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 1부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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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935회 작성일 20-01-17 15:00본문
1부. 이미숙 선생님 - 9 -
[성영아, 일어나, 어머니 걱정 하시겠다.]
끌어안은 상태로 선생님의 온기를 느끼며 누워있는 성영을 미숙은 일으켜 세워주며, 자신 또한 일어났다.
미숙은, 성영이 사정 후 머리가 복잡해 지는 걸 느꼈다. 그저 성영의 욕구불만을 풀어주기 위해서, 성영이 더 이상 문제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서 성영의 그것을 빨아주던 일이, 자신 또한 점 점 더 빠져 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흥분이 되기 시작하면, 점 점 몸을 허락하는 커트라인이 내려가는 것이 미숙은 더 없이 불안했다. 아까도 그랬다. 만약 성영이 자신의 말대로 그대로 해버렸다면.. 미숙은 그제서야 자신을 생각해서 꾹 참아준 성영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머리 속에 그려지는 부끄러운 상상에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며 성영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안돼, 안돼, 정말. 이러다가는..
성영은 일어나 바지를 다시 주섬주섬 올려 입으면서도, 자신의 눈을 피하며 옷을 정리하는 선생님이 너무나도 귀엽게 보였다. 선생님이 쑥스러우신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성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제 내 거야, 선생님도 이제 내가 선생님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테니까. 성영은, 교복을 다 입고는 아직도 옷을 정리하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미숙은 옷을 정리하며 참담함을 느껴야했다. 성영과의 그런 일을 끝낸 후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팬티는 자신의 물로 축축히 젖어있었고, 바지는 무릎 끝까지 내려져있었으며, 티와 브레지어는 가슴 끝까지 올라가 흰 젖가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미숙은 자신이 너무나도 추잡스럽고 음란하게 느껴졌다. 성영에겐 자신의 부끄러운 곳과 항문을 그대로 엉덩일 내밀어 보여주었고, 흰 가슴을 덜렁거리며 성영에게 맞추어 허리를 흔들었으니. 신음은 또 얼마나 질렀는데.. 성영일 어떻게 본담? 미숙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어 벽만 쳐다보며 옷을 정리했다. 벗은 것이 많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미숙은 다급해졌다. 왜 이렇게 브레지어 후크가 안 채워져? 성영이가 쳐다볼텐데.. 그러나 브레지어 후크는 야속하게도 계속 미끄러졌다.
[제가 채워드릴게요.]
[아, 아니, 괜찮은데..]
성영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며, 미숙은 손 끝에서 브레지어를 성영의 손에 빼앗기는 걸 느꼈다. 서, 성영이도 너무 오지랖 넓은게 문제네, 이런건 내가 해도 되는건데, 정말.. 미숙은 성영의 행동에 당황하고 놀란 가슴 진정시켰으나, 뛰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고 조심 조심 반대쪽 바닥만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뜨거웠다. 어, 얼굴 빨개지면 안되는데..
[자, 다 됬어요, 선생님.]
[으, 으응. 그래.]
미숙은 서둘러 올라간 티를 내리려했으나, 브레지어 후크를 채워주느라 뒤에 있던 성영이 손을 뻗어 미숙의 몸을 그대로 감싸 안아, 그러지 못했다. 미숙은,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성영은 그렇게 미숙에게 몸을 기대었다.
[선생님, 잠시만 이대로만 있게 해주세요.]
[아..저, 저..저기, 성영아.]
[사랑해요, 선생님.]
미숙은 자신의 귀에 성영이 달콤하게 속삭이자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아, 안돼. 내가 뭐하는 거야.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억누른채 미숙은 성영의 몸을 거칠게 밀어내었다.
[아, 안돼, 성영아. 우리 이러면 안돼.]
[네? 선생님?]
[아, 아니야.]
미숙은 성영의 얼굴을 보곤 다시 눈을 피했다. 이런 일, 그만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다시 선생과 제자로 돌아가자고, 말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런걸 어떻게 말해. 성영이가 만약 날 싫어하게 된다면..미숙은 눈이 뜨거워졌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거야? 나 정말, 성영일 좋아하는건가..?
[선생님, 저 쳐다봐주세요.]
미숙은 성영의 말을 들었으나 쳐다보지 못했다. 가슴은 주체못하고 콩닥콩닥 뛰었다. 미숙은 상황파악도 못하고 성영의 한마디에 가슴이 뛰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선생님.]
성영의 두 손이 미숙의 머리를 잡고는 눈을 피하는 미숙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미숙은, 빨개진 얼굴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으나, 곧 조금씩 다가오는 성영의 입술에 당황해했다.
[으읍..아, 안돼]
미숙은 힘을 주어 성영을 밀어내었다. 성영이 놀란 눈으로 미숙을 보고 있었다. 아, 안되겠어. 아무래도 말을 해야겠어. 미숙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이러지 마, 서, 성영아. 우린 사제 관계잖니. 내, 내가 잠시..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나봐.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성영아.]
[무, 무슨 소리세요. 선생님? 갑자기?]
성영은 머리가 띵해짐을 느꼈다. 어..어째서? 선생님도 좋으셨던게 아닌가요? 선생님은 저 사랑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성영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미숙을 쳐다보기만 했다. 미숙은 살짝 등을 돌려 옆의 벽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 마.. 말도 안되요. 전 그럴 수 없어요.]
성영은 믿을 수 없었다. 선생님과 방금까지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왜 이러시는 지, 결국 선생님께 넣지 않아서 선생님이 실망하신걸까? 아냐. 선생님이 그러실 분은 아닌데. 성영은, 아무 말 없는 선생님을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미숙은 성영의 눈빛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했던 짓은 너무 미안해, 안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니가 원해서 다릴 만지게 해준 거였는데, 그게 잘못이었구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잖니..]
점 점 작아지는 미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영은 답답함을 느꼈다. 젠장,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하지만 성영의 입에선 속마음과는 정반대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요! 선생님 잘못이에요! 제가 이렇게 된 건 선생님 탓이니까, 저한테 이러시면 안되죠, 선생님. 저 성영이에요, 언제 문제 일으킬 줄 모르는 놈이라구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선생님 아니면 이젠 막을 수도 없단 말예요!]
미숙은 조용히 몸만 떨었다. 성영이 무서웠다. 소리지르는 성영이 무서운게 아니었다. 미숙은 자신의 품 속에서 성영이 떠난다면 성영이 더욱 삐뚤어지진 않을까, 그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래서, 미숙은, 소리 지르던 성영에게 다가가 성영을 꼭 껴안았다.
[성영아, 아까 전엔 고마웠어. 나 지켜준거,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
성영은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자신을 껴안고 있는 미숙을 바라볼 수 없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더할지 겁이 났다. 눈물이 찔끔 났다. 미숙은 그런 성영일 껴안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성영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성영아, 나 정말 사랑했니? 선생님을, 여자로서?]
성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으나 성영은 애서 딴 곳을 바라보았다. 뭐야, 나 이러는 거 정말 맘에 안드는데. 무슨 눈물이야. 눈물이.
[나는, 나는.. 성영이 좋아했던거 같아. 제자가 아닌 남자로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성영이랑 있을 땐 너무 좋았었어. 성영이가 나 생각해주는 거, 성영이가 날 사랑해주는 걸, 가끔 가끔 느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런 니가 처음 내게 키스 해줬을 때, 나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 줄 아니? 어떻게 내가 너에게 그렇게 빠졌는 지, 니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
미숙은 성영을 껴안은 채,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나도 너무 성영에게 마음을 준 거 같아, 선생님으로서, 자각이 없어. 그래서 성영이도 내게 더욱 빠져들었겠지. 미안해, 성영아. 선생님이 죄인이야.
[그치만, 그치만.. 너와 난, 선생님과 제자잖니.]
성영은 눈물이 흐르는 걸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선생과 제자. 선생과 제자. 그것 참 엿 같은 거지. 젠장.
[성영아, 선생님은 너보다 11살이나 연상인걸. 나보다, 젊고 예쁜 여학생들, 너 충분히 사귈 수 있으니까. 성영이 같은 남잔, 나한테 너무 아까워. 나이 든 내가 너같이 착하고 멋진 남잘 좋아 하니까 하늘이 내린 벌일 거야.]
성영은 더 이상 어깨에 고개를 묻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선생님의 핑계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잔인하게도 성영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의 품 속에서 벗어 났다.
[그만해요, 선생님. 젊고 예쁜 여학생들요? 웃기지말아요, 저 선생님 사랑해요. 그런 년들은 눈에도 안들어와요. 비록.. 비록, 선생님과 이상한 관계가 되긴 해버렸지만, 저 후회 안해요. 선생과 제자가 뭐 어때서요? 선생님도...]
성영은 계속해서 소리치려다, 미숙의 볼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말을 멎을 수 밖에 없었다.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았는데, 성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교복 어깨가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날 설득하려고 거짓말한 게 아니었던가? 왜,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시는 거야. 성영은 자신도 눈물로 눈가가 반짝이는 걸 잊고, 자신이 밀어내었던 선생님을 포옥 안아버렸다. 선생님의 기분도 생각지 못하고 떼를 썼던 자신이 너무나도 싫게 느껴졌다.
[울지말아요, 선생님. 왜 선생님이 울고 그러세요? 우리 이렇게 된 거, 누구 탓도 아니잖아요. 그저, 우리 이렇게만 지내면 안되나요? 이렇게만...]
미숙은 왜 눈물 흐르는 줄도 모르면서 눈물 흘리는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저 가슴 몇 번 콩닥 거렸는데, 그저 귀여운 제자인 줄로만 알았던 성영이에게 그런 말 한게 뭐가 그렇게 슬픈 일이라고, 뭐가 그렇게 눈물이 흐를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 참으려해도 참으려해도 안되는 눈물이 미숙의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성영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닦고 싶었지만, 미숙은 그만 성영의 품을 벗어나려 애를 썼다. 29살. 미숙은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 따위, 사회가 용납할리 없었다.
성영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품을 벗어나려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처음부터 선생님의 다리를 만지는 게 아니었어. 그랬다면, 그랬다면 나와 선생님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성영은, 눈가에 반짝이는 눈물을 소매로 쓰윽 닦아내고, 품 안에서 선생님을 놓아드렸다. 미숙은, 성영의 품에서 벗어나자, 울음을 참으려 애쓰며 성영에게 말했다.
[미, 미안해. 성영아. 정말.. 미안해.]
성영은, 미숙에게 잘 지어주던 미소 조차 한번 지어주지 못하고, 그런 선생님을 놔둔채 혼자서 학습교구실의 열쇠를 열고는 나가버렸다. 자신이 계속해서 있으면, 선생님이 곤란할 것 같았다. 성영의 얼굴에선 그제서야 눈물이 타고 흘렀다.
성현은, 학습교구실 밖 구석에서 성영이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표정없는 입 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성현은 열린 문틈 사이로 다가가려다, 미숙의 흐느끼는 소릴 듣고는, 두 세 번 주위를 살피고 저벅 저벅 단호한 발검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몇시간이 흘렀다. 벌써 토요일 오후는 저물어갔으나, 미숙의 생각 외로 수위는 오지 않았다. 미숙은 더 이상 눈물도 흘리지 않고 조용히 저녁놀이 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성영이가 입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 지 너무나 걱정 되었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게 꿈이었는데, 제자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히다니..
미숙은 성영이 자신에게 이미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해주었던 지난번 기억이 떠올랐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자 미숙의 입가에서 힘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착해, 성영인. 이렇게 못난 선생님을 칭찬해주고. 미숙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한참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체력이 달리는 듯 느껴졌다. 그렇게, 학습교구실을 나가려던 미숙의 눈에, 소파 위의 작은 종이 두장이 보였다. 내일, 일요일자 영화표 두장이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띵띠리리리링, 띵띠리링]
미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알람을 살짝 눌러 껐다. 아침 8시 30분. 머리가 아팠다. 전날 너무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은 탓일 것이다. 미숙은, 문득 거실 블라인드 밖을 보다가 비가 조록 조록 오는 걸 알았다.
미숙은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특별했다. 왈가닥이었던 학창시절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차분해지는 게 느껴져, 그때만큼은 요조숙녀 흉내를 내보기도 했었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옛날의 차분한 기분으로, 자신의 귀여운 제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숙은 그게 참 좋았다. 얼굴 한가득 미소를 떠올릴 만큼. 아아, 이럴 때 따뜻한 코코아 한잔이라도 있었으면.. 미숙은 따뜻한 걸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로 조금 더 비 내리는 바깥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우리 집 말고도.. 음, 성현이에게도 닿겠고, 종인이에게도 닿겠지? 진성이에게도, 승찬이에게도, 그리고, 물론.. 성영이에게도. 기분이 좋던 다른 때의 비 오던 날과 달리 다시 성영이가 생각나 우울해지자, 미숙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뭐하는 거야. 이미숙. 성영이가 힘 낼 수 있게, 나도 힘 내야지. 미숙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하며 크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으아아아앗 ~]
기지개를 한 후 약간의 어지럼증에 눈을 감았다 뜨면, 언제나 보이는 베이지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오늘 하루, 성영일 잊어보자. 월요일 아침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성영이에게 웃어주는 거야. 미숙은 베이지색 천장에 굳은 결심을 다졌다.
아침으로 먹을 된장국을 끓이며, 미숙은 하품을 했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나른하네.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간을 보고, 뜨거움에 눈 한번 찡긋해준 뒤 미숙은 행주 두개를 겹쳐 뚝배기를 밥상 위 그릇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자아, 이 정도면 먹을만하네? 순 인스턴트 뿐인 반찬을 둘러보고 미숙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혼자 뿐이지만, 밥 차리느라 수고한 자신의 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미숙은 꼭 꼭 밥을 씹어 넘기며, 머릿 속으로 그렇게 되뇌였다. 성영일 꼭 잊으려고 의식하며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미숙은 남자와의 인연이 끝났을 때, 늘 자신이 차린 밥을 맛있게 먹으며 힘을 내었었다. 어쩌면 미숙이 아직도 날씬한 이유는 대학생 이후 마땅히 이렇다할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숙은 그렇게, 덥히기만 하면 누구나 똑같은 맛이 나는 인스턴트를 맛있게 요리한 자신을 대견 스럽게 여기며 밥그릇을 비웠다.
미숙은 밥을 먹고 난 후, 우산을 쓰곤 동네 비디오 가게로 내려갔다. 이리저리 비디오를 살펴보다, 철 지난 예전 코미디 영화를 빌려서는 비오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촉촉이 젖은 아파트 옆 산에선 신선한 흙 냄새와 풋풋한 풀 냄새가 났고, 맨 발에 간편한 슬리퍼 차림인 미숙의 발에 차가운 빗방울이 찰박찰박 튀어 올라 미숙은 기분이 상쾌해졌다. 역시 비오는 날이 좋아. 한껏 나아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미숙은 비디오를 틀었다. 옛날 영화 광고가 지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러고보니, 그 영화표 시간이 딱 지금쯤이었지. 어느덧 오후가 되어버린 시계를 보며, 미숙은 어제의 영화표가 생각이 났다. 소파 위에 놓여져 있던 두장의 영화표. 미숙은 그 영화표 덕분에 한참을 더 울어야했다. 영화표를 보고서야 성영이 쭈뼛쭈뼛 다가섰던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순수했던 목적의 성영이를 내가 괜히 학습교구실로 데리고 가, 성영이가 부탁하지도 않은 짓을 하고는.. 성영이와 이래선 안된다며 성영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거잖아. 나란 애는.. 도대체가 나란 애는.. 미숙은 어제의 생각에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금방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 속에서는, 야하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일 씰룩 거리며 걷던 여자가 손수건을 흘리자, 말쑥한 신사가 그걸 주워 주다, 변태로 오해 받고 하이힐로 그곳을 힘껏 차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서양 남자의 연기가 어찌나 실감 나는 지, 미숙은 그가 불쌍해지려다, 문득 눈물을 흘리는 게 마치 성영 같다고 생각했다. 성영이에게 못할 짓을 했어. 이젠 성영이가 나를 아는 척도 안할지도 몰라. 미숙은, 문득 성영이가 자신을 피하며 모르는 척할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성영이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외면한다면, 그렇다면.. 성영이와 사랑할 순 없지만, 성영이가 또 나를 모르는 척 한다면, 그것도 싫다니, 나는 도대체 어떡해야하는 거야. 미숙은, 문득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고,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아하하하, 이 영화 너무 재밌어.]
그리고, 미숙은 스윽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었다. 자신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아, 오히려 이렇게 웃는 걸.
그때였다.
[딩동, 딩동]
어라? 누구지?
미숙은 황급히 눈가를 더욱 매매 닦아내고, 황급히 저급 코미디 영화를 꺼버렸다. 호, 혹시 성영이가 아닐까? 지난번에도 우리 집에 왔었으니, 충분히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그럼 문을 열어줘야하나? 어, 어쩌지? 미숙은 짧게 갈등하다, 문 밖으로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입고 있던 초라한 츄리닝을 벗고 지난 번에 새로 샀던 티와 바지를 꺼내어 갈아입었다. 이, 이정도면 집 안에서 입고 있어도 꾸며입었단 티는 안날거야, 그냥, 티랑 편한 바지일 뿐인걸.
[딩동, 딩동]
미숙은 츄리닝을 대충 침대 위에 놓아두고 인터폰을 받았다.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성현입니다.]
[으응? 성현이구나? 무슨 일이니?]
[상담드릴 일도 몇가지 있고, 선생님께 볼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 음.. 저, 들어오렴.]
미숙은 성현이의 변함없는 그 눈초리에 조금 주저하다가, 인터폰의 수화기를 내리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성현은, 미숙이 인터폰 수화기를 내리자 오른쪽 입꼬리를 올려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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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갑자기 친척들이 찾아와 조카들이 온통 방을 돌아다니는 통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_ㅠ
미숙이와 성영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천과 리플은 저에게 힘을 ! 아자아 !
[성영아, 일어나, 어머니 걱정 하시겠다.]
끌어안은 상태로 선생님의 온기를 느끼며 누워있는 성영을 미숙은 일으켜 세워주며, 자신 또한 일어났다.
미숙은, 성영이 사정 후 머리가 복잡해 지는 걸 느꼈다. 그저 성영의 욕구불만을 풀어주기 위해서, 성영이 더 이상 문제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서 성영의 그것을 빨아주던 일이, 자신 또한 점 점 더 빠져 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흥분이 되기 시작하면, 점 점 몸을 허락하는 커트라인이 내려가는 것이 미숙은 더 없이 불안했다. 아까도 그랬다. 만약 성영이 자신의 말대로 그대로 해버렸다면.. 미숙은 그제서야 자신을 생각해서 꾹 참아준 성영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머리 속에 그려지는 부끄러운 상상에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며 성영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안돼, 안돼, 정말. 이러다가는..
성영은 일어나 바지를 다시 주섬주섬 올려 입으면서도, 자신의 눈을 피하며 옷을 정리하는 선생님이 너무나도 귀엽게 보였다. 선생님이 쑥스러우신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성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제 내 거야, 선생님도 이제 내가 선생님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테니까. 성영은, 교복을 다 입고는 아직도 옷을 정리하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미숙은 옷을 정리하며 참담함을 느껴야했다. 성영과의 그런 일을 끝낸 후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팬티는 자신의 물로 축축히 젖어있었고, 바지는 무릎 끝까지 내려져있었으며, 티와 브레지어는 가슴 끝까지 올라가 흰 젖가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미숙은 자신이 너무나도 추잡스럽고 음란하게 느껴졌다. 성영에겐 자신의 부끄러운 곳과 항문을 그대로 엉덩일 내밀어 보여주었고, 흰 가슴을 덜렁거리며 성영에게 맞추어 허리를 흔들었으니. 신음은 또 얼마나 질렀는데.. 성영일 어떻게 본담? 미숙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어 벽만 쳐다보며 옷을 정리했다. 벗은 것이 많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미숙은 다급해졌다. 왜 이렇게 브레지어 후크가 안 채워져? 성영이가 쳐다볼텐데.. 그러나 브레지어 후크는 야속하게도 계속 미끄러졌다.
[제가 채워드릴게요.]
[아, 아니, 괜찮은데..]
성영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며, 미숙은 손 끝에서 브레지어를 성영의 손에 빼앗기는 걸 느꼈다. 서, 성영이도 너무 오지랖 넓은게 문제네, 이런건 내가 해도 되는건데, 정말.. 미숙은 성영의 행동에 당황하고 놀란 가슴 진정시켰으나, 뛰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고 조심 조심 반대쪽 바닥만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뜨거웠다. 어, 얼굴 빨개지면 안되는데..
[자, 다 됬어요, 선생님.]
[으, 으응. 그래.]
미숙은 서둘러 올라간 티를 내리려했으나, 브레지어 후크를 채워주느라 뒤에 있던 성영이 손을 뻗어 미숙의 몸을 그대로 감싸 안아, 그러지 못했다. 미숙은,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성영은 그렇게 미숙에게 몸을 기대었다.
[선생님, 잠시만 이대로만 있게 해주세요.]
[아..저, 저..저기, 성영아.]
[사랑해요, 선생님.]
미숙은 자신의 귀에 성영이 달콤하게 속삭이자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아, 안돼. 내가 뭐하는 거야.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억누른채 미숙은 성영의 몸을 거칠게 밀어내었다.
[아, 안돼, 성영아. 우리 이러면 안돼.]
[네? 선생님?]
[아, 아니야.]
미숙은 성영의 얼굴을 보곤 다시 눈을 피했다. 이런 일, 그만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다시 선생과 제자로 돌아가자고, 말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런걸 어떻게 말해. 성영이가 만약 날 싫어하게 된다면..미숙은 눈이 뜨거워졌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거야? 나 정말, 성영일 좋아하는건가..?
[선생님, 저 쳐다봐주세요.]
미숙은 성영의 말을 들었으나 쳐다보지 못했다. 가슴은 주체못하고 콩닥콩닥 뛰었다. 미숙은 상황파악도 못하고 성영의 한마디에 가슴이 뛰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선생님.]
성영의 두 손이 미숙의 머리를 잡고는 눈을 피하는 미숙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미숙은, 빨개진 얼굴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으나, 곧 조금씩 다가오는 성영의 입술에 당황해했다.
[으읍..아, 안돼]
미숙은 힘을 주어 성영을 밀어내었다. 성영이 놀란 눈으로 미숙을 보고 있었다. 아, 안되겠어. 아무래도 말을 해야겠어. 미숙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이러지 마, 서, 성영아. 우린 사제 관계잖니. 내, 내가 잠시..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나봐.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성영아.]
[무, 무슨 소리세요. 선생님? 갑자기?]
성영은 머리가 띵해짐을 느꼈다. 어..어째서? 선생님도 좋으셨던게 아닌가요? 선생님은 저 사랑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나, 성영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미숙을 쳐다보기만 했다. 미숙은 살짝 등을 돌려 옆의 벽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 마.. 말도 안되요. 전 그럴 수 없어요.]
성영은 믿을 수 없었다. 선생님과 방금까지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왜 이러시는 지, 결국 선생님께 넣지 않아서 선생님이 실망하신걸까? 아냐. 선생님이 그러실 분은 아닌데. 성영은, 아무 말 없는 선생님을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미숙은 성영의 눈빛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했던 짓은 너무 미안해, 안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니가 원해서 다릴 만지게 해준 거였는데, 그게 잘못이었구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잖니..]
점 점 작아지는 미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영은 답답함을 느꼈다. 젠장,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하지만 성영의 입에선 속마음과는 정반대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요! 선생님 잘못이에요! 제가 이렇게 된 건 선생님 탓이니까, 저한테 이러시면 안되죠, 선생님. 저 성영이에요, 언제 문제 일으킬 줄 모르는 놈이라구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선생님 아니면 이젠 막을 수도 없단 말예요!]
미숙은 조용히 몸만 떨었다. 성영이 무서웠다. 소리지르는 성영이 무서운게 아니었다. 미숙은 자신의 품 속에서 성영이 떠난다면 성영이 더욱 삐뚤어지진 않을까, 그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래서, 미숙은, 소리 지르던 성영에게 다가가 성영을 꼭 껴안았다.
[성영아, 아까 전엔 고마웠어. 나 지켜준거,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
성영은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자신을 껴안고 있는 미숙을 바라볼 수 없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더할지 겁이 났다. 눈물이 찔끔 났다. 미숙은 그런 성영일 껴안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성영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성영아, 나 정말 사랑했니? 선생님을, 여자로서?]
성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으나 성영은 애서 딴 곳을 바라보았다. 뭐야, 나 이러는 거 정말 맘에 안드는데. 무슨 눈물이야. 눈물이.
[나는, 나는.. 성영이 좋아했던거 같아. 제자가 아닌 남자로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성영이랑 있을 땐 너무 좋았었어. 성영이가 나 생각해주는 거, 성영이가 날 사랑해주는 걸, 가끔 가끔 느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런 니가 처음 내게 키스 해줬을 때, 나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 줄 아니? 어떻게 내가 너에게 그렇게 빠졌는 지, 니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
미숙은 성영을 껴안은 채,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나도 너무 성영에게 마음을 준 거 같아, 선생님으로서, 자각이 없어. 그래서 성영이도 내게 더욱 빠져들었겠지. 미안해, 성영아. 선생님이 죄인이야.
[그치만, 그치만.. 너와 난, 선생님과 제자잖니.]
성영은 눈물이 흐르는 걸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선생과 제자. 선생과 제자. 그것 참 엿 같은 거지. 젠장.
[성영아, 선생님은 너보다 11살이나 연상인걸. 나보다, 젊고 예쁜 여학생들, 너 충분히 사귈 수 있으니까. 성영이 같은 남잔, 나한테 너무 아까워. 나이 든 내가 너같이 착하고 멋진 남잘 좋아 하니까 하늘이 내린 벌일 거야.]
성영은 더 이상 어깨에 고개를 묻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선생님의 핑계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잔인하게도 성영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의 품 속에서 벗어 났다.
[그만해요, 선생님. 젊고 예쁜 여학생들요? 웃기지말아요, 저 선생님 사랑해요. 그런 년들은 눈에도 안들어와요. 비록.. 비록, 선생님과 이상한 관계가 되긴 해버렸지만, 저 후회 안해요. 선생과 제자가 뭐 어때서요? 선생님도...]
성영은 계속해서 소리치려다, 미숙의 볼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말을 멎을 수 밖에 없었다.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았는데, 성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교복 어깨가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날 설득하려고 거짓말한 게 아니었던가? 왜,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시는 거야. 성영은 자신도 눈물로 눈가가 반짝이는 걸 잊고, 자신이 밀어내었던 선생님을 포옥 안아버렸다. 선생님의 기분도 생각지 못하고 떼를 썼던 자신이 너무나도 싫게 느껴졌다.
[울지말아요, 선생님. 왜 선생님이 울고 그러세요? 우리 이렇게 된 거, 누구 탓도 아니잖아요. 그저, 우리 이렇게만 지내면 안되나요? 이렇게만...]
미숙은 왜 눈물 흐르는 줄도 모르면서 눈물 흘리는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저 가슴 몇 번 콩닥 거렸는데, 그저 귀여운 제자인 줄로만 알았던 성영이에게 그런 말 한게 뭐가 그렇게 슬픈 일이라고, 뭐가 그렇게 눈물이 흐를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 참으려해도 참으려해도 안되는 눈물이 미숙의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성영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닦고 싶었지만, 미숙은 그만 성영의 품을 벗어나려 애를 썼다. 29살. 미숙은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 따위, 사회가 용납할리 없었다.
성영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품을 벗어나려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처음부터 선생님의 다리를 만지는 게 아니었어. 그랬다면, 그랬다면 나와 선생님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성영은, 눈가에 반짝이는 눈물을 소매로 쓰윽 닦아내고, 품 안에서 선생님을 놓아드렸다. 미숙은, 성영의 품에서 벗어나자, 울음을 참으려 애쓰며 성영에게 말했다.
[미, 미안해. 성영아. 정말.. 미안해.]
성영은, 미숙에게 잘 지어주던 미소 조차 한번 지어주지 못하고, 그런 선생님을 놔둔채 혼자서 학습교구실의 열쇠를 열고는 나가버렸다. 자신이 계속해서 있으면, 선생님이 곤란할 것 같았다. 성영의 얼굴에선 그제서야 눈물이 타고 흘렀다.
성현은, 학습교구실 밖 구석에서 성영이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표정없는 입 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성현은 열린 문틈 사이로 다가가려다, 미숙의 흐느끼는 소릴 듣고는, 두 세 번 주위를 살피고 저벅 저벅 단호한 발검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몇시간이 흘렀다. 벌써 토요일 오후는 저물어갔으나, 미숙의 생각 외로 수위는 오지 않았다. 미숙은 더 이상 눈물도 흘리지 않고 조용히 저녁놀이 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성영이가 입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 지 너무나 걱정 되었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게 꿈이었는데, 제자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히다니..
미숙은 성영이 자신에게 이미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해주었던 지난번 기억이 떠올랐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자 미숙의 입가에서 힘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착해, 성영인. 이렇게 못난 선생님을 칭찬해주고. 미숙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한참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체력이 달리는 듯 느껴졌다. 그렇게, 학습교구실을 나가려던 미숙의 눈에, 소파 위의 작은 종이 두장이 보였다. 내일, 일요일자 영화표 두장이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띵띠리리리링, 띵띠리링]
미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알람을 살짝 눌러 껐다. 아침 8시 30분. 머리가 아팠다. 전날 너무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은 탓일 것이다. 미숙은, 문득 거실 블라인드 밖을 보다가 비가 조록 조록 오는 걸 알았다.
미숙은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특별했다. 왈가닥이었던 학창시절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차분해지는 게 느껴져, 그때만큼은 요조숙녀 흉내를 내보기도 했었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옛날의 차분한 기분으로, 자신의 귀여운 제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숙은 그게 참 좋았다. 얼굴 한가득 미소를 떠올릴 만큼. 아아, 이럴 때 따뜻한 코코아 한잔이라도 있었으면.. 미숙은 따뜻한 걸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로 조금 더 비 내리는 바깥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우리 집 말고도.. 음, 성현이에게도 닿겠고, 종인이에게도 닿겠지? 진성이에게도, 승찬이에게도, 그리고, 물론.. 성영이에게도. 기분이 좋던 다른 때의 비 오던 날과 달리 다시 성영이가 생각나 우울해지자, 미숙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뭐하는 거야. 이미숙. 성영이가 힘 낼 수 있게, 나도 힘 내야지. 미숙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하며 크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으아아아앗 ~]
기지개를 한 후 약간의 어지럼증에 눈을 감았다 뜨면, 언제나 보이는 베이지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오늘 하루, 성영일 잊어보자. 월요일 아침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성영이에게 웃어주는 거야. 미숙은 베이지색 천장에 굳은 결심을 다졌다.
아침으로 먹을 된장국을 끓이며, 미숙은 하품을 했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나른하네.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간을 보고, 뜨거움에 눈 한번 찡긋해준 뒤 미숙은 행주 두개를 겹쳐 뚝배기를 밥상 위 그릇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자아, 이 정도면 먹을만하네? 순 인스턴트 뿐인 반찬을 둘러보고 미숙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혼자 뿐이지만, 밥 차리느라 수고한 자신의 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미숙은 꼭 꼭 밥을 씹어 넘기며, 머릿 속으로 그렇게 되뇌였다. 성영일 꼭 잊으려고 의식하며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미숙은 남자와의 인연이 끝났을 때, 늘 자신이 차린 밥을 맛있게 먹으며 힘을 내었었다. 어쩌면 미숙이 아직도 날씬한 이유는 대학생 이후 마땅히 이렇다할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숙은 그렇게, 덥히기만 하면 누구나 똑같은 맛이 나는 인스턴트를 맛있게 요리한 자신을 대견 스럽게 여기며 밥그릇을 비웠다.
미숙은 밥을 먹고 난 후, 우산을 쓰곤 동네 비디오 가게로 내려갔다. 이리저리 비디오를 살펴보다, 철 지난 예전 코미디 영화를 빌려서는 비오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촉촉이 젖은 아파트 옆 산에선 신선한 흙 냄새와 풋풋한 풀 냄새가 났고, 맨 발에 간편한 슬리퍼 차림인 미숙의 발에 차가운 빗방울이 찰박찰박 튀어 올라 미숙은 기분이 상쾌해졌다. 역시 비오는 날이 좋아. 한껏 나아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미숙은 비디오를 틀었다. 옛날 영화 광고가 지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러고보니, 그 영화표 시간이 딱 지금쯤이었지. 어느덧 오후가 되어버린 시계를 보며, 미숙은 어제의 영화표가 생각이 났다. 소파 위에 놓여져 있던 두장의 영화표. 미숙은 그 영화표 덕분에 한참을 더 울어야했다. 영화표를 보고서야 성영이 쭈뼛쭈뼛 다가섰던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순수했던 목적의 성영이를 내가 괜히 학습교구실로 데리고 가, 성영이가 부탁하지도 않은 짓을 하고는.. 성영이와 이래선 안된다며 성영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거잖아. 나란 애는.. 도대체가 나란 애는.. 미숙은 어제의 생각에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금방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 속에서는, 야하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일 씰룩 거리며 걷던 여자가 손수건을 흘리자, 말쑥한 신사가 그걸 주워 주다, 변태로 오해 받고 하이힐로 그곳을 힘껏 차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서양 남자의 연기가 어찌나 실감 나는 지, 미숙은 그가 불쌍해지려다, 문득 눈물을 흘리는 게 마치 성영 같다고 생각했다. 성영이에게 못할 짓을 했어. 이젠 성영이가 나를 아는 척도 안할지도 몰라. 미숙은, 문득 성영이가 자신을 피하며 모르는 척할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성영이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외면한다면, 그렇다면.. 성영이와 사랑할 순 없지만, 성영이가 또 나를 모르는 척 한다면, 그것도 싫다니, 나는 도대체 어떡해야하는 거야. 미숙은, 문득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고,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아하하하, 이 영화 너무 재밌어.]
그리고, 미숙은 스윽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었다. 자신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아, 오히려 이렇게 웃는 걸.
그때였다.
[딩동, 딩동]
어라? 누구지?
미숙은 황급히 눈가를 더욱 매매 닦아내고, 황급히 저급 코미디 영화를 꺼버렸다. 호, 혹시 성영이가 아닐까? 지난번에도 우리 집에 왔었으니, 충분히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그럼 문을 열어줘야하나? 어, 어쩌지? 미숙은 짧게 갈등하다, 문 밖으로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입고 있던 초라한 츄리닝을 벗고 지난 번에 새로 샀던 티와 바지를 꺼내어 갈아입었다. 이, 이정도면 집 안에서 입고 있어도 꾸며입었단 티는 안날거야, 그냥, 티랑 편한 바지일 뿐인걸.
[딩동, 딩동]
미숙은 츄리닝을 대충 침대 위에 놓아두고 인터폰을 받았다.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성현입니다.]
[으응? 성현이구나? 무슨 일이니?]
[상담드릴 일도 몇가지 있고, 선생님께 볼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 음.. 저, 들어오렴.]
미숙은 성현이의 변함없는 그 눈초리에 조금 주저하다가, 인터폰의 수화기를 내리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성현은, 미숙이 인터폰 수화기를 내리자 오른쪽 입꼬리를 올려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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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갑자기 친척들이 찾아와 조카들이 온통 방을 돌아다니는 통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_ㅠ
미숙이와 성영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천과 리플은 저에게 힘을 ! 아자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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