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얻은 대가 -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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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28회 작성일 20-01-17 17:42본문
“그 여자애 때문에 담배 끊은 건 좋은데...너무 빠져드는 거 아니냐?”
형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빠져드는 거 아닌가?”
“형은 네가 상처 받을까봐 두렵다.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거든...”
“휴...상처 받을 때 받더라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요....”
나 역시 내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그렇다. 내 순수한 열정 다 바쳐 사랑하고 나서 상처 받은 들 뭐가 문제일까.
상처 받고 방황하는 것도 미호 때문이라면 달콤할 것만 같았다.
미호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연결된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아름다운 세계였다.
내 의식은 부풀어 올라 상승하는 듯 했고, 내 마음은 뜨겁기만 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했다.
담배를 끊었더니 몸 상태도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두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토록 나를 괴롭혀왔던 그 두통과 혼미함이 이제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학교에는 아름다운 뒷동산이 있었다.
낙엽이 진 뒷동산 벤치에 미호가 책을 읽으면서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미호는 책에 몰입되어 있었다.
가끔씩 새소리가 들려왔다.
책을 읽는 미호, 그 상큼하고 예쁜 여자애가 독서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미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호가 나를 발견했다.
생긋 웃는다.
“오래 기다렸어?”
“오빠 기다리면서 책 읽는 시간 좋아해요...”
어떻게 된 것일까.
미호는 날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는 모두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호는 말로서만 나를 기쁘게 해준 것이 아니었다.
침대에서의 미호...
“이렇게 해주면 오빠가 행복할까?”
미호는 그 예쁜 입속에 내 귀두를 집어넣었다.
내가 태어나서 경험했던 최고의 감각적인 자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내 귀두의 세포만을 흥분시킨 것은 아니었다.
어지럽던 내 머릿속도 청아하게 바꿔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삽입을 하고 몸을 움직이면 리듬에 맞춰서 보지를 움직거렸다.
그 야하고 뜨거운 느낌을 해맑은 얼굴을 가진 미호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은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었다.
“아...오빠...헉...헉...느낌이 너무 강해....”
미호와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동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김동수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언제 미호와 나 사이를 치고 들어올지 몰랐다.
언젠가는 올 것이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로 했다.
김동수의 출현으로 미호하고 헤어진다고 해도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혼신을 다해 미호를 사랑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은행잎이 떨어져 거리가 온통 노란 빛이던 날....
그 아름다운 거리에서 나는 미호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되어 미호가 나타났을 때 미호는 어떤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드디어 나타났는가...그 차가 김동수의 차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김동수의 스포츠카는 미호를 내려주고는 굉음을 내면서 사라져버렸다.
“봤어요?”
“응.”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왜...거절할 수가 없었어?”
“저의 아빠 생신잔치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요.”
“아빠 생신잔치에 김동수도 오는 거겠지?”
“그렇겠죠. 신경 쓰지 말아요. 나 배고파요.”
미호 아버지 생신잔치에 김동수는 참석하고 나는 참석하지 못한다.
아니 미호 아버지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호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호로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었다.
그것만이 내가 미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행동은 때때로 내 이성적인 결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날 교정에서 또 다시 김동수의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미호를 발견했다.
김동수는 그렇게 내 숨통을 조여 왔다.
“야..그만 좀 마셔라...”
성호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비켜, 새꺄...내가 김동수보다 적어도 술은 더 잘 마실 거다...크크크”
나는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부어서 마셔버렸다.
“내가 김동수보다 나은 거 있으면 말해 주라...내 절친 성호야. 뭔가 하나라도 있지 않겠냐?”
“따뜻한 마음?”
“달랑 그거 하나? 따뜻한 마음...그거뿐인 거야? 끄윽....”
술에 취하게 되자 자괴감은 내 온 의식을 점령해버렸다.
단 한 번도 내가 처한 환경이나 내 능력에 대해서 환멸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 왔고 형은 나를 사랑했다.
나는 내 자신과 형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미호에게 다가서는 김동수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선술집은 시끄러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싼 술집이었을 것이다.
싸구려 튀김에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술집이었다.
그 허름하고 지저분한 술집에 미호가 들어서자 모든 남학생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자체발광이라고 하던가.
미호에게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그 암울한 선술집을 환하게 비쳐주는 빛이 미호로부터 발광되고 있었다.
“그만 마셔요. 오빠.”
부끄러웠다. 미호에게 내가 그렇게 망가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못 가진 자의 넋두리를 들킨 것처럼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가요. 일어나요.”
미호가 내 팔을 붙잡아 일으키려고 했다.
술이 취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객기였을까. 아니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찌질한 근성이 표출된 것일까.
나는 미호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놔!”
미호는 내 고함소리에 놀란 듯 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가요...”
그리고 그 커다랗고 사랑스러운 눈에 눈물이 번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호와 나는 모텔에 갔다.
나는 미호를 거칠게 다루었다.
김동수 때문에 겪고 있던 자괴감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전희도 하지 않고 곧바로 삽입을 해버렸다.
미호는 고통스러웠을 것이 분명했지만 아랫입술을 깨물 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직 젖지도 않은 미호의 보지 속에 내 무지막지한 자지를 박아댔다.
짐승 같은 행동이었다.
그때까지 하지도 않던 뒤치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야동에서 봤던 것처럼 미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왕복 펌프질을 해댔다.
미호는 나의 그 모든 저급한 행동을 다 받아주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미호가 완벽하게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내 치졸한 욕구를 해소하고는 모텔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모텔 창으로 들이비치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났다.
미호는 가고 없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갈증을 느끼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숙취해소 음료 한 병과 메모지를 발견했다.
‘이거 마시고 힘내요. 오빠 사랑하는 미호가...’
숙취해소 음료를 여는 데 눈물이 나왔다.
지난밤의 내 행동들이 플래쉬백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착한 미호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는 벽에다 머리라도 찧고 싶었다.
“야...밥 먹어.”
형이 말했다.
나는 한 숨을 푹 내쉬고는 식탁에 앉았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집에도 안 들어오고..휴대폰도 안 받고..”
“그렇게 됐어. 미안해, 형..”
“미호 때문이냐?”
“내가.....음...미호를 만날 자격이 없는 놈인 거 같아..”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형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겨울방학을 하고 얼마 안 있어 미호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다.
모텔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미호를 한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익숙한 글씨체를 보았을 때 내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자기는 어떻게 지냈고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추신에 만날 장소와 날짜 그리고 시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담았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에 둔 거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연인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했고, 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예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미호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인 커피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미호는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역시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미호는 나를 발견하고 예쁘게 미소 지었다.
나도 살짝 미소 짓고는 자리에 앉았다.
미호를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모텔에서의 내 행동을 사과하기 위해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잘 지냈어요?”
“으..응.”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퓨........보고 싶었지.”
나는 한 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저.....미호.”
“네?”
미호가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려다 말고 대답했다.
“그날...”
“됐어요. 말 안 해도 돼요.”
미호는 내 말을 자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음.....오빠가 그렇게 거칠게 하니까 꼭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하하...내가 너무 이상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미호였다.
그날도 우리는 모텔에 갔다.
그리고 뒤치기를 했다.
아름다운 미호의 허리선과 엉덩이를 보면서 나는 미호의 몸 안에 내 자지를 밀어 넣었다.
“헉..오빠...그때처럼 해줄래요?”
“어떻게?”
“엉덩이 때리면서 ..헉..헉...”
“안 아팠어?”
“괜찮아요. 해주세요...헉..헉...”
나는 지난 번처럼 야동의 한 장면처럼 미호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펌프질을 했다.
“아..아학....학....아...아흐응....”
미호의 신음소리가 가장 격렬했던 순간이었다.
미호는 정말 그 스팽킹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던 죄의식을 없애주기 위해서 연기를 했던 것일까...
그리고는 미호와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한 겨울의 추위는 매서웠지만 내 마음 속은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역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다시 몽환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그 몽환은 그저 하얀 색으로 내 의식을 점령해버렸다.
그 혼미함 속에서 한참을 헤맨 후에 극심한 통증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는 의식이 되돌아왔다.
온 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여중생 둘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통은 왜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일까.
그리고는 미호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편지를 써도 답장은 없었다.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고 김동수라는 이름이 또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미호를 만나야 했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미호의 집 앞에서 미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름다운 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부자 동네...나는 위축되는 마음을 애써 달래면서 그 동네에 들어섰다.
미호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공원을 지나쳐 갔다. 첫 키스의 장소...
그러나 나는 그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호를 만나야 했다.
내가 상처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불확실한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명확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미호의 집 대문이 보이는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온 몸이 벌벌 떨리고, 이가 위아래로 부딪쳐 소리가 났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였다.
요란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오더니 얼마 안 있어 미호의 집 앞에는 스포츠카 한 대가 와서 섰다.
김동수의 스포츠카였다. 김동수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이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자 미호가 내렸다.
그런데 김동수가 미호를 부축하는 것이다.
미호는 어딘가 몸이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김동수가 미호를 부축하는 것인가. 그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호가 대문의 벨을 누르자 문이 자동으로 덜컹 열렸고, 미호는 김동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동수의 스포츠카도 굉음을 울리면서 사라져갔다.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미호의 집 대문 앞까지 걸어갔다.
벨을 누를까. 그리고는 미호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해버릴까.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싫었다.
며칠 후 미호에게서 편지가 왔다.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것이다.
미호가 혼수상태에 빠져? 왜?
“저...사실은 류케미아 환자예요.”
미호를 만났을 때 미호가 해준 말이다.
“류케미아? 그게 뭐야?”
“백혈병이라고들 하죠.”
“뭐? 그게 사실이야?”
“사실이에요. 죄송해요. 그 동안 말하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고 난 미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백혈병?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들었던 그 무서운 병?
그리고 그 병을 미호가 앓고 있었다고?
“그럼 김동수는?”
“그 오빠는 그저 순수하게 절 도와주신 거죠. 그 오빠 약혼녀 따로 있어요.”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김동수는 그저 순수하게 미호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동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미호가 백혈병 환자라는 것이다.
“그...그럼.....영화에서처럼 얼마 못 사는 거야?”
“왜요? 얼마 못 살면 절 떠날 건가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난 미호 안 떠나...”
내 말은 진심이었다. 미호가 일 년을 살건 한 달을 살건 나는 미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고마워요..오빠....”
미호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호의 병세는 겨울이 깊어가면서 무서운 속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새 봄이 왔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빠 가슴 속 한 구석에 내 자리 만들어 주세요. 항상 거기 있을 게요.”
미호가 죽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미호가 죽었을 때 참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호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서랍에서 미호의 편지를 꺼내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고 있었다.
그때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 못 봐주겠다. 이제 그만 좀 하자. 형 죽는 꼴 보고 싶냐?”
“내가 미호를 추억하는데 왜 형이 죽어?”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형에게 말했다.
“미호는 없어. 이제 그만 좀 해..”
형의 표정이 이상했다. 화난 것도 아니고 슬퍼하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알아. 죽었으니까 당연히 없지...”
나는 약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형이 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뭐?”
“미호는 애시 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었단 말이야...이 자식아...”
형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빠져드는 거 아닌가?”
“형은 네가 상처 받을까봐 두렵다.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거든...”
“휴...상처 받을 때 받더라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요....”
나 역시 내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그렇다. 내 순수한 열정 다 바쳐 사랑하고 나서 상처 받은 들 뭐가 문제일까.
상처 받고 방황하는 것도 미호 때문이라면 달콤할 것만 같았다.
미호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연결된 문을 열어주었다.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아름다운 세계였다.
내 의식은 부풀어 올라 상승하는 듯 했고, 내 마음은 뜨겁기만 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했다.
담배를 끊었더니 몸 상태도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두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토록 나를 괴롭혀왔던 그 두통과 혼미함이 이제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학교에는 아름다운 뒷동산이 있었다.
낙엽이 진 뒷동산 벤치에 미호가 책을 읽으면서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미호는 책에 몰입되어 있었다.
가끔씩 새소리가 들려왔다.
책을 읽는 미호, 그 상큼하고 예쁜 여자애가 독서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미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호가 나를 발견했다.
생긋 웃는다.
“오래 기다렸어?”
“오빠 기다리면서 책 읽는 시간 좋아해요...”
어떻게 된 것일까.
미호는 날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는 모두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호는 말로서만 나를 기쁘게 해준 것이 아니었다.
침대에서의 미호...
“이렇게 해주면 오빠가 행복할까?”
미호는 그 예쁜 입속에 내 귀두를 집어넣었다.
내가 태어나서 경험했던 최고의 감각적인 자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내 귀두의 세포만을 흥분시킨 것은 아니었다.
어지럽던 내 머릿속도 청아하게 바꿔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삽입을 하고 몸을 움직이면 리듬에 맞춰서 보지를 움직거렸다.
그 야하고 뜨거운 느낌을 해맑은 얼굴을 가진 미호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은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었다.
“아...오빠...헉...헉...느낌이 너무 강해....”
미호와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동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김동수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언제 미호와 나 사이를 치고 들어올지 몰랐다.
언젠가는 올 것이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로 했다.
김동수의 출현으로 미호하고 헤어진다고 해도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혼신을 다해 미호를 사랑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은행잎이 떨어져 거리가 온통 노란 빛이던 날....
그 아름다운 거리에서 나는 미호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되어 미호가 나타났을 때 미호는 어떤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드디어 나타났는가...그 차가 김동수의 차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김동수의 스포츠카는 미호를 내려주고는 굉음을 내면서 사라져버렸다.
“봤어요?”
“응.”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왜...거절할 수가 없었어?”
“저의 아빠 생신잔치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요.”
“아빠 생신잔치에 김동수도 오는 거겠지?”
“그렇겠죠. 신경 쓰지 말아요. 나 배고파요.”
미호 아버지 생신잔치에 김동수는 참석하고 나는 참석하지 못한다.
아니 미호 아버지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호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호로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었다.
그것만이 내가 미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행동은 때때로 내 이성적인 결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날 교정에서 또 다시 김동수의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미호를 발견했다.
김동수는 그렇게 내 숨통을 조여 왔다.
“야..그만 좀 마셔라...”
성호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비켜, 새꺄...내가 김동수보다 적어도 술은 더 잘 마실 거다...크크크”
나는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부어서 마셔버렸다.
“내가 김동수보다 나은 거 있으면 말해 주라...내 절친 성호야. 뭔가 하나라도 있지 않겠냐?”
“따뜻한 마음?”
“달랑 그거 하나? 따뜻한 마음...그거뿐인 거야? 끄윽....”
술에 취하게 되자 자괴감은 내 온 의식을 점령해버렸다.
단 한 번도 내가 처한 환경이나 내 능력에 대해서 환멸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 왔고 형은 나를 사랑했다.
나는 내 자신과 형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미호에게 다가서는 김동수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선술집은 시끄러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싼 술집이었을 것이다.
싸구려 튀김에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술집이었다.
그 허름하고 지저분한 술집에 미호가 들어서자 모든 남학생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자체발광이라고 하던가.
미호에게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그 암울한 선술집을 환하게 비쳐주는 빛이 미호로부터 발광되고 있었다.
“그만 마셔요. 오빠.”
부끄러웠다. 미호에게 내가 그렇게 망가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못 가진 자의 넋두리를 들킨 것처럼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가요. 일어나요.”
미호가 내 팔을 붙잡아 일으키려고 했다.
술이 취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객기였을까. 아니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찌질한 근성이 표출된 것일까.
나는 미호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놔!”
미호는 내 고함소리에 놀란 듯 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가요...”
그리고 그 커다랗고 사랑스러운 눈에 눈물이 번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호와 나는 모텔에 갔다.
나는 미호를 거칠게 다루었다.
김동수 때문에 겪고 있던 자괴감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전희도 하지 않고 곧바로 삽입을 해버렸다.
미호는 고통스러웠을 것이 분명했지만 아랫입술을 깨물 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직 젖지도 않은 미호의 보지 속에 내 무지막지한 자지를 박아댔다.
짐승 같은 행동이었다.
그때까지 하지도 않던 뒤치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야동에서 봤던 것처럼 미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왕복 펌프질을 해댔다.
미호는 나의 그 모든 저급한 행동을 다 받아주었다.
그렇게 하면 마치 미호가 완벽하게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내 치졸한 욕구를 해소하고는 모텔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모텔 창으로 들이비치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났다.
미호는 가고 없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갈증을 느끼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숙취해소 음료 한 병과 메모지를 발견했다.
‘이거 마시고 힘내요. 오빠 사랑하는 미호가...’
숙취해소 음료를 여는 데 눈물이 나왔다.
지난밤의 내 행동들이 플래쉬백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착한 미호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는 벽에다 머리라도 찧고 싶었다.
“야...밥 먹어.”
형이 말했다.
나는 한 숨을 푹 내쉬고는 식탁에 앉았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집에도 안 들어오고..휴대폰도 안 받고..”
“그렇게 됐어. 미안해, 형..”
“미호 때문이냐?”
“내가.....음...미호를 만날 자격이 없는 놈인 거 같아..”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형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겨울방학을 하고 얼마 안 있어 미호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다.
모텔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미호를 한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익숙한 글씨체를 보았을 때 내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자기는 어떻게 지냈고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추신에 만날 장소와 날짜 그리고 시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담았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에 둔 거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연인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했고, 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예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미호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인 커피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미호는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역시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미호는 나를 발견하고 예쁘게 미소 지었다.
나도 살짝 미소 짓고는 자리에 앉았다.
미호를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모텔에서의 내 행동을 사과하기 위해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잘 지냈어요?”
“으..응.”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퓨........보고 싶었지.”
나는 한 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저.....미호.”
“네?”
미호가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려다 말고 대답했다.
“그날...”
“됐어요. 말 안 해도 돼요.”
미호는 내 말을 자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음.....오빠가 그렇게 거칠게 하니까 꼭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하하...내가 너무 이상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미호였다.
그날도 우리는 모텔에 갔다.
그리고 뒤치기를 했다.
아름다운 미호의 허리선과 엉덩이를 보면서 나는 미호의 몸 안에 내 자지를 밀어 넣었다.
“헉..오빠...그때처럼 해줄래요?”
“어떻게?”
“엉덩이 때리면서 ..헉..헉...”
“안 아팠어?”
“괜찮아요. 해주세요...헉..헉...”
나는 지난 번처럼 야동의 한 장면처럼 미호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펌프질을 했다.
“아..아학....학....아...아흐응....”
미호의 신음소리가 가장 격렬했던 순간이었다.
미호는 정말 그 스팽킹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던 죄의식을 없애주기 위해서 연기를 했던 것일까...
그리고는 미호와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한 겨울의 추위는 매서웠지만 내 마음 속은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역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다시 몽환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그 몽환은 그저 하얀 색으로 내 의식을 점령해버렸다.
그 혼미함 속에서 한참을 헤맨 후에 극심한 통증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는 의식이 되돌아왔다.
온 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여중생 둘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통은 왜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일까.
그리고는 미호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편지를 써도 답장은 없었다.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고 김동수라는 이름이 또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미호를 만나야 했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미호의 집 앞에서 미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름다운 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부자 동네...나는 위축되는 마음을 애써 달래면서 그 동네에 들어섰다.
미호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공원을 지나쳐 갔다. 첫 키스의 장소...
그러나 나는 그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호를 만나야 했다.
내가 상처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불확실한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명확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미호의 집 대문이 보이는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온 몸이 벌벌 떨리고, 이가 위아래로 부딪쳐 소리가 났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였다.
요란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오더니 얼마 안 있어 미호의 집 앞에는 스포츠카 한 대가 와서 섰다.
김동수의 스포츠카였다. 김동수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이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자 미호가 내렸다.
그런데 김동수가 미호를 부축하는 것이다.
미호는 어딘가 몸이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김동수가 미호를 부축하는 것인가. 그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호가 대문의 벨을 누르자 문이 자동으로 덜컹 열렸고, 미호는 김동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동수의 스포츠카도 굉음을 울리면서 사라져갔다.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미호의 집 대문 앞까지 걸어갔다.
벨을 누를까. 그리고는 미호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해버릴까.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싫었다.
며칠 후 미호에게서 편지가 왔다.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것이다.
미호가 혼수상태에 빠져? 왜?
“저...사실은 류케미아 환자예요.”
미호를 만났을 때 미호가 해준 말이다.
“류케미아? 그게 뭐야?”
“백혈병이라고들 하죠.”
“뭐? 그게 사실이야?”
“사실이에요. 죄송해요. 그 동안 말하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고 난 미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백혈병?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들었던 그 무서운 병?
그리고 그 병을 미호가 앓고 있었다고?
“그럼 김동수는?”
“그 오빠는 그저 순수하게 절 도와주신 거죠. 그 오빠 약혼녀 따로 있어요.”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김동수는 그저 순수하게 미호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동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미호가 백혈병 환자라는 것이다.
“그...그럼.....영화에서처럼 얼마 못 사는 거야?”
“왜요? 얼마 못 살면 절 떠날 건가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난 미호 안 떠나...”
내 말은 진심이었다. 미호가 일 년을 살건 한 달을 살건 나는 미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고마워요..오빠....”
미호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호의 병세는 겨울이 깊어가면서 무서운 속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새 봄이 왔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빠 가슴 속 한 구석에 내 자리 만들어 주세요. 항상 거기 있을 게요.”
미호가 죽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미호가 죽었을 때 참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호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서랍에서 미호의 편지를 꺼내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고 있었다.
그때 형이 방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 못 봐주겠다. 이제 그만 좀 하자. 형 죽는 꼴 보고 싶냐?”
“내가 미호를 추억하는데 왜 형이 죽어?”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형에게 말했다.
“미호는 없어. 이제 그만 좀 해..”
형의 표정이 이상했다. 화난 것도 아니고 슬퍼하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알아. 죽었으니까 당연히 없지...”
나는 약간 화가 나는 것 같았다.
형이 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뭐?”
“미호는 애시 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었단 말이야...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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