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에서 세여자 딴 썰(ssu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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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827회 작성일 20-01-17 20:48본문
"인숙이와의 동거"
인숙이는 제주도에서 학비와 하숙비를 겨우 보내는 수준 인것 같았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런게 아니라 용돈은 알바해서 벌라는 뜻?
뭐 그런거? 걔 새 아빠가 귤 농장 크게 한다더만 짠돌이 같았어.
나나 인숙이에게는 남들처럼 카페에서 손잡고 데이트 하고 이런 사랑 놀음은 불 필요했지. 모텔비도 아깝고..
인숙이와 나는 고심 끝에 동거하기로 했어. 인숙이는 그저 "아저씨, 하라는데로 할께요"라고 했다.
인숙이도 섹수, 쾌락, 존슨의 참맛을 깨달으며 남자를 알아가는 시기고...나의 존슨도 여대생의 싱그러운 육체를 맛 보았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어. 물론 나나 인숙이도 섹수 만이 동거의 이유가 될 순 없었지.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냥 객지에서 서로 외롭고 나름 불우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난 주인아주머니에게 하숙집을 나가겠다고 일부러 아저씨 같이 있을 때 얘기했어. 한 때는 환상적인 속궁합으로 몰래 떡치던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비록 40대 녀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또 달라..이 아줌마 참 맛있었어.
내가 그 얘기할 때.. 애써 시선을 피하고 다른 쪽을 바라보더라...
"시욱씨. 뭐 우리 한테 섭섭한게 있는건 아니지?" 주인아저씨의 말씀이 고마웠다.
그간 주인아주머니를 몰래 따먹어서 미안하다..마누라 관리잘하시고..나름 맛있는 봇이니
마누라 떡도 가끔 좀 쳐주시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나는 며칠 후 원룸월세를 구해서 나갔어. 한 달 정도 늦게 입사한 회사 후배가 공장 트럭을 끌고와 이사짐 나르는 것을 도와줬다.
1주일 뒤 인숙이도 하숙집을 나와 합류해 동거를 시작했어.
아프니까 청춘이지..안 아프면 거얼레지....
처음에 아파하던 인숙이는... 나랑 떡을 칠 때 점점 아파하지 않았다...봊이구멍에도 점점 넗어지고
존슨이 미끈하게 쑥쑥 잘 들어갔어. 인숙이의 싱그러웃 풋보지도 거얼레가 되어가는 거겠지.
여자는 나이 20살 넘어도 발육이 더 촉진되는건가. 나한테 빨려서 더 커진건지.. 유방은 더 커지고..
허리는 더 잘룩해졌어..히프도 더 커졌어...마치 잘 익은 복숭아 같았어..
인숙이에게 날이 갈수록 성숙한 여체의 원숙미가 느껴졌다.. 긴 생머리는 더 길어졌지.
인숙이가 하얀 몸뚱이로 내 위에서 "자기~ 자기야~~아아아! "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허리를 들썩이며
섹수를 주도하는 날이 많아졌다.
봊이와 후장을 시키는 대로만 얌전히 대주던 인숙이가 아니었어.
떡칠 때도 수줍게 아저씨라고 부르던 호칭도 이젠 "자기야~"로 바뀌었다.
난 밥 먹다도 인숙이 티셔츠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주무르고 흥분시키고 ..그러다가 둘다 꼴리면
밥먹다가 질펀하게 떡쳤지. 어린 애라서 그런지 떡을 많이 쳐도 참 체력이 좋아.
그럴 때면 나도 인숙이랑 그냥 빠구리나 즐기며 그냥 이 작은 소도시에서 그냥 적당히 젊음을 썩히고도 싶었어..
인숙이는 공부를 좋아했어. 요즘 여대생과 달랐어.... 그냥 수수하게 옷입고 나가면 조숙한 여대생이었지.
가끔 눈화장만 하고 화장도 거의 안했어...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봄, 가을에도 반바지에 까만 스타킹을 즐겨 입었어. 컨셉인가봐.
얼굴도 긴 생머리에 평범했는데 가끔 눈 화장만 할 때는 참 이쁘더라..
더 이상 내가 팬티를 벗길 때...얘는 두손으로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어.
착한 인숙이는 생리할 때도 투덜거리면서도 날 배려해 줬어.
"아저씨, 진짜 못 참겠어?"
"모..못참겠어..어쩌지?"
"아이참~ 아저씬 맨날 그렇게 해야돼?"
"어쩔 수가 없네. 그냥 나 손으로 혼자 할까?"
"에이..안돼지. 그럼 씻고 와요. 내가 입으로 해줄께"
"정말...ㅓㅜㅑ~"
"츄르르릅"
"아아...인숙아~~ 아아..응응..."
난 사까시를 지도했어. 입에다가 싸지는 않았어. 인숙이는 입싸는 싫어했어.
사실 한 때 입싸를 하고 싶어서 "난 네것 다 빨아먹는데 넌 안먹냐?라고 떠 본적은 있는데 싫다고 해서 강권하지 않았지.
그럴 때면 입싸를 잘 허락해주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리웠다.
모름지가 사까시는 그 아줌마 처럼 남자의 존슨을 진정 맛있게 먹어줘야 시각적, 심리적 효과가 갑이거든.
그 해 겨울은 따뜻했지... 인숙이의 봇이로 인해 행복했고 떡치는 나날로 뜨거웠다...
인숙이의 잘록한 허리를 잡고...히프 밑 뒷봊이에 존슨을 꽂고 뒷치기를 할 때면 보짓물이 촉촉하던게 더 흥건해졌어.
인숙이는 의외로 뒷치기를 좋아했어..
"퍽! 퍽! 퍽!!"
"아~ 아~ 아~~자기.."
"아아~~ 자기...난 뒤로 해줄 때가 좋아~아아"
"진짜? 아아~ 아핡~"
인숙이는 내가 뒤에서 앉아주기만해도 흥분된다고 했다. 존슨으로 엉덩이를 부비기만 해도 흥분했어.
의외로 뒷치기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꽤 많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
까만스타킹 입는 날은 뒷치기 한다고 했더니... 어떨 때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일부러 까만스타킹을 입고 있기도 했어.
뒷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지.
인숙이는 집에서 간혹 간단한 요리하는 날이 있었는데..그 날은 거의 놓치지 않고 뒷치기를 했지.
그래서인지 인숙이도 그럴 땐 뒤를 힐끔 힐끔 보면서 경계& 기대를 했어. 신혼 부부 흉내 섹수놀이.
나름 알콩달콩 잼있었어.
크리스마스 이브 때 금 한 돈씩해서 커플링을 맞췄어. 금이 그닥 안비쌀 때 였지..
그 날 인숙이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한테 반지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지...
그렇게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어..
사실 미래에 대해서 나나 인숙이나 깊게 얘기하지 않았다. 서로 마음만 아프므로..
인숙이는 올 겨울방학은 그냥 남겠다며 제주도에 가지 않았지.
인숙이는 내가 언젠가 서울입성을 꿈꾸며...틈틈히 구직생활을 하며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
"인숙이와 결별"
내가 대딩 때 부터 아는 새퀴들 중에서 남녀 동거 시작해서 잘되는 꼴 못봤어..
우리의 관계도 사실 예정돼 있었지. 그 작은 도시에 새 봄이 올 무렵 서서히 파국으로 가고 있었다.
인숙이와 떡을 칠 때면... 애널을 제외하곤 콘돔은 쓸 때가 있지만.. 안 쓸 때도 많았다.
여자의 생리주기라던가 가임기라던가 그런거 대해서는 나도 무지했어. 그런 건 전적으로 여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콘돔을 쓰면 알다시피 느낌이 덜 하잖아..난 가급적 안꼈어..인숙이도 어려서인지 피임에 철두철미 한 것 같진 않았어.
낮이고 밤이고 인숙이와 그렇게 떡을 쳐댔으니..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인숙이가 임신했어.
어느 날 인숙이가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 임신했어요. 근데 지워야겠죠?"
난 가슴이 철렁했다.
"뭐얏! 애를 왜 지워. 우리 사랑의 결실이야. 우리 잘 키우자"
...라고 말하는 그런 멋진 드라마 속에 주인공은 현실에 없어..
난 존슨같은 지방 중소기업에서 파란 잠바 떼기 입고 다니면 거의 노동자 같은 관리직으로
월급 120만원을 받고 세금떼면 얼마안되고 한달 쓰면 그냥 홀라당인.... 미래가 암울한 청춘인데..이 빌어먹을 헬조센에서 아기라니?
그리고 난 인숙이를 진짜 사랑한 적 없었어. 우린 그냥 서로 좋아하고 필요에 의해 같이 동거한 것 뿐이었지.
다만 우리 둘에게는 서로 한 때의 설레임만 있었을 뿐이다....난 그런 놈이었지.
인숙이도 기껏 대딩 2학년 올라가는 작가를 꿈꾸는 여대생일 뿐이다.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난 다만 인숙이를 아무말없이 끌어 앉는 걸로 내 대답을 대신했지...
우린 며칠 후 산부인과 가서 인숙 뱃속의 애기를 지웠어. 인숙이는 나를 원망하거나 슬퍼하거나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누가 누굴 탓하랴...
"김시욱, 나쁜 새끼!"
언젠가 인숙이가 술 좀 먹고 방에 들어와서 나한테 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울음섞인 욕이었어.
평소에도 욕 한번 하지 않는 애야. 그걸로 끝.
그 후로도 그 일에 대해서 한번도 언급한 적 없어. 인숙이는 그런 애야. 그래서 인숙이 생각하면 좀 아련해...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좋았던 우리 사이에 마음의 벽이 생기고 우리의 섹수도 서서히 뜸해졌어.
조금씩 다툼이 늘어났지. 인숙이의 이런 저런 단점이 눈에 띄였어. 걔는 급 우울해지고... 급기분 좋아히지고..우린 밥은 항상 사먹었어...
어차피 부부생활도 아닌데..그동안 싱싱한 섹파를 공급해 준것 만 해도 어디냐? 난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니 항상 씀씀이가 크고 돈은 항상 모자랐지..
새 봄이 오고 안 변할 것 같은 나의 삶도 서서히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
내 느낌에는 어딘가 한국경제가 좋아지는 것 같았어. 잠깐 반짝이었는지도 몰라. 전에는 아무리 이력서를 써내도 면접 통보 조차도 없었는데
2군데서 면접 보라는 연락이 와서 난 두번 서울로 올라갔다 왔어. 그럴 때는 인숙이 표정도 어두워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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