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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천사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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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29회 작성일 20-01-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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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자는 무서워







“조금 전 느낌이… 어땠어요?”

“좋았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봐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좋았어요.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것이었어요. 몸이 하늘로 자꾸 자꾸 올라가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것 같은.”

“오르가즘을 느꼈나요?”

“그게 뭔지 난 몰라요. 한 번도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조금 전 느낌이 그것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남편 말고 sex한 남자는 몇 명… 인가요?”

“……”

“나에겐 다 말해줘야 해요. 몇 명이었죠?”

“두 명.”

“누구, 누구?”

“한 명은 선생님.”

“나 말고 나머지 한 사람은?”

“……”

“말하기 힘들어요?”

“오빠가 말하지 말래요.”

“오빠가 말을 해요?”

“네.”

“오빠가 여기 있어요?”

“네.”

“뭐라고 하나요?”

“자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그렇게만 말해요.”

“나는 괜찮아요. 말해봐요.”

“오빠는…… 안되요. 오빠가 말하면 안된데요.”

“왜죠? 왜 말하면 안된다고 하는 거죠?”

“무서워요!”

“뭐가?”

“오, 오빠가!”

“오빠가 어떻게 무섭게 하는 거죠?”

“노려보고 있어요. 눈이… 무서워요.”

“어떤 모습이죠?”

“몰라요. 잘 안보여요. 그냥… 눈만… 허공에 떠있어요. 오빠의 눈이… 날 내려다 봐요. 무, 무서워요!”

“괜찮아요, 괜찮아. 당신은 안전해요. 그 오빠도 가버렸어요. 아주 멀리. 그러니 오빠에 대한 생각은 이제 하지 말아요. 알았죠?”

“하아……”

“괜찮죠? 편안해졌죠?”

“네……”

“우리 이야기 해볼까요? 괜찮죠?”

“네.”

“나… 어때요? 남자로서 느끼기에.”

“좋아요.”

“더 자세히 설명해봐요.”

“선생님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좋았어요. 차가운 듯 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 손짓, 목소리, 다 좋았어요. 내 마음을 잔물결처럼 살짝살짝 흔드는 것 같았어요.”

“나에게 호감이 있었군요?”

“네……”

“지난 번 내가 물었었는데 결론을 얻었나요?”

“어떤 거요?”

“내 노예가 되겠냐고 한 질문.”

“……”

“이제 말해볼래요? 내 노예가 되겠어요?”

“노예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내 말에 복종하는 거죠.”

“모든 걸요?”

“네.”

“……”

“조금 전 내가 당신과 나눈 느낌을 생각해봐요. 그 느낌, 계속 느껴보고 싶죠?”

“네.”

“그럼 말해요. 내 모든 말에 복종하는 노예가 되겠다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전 유부녀인데.”

“괜찮아요. 이혼할 필요도 없고, 남편에게 알릴 필요도 없어요. 아이에게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에요. 당신의 지금 생활에 바뀔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좋아요.”

“잘했어요. 이제 당신 입으로 말해봐요. 나 강현주는 박진석의 영원한 노예이다.”

“나, 강현주는… 박진석의 영원한 노예예요.”

“몸도 마음도 박진석의 것이다.”

“내 몸도, 마음도 모두 박진석 주인님의 것이에요.”

“좋아요, 잘했어요.”

“네…… 그럼 이제 저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매일 매일이 무척 즐거울 거에요.”

“네……”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에요. 내가 셋을 세면 내일 아침까지 아주 깊은 잠을 잡니다. 그리고 오늘 밤의 일은 모두 잊는 거에요. 마음으로만 나의 노예라는 걸 인식하는 겁니다. 알겠죠?”

“네.”

“자, 하나, 둘, 셋!”









“아침부터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네?”

“뭘 생각하길래 그렇게 넋이 나갔냐구요!”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긴요. 어째 영 바람난 아저씨 갔구만.”

“뭐라구요?”

“어? 정말 이상하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정말 바람이라도… 난 거에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이양을 눈길이 매섭다.



“근데 수영씨 들어오기 전에 노크는 좀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했거든요! 그것도 여러 번!”

“그, 그랬어요?”

“네!”

“그랬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모닝커피 드시라구요. 매일 하던 일인데 오늘따라 새삼스레 왜 그러세요? 주말 동안 정말 뭔 일이 있었던 거에요?”

“일은 무슨……”

“안되겠어요.”



내 책상 뒤로 돌아오는 이양의 행동에 몸이 움찔해진다. 무슨 짓을 하려고?”



“잠깐 일어나 보세요.”

“왜, 왜 그래요?”

“일어나 보시라구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 서자 이 양이 내 몸을 잡아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 지퍼를 내리곤 내 물건을 찾더니 밖으로 끄집어 내려 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가만히 계세요! 수상한 건 선생님이라구요. 조사를 좀 해야겠어요.”



한 손으로 혁대를 잡아 내가 도망갈 수 없게 하더니 이내 열린 지퍼로 그녀의 손이 들어와 속옷을 헤집어 내 물건을 잡아 끄집어 꺼냈다. 그 순간의 황망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강제 성추행의 대상이 때로 남자가 될 수도 있다는 그 섬뜩함.



“이거로군요.”

“뭐, 뭐가요?”

“선생님의 흉기!”

“휴, 흉기?”

“흉기죠. 사람 몸을 찌르는데 당연히 흉기가 아니고 뭐겠어요?”



이런, 황당한!



“이렇게… 생겼군요. 흠……”



내 물건을 바라보는 이양의 눈이 묘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그만해요.”



다시 집어 넣으려는 내 손을 이양의 매몰차게 뿌리치며 고개를 올려 나를 노려봤다.



“가만히 계세요. 아직 조사 안끝났어요”

“기가 막혀서……”

“상태로 봐서는… 깨끗하군요.”



어이가 없다. 당연히 오늘 아침에 샤워를 했으니 깨끗할 수 밖에.



“그렇다면… 킁킁!”



이양이 코를 그곳에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그리곤 점차 내 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던 한 순간, 그녀의 행동이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 눈 속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함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이양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느린 걸음으로 상담실을 나갔다. 문은 닫지도 않고 그냥 둔 채였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금 황망해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가 왜 그러는 것인지. 혹시 무엇인가를 눈치 챈 것은 아닌지.



문을 닫기 위해 상담실 입구에 서서 이양을 봤다. 이양은 언제나처럼 자리에 앉아 서류철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익숙한 듯하면서도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었다. 분명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 것도 같은데 이양은 아무런 내색 없이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문을 닿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나를 훑어봤다. 내 눈에는 남들이 발견할만한 특별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양이 발견한 그것은 나는 눈치챌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감각인지도 몰랐다.









“선생님!”

“네.”

“지난 번 왔었던 연주학생, 상담하러 왔는데요.”



의외였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머님도 오셨나요?”

“아뇨, 혼자 왔어요.”

“그렇군요. 지금 시간 스케줄은요?”

“1시간 30분 뒤에 예약이 있어요.”

“그럼 들여보내세요.”



잠시 후 지난 번 울며 나갔던 연주양이 상담실 문을 들어섰다. 지난 번과 달리 그녀의 모습이 제법 학생답게 화사했다. 화장도 했고 옷맵시도 상큼한 학생다운 느낌이었다. 스키니 진이 무척 잘 어울렸다.



“어서 와요. 잘 지냈어요?”

“네.”

“차 한 잔 할래요?”

“네.”

“커피? 녹차?”

“커피요.”



인터폰을 눌렀다.



“우리 커피 좀 주겠어요?”

“네, 주인… 아니, 선생님.”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연주양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해있었다. 얼굴이 붉어져왔다. 이양의 전격적인 복수에 당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 없는 일.



“지난 번에는 미안했어요.”



지난번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날린 나의 연속타에 연주양이 보인 행동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다면 오늘도 이야기를 풀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더 죄송했어요. 너무 정곡을 찌르셔서……”

“이제 마음은 좀 정리가 된 것 같네요.”

“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와 누군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는 제 마음의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기왕에 누군가 알게 됐고, 또 숨길 수 없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 생각했군요. 맞아요.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죠. 그래야 현실에 대한 미래의 대처도 올바르게 할 수 있으니까요.”

“네. 그래서 기왕에 상담을 받을 거면 절 알아봐주신 선생님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왔어요.”

“그랬군요.”

“잘 부탁드릴게요.”

“부탁은요. 그냥 이웃집 오빠에게 사정 이야기 한다 생각하세요. 하하……”

“아직 미혼이시죠?”

“네.”

“그럼 오빠라고 해도 되겠네요.”

“결혼했으면요?”

“그럼 오빠보단 삼촌이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좋은 구분법이군요. 하하하……”

“헷……”



가볍게 웃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이 귀여움이 연주양의 매력인가 보다. 그렇게 연주양을 살펴보는 데 이양이 들어와 차를 놓고 나간다. 차를 내려 놓고 나가는 그 시간 사이에도 이양에게서는 찬바람이 불어온다.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된 걸까?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아 보이는데… 남자친구와는 어떻게 정리가 됐나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연주양이 차분한 눈길로 손에 든 커피를 바라본다.



“네.”

“궁금하군요.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거였어요. 그 사람 결국……”



연주양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느끼게 된다. 문제를 피하려 하기 보다 맞서려고 할 때, 문제의 실체도 보이고 해결책도 알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결말이 났군요. 음… 현실은 생각보다 차갑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따뜻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이제 곧 연주양의 마음을 녹여줄 사람을 만나게 될 거에요.”

“그럼 좋구요.”

“그래 요즘 잠은 어때요?”

“잠은 제법 잘 자요. 그런데……”

“그런데 왜요?”

“전에 없이 좀… 가위에 눌리곤 해요.”

“가위…요?”

“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운 꿈을 꾸다가도 깨고 싶은데 깨어나기 어렵고…”



불면증이 해소되면서 오히려 악몽을 꾼다? 심리적 전이상태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갖는 불안감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연주양은 어떤 심리적 전이를 겪고 있는 걸까? 분명히 전과 다른 변화가 있었을 건데. 그게 뭘까?



새로운 문제를 찾아 연주양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만 그 변화의 실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주어지는 새로운 도전과제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이 정도 하죠. 심리적 불안감이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악몽도 꾸는 것 같은데, 간단한 안정제를 처방해줄 테니 복용해봐요. 먼저 5일치를 해드리죠. 다음 주에 올 때 효과가 있었는지, 또 어떤 마음의 불안감이 문제였는지도 혹시 알게 되면 말해줘요. 알겠죠?”

“네.”

“다음 상담시간은 나가면서 이양과 상의 해보세요. 스케쥴은 이양이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생각하기. 알았죠?”

“네. 헤헷…”



수줍은 미소로 나가는 연주양을 배웅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상담일지를 정리한다. 주요 상담내용에 대한 사실적 기술, 머리가 아닌 심장이 느낀 감정, 지난번과 이번의 연주양의 상황적, 심리적 변화, 해결된 것과 해결해야 할 것, 향후의 임시적 계획과 방향성 등.



내 손으로 적혀진 모니터상의 글자들을 바라보다 시선이 창 밖을 향한다. 문득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 다시 연주양과의 이야기를 더듬어 본다. 지난 번에 느낀 연주양에 대한 생각과 비교해 본다.



“저 얼마나 더 와야 할까요?”

“그건 연주양 상태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네… 혹시 좀 길게 올 수도 있는 건가요?”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고, 가능하면 오래지 않는 게 좋겠죠. 왜요?”

“아, 아니에요. 아무 것두……”



(혹시?)



인터폰을 눌렀다.



“네, 선생님.”

“연주양 다음 스케줄 잡았나요?”

“네. 다음 주 월요일이에요.”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었나요?”

“진단서 떼는 걸 물어보더군요.”

“그래서요?”

“다음에 올 때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죠.”

“그랬군요…...”



아무래도 내가 속은 것 같다. 급격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순수하지 않은 세상. 그것이 내가 사는 현실이란 삭막한 곳이다. 천사라 해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어두운 세상. 천사의 빛이 가려지는 세상. 그래서 천사조차도 숨쉬기 어려운 세상. 가슴이 자꾸 답답해져 온다.



“그런데, 선생님.”

“왜요?”

“지퍼에 있는 자국 좀 지우시죠.”

“뭐라구요?”

“선생님 사생활이야 제가 뭐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남 보이는 그런 흔적은 좀 그렇잖아요?”



급하게 바지 앞을 내려다 봤다. 검은 바지에 뭐가 묻었으면 금장 표가 날 텐데 내 눈엔 딱히 보이는 게 없다. 그러다 조금 더 자세히 내려다 보고서야 알았다. 바지 지퍼 양쪽으로 나뉘어 희미하게 보이는 립스틱의 흔적.



“이, 이런,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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