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의 곡(哭)-2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621회 작성일 20-01-17 16:49본문
▣ 제 2 회 어린 시절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외박이 잦은 아빠였다.
혼자 텅 빈집을 지키며, 거의 집에는 귀가를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영훈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손이 이끌려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 영훈이구나. 이제 다 컸네! ”
한껏 멋을 낸 화사한 아줌마와 얼굴이 하얗게 예쁜 여학생이 아는 체를 했다.
‘ 아줌마가 웬 일이지? 그리고 저 아이…! ’
수아라는 아이, 이 아이가 영훈의 마음에 첫번째 상처를 준 아이였다.
지난 날 먼발치에서 본 그 아줌마, 기억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그 아줌마가 딸 수아를 데리고
영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여읜지 이년이 지난 오늘, 영훈은 아빠에게 이끌려 다시 이 여인과 마주하게 된 자리에서, 또
다시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는 소리를 들었다.
“ 아빠는 네가 찬성을 하면 이 분과 재혼을 할까 한다. ”
“ 예? ”
‘ 재혼을 하신단다. 이젠 아빠가 지금은 영원히 엄마를 잊으시겠단다. 그래, 아빠가 언제 나와 엄마
를 보살펴 준 날이 있었던가? 내 의견을 묻는 척 하지만 이미 아빠는 결정을 한 일이다. 내가 반대를
한다 해도 언젠가는 이루어 질 이 여자와의 결혼. 좋아, 그래 좋아. 이 분노는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두고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
다짐 또 다짐하며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 이처럼 아름다운 분이 새엄마가 되신다고요? 좋아요, 아빠. 저는 찬성입니다. ”
기쁜 표정으로, 기분 좋아 웃는 얼굴로 대답을 했다.
“ 그래? 이 아빠는 네 마음 어떨까 걱정했는데…, 고맙다. 우리 영훈이도 엄마가 계시지 동안 많이
외로웠나 보구나. ”
영훈이 이토록 쉽게 찬성할 줄은 몰랐던 아빠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터졌다.
“ 아빠, 그럼 우린 한집에서 살게 되는 거지? 이젠 매일 아빠 얼굴 볼 수 있겠네! ”
마주 않은 여학생, 수아의 입에서 기쁜 듯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 아빠라? 그래, 네가 아빠라 부르는 그 말 때문에 내가 방황을 했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때문
에 너의 친구에게까지 못할 짓을 했었다. ’
오래전 우연히 들은, 수아가 아빠라 부른 그 말이 영훈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던 첫번째의 말이었다.
영훈이 언짢은 얼굴로 아빠의 기색을 살폈다. 그런 영훈의 반응에 당황한 아빠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
며 입을 열었다.
“ 얘는 너의 동생이다. 이 아줌마와 아빠사이에 난 딸이란다. 항상 외롭게 혼자지내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살게 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가 보구나. 영훈이 네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일
찍 밝혔어야 했는데…, 아빠를 이해해 다오. ”
새엄마가 될 아줌마가 긴장된 눈빛으로 영훈을 주시했다.
‘ 이미 잠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종자까지 퍼뜨려 놓은 덕에 엄마가 그렇게도 못 견뎌 하셨지
요. 또한 아빠가 엄마 돌아가신 이유를 끝내 이야기 하지 못하던 이유도 이일 때문이 아닙니까? 이
아들 끝내 바보가 되어 드리지요. ’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와는 달리 영훈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 동생? 저 혼자 너무 외로워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 생기다니…. 아빠,
너무 기쁩니다. ”
“ 오호… 아빠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고맙다. ”
영훈의 시원한 대답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줌마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흘렀다.
“ 수아야…, 오빠에게 인사해지? ”
예쁜 여학생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 숙였다.
“ 저 예경여중 3학년 백수아예요. 저도 오빠가 생겨서 기뻐요. ”
수아, 백수아(白秀娥)란다.
‘ 백수아? 맞아. 그때 여란이 백수아라 말했다. 이 아이는 그때 이미 아빠의 호적에 올라 있었다.
정말 철저히 엄마를 속이고 준비를 해온 아빠였구나! ’
그러나 내색 않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 나도 동생이 생겨서 기뻐 난, 백영훈. 예경여중이라 했지? 나 그 학교에 친한 친구 있는데…! ”
“ 우리학교에요? 누구? ”
“ 한여란이라고…, 그애 아빠가 변호사지 아마? ”
“ 어머! 오빠가 여란일 알아요? 나와 제일 친한데. 학교가면 물어봐야겠다. ”
한여란(韓麗蘭),
수린의 단짝 친구로 알려진 아이다.
우연한 기회에 목격한 그 일 때문에 수아와 친한 친구를 알아보다 알게 된 여란이다.
영훈이 다니는 제일고등학교와 예경여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다.
그날 등교 길, 영훈이 교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눈앞을 지나는 검은 승용차 안에 언뜻 아빠와 닮은 사
람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빠다. 일순 화가 치밀기는 했으나 우선은 반가움
이 앞섰다. 오랜만에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그 마음에 차의 뒤를 쫓아 뛰어 가려는 순간, 차는
길 건너 예경여중 앞에 멈추어 서며 차문이 열렸다. 그리고!
“ 아빠, 다녀올게요. ”
차에서 내린 예쁘장한 여학생이 그 사람에게 아빠라 인사를 했다. 그 아이를 보며 검은 승용차 안의
사람은 정답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 응, 수아야. 학교 마친 후 데리러 올 테니 기다려라. ”
그 차속 뒷좌석 안쪽에 지난날 먼발치에서 보았던 예의 그 아줌마가 잔잔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아빠? 수아? ”
숨가쁘게 달려가던 영훈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 * * * * * * * * * * * * * *
수소문 끝에 알아낸 수아의 친구 여란,
영훈은 여란과 친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몇날 며칠 여란의 등교 시간을 알아보았다.
만원 전철을 다고 다니는 아침의 등교 길은 정말 고역이다.
집에서 십 여분만 일찍 나서도 그 복잡함을 피할 수 있으련만 굳이 그 시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시간 등교 길에는 예경여중 학생들이 북적거린 때문이었다.
오늘도 일찍 자리를 잡은 영훈이 앞에 서있는 예경여중 학생들의 가방을 받아 무릎위에 차곡차곡 쌓
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높이로 책가방이 쌓이자 더 이상을 받아줄 생각을 않고 차내를 둘러보았다.
‘ 이상하다. 분명히 차에 올랐을 텐데? ’
두리번거리던 영훈의 눈이 반짝 빛났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한 여학생이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한 때문이다.
영훈의 앞에 다가선 그 여학생이 고개를 까닥하며 아는 채를 하고는 툭 던지듯 가방을 영훈에게 맡겼
다.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가방을 받아든 영훈이 무릎위에 쌓여있는 가방들의 맨 위에 올려놓고
는 떨어질 새라 두 손을 뻗어 감싸 안았다.
그 여학생은 이리저리 몸을 비벼 사람들의 틈을 벌리며 영훈의 정면으로 바짝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배시시 눈웃음을 흘리며, 마치 만원손님들에게 밀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랫도리를 영
훈의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 든 책가방이 어느 정도의 높이로 쌓이자 더 이상은 받아주지 않고 두리번거리던 행동이 바로 이
것 때문이었다.
손을 뻗어 가방이 떨어지지 않도록 쥐고 있는 영훈의 손등이 앞에 서있는 여학생의 하복부아래 그 부
분과 꼭 맞닿아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전동차의 진동에 맞추어, 여학생의 엉덩이가 조금씩 흔들리며 아랫도리는 영훈의 손등을 비
벼대고 있다. 그 행위가 지속될수록 여학생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었다.
그 여학생은 전동차 안을 가득한 메운 사람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마치 자위를 하듯 그 감미
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덧 내려야할 역, 둘은 가벼운 눈웃음을 교환하며 하차할 준비를 했다.
“ 여란아, 학교 마치고 나 잠깐 보고가. ”
“ 응, 영훈오빠. 어디서 기다릴 거야? ”
“ 너 우리집 알지? 열쇠 줄 테니 우리집에서 기다려. ”
“ 오빠네 집? ”
“ 응. 우리집에는 항상 비어있어. 나 혼자 뿐이야.
“ 알았어. 그럼 오빠가 먼저 가 기다려. ”
여란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을 흔들고는 종종걸음으로 출구를 빠져 나갔다.
등교 시간을 맞추어 여란과 마주하기를 수십 차례, 그렇게 얼굴을 익힌 후, 영훈은 사람 북적이는 그
전동차의 등교 길 속에서 여란의 행동을 면밀히 주시하며, 어떻게 다가가 친하게 지날 수 있을까 방
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받아 든 여란의 책가방, 그 가방을 받아 무릎위에 놓고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
히 붙잡은 손등에 밀려온 야릇한 감각!
여란은 모른 척 자신의 아랫도리를 영훈의 손등에 밀착시켜 은밀한 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딸, 복잡한 지하철을 피해 자가용으로 등교를 해도 충분한 여건이나, 이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 굳이 지하철로 등교를 하는 여란이었다.
조그맣고 아담한 체구, 상큼한 향기까지 느껴지는 감미로움. 영훈도 도저히 손을 땔 수 없는 야릇한
흥분을 주체 못했다.
‘ 그래, 이 방법이다. ’
그날 이후, 둘은 언제나 지하철 등교 시간을 맞추어 이 은밀한 즐거움을 지금까지 나누어 왔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려해도 어긋나는 시간 때문에 이루지 못한 그 약속을 오늘에야 겨우
이룬 영훈의 가슴은 콩 튀듯 두근거렸다.
* * * * * * * * * * * * * * * * * *
학교를 마친 여란은 종종걸음으로 영훈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실내는 어둑하고 아직 영훈은
보이지 않았다.
“ 에이, 괜히 일찍 왔잖아. 야자시간이 끝나면 늦을 게 뻔한데. ”
고등학생이 영훈이 중3인 자신보다 먼저 와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마음 급히 달려온 조급함을 들킨 것 같아 혼자 얼굴을 붉혔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방안을 이리저
리 둘러보던 여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에는 가족사진도 붙어있고 옷걸이에는 어른의 양복도 걸려있는 걸 보면 분명 고아는 아니다. 그런
데 집안의 분위기는 황량하리만치 음산해 보였다. 그런 방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자니 슬며시 두
려운 생각이 들었다.
‘ 그냥 가버릴까? ’
어찌할 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헐레벌떡 뛰어드는 영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영훈오빠, 먼저 와 기다리기로 해 놓곤 왜 이리 늦었어? ”
뾰루퉁 화난 표정을 짓는 여란의 곁으로 다가온 영훈이 어깨를 툭 치며 싱긋 웃었다.
“ 미안, 지금도 시간 빼먹고 도망 나온 거야. 야자시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너무 늦을 거 같
아 선생님 눈을 피해 도망쳤어. ”
“ 그랬어? 그래도 나 무서웠단 말예요. ”
“ 등불이 환한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
“ 그래도 오빠. ”
“ 알았어. 오빠가 잘못했어. ”
여란이 화난 척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았다.
“ 근데 오빠, 왜 만나자 했어? ”
“ 응, 네게 물어볼 말이 있어! ”
“ 물어볼 말? ”
“ 그래. 꼭 알고 싶은 일이 있어. ”
“ 피이…, 영훈 오빠! 고작 그일 때문에 날 오라 했어? ”
텅 빈 집, 단 둘만 있게 된 영훈의 방, 여란은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아랑곳 않고 여전히 외박이 잦은 아빠였다.
혼자 텅 빈집을 지키며, 거의 집에는 귀가를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영훈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손이 이끌려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 영훈이구나. 이제 다 컸네! ”
한껏 멋을 낸 화사한 아줌마와 얼굴이 하얗게 예쁜 여학생이 아는 체를 했다.
‘ 아줌마가 웬 일이지? 그리고 저 아이…! ’
수아라는 아이, 이 아이가 영훈의 마음에 첫번째 상처를 준 아이였다.
지난 날 먼발치에서 본 그 아줌마, 기억 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그 아줌마가 딸 수아를 데리고
영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여읜지 이년이 지난 오늘, 영훈은 아빠에게 이끌려 다시 이 여인과 마주하게 된 자리에서, 또
다시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는 소리를 들었다.
“ 아빠는 네가 찬성을 하면 이 분과 재혼을 할까 한다. ”
“ 예? ”
‘ 재혼을 하신단다. 이젠 아빠가 지금은 영원히 엄마를 잊으시겠단다. 그래, 아빠가 언제 나와 엄마
를 보살펴 준 날이 있었던가? 내 의견을 묻는 척 하지만 이미 아빠는 결정을 한 일이다. 내가 반대를
한다 해도 언젠가는 이루어 질 이 여자와의 결혼. 좋아, 그래 좋아. 이 분노는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두고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 ’
다짐 또 다짐하며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 이처럼 아름다운 분이 새엄마가 되신다고요? 좋아요, 아빠. 저는 찬성입니다. ”
기쁜 표정으로, 기분 좋아 웃는 얼굴로 대답을 했다.
“ 그래? 이 아빠는 네 마음 어떨까 걱정했는데…, 고맙다. 우리 영훈이도 엄마가 계시지 동안 많이
외로웠나 보구나. ”
영훈이 이토록 쉽게 찬성할 줄은 몰랐던 아빠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터졌다.
“ 아빠, 그럼 우린 한집에서 살게 되는 거지? 이젠 매일 아빠 얼굴 볼 수 있겠네! ”
마주 않은 여학생, 수아의 입에서 기쁜 듯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 아빠라? 그래, 네가 아빠라 부르는 그 말 때문에 내가 방황을 했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때문
에 너의 친구에게까지 못할 짓을 했었다. ’
오래전 우연히 들은, 수아가 아빠라 부른 그 말이 영훈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던 첫번째의 말이었다.
영훈이 언짢은 얼굴로 아빠의 기색을 살폈다. 그런 영훈의 반응에 당황한 아빠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
며 입을 열었다.
“ 얘는 너의 동생이다. 이 아줌마와 아빠사이에 난 딸이란다. 항상 외롭게 혼자지내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살게 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가 보구나. 영훈이 네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일
찍 밝혔어야 했는데…, 아빠를 이해해 다오. ”
새엄마가 될 아줌마가 긴장된 눈빛으로 영훈을 주시했다.
‘ 이미 잠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종자까지 퍼뜨려 놓은 덕에 엄마가 그렇게도 못 견뎌 하셨지
요. 또한 아빠가 엄마 돌아가신 이유를 끝내 이야기 하지 못하던 이유도 이일 때문이 아닙니까? 이
아들 끝내 바보가 되어 드리지요. ’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와는 달리 영훈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 동생? 저 혼자 너무 외로워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 생기다니…. 아빠,
너무 기쁩니다. ”
“ 오호… 아빠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고맙다. ”
영훈의 시원한 대답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줌마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흘렀다.
“ 수아야…, 오빠에게 인사해지? ”
예쁜 여학생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 숙였다.
“ 저 예경여중 3학년 백수아예요. 저도 오빠가 생겨서 기뻐요. ”
수아, 백수아(白秀娥)란다.
‘ 백수아? 맞아. 그때 여란이 백수아라 말했다. 이 아이는 그때 이미 아빠의 호적에 올라 있었다.
정말 철저히 엄마를 속이고 준비를 해온 아빠였구나! ’
그러나 내색 않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 나도 동생이 생겨서 기뻐 난, 백영훈. 예경여중이라 했지? 나 그 학교에 친한 친구 있는데…! ”
“ 우리학교에요? 누구? ”
“ 한여란이라고…, 그애 아빠가 변호사지 아마? ”
“ 어머! 오빠가 여란일 알아요? 나와 제일 친한데. 학교가면 물어봐야겠다. ”
한여란(韓麗蘭),
수린의 단짝 친구로 알려진 아이다.
우연한 기회에 목격한 그 일 때문에 수아와 친한 친구를 알아보다 알게 된 여란이다.
영훈이 다니는 제일고등학교와 예경여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다.
그날 등교 길, 영훈이 교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눈앞을 지나는 검은 승용차 안에 언뜻 아빠와 닮은 사
람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빠다. 일순 화가 치밀기는 했으나 우선은 반가움
이 앞섰다. 오랜만에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그 마음에 차의 뒤를 쫓아 뛰어 가려는 순간, 차는
길 건너 예경여중 앞에 멈추어 서며 차문이 열렸다. 그리고!
“ 아빠, 다녀올게요. ”
차에서 내린 예쁘장한 여학생이 그 사람에게 아빠라 인사를 했다. 그 아이를 보며 검은 승용차 안의
사람은 정답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 응, 수아야. 학교 마친 후 데리러 올 테니 기다려라. ”
그 차속 뒷좌석 안쪽에 지난날 먼발치에서 보았던 예의 그 아줌마가 잔잔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아빠? 수아? ”
숨가쁘게 달려가던 영훈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 * * * * * * * * * * * * * *
수소문 끝에 알아낸 수아의 친구 여란,
영훈은 여란과 친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몇날 며칠 여란의 등교 시간을 알아보았다.
만원 전철을 다고 다니는 아침의 등교 길은 정말 고역이다.
집에서 십 여분만 일찍 나서도 그 복잡함을 피할 수 있으련만 굳이 그 시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시간 등교 길에는 예경여중 학생들이 북적거린 때문이었다.
오늘도 일찍 자리를 잡은 영훈이 앞에 서있는 예경여중 학생들의 가방을 받아 무릎위에 차곡차곡 쌓
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높이로 책가방이 쌓이자 더 이상을 받아줄 생각을 않고 차내를 둘러보았다.
‘ 이상하다. 분명히 차에 올랐을 텐데? ’
두리번거리던 영훈의 눈이 반짝 빛났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한 여학생이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한 때문이다.
영훈의 앞에 다가선 그 여학생이 고개를 까닥하며 아는 채를 하고는 툭 던지듯 가방을 영훈에게 맡겼
다.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가방을 받아든 영훈이 무릎위에 쌓여있는 가방들의 맨 위에 올려놓고
는 떨어질 새라 두 손을 뻗어 감싸 안았다.
그 여학생은 이리저리 몸을 비벼 사람들의 틈을 벌리며 영훈의 정면으로 바짝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배시시 눈웃음을 흘리며, 마치 만원손님들에게 밀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랫도리를 영
훈의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 든 책가방이 어느 정도의 높이로 쌓이자 더 이상은 받아주지 않고 두리번거리던 행동이 바로 이
것 때문이었다.
손을 뻗어 가방이 떨어지지 않도록 쥐고 있는 영훈의 손등이 앞에 서있는 여학생의 하복부아래 그 부
분과 꼭 맞닿아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전동차의 진동에 맞추어, 여학생의 엉덩이가 조금씩 흔들리며 아랫도리는 영훈의 손등을 비
벼대고 있다. 그 행위가 지속될수록 여학생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었다.
그 여학생은 전동차 안을 가득한 메운 사람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마치 자위를 하듯 그 감미
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덧 내려야할 역, 둘은 가벼운 눈웃음을 교환하며 하차할 준비를 했다.
“ 여란아, 학교 마치고 나 잠깐 보고가. ”
“ 응, 영훈오빠. 어디서 기다릴 거야? ”
“ 너 우리집 알지? 열쇠 줄 테니 우리집에서 기다려. ”
“ 오빠네 집? ”
“ 응. 우리집에는 항상 비어있어. 나 혼자 뿐이야.
“ 알았어. 그럼 오빠가 먼저 가 기다려. ”
여란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을 흔들고는 종종걸음으로 출구를 빠져 나갔다.
등교 시간을 맞추어 여란과 마주하기를 수십 차례, 그렇게 얼굴을 익힌 후, 영훈은 사람 북적이는 그
전동차의 등교 길 속에서 여란의 행동을 면밀히 주시하며, 어떻게 다가가 친하게 지날 수 있을까 방
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받아 든 여란의 책가방, 그 가방을 받아 무릎위에 놓고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
히 붙잡은 손등에 밀려온 야릇한 감각!
여란은 모른 척 자신의 아랫도리를 영훈의 손등에 밀착시켜 은밀한 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딸, 복잡한 지하철을 피해 자가용으로 등교를 해도 충분한 여건이나, 이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 굳이 지하철로 등교를 하는 여란이었다.
조그맣고 아담한 체구, 상큼한 향기까지 느껴지는 감미로움. 영훈도 도저히 손을 땔 수 없는 야릇한
흥분을 주체 못했다.
‘ 그래, 이 방법이다. ’
그날 이후, 둘은 언제나 지하철 등교 시간을 맞추어 이 은밀한 즐거움을 지금까지 나누어 왔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려해도 어긋나는 시간 때문에 이루지 못한 그 약속을 오늘에야 겨우
이룬 영훈의 가슴은 콩 튀듯 두근거렸다.
* * * * * * * * * * * * * * * * * *
학교를 마친 여란은 종종걸음으로 영훈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실내는 어둑하고 아직 영훈은
보이지 않았다.
“ 에이, 괜히 일찍 왔잖아. 야자시간이 끝나면 늦을 게 뻔한데. ”
고등학생이 영훈이 중3인 자신보다 먼저 와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마음 급히 달려온 조급함을 들킨 것 같아 혼자 얼굴을 붉혔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방안을 이리저
리 둘러보던 여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에는 가족사진도 붙어있고 옷걸이에는 어른의 양복도 걸려있는 걸 보면 분명 고아는 아니다. 그런
데 집안의 분위기는 황량하리만치 음산해 보였다. 그런 방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자니 슬며시 두
려운 생각이 들었다.
‘ 그냥 가버릴까? ’
어찌할 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헐레벌떡 뛰어드는 영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영훈오빠, 먼저 와 기다리기로 해 놓곤 왜 이리 늦었어? ”
뾰루퉁 화난 표정을 짓는 여란의 곁으로 다가온 영훈이 어깨를 툭 치며 싱긋 웃었다.
“ 미안, 지금도 시간 빼먹고 도망 나온 거야. 야자시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너무 늦을 거 같
아 선생님 눈을 피해 도망쳤어. ”
“ 그랬어? 그래도 나 무서웠단 말예요. ”
“ 등불이 환한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
“ 그래도 오빠. ”
“ 알았어. 오빠가 잘못했어. ”
여란이 화난 척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았다.
“ 근데 오빠, 왜 만나자 했어? ”
“ 응, 네게 물어볼 말이 있어! ”
“ 물어볼 말? ”
“ 그래. 꼭 알고 싶은 일이 있어. ”
“ 피이…, 영훈 오빠! 고작 그일 때문에 날 오라 했어? ”
텅 빈 집, 단 둘만 있게 된 영훈의 방, 여란은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