마담 윤아는 나를 룸으로 안내하고는 나가려고 했다.
“저기..잠깐만...”
나는 나가려는 윤아를 불러 세웠다.
“아..네...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물어볼 것이 좀 있는데 잠깐 앉으시겠어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마담 윤아는 자리에 앉으며 진실로 나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음......저기 혹시....”
“아이...그냥 쿨하게 말씀하세요. 호호호..”
“써니 힐의 아가씨들 2차 나가나요?”
“호호호호호호...그게 궁금하셨어요? 아..이제 보니 응큼하셔...리수가 그렇게 좋으세요?”
“아..아니..그런 게 아니고.....”
마담 윤아는 내 질문을 내가 써니 힐의 아가씨와 2차를 나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해석해버렸다. 나는 리수, 즉 연주가 2차까지 나가야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음...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써니 힐에는 원칙적으로 2차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써니 힐은 고품격을 지향한다고요. 2차를 포함시켜서 손님을 끄는 그런 천박한 마케팅은 써니 힐과 어울리지가 않죠.”
“아..그렇군요.”
나는 가슴 한 편으로 안도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담 윤아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뭐죠?”
“손님과 아가씨 사이에 타협이 되어서 2차를 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죠. 그것은 엄연히 사생활이니까요.”
손님과 아가씨 사이의 타협에 의한 2차.
과연 연주가 그런 타협을 할까.
“그럼, 리수 곧 대령해 드릴 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호호호호...”
마담 윤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웨이터들이 들어와서 술 세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가 들어왔다.
연주는 나를 보고 그다지 반가워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왜....오셨어요?”
눈을 내리깔고 말하는 연주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너 보러 왔어. 얘기 좀 하려구...”
“선생님, 이런 곳에 오시는 거 싫어요.”
“음...널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거야. 여자하고 술 마시러 온 게 아니다.”
연주의 얼굴이 다소 밝아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 줘 보세요.”
연주는 내 휴대폰을 받아 들고는 어떤 번호를 입력하고 저장했다.
“이건 제 번호구요. 앞으로 저 만나시려거든 여기 말고 밖에서 만나요. 여기 무지 비싸거든요.”
“하하하..그래, 나도 그게 편해.”
연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연주의 미소는 내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래두...이 술은 마셔야 하지 않아요? 안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하하..그럼 마실까?”
“네, 그래요, 선생님. 저 술 잘 마셔요.”
그 단정하던 반장 연주가 술을 잘 마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괜스레 쓸쓸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연주를 마주 대하고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연주와 술을 마시면서 옛날 일들을 회상하며 웃고 떠들기만 했다. 첫 만남에서는 그토록 경직되어 있었던 연주가 소리 내서 웃기까지 하자 나까지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미미가 들어왔다.
“꺅! 진우오빠”
미미는 내가 왔다는 소릴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고 한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일 뿐인데도 미미는 나를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아..진짜...오늘도 열심히 쓰레기 타고 있는 중!”
쓰레기를 탄다는 말은 아가씨들 사이의 은어인데, 초이스를 받지 못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연주가 설명해 주었다. 미미는 연주가 깎아놓은 과일을 연신 씹어대면서 수다를 떨었다.
“박 사장 오빠하고 진우 오빠하고는 친형제 사이나 다름없으니까 리수 너랑 나랑은 이제 동서지간이다. 알았지?”
“어...어머...언니...어떻게 그런 말을....”
동서지간이라는 말에 연주는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것은 결국 연주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버린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연주와 나의 관계? 연인 사이라고 하기에는 과거에 사제지간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크게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박 선배가 들이닥쳤다.
“나 빼고 놀려고?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지롱!!!”
“꺅! 오빠!”
“중요한 약속 있다면서요?”
“후다닥 끝내고 쏜살 같이 달려왔다. 미미, 술 다오.”
박 선배는 넥타이를 풀어 제끼면서 말했다.
“아우, 오빠, 넘 이뻐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술 여기 있사와요.”
다시 한 번 술 파티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연주도 밝게 웃으면서 그 파티에 동참했다.
연주가 노래를 부른다.
‘You light up my life라는 노래였다.
잔잔하게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사랑노래였다.
박 선배와 미미는 연주의 노래에 맞춰 서로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었다.
그런데,,,,두 사람의 몸짓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채 진한 키스를 하는 것이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의 농도 짙은 스킨쉽은 멈추지 않았다.
박 선배는 미미의 입속으로 깊숙하게 혀를 집어넣고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미미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러다가 미미는 아예 박 선배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서 서로의 성기를 마찰시키면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민망했다. 연주는 나의 제자였던 아이였고, 그 아이와 함께 그런 뜨거운 스킨쉽 장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 썩 자연스럽지가 못 했다. 연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시선을 어디다 둘지를 모르고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후와...미미, 넌 정말...느무느무 사랑스러워...”
“오빠도...난 오빠 맨날 물고 빨고 싶어..”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걸쭉했다.
파장을 하고 났을 때였다.
박 선배와 미미는 모텔에 가겠다고 하고, 연주는 다른 테이블에 지명손님을 맞으러 가야했다.
“2시간만 기다려주시면 안 돼요?”
연주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왜?”
“2시간만 있으면 끝나는 데.....아..어떻게 말해야 하지...”
“알았어. 2시간 후에 정문으로 올게...”
“정말이죠?”
연주가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처음 봤을 것이다.
나 혼자 강남의 유흥가 한복판에 남게 되었다.
유흥은 그날 밤의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내던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연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하우스에 있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찔끔찔끔 마시다가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약속한 두 시간에서 15분이 넘어서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계산을 하고 커피하우스에서 뛰어 나왔다.
커피하우스에 들어갈 때에는 써니 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다시 되돌아가려니 한참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써니 힐을 향해 그저 거리를 달려갔다.
써니 힐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정문 앞에는 연주가 서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연주를 향해 뛰어 갔다.
연주가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다.
“헉..헉...미안해...깜박 잠이 들었어...”
“아뇨. 괜찮아요, 선생님. 가요.”
연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붙잡았다. 고운 손길이었다.
“저 오늘 쉬는 날이에요.”
“잘 됐네. 나도 쉬는 날이야.”
“우리 어디 가요.”
“어디 가고 싶어?”
“아무데나, 강남만 아니면 아무데나 좋아요.”
새벽하늘이 청회색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내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연주는 내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봄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아침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닷새 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아우웅.....”
연주가 잠에서 깨어났다.
“헉....바...바다다!!! 우리 정말 바다에 온 거예요?”
“응...하하..”
연주는 냉큼 차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연주는 바다를 향해 달려가더니 밀려오는 물결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밀려오면 도망갔다가 밀려가면 쫓아가는...마치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놀았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여기 너무 좋아요. 여기서 살고 싶다.”
연주는 내 팔을 자신의 두 팔로 품고서 말했다.
그리고는 앞서서 뛰어갔다.
나는 그렇게 내 앞에 달려가는 연주를 바라보면서 그저 미소만 지었다.
연주는 멈춰 서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연주는 행복해 보였다.
“배 안 고파?”
“핫! 배고파요. 우리 뭐 먹어요.”
연주나 나, 둘 다 간밤에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뭔가 뜨거운 국물로 속을 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해장국집이 보였다.
“후우..너무 맛있어요...”
연주는 선지 해장국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안 드세요? 맛이 없어요?”
“아..아니..맛있어. 먹을 거야.”
바닷새 소리, 그리고 파도소리.....
해장국을 먹고 나서 연주와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밤새 술을 마셨던 연주는 나 보다 더 했을 것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곯아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한낮의 태양은 이미 오후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자고 있는 연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에서 빠져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았다.
바닷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연주, 그토록 단정했던 반장 연주가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미소를 파는 여자로 전락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연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모래사장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새 잠에서 깨어난 연주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순진한 얼굴, 그러나 풍만한 가슴과 길게 뻗은 다리....
연주는 내 옆에 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차에서 잤더니 찌뿌드드해요.”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뭘 그렇게 보세요? 부끄럽게....”
“아...그냥.....미안...”
스트레칭을 마친 연주는 내 옆에 내 팔을 붙잡고 앉았다.
연주의 불룩한 가슴이 내 팔에 눌려진다.
“아....좋다.”
나는 팔을 둘러서 연주를 꼭 안아주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뭐?”
“저 그 때 선생님 사랑했던 거요. 하하...”
“풋! 총각 선생님은 여학생들한테 사랑을 좀 받지...하하...”
“그 정도가 아니구..전 정말 심각했었어요.”
“하하..그래? 고백을 하지 그랬어.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
“고백 했으면요?”
연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맑고 깨끗한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고백 했다면....음.....글세”
“아이..말해 보세요.”
“연주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면...음.........당혹스러우면서 기쁘지 않았을까?”
내 답변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지금 고백하면요?”
“응? 무...무슨 말이야?”
나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연주의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연주는 대답 대신 자신의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그런 연주의 눈은 서서히 감겨져 갔다.
다가오던 연주의 얼굴은 결국 입술이 포개어졌을 때 멈추게 되었다.
연주와 나는 키스를 하게 된 것이다.
어지럽던 나의 머릿속이 단번에 각성되는 느낌이었다.
연주의 입술은 너무도 달콤하게 나의 온 몸에 있는 세포들을 깨어나게 했다.
촉촉하다. 조심스럽게 혀도 부딪치게 되었다.
연주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도 가슴속이 먹먹해지고 있었다.
“그 동안 힘들었구나...”
“어이, 거기서 뭐 해? 우리 먼저 간다.”
박 선배는 계산을 하면서 연주와 내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네.”
박 선배와 미미가 어디론가 떠나고 연주와 나는 거리에 나왔다.
몇 시간만 있으면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그러나 강남의 유흥가는 여전히 활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남자들은 지갑을 돈으로 가득 채우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여전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고, 여자들은 그 남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 자신들의 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그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배고프지 않아?”
“괜찮아요. 선생님은요?”
“음...멸치국수가 먹고 싶기는 한데...”
“그럼 저 집으로 가요.”
연주가 말한 멸치국수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 거리에서 삶을 영위하는 여러 부류의 군상(群像)들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있었다.
아가씨들, 삐끼들, 발레파킹을 하는 사람들, 술꾼들......
“후와, 맛있다. 연주도 좀 먹어.”
“아뇨, 전 됐어요.”
연주가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연주의 미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주의 미소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작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멸치국수를 먹고 근처 커피하우스에 왔을 때였다.
나는 연주가 룸살롱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연주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단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연주는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꼬여버린 것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았나 보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연주는 눈을 내리 깔고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댈 뿐이었다.
연한 화장기가 있는 연주의 얼굴은 참으로 고왔다. 단정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여전히 연주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창밖에는 어슴푸레 밝아오는 빛 속에 희미하게 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다. 연주는 말을 아꼈다. 그 모습이 더욱더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다.
서울 근교에 있는 조그마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그 대학으로 가는 길목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개나리....그 노란색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귀여운 색일 것이다.
연주와 처음 만난 것도 개나리가 활짝 피어나던 계절이었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나는 아담한 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된 교정에는 체육복을 입은 여중생들이 체육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이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 선생님이 그 반을 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중학교 3학년의 한 반을 담임하라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을 때를 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갑자기 담임선생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들어오자 아이들의 소란은 서서히 잠잠해져 갔다.
나는 교단으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섰다.
“반장 누구지?”
어떤 여자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데요.”
“이름이 뭐야?”
“김 연주입니다.”
그것이 나와 연주의 첫 만남이었다.
첫 눈에도 단정한 이미지를 주는 아이였다.
얼굴은 너무도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연주의 몸은 이미 많이 성숙해있었다. 교복 상의가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가슴이 불룩 앞으로 나와 있었고, 그 나이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훨씬 컸다. 길게 쭉 뻗어 내려진 다리가 중학교 3학년 여자애의 다리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새 담임선생님이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선생님. 여친 있으세요?”
어떤 여자아이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잔뜩 기대감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음...없어. 여러분 모두가 이제부터 나의 여친일 거야.”
“꺅!!!!”
아이들은 내 대답에 환호성을 질렀다.
연주는 그저 미소만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연주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아이들을 잘 이끌어 갔다.
그만큼 아이들은 연주를 자신들의 리더로서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도 늘 잘했다.
“김 연주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일등을 했다. 박수 좀 쳐주지...”
아이들은 연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학생인 연주였지만 연주는 거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일진들조차 연주만큼은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나의 교직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과 작별을 하는 마지막 종례 때 아이들은 펑펑 울었다.
연주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던 연주였다.
내가 새로 일하게 될 대학 교정에도 개나리가 한창이었다.
여대생들의 옷차림은 따뜻한 계절을 맞아 한껏 가벼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행복해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연주가 있어야 할 곳은 강남의 룸살롱이 아니고 바로 이런 대학의 캠퍼스여야 하는 데 말이다. 나는 가슴 속이 또 다시 먹먹해지면서 대학에서의 첫 강의를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4년 전 여자중학교에서의 첫 수업 때처럼 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느낌이었다. 학생들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수업태도가 좋았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강의에 몰입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수업을 마치고 한 숨을 돌렸다.
나는 구내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봄볕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 의식의 흐름은 또 다시 연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나는 연주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뭐? 거길 또 가자구? 하하하. 야! 나 오늘 안 돼.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박 선배와 함께 가려던 내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혼자서 룸살롱에 간다? 나는 자발적으로 룸살롱과 같은 장소에 간 적이 없었다. 더욱이 혼자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연주를 만나러 가려면 ‘써니 힐’에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머! 혼자 오셨어요?”
마담 윤아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반겼다.
“아..네...”
“박 사장님은요?”
“아...박 선배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마담 윤아는 나를 룸으로 안내하고는 나가려고 했다.
“저기..잠깐만...”
나는 나가려는 윤아를 불러 세웠다.
“아..네...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물어볼 것이 좀 있는데 잠깐 앉으시겠어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마담 윤아는 자리에 앉으며 진실로 나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음......저기 혹시....”
“아이...그냥 쿨하게 말씀하세요. 호호호..”
“써니 힐의 아가씨들 2차 나가나요?”
“호호호호호호...그게 궁금하셨어요? 아..이제 보니 응큼하셔...리수가 그렇게 좋으세요?”
“아..아니..그런 게 아니고.....”
마담 윤아는 내 질문을 내가 써니 힐의 아가씨와 2차를 나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해석해버렸다. 나는 리수, 즉 연주가 2차까지 나가야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음...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써니 힐에는 원칙적으로 2차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써니 힐은 고품격을 지향한다고요. 2차를 포함시켜서 손님을 끄는 그런 천박한 마케팅은 써니 힐과 어울리지가 않죠.”
“아..그렇군요.”
나는 가슴 한 편으로 안도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담 윤아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뭐죠?”
“손님과 아가씨 사이에 타협이 되어서 2차를 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죠. 그것은 엄연히 사생활이니까요.”
손님과 아가씨 사이의 타협에 의한 2차.
과연 연주가 그런 타협을 할까.
“그럼, 리수 곧 대령해 드릴 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호호호호...”
마담 윤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웨이터들이 들어와서 술 세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가 들어왔다.
연주는 나를 보고 그다지 반가워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왜....오셨어요?”
눈을 내리깔고 말하는 연주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너 보러 왔어. 얘기 좀 하려구...”
“선생님, 이런 곳에 오시는 거 싫어요.”
“음...널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거야. 여자하고 술 마시러 온 게 아니다.”
연주의 얼굴이 다소 밝아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 줘 보세요.”
연주는 내 휴대폰을 받아 들고는 어떤 번호를 입력하고 저장했다.
“이건 제 번호구요. 앞으로 저 만나시려거든 여기 말고 밖에서 만나요. 여기 무지 비싸거든요.”
“하하하..그래, 나도 그게 편해.”
연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연주의 미소는 내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래두...이 술은 마셔야 하지 않아요? 안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하하..그럼 마실까?”
“네, 그래요, 선생님. 저 술 잘 마셔요.”
그 단정하던 반장 연주가 술을 잘 마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괜스레 쓸쓸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연주를 마주 대하고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연주와 술을 마시면서 옛날 일들을 회상하며 웃고 떠들기만 했다. 첫 만남에서는 그토록 경직되어 있었던 연주가 소리 내서 웃기까지 하자 나까지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미미가 들어왔다.
“꺅! 진우오빠”
미미는 내가 왔다는 소릴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고 한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일 뿐인데도 미미는 나를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아..진짜...오늘도 열심히 쓰레기 타고 있는 중!”
쓰레기를 탄다는 말은 아가씨들 사이의 은어인데, 초이스를 받지 못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연주가 설명해 주었다. 미미는 연주가 깎아놓은 과일을 연신 씹어대면서 수다를 떨었다.
“박 사장 오빠하고 진우 오빠하고는 친형제 사이나 다름없으니까 리수 너랑 나랑은 이제 동서지간이다. 알았지?”
“어...어머...언니...어떻게 그런 말을....”
동서지간이라는 말에 연주는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것은 결국 연주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버린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연주와 나의 관계? 연인 사이라고 하기에는 과거에 사제지간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크게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박 선배가 들이닥쳤다.
“나 빼고 놀려고?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지롱!!!”
“꺅! 오빠!”
“중요한 약속 있다면서요?”
“후다닥 끝내고 쏜살 같이 달려왔다. 미미, 술 다오.”
박 선배는 넥타이를 풀어 제끼면서 말했다.
“아우, 오빠, 넘 이뻐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술 여기 있사와요.”
다시 한 번 술 파티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연주도 밝게 웃으면서 그 파티에 동참했다.
연주가 노래를 부른다.
‘You light up my life라는 노래였다.
잔잔하게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사랑노래였다.
박 선배와 미미는 연주의 노래에 맞춰 서로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었다.
그런데,,,,두 사람의 몸짓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채 진한 키스를 하는 것이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의 농도 짙은 스킨쉽은 멈추지 않았다.
박 선배는 미미의 입속으로 깊숙하게 혀를 집어넣고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미미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러다가 미미는 아예 박 선배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서 서로의 성기를 마찰시키면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민망했다. 연주는 나의 제자였던 아이였고, 그 아이와 함께 그런 뜨거운 스킨쉽 장면을 보고 있다는 것이 썩 자연스럽지가 못 했다. 연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시선을 어디다 둘지를 모르고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후와...미미, 넌 정말...느무느무 사랑스러워...”
“오빠도...난 오빠 맨날 물고 빨고 싶어..”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걸쭉했다.
파장을 하고 났을 때였다.
박 선배와 미미는 모텔에 가겠다고 하고, 연주는 다른 테이블에 지명손님을 맞으러 가야했다.
“2시간만 기다려주시면 안 돼요?”
연주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왜?”
“2시간만 있으면 끝나는 데.....아..어떻게 말해야 하지...”
“알았어. 2시간 후에 정문으로 올게...”
“정말이죠?”
연주가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처음 봤을 것이다.
나 혼자 강남의 유흥가 한복판에 남게 되었다.
유흥은 그날 밤의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내던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연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하우스에 있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찔끔찔끔 마시다가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약속한 두 시간에서 15분이 넘어서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계산을 하고 커피하우스에서 뛰어 나왔다.
커피하우스에 들어갈 때에는 써니 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다시 되돌아가려니 한참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써니 힐을 향해 그저 거리를 달려갔다.
써니 힐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정문 앞에는 연주가 서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연주를 향해 뛰어 갔다.
연주가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다.
“헉..헉...미안해...깜박 잠이 들었어...”
“아뇨. 괜찮아요, 선생님. 가요.”
연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붙잡았다. 고운 손길이었다.
“저 오늘 쉬는 날이에요.”
“잘 됐네. 나도 쉬는 날이야.”
“우리 어디 가요.”
“어디 가고 싶어?”
“아무데나, 강남만 아니면 아무데나 좋아요.”
새벽하늘이 청회색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연주와 나는 내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연주는 내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봄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아침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닷새 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아우웅.....”
연주가 잠에서 깨어났다.
“헉....바...바다다!!! 우리 정말 바다에 온 거예요?”
“응...하하..”
연주는 냉큼 차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연주는 바다를 향해 달려가더니 밀려오는 물결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밀려오면 도망갔다가 밀려가면 쫓아가는...마치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놀았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여기 너무 좋아요. 여기서 살고 싶다.”
연주는 내 팔을 자신의 두 팔로 품고서 말했다.
그리고는 앞서서 뛰어갔다.
나는 그렇게 내 앞에 달려가는 연주를 바라보면서 그저 미소만 지었다.
연주는 멈춰 서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연주는 행복해 보였다.
“배 안 고파?”
“핫! 배고파요. 우리 뭐 먹어요.”
연주나 나, 둘 다 간밤에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뭔가 뜨거운 국물로 속을 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해장국집이 보였다.
“후우..너무 맛있어요...”
연주는 선지 해장국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안 드세요? 맛이 없어요?”
“아..아니..맛있어. 먹을 거야.”
바닷새 소리, 그리고 파도소리.....
해장국을 먹고 나서 연주와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밤새 술을 마셨던 연주는 나 보다 더 했을 것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곯아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한낮의 태양은 이미 오후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자고 있는 연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에서 빠져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았다.
바닷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연주, 그토록 단정했던 반장 연주가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미소를 파는 여자로 전락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연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모래사장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새 잠에서 깨어난 연주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순진한 얼굴, 그러나 풍만한 가슴과 길게 뻗은 다리....
연주는 내 옆에 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차에서 잤더니 찌뿌드드해요.”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뭘 그렇게 보세요? 부끄럽게....”
“아...그냥.....미안...”
스트레칭을 마친 연주는 내 옆에 내 팔을 붙잡고 앉았다.
연주의 불룩한 가슴이 내 팔에 눌려진다.
“아....좋다.”
나는 팔을 둘러서 연주를 꼭 안아주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뭐?”
“저 그 때 선생님 사랑했던 거요. 하하...”
“풋! 총각 선생님은 여학생들한테 사랑을 좀 받지...하하...”
“그 정도가 아니구..전 정말 심각했었어요.”
“하하..그래? 고백을 하지 그랬어.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
“고백 했으면요?”
연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맑고 깨끗한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고백 했다면....음.....글세”
“아이..말해 보세요.”
“연주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면...음.........당혹스러우면서 기쁘지 않았을까?”
내 답변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지금 고백하면요?”
“응? 무...무슨 말이야?”
나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연주의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연주는 대답 대신 자신의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그런 연주의 눈은 서서히 감겨져 갔다.
다가오던 연주의 얼굴은 결국 입술이 포개어졌을 때 멈추게 되었다.
연주와 나는 키스를 하게 된 것이다.
어지럽던 나의 머릿속이 단번에 각성되는 느낌이었다.
연주의 입술은 너무도 달콤하게 나의 온 몸에 있는 세포들을 깨어나게 했다.
촉촉하다. 조심스럽게 혀도 부딪치게 되었다.
연주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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