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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소원있어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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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97회 작성일 20-01-1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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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소원있어요.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아이가 17살, 고등학생 1학년이 되던 해 였다.



엄마랑 형을 따라와 상담하는 내내 그 아이는 특히 장난스러웠고 웃을때 귀여웠다.



그 아이와 같이 공부했던 처음 1년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특별하게 여길 것이 없어 그냥 지나갔는지도.



그땐 그 아이 형이 수험생이였고, 그 친구들을 대학 보내기 바빴다.



1년쯤 후 그 아이가 고등학생 2학년이 되었을때 부터였다.





-



"유승호 이번 모의고사 점수 왜이래. 뭐가 문제야."

"아무 문제 없는데요."

"5등급 이라니.

내가 이번 시험 준비할때 부터 불안했어. 계속 정신차리라고 얘기 했잖아. 근데 결국 이래."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께 뭐있어. 그냥 속상해서.

난 그냥 니가 5등급에 걸려 넘어져도 그자리에 주저앉지 않길, 다시 일어서길, 옆에서 손잡아 주고 일으켜줄껀데.

그 손 뿌리치지마."



승호는 대화 내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 숙이며 목인사만 하고 돌아 나갔다.



작년 내내 모의고사 내신 등급 2,3등급을 꾸준히 유지하며 속한번 안썩혔고,

숙제불이행 이나 무단결석 문제 없이 성실했던 친구인데.

조금 변했다.

장난치는걸 좋아하고 그렇게 예쁘게 웃던 아이가.



승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그리고 한달 후,



"승호 또 안왔어?"



결석이 더 잦아졌다.

어머님께 전화 하려다 일단 승호랑 대화를 해봐야 겠다 싶어, 문자를 남겼다.



유승호. 열두시 까지 학원으로 와. 안그럼 엄마한테 전화한다."



수업이 끝나고 새벽 한시가 다 되어서야, 띵동.

승호가 왔다.



"저 왔어요."

"늦었네."

"죄송합니다."

"일단 앉아."



음료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야단을 칠까 타이를까.



"유승호, 요즘 위험해 보여."

"뭐가요."

"내가 뭐 도와줄수 있는게 없을까."

"없어요. 전괜찮아요."



승호는 날이 뾰족하게 선 수많은 가시가 박힌 옷을 입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왜 그러는지.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궁금했다.



승호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또 다른 한달 후,



한참 새벽중 전화가 왔다. 낯선번호.

이상한 느낌으로 받은 전화 수화기 넘어로 승호가 벌벌 떨며 흐느끼듯 말했다.



"선생님...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좀 많이 다쳐서요... 혹시 지금 좀 와주실수 없으세요...?"



어떻게 된건지, 부모님은 어디계시는지, 자초지정은 뒤로한채,

그대로 일어나 어떻게 운전을 해서 병원에 도착했는지.

미친듯이 응급실을 해맸다.



"선생님."



승호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여기저기 밴드를 붙히고 옷에는 피가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생각보다 괜찮은 모습에 다행이라 느꼇는지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났다.



"승호야... 너 뭐야.

괜찮은거야? 어떻게된거야?"





놀라 횡설수설 하는 나를 보고 승호가,

승호가 웃어 보였다.



얼마만인지.

웃는 승호를 보는게 얼마만인지.

얼마나 승호가 웃는게 보고 싶었던지.



그 상황에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나도 따라 피식 웃어 버렸다.



"죄송해요 선생님. 엄마아빠랑 형 입대하는데 따라가셔서 집에 아무도 없거든요.

친구랑 오토바이 타다가 좀 다쳤는데 돈도 없고 너무 피곤한데 연락할데가 선생님 밖에 없어서요..."



그러고는 또 씨익 웃어 보인다.

정말 참.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순간에 난 왜 또 따라 웃은건지.





야단 치고 혼내고 부모님께 알린 후 입원을 시켜야 했겠지만, 일단.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 여기 수건. 혼자 씻을 수 있겠어? 필요한거 있으면 불러.

쌤 거실에 있을께."

"네 감사합니다 헿."

"뭐야. 큰 사고 쳐놓고 지금 웃음이 나와?"



승호는 웃음을 숨기는척 입을 내밀었다.



"씻고나와."



거실 화장실로 승호를 들여 보내고,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밑에 도톰한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어쩌지.



"와 쌤 저 여기서 자요?"

"응."

"저 쌤방 처음 들어와봐요. 와 좋다."

"니가 선생님 방에 들어온 첫학생이야. 불편하겠지만 편하게자."



샤워를 하고 나온 승호는 젖은 머리를 그대로 배게에 대려고 했다.



"잠깐 머리는 말리고 자자. 일로와봐.

드라이기 연결해줄께. 머리 말리고 다시 여기에 꽂아놓으면 돼."



그 때,



"아아아아아야아야. 선생님 저 팔 아파서 머리 못말리겠어요. 아야아야."

"그래서."

"쌤 좀 말려주세요 헿"



그 모습이 익숙했다.

어쩐지 오늘은 다시 예전으로 조금 돌아온것 같다고 느껴졌다.

장난치는거 좋아하는 짖궃은 고등학생으로.



"까분다."



내심 이런 승호와의 유치한 장난이 너무 오랜만이고 그리웠는지,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자꾸 웃음이 나오고 승호 머리카락이 만지고 싶어

애써 그런 모습을 숨기려 화장대 뒤를 지나치려는데.



승호가 팔을 잡았다.



"아앙 선생님. 저 진짜 어깨가 너무 아파요..."



졌다.



어느새 드라이기를 집어들고 승호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말려주고 있었다.

힐끗 거울로 본 승호는,

승호는 웃고 있었다.



머리를 어느정도 말려주고 야식으로 라면까지 끓여 먹여 눕히고,

나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선생님. 엄마 한테 말씀 하실꺼에요?"

"뭘."

"저 오늘 오토바이 탄거랑 다친거랑요."

"응 당연하지."

"아 선생님... 저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요즘 벼르고 계신단 말이에요."

"아는데 그래?"

"선생님... 손가락은 그냥 학교에서 농구하다 다쳤다고 할께요.

이번 한번만 비밀로 해주세요. 네?"

"그럼 약속해. 너 그동안 알게 모르게 결석한거 시험전까지 다 보충하기로."

"네!"



그래 처음부터 어머님께 말씀드릴 생각이 아니였을지도.





다음 날,

뜬 눈으로 한 한두시간쯤 누워 있었나.

해가 뜨자 아침을 준비하고 승호를 깨웠다.



"학교 까지 태워다 줄께. 그리고 이따 점심때 다시 학교로 갈테니까 시간 맞춰 나와.

병원 다시 가보자."

"네 헿"



승호가 오늘도 웃는다.

승호가 웃으니까 좋다.

승호가 계속 웃어서 내가 계속 좋았으면.



-



그 사건 이후,

나와 승호 관계가 다시 예전처럼 좋아졌다고 믿었다.

학교 가지 않는 금요일밤 12시 이후를 이용해 보충도 잘 진행 되었다.



"유승호! 다음주가 시험인데 잠이 오지 지금!"

"아 쌤 으헝헝 너무 졸려요ㅜㅜ"

"아이스커피 줄께. 자지 말고 책보고 있어."

"쌤 우리 아이스커피 편의점 으로 가서 먹어요."

"그래 그러자. 산책도 하고 잠도 좀 깰겸 나가자."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꽤 쌀쌀한 9월의 가을 밤에, 그 밤에.

승호와 둘이 나란히 아무도 없는 가로등 길을 천천히 걸었다.



"선생님, 저 이번 2등급 받으면 소원 들어줘요."

"6월에 5등급 나온애가 하루아침에 잘도 2등급 나오겠다."

"에이~ 그러니까 제가 2등급 받으면 소원쯤은 들어주셔야죠."



우리 사이가 언제 서먹 했냐는듯

마치 처음 처럼 또 어제가 처음 이였던 것 처럼 우리는,

우리는 같이 걸었다.



어느새 승호 키는 나보다 훨씬 커있었다.

내 어깨가 승호 팔뚝에 닿아 살짝씩 서로 부딫혀 가며 우리는,

우리는 같이 걸었다.



-



승호는 아깝게 2등급을 받아 내지 못했고

소원은 보류됐다.





"아 엉엉 선생님."

"이것봐. 몇달 놀아서 떨어진 성적이 어째 한달 만에 다시 오르냐."

"아 선생님 저 지금 진짜 짜증나 죽을것 같단 말이에요."

"그만한 짜증으로 쉽게 사람 안죽어."



승호는 남은 2학년 동안 계속 2등급의 문턱에서 좌절 해야 했고,

또 승호는 내가 영영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걱정 해야 했다.



-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승호는 3학년 수험생이 되었다.



그동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승호와 나 사이에는 비밀이 하나 생겼다.

겨울방학이나 개학전 몇주를 제외하고 줄곧,

금요일밤 토요일밤을 학원에 혼자 남아 개별보충을 진행한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나 학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분명 문제가 될 일이다.



그날 밤 역시 열두시 넘어 새벽까지 단둘이

나는 연구를 승호는 자습을 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승호 얼굴을 보다 말했다.



"3학년 첫 모의고사 2등급 찍으면 소원 들어줄께."

"어 진짜요?"

"응 진짜.

근데 소원이 뭔데?"

"오예! 소원은 비밀이에요."

"에이 뭔데. 알아야 나도 할수 있나 없나 준비를 해주지.

얼만데 많이 비싸?"

"선생님 답네요 ㅋㅋㅋ 근데 물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비밀이라니까요. 2등급 받으면 말해줄께요."

"와 힌트라도 좀 주지?"



그때만 해도 영 어떤 소원일까 짐작도 못했다.

그렇게 첫 모의고사를 치르고,

이상하게 승호는 또 3등급을 받아왔다.



"휴...전 안돼나봐요."

"같은 3등급이라도 작년에 비해 점수는 올랐잖아.

3학년 올라와서 2학년때 보다 점수 오른것만 해도 대단한거야. 잘했어."

"아 저 진짜 갑자기 너무 하기 싫어요 선생님."

"우리 내신 점수 받아 놓은 것도 있잖아.

중간고사 까지 쳐보고 수시로 갈지 정시로 갈지 결정하자."



3등급을 받은 승호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남아서 좀 더 자습을 했다.

고3은 수업이 12시에 끝나니

집에 가는척 하면서 학원을 나가지 않거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거나 하면서.



승호 어머님은 항상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고,

난 그때마다 알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



그렇게 또 다른 시험인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중

그날은 승호가 일이 있다며 수업 끝나고 자습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 다음 수업날에도 피곤하다고 그냥 집에 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유승호, 이런식으로 일있다고 하루 피곤하다고 하루 빠질꺼야?

이제 진짜 시작인데 벌써 지친거야?"



괜히 야단을 쳤다. 짜증을 냈다.



사실 내가 서운했으면서.

그냥 가버린 승호가 밉고 밤새 보고 싶었으면서

난 이상하게 그렇게 했다.



"죄송해요. 일이 있었던 날은 같은 반 여자애가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길래 그랬고

그 다음날은 진짜 너무 피곤했어요. 죄송해요."

"니가 지금 여자애나 만나고 있을때야?"



진심이 아니다.

질투가 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승호는 진심으로 나를 무서워 하는것 처럼 보였다.

나도 무서웠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화내서 또 승호랑 멀어지면 어쩌지.



"나가. 오늘 보충 없어.

나도 피곤하면 내 마음대로 보충 뺄꺼야. 나 지금 피곤해. 나가."



그렇게 말하고도 후회.

진짜 나가면 어쩌지 했는데

진짜 나갔다.







정말 나 뭐하는 거지.

나 왜 이러지.

나 미친것같애.



그렇게 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멍하니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띵동.



"선생님 죄송해요. 이거 드시면서 화푸시고 오늘 저 보충 해주세요.

지난주에도 못했잖아요. 네?"



비타민 음료를 사들고 와서 예쁘게 웃는다.

그래서 나는 그런 승호를,



승호의 뺨과 내 뺨이 맞닿게 승호 목을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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