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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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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216회 작성일 20-01-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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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박봉구 외

박봉근 중령(43) 외

이석현 박사 외

김 영숙 의원 외



11부 코이

토요일. 약속을 한 날이다. 갈까 말까 고민 끝에 내린 박 중령이다. 7사단은 그에게 익숙한 곳이다. 거의 전방만 떠돌던 그였기에 7사단도 한 번은 거쳤던 기억이다. 춘천에서 거기까지 갈 때는 군용 짚을 타지 않았다. 낡은 중고 승용차를 직접 몰았다. 먼지가 일어난 산길을 지나서야 초소가 보이고 잠깐의 신원확인을 거친 다음에 사단장실로 안내가 되었다. 미리 연락이 된 듯하다.

육사시절에도, 졸업 후에도 존경을 마지않았던 대선배들과 지난주에 만났던 김 중령이 환영의 몸짓을 보내며 그를 반겼다.

“충성! 박 봉근 중령입니다.”

“반갑네. 오랜 만이군. 잘 지내나? 별 일 없나?”

몇 개의 물음을 한 번에 던진 김 소장은 대답을 기다린 표정이 아니었다. 의례적 안부임은 좌정을 한 후 곧 알았다. 긴장감이 돈 사단장실은 마치 전쟁을 앞둔 벙커 같았다. 외부와 차단을 철저하게 했는지 밖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흰 결정을 했습니다. 다만 무력을 쓴다거나 힘을 휘두른 다는 따위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입장표명만 하는 겁니다. 이대론 참을 수 없다고, 그들이 선택하는 길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고 딱 한마디만 하는 겁니다.”



그들, 박 중령은 그들이란 단어가 들리자 처음과 달리 이젠 친숙하게 들렸다. 처음의 그 어색함이나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신, 그들 자체에 거부감을 가졌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깊숙한 내밀을 나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가진 그는 지난주 그 자리를 떠올렸다.

인간의 목소리로 먹고 산 작자는 맨 정신으로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왼쪽으로 기울면 다시 망치로 때려서라도 오른쪽으로 돌려야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의무며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진 신의 목소리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수 천 년 인간의 땅에서 저질러졌던 모든 죄악은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소수입니다. 카인의 죄악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신은 번개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번개요?”

순간 박은 하얗게 터지며 날아간 총알을 떠올렸다. 귀청을 울리며 바람을 뚫은 총탄, 신이 번개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총이 있는 거지, 분노의 감정을 싣던 사랑의 감정을 싣던 무생물인 총알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인간을 파고드니까. 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그렇습니다. 신이 징벌을 미루면 우리가 신의 말씀을 빌려 징벌을 해야 합니다.’ 했다. 이름이 반 일균이라고 한 목사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남을 파고든 눈빛은 지휘계통에 오래 있어온 자신보다 더 강했다. 이 태극이란 친구도 젊어 보였지만 논리가 정연하고 학식이 깊어 보였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라도 나설 것입니다. 비록 힘이 없을지라도 무언의 군중들은 침묵의 나선처럼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태양은 언제고 정의로운 것이며 낮은 올바른 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태양과 낮, 그 둘은 지금도 오른쪽이지 왼쪽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이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지만 그것은 밤의 목소리입니다. 태양이 뜨면 사라져버릴 목소리 아니 진실한 보수의 존재가 말살당한 현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허허허, 이봐 박 중령, 무얼 그리 생각하나?”

“아닙니다. 사단장님. 잠시 다른 것을.......”

김 봉근 소장. 모든 후배들이 존경을 아끼지 않은 김 소장을 그 역시 우러러봤다. 이런 참 군인 정신이야말로 자신이 선택할 길이라고 믿었다.

“어찌 됐든 여러 선배님, 그렇습니다. 이제 선배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선배님이 앞서지 않으면 저희 후배들이 앞장설 테니까 갈 길을 보여주십시오.”

“자네 말이 틀리진 않네. 지금처럼 욕되게 살기보단 차라리 전쟁터에서 산화되고 싶네. 조국의 이 땅에 흙이 된다면 영원히 살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김 소장이 입을 닫자 현역 기무사령관인 양 창성 소장이 목소리를 떨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 무슨 위원회인가 호출되어 망신을 당한 그다.

“자네들에게 정말 부끄럽기 한이 없네. 어쩌다 이렇게 돼 가는지.”

사복차림인 양 소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뭐가 어떤가. 시절이 그러니 참고 있을 수밖에. 또 하나 있네. 지금 북쪽 친구들은 핵으로 장난질을 하고 있는데 우린 뭐가 있어? 적도 없는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지. 예전처럼 고향에서 농사짓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 군영으로 돌아오면 돼지 이렇게 모아놓고 훈련하고 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그렇지 않은가? 결국 우리도 힘이 필요해. 힘!”

강한 충격이 박 중령을 흔들었다. 힘! 그렇다. 우리에겐 힘이 없다. 총이나 탱크는 힘이 아니었다. 필요한 힘은 지지와 신뢰였다. 믿음이 있고 기대가 있으면 무얼 못 하겠는가.

이날의 자리는 서로의 믿음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더 신중을 기하자는 김 소장의 간곡한 만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된 결정이었다. 흐르는 물은 그대로 두어야지 댐에 가둬놓으면 썩거나 터져버릴 것 아니겠는가.



이 석현 박사. 오랜만에 찾아온 그의 집은 아담한 주택이었다. 강 박사는 약속도 있고 이 박사의 부인도 안부가 걱정돼 언제라도 한 번은 찾아보려고 했던 참에 시간을 내 들렀다.

장성한 자식들이 다 떠난 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마당의 즐비한 화분들이 화사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냥 들어갈까 하다 기침을 보냈다.

‘드르륵’ 창문을 연 얼굴이 보였다. 예전보다는 창백해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눈빛이 날카로웠다. 퀭한 눈 속의 두 눈이 무섭게 강 박사를 쏘았다. 몇 날 며칠을 자지 않고 지낸 모습이다.

“일본에 코이란 잉어가 있는데 말이야. 그 놈은 어항에서 자랄 땐 5, 6센티이다가도 호수로 가면 2, 30 센티가 되고 강으로 가면 자그마치 1미터가 넘는다고 해. 예전에는 참 괴상한 놈도 있구나, 했는데 요즘엔 그것이 맞다, 는 걸 알고 얼마나 즐거워하는 지. 우리 그때 그랬지 않아? 정말 인간의 감각기관이 필요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뒤에도 눈이 있었으면 하면 언젠가 뒤에도 눈이 생길 거라고. 우리가 만들어 낸 그 유전인자야 말로 코이란 놈의 변화를 증명할 수 있어. 대단한 발견이고 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거지. 하하하”

응접실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 석현박사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강 박사는 차를 놓고 간 여인이 궁금하기만 했다.

“참 자네 부인은?”

여인을 묻기가 어색해 이 박사의 아내인 숙희의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시간이 지나서다.

“갔네. 흙으로. 지난 달 초에, 겨울을 넘기고 봄이 온듯했는데 다시 차가운 겨울로 떠났네. 자네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 관 뒀어. 섭섭해?”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미모뿐만이 아니라 지성적인 분위기 까지 남자들을 끌어당겼었다. 그런데 새로운 여인이 있다니.......

“아, 저 사람은 나를 도와주는 그러니까........”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없는 이 박사다. 양 실장을 아예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그다. 항시라도 여자가 없으면 미칠 지경이 된 그는 낮엔 연구실에서 밤엔 집에서 그녀를 품었다. 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쩔 때는 흥분을 참지 못해 물거나 손으로 때리기도 했었다. 그 말은 꺼낼 수 없다. 자신의 몸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면 틀림없이 막으려고 할 것이다. 이제 성공한 M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는 없는 그다.

“아무래도 그 프로젝트는 위험해 보여. 요즘 참담한 뉴스들을 보면 가슴이 떨리곤 하고 옛날일이 자꾸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혹시 그 프로젝트가 이미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 그렇지는 않아. 바이러스는 아직 성공이 아니야. 그것을 만들려면 그 때 그 세 아이가 필요해. 셋이 아니더라도 노란색 게놈을 맞았던 그 아이가 있어야 돼. 그 아이 유전자를 구해 짧은 시간에 숙성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그 정도 바이러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몇 개국 정도는 파괴할 수 있을 걸 아마. 하하하,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니까.”

“그런데 그 아이를 어떻게 찾지. 지금”

“아니 찾을 필요도 없네. 그냥 인간이 자연적인 진화가 아니라 인위적인 방식으로도 진화가 가능하고 또 레마르크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신체는 쓸수록 진화를 한다는 걸 증명했으면 되었지 무엇이 더 필요하겠어.”

“그래도,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군. 우린 과학자야. 과학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있지 파괴하는데 있지는 않아. 안심하게.”

얼굴 표정은 진지했다. 강 박사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방으로 들어간 뒤에는 나오지 않았다. 키도 늘씬하고 몸매도 좋은 서른 초반으로 보였다.



서울. 거대 도시. 그래서 옮겨야하는 대상으로 찍힌 이 나라의 수도. 그것도 모른 채 화려한 불빛을 뿌리고 있다.

밤은 별이 뜨기가 무섭게 희뿌연 대기가 빨아들여 어둑하다. 어둑한 밤을 따라 강남의 깔끔한 주택단지로 검은 세단이 물 흐르듯 들어와 선다. 이 단지는 고급주택들만 있는 숨겨져 있는 장소로 일반인들은 잘못 들어서면 낯설어 할지도 모른다. 단아한 투피스 차림의 중년이 차에서 내리자 무선으로 조정되는 자동차처럼 빠르게 사라진다.

어둔 하늘과는 달리 고급 술집의 내부는 밝다. 길게 이어진 복도에 걸려 있는 그림마저 추하지 않고 멋스럽다. 발가벗은 여인과 어린 소년이 양떼들을 몰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림이다.

카페 ‘프라이즈’는 너무나 고요해 해질 무렵의 사찰 같았다. 고급 융단이 깔린 복도를 따라 양 쪽으로 5미터 정도 넓이로 문이 하나 씩 있는 것으로 봐 안에는 손님들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조용한 실내는 그런 것조차 감추고 있었다.

김 의원은 이 프라이즈가 너무 좋았다. 여성의원이라고 어디 술집을 가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데고 갈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자주 드나드는 곳이 이 ‘프라이즈’다.

프라이즈의 복도를 따라 다시 옆으로 들어서자 꽃이 걸린 문이 보인다. 안에 손님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다.

“늦었네요. 김 의원님”

셋 중에 파란 투피스 차림 여자가 반기는 듯 일어서며 마중하자 남은 여자들도 호들갑을 떨며 막 들어온 김 의원이라 불린 여자를 맞이했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제가 요즘 바쁘잖아요. 그 무슨 위원횐가 뭔가 맡아서. 정말이지 ‘장’자리는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호호호”

연분홍의 개량 한복을 멋지게 입은 김 의원이 손사레를 하며 자리에 앉자 그 파란 투피스가 뭔 말이냐는 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유 무슨 겸손의 말씀을......., 요즘 제일 잘나가는 분이 바로 김 의원님 아닙니까? 저는 요즘 되지도 않은 말대꾸하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그래도 이 대변인님이 제일 잘 나가죠 뭐. 우린 뭐 할 일이 있어야죠. 저번에 그 패러딘가 뭔가 때문에 아주 힘들었을 뿐, 그렇죠?”



대변인으로 불린 여자는 요즘 잘나가는 이 선미 대변인이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대변인으로 전격 발탁되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대변인의 말을 이어간 쑥색 투피스 여자는 얼마 전까지 여성단체에서 일하다 운 좋게 비례대표로 의원 뱃지를 단 김 영숙 의원이다. 김 영숙은 연분홍 한복의 김 미현 의원과 이 선미 대변인을 부럽게 쳐다보며 한마디 거들고는 건배를 제창했다.

“그럼 우리 민주열기당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맑은 잔이 부딪힌 소리는 작은 종의 울림으로 방을 채웠다.

“근데 김 위원장님. 어째 자리가 허전하네요?”

이 선미가 먼저 운을 떼자 너도나도 ‘그래, 그래’ 하면서 장단을 맞췄다.

“그러죠, 여기는 제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동생을 부르죠.”

테이블 한 쪽의 단추를 누르자 검정 정장의 건장한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동생, 적적한데 여기 괜찮은 아이 넷만 넣어줘.”

“어떤 스타일로......”

정장 사내가 다 안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재차 주문을 받으려하자 김 영숙이 이선미를 보며

“대변인님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 얼굴 있으면 무조건 말을 하세요. 이 동생이 다 알아서 해주니까, 그렇지 동생, 호호호”

“그라믄요. 누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그녀의 힘은 무시 못 하게 컸다. 그녀의 새시대위원회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한 파워는 즉, 그녀 말 한마디면 하루아침에 매국노로 찍혀 사라질 판이었다. 어디로 사라질지는 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벌써 몇 사람이 달려갔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 만큼 파워가 세 별명이 ‘선파워’로 불리고 있는 그녀는,

“난......, 그 누구지? 아 맞다. 이 동근 스타일, 난 그런 스타일이 좋아. 호호호”

“여자도 돼나 동생?”

별로 말이 없던 여자가 자기도 동생으로 부르며 여자를 주문하자 씩 웃으며

“물론입니다. 그게 달린 여자도 있고 그게 없는 남자도 있고 다 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뭐“

자신 있다는 어투다. 여자들이 깔깔, 대며 웃자 안이 거의 비추는 검정 투피스 차림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아담한 아이를 보내달라고 했다.

“아이 정 의원, 정 의원은 취향도 확실히 달라. 부자 의원이라 그런가, 호호호”

정 의원이라 불린 여자는 기품이 우아하면서도 귀티가 줄줄 흘렀다. 나이는 마흔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피부가 곱고 탄력이 살아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남자의 정액으로 목욕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피부가 처녀처럼 파릇파릇 해지고 마음까지 젊음을 유지한다고 하니 누구라도 한번은 해봤으면 하는 욕심이 사실 있었다. 정 의원이야 물려받은 재산과 기업체만 해도 손에 꼽을 재벌이 아니던가. 정액이 아니라 젊은 처녀의 피로 물갈이를 해도 충분할 것이다. 노인네들은 젊은 숫처녀의 거기 피를 받아 마신다는 소문들도 있었으니 정 의원의 소문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저마다 원하는 스타일을 꼼꼼하게 챙긴 사내가 나가자 김 영숙은 맑은 물을 얼음이 잘게 부서진 잔에 따르며

“자 우리 술잔을 높이 들죠. 앞으로 이 나라를 지켜나가야 할 우리들 아니에요. 그렇죠? 우리 모두 마음을 합쳐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앞장을 서야 되고요. 그럼, 브라보!”

고급스런 잔이 부딪치며 다시 한번 맑은 소리를 냈다. 비싸 보이는 테이블과 아라베스크 무늬 의자, 찬란한 샹들리에, 힐이 반은 들어가는 푹신한 양탄자까지 사람들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몇 잔이 돌자 술기운에 눈이 붉어진 정 의원은 김을 보며 부탁의 말을 꺼냈다.

“위원장님!”

“네, 정 의원님. 말씀 하세요”

“저, 세광기업 문 회장 아시죠? 이번에 김 위원장님이 소환하신 분 말이에요. 그 분은......”

위원회. 김이 위원장으로 있는 이 위원회는 일명 완장으로 불린 새시대위원회를 말한다. 모든 과거의 추악한 역사를 떨치고 새로운 태양 아래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만든 민주열기당의 야심에 찬 기획이다. 무언가 이상한 힘이 나라를 휩쓸고 다니더니 끝내 이런 위원회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그 앞장은 김 영숙 의원이었다. 검찰이니 법원이니 경찰까지 죄다 이 위원회 앞에서는 약 먹은 생쥐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 그 사람 말이죠. 잘 압니다. 지금 조사 중에 있는 걸로 아는 데요. 왜 그러시죠? 혹시......”

청탁에 따라오는 대가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값이 올라간다. 벌써 김 영숙이 뒤로 챙긴 선물은 굴비상자나 사과상자가 아니었다. 부피가 큼직한 것들은 위원회 동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는 부피가 작은 것만 챙겼다. 아직도 현금 따위를 갖고 다닌 멍청한 놈들이 있었다. 부피가 작은 것은 값이 싸 보이는 백이다. 그러나 이 백에 들어 있는 것은 스위스 은행의 계좌와 비밀번호다. 돌아오지 못할, 고난의 청춘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요, 알았어요. 맘 놓으시고 오늘은 즐기시죠? 동생!”

아까 그 청년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섰다.

“준비됐습니다. 다들 들어와 인사해.”

열여덟에서 스물 또래의 예쁘장한 사내 셋과 스물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테이블 앞에 나란히 섰다. 사내아이들은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띠며 윗도리를 벗고 바지까지 벗었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팬티 차람으로 다시 나란히 셋이 섰다. 피부는 밝은 불빛을 반사하는 물고기의 배처럼 하얗다. 어깨는 얼굴처럼 곱상한 아이도 있고 건장하게 벌어진 아이도 있다. 그 아이는 아랫배 윤곽이 근육으로 보기 좋다. 김 의원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사내아이들이 팬티 차림으로 서자 이번에는 여대생이 주춤주춤 옷을 벗었다. 모든 것이 짧은 여자아이다. 머리도 짧은 커트, 재킷 속 티셔츠도 배꼽을 보이고 스커트 역시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다. 검정 옷으로 덮인 피부가 어둠 속 하얀 장미다. 재킷을 벗고 배꼽이 드러난 티셔츠를 벗으려 할 때, 파란색 투피스가 잘 어울린 정 의원이 손가락을 튕기며 됐어, 신호를 보냈다. 짧은 셔츠를 잡고 있던 손을 역시 짧은 검은 미니스커트로 옮겼다. 뒤의 지퍼를 내리고 스커트를 밑으로 내렸다. 날씬하면서도 통통한 하체가 눈을 부셨다. 건강함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 다리다. 맨 발에 빨간 가죽 힐이 시선을 끌었다. 여대생치곤 어울리지 않은 구두지만 이 분위기에는 잘 어울렸다. 수평무늬가 큼직한 팬티다. 겨우 그 부분만 아슬아슬 가리고 있다. 조금 움직일 때마다 팬티 밖으로 고운 그곳의 털이 삐져나왔다. 부드러운 털은 보라색 팬티 앞에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넌 장기가 뭐야?”

아이들이 정해진 것처럼 옆자리에 앉자 김 영숙은 근육질인 사내의 웃통을 만지며 물었다.

“전 그거 잘해요. 남자랑 여자랑 하는 거”

근육을 꿈틀대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청년의 팬티로 손을 넣은 그녀는 주물럭거렸다. 진짜 살아 움직이는 동물처럼 팽창을 했다.

“그래? 오늘 한번 볼까. 꼬마야?”

“네, 자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인사들 해야지”

인사라는 것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여기 손님들의 인사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근육질 청년이 먼저 일어나 빈 ‘온더락’ 잔에 4분의 1 정도 위스키를 따르곤 팬티를 무릎 아래로 내렸다. 네모꼴 테이블 가운데 있던 아이는 주저 하지 않고 막말로 ‘딸딸이’를 쳤다. 한 손으로 물건을 잡고 한 손은 벌거벗은 가슴을 만지며 비스듬히 보인 여대생의 티셔츠를 흘긋거렸다. 손이 몇 번 움직이자 성기가 우뚝 서고 ‘찍!’ 하얀 우유를 잔에 뿌렸다. 정말 우유라는 말이 맞다. 희뿌연 액체가 갈색 위스키로 퍼지자 토닉을 반쯤 따랐다. 잔의 색체는 연한 갈색이 되고 바닥으로 사내의 정액이 깔렸다.

“누님, 인사드립니다.”

팬티를 무릎 아래로 내린 채 잔을 받들어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올렸다.

“물건 좋은데, 호호호”

흰 손을 뻗어 사내아이의 힘 빠진 성기를 만지며 잔을 주욱 들이켰다. 사실 김 영숙 의원은 남자라면 치를 떨었다. 지난 젊은 시절에 당했던 고통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죽이고 싶었다. 발가벗긴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구멍마다 손가락을 집어넣고 ‘좋아, 이년아. 하고 싶어 미치겠지?’ 했던 그놈들을 잡아다 갈기갈기 찢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았다. 특히 의자에 앉혀놓고 허벅지를 자로 계속 때려대면 눈물 콧물에 아픔까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던 그녀였었다. 어쩔 때는 살이 갈라져 피가 배이기도 했다. 죽음을 택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넘겼었다.

“어때요? 이 인사법”

“호호호, 좋은데요. 다들 인사하지 왜 그러고 있어?”

이 선미의원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귀여운 모양이 계집아이 같은 사내의 얼굴을 톡톡 건드리며 잔을 가리켰다. 마주보고 있던 둘은 똑같이 팬티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모양이 예쁜 게 꼭 막대사탕 같다. 이 선미는 빨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고추가 아주 귀엽네, 이 꼬마. 빨리 빨리 해봐. 더 빨리”

증기엔진을 단 기차다. 손놀림이 빨라졌다. 새빨간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뜨거운 액체를 잔에 쏟았다. 씩씩댄 얼굴이 귀엽다는 듯 쳐다본 그녀는 토닉이나 다른 주스를 섞지 않고 잔을 들었다. 몇 번 빙글빙글 돌리곤 마셨다.

“아주 좋아. 자식.”

여자아이 같은 하얀 엉덩이를 철썩 때리는 것은 앞에 앉아 있던 김 미현도 마찬가지다. 조금 늦게 잔을 든 그녀 역시 벗은 팬티로 풀죽어 있는 물건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깔깔 웃은 후 엉덩이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었다.

세 여자는 정 의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명 ‘알사탕잔’이라 불린 잔을 마신 셋은 귀티가 흐르는 정 위원이 어떻게 할지 궁금한 것이다. 태반을 갈아먹어 피부가 뽀얗고 머리도 검게 윤기가 흐르는 그녀가 아닌가. 자기들은 이렇게 가끔 만나서 남자들의 정액을 마시며 즐기곤 했지만 정 의원과는 그리 잦은 교류가 없었다. 오늘도 아마 김 위원장에게 청탁 비슷한 것을 하려고 나왔을 것이다.

“어머, 다들 멋있네요. 호호호. 그게 여자 몸에 제일 좋다고 하던데 오늘 이 애들 용돈 두둑이 줘야겠어요. 그건 내가 줘도 되죠?”



백에서 꺼내든 지폐뭉치는 사내아이만이 아니라 그녀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여대생도 놀라게 만들었다. 만 원권 묶음은 족히 백장이 더 돼보였다.

“이 곳에 던질 테니 잘 챙겨. 싸우지들 말고. 그리고 다른 말이 있을 때까지 나오지 마. 알았지? 뭔지 몰라? 이런 꼬마 녀석들. 테이블 밑에서 여기 이분들 발도 주물러드리고 다리도 주물러드리며 피로를 풀어드리란 말이야.”

맑은 음성이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기품이 셋과는 달랐다.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돈뭉치를 들어 테이블 밑으로 던지자 사내아이들은 팬티를 내린 채 몸을 숙였다.

“넌 이쁜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은 데 내가 잘 못 봤나?”

수줍음을 타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작은 얼굴에 눈이 동그랗고 코가 오뚝했다. 칼을 댄 것 같지는 않았다. 보조개가 귀엽다. 이빨이 가지런한 게 보기 좋다. 티셔츠에 가려진 가슴의 볼륨하며 군살 없는 허벅지까지 여자라도 안고 싶을 몸이다.

“넌 특기가 뭐니? 알사탕잔? 아니 넌 알사탕이 없지. 특기가 뭐야?”

볼을 매만지는 손길에 배시시 웃으며

“노래요. 춤도 잘 추고요. 연기도 잘 해요. 특히 눈물연기는 다들 칭찬해요. 해 볼까요?”

“아니 됐고. 질질 짤 일 있니. 너 스타가 될 기질이 다분히 있는데 도와줄까?”

금방 입이 벌어지는 여대생이다. 들어오기 전 오빠가 했던 말이 정말인가 보다.

“정말요? 열심히 할 게요.”

몸으로 하는 일은 자신이 있는 그녀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이야 이름만 걸어놓고 있지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 스타의 길이 가까이 있는데.......

“호호호, 그래 귀여운 것. 난 저런 남자아이보다 너 같이 귀엽고 살가운 애가 참 좋더라.”

정 의원은 너무 말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입을 다물며 검지를 팬티로 향했다.

“난 냉정과 열정을 좋아 하거든. 이 얼음을 거기 넣고 녹기 시작하면 얼음물로 잔을 채워. 자 해 봐. 스타는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우리가 누군지 알지?”



여대생은 붉어진 얼굴이지만 수평 무늬가 큼직한 팬티의 밴드를 잡고 밑으로 내린다. 앞뒤 꼭 그 부분만 겨우 가린 팬티다. 노랑 무늬의 수평선이 구겨지며 하체가 드러난다. 음모는 손질을 자주 하는 지 짧고 가지런하다.

얼음 한 조각을 들어 자신의 음부에 넣는다. 다리를 조금 벌리자 앙다문 조개 같은 두 꽃잎이 펼쳐진다. 향기가 아주 좋은 분홍 장미다. 하나 둘 셋. 세 개의 작은 알갱이가 안으로 사라진다. 얼음을 넣자 그 차가움에 콧등을 찡그린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죽겠다는 정 의원이다. 사실 그녀는 남자아이들이 싫었다. 오히려 야들야들한 소녀나 처녀의 피부가 훨씬 좋기만 했다. 그들의 부드러운 세포에서 엑기스를 빼내 자신의 피부에 바른 듯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빛을 받아 따뜻해진 돌에 올려놓은 얼음처럼, 태양을 받은 지붕 위의 고드름처럼 녹기 시작했다. 다리를 더 벌려 자신의 국부 바로 밑에 잔을 댄다. 허벅지로 흘러내리려던 물이 잔으로 흘러들었다. 아주 조금씩 흐르던 물이지만 잔의 밑바닥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갈색의 위스키를 부었다. 잔을 휘 돌리던 그녀는 휴지를 빼 여자아이의 그곳을 닦아준다. 남은 물기가 종이에 배자 그 종이로 잔을 받치고 높이 든다.

“어때요? 맛이 좋을 것 같아요? 처녀의 그곳은 생의 원천이죠. 그래서 이 잔을 일명 <생명의 샘>이라고 부른답니다. 맛이 좋으면 이 아이에게 축복을 내리겠지만 부정을 탄 맛이면 내보내겠습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들을 보며 잔을 들이킨다. 연한 내음. 처녀의 보드라운 질을 타고 흘러 내려온 물은 맛이 좋았다. 목을 넘길 때의 그 상큼함이란.

“좋은데요. 이 아이, 한번 키워봐야 되겠네요. 마시겠어요?”

김 영숙에게 잔을 건네자 싫다는 표정이다. 이 현미가 잔을 들어 마셔본다. 맛은 모르겠지만 지기 싫어 좋다는 그녀다. 이 현미는 한때 정 의원의 아버지가 경영했던 공장의 종업원이었다. 그러나 시대를 잘 타서인지 아니면 원래 능력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이렇게 마주 앉아 호들갑을 떨고 있다. 속내는 그렇지 않았지만.......,

“야 너희들 나와. 빨리.”

아래서 열심히 발과 다리를 주무르던 세 아이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어나 앉았다.

“꼬마는 특기가 뭐야? 너도 죽이는 기술이니?”

“아니에요. 전 춤과 노래를 잘 해요.”

“그래. 어디 한번 놀아볼까. 넌 노래를 하고 너희 둘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잔에다 고추를 담아. 알았지? 또 용돈 두둑이 줄 테니까”

이번에는 이 현미 의원이 지기 싫은 듯 큰소리다. 돈이라면 자신도 충분히 있다.

반주기가 켜지고 아담한 사내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노래. 노래가 계속하는 동안 남은 둘은 성기를 꺼내 잔에 담았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독한 위스키는 쓰라렸다. 일명 <고추잔>이라 불린 잔을 돌려 마시며 여자들은 낄낄거렸다. 노래가 끝나자 근육질 아이 차례다. 팬티까지 벗어던진 아이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야 너 고추 빼고 홀라당 벗고 나가서 춤을 춰 봐. 거 있지 남자 여자 할 때처럼 분위기 있는 춤.”

둘은 정말 수치심 없이 홀라당 벗고 서로 안은 채 브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머리가 긴 아이는 여자처럼 엉덩이를 돌리며 춤을 췄다.

정 의원은 요란한 음악소리에 묻히며 여대생의 유방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의 손은 그녀의 스커트 밑에 넣어졌다. 질퍽한 느낌의 그곳이었다. 이미 흥분해진 정 의원은 여자아이의 손길이 닿자 뜨거운 입김을 목덜미에 불었다. 중년 여인의 호흡이 그리 달콤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잡고 싶은 아이는 입술을 내밀어 여인의 입을 받았다. 혀가 꿈틀대며 입안을 파고들었다. 이를 건드리고 혀 밑을 핥다 입천장까지 훑자 ‘훅!’ 신음을 토했다. 집요한 키스는 여자아이의 입을 죄다 먹어버릴 것처럼 빨았다.



또 뿌려진 돈다발. 이번에는 이 현미 이원이다. 저 멀리 돈다발을 던지고 기어가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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