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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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277회 작성일 20-01-17 20:46본문
나쁜 친구들
1998년 겨울은 유난히도 따뜻 했다.
미나가 살고 있는 부산 지방에는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따뜻 했고 눈 구경조차도 못할 지경이었다.
열 아홉살의 성미나는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어제부터 곧 떠날 유학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어디서 어떻게 살면서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결정한 것이 없었지만 미나의 절친한 친구인 현경이와 같이 자취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엊그제 현경이의 어머니가 찾아와 미나의 부모님에게 그 문제로 상의를 했고 미나의 아버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을 한다고 했었다.
미나의 집은 제법 부유했고 서울에 미나의 삼촌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과 말을 해 본 뒤 결정을 내리려 했다.
챙겨야 할 짐 같은 것은 별로 없었지만 옷가지와 간단한 생활도구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현경이가 찾아 왔다.
미나는 거실로 나와 현경이를 맞이 했는데 미나의 아버지는 둘에게 말을 꺼냈다.
"미나하고 현경이는 내일 모레쯤 서울로 올라 갈 준비 해놓고 있거라."
"아빠. 결정하신 거에요?"
"응. 그래. 네 작은 아버지에게 말을 했더니 집 넓은데 뭣하러 다른데서 지내게 하느냐면서 너랑 현경이랑 같이 오라더구나."
현경이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말 했다.
"예? 저까지요? 저는 남인데...."
"걱정하지 말아라. 네 아버지랑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넌 아무 걱정없이 잘 지내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래도...."
"허허,걱정 말라니까 그러는구나. 그리고 넌 완전히 남도 아니고,예전에 네 할아버지가 우리식구들에게 얼마나 온정을 베푸셨는데. 사실 그때 아무것도 없이 빚에 쪼들려 도망다닐때 네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땅에 발 붙이고 살기도 힘들었을게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던 친구에게 미나가 미소를 띄우며 말을 건낸다.
"현경아. 걱정하지 말구 우리 가서 열심히 공부하자. 나도 니네 할아버지에 대해서 울아빠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구. 절대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어. 그리고 우리 삼촌도 즐거운 마음으로 널 반기실 거야."
"그래. 네가 정 마음에 걸리고 빚지는 기분이 들면 나중에라도 성공해서 갚으면 되는거고. 그렇게 마음 먹을 필요도 없다니까. 지금도 네 할아버지 생각만 하면 괜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가슴이 찡해 진단다."
그렇게 둘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미 짐들은 소화물로 보낸 뒤였다.
비행기 안에서 미나와 현경의 표정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미나는 얼굴이 발그레 해질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었지만 현경은 좀처럼 어진 얼굴이 펴질줄 몰랐다.
미나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현경에게 말을 건낸다.
"현경아. 어디 아픈데라도 있는 거니?"
엷은 미소와 함께 말을 꺼내는 현경.
"아니,기분이 그냥 그래."
"에구,누가 신중한 아이 아니랄까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우리 삼촌이 오죽 잘해 줄까봐 걱정이야."
"넌 삼촌이니까 그런거지. 난 남이쟎아." "괜챦아. 그리고 울아빠 말대로 나중에 성공해서 갚으면 되쟎아. 그냥 편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 봐. 좋은 마음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무슨 근심 걱정이 그렇게 많냐?"
둘의 대화가 제법 무르익을 무렵 어느새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해 있었고 탑승객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둘을 태운 택시는 공항을 떠나 강남의 고급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정원이 커다랗고 담장이 높은 어느 집앞에 멈춰 섰다.
여전히 새초롬한 얼굴로 서 있는 미나를 옆에 두고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마침 정원에 나와 있던 미나의 삼촌이 직접 문을 열어 준다.
안경을 썼고 마른 체구에 머리칼이 별로 없는 반대머리인 미나의 삼촌이 환한 얼굴로 미나의 등을 두드려 주며 반긴다.
"어서 오너라. 그렇쟎아도 지금쯤 도착할 것 같아서 막 나와 봤는데 딱 맞춰 왔구나."
"삼촌. 그동안 안녕 하셨어요? 작은 엄마도 건강하시죠?"
"그럼 그럼. 네 작은 엄마야 너무 건강이 지나쳐서 탈인걸."
고개를 숙이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문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있는 현경이를 본 삼촌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현경을 맞이 한다.
현경의 손을 반갑게 잡으며.
"현경아. 어서 오너라. 네가 미나랑 같이 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말을 들어 보니 네가 우리지에 폐를 끼칠것 같아 걱정을 많이 한다던데 절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그냥 네 집에서처럼 편하게 지내면 되는 거야.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예."
미나와 현경은 삼촌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삼촌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 갔을때 이미 모든 것이 준비 되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안 모습을 본 미나는 환한 얼굴로 삼촌에 말을 건냈다.
"삼촌. 이 정도까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이정도는 해줘야 삼촌 자격이 있지 않겠니?" 부모님 걱정 안하시게 둘이 모두 공부 열심히 하고 말썽만 안 부린다면야 이정도야 얼마든지 더 해줄 수 있지."
미나와 현경이가 앞으로 몇년간 살아갈 방에는 이미 고급 화장대와 침대,옷장등 모든 것이 준비 되어 있었다.
삼촌은 자꾸만 경직된 표정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현경이의 등을 어루 만져주며 안심할 것을 말하고 곧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삼촌이 내려가자 대여섯 먹은 어린 아이처럼 침대에 벌렁 누워서 멀뚱이 서있는 현경을 바라 보며 환하게 웃는다.
"하하하하.... 현경아. 네 얼굴이 어떤지 아니? 배고파서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돌을 씹고서 찡그리는 표정 같아."
"내가 너무 신세를 지는것 같아. 아무래도 여기서 못 살겠어. 우리 아버지하고 상의해서 옮겨야 할까봐."
"에구,에구. 네가 자꾸 그러면 우리 삼촌까지 섭섭해 하시고 난처해 하실거야. 그냥 여기서 살자. 나도 너랑 같이 살았음 좋겠어. 그리고 넌 아직 많이 안 겪어 봐서 잘 모르겠지만 사촌동생들이 얼마나 재미 있는줄 아니?"
미나의 삼촌은 두명의 딸과 두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미나보다 세살이 위인 아들과 미나와 동갑인 대학1년생인 딸과 한살아래 아들 그보다 두살 아래 동생이 있었다.
미나와 사촌형제들은 매우 친했는데 방학때마다 부산으로 놀러와 놀고 가기도 하고 가끔 미나도 서울에 올라와 같이 지내기도 했었다.
사촌오빠인 영철은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음악을 한답시고 오래전부터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나가 있는 날이 많을 정도로 말썽을 부려서 오래전부터 집안에선 관심 외의 대상이었다.
가끔 돈이나 뜯으러 집에 들어오는 날 빼곤 거의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 였는데 이제 가족들도 지쳤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집안의 장남은 공부와 거리가 멀었지만 둘째 아들은 성적이 좋아서 항상 아버지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언젠가 미나는 농담으로 사촌 남동생 영우에게,"네가 사촌동생만 아니라면 나이가 적지만 사귀어 보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185센티의 키에 하얗고 깨끗한 마스크,굵고 매력적인 음성과 말투,남을 배려할줄 아는 마음씨와 유머감각등이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매력대상이었다.
미나는 새로운 환경에 들떠서 한참을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미나와 현경이가 있는 방문이 열렸고 교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서 미나가 앉아 있는 침대 쪽으로 다가 왔다.
"언니,기분이 좋은가 보네.
"응. 기분이 날아 갈 것 같아.
둘의 조우에 눈길도 주지 않고 책상 앞에 가만이 앉아 있는 현경을 알아낸 송이가 껴안으며 말을 건낸다.
"언니,언닌 왜 내가 왔는데 아는 척도 안해 줘. 실망이다.
그제서야 송이가 왔다는 것은 안 현경은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낸다.
"미안해.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었어. 그동안 몰라 보게 변했구나."
"뭘. 난 그대로지. 언니는 곧 시집가도 되겠다. 한참 물이 올랐어. 얼굴도 더 예뻐지고 전에 볼때보다 훨씬 여성스러워졌구."
그제서야 현경은 약간 얼굴이 풀렸다.
"말이라도 고맙다."
한참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때 키가 커다랗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긴머리를 묶은 청년이 들어 왔다.
"오빠,또 돈 뜯으러 왔구나?"
"코딱지만 한게 아버지뻘 되는 오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어떻게 오빠가 아버지 뻘이냐?"
"저건 산수도 모르나봐. 내가 열다섯 살때 결혼해서 애를 낳았으면 너만한 애가 충분히 생길 수도 있지."
영철과 송이는 웃으면서 농담을 받고 건냈다.
현경과 미나는 일어서서 영철에게 인사를 건냈다.
"영철오빠.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나야 뭐 늘 잘 있지. 집에 왔다가 미나가 왔다길래 얼굴이나 보려고 들어 왔어. 야아. 미나랑 현경이랑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 너무 예뻐 졌는걸. 난 그럼 아름다운 미인도 구경했으니까 이만 가련다."
"오빠,벌써 가시게요?"
방에서 영철과 송이가 빠져 나가고 밤새 둘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미나야. 계속 잘거니?"
"아니,일어 나야지."
점심때 쯤 실내를 나무로 장식한 한 카페에 미나와 현경,송이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송이야. 송은이는 교회 간다고 나가던데 넌 왜 교회에 안 다녀?"
"언니가 다닌다고 나까지 다닐 필요는 없쟎아. 그리고 언니가 교회에 갔는지 딴데로 샜는지 어떻게 알어?"
"딴데?"
"나도 잘은 모르는데 요새 남자친구랑 잘 돼 가나봐."
"그렇구나."
"언닌 남자친구 없어?"
미나가 피식 웃으며 대답 한다.
"나야 뭐 그런 쪽에 별로 관심도 없고 워낙 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니까 말야."
"킥킥. 거짓말."
"글쎄,나도 잘 모르겠어. 전에 날 따라 다니던 남자가 있었고 나도 싫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눈앞에 안 나타나더라."
"쯧쯧쯧. 맘에 들면 당장 붙들어야지. 요샌 한나무를 열번씩이나 찍는 바보는 없어. 두세번 찍어 보다가 안 넘어가면 다른 나무로 옮겨 가버리지."
"그런가. 언젠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겠지 뭐."
한참 깔깔 대며 대화를 나누는데 어린 남자가 다가와서 송이에게 말을 건낸다.
"여보,나야. 정확히 약속시간 1분도 안 넘기도 도착하느라 집에서부터 죽어라 뛰어 왔어."
"남편이 그정도 시간도 못 지키면 말이 안되지."
미나와 현경은 그 익숙하지 못하고 처음 보는 풍경을 약간 넋이 나간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송이가 얼른 일어나 그 어린 남자의 손을 낚궈 채고는, "언니들. 이제 약속시간 됐지. 난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어딜 가봐야 해요. 언니들도 만나기로 한 친구들 잘 만나요." 송이와 그 남자아이는 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처럼 곧장 그곳을 빠져 나갔다.
둘이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나가 먼저 말을 꺼낸다.
"어이 없네. 언젠가 어린애들끼리 부부처럼 말하고 논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보니까 황당하네."
그러게. 미나야. 잠깐 있어봐. 전화 좀 하고 올께."
응."
미나는 현경이가 전화를 하러 간 사이 카페의 실내 장식들을 바라보며 쥬스를 홀짝 거리고 있었다.
한 오분쯤 지났을까. 도로변에 있는 전화기를 내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현경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미나는 친구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도 누가 물어봐도 대답만 하고 찡그린 표정으로 내내 앉아 있던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들어 오는 것을 보고 무언가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 했다.
"무슨 좋은 일이나도 생긴거니? 웃으니까 너무 좋다."
"응. 방금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빠 사업이 잘 풀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래."
"그래. 야,다행이다. 그동안 네 아빠 사업이 잘 안풀려서 니네 집이 온통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이제 너도 중학교때 잃었던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겠구나." "응. 너무 기분이 좋아. 날아 갈 것 같아. 그동안 우리 아빠 공장에 쌓여 있던 물건들이 다 팔려 나가고 주문이 계속 쏟아져서 계속 바쁠 것 같다고 말씀 하셨어."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직장에 취업을 해서 지낸다는 친구를 만나 낮동안 놀이공원에서 놀다가 오후 다섯시쯤 놀이공원을 빠져 나왔다.
거리를 거니는 세명의 여자는 얼굴에 웃으이 가득했다.
"희정아. 오늘 기분도 좋은데 좀 더 놀다 들어 가자. 아까 삼촌집에 조금 늦는다고 전화도 했구. 어디 신나는데 없을까?"
"놀데야 많지. 우리 기분도 좋은데 어디 가서 몸 좀 풀자. 신나게 마시고 신나게 흔드는 거야. 너희들은 그동안 공부 하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 했으니까 이 기회에 몸 좀 푸는 거야."
좋아. 가자."
셋은 의견을 통일하고 희정을 따라 나선다.
셋은 놀던 곳에서 희정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세명의 남자와 만남을 가졌고 놀던 곳을 같이 빠져 나왔다.
미나와 현경은 머뭇 거렸지만 희정은 세명의 연락처를 받아 내고는 그 곳에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 왔을때 집에는 송이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언니들,벌써 들어 왔어. 아직 열시 밖에 안 됐는데."
"놀만큼 놀았으니까."
그때 송이의 방에서 아까 낮에 보았던 어린 남자가 나왔다.
송이가 활짝 웃으며 남편이라 부르는 어린 남자에게,
"소원 풀어 줬으니까 됐지. 그럼 며칠 있다 학교에서 보자."
"여보. 너무 고마워. 그동안 너무 외로워서 혼났어. 난 당신만을 위한 일편 단심 민들레야."
미나는 둘의 대화가 재미 있는지 웃으며 둘을 쳐다 본다.
곧 인사를 마친 그 남자 아이는 의기 양양하게 집을 빠져 나갔다.
"너희들 진짜 부부 같어."
"고마워. 진짜 부부야. 우린.
미나의 방에서 셋은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근데 왜 집이 썰렁해.
"가정부 아줌마는 집에 일이 생겨서 몇일 후에 온댔고 아빠는 출장 가셔서 일주일 뒤에나 오실거고 엄마는 아프리카 구호 물품 전하러 아프리카 가셨고 큰 오빠는 남의 집 자식이고 영우오빠는 미국에 있고 언니는 집에 엄마 아빠 없으니까 신났지 뭐. 오늘 안 들어 올지도 몰라."
"그래도 여잔데 아무리 집에 부모님이 없다고 안 들어 오면 어떡해."
"울 언닌 공부도 좀 하쟎우. 언니들이 다닐 대학보다는 좀 쳐져도 알아주는 대학에 들어 가니까 가끔씩 핑계대고 자고 와도 엄마 아빠는 별 의심도 안해."
"며칠 있으면 개학 하겠구나."
"응. 근데 너무 따분하다. 여자 세명이서 뭘 하고 노남. 언니들 여기 있어봐. 먹을 것좀 더 챙겨 올께."
아래층으로 내려간 송이는 몇 병의 맥주와 안주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아니 그게 뭐야."
"그냥 심심하니까 한잔 하자구."
"너,술도 마시니?"
"고 일이나 됐는데 술도 못 마실까봐."
샤워하고 나오던 현경이가 그 장면을 보더니 멈짓 하다가 말을 꺼낸다.
"야,송이는 어른들 하는건 다 하는구나. 그런데 어쩌지. 우린 아까 술을 마시고 들어 왔는데."
"에이. 왜 들 그러실까? 아까 미나언니 말 들어 보니까 좋은 소식도 있다면서. 내일 특별히 할일도 없을텐데 좀 더 취하면 어때."
"그래. 현경아. 이 사실을 삼촌이 알면 혼 날지도 모르지만 너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도 잘 안 올거야. 송이가 너무 심심해서 그런가 본데 기분 좀 맞춰 주자."
술자리의 술이 줄어드는 만큼 대화도 점점 깊어 갔다.
"우리 따분한 이야기 말고 좀 더 재미난 이야기를 해볼까?"
"재미난 이야기 있음 해봐."
"뭐 그냥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아참,그런데 아까 이쁘장하게 생긴 애랑 뭐하고 놀은 거니?" "응. 뭐 그냥...." 말 끝을 얼버무리던 송이가 둘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 보다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언니들. 언니들도 다 큰 어른이니까 내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 해줄까? 근데 꼭 비밀은 지켜준다고 약속을 해 줘야 해."
동생의 말에 피식 웃으며,"무슨 이야긴데 그래."
"에이. 말 안할래. 그렇게 장난치듯 대답하면 어떡해."
"말 한대 놓고 안하면 더 궁금해 지쟎아. 알았어. 비밀은 지켜 줄테니까 한번 말해 보렴." "나,아까 그애하고 진짜 부부 사이야. 법적으로만 아닐 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아까도 나랑 놀다 갔는걸."
"노는게 부부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참네. 나랑 살을 섞었다니까."
미나와 현경이는 송이의 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너,설마."
"뭘 놀라고 그래. 요새 그런 애들 많은데. 어른들은 원조교제다 뭐다 돈으로 어린 여자들 데리고 놀면서 어린애들끼리 놀면 안되나 뭐."
현경이가 너무 놀랍다는 듯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래도 그렇지. 아직 어린 학생인데.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어떻게 들었을까?"
"나두 그걸 밝히는건 아니지만 해보니까 별로 나쁘지도 않던걸."
미나는 조금 귀가 솔깃해 져서 송이의 입을 주시했다.
"몇 번이나 해봤어?"
"호호호. 언니들 진짜 순진한 거야. 아니면 순진한척 하는 거야. 설마 언니 아니에 안 해봤다면 거짓말일테구."
"아냐,난 진짜 안해 봤어. 아직까지 에로비디오도 한번 못 봤어. 진짜루."
"설마 언니들이 나한테까지 거짓말은 안할테구 믿도록 하지 뭐. 근데 내 친구들은 거의 다 경험이 있어. 낮에 학교에서 자고 저녁때쯤 공부하러 도서관 간다고 나와서 원조 뛰는 애들도 여럿 있구. 아예 학교 안나오고 집 나가서 그쪽으로 빠진 애들도 있는걸."
"햐,정말 요지경 속이구나. 뉴스에서나 듣던 이야기가 실제로 그렇게 많이 벌어 지고 있다니."
현경이도 관심이 간다는듯 대화에 동참하려 했다.
"어디 그 뿐인감. 학교에서 섹스하는 애도 있는데."
"에이,설마."
미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으로 사촌동생을 바라봤다./
"네가 봤어?"/
"아니. 난 못 봤지만 체육선생한테 걸렸어. 원래 알아주는 애들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학교에서 퇴학시키려다가 말았지."/
"그럼 학교는 계속 다니는 거야?"/
"응. 돈으로 어떻게 했겠지. 퇴학은 안 당하고 그냥 다른 학교로 전학 갔어."/
"햐-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넌 그 애하고 몇 번이나 해 본거니?"/
"난,그렇게 많이 하진 않구. 열 몇번쯤 될거야."/
"기분이 어때?"/
"솔직히 말해서 잘은 모르겠어. 뭐 그리 대단히 재미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래. 짜식이 좋아하니까 해주는 건데 그렇다고 싫진 않드라. 아주 근사한 남자랑 하면 재미있을지도 몰라."/
"아깐 기분이 어땠어?"/
"일주일만에 기회를 줬더니 너무 무식하게 달려 들어서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미나와 현경은 송이의 말에 빠져 들었다가 현경이가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피곤하다면서 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미나와 현경이가 서울에 온지도 열흘이 다 되어간다./
이제 오늘은 정식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러 다니게 된다./
미나와 현경이는 처음 등교하는 날이니만큼 일찍 학교에 가기로 하고 학교에 가기위해 지하철에 오른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으나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한 십분쯤 지났을까 중간에 오던 지하철이 고장나서 멈춰서는 바람에 소통이 다소 늦어질 것이라는 직원의 멘트가 나오더니 다시 십분이나 흐른 시각에 지하철이 온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평소,같은 시각엔 항상 지하철이 한가했지만 지하철이 고장 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지하철이 오자마자 사람들은 길게 늘어서 있던 대열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서로 먼저 타겠다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겨우 올라탄 지하철에선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비명소리도 들려오고 한참 어수선해져 버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서 겨우 복도 중간쯤에 자리를 고정할수 있었다./ 손잡이도 잡지 못하고 현경이와 나란이 서있던 미나는 가슴이 사람들에 의해 눌려지자 두손으로 가슴쪽으로 손을 올려 사마귀처럼 웅크려서 방어를 했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한정거장을 지나칠무렵 미나의 엉덩이에 이상한 감촉이 전해왔다./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손은 떨어질 줄 몰랐고 약간씩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때는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서 등교를 했으므로 등교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본적이 없었고 간혹 버스나 지하철을 타더라도 그리 혼잡하지 않아서 아무런 일이 없었었다./
그런데 막상 치한의 손이 다가오자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손을 피해 움직여서 다른 곳으로 가려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좀처럼 제자리를 벗어나질 못했다./
치한의 손은 점점 활발해지더니 용기를 얻었는지 미나의 엉덩이 아래쪽으로 계속 파고 들어 왔다./ 화가 난 미나는 고개를 돌려 그사람을 째려 봤는데 교복을 입은 짧은 머리를 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그 중학생은 미나가 째려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서 미나의 엉덩이를 열심히 더듬고 있다가 미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금새 손을 뗐다./
미나는 옆에 서있던 현경에게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짓과 표정으로 이야기 했다./
두 정거장이 지날때까지도 좀처럼 사람은 줄지 않았다./
그 중학생도 미나의 옆에 서 있기는 했지만 미나의 엉덩이를 더이상 더듬지는 않았다./
그 중학생의 손은 다시 현경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경은 미나와는 달랐다./
화가 난 얼굴로 그 중학생의 얼굴을 노려 보더니 커다란 소리를 내 질렀다./
"이봐요! 그 손좀 치워 주시겠어요!"
미나도 깜짝 놀라 중학생에게 시선을 줬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어린 학생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힘겹게 밀쳐내고 출입구 쪽으로 나가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듯 했다./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처음으로 황당한 일까지 당한 미나와 현경이는 목적지에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가 흩어진 옷 매무새와 머리를 가다듬고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학교에 도착했을때는 집에서 일찍 나와서 강의실에는 서너명만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한참이 지나서 강의가 시작되었다. 수업을 담당하게 된 교수는 여성이었는데 텔레비변에서 몇 번 본적이 있었던 마일광이라는 유명한 교수였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을때 집에는 송미만 정원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문으로 들어서자 마자 송미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미나야. 안녕. 현경이도 오랫 만이야."/
"응. 반가워. 그동안 몰라보게 예뻐 졌구나."/
현경이가 말했다./
"야-- 사년전에 키 조그맣고 안경쓰고 비쩍 마른 애가 이렇게 변하다니.
너무 예뻐져서 얼굴도 몰라 보겠어."/
"돈 좀 들였지 뭐."/
"돈?"/
"여기 저기 뜯어 고치고 눈도 수술하고. 요즘 세상에 성형 안하는 애들이 어딨어. 다들 시대에 맞춰 사는거지."/
"근데 오늘도 어른들은 안 오시는 건가?"/
"멀리 갔는데 금방 오겠어. 한 일주일쯤 있다 오겠지."/
"가정부는?"/
"가정부도 한 일주일쯤 후에 오려나봐."/
"쌀쌀한 날씨에 방에 안 있고 왜 나와 있어?"/
"그냥.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어떤 손님?"/
송미는 새끼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애인이 오기로 한 모양이구나."/
"응. 너희들은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오기로 했으니까. 오면 소개시켜 줄께."/
현경이와 미나는 곧 안으로 들어갔다./
미나가 옷을 갈아 입고 텔레비젼을 보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송미가 남자 한명을 데리고 들어 왔다.//
밝은 웃음을 띈 송미가 그 남자를 데리고 와서 미나가 있는 소파에 앉히더니 말을 꺼냈다./
"송미야. 인사해. 내 애인이야. 얘는 송미라고 동갑인 내 사촌이고 이 근사한 남정네는 심은철이라고 해."/
미나는 엉거주춤 반쯤 일어서서 인사를 했고 그 사내도 약간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전 성미나라고 해요.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왔어요."/
예. 안녕하세요. 저는 심은철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식적인 인삿말이 오가고 미나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텔리비젼 화면만 주시하고 있었다./
"현경이는 어디 간거야? 애인 소개시켜 준다고 했는데 금새 어딜 간 거야."/
"응. 아직 샤워 중인가 봐. 곧 내려 온다고 했는데."/
그때 현경이가 윗층에서 간편한 옷차림으로 물기에 적신 풋풋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내려와 미나의 옆에 앉는다./
"현경아. 내가 소개시켜 준다고 했던 내 애인이야. 인사해."/
둘의 인사가 오갔고 송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랠래. 너희 둘 은철씨한테 뿅 갔구나. 넘볼걸 넘봐라. 다른건 줄수 있어도 은철씨는 안돼."//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 한시간쯤 흐른후 미나와 현경이는 송미하고 애인이라는 처음보는 남자와 헤어져 미나의 방으로 올라와서 침대에 누웠다./
"현경아. 이제 뭐하지. 너무 시간이 남아 도니까 그것도 문제네."/
"난 책이나 좀 보려구."//
미나와 현경은 같은 이층에 있는 서고에서 책을 얼마든지 읽어도 좋다는 말을 미나의 삼촌에게서 들었다./
"미나야. 우리 같이 서고에 있는 책들 구경가지 않을래?"/
"좋아. 가보자."//
미나와 현경이가 넓은 서고에 들어 섰을때 수많은 책들에 놀랐다./
"이야- 마치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구나."/
"그러게 말야. 이 많은 책을 다 읽으려면 평생 읽어도 못 읽겠다."/
현경은 안쪽으로 들어가 책을 이것저것 훑어 보다가 커피색 겉장을 가진한권의 책을 골랐다./
"그게 무슨 책이야?"/
"오래된 소설책."/
"소설 읽으려구."/
"응. 그동안 책도 많이 읽지 못했으니까. 넌 뭘 골랐어."/
"아니. 난 그냥 별로 책 읽고 싶은 생각 없어."/
둘은 곧 서고를 빠져 나왔다./
서고를 나와 미나의 방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글쎄 멀리서 들리는 비명소리 같은데."/
"가보자."/
"어딜. 무서워."/
미나는 무서우니까 소리나는 쪽으로 가지 말자고 했지만 현경은 아뭇소리 없이 소리나는 쪽으로 향했다./
자꾸만 소리는 커졌는데 소리나는 곳이 윗층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현경이는 꼿꼿하고 당당하게 소리나는 쪽으로 향했지만 미나는 현경의 뒤에 붙어 웅크린 자세로 살금살금 따라 나섰다./
"아아아-- 아아아--"
소리는 점점 커졌다./
소리의 종착지에 다가온 두사람은 그 소리가 송미의 방에서 들려 온 것임을 알았다.//
"아아아-- 아악--"/
미나와 현경이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경험은 없었지만 대충 짐작할수 있었다./
"미나야. 내려가자."/
보일러 장치가 잘 된 집이어서 밖은 쌀쌀 했지만 안은 제법 더웠다./
송미와 은철은 아무도 없는 집이어서 아마도 방문을 열어 놓고 대담하게 밀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집은 미나가 오래전 어릴적에 놀러와서 윗층에서 사촌들과 쿵쾅거리고 놀았어도 아랫층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방음도 잘 된 집이어서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현경이는 송미의 방안을 한번 흘낏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나에게 나지막히 내려갈 것을 말했다./
미나는 손을 내저으며 현경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현경아. 너 먼저 내려가 있어."/
"같이 내려가자. 들키면 곤란하쟎아."/
"안 들키면 되지."/
"그럼 난 먼저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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