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을 찾는 삼각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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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77회 작성일 20-01-17 16:44본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삼각사. 아담한 규모에 볼것도 없는 이 절.
그러나 이절에는 3가지가 유명하다. 그 유명세는 암암리에 퍼져서 서울의 높은 양반들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 3가지는 거대한 바위에 암각된 약사여래상과 주지스님인 무애스님, 그리고 동자승인 상준.
원래 약사여래는 병을 관장하는 부처다.
그러나 삼각사의 약사여래는 남자의 정력과 부인들의 득남에 효염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울의 고관대작과 그 부인들이 많이 찾는다.
일주일에 몇차례씩 외제차의 발길이 드는 것을 보면 효염이 대단하다는 말이 거짓만은 아닌것 같다.
서울에서 오는 높은 양반들의 발걸음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부인들은 남편의 정력과 득남을 위해 약사여래상으로 가고 그 부인들의 남편은 무애스님에게 간다.
70세 정도로만 생각되는 삼각사 주지 무애스님.
한때 무승(武僧)이었다고만 알려져 있을뿐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삐쩍 꼴아서 힘을 쓸수나 있을지...
삼각사의 모든 중들은 그런 무애를 보며 말년병장이 신병들한테 이빨을 까듯 뻥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단 한사람. 삼각사를 유명하게 만든 동자승 상준만 빼고 말이다.
사실 삼각사의 약사여래가 유명하게 된 것도 모두 무애스님때문이었다.
부인과 지리산에 놀러온 서울의 갑부가 삼각사에 잠시 들러 구경을 하고 있을때였다.
그 부부는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 어른들께 엄청난 구박을 받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온 여행이었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 보고 있을때 그런 부부를 보고 무애가 다가와 그 부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남자는 그런 무애의 눈빛이 기분 나빳지만 절에서 멱살잡이를 할 수는 없었다.
"스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남자의 질문에도 두 부부만을 뚫어지게 보는 무애.
"흠흠.. 아무래도 미친 중인가 보군. 여보 갑시다."
"네."
계속 자신들을 보는 무애는 눈빛에 참을성을 잃은 남자가 부인을 데리고 경내를 나서려는 찰라.
"원앙이 씨가 없으니 참새한테도 구박을 받는구만."
거침없이 터지는 무애의 말에 두 부부의 걸음이 멈췄다.
'원앙이 씨가 없으니... 참새한테도 구박을...'
튕기듯 돌아선 남자의 눈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스님 그 말씀의 뜻이 뭡니까?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세요. 예?"
무애의 말에 뭔가를 알고 있다고 느낀 남자의 애절한 목소리.
그러나 무애는 말에선 퉁명스러운 음성만 나왔다.
"미친 중이 꿈꿨나 보지. 미친 중의 말을 들는 놈도 미친놈이야."
말이 끝나자 마자 휭 돌아서 들어가 버리는 무애.
그런 무애를 보고 멍하게 서 있는 두 부부는 아무말도 없이 무애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뒤 혹시나 하던 부인의 부탁으로 무애의 앞에 3일간 사죄한 두 부부.
그런 부부에게 무애는 약사여래에 일주일간 7천배를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아들이 급했던 두 부부는 미친척하고 7천배를 하며 경내에 머물렀고 4달 뒤 배가 남산만한 부인과 남편이 삼각사에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절에 불상을 세워준다 건물을 지어준다 난리를 쳤지만 무애는 완강히 거절을 했고 그 소문은 서울의 힘있는 사람들에게 퍼져 삼각사를 유명하게 했다.
그것이 10년전이다.
지리산 자락에 접어드는 시가 2억의 벤츠.
운전을 하는 40대 중반의 약가 배가 나온 남자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지 구불구불한 길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창밖을 보는 30대 중반의 여자도 익숙한듯 의미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용국.
알짜배기 회사로 소문난 제일전자 사장.
제일그룹 계열사 회장인 아버지 정필성의 3째 아들로 경영수업겸 테스트로 제일전자의 경영을 맡겼다.
만년 적자의 회사고 그룹의 골치덩이인 전자회사를 터넘기며 큰기대를 하지 않았다.
부도가 나던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던 아쉬울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전자회사를 맡긴지 3년.
그러나 관심밖에 있던 전자회사의 혁명적인 성과를 접한 회장은 심장이 배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가 정상의 괴도로 진입한 것 뿐 아니고 서서히 이익을 내면서 재계의 떠오르는 강자로 부상을 했기 때문이다.
신문에선 기업의 혁명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룹내에서나 경제계에서 정용국의 입김이 날로 강해져 갔다.
그러나 그러한 정용국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자기 아버지인 회장 정필성이 죽은 후 그룹의 향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장남인 큰형이 내정되 있지만 그의 고리타분한 경영철학과 친권력적인 성향은 자칫 그룹의 해체를 부채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룹의 총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전자회사만으로도 세계 일류 회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니처럼..
그러나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룹안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고 독자적인 경영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부친이 죽으면 그것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욕심많은 형이 그것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때 삼각사의 소문을 듣게 되었고 몇번을 찾아갔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뚜렷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늘은 꼭 뭔가를 얻어오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삼각사를 향해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정용국의 옆에 앉아 창밖을 의미없이 바라보고 있는 30대 여인 김선미.
미국 유학시절 정용국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 여인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답지 않게 뛰어난 외모와 몸매,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정용국과의 사이에 14살 큰딸 정한나와 13살 정한미를 두고 있지만 아들에 대한 욕심은 없다.
정용국과 삼각사로 같이 가는 이유는 남편의 건강때문이다.
평소 남편의 건강과 둘 사이의 섹스에 별 이상이 없었지만 시아버지인 필성의 나이가 많아지자 남편의 건강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회사와 그룹의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겠지하며 보약이다 음식에 신경을 썼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자주 가위에 눌리는가 하면 밤샘 작업이 늘어나다 보니 둘 사이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섹스도 남족스럽지 못했다.
남편이 삼각사로 간다는 말을 듣고 알아봤더니 그곳이 남자들의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 따라 나서게 됐다.
삼각사 별채의 뜰.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을 하나하나 패고 있는 어린 동자승이 있다.
승복의 웃통을 벗어버리고 날렵하게 도끼질을 하는 동자승의 온몸엔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그런데 그 동자승은 일반 동자승과 다른 모습이다.
긴 머리에 잘 발달된 근육은 둘째치고 얼굴이 너무 이쁘게 생겼다.
머리를 곱게 빗고 옷을 입혀 놓으면 여자라고 해도 믿을만큼 이쁘게 생긴 동자승이었다.
또 그가 쓰는 도끼도 일반 도끼와 다른 것이었다.
일반 도끼보다 크고 두꺼운 도끼날.
나무로 도끼자루를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동자승이 쓰는 도끼는 자루가 쇠로 되어있고 길이도 길었다.
한 힘 쓴다는 깍두기들도 그런 도끼로는 30분도 안되서 나가 떨어질 것 같은 묵직한 도끼로 동자승은 2시간 가까이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도끼질에 매진하고 있을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준아! 상준아!"
"..."
상준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만 돌린 상준은 다시 작장을 패기 시작했다.
"얌마!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 될거 아녀."
"왜요?"
"자식이 말하는 뽀대하곤. 주지스님이 찾는다. 동산에 계셔."
"뭣땜에?"
"내가 어떻게 알어? 그리고 오라면 오지 뭔 대꾸야. 싸가지 없게..."
"장작 패야 되는데..."
"당장 오라니까 빨랑 가봐"
그제서야 하던일을 멈추고 땀을 닦는 상준.
도끼를 세워놓고 옷을 찾아 입는다.
"장작 안해 놯다고 뭐라하지 마쇼"
하곤 자신을 부르러 온 스님에게 도끼를 던져 준다.
얼떨결에 도끼를 받아든 스님은 도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춤거리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모습을 본채 만채하며 동산을 향해 걸어가는 상준을 보는 스님은
"저 새끼가 어떻게 삼각사의 3대 명물이 됐지? 볼꺼라곤 무식한 힘밖에는 없는데.."
뒷동산.
삐쩍 마른 노승이 넓직한 바위위에 앉아 눈을 감고 참선이라도 하는양 앉아 있다.
삼각사 3대 명물중에 하나인 무애스님.
무애스님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긴머리를 휘날리며 상준이 걸어와 선다.
"자는거 다 알아요"
다짜고짜 뺏어내는 상준의 말에 살며시 눈을 뜨는 무애.
"부처님은 속여도 네놈은 못속이겠구나."
"왜 불렀어요? 아직 장작도 다 안했는데."
"불무도 연습은 잘 하냐?"
"불무도는 무슨.. 그냥 흐느적 거리는 춤 같더만.."
딱...
상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뭔가가 날아와 상준의 머리를 때렸다.
"춤이라니! 니 명줄을 이어줄 무예라고 몇번을 말했느냐."
"평생 절간에서 살 놈이 뭐 어려운게 있다고..."
딱...
"우쒸.. 자꾸 때릴꺼에요?"
"한번 해봐라."
쭈삣쭈삣 대는 상준을 노려보는 무애의 눈이 심상치가 않다.
"하면 되잖아요."
순간, 나비가 춤을 추듯 사뿐사뿐 걸으며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 상준.
그런 모습을 보는 무애의 눈이 한층 빛을 발하고 있다.
상준의 불무도가 막바지에 다다라는지 점점 격해지자 무애가 상준을 제지시킨다.
"됐다."
호흡을 가다듬는 상준이지만 격한 불무도의 시범에도 힘들어하거나 하는 기색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근본은 무엇이냐?"
"사람이죠"
"절밥을 먹었는데도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는냐?"
"빌어먹을 중생이 있어야 부처님도 있지"
"헐헐헐.. 니놈이 부처님이라고 했으면 당장 니놈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릴려고 했다."
"..."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은 있냐?"
"없으면 거짓말이게?"
"때가 됐나..."
"스님"
"왜?"
"죽으러 가슈?"
"헐헐헐.. 부처님은 속여도 니놈은 못속이는구나."
"..."
"깨끗이 씻고 저녁먹은 다음에 오너라."
어리둥절한 상준을 뒤로하고 사뿐사뿐 내려가는 무애를 보는 상준의 눈에서 소리없이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깨끗이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은 상준은 무애의 지시대로 무애를 찾아갔다.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앉은뱅이 책상에 호롱불이 전부인 방.
그러나 은은한 다향이 베어있는 방이었다.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무애와 상준이 조용히 앉아 있다.
무거운 침묵을 깨듯 눈을 감은채 무애가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널 맡아 주실 분들이 오신다."
"가기 싫은데..."
"인연이란 맺음도 중요하지만 끊음도 중요한법. 니놈이 말한 근본을 항상 생각하며 살거라."
"스님 죽을때까지만 있으면 안되요?"
"어허.."
"..."
그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주지스님. 서울에서 보살님이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뫼셔라."
무애의 방문을 열고 한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정용국과 김선미.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하지만 무애는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무애의 옆에 앉아 있는 상준만이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잠시동안 어색함이 흐르고 무애가 눈을 떴다.
"앉으시지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오늘은 집사람도 같이 왔서 인사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 용국과 선미.
무애는 상준에게 낮게 호통을 친다.
"뭐하느냐. 인사 여쭈어라."
"안녕하세요. 상준이라고 합니다."
마지못해 하는양 인사를 하는 상준을 용국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큰 스님.저 아이는 누굽니까?"
"저희 삼각사에 유명한 것이 3개 있다것은 아시겁니다. 이 녀석이 그 중 하납니다."
무애의 말에 놀라는 용국과 선미.
상준이라는 이름만 들었을뿐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그들은 이제 15세나 될 상준이 그 장본인이라는 것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에 할말을 잃은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듯 무애가 입을 열었다.
"보살님."
"예.. 큰 스님."
"칼부림 나는 싸움터에 가시면서 어찌 은장도로 맞서려 하십니까?"
"음....."
"3자 여섯 치의 칼들이 난무하는데 그 검풍을 어찌 할꼬..."
"큰 스님..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뭔가 알고 계시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 말만을 남기고 무애는 입을 닫아버렸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온것을 알아차린 용국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스님. 뭐든 시키시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이 일은 저 뿐이 아니고 우리 천명의 식구들의 일입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
"큰 스님!"
"보살님."
"예. 큰 스님."
"보살님은 지장이요 용장이십니다. 또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학자이십니다. 허나 밖에 따르는 무리가 있어도 안의 도적을 잡지 못하니 그 위맹함을 떨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무릇 충신과 열사가 안의 도적에게 죽었으니 그 집안에 썩은 서까레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선조의 사당이 있는 집을 일시에 허물고 다시 짓자니 후대의 패륜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고 바라만 보고 있자니 위험을 간과하는 꼴이니 보살님의 처지가 진퇴양난입니다."
"맞습니다. 요즘 저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그 방법이 뭡니까?"
"집안의 중앙에 튼실한 기둥을 설치해 놓으면 됩니다. 섞은 기둥을 쓰러져도 하늘을 받쳐주는 기둥말입니다."
"그럼 양자를 두란 말입니까?"
용국이 말을 뱉으면서 선미를 쳐다봤다.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을 한 선미는 침만 꼴깍 삼키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무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이는 올해 15살입니다. 이 아이가 만 20살이 될때까지 집에 거느리고 계십시오. 그때까지 보살님에게 오는 어려움을 이 아이가 막아드릴겁니다."
"큰 스님. 저 아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저를 막아주겠습니까?"
"이 무애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저 아이를 거둔 것입니다. 이 무애의 말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보살님은 2년을 견디지 못할겁니다."
"큰 스님. 그럼 저 아이를 양자로 들이란 말씀입니까?"
"그냥 먹여주고 재워 주기만 하면 됩니다. 단, 한 지붕아래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당장의 곤란을 넘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을뿐 불의 근원은 저 아이가 끌 겁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무애의 얘기를 듣던 용국은 고개를 숙인채 고민에 빠져있었다.
용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반신반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옆에 있는 선미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사업만으로 결정을 하기엔 미안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방안의 분위기는 더욱 답답해만 갔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고 그땀들이 얼굴을 타고 턱에 맺혀 떨어졌다.
그때 방안의 분위기를 바꾸듯 선미의 입이 열렸다.
"알겠습니다. 큰 스님의 말씀대로 할게요."
그 음성을 들은 용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흔쾌히 대답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낄 뿐이었다.
"상준아 뭐 하느냐. 두 분께 큰 절하지 않고!"
상준은 무애의 호통에 용국과 선미에게 큰 절을 하고 하였다.
날이 밝고 삼각사를 떠나는 벤츠 한대에는 올때와 다르게 한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
용국과 선미. 그리고 상준이었다.
용국은 어느정도 성과를 얻은듯한 편안함이 있었고 선미는 그런 남편을 보며 자신도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은 상준의 그들과 달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큰 스님. 극락왕생하세요.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준을 룸 밀러로 보고 본 용국이 물었다.
"왜 그렇게 우니? 큰 스님 곁을 떠나서 슬픈가 보구나! 걱정하지 마라. 집에가면 니 또래의 동생들이 있으니까."
"그래. 동생들하고 지내다보면 금방 괜찮아 질거야."
그러나 상준은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큰 스님이... 큰 스님이..."
상준의 울먹임에 의아해 하는 용국과 선미.
"오늘 저녁에 입적하세요. 오늘 저녁에..."
상준의 울먹임. 그러나 단순히 어린아이의 농으로 생각한 용국과 선미는 믿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이절에는 3가지가 유명하다. 그 유명세는 암암리에 퍼져서 서울의 높은 양반들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 3가지는 거대한 바위에 암각된 약사여래상과 주지스님인 무애스님, 그리고 동자승인 상준.
원래 약사여래는 병을 관장하는 부처다.
그러나 삼각사의 약사여래는 남자의 정력과 부인들의 득남에 효염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울의 고관대작과 그 부인들이 많이 찾는다.
일주일에 몇차례씩 외제차의 발길이 드는 것을 보면 효염이 대단하다는 말이 거짓만은 아닌것 같다.
서울에서 오는 높은 양반들의 발걸음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부인들은 남편의 정력과 득남을 위해 약사여래상으로 가고 그 부인들의 남편은 무애스님에게 간다.
70세 정도로만 생각되는 삼각사 주지 무애스님.
한때 무승(武僧)이었다고만 알려져 있을뿐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삐쩍 꼴아서 힘을 쓸수나 있을지...
삼각사의 모든 중들은 그런 무애를 보며 말년병장이 신병들한테 이빨을 까듯 뻥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단 한사람. 삼각사를 유명하게 만든 동자승 상준만 빼고 말이다.
사실 삼각사의 약사여래가 유명하게 된 것도 모두 무애스님때문이었다.
부인과 지리산에 놀러온 서울의 갑부가 삼각사에 잠시 들러 구경을 하고 있을때였다.
그 부부는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 어른들께 엄청난 구박을 받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온 여행이었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 보고 있을때 그런 부부를 보고 무애가 다가와 그 부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남자는 그런 무애의 눈빛이 기분 나빳지만 절에서 멱살잡이를 할 수는 없었다.
"스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남자의 질문에도 두 부부만을 뚫어지게 보는 무애.
"흠흠.. 아무래도 미친 중인가 보군. 여보 갑시다."
"네."
계속 자신들을 보는 무애는 눈빛에 참을성을 잃은 남자가 부인을 데리고 경내를 나서려는 찰라.
"원앙이 씨가 없으니 참새한테도 구박을 받는구만."
거침없이 터지는 무애의 말에 두 부부의 걸음이 멈췄다.
'원앙이 씨가 없으니... 참새한테도 구박을...'
튕기듯 돌아선 남자의 눈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스님 그 말씀의 뜻이 뭡니까?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세요. 예?"
무애의 말에 뭔가를 알고 있다고 느낀 남자의 애절한 목소리.
그러나 무애는 말에선 퉁명스러운 음성만 나왔다.
"미친 중이 꿈꿨나 보지. 미친 중의 말을 들는 놈도 미친놈이야."
말이 끝나자 마자 휭 돌아서 들어가 버리는 무애.
그런 무애를 보고 멍하게 서 있는 두 부부는 아무말도 없이 무애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뒤 혹시나 하던 부인의 부탁으로 무애의 앞에 3일간 사죄한 두 부부.
그런 부부에게 무애는 약사여래에 일주일간 7천배를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아들이 급했던 두 부부는 미친척하고 7천배를 하며 경내에 머물렀고 4달 뒤 배가 남산만한 부인과 남편이 삼각사에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절에 불상을 세워준다 건물을 지어준다 난리를 쳤지만 무애는 완강히 거절을 했고 그 소문은 서울의 힘있는 사람들에게 퍼져 삼각사를 유명하게 했다.
그것이 10년전이다.
지리산 자락에 접어드는 시가 2억의 벤츠.
운전을 하는 40대 중반의 약가 배가 나온 남자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지 구불구불한 길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창밖을 보는 30대 중반의 여자도 익숙한듯 의미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용국.
알짜배기 회사로 소문난 제일전자 사장.
제일그룹 계열사 회장인 아버지 정필성의 3째 아들로 경영수업겸 테스트로 제일전자의 경영을 맡겼다.
만년 적자의 회사고 그룹의 골치덩이인 전자회사를 터넘기며 큰기대를 하지 않았다.
부도가 나던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던 아쉬울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전자회사를 맡긴지 3년.
그러나 관심밖에 있던 전자회사의 혁명적인 성과를 접한 회장은 심장이 배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가 정상의 괴도로 진입한 것 뿐 아니고 서서히 이익을 내면서 재계의 떠오르는 강자로 부상을 했기 때문이다.
신문에선 기업의 혁명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룹내에서나 경제계에서 정용국의 입김이 날로 강해져 갔다.
그러나 그러한 정용국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자기 아버지인 회장 정필성이 죽은 후 그룹의 향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장남인 큰형이 내정되 있지만 그의 고리타분한 경영철학과 친권력적인 성향은 자칫 그룹의 해체를 부채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룹의 총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전자회사만으로도 세계 일류 회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니처럼..
그러나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룹안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고 독자적인 경영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부친이 죽으면 그것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욕심많은 형이 그것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때 삼각사의 소문을 듣게 되었고 몇번을 찾아갔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뚜렷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늘은 꼭 뭔가를 얻어오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삼각사를 향해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정용국의 옆에 앉아 창밖을 의미없이 바라보고 있는 30대 여인 김선미.
미국 유학시절 정용국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 여인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답지 않게 뛰어난 외모와 몸매,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정용국과의 사이에 14살 큰딸 정한나와 13살 정한미를 두고 있지만 아들에 대한 욕심은 없다.
정용국과 삼각사로 같이 가는 이유는 남편의 건강때문이다.
평소 남편의 건강과 둘 사이의 섹스에 별 이상이 없었지만 시아버지인 필성의 나이가 많아지자 남편의 건강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회사와 그룹의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겠지하며 보약이다 음식에 신경을 썼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자주 가위에 눌리는가 하면 밤샘 작업이 늘어나다 보니 둘 사이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섹스도 남족스럽지 못했다.
남편이 삼각사로 간다는 말을 듣고 알아봤더니 그곳이 남자들의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 따라 나서게 됐다.
삼각사 별채의 뜰.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을 하나하나 패고 있는 어린 동자승이 있다.
승복의 웃통을 벗어버리고 날렵하게 도끼질을 하는 동자승의 온몸엔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그런데 그 동자승은 일반 동자승과 다른 모습이다.
긴 머리에 잘 발달된 근육은 둘째치고 얼굴이 너무 이쁘게 생겼다.
머리를 곱게 빗고 옷을 입혀 놓으면 여자라고 해도 믿을만큼 이쁘게 생긴 동자승이었다.
또 그가 쓰는 도끼도 일반 도끼와 다른 것이었다.
일반 도끼보다 크고 두꺼운 도끼날.
나무로 도끼자루를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동자승이 쓰는 도끼는 자루가 쇠로 되어있고 길이도 길었다.
한 힘 쓴다는 깍두기들도 그런 도끼로는 30분도 안되서 나가 떨어질 것 같은 묵직한 도끼로 동자승은 2시간 가까이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도끼질에 매진하고 있을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준아! 상준아!"
"..."
상준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만 돌린 상준은 다시 작장을 패기 시작했다.
"얌마!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 될거 아녀."
"왜요?"
"자식이 말하는 뽀대하곤. 주지스님이 찾는다. 동산에 계셔."
"뭣땜에?"
"내가 어떻게 알어? 그리고 오라면 오지 뭔 대꾸야. 싸가지 없게..."
"장작 패야 되는데..."
"당장 오라니까 빨랑 가봐"
그제서야 하던일을 멈추고 땀을 닦는 상준.
도끼를 세워놓고 옷을 찾아 입는다.
"장작 안해 놯다고 뭐라하지 마쇼"
하곤 자신을 부르러 온 스님에게 도끼를 던져 준다.
얼떨결에 도끼를 받아든 스님은 도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춤거리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모습을 본채 만채하며 동산을 향해 걸어가는 상준을 보는 스님은
"저 새끼가 어떻게 삼각사의 3대 명물이 됐지? 볼꺼라곤 무식한 힘밖에는 없는데.."
뒷동산.
삐쩍 마른 노승이 넓직한 바위위에 앉아 눈을 감고 참선이라도 하는양 앉아 있다.
삼각사 3대 명물중에 하나인 무애스님.
무애스님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긴머리를 휘날리며 상준이 걸어와 선다.
"자는거 다 알아요"
다짜고짜 뺏어내는 상준의 말에 살며시 눈을 뜨는 무애.
"부처님은 속여도 네놈은 못속이겠구나."
"왜 불렀어요? 아직 장작도 다 안했는데."
"불무도 연습은 잘 하냐?"
"불무도는 무슨.. 그냥 흐느적 거리는 춤 같더만.."
딱...
상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뭔가가 날아와 상준의 머리를 때렸다.
"춤이라니! 니 명줄을 이어줄 무예라고 몇번을 말했느냐."
"평생 절간에서 살 놈이 뭐 어려운게 있다고..."
딱...
"우쒸.. 자꾸 때릴꺼에요?"
"한번 해봐라."
쭈삣쭈삣 대는 상준을 노려보는 무애의 눈이 심상치가 않다.
"하면 되잖아요."
순간, 나비가 춤을 추듯 사뿐사뿐 걸으며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 상준.
그런 모습을 보는 무애의 눈이 한층 빛을 발하고 있다.
상준의 불무도가 막바지에 다다라는지 점점 격해지자 무애가 상준을 제지시킨다.
"됐다."
호흡을 가다듬는 상준이지만 격한 불무도의 시범에도 힘들어하거나 하는 기색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근본은 무엇이냐?"
"사람이죠"
"절밥을 먹었는데도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는냐?"
"빌어먹을 중생이 있어야 부처님도 있지"
"헐헐헐.. 니놈이 부처님이라고 했으면 당장 니놈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릴려고 했다."
"..."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은 있냐?"
"없으면 거짓말이게?"
"때가 됐나..."
"스님"
"왜?"
"죽으러 가슈?"
"헐헐헐.. 부처님은 속여도 니놈은 못속이는구나."
"..."
"깨끗이 씻고 저녁먹은 다음에 오너라."
어리둥절한 상준을 뒤로하고 사뿐사뿐 내려가는 무애를 보는 상준의 눈에서 소리없이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깨끗이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은 상준은 무애의 지시대로 무애를 찾아갔다.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앉은뱅이 책상에 호롱불이 전부인 방.
그러나 은은한 다향이 베어있는 방이었다.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무애와 상준이 조용히 앉아 있다.
무거운 침묵을 깨듯 눈을 감은채 무애가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널 맡아 주실 분들이 오신다."
"가기 싫은데..."
"인연이란 맺음도 중요하지만 끊음도 중요한법. 니놈이 말한 근본을 항상 생각하며 살거라."
"스님 죽을때까지만 있으면 안되요?"
"어허.."
"..."
그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주지스님. 서울에서 보살님이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뫼셔라."
무애의 방문을 열고 한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정용국과 김선미.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하지만 무애는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무애의 옆에 앉아 있는 상준만이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잠시동안 어색함이 흐르고 무애가 눈을 떴다.
"앉으시지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오늘은 집사람도 같이 왔서 인사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 용국과 선미.
무애는 상준에게 낮게 호통을 친다.
"뭐하느냐. 인사 여쭈어라."
"안녕하세요. 상준이라고 합니다."
마지못해 하는양 인사를 하는 상준을 용국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큰 스님.저 아이는 누굽니까?"
"저희 삼각사에 유명한 것이 3개 있다것은 아시겁니다. 이 녀석이 그 중 하납니다."
무애의 말에 놀라는 용국과 선미.
상준이라는 이름만 들었을뿐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그들은 이제 15세나 될 상준이 그 장본인이라는 것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에 할말을 잃은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듯 무애가 입을 열었다.
"보살님."
"예.. 큰 스님."
"칼부림 나는 싸움터에 가시면서 어찌 은장도로 맞서려 하십니까?"
"음....."
"3자 여섯 치의 칼들이 난무하는데 그 검풍을 어찌 할꼬..."
"큰 스님..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뭔가 알고 계시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 말만을 남기고 무애는 입을 닫아버렸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온것을 알아차린 용국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스님. 뭐든 시키시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이 일은 저 뿐이 아니고 우리 천명의 식구들의 일입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
"큰 스님!"
"보살님."
"예. 큰 스님."
"보살님은 지장이요 용장이십니다. 또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학자이십니다. 허나 밖에 따르는 무리가 있어도 안의 도적을 잡지 못하니 그 위맹함을 떨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무릇 충신과 열사가 안의 도적에게 죽었으니 그 집안에 썩은 서까레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선조의 사당이 있는 집을 일시에 허물고 다시 짓자니 후대의 패륜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고 바라만 보고 있자니 위험을 간과하는 꼴이니 보살님의 처지가 진퇴양난입니다."
"맞습니다. 요즘 저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그 방법이 뭡니까?"
"집안의 중앙에 튼실한 기둥을 설치해 놓으면 됩니다. 섞은 기둥을 쓰러져도 하늘을 받쳐주는 기둥말입니다."
"그럼 양자를 두란 말입니까?"
용국이 말을 뱉으면서 선미를 쳐다봤다.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을 한 선미는 침만 꼴깍 삼키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무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이는 올해 15살입니다. 이 아이가 만 20살이 될때까지 집에 거느리고 계십시오. 그때까지 보살님에게 오는 어려움을 이 아이가 막아드릴겁니다."
"큰 스님. 저 아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저를 막아주겠습니까?"
"이 무애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저 아이를 거둔 것입니다. 이 무애의 말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보살님은 2년을 견디지 못할겁니다."
"큰 스님. 그럼 저 아이를 양자로 들이란 말씀입니까?"
"그냥 먹여주고 재워 주기만 하면 됩니다. 단, 한 지붕아래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당장의 곤란을 넘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을뿐 불의 근원은 저 아이가 끌 겁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무애의 얘기를 듣던 용국은 고개를 숙인채 고민에 빠져있었다.
용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반신반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옆에 있는 선미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사업만으로 결정을 하기엔 미안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방안의 분위기는 더욱 답답해만 갔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고 그땀들이 얼굴을 타고 턱에 맺혀 떨어졌다.
그때 방안의 분위기를 바꾸듯 선미의 입이 열렸다.
"알겠습니다. 큰 스님의 말씀대로 할게요."
그 음성을 들은 용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흔쾌히 대답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낄 뿐이었다.
"상준아 뭐 하느냐. 두 분께 큰 절하지 않고!"
상준은 무애의 호통에 용국과 선미에게 큰 절을 하고 하였다.
날이 밝고 삼각사를 떠나는 벤츠 한대에는 올때와 다르게 한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
용국과 선미. 그리고 상준이었다.
용국은 어느정도 성과를 얻은듯한 편안함이 있었고 선미는 그런 남편을 보며 자신도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은 상준의 그들과 달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큰 스님. 극락왕생하세요.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준을 룸 밀러로 보고 본 용국이 물었다.
"왜 그렇게 우니? 큰 스님 곁을 떠나서 슬픈가 보구나! 걱정하지 마라. 집에가면 니 또래의 동생들이 있으니까."
"그래. 동생들하고 지내다보면 금방 괜찮아 질거야."
그러나 상준은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큰 스님이... 큰 스님이..."
상준의 울먹임에 의아해 하는 용국과 선미.
"오늘 저녁에 입적하세요. 오늘 저녁에..."
상준의 울먹임. 그러나 단순히 어린아이의 농으로 생각한 용국과 선미는 믿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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