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딸 데리고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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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059회 작성일 20-01-17 20:40본문
입양 딸 데리고 놀기사건 수첩(2)입양 딸 데리고 놀기
후후후 내 나이 70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누나 집에 붙어살면 말이다.
몰론 누나도 내 재산을 넘보고 같이 살자고 한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혼자 살기에는 적적하여 누나의 그런 욕심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산다.
나이가 들어 돈의 중요성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용돈을 얻어 쓰는 노임들의 경우 정말 비참하다.
용돈이 없으면 공원이나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뒷짐을 지고 심부름이나 하다가 막걸리 한 잔이라도 얻어걸리며 행복을 느낀다.
또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아참에 나오면서 용돈 몇 푼을 얻은 경우에는 액수에 따라 가는 곳이 천차만별이다.
가령 2~5천원을 얻은 경우는 경로당이나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가슴을 활짝 펴고는 의기양양하게 고스톱이나 노름을 하고
만원을 얻은 경우는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몸을 파는 여인에게 절반을 뚝 때어 화대로 주고 허름한 여인숙에 3천원을 준다.
그럼 나머지 2천원은 무엇을 하느냐?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면 어니에 쓰냐?
몸을 파는 여인과 빠구리 한 후에 누워서 소위 쭈물탕을 놓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작은 캔 음료수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바로 2천원은 그 음료수를 사는데 쓴다.
그럼 그 이상의 용돈을 가진 영감들은 무엇을 하느냐.
노인대학이나 돈 있는 사람을 노리고 모여드는 여자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재주껏 할머니나 중년 이상의 여자들을 꼬드겨 데리고 논다.
나 역시 마지막의 것을 주로 하고 놀았다.
그러나 그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싫증이 났다.
뭔가 재미있는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중국 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가는 것이 시간도 적게 들고 편하지만 나처럼 늙고 남는 것이 시간 뿐 인 노인들이 구태여 비행기를 타면서 큰돈을 쓸 필요가 없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에서 출발하여 천진 항까지 24시간이면 가고 또 배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도 하면서 가는데
운임도 115000원이면 되고 또 나 같은 노인들의 경우 활인이 20%가 되니까 얼마나 저렴하고 싼 여행을 하겠는가.
몰론 난 전부터 보따리 장사를 하며 중국을 마치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사람과 붙어서 갔다.
전에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났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한국 여자들만 데리고 노는 것에 비하면
젊은 여자들을 싸게 데리고 놀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난 그 사람이 중국에 여행을 안 가겠냐는
말에 바로 여권을 내고 비자를 발급받아서 그 사람을 따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배를 탄 것이다.
그 사람의 말로는 자기는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따리 장사도 하지만 중국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관광객을 조선족사람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고 그 가이드가 번 수입의 일부를 자기가 받아 챙긴다고 하였었다.
그리고 관광객에게는 한국에서 잘 팔리는 물건을 알려주고 그 물건을 사서 들어오면 약간의 돈을 얹어서 주면 관광객도 짭짭한 수입을 본다고 하였다.
이럴 경우 잘 하면 운임도 빠지니까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그 사람을 따라 갔을 때는 초여름이었다.
배에서 하선을 하자 초라한 옷차림의 중국 사람들이 마치 구경이라도 나온 듯이 진을 치고 있었다.
“편 씨 내가 편씨를 데리고 구경을 시켜 줄 아주머니 한 분 소개 해 줘?”보따리 장사꾼이 배에서 내리며 물었다.
“돈 많이 달라고 안 해?”하고 묻자
“아니 조금이면 되”하기에
“남자야 여자야?”하고 묻자
“아무래도 여자가 좋겠지?”하고 웃기에
“후후후 그럼 그것도 가능하고?”
“그야 편씨 하기 나름이지”하기에
“좋아 그럼 하나 소개 해”하자
“어이 김씨!”하고 선착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손짓을 하자
“어머 박씨 날 찾았어?”하고 삼십대 중반의 여인이 달려왔다.
“어때 이 노인 관광 해 줄 수 있어?”하며 나를 가리키자
“호호호 그럼요 해 드려야죠. 호호호 안녕하세요? 김 여사라고 불러 주세요”하며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난 편이라고 하오 잘 부탁하오.”하자
“그럼 절 따라 오세요”하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평소 5~60대 여자들만(젊은 것들은 화대를 너무 많이 달라고 하여 싫었다)상대를 하다가 삼십대 중반의 여자
그도 타국에서 같은 핏줄인 조선족 여자의 향기는 나에게 그윽하기보다는 좆에 힘을 실리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하고 꼬박 배에서만 있었더니 몸이 영 안 좋은데 어디 가서 좀 쉬었다 구경하지?”난 그 여자에게 넌지시 운을 때었다.
“호호호,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시죠?”삼십대 중반의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래 나이에게는 장사가 없지”하고 눈치를 보자
“좋아요 그럼 저희 집으로 가요”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 없어?”의아해하며 묻자
“휴~말도 말아요, 교도소에 있어요, 교도소에...”하고 한숨을 지었다.
“아니 무슨 죄를 지어서?”하고 묻자
“살인죄지 뭡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좆은 방금 시들어 버렸다.
“뭐?”하고 놀라자
“우리 중국에서는 살인죄를 지으면 평생 감옥에서 살아요, 살아, 휴~”하고 한숨을 지었다.
“특사나 감형은 없고?”하고 묻자
“다른 죄는 잘 하면 특사나 감형이 있지만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의 경우 평생 교도소 밖에 나올 수가 없답니다. 휴~”하고 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애들은?”남편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자 다시 좆에 힘이 들어갔다.
“딸아이 하나 있지만 시댁에 줘 버렸어요”하는 것이었다.
“그.....그래”내 좆은 더 힘이 들어가 어서 쑤시게 해 달라고 안달을 부렸다.
“제 차 가지고 올 게요 여기서 기다리시고 누가 꼬드겨도 넘어 가시면 안 돼요, 알았죠?”하며 다짐을 받으려 하기에
“그럼 믿어, 어서 차 가져와”하자
“네”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기 시작을 하였다.
“아저씨 관광 오셨어요? 제가 가이드 하면 안 되겠어요?”그 여자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많은 남녀가 나에게 추파를 보내었다.
“싫소, 이미 약속을 한 사람 있소”하고 난 거절을 하였다.
솔직히 나와 약속을 한 그 여자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난 거절을 하고 그 여자만을 기다렸다.
“아저씨 타세요”잠시 후 그 여자가 낡은 승용차를 가지고 와 내 옆에 세우고 말하였다.
“그래 꼬드기는 사람들 없었어요?”내가 차에 오르자 천천히 차를 몰며 물었다.
차 안은 보기보다 정갈하고 뒤에 의자에는 침구 까지 실린 것이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급하면 카섹스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네보다 젊고 예쁜 여자들이 수도 없이 꼬드겼지만 모두 거절했네, 거절했어”난 슬며시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호호호 아저씨가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어요, 호호호”오히려 자기 허벅지를 쓰다듬는 내 손을 더 위로 올리며 말하였다.
“그래 얼마면 돼?”치마 안으로 슬며시 손을 넣으며 물었다.
흥정만 잘 하면 중국 여행을 하는 동안 자가 마음껏 가지고 놀 수가 있다던 말이 떠올라 물었다.
“호호호 아저씨 주고 싶은 만큼 주세요, 식대 기름 값은 따로 고요 호호호”날 힐끔 보며 대답을 하였다.
“하루 3만원 어때?”넌지시 물었다.
“호호호 화끈해서 좋아요, 그렇게 해요, 단 선불”하며 손을 내밀었다.
“좋아”하며 난 주머니에서 돈을 끄집어내서 세었다.
“음 삼 칠 이십 일 자~팁 포함 이십삼만 원”하고 지폐 스물 석장을 세어서 주며 치만 안 아니 팬티 안에 손가락을 넣고 보지 구멍을 쑤시자
“호호호, 좋아요 운전 위험해요, 집에 가서 호호호”하며 내 손을 잡았다.
잠시 그도 겨우 십 여분 쑤시고 그도 장화를 쓰고도 젊은 여자라면 한국에서는 몇 십만 원 들것을
하루 종일 내가 원하면 쑤시고 데리고 놀아도 하루에 삼만 원이면 거저요 공짜 수준이란 생각을 하였다.
“후후후 그러지”난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마음에 웃었다.
“내리세요, 다 왔어요”한 허름한 주택 안에 차를 정차하며 말하고 내렸다.
비록 허름하긴 하였지만 안에는 깔끔하게 정리가 된 아담한 거실이 있었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안방으로 가자
침대며 TV 그리고 냉장고가 가지런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전문적인 가이드 겸 창녀인 모양이라 생각하였다.
“한 번 하지?”난 그녀의 뒤에서 젖가슴을 움켜잡고 끌어안으며 말하였다.
“호호호 그렇게 고파요?”돌아서서 내 품에 안기며 물었다.
“그럼 고프다말다”하며 치마 안으로 손을 넣자
“호호호 그럼 먹으세요, 호호호”하며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벗어 던졌다.
딸아이 또래의 계집을 먹는다는 마음에 조금은 게름직한 기분도 잠시 들었으나 돈을 주고 샀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어서 와요, 호호호”조선족 여자는 침대 위에 발라당 누워서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좋지 내가 네 남편 데신 호강을 시켜주지”하며 난 침대 위로 올라가 조선족 여자의 몸 위에 몸을 포겠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난 좆을 조선족 여자 보지에 쑤시자마자 빠르고 강력한 펌프질을 해 버렸다.
“아....아...너무해.....처음부터 하-악...하-악.....너무 좋아.......”조선족 여자가 눈을 흘기며 몸부림쳤다.
“쭈…욱…..쭙…헉헉…쭈….쭙…. .쭙..”그리고는 내 입술을 빨기 시작하였다
“퍽.. 퍽퍽퍽….퍽퍽퍽퍽!!!!!! 퍽.. 퍽퍽…”평소에 먹던 한국의 창녀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먼저 장화를 신으라고 강요를 안 하였다.
올라가서 펌프질을 하면 어서 하고 내려가라는 듯이 먼 허공만 바라보지도 않았다.
또 창녀들은 마치 입술이 정조인 냥 입술을 빨기는커녕 손도 목 대게 하는 년이 많았으나 조선족 여자는 스스로 입술을 빨아주었다.
“아흐….흑….학학…헉…..아…하 ….”뿐 만아니라 조선족 여자 콧소리를 내며 신음도 해 주며
같이 즐긴다는 것도 알 수가 있어서 한국의 창녀와 할 때와는 달리 흥분이 더 되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물이 안 나와 아프다며 크림을 잔득 바르던 한국의 창녀와는 달리
조선족 여자의 보지에서도 충분한 아니 넘치게 많은 물이 나와 질퍽이는 그 느낌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었다.
“아……..흑.. 하.. 흡.. 헉. 아…..흑…아…아아아….흑..”조선족 여자는 내 목에 매달리며 몸부림쳤다.
“퍽퍽퍽…퍼.. 퍽…퍽퍽퍽!!!!!”하루에 삼만 원에 내 마음대로 데리고 놀 수가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흥이 났다.
“학!..학!..학!, 어서, 아-학,하하하,아아아아아아”반응은 여염집 아낙 그대로 였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펌프질을 하여도 여간 신이 난 펌프질이 아니었다.
“우…..욱…헉…. 하…학. 학학…..아.. 아앙….흑..”엉덩이도 잘 흔드는 것이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나게 할 정도였다.
“찰….싹…. 퍼….퍼퍼퍽… 퍽퍽퍽!!!! 찰…싹”펑덩한 살과 내 살이 부딪치는 소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아…흑…제.. 발…. 그만……….아………악……..헉.”이 조선족 여자를 나에게 소개 해 준 그 사람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질퍽…퍼. 퍽…퍼.. 벅.. 퍼.. 벅…퍽퍽퍽퍽퍽!!!!!!!!!!!!”난 또 빠르게 펌프질을 하였다.
“아.. 아응….하 학…..학학.. 제.. 발… 그만……그…만… 아…앙….”조선족 여자가 내 목에 매달리며 신음을 하였다.
“퍽.. 퍽.. 질퍽... 질. 퍽.. 헉.. 헉.. 퍽. 퍽..”조금은 힘이 부쳤다.
“아……흑.. 아응……하.. 학….아….아앙……아…………..악.! !!”그러나 조선족 여자의 신음은 기운이 나게 만들었다
“퍼……퍽…퍽퍽퍽…….퍼.. 벅.. 퍽!!!”힘차게 펌프질을 하였다.
“아…..흑.. 흑…아.. 하…아….윽…헉…”조선족 여자도 지지 않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퍼…벅….퍽퍽퍽…퍽. 퍼…벅…퍽.!!!”또 빠르게 몰아 붙였다.
“아….흑….아….흑…..헉...제 .. 발….그만…..하…학.. ….제. 발.. 학. 학.”손바닥으로 자신의 목을 받치며 말하였다.
“퍽퍽…철퍽…철퍽…퍽. 퍽퍽퍽….철퍽. 퍽퍽퍽!!!!!!!!!!!!!!!!”그러나 난 더 바른 펌프질을 하였다.
“아….앙….흑.. 흑.. 조.. 금….하.. 아…조금…더…..흑.. 흑. 흑….아..”조선족 여자는 내 목을 팔로 감고 매달렸다.
“퍽.. 퍽.. 질퍽... 질. 퍽.. 헉.. 헉.. 퍽. 퍽..”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었다.
“아흡….아.. 흐. 흡…아…윽…흑. 흑.. 흑.”그러나 조선족 여자의 신음은 또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퍽퍽퍽퍽!!!!!!!!! 퍼벅…퍽.. 퍼벅.. 퍽퍽퍽!!!!!!!!!!!!!!!!!!!”다시 또 빠르게 펌프질을 하였다.
“아…..하…. 헉….. 으……음…하…학..”조선족 여자의 신음은 날 종착역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으~~~~~~~”빠른 펌프질 끝에 난 조선족 여자의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박고 좆 물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아...나..죽어..... .아하......어....떻해.....나...죽어”좆 물이 들어오자 더 안절부절 하며 내 목에 매달렸다.
“휴~힘들어 힘, 휴~~~~”정말이지 무척 힘이 들었었다.
그로부터 중국 몇 곳을 돌아다니며 여관이나 차 안에서 수시로 섹스를 하였다.
힘이 부쳤다.
비아그라도 사서 먹으며 하였다.
난 그렇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갖가지 싸고 좋은 약제며 녹용 참깨 등의 농산물을
내가 필요할 정도의 정당한 양을 사와서 국내에 팔았더니 여행비의 대부분을 놀랍게도 막을 수가 있었다.
난 그렇게 하여 중국 여행에 취미를 붙여서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드나들기 시작을 하였고 또 요령이 생겨
내 나름대로 여객선 터미널 밖에서 서성이는 가이드들을 돌려가며 데리고 다니며 섹스를 질퍽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문득 절은 시절에 중국의 성교육 교본이라고 하는 소녀경에서 어린 계집과 합방을 하여 배꼽을 마주치며 젊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늙은 내가 어린 계집 그도 숫처녀를 고른다는 것은 그림에 떡이었다.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오고가면서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중국이란 나라의 조선족들에게 한국은 가고 싶은 동경의 나라라는 것을 알았고 또 못 가서 환장을 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았다.
여러 차례 왕래 하면서 친분도 많이 쌓았다.
그 중에 학희하는 아이의 엄마는 가이드나 성매매를 하지는 않으면서도 나에게는 아주 친절하게 대하여 주었다.
당시에 학희는 11살이었고 학희가 태어나자마자 학희 엄마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난 학희 엄마를 통하여 녹용이며 웅담을 살 수가 있었고 학희 엄마는 보따리 장사꾼에게 물건을 구하여 주고
약간의 사례비를 받아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한국에 나가서 돈을 벌려고 몸부림을 쳤었다.
난 학희 엄마에게 학희를 내 수양딸로 주면 한국에 나올 수가 있게 해 준다고 하였다.
학희 엄마는 무조건 좋다고 하였다.
난 학희를 내 딸로 입적을 시키고 데리고 왔다.
학희 엄마도 한국으로 데리고 나왔다.
학희 엄마는 바로 나이트클럽에 알선을 시켜주었고 그 나이트클럽에서 먹고 자게 해 주었다.
이제 걸림돌은 어떻게 하면 학희와 배꼽을 마주 대느냐가 문제였다
학희가 열두 살이 된 어느 날 마침 여동생이 계모임에 가고 학희와 나 단 둘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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