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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의 세계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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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10회 작성일 20-01-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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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의 세계


“ 수민아 선경이 연락 안되니 ? ”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내게 누나가 묻는다.
3일전..
선경이가 뛰쳐나가고..
황급히 옷을 입고 나간 거리엔 투명한 햇살만 넘실거렸다.
지난 3일간 누나와 나 사이엔 팽팽한 침묵만 이어졌고
둘 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일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그 긴장의 끝에 누나가 처음 말을 건냈다.
“ .......... 응 ”
“ ............. ”
누나의 눈빛이 불안스레 흔들리고 있다.
우리만의 세계도 흔들리고 있다.
거실로 가 물을 마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아 자낸가 ? ”
“ 아...아버님 ”
“ 혹시 우리 선경이 자네와 함께있나 ? ”
“ ............. 내 ? ”
“ 같이 있는거 아닌가 ? ”
“ 아닙니다. ”
“ ................ ”
“ ... 선경이.. 집에 없었습니까 ? ”
“ 3일째 소식이 없내 ”
“ .......... ”
선경이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있을까 ?
그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
무작정 집을 나와 차를몰고 거리로 나왔다.
함께 자주가던 카페와 서점, 그리고 함께 거닐던 길을따라
무작정 그녀를 찾아다녔지만
어느 곳에도 선경이는 없었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 진 후에도 계속 같은 곳을 맴돌았지만
선경이는 보이지 않았다.
입안이 타들어갔다.
점점 세계가 나를 .. 누나를 옭죄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찾아야했다.
선경이와 이미 끝났다는 걸 알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만나야했다.
우리의 관계를 알아버린 타인..
그녀의 용서가 필요한 누나와 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혹시 하는 맘에 신혼집으로 향했다.
나와의 미래를 꿈꾸며 그녀가 행복해 하던 곳..
따뜻한 창가에 작은 화분들을 놓고 나와 함께 가꾸며 살고 싶어 하던 곳
열쇠를 꺼내어 현관에 넣고 돌리자
문은 소리없이 열렸다.
......... ?
어둔 거실..
잠겨있지않은 현관문..
“ 선경아 ”
무겁게 눌린 어둠속에 나의 음성이 공허히 울리다 스러졌다.
“ 선경아 ”
불을켜자 3일전 그녀가 떨어트린 선인장이 보였고
안방과 거실에도 선경이는 없었다.
작은 화분..
다시 돌아서 나오는데 현관에 선경이의 신발이 보였다.
......?
굽 낮은 까만 구두..
“ 선경아 ”
....무섭도록 조용한 침묵..
“ 선경아 ”
또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욕실문을 열었을 때..
아..
눈이 아프도록 선명한 욕조에 고인 피
그리고 그 안에 잠겨있는 선경이..
피로 변한 욕조에 고인 물 위로
그녀의 까만 머릿결이 풀어지듯 떠있고..
욕실 바닥에 섬뜩하도록 빛나던
면도칼..
무언가 둔탁한 둔기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다.
귀에서 울리기 시작한 위잉..거리는 소음이
머리 전체를 깨트릴 듯 울려대고..
명치로부터 시작된 통증이 가슴 전체로 영혼 전체로 퍼져갔다.
도망치듯 거리로 뛰쳐나와
차를몰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끝이다....
모든게...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미친 듯이 집으로 와 넋을놓고 앉아있던 누나를 일으켜 차에 태우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가야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 수민아 왜이래 ? 어디가는거니 ? ”
핸들을 잡은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다.
“ 수민아 .. 왜그래 ..수민아.. ”
맹렬하게 밤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이름모를 동해바닷가 작은 어촌마을이였다.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그 끝까지 가 멈춰선곳..
어둑한 밤바다가 바라보이는 방파제의 끝까지 가서야
나의 질주는 끝났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마저 두려워져
황급히 끝까지 올려버리고
시동을 끄고 핸들에 기대어 엎드렸다.
너무도 숨이찼다.
격렬한 울음이 터져나왔다.
핸들에 얼굴을 묻고 심하게 들먹이며 우는 내 등 위로
따스한 수진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 수민아.. 울지마.. ”
.... 욕조의 붉은 피
그 위로 일렁이던 선경이의 머릿결....
통곡하듯 밤의 어둠 속에 울고 있는 내 위로 수진이의 몸이 기대온다.
“ 그만...수민아..응 ? 울지마..”
....누나도 울고있잖아
“ 우리.. 어디 멀리가서 살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응 ?
울지마 수민아 “
.... 어디로 가는데 ?
.... 그곳이 어딘데 ?
“ 나중에 선경이한테만 우리 과거 얘기하고 용서 구하자. 그리고 떠나자
응 ? 수민아.. “
“ 선경이 죽었어... ”
“ ......... ! ”
“ 우리 함께 살 집에서.. 욕조에서... 동맥을 끊었나봐.. ”
“ ............ ”
“ 누나..나 무서워.. 어디로 가야하지 ? 응 ?
우리 둘이 있을 곳이 어딘데 .. 우리가 있을 곳이 있어 ? 정말 그런 곳이 ? “
수진이의 호흡도 거칠어지며 날 부둥켜안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수진아.. 거기가 어디야... 어딘데... 응 ? 수진아... ”
유일한 구원을 누나에게 구하듯 끝없는 말만 되풀이 했다.
“ 말해줘 응 ? 어서 가자.. 나 미칠 것 같아.. 수진아 ”
그런 곳은 없다는 걸 우린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가 따로 떨어져 세상에 적응하며 살지 못할꺼란 것도..
함께 살을 맞대고 살 수도 없단것도..
꼭 끌어안고 있는 우리 귓가에 고요한 파도소리가 울려왔다.
무척 먼 곳에서 울리듯 간간히 감싸오는 파도소리..
손을 뻗어 눈물로 얼룩진 수진이의 얼굴을 들어 입을 맞췄다.
촉촉하고 달콤한.. 미치도록 따스한 숨결이 배어있는 입술..
그녀의 혀를 쓰다듬었다.
혀 위로..입안에.. 고여있는 수진이의 눈물..
“ 수민아..우리 바다로 갈까 ? ”
“ .......... ”
“ 우리 거기서 살까 ? ”
누나의 음성이 촉촉하다.
날 사랑하는....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
누나의 입에서 스며나오는 달콤한 숨결이 내 영혼을 감싸왔다.
“ 우리.. 떠나자 ”
...................................................
곧 동이 터오려는 듯 극심한 어둠이 힘을 잃고
푸른 기운이 수평선 너머 퍼질 무렵
적막을 뚫고 한줄기 엔진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연이어 물보라 튀는 소리가 짧게, 바다 위로 맴돌다가는
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
차츰 밝아오는 방파제 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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