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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날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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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26회 작성일 20-01-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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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하루가 전쟁 같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더니 어느 새 벌써 현정이의 생일날이 되었다.



“미역국 맛있어?”



“잘 끓이시네요.”



사실 나는 요리 같은 건 잘 못하기 때문에 새벽에 현정이 몰래 국 배달 서비스를 시켜 그녀가 모르게 국 그릇에 담아 놓아야 했다.



좀 양심에 찔렸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게 되자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역국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맛이 좋았다.

무슨 미역을 쓴 건지 부드럽고 얇아 목 넘김이 예술이었다.



“파티는 회사 다녀와서 하자. 혹시 부를 친구라도?”



둘이 오붓하게 파티를 하고 싶었지만 내 생각만 할 수는 없어 물으니 현정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다지 친구라고 할만 한 사람이 없어요.”



현정이 와 나의 사정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래서 더욱 서로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가?



아침을 먹고 우리는 어느 날 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서둘렀다.

회사에 들어와 다시 일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모두들 요즘 기운들이 없네요. 당연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열심히 합시다. 미래의 여러분들이 이 회사에서 얻게 될 무엇을 생각해 보세요.”



내 말 한마디에 풀렸던 직원들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역시 사기를 올려주는 것 만큼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일도 없는 것이다.



“끙끙..”



“으으..”



“탁탁탁탁!!!”



직원들의 한숨 소리에 타이핑 소리에 전화 하는 소리에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내 일에 치여 죽을 맛이었지만 그들은 마치 정신을 빼두고 몸 뚱이 만을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의 변화도 크지 않았고 행동도 단순한 패턴이었지만 그들이 지금 어느 때 보다 기력을 짜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반기의 업무는 이런 거야.”



지지고 볶고 부글 부글 끓는 중에 시간이 흘렀다.

점심 시간이 언제 였는지 모르게 다시 업무의 시작 종이 울리더니 머릿속이 멍하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중에 퇴근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축 쳐진 몸을 추스르며 일어서는 직원들이 보기 안쓰러웠지만 나 또한 누구를 생각하고 자시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핸드백을 어깨에 매었다.



“지금 집에 들어가는 거죠?”



“아니. 너 먼저 들어가 있어. 준비할 것이 있어서.”



현정이는 이상하게 쳐다 봤지만 나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나는 다시 한번 기운을 내서 그녀 보다 회사 밖으로 먼저 나왔다.



“화장품 셋트 라고 했지?”



힘들게 백화점에 들러 그녀를 위한 화장품 셋트를 산 나는 케잌 과 그 밖에 파티 준비에 빠져서는 안될 물건 몇 가지를 구입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 현정이를 놀래주는 일 만 남은 셈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녀는 부엌에서 테이블을 끼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샀어요?”



“오늘 파티 하기로 했잖아?”



나는 샤워를 마치고 기진 한 체로 회전 식의 바 안에서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리고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 체 딸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는 엄마처럼 정성을 다해서 상을 차렸다.

현정이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이렇게 까지 바라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리에 앉히고 케잌 위에 꽂은 초에 불을 붙였다.

테이블 위가 촛 불로 인해 말갛게 빛났다.

분위기 한번 죽인다.



“현정이 의 26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현정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고마워요 언니. 정말 최고의 생일 날 이에요.”



이쯤해서 나는 생일 축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물 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현정이에게 나는 축가를 불러 줬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어? 얼굴도 못생긴게 왜 태어났니?”



현정이는 불에라도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얼굴을 했다.

금방 눈물 방울이 말라 버린 것 처럼보였다.



“내 얼굴이 못생겼다는 거에요?”



“아니. 이게 아닌데.”



괜한 짓을 했다 싶어 내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현정이가 갑자기 너무나 아름답게 웃었다.

저렇게 밝은 미소는 처음 보는 거라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언니는 나에게 있어서 최고로 소중한 사람이에요.”



닭살이 팍팍 돋는 말이었지만 왜 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현정이는 정말 행복한 듯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 미소 속에서 일말의 거짓도 찾아낼 수 없었다.



괜히 서먹한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 나는 케잌을 한 조각 잘라 그녀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다시 크게 놀란 현정이는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피하려다가 내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대로 케잌으로 세수를 했다.



“하지마요~!!”



“오호호호호홋~ 어때 이것아.”



우리는 한 바탕 난리를 치면서 정말 아이처럼 케잌을 던지고 놀았다.

놀라고 만든 케잌이 아닌데 만든 사람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정이의 기분을 돋우는데는 성공했으니 이것으로 됐지 뭐.



“이거 선물이야.”



“어? 정말 화장품 셋트 네?”



“요즘 나오는 것 들 중에 제일 좋은 거래. 뭐 별로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제를 사줄 수는 없었어. 국산 품을 애용해야지 안그래?”



“고마워요 언니. 소중히 잘 쓸게요.”



현정이는 다시 웃는 얼굴로 선물에 보답했다.

하지만 진짜 선물은 아직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 이게 진짜 선물인데..



나는 다짜고짜 바에 다가가 위스키 두 잔을 온더락스 스타일로 따랐다.



“이거 한잔 마셔.”



“와인도 있는데 왜 이렇게 독한 것을 마셔요? 생일날에는 와인이 더 어울리는데.”



“그건 취하지가 않잖아?”



“네?”



현정이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 잔을 받았다.



“일단 마시자. 심호흡 한번 하고.”



나는 무슨 독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잔을 기울였다.



“어머! 언니 무슨 위스키를 물처럼 마셔요?”



“시끄러~ 왜 이리 멍멍 하냐?”



“그렇게 빨리 마시니 그렇죠.”



기분이 알딸딸해지는 게 이제야 좀 용기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현정이를 새치름하게 응시하며 한글자 한글자 또박 또박 말했다.



“진짜 선물은 따로 있어”



“네?”



“사실 진짜 선물은 그 화장품 셋트가 아니었다고!!”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느라 현정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슨 짓거리까지 했는지 아냐? 이것아.



“그럼 진짜 선물은 뭐 에요?”



“어떻게 할까? 지금 줄까?”



“선물이라면 생일 상 받을 때 주는 것이 정상이죠.”



나는 의자에 삐딱하게 몸을 의지하고 한쪽 다리를 의자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오른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며 휘 휘저었다.



“너 말이야.”



“네?”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야.”



벌써부터 취기가 오르는지 내 입에서는 헛소리 비슷한 것이 나왔다.

본래 하려고 했던 말을 하란 말이야. 멍청이.



“언니 지금 왜 그래요?”



“나에게 그런 것을 다 강요 하고 말이야. 얼마나 내가 당황 스러웠는지 알아?”



취기가 올라 함부로 지껄이는 나를 현정이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취했어?”



“반말 하지 마!”



“취하셨어요?”



“취했다 어쩔래?”



“그럼 들어가 주무세요.”



“이것이 진짜!”



왜 그랬을 까?



나는 갑자기 테이블을 손으로 짚으며 벌떡 일어나 다짜 고짜 현정이 의 뺨을 때렸다.

현정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



“진짜 선물을 달라고? 나 참! 그 말이 그렇게 술술 잘도 나온단 말이지? 내가 그 선물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애기 할 수 없을 걸?”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면서 현정이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될 대로 되라.



“진짜 줘?”



“뭘 요? 오늘 왜 그래요 언니?”



“시끄러 이것아! 진짜 선물 지금 당장 줘?”



“지금은 별로 받고 싶지 않아요. 뭔가 말 못할 힘든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그냥 들어가 쉬세요. 선물을 꼭 생일날 받아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현정이에게 미안했지만 내 실수를 그냥 술에 취해 한 것으로 이해해 주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 나는 담아뒀던 말을 꺼내 놓았다.



“나는 지금 선물을 줘야겠어. 그러니까 받아.”



“언니 정말 왜 그래요? 선물 받고 싶지 않아요!”



“받아! 이건 명령이야.”



“알았어요. 그럼 지금 주세요.”



현정이는 낙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뺨을 맞은 충격이 아직 체 가시지 않았을 거야. 미안해 현정아.



“두 손을 그렇게 오그리고 뭘 하고 있는 거야?”



“네? 선물을 준다면서요?”



“칫! 그 선물을 그렇게 받을 수 있는 건줄 알아?”



“그럼 이렇게 손을 더 벌려야 할 만큼 큰 선물인가요?”



“한 손만 앞으로 내고 눈감아.”



나는 명령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현정이는 한 손만을 앞으로 내민 체 눈을 감았다.

나는 핸드백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그녀의 손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눈 떠!!”



눈을 뜬 순간 현정이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게 뭐 에요?”



“내가 네 뺨을 때릴 수 있었던 이유다!!”



현정이는 미스 앤 마스터 측의 회원 증이나 다름없는 확인 영수증을 들고 몇 번이나 살펴보더니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언니 설마?”



“그 설마가 사람을 잡는거야.”



“여기를 어떻게 아셨어요?”



“메일 함은 확실히 로그 아웃 해라.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다시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얼굴로 현정이는 나를 응시했다.

나는 고압적인 자세를 풀고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선물이 마음에 들어?”



“언니~~!!!”



현정이는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달려와 나를 안았다.

이렇게 좋아할 수가?



어쨌든 의미 있는 선물주기 작전은 제대로 성공을 거둔 것 같았다.



“언니 이거 언니에게 어떤 의미 인지 알고 이랬어요?”



“그 세계를 잘 모르지만 현정이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이걸로 우리 사이가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면 후회는 없어.”



“언니. 이렇게 감격스러운 생일은 난생 처음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언니.”



그녀를 이해하는데 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까지 좋아하는데에야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이나 된 성인 여자가 변태적인 행위에 심취하다못해 이런 상황에 기쁨의 눈물 까지 보인다는 사실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미스 앤 마스터 측의 교육을 받으면 좀 더 그녀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4일이야.”



“이번 주 금요일 이네요?”



“응. 직장인 들을 위한 시간 대 편성이라나.”



“정말 괜찮겠어요?”



애가 정말 왜 이래?

자꾸 그러니까 내가 무슨 죽으러 가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현정이는 내 손을 꽉 잡아주며 자신의 아이라도 막 낳으려는 아내라도 대하듯 나를 다독였다.



“힘들면 안 해도 되요.”



“선물을 줬다가 뺐는 법도 있냐? 이제 내가 네 뺨을 때린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이렇게 까지 했다면 당연히 내가 뺨을 맞을 만 하죠. 한대 더 때릴 래요?”



“됐어! 뺨을 때리고 얼마나 후회 했는데. 네가 기뻤다면 이것으로 다 된 거야.”



“의미 있는 선물이라고 할 때 만해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네가 둔하기는 하더라.”



“뭐라고욧?!!”



“아하하하하.. 간지러워 하지마. 나 간지럼에 약하단 말이야.”



현정이의 생일 날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현정아 사랑해.”



“나도 언니.”



<29부에서 계속>



잠시 지면을 빌어 말씀 드릴게요.

깊고 푸른 날은 장르 가 에스 엠 이지만 자극적인 묘사에만 치중해 스토리를 살리지 못하는 실수를 피하고자 답답할 정도로 느린 전개감이 있어요. 하지만 이는 캐릭터 들 간의 충분한 심리 묘사를 통해 나중에 반전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독자분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 자극적인 묘사를 원하시는 분들은 잠시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지금 이야기의 전개 정도를 보시면 언제 쯤 본격적인 에스 엠 물로서의 방향이 잡힐지 약간이나마 보이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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