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 가정부 2명 따먹은 이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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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419회 작성일 20-01-17 20:48본문
걸려온 전화는 한동네 사는 깡철이었다. 나처럼 신분은 재수생이고 약간 껄렁한 척 해도 마음은 순한 친구였다.
저녁에 시간나면 간만에 한번 얼굴보고 술한잔 하자고 했다.
"싫어. 임마. 미천한 재수생이 어딜나가?"
"아, 지훈아. 저녁에 형우도 같이 보기로 했어."
"형우? 박형우?"
"엉."
학창 시절에 박목사라는 별명을 가졌던 박형우. 결국 취향대로 서울인근 신학대에 진학했는데 이녀석과 나랑 깡철이 예전에 셋다 다 친했다.
나보다는 깡철이랑 박형우는 더 친했다.
내가 고3 때 순희의 순결을 빼앗았을 때...지켜주라고 고언을 했던 얘가 바로 박형우였다.
"형우 온다고? 음.. 좋아. 어디서 볼래? 함 보지 뭐. 형우도 보고 싶고."
우린 인근의 막걸리집에서 만났다. 이상하게 그 때 젊은이들은 막걸리를 잘 마셨다. 지금처럼 깔끔한 포장도 아니고 투명한 비닐팩 커다란
용기에 들어 걸쭉했는데 그거 한통 다 먹고 나면 다음날 대가리 빠개졌다. 그래도 그땐 그게 맛은 있었다.
우린 간만에 흥겨웠다. 신학대생 형우는 술을 안먹고 주로 깡철이가 내가 권커니 자커니 했다.
난 술 한잔 들어가니 형우와 깡철에게 가정부였던 순희와의 일을 처음으로 술술 고백했다. 그래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 이상하게 순희가 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술을 한잔도 입도 안댄다더 형우가 잠깐 멈칫하더니 갑자기 커다란 대접의 막걸리를 그대로 원샷했다.
그걸 지켜보던 깡철이가 재밌다는 듯 잽싸게 순대찌개의 순대를 하나 집어서 형우 입에 넣었다.
"음주에 나중에는 가무까지 겸비한 훌륭한 목사가 될 겁니다!"
형우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 엄마도 그 가정부 출신이다."
"앗!"
그랬구나. 난 형우에게 좀 미안해서 멋쩍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가정부 참 많았다. 형우네 어머니는 보릿고개 있던 시절. 너무 살기 힘들어서 입이라도 하나 줄이려고
서울 올라와서 식모살이 했는데 한 동네에서 어렵게 살던 고학생 총각과 눈이 맞았는데 그게 바로 형우네 아빠였다.
형우네 아빠는 당시 비고시출신으로 드물게 고급 공무원이었다. 깡철이네도 꽤 살았다. 우리 셋이 친했던 것은 알게 모르게
잘사는 집안 탓도 컸을 것이다.
"한잔 다 빨고 지금 당장가봐라."
"어딜?"
"순희씨 만나러."
"뭐?"
박형우는 암만 봐도 보통 넘이 아니었다. 훗날 중형교회의 안정된 부목사직을 내던지고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했던 박형우의 비범함과
결단력은 그 시절 부터 조짐이 보였다.
내가 우리 집 차를 끌고 나왔다. 아버지 회사차와는 별도로 집에서 어머니가 쓰는 차 마크 파이브가 있었다. 형우가 운전했다.
돈도 꽤 챙겨나왔다. 깡철이도 동승했다. 배포있던 20살 시절이니까 그런 즉흥적인 결단이 가능했던 것 같다.
무면허 운전 하다가 걸려도 우리 아버지라면 빼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검사도 많이 알고 있었고 힘이 막강했다.
우린 순희집 주소가 나온 편지 봉투를 들고 그 밤에 순희의 고향으로 달렸다. 깡철이가 가본적 있는지라 가다가
길 헤매고 버벅대기는 했어도 그렇게 찾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새벽에 도착해서 일단 여관을 찾아서 묵었다. 일정이 바쁜 형우는 아침에 일찍 인근 터미널을 찾아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깡철이와 나만 순희 집을 찾기로 했다.
우린 전날 술을 진탕먹어서 그런지 오전 내내 자빠져잤다. 간신히 동네 목욕탕을 찾아 좀 씻고 해장국 한그릇 먹고
깡철이가 차를 몰고 물어 물어 순희 집을 찾으러 나섰다
"딸이 하나 있구요... 이름은 정순희고 고등학생 동생 하나 있고..아버지가 있는데 키가 좀 작아요"
"아. 곱추네.."
"네?"
"정씨네 말하는거 아냐."
구멍가게 앞에 옹기 종이 앉아 있던 동네 노인들이 알려주었다.
고...곱추라고? 아. 그랬구나.
문득 순희 가족 사진에 순희 아버지가 키가 너무 작은게 생각났다.
곱추라는 척추 장애증 환자가 지금은 찾기 거의 힘들지만 예전에는 꽤 많았다. 그 병은 선천성도 있고 후천성도 있다고 들었다.
특히 시골에는 많았다. 당시 의학기술로 쉽게 고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혹시 순희 어머니는 그래서 집을 나간게 아닐까. 갑자기 순희의 고달팠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희네 집은 진짜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시골집이었다.
그걸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 순희가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가기 싫어했나.... 깡철이도 어이없어 했다.
"뉘시요?"
"계십니까"를 한참 부른 연후에야 지팡이를 짚고 초로의 남자가 나왔다. 등은 굽어 있었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예, 저희들은 순희씨 친구인데 순희씨를 좀 보러 왔습니다."
"순희 친구라고?"
순희 아버지는 의심 간다는 눈초리로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뇌가 섹시한 남자만 하스스톤 모바일을 하듯 우리의 옷차림이나 외양은 그 지역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시골 사람들은 어딘가 낡은 옷차림에 피부가 까맣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우리가 끝고 온 마크 파이브 승용차도 뒤에 있었다.
이런 시골에 까만 승용차가 들어오면 "누구집 차일까?" 궁금해하고 구경하던 시절이었다.
"아, 예. 저희는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순희씨가 서울에서 일할 때 한동네 친구였습니다."
"우리 순희.. 읍내에 볼 일 보러 갔다가 금방 들어올텐데.."
집구석이라고 좁아터져서 어디 앉아서 기다릴 데도 없었다.
"예, 저희는 그냥 동네 한바퀴 돌고 있겠습니다."
시골도 시골나름이지만 그 부락은 전체가 못사는 것 같았다.
"풍요의 80년대에 참 순희씨는 어렵게 사는구나..."
깡철이가 약간 빈정조로 말했다. 깡철이는 일개 재수생 주제에 건방지게 정부 비판을 많이 했다.
깡철이는 김대중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아마 부모님의 영향이겠지...사실 난 그땐 난 김대중이 누군지 잘 몰랐다.
전두환장군이 대한민국을 전복할 목적으로 내란음모를 획책해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풀어줘셔 미국으로 가있던 시기라서 그랬을거다.
우리 둘은 집 바로 뒤 언덕배기에 올라 거북선을 하나 물었다. 들판에 벼는 덜 익었지만 어딘가 풍요로웠다.
오랜만에 수험생의 압박에 벗어나기 기분이 좋았다.
멀리서 누가 걸어온다. 가방을 하나 옆에 맸다.
점점 가까이 온다. 160센티 정도의 키.... 긴 머리를 묶었다. 늘씬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치마를 입었는데 읍내 나들이라서 그런지 옷은 깨끗했다.
서울물을 꽤 먹어서 서울 거리에 내놔도 전혀 시골 티가 안날...
그런 시골 아가씨가 한명 걸어오고 있다.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깡철이가 한마디 했다. "쟤 맞구나.."
내가 쏜살같이 내려갔다. 순희 쪽으로 걸었다. 순희가 고개를 숙이면서 걸어온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것은 순희 특징이다.
문득 앞에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니 잠시 고개를 든다.
한번 보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잠깐 멈칫한다. 눈이 커진다.
"지...지훈씨?"
"순희야!"
난 순희를 보고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었다.
"지훈씨..!"
순희가 나는 듯 뛰어와서 나에게 안겼다.
지훈씨...어흑..어흐흐흑..........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흑흑
순희가 눈물을 쏟으며 서럽게 울으니 나도 눈물이 났다.
이산가족 찾기도 아니고...하긴 거리에 피는 들꽃에도 흔들릴 나이다.
"지훈씨 여기까지 어떻게..?"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참, 이쪽은 내 친구 깡철이야"
지켜보면 깡철이가 멋적게 말했다.
"지훈아. 나 아까 여관 옆에 홍초다방에서 기다릴게. 이따 보자"
난 순희 아버지에게 다시 인사를 드렸다.
"예. 저 순희 남자친구 강지훈입니다."
자가용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부락까지 까만 승용차를 타고 올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순희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과기뻐하는 눈빛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난 순희 손을 잡고 둑길을 걸었다. 순희는 내가 서울에서자기를 보러와서 그런지 너무 기뻐하고 마냥 들떠했다.
순희와 나는 못다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 산책길이 행복했다. 지금은 언제 그런 행복한 날들이 또 올런지...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순희도 서울로 올라와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다.
다시 들녘을 걸어가는데 예쁜 들꽃이 눈에 띄었다. 내가 들꽃을 꺾어서 순희 머리에 꽂아줬다.
순희 얼굴이 환하게 웃으면서 행복해했다.
난 순희에게 고백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널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내 진실한 말에 순희가 또 울먹울먹했다.
순희와 난 누가 뭐랄 것 없이 인근 여인숙으로 향했다. 순희와의 섹스는 가정부 아줌마와 하듯 쾌락의 과정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듯 했다.
나역시 여자를 제대로 알아가는 시기였다. 21살 순희는 더 예뻐지고 더욱 농염하고 아름다웠다.
그저 좆만 봊이에 들이대면 바로 헐떡거리던 아줌마와 비교도 안되었다.
이렇게 어여쁜 순희를 시골에다가 두면 누군가에게 빼앗길 걱정까지 들었다.
이미 다 봤으면서 팬티를 내릴 때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을 가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난 단 한군데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순희의 하얀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빨았다.
목덜미, 빨통은 물론 배꼽, 아랫배..엉덩이 허벅지 어느 한구석 놓치지 않았다
오랜 만의 섹스라서 그런지 순희도 더욱 흥분하는 것 같았다. 내 혀가 닿을 때 마다 몸을 배배꼬았다.
보빨을 할 때는 못 견디겠다는 듯 내머리를 쥐었다.
"지훈씨..지훈씨..아아..아핡...아잉..."
"너..넌 내꺼야.."
"엌..컥....아아..나 지훈씨 거야..."
내가 개통했던 순희의 쫄깃한 보지는 여전했다. 순희의 조개가 내 잦이를 깨물 때 아득함을 넘어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가정부 아줌마의 봇이는 그저 따뜻하고 물컹했지 얼마나 헐거웠는지 순희의 떡을 쳐보니 더 실감났다.
“하악! 아, 하, 으응, 하앗!”
퍽퍽! 퍽퍽! 퍽퍽퍽퍽!!!!!!
아앗!!
난 노콘질싸로 순희의 봇이 깊숙한 곳에 정액을 쏟았다.
운전기사 깡철이가 운전하는 차로 난 시내로 나가 순희 동생과 순희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샀다.
순희에게 동생 용돈 이라는 핑계로 돈을 건냈다. 집에서 모아둔 돈을 슬그머니 꺼내왔고 마침 깡철이도 돈이 꽤 있었다.
지갑까지 다 탁탁 털었다.
우린 저녁을 먹으며 미래를 약속했다. 순희는 연신 고기를 한점 한점 계속 내 입에 넣어줬다.
"우리 지훈씨. 공부하는 데 영양 보충 많이 해야 돼"
"지훈씨. 머리 좋은 사람이야.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괴상하고 시끄러운 음악 듣는 건 자제하고 좀 냉철하게 공부해봐"
오지오스본님의 음악이 괴상하고 시끄럽다니..
누님같이 자상하면서도 이쁜 순희. 나에게 이런 저런 많은 조언을 해줬다.
사실 메탈 음악 때문에 공부도 많이 방해되었다. 한번 틀어놓으면 거의 한시가늘 가까이 머리 흔들며
땀을 흘렸다. 사랑하면 그렇게 섬세한 것도 보이는 건가 보다.
깡철이가 모는 차로 서울 올라오면서 난 행복하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다.
세상에 가족 말고도 이렇게 늘 나를 사랑하고 기대해주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일 죽어도 좋을 거 같았다.
다행히 어머님께 크게 혼나지 않았다.
"힘든거 안다. 그치만 부모님 실망시키지 말고 열심히 해라. 엄마가 너 고생하는 거 알아.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오히려 용돈도 줬다. 대학 떨어지면 사람 구실도 못할 때 였다. 나는 다음날 부터 무섭게 공부했다.
반드시 열공으로 대학에 합격해 순희를 기쁘게 해야 한다.
아버지도 명문대 출신이고 어머니도 중상류 대학 나왔다. 내 동생 지영이도 반에서 손가락안에 들던 애였다.
집안 자체가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난 아줌마와 내연관계를 정리했다. 랜디로즈 후임으로 들어온 오지오스본 밴드의 제이크 E 리가
랜디로즈 못지 않은 기량의 화려한 테크니컬 기타 연주를 보여줬지만 난 공부에 방해되는 음악을 듣는 것 조차 자제했다.
뇌가 섹시한 남자만 하스스톤 모바일을 하듯 가끔 안방에서 엄마가 즐기던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다만, 마이클 잭슨의 아성을 위협하던 또 한명의 흑인가수 프린스의 "퍼플레인" 앨범은 원판으로 하나 구입했다.
열심히 공부하니 성적이 올랐다. 확실히 난 머리는 있었다. 그리고 난 그 해에 서울의 H 대학에 간신히 합격했다.
지금은 H 대학 부근에 클럽 문화도 생기고 좀 잘나가는 척 하지만 H대는 사실 그때 그시절에는 3국대에도 못미치는
서울의 제일 하바리 대학이었다. 그나마 미대 빼고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뛸듯이 기뻐하셨지만 아버지는 그저 말이 없으셨다. 조금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어디 삼국대라도 되야 명함을 내밀지..으흠"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순희도 전화 통을 붙들고 울먹였다.
"지훈씨. 진짜 고생했어요.이제 대학생이야. 우리 지훈씨."
대학생이면 사회적으로 조금 대우를 받았다. 지금 처럼 개나소나 대학생 시절은 아니었다.
순희는 서울로 올라오지는못하고 그 지방 작은 소도시에 타이피스트로 취직했다.
나도 운전면허를 땄다. 나는 깡철이와 그 겨울 깡철이가 모는 차를 끌고 며칠 순희를 만나고 왔다. 순희의 용기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순희 친구와 깡철이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는데 공장 다니는 여자애 였다.
내 경험상 공장 오래 다니던 친구들은 어딘가 공장의 내음 묻어난다. 이건 사실이다.
둘은 잘 안되서 깡철이는 혼자 헌팅한다면서 돌아다녔다.
주말에 순희 손 잡고 동네에서 썰매도 탔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한달에 한번씩 꼭 내려오겠다고도 약속했다.
물론 떡도 치고 언제나 먹어도 맛있는 봊이도 빨았다.
난 아버지 통해서 순희 취직자리도 알아본다고 큰 소리 쳤고 순희도 검정고시 공부한다는얘기를 했다.
내가 승용차 옆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순희가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았다.
"지훈씨, 대학교 들어가면 이쁜 여자 많아서 사귀던 애인 버리는 경우 많대. 난 지훈씨 믿어."
순희는 내가 자기를 버릴까 많이 불안해했다. 80년대 중반.....진짜 순결을 빼앗긴 여자는 결혼하기 힘들었다.
처녀가 아니어서 신혼 여행 갔다와서 헤어지는 사건이 빈번이 선데이 서울에 실렸다.
동네 총각에게 따먹힌 처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하던 때 였다. 지금과 성관념이 많이 달랐다.
순희의 근심도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재수시절 고생하다가 드디어 대학교 붙으니 난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재수 시절에는 순희가 그립고 애틋하고 보고싶었는데 막상 대학교 들어가니 생각이 달라졌다.
대학교에는 이쁜 애들도 꽤 많았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가 재벌기업 계열사 사장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나한테 들이대는 애들도 꽤 많았다.
그 시절 80년대 학번 대학생들 진짜 공부 안하는 것 같았다. 뇌가 섹시한 남자들이 하스스톤 모바일을 한다지만 걔네들은 뇌가 빈 것 같았다.
개강파티는 꼭 무슨 나이트 아니면 스탠드 바에서 했다. 개강을 필두로 나도 거의 매일 술먹었다.
단합대회니 고교동문회니 뭐니 미친 듯한 술자리의 연속이었다. 과대표라는 애는 이런 저런 핑계 핑계로 술자리를 만들어나갔다.
이 새끼들 대학생이 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건가? 의심이 들정도였다. 그래도 학점은 후했다.
버마 아웅산 폭발사건의 아픔을 딛고 나라 경제가 점점 나아져서서 그저 "대학교만 졸업하면 곧 취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던 호황기였다.
취업난? 그게 뭔데? 그런 용어조차 없었다.
어느날 한강을 가보니 그 지저분하던 한강이 완전히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부랑아들이 많이 사라졌다. 가끔씩 우리집에 놀러오는 외삼촌은 "전두환 각하가 영도하시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역설하셨다.
난 그냥 군인인줄 알았던 막내 외삼촌이 보안대 장교 정확히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중령이라는 것을 대학다니고 처음 알았다.
정치에 뜻이 있던 우리 아버지와 죽이 맞아 시국얘기를 많이 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점점 잘살고 새마을 운동이다 뭐다 다 힘을 합쳐서 뛰는데 맨날 데모하는 애들 보면 참 한심스러웠다.
그때 그랬다는 거다. 학교뿐 아니라 시내가 연일 최루탄 냄새에 뒤덮히는 시기였다.
써클 룸..지금의 동아리방 들어가보면 캐비넷 위로 그 위험한 살상무기인 화염병이 버젓히 있었다. 기가막혔다.
난 아버지가 뽑아 준 승용차 맵시나를 끌고 다녔다.
슬쩍 난 여대생을 사귀어 볼 요량으로 한 봉사 써클에 가입했고 거기서 영문과 윤지영이라는 여학생과 친해졌다.
윤지영은 키가 168에 몸매도 늘씬했다. 디자인과 쪽에서 모델로 섭외한다는 소식도 들릴 정도로 인기기 많았다.
게다가 아버지과 국영기업체 이사라고 했다. 나와 소위 "급" 맞았다.
윤지영과 친해진 이유는 아마 내가 부잣집 도련님 승용차족이서 그런 것 같았다.
조명이 야릇어두침침한 카페에서 술기운을 핑계로 윤지영이 나한테 슬쩍 기댈 때 머리칼의 향긋한 샴푸 냄새는 나를 설레게 했다.
나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준 순희가 갑자기 촌스럽게 보였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지.....암
카페에서는 떠오르는 소피마르소 주연의 영화 "라붐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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