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 3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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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18회 작성일 20-01-17 15:08본문
-35부-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니 느낌이 어색한 것이 또 과음을 하고 낯선 곳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물을 찾아 둘러보지만 아무래도 숙박업소가 아닌 모양이다. 잘 정돈되어 있는 살림살이가 아니더라도 이미 방안 가득한 향기가 여자의 거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강주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옷은 한 곳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필시 누군가 도움을 준 이가 있었겠지만 달리 물을 길도 없으니 민망한 꼴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옷을 주워 입는다.
신세를 졌든 폐를 끼쳤든 인사할 길이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야 할 터 명함을 꺼내 침대 위에 얹어두고 방을 빠져 나온다.
“나, 이거야 원...... 기억이 나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기왕 남의 집 신세를 진 마당에 갈증을 푸는 문제도 간절해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신다. 불량배들에게 당황해서 그랬는지 술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기억이 없으니 놀라긴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현관으로 나서려는데 문이 열리고 마담이 들어선다.
“어어! 여기가 마담 집이었어요?”
“어머!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호호호...... 벌써 가시게요? 들어가세요. 그래도 제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아침 식사는 대접해서 보내 드려야지요.”
찬거리를 사 오는지 손에는 쇼핑봉투가 들려있다. 기왕 마주쳤으니 간밤의 상황도 궁금하여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어 기지개를 편다.
“저...... 간밤에 제가 실수를 많이 했겠지요?”
“네? 호호호...... 기억 안 나시면 너무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별로 실수하신 거 없어요.”
“별로라...... 하하...... 하긴 한 모양이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기억이 안나니 뭐라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니라니까요. 자...... 입맛 없으시면 국물이라도 좀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참...... 저랑 같이 술 마신 친구는 잘 갔나요? 어떻게 하다가 제가 여기서 잠을 자게 됐죠?”
“네...... 그 분은 잘 가셨어요. 사장님은 너무 취하셔서 제가 모시고 온 거예요.”
“아! 네...... 참, 그리고 어제 그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겁니까? 그 사람들 하는 거 보니까 액션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 같던데...... 하하하......”
“그건 정말 죄송해요. 오해가 있는 바람에...... 요즘 이 동네가 술 납품 문제로 말이 많잖아요. 대뜸 사장님을 찾으시고 사람이 더 온다고 하시니까 아가씨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아! 그리고...... 사장님은 끝내 안 오셨던가요?”
“네...... 그건......”
강주는 입안이 껄끄러운지 몇 숟가락 뜨다가 내려놓고는 일부러 준비해준 마담에게 미안한 듯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유, 입맛이 안 당기네요. 폐만 끼치고 이만 가봐야 하겠습니다. 음...... 아침에 보니까 제 행색이 말이 아니던데...... 오늘 신세 진 것은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갚도록 하지요.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허허허......”
“네, 그럼...... 이젠 혼자라도 오세요. 얼굴도 알았으니까......”
“네, 그러지요.”
차는 술집에 있을 것이고 이른 아침 아파트촌에 택시가 있을 리 없으니 멀리 보이는 쇼핑센터에 방향을 맞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간밤의 상황이야 어찌 됐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를 한다는 것도 맑은 정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온몸이 개운치 못하다. 목욕탕이라도 찾을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 둘러보는데 전화가 울린다.
“응?...... 여보세요?”
“네, 저...... 최강주씨?......”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어머! 호호호...... 침대를 정리하다 보니 명함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 아...... 네...... 마담이시군요. 아까 제가 나오려고 하다 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누구 집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명함만 꺼내 두고 나오려다가...... 이제 마담에게 신세 진 것도 알았으니까 다음에 제가 카페로 한 번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용인에 땅이 어쩌니 하면서 말씀들 나누시던데...... 이 회사에 다니시나요? 그것도 소장님이신가 봐요......”
“허허허...... 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니 모르겠고, 그 슈퍼는 제가 관리하는 곳이 맞습니다. 참...... 이 근처 어디에 찜질방이나 목욕탕 없나요? 눈에 잘 안 띄네요.”
“아유 참, 여기서 씻고 나가시지 그랬어요? 지금 어디 들어가시면 출근 시간 늦지 않으세요? 뭐...... 소장님이라서 괜찮으시려나? 호호호......”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휴가 중이라서 출근 걱정은 없습니다. 그럼 큰길 쪽으로 가야 되겠지요?”
“그러면 그러지 말고 다시 오세요. 저도 오후에나 나가보면 되니까...... 제가 여쭤볼 것도 있고......”
“그러세요?...... 허허...... 이거 참, 신세를 자꾸 져서야 어디...... 초면에......”
“어머...... 초면이라니요? 이제 다시 오시면 구면이잖아요. 신세는 이미 어제 많이 지셨으니까, 걱정 말고 얼른 올라오기나 하세요. 문 열어 둘게요.”
“네, 그럼......”
역시 그만한 규모의 술집을 이끄는 마담이라 그런지 화통하기 짝이 없이 신원시원하다. 다소 어색한 기분이지만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담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으로 다시 아파트로 향한다.
어쩐 일인지 조금 전 느낀 기분과는 달리 사근거리며 들어붙는 느낌이지만 비록 불편했던 사내였어도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내보내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 버린다.
또 어디를 나갔는지 집안엔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이젠 허락도 받았으니 방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어 이 방 저 방 모두 열어보지만 의외로 정갈하게 갖춰져 있을 뿐이어서 난잡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칫솔도 마담이 쓰던 것 하나뿐인 것 같아 망설이다가 이내 치약을 짠다.
“바깥에 속옷 있으니까 갈아입으세요.”
속옷을 사러 나갔다 온 모양인데 갑자기 서비스가 좋아진 이유가 궁금하지만 강주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다. 이미 보여줄 것 다 보여줬는데 내외할 일이 무엇이겠나 싶기도 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맨 몸으로 나와 방금 사온 듯 보이는 속옷 포장을 뜯는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테이블에 올려두며 강주를 바라본다.
“어머! 이제 보니 몸이 좋으시네요? 호호호...... 이리 와서 커피 드세요.”
“허허허...... 쑥스럽게 왜 그래요? 볼 거 다 본 사이에......”
소파에 앉아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마담은 물끄러미 강주를 바라보고는 입을 연다.
“어제 그 분이 소장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매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부인이 나이가 많으신 모양이에요? 이렇게 훤칠하신 분이 왜 그런 결혼을 하셨을까?......”
“응?...... 아, 하하하...... 저 아직 총각이에요. 결혼 안 했어요.”
“어머! 그런데 왜 매형이라고 그래요?”
“뭐, 그런 사연이 있어요. 우연한 일로 알게 되었는데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 사장 후배더라고요. 그리고 그 친구 누나는 우리 매장 근처에서 다방을 했었고...... 음...... 거래처 사장이 나한테 잘 하라고 하니까 그러는 모양이지요.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형님 소리 듣는 것 보다는 그게 낫잖아요.”
“어머! 어쩐지...... 아유, 그런데 왜 소장님 같은 분이 그런 사람하고 다니세요? 어울리지 않게......”
“어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제도 그 친구 때문에 그나마 망신당할 거안 당한 것 같은데......”
“아이 참, 그건 오해였다니까요.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결국 그것도 다 그 사람 때문인 거나 마찬가진데요. 뭘......”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정필이 때문이라니?......”
마담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강주가 불을 갖다 대자 쑥스러운 듯 웃으며 불을 빨아들인다.
“혹시...... 그 사람...... 형이라는 사람도 알아요?”
“음...... 한 번 본 적이 있긴 하지요.”
“그 박부장이라는 사람이 주류도매 영업을 맡아서 하는 모양인데 이 일대가 요즘 경쟁이 붙어서 말도 못해요. 아유...... 순 양아치 같은 새끼들...... 어머! 내 정신 좀 봐.”
마담은 말을 뱉어놓고 후회가 되는 듯 멋쩍은 미소로 입을 가리고 강주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아, 괜찮아요. 허허......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네...... 호호호...... 죄송해요. 소장님은 그냥 편안해서 말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그 박부장은 좀 점잖은 편인데 어제 왔던 그 인간은 아주 상종하기가 힘들어요. 이 근처에서 보인지는 얼마 안 됐는데 자기 형 패거리를 믿고 그러는지 위세가 보통 아니에요. 어제도 소장님한테 실수했다고 일하는 아가씨 뺨을 올려붙여가지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요. 결국 다 자기네들이 시켜서 한 일을......”
“네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요. 소장님은 술에 취해서 정신도 없고, 그 사람은 나와서 행패 부리고...... 자기도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시고 가면서 소장님 잘 모시라고 하고 가는데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까 싶어서 할 수 없이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다니까요.”
“어허...... 이런...... 공연히 제가 면목이 안서네요. 그런데 그 주류도매 영업이라는 게 얼마나 돈이 된다고 형제간에 나서서 저런답니까?”
“단순히 그런 게 아니고...... 도매회사에서 저런 사람들을 고용해서 우리 같은 술집에 납품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얼마간 돈을 먹을 수 있을 거고 또 자기네 똘마니들도 우리 같은 술집에 심어서 월급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니까 일석이조인 셈이죠. 어제 소장님도 아마 경쟁업체에서 보낸 사람으로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계집애들도 당장 그 애들이 무서우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아...... 그게 수입원이 되니까 패거리를 유지하기로는 썩 괜찮은 방법이다 이 말이라는 거죠?”
“역전 쪽에 있던 사람들이라던데 점점 터미널 쪽으로 퍼지고 이제는 영통에 들어와서 저러는 모양이에요. 뭐, 우리야 어디에서 받든 물건만 받으면 되고 영업부장도 어차피 고용을 해야 하니까 상관없지만 저렇게 술집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그게 싫어서 그렇죠.”
“아...... 이거 참...... 내가 뭐, 힘이라도 있어야 도와 드릴 텐데...... 이런 쪽은 전혀 문외한이라......”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그 개고기 같은 인간이 그 정도 이유로 소장님한테 그렇게 잘 할 수는 없을 텐데...... 정말 친 매형이라도 그렇게는 안 할 거 아니에요......”
“음...... 글쎄요? 그러게...... 좀 이상하네요...... 하하하...... 어쨌든 어제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 모양이네요. 어쨌거나 그 덕에 이렇게 마담한테 특별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나는 오히려 정필이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이 참, 그러지 말고 소장님이 얘기 좀 잘 해주세요. 좀 어지간히 하라고...... 소장님 말씀은 잘 듣는 것 같던데...... 그럼 저도 우리 카페 사장님 만나게 주선해 드릴게요.”
전무의 비리 가능성에 대하여 보라에게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솔깃했지만 정필이 형제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남의 뒤를 캔다는 것도 그들과 비슷한 부류로 취급 받을지 몰라 만정이 다 떨어져 마음을 바꿔 먹는다.
“허허허...... 사안이 내가 말한다고 들어 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사장님을 내가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뭐, 정보 좀 얻으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오버한 것 같아서 벌써 포기했어요.”
“아이, 몰라요. 책임 져요. 무조건 해 줘야 돼요...... 대신 저도 솔직히 말 할게요. 제가 사장인데요. 절 왜 찾으신 거예요?”
정필이가 이 사내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섭섭하게 처신했다간 망나니 같은 놈으로부터 괜한 후환이 있을지 몰라 마지못해 집안에 들이긴 했었다. 이제 명함을 통해 강주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보니 같은 회사 출신이고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찾았던 것으로 보아 필시 자신의 출신내력을 알고 왔을 터이니 속일 것도 없다. 강주를 잘만 사귀어 두면 오히려 양아치 같은 놈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바람막이 역할도 충실히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다시 불러들인 모양이다.
“으응? 마담이 사장이라고? 와...... 하하...... 배우 뺨치게 연기를 잘 하시네요...... 그런데 왜 이제껏 아닌 척 했어요?”
“그야 내가 직접 홀을 관리하고 있는데 사장인 걸 알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그러죠. 소방이니 경찰이니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많고......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단 말이에요. 그나저나 빨리 말 해봐요. 내가 그 회사 출신인거 알고 왔을 거 아니에요? 모르면 몰라도 내가 소장님보다 입사 선배일 건데 선배님 말씀을 안 들을 거예요? 호호호......”
은근히 교태를 부리는 마담이 밉지 않아서 더 애를 태운다.
“허허...... 선배는 무슨...... 나이도 나하고 비슷할 거고...... 여자들이야 불알이 없어서 군대를 안 가니까 그렇지, 아마도 근무는 내가 더 오래 했을 건데......”
“그래도 소장님이 군대 있을 무렵에 나는 일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쨌든 내가 선배죠. 호호호...... 어쨌든 뭐 물어 보려고 했냐고요?”
“아니, 이젠 신경 쓰지 말라니까......후훗......”
“흥...... 그럼 오늘 아무데도 못가.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요.”
강주가 장난을 치며 애를 태우자 마담은 대뜸 강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버린다. 애교 섞인 유혹으로 답을 얻어내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샐쭉 토라진 척 고개를 돌리고 무릎을 베고 누운 마담에게서 상큼한 향수냄새가 올라온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쓸어주며 자극해 주니 기분이 좋은지 누운 채 기지개를 켠다.
“아아아흠...... 편하다...... 음...... 좋아요. 그러면 그렇다고 치고 그 사람들 좀 제발 어떻게 해 줘 봐요. 으응?”
고개를 돌려 강주를 바라보고 부탁을 하니 바로 좆 앞에서 눈을 말똥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몹시 귀여워 강주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킥...... 지금 어디에다 대고 사정을 하는 건지 알아?”
“으응? 호호호...... 차암...... 어제는 힘도 못쓰고 그냥 쓰러져 자더니만......”
마담은 강주의 허리를 꼬집으며 눈을 흘겨 뜬다.
“어? 그랬나?...... 내가 그냥 잤다고?”
“치...... 근근이 송장 끌듯이 끌고 들어왔더니 그래도 남자라고 그 정신에도 내 옷은 열심히 벗기던데......”
“허허...... 그리고는?......”
“후훗...... 그리고는 우리 아기가 배가 고팠는지 엄마 젖꼭지에 침만 잔뜩 발라 놓더니 엎드려 자던데요?...... 호호호......”
강주는 마담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탄을 한다.
“으이그...... 그럼 그렇지...... 술 마시고 기억이 안 날 때는 꼭 한 번씩 바보짓을 한다니까......”
“해줄 거야? 안 해줄 거야?”
“그래, 내 말이라고 들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말이나 해 보자...... 우리 선배님 카페에서 그러면 쓰나? 하하하......”
“정말이지? 그럼 오늘 어디 안 가도 되면 저녁에 같이 나가요. 네?”
“그때까지 뭐 하고 놀지?”
“으이그......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어요. 호호호...... 조금만 있다가 들어와요.”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큰 짐이라도 벗은 듯 날아갈 것처럼 사뿐거리는 게 강주에게 갖는 나름의 기대가 제법 큰 모양이다.
“들어와요.”
등을 받치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강주를 향해 손짓을 한다. 마치 누드쇼를 연출하는 것처럼 몸을 가리고 침대에 기대 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옷을 벗는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한 기분이 드니 역시 어느 분야든 전문가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강주도 장난기가 발동해 빙글빙글 돌아가며 옷을 벗고 그 모습을 본 마담은 허리를 비틀어 가며 재미있어 한다.
얇은 천을 들어내고 마담의 사타구니를 파고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아직도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애무를 하니 마치 아기가 엄마의 젖을 애무하는 듯 하고 그녀는 강주의 등을 희고 고운 손으로 쓸어준다. 비록 오래 전 한때였겠으나 전무의 여자를 탐한다는 생각에 미치니 오이디푸스라고 했던가, 마치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의 여자를 탐하는 것 같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입사해서 바라보던 단상 위의 그들은 꿈같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강주의 품 안에서 그들의 여자들이 숨을 할딱이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품 안에 있는 이 여자에게 오롯이 몰입할 뿐이다.
“하윽, 강주씨......”
“흐으읍...... 쭈우웁......”
마담은 강주의 입을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강주의 등과 엉덩이를 쓸어준다. 마치 완급을 조절하듯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길에 마치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몸을 맡긴다.
따뜻한 미소로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에 작은 떨림으로 기대가 내비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강주의 가슴을 밀치고 더듬더듬 아래로 내려간다.
“이름이 뭐지? 내 여자 이름도 모르고 젖을 빨아서야 되겠어?”
“하윽...... 어서 넣어 줘......혜영이야. 장혜영......”
“후우욱, 쑤우우욱......”
“흐윽...... 아하...... 좋아...... 천천히......으흐응......”
혜영은 이 자세를 좋아하는지 자세를 바꿀 마음이 없어 보인다. 침대에 기대앉듯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으니 마주 안고 있는 강주는 적잖이 불편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한 혜영의 감긴 눈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잠든 여자를 깨우지 않고 그녀의 원천으로 들어가려는 듯 근력을 끌어올려 팔에 힘을 주고 혜영을 불편하지 않게 틈을 배려해준다. 쉼 없이 허리 짓을 해 대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는지 혜영은 더욱 더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긴다.
“흐으으응...... 흐으으으응......”
“크으윽...... 울컥......울컥......”
연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기고 있던 혜영의 눈이 뜨이고 강주의 사정을 느끼는지 목을 끌어안고 함께 경련을 일으킨다.
“아학, 으으으응...... 하아아아......”
아직도 강주는 혜영의 목덜미를 빨아대고 혜영은 그런 강주의 혀를 즐기며 고개를 꺾어가며 강주를 받아들이고 길을 안내해 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숨을 고르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혜영의 얼굴빛은 발그스레하고 다정한 눈길을 강주에게 보내고 있다.
“강주씨는 여자 경험이 많은가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혜영은 다리를 들어 강주의 다리에 걸치고 가슴을 쓰다듬어 애정을 과시한다.
“으흠...... 나 자기랑 섹스를 한 게 아니고 편안히 안마를 받는 것 같았어요. 어쩜 그렇게 여자 기분을 잘 맞춰 줄 수가 있지?”
“그랬어? 그럼 이제 내 여자 할 거야?”
“피...... 그렇다고 누가 자기 여자 한댔나? 호호호...... 그렇다는 얘기지.”
“음...... 그런데 아침을 시원찮게 해서 그런지 배고픈데......장마담은?......”
“아이 씨...... 장마담이 뭐예요?
“뭐?...... 어쩌라고...... 내 여자 안 한다면서......”
“그런다고 장마담이라고 해요? 이름도 벌써 가르쳐 줬는데...... 칫......”
“그래, 그래...... 혜영아. 배 안 고프냐고......”
“그럼 밥 차려 줄 테니까 나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것만 말해줘요.”
“참 나...... 궁금한 것도 많네...... 비서실 통해서 알았지.”
“어머! 아직도 나를 아는 애들이 다 있나 봐?”
“그 애도 전해 들었다고 하긴 하더라......”
“그런데 왜 왔는데......응? 응? 자기야......”
의외로 강주가 고분고분 입을 열자 혜영은 바짝 들어붙으며 나머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강주는 단내를 풍기며 안겨오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아 준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후훗...... 혜영이 너...... 옛날에 전무 비서였다면서?”
“그런데...... 그래서?”
“너...... 혹시 그만둘 때 비밀스런 자료 가지고 위자료 받아냈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건 어디서 들었어? 그건 왜?”
강주는 혜영의 등을 쓸어주며 보라와의 일을 말해 주고 모두 들은 혜영은 강주의 가슴을 꼬집으며 웃는다.
“푸훗...... 그러면 그렇지.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럼 사실이 아니야?”
“그 무렵 전무가 점포 출점을 하기위해서 땅을 여기저기 많이 매입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자기가 제삼자를 통해서 매입해둔 땅이었더라 이거죠. 엄청나게 값을 튀겨서 떼돈을 벌고 있었는데 상무하고 시비가 생겼던 모양이에요. 뭐...... 둘 다 똑같은 도둑놈이니까......”
“응, 그래서......”
“그래서는 뭐...... 나도 그때 전무님이 첫 남자라서...... 후훗,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전무를 지켜주고 싶었거든.”
비웃는 듯 강주의 입 꼬리가 올라가며 웃음기를 머금자 혜영은 눈을 흘기며 강주의 불알을 쥐고 흔들며 앙탈을 부린다.
“죽을래? 나도 그때는 순정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지.”
“흐윽, 그래, 그래...... 누가 뭐래? 어서 말이나 해 봐.”
“자기가 기대하는 그런 거는 없어요. 전무한테 내가 말하길...... 술자리에 불러내서 상무가 마시는 술에 수면제를 많이 타서 잠들게 하고 부끄러운 사진을 찍자고 했거든. 좀 유치하지만 자기도 전무나 사장자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스캔들이 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까지 모델로 등장을 시키더라고...... 호호호...... 자기 딴에는 비서실 여직원이 등장하면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으응...... 그래서......”
“그게 전무 실수였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자기를 도와준 건 생각도 안하고 나까지 이상한 년 만들어서 내쫓는 분위기로 가는 것처럼 보여서...... 이렇게 하면 나도 상무 편에 붙어서 양심선언 할 수 있다고 공갈을 쳤지.”
“야...... 그래도 제법 간이 크네......”
“전무가 날 물로 본 거지. 그렇지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잖아. 금고 번호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얼마나 날 물로 봤으면 필름을 허술하게 그 안에다 뒀더라고...... 그걸 가지고 내가 내빼 버렸거든. 호호호......”
“바보 같은 게 정작 상무하고는 원만하게 합의가 됐는데, 이제 내가 숨어 버리니까 드러내 놓고 찾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나중에 필름을 돌려주고 사직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게 부인 명의로 올려둔 상가에 점포를 하나 주겠다고 하더라고......”
강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남아있을 테니 최고의 값어치가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았어?”
“아니, 잘못하면 그 마누라하고 매일 얼굴 마주 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지. 위자료로...... 그러면 필름을 주겠다고......”
“그래서 줬어?”
“그럼 줘야지. 돈을 받았는데......”
“에이 씨...... 아! 혹시 그 때, 그 통장은 가지고 있어?”
“치......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그게 여태 있겠어요?”
“번호도 모르겠지?......”
“으이그...... 차암......”
강주는 아쉬운 듯 다시 침대로 눕고 눈을 감는다. 후일을 위해 쓰일 수도 있는 아까운 정보가 허사가 되는 순간이지만 당장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시 보라를 통해 후임자를 소개받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술장사를 한 거야?”
“그야 그렇지만 그 돈이 밑천이 된 건 아니고 비서실에 있다가 보면 다른 회사 임원들도 많이 알게 되거든. 그 돈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서 대출을 받으려고 이 은행 저 은행 다니고...... 또 웬 서류는 그렇게 많이 떼어 오라는지......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우연히 은행에서 만난 거래처 노인네가 날 알아보고는 신촌에 조그맣게 술집을 하나 열어 주더라고. 그 노인네 모시고 한 오 년 살았나? 푸훗...... 그래서 그 때 이 길로 들어선 거예요. 그 때 전무가 준 돈은 결국 나중에 집 살 때 쓰긴 잘 썼죠. 호호호......”
“가만...... 혜영이, 너...... 대출 준비하던 서류는?”
강주는 다시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켜 혜영을 바라본다.
“서류?..... 어딘가 쳐 박혀 있긴 할 건데...... 그건 왜요?”
“찾아 봐. 얼른.......”
“차암...... 옛날인데...... 여기 말고 엄마 집에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락에 올려 둔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내가 비서 일을 해서 그랬는지 중요한 건지 모른다고 서류 같은 건 잘 안 버리니까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그러냐니깐......”
“대출 서류라면 통장 거래 내역서가 첨부되어 있을 거란 말이지. 보통 대출기관에서는 다 요구하는 서류니까...... 그러면 전무가 송금해 준 기록도 거기에 나와 있을 거 아냐?...... 그것만 있으면 나도 너처럼 써먹을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어머! 그런가?...... 그러면 한 번 찾아 봐야 하겠네?”
“하하...... 그래...... 까짓 거 없으면 말고......”
강주는 혜영과 얘기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회의가 느껴져서 그러는지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혜영은 그런 강주에게 핀잔을 준다.
“참......알 수가 없어요. 꼭 필요한 것처럼 놀라게 해놓고 금방 이렇게 김빠지는 소리를 한다니까......”
“으응? 그렇게 됐나? 하하하......”
“어머! 강주씨, 배고프다고 안 그랬어요? 우리 밥하기 싫은데 나가서 먹을래요?”
“그럼 그럴까?”
“그런데,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전화?......”
벗어놓은 옷 속에서 전화가 울리는 모양이다.
“네......”
“네, 소장님...... 저 미쓰김이에요.”
“아...... 이 망할 놈아. 나 휴가기간에는 찾지 말라고 그랬지.”
“호호호...... 소장님. 저도 소장님 목소리 안 듣고 싶답니다.”
“그런데 왜?......”
“택배가 왔는데...... 고가상품이라고 본인확인 좀 하겠다는데요?”
“아! 그게 왔나 보구나. 그래 바꿔줘 봐.”
전화통화를 마치고 옷가지 위로 다시 던져둔다.
“뭐예요? 강주씨?”
“음...... 별 거 아니고 택배로 주문한 물건이 매장에 도착한 모양이야.”
“그럼 가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게...... 일이 우습게 됐네. 내가 며칠 후에 가게로 갈 테니까 그 일은 며칠만 좀 참아 봐.”
“꼭 와야 해요.”
어느덧 해가 중천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다. 수원에 도착한 강주는 한 번 더 물을 뒤집어쓰고서야 매장으로 가기 위해 창고를 나선다.
“어머! 이게 뭐예요? 호호호...... 다른 사람 같아요. 소장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발가락을 꿰는 신발을 끌고 나오니 영락없는 백수 차림이다. 그나마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서 그런대로 봐 줄만 한 모습이니 매일 넥타이에 근무복 차림만 보던 주차장의 상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웃는다.
“아! 하하하...... 뭐...... 시원하고 좋은데 뭘 그러세요?”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 옆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고 미쓰김은 강주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고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야, 인마...... 입에 파리 들어갈라.”
“어머...... 어머머......”
“자식...... 야, 너하고 나하곤 벌써 볼 일 다 본 사이에...... 이게 뭐 이상하니?”
“아유 참......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손님들 보면 안 창피해요? 소장님이...... 그렇게 입고 다니면......”
“허허...... 참, 야...... 소장이 무슨 벼슬이냐? 그러고 있지 말고 그쪽 좀 들어 봐. 주차장으로 나가자.”
“아이 참, 남직원들 안 시키고...... 끄응......”
휴가기간이니 복장이야 아무려면 어떻겠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니 느낌이 어색한 것이 또 과음을 하고 낯선 곳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물을 찾아 둘러보지만 아무래도 숙박업소가 아닌 모양이다. 잘 정돈되어 있는 살림살이가 아니더라도 이미 방안 가득한 향기가 여자의 거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강주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옷은 한 곳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필시 누군가 도움을 준 이가 있었겠지만 달리 물을 길도 없으니 민망한 꼴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옷을 주워 입는다.
신세를 졌든 폐를 끼쳤든 인사할 길이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야 할 터 명함을 꺼내 침대 위에 얹어두고 방을 빠져 나온다.
“나, 이거야 원...... 기억이 나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기왕 남의 집 신세를 진 마당에 갈증을 푸는 문제도 간절해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신다. 불량배들에게 당황해서 그랬는지 술집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기억이 없으니 놀라긴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현관으로 나서려는데 문이 열리고 마담이 들어선다.
“어어! 여기가 마담 집이었어요?”
“어머!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호호호...... 벌써 가시게요? 들어가세요. 그래도 제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아침 식사는 대접해서 보내 드려야지요.”
찬거리를 사 오는지 손에는 쇼핑봉투가 들려있다. 기왕 마주쳤으니 간밤의 상황도 궁금하여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어 기지개를 편다.
“저...... 간밤에 제가 실수를 많이 했겠지요?”
“네? 호호호...... 기억 안 나시면 너무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별로 실수하신 거 없어요.”
“별로라...... 하하...... 하긴 한 모양이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기억이 안나니 뭐라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니라니까요. 자...... 입맛 없으시면 국물이라도 좀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참...... 저랑 같이 술 마신 친구는 잘 갔나요? 어떻게 하다가 제가 여기서 잠을 자게 됐죠?”
“네...... 그 분은 잘 가셨어요. 사장님은 너무 취하셔서 제가 모시고 온 거예요.”
“아! 네...... 참, 그리고 어제 그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겁니까? 그 사람들 하는 거 보니까 액션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 같던데...... 하하하......”
“그건 정말 죄송해요. 오해가 있는 바람에...... 요즘 이 동네가 술 납품 문제로 말이 많잖아요. 대뜸 사장님을 찾으시고 사람이 더 온다고 하시니까 아가씨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아! 그리고...... 사장님은 끝내 안 오셨던가요?”
“네...... 그건......”
강주는 입안이 껄끄러운지 몇 숟가락 뜨다가 내려놓고는 일부러 준비해준 마담에게 미안한 듯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유, 입맛이 안 당기네요. 폐만 끼치고 이만 가봐야 하겠습니다. 음...... 아침에 보니까 제 행색이 말이 아니던데...... 오늘 신세 진 것은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갚도록 하지요.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허허허......”
“네, 그럼...... 이젠 혼자라도 오세요. 얼굴도 알았으니까......”
“네, 그러지요.”
차는 술집에 있을 것이고 이른 아침 아파트촌에 택시가 있을 리 없으니 멀리 보이는 쇼핑센터에 방향을 맞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간밤의 상황이야 어찌 됐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를 한다는 것도 맑은 정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온몸이 개운치 못하다. 목욕탕이라도 찾을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 둘러보는데 전화가 울린다.
“응?...... 여보세요?”
“네, 저...... 최강주씨?......”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어머! 호호호...... 침대를 정리하다 보니 명함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 아...... 네...... 마담이시군요. 아까 제가 나오려고 하다 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누구 집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명함만 꺼내 두고 나오려다가...... 이제 마담에게 신세 진 것도 알았으니까 다음에 제가 카페로 한 번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용인에 땅이 어쩌니 하면서 말씀들 나누시던데...... 이 회사에 다니시나요? 그것도 소장님이신가 봐요......”
“허허허...... 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니 모르겠고, 그 슈퍼는 제가 관리하는 곳이 맞습니다. 참...... 이 근처 어디에 찜질방이나 목욕탕 없나요? 눈에 잘 안 띄네요.”
“아유 참, 여기서 씻고 나가시지 그랬어요? 지금 어디 들어가시면 출근 시간 늦지 않으세요? 뭐...... 소장님이라서 괜찮으시려나? 호호호......”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휴가 중이라서 출근 걱정은 없습니다. 그럼 큰길 쪽으로 가야 되겠지요?”
“그러면 그러지 말고 다시 오세요. 저도 오후에나 나가보면 되니까...... 제가 여쭤볼 것도 있고......”
“그러세요?...... 허허...... 이거 참, 신세를 자꾸 져서야 어디...... 초면에......”
“어머...... 초면이라니요? 이제 다시 오시면 구면이잖아요. 신세는 이미 어제 많이 지셨으니까, 걱정 말고 얼른 올라오기나 하세요. 문 열어 둘게요.”
“네, 그럼......”
역시 그만한 규모의 술집을 이끄는 마담이라 그런지 화통하기 짝이 없이 신원시원하다. 다소 어색한 기분이지만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담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으로 다시 아파트로 향한다.
어쩐 일인지 조금 전 느낀 기분과는 달리 사근거리며 들어붙는 느낌이지만 비록 불편했던 사내였어도 이른 아침에 거리로 내보내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 버린다.
또 어디를 나갔는지 집안엔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이젠 허락도 받았으니 방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어 이 방 저 방 모두 열어보지만 의외로 정갈하게 갖춰져 있을 뿐이어서 난잡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칫솔도 마담이 쓰던 것 하나뿐인 것 같아 망설이다가 이내 치약을 짠다.
“바깥에 속옷 있으니까 갈아입으세요.”
속옷을 사러 나갔다 온 모양인데 갑자기 서비스가 좋아진 이유가 궁금하지만 강주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다. 이미 보여줄 것 다 보여줬는데 내외할 일이 무엇이겠나 싶기도 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맨 몸으로 나와 방금 사온 듯 보이는 속옷 포장을 뜯는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테이블에 올려두며 강주를 바라본다.
“어머! 이제 보니 몸이 좋으시네요? 호호호...... 이리 와서 커피 드세요.”
“허허허...... 쑥스럽게 왜 그래요? 볼 거 다 본 사이에......”
소파에 앉아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마담은 물끄러미 강주를 바라보고는 입을 연다.
“어제 그 분이 소장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매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부인이 나이가 많으신 모양이에요? 이렇게 훤칠하신 분이 왜 그런 결혼을 하셨을까?......”
“응?...... 아, 하하하...... 저 아직 총각이에요. 결혼 안 했어요.”
“어머! 그런데 왜 매형이라고 그래요?”
“뭐, 그런 사연이 있어요. 우연한 일로 알게 되었는데 내가 거래하는 거래처 사장 후배더라고요. 그리고 그 친구 누나는 우리 매장 근처에서 다방을 했었고...... 음...... 거래처 사장이 나한테 잘 하라고 하니까 그러는 모양이지요.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형님 소리 듣는 것 보다는 그게 낫잖아요.”
“어머! 어쩐지...... 아유, 그런데 왜 소장님 같은 분이 그런 사람하고 다니세요? 어울리지 않게......”
“어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제도 그 친구 때문에 그나마 망신당할 거안 당한 것 같은데......”
“아이 참, 그건 오해였다니까요.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결국 그것도 다 그 사람 때문인 거나 마찬가진데요. 뭘......”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정필이 때문이라니?......”
마담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강주가 불을 갖다 대자 쑥스러운 듯 웃으며 불을 빨아들인다.
“혹시...... 그 사람...... 형이라는 사람도 알아요?”
“음...... 한 번 본 적이 있긴 하지요.”
“그 박부장이라는 사람이 주류도매 영업을 맡아서 하는 모양인데 이 일대가 요즘 경쟁이 붙어서 말도 못해요. 아유...... 순 양아치 같은 새끼들...... 어머! 내 정신 좀 봐.”
마담은 말을 뱉어놓고 후회가 되는 듯 멋쩍은 미소로 입을 가리고 강주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아, 괜찮아요. 허허......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네...... 호호호...... 죄송해요. 소장님은 그냥 편안해서 말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그 박부장은 좀 점잖은 편인데 어제 왔던 그 인간은 아주 상종하기가 힘들어요. 이 근처에서 보인지는 얼마 안 됐는데 자기 형 패거리를 믿고 그러는지 위세가 보통 아니에요. 어제도 소장님한테 실수했다고 일하는 아가씨 뺨을 올려붙여가지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요. 결국 다 자기네들이 시켜서 한 일을......”
“네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요. 소장님은 술에 취해서 정신도 없고, 그 사람은 나와서 행패 부리고...... 자기도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시고 가면서 소장님 잘 모시라고 하고 가는데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까 싶어서 할 수 없이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다니까요.”
“어허...... 이런...... 공연히 제가 면목이 안서네요. 그런데 그 주류도매 영업이라는 게 얼마나 돈이 된다고 형제간에 나서서 저런답니까?”
“단순히 그런 게 아니고...... 도매회사에서 저런 사람들을 고용해서 우리 같은 술집에 납품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얼마간 돈을 먹을 수 있을 거고 또 자기네 똘마니들도 우리 같은 술집에 심어서 월급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니까 일석이조인 셈이죠. 어제 소장님도 아마 경쟁업체에서 보낸 사람으로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계집애들도 당장 그 애들이 무서우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고......”
“아...... 그게 수입원이 되니까 패거리를 유지하기로는 썩 괜찮은 방법이다 이 말이라는 거죠?”
“역전 쪽에 있던 사람들이라던데 점점 터미널 쪽으로 퍼지고 이제는 영통에 들어와서 저러는 모양이에요. 뭐, 우리야 어디에서 받든 물건만 받으면 되고 영업부장도 어차피 고용을 해야 하니까 상관없지만 저렇게 술집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그게 싫어서 그렇죠.”
“아...... 이거 참...... 내가 뭐, 힘이라도 있어야 도와 드릴 텐데...... 이런 쪽은 전혀 문외한이라......”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그 개고기 같은 인간이 그 정도 이유로 소장님한테 그렇게 잘 할 수는 없을 텐데...... 정말 친 매형이라도 그렇게는 안 할 거 아니에요......”
“음...... 글쎄요? 그러게...... 좀 이상하네요...... 하하하...... 어쨌든 어제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 모양이네요. 어쨌거나 그 덕에 이렇게 마담한테 특별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나는 오히려 정필이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이 참, 그러지 말고 소장님이 얘기 좀 잘 해주세요. 좀 어지간히 하라고...... 소장님 말씀은 잘 듣는 것 같던데...... 그럼 저도 우리 카페 사장님 만나게 주선해 드릴게요.”
전무의 비리 가능성에 대하여 보라에게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솔깃했지만 정필이 형제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남의 뒤를 캔다는 것도 그들과 비슷한 부류로 취급 받을지 몰라 만정이 다 떨어져 마음을 바꿔 먹는다.
“허허허...... 사안이 내가 말한다고 들어 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사장님을 내가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뭐, 정보 좀 얻으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오버한 것 같아서 벌써 포기했어요.”
“아이, 몰라요. 책임 져요. 무조건 해 줘야 돼요...... 대신 저도 솔직히 말 할게요. 제가 사장인데요. 절 왜 찾으신 거예요?”
정필이가 이 사내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섭섭하게 처신했다간 망나니 같은 놈으로부터 괜한 후환이 있을지 몰라 마지못해 집안에 들이긴 했었다. 이제 명함을 통해 강주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보니 같은 회사 출신이고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찾았던 것으로 보아 필시 자신의 출신내력을 알고 왔을 터이니 속일 것도 없다. 강주를 잘만 사귀어 두면 오히려 양아치 같은 놈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바람막이 역할도 충실히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다시 불러들인 모양이다.
“으응? 마담이 사장이라고? 와...... 하하...... 배우 뺨치게 연기를 잘 하시네요...... 그런데 왜 이제껏 아닌 척 했어요?”
“그야 내가 직접 홀을 관리하고 있는데 사장인 걸 알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그러죠. 소방이니 경찰이니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많고......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단 말이에요. 그나저나 빨리 말 해봐요. 내가 그 회사 출신인거 알고 왔을 거 아니에요? 모르면 몰라도 내가 소장님보다 입사 선배일 건데 선배님 말씀을 안 들을 거예요? 호호호......”
은근히 교태를 부리는 마담이 밉지 않아서 더 애를 태운다.
“허허...... 선배는 무슨...... 나이도 나하고 비슷할 거고...... 여자들이야 불알이 없어서 군대를 안 가니까 그렇지, 아마도 근무는 내가 더 오래 했을 건데......”
“그래도 소장님이 군대 있을 무렵에 나는 일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쨌든 내가 선배죠. 호호호...... 어쨌든 뭐 물어 보려고 했냐고요?”
“아니, 이젠 신경 쓰지 말라니까......후훗......”
“흥...... 그럼 오늘 아무데도 못가.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요.”
강주가 장난을 치며 애를 태우자 마담은 대뜸 강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 버린다. 애교 섞인 유혹으로 답을 얻어내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샐쭉 토라진 척 고개를 돌리고 무릎을 베고 누운 마담에게서 상큼한 향수냄새가 올라온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쓸어주며 자극해 주니 기분이 좋은지 누운 채 기지개를 켠다.
“아아아흠...... 편하다...... 음...... 좋아요. 그러면 그렇다고 치고 그 사람들 좀 제발 어떻게 해 줘 봐요. 으응?”
고개를 돌려 강주를 바라보고 부탁을 하니 바로 좆 앞에서 눈을 말똥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몹시 귀여워 강주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킥...... 지금 어디에다 대고 사정을 하는 건지 알아?”
“으응? 호호호...... 차암...... 어제는 힘도 못쓰고 그냥 쓰러져 자더니만......”
마담은 강주의 허리를 꼬집으며 눈을 흘겨 뜬다.
“어? 그랬나?...... 내가 그냥 잤다고?”
“치...... 근근이 송장 끌듯이 끌고 들어왔더니 그래도 남자라고 그 정신에도 내 옷은 열심히 벗기던데......”
“허허...... 그리고는?......”
“후훗...... 그리고는 우리 아기가 배가 고팠는지 엄마 젖꼭지에 침만 잔뜩 발라 놓더니 엎드려 자던데요?...... 호호호......”
강주는 마담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탄을 한다.
“으이그...... 그럼 그렇지...... 술 마시고 기억이 안 날 때는 꼭 한 번씩 바보짓을 한다니까......”
“해줄 거야? 안 해줄 거야?”
“그래, 내 말이라고 들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말이나 해 보자...... 우리 선배님 카페에서 그러면 쓰나? 하하하......”
“정말이지? 그럼 오늘 어디 안 가도 되면 저녁에 같이 나가요. 네?”
“그때까지 뭐 하고 놀지?”
“으이그......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어요. 호호호...... 조금만 있다가 들어와요.”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큰 짐이라도 벗은 듯 날아갈 것처럼 사뿐거리는 게 강주에게 갖는 나름의 기대가 제법 큰 모양이다.
“들어와요.”
등을 받치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강주를 향해 손짓을 한다. 마치 누드쇼를 연출하는 것처럼 몸을 가리고 침대에 기대 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옷을 벗는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한 기분이 드니 역시 어느 분야든 전문가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강주도 장난기가 발동해 빙글빙글 돌아가며 옷을 벗고 그 모습을 본 마담은 허리를 비틀어 가며 재미있어 한다.
얇은 천을 들어내고 마담의 사타구니를 파고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아직도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애무를 하니 마치 아기가 엄마의 젖을 애무하는 듯 하고 그녀는 강주의 등을 희고 고운 손으로 쓸어준다. 비록 오래 전 한때였겠으나 전무의 여자를 탐한다는 생각에 미치니 오이디푸스라고 했던가, 마치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의 여자를 탐하는 것 같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입사해서 바라보던 단상 위의 그들은 꿈같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강주의 품 안에서 그들의 여자들이 숨을 할딱이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품 안에 있는 이 여자에게 오롯이 몰입할 뿐이다.
“하윽, 강주씨......”
“흐으읍...... 쭈우웁......”
마담은 강주의 입을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강주의 등과 엉덩이를 쓸어준다. 마치 완급을 조절하듯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길에 마치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몸을 맡긴다.
따뜻한 미소로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에 작은 떨림으로 기대가 내비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강주의 가슴을 밀치고 더듬더듬 아래로 내려간다.
“이름이 뭐지? 내 여자 이름도 모르고 젖을 빨아서야 되겠어?”
“하윽...... 어서 넣어 줘......혜영이야. 장혜영......”
“후우욱, 쑤우우욱......”
“흐윽...... 아하...... 좋아...... 천천히......으흐응......”
혜영은 이 자세를 좋아하는지 자세를 바꿀 마음이 없어 보인다. 침대에 기대앉듯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으니 마주 안고 있는 강주는 적잖이 불편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한 혜영의 감긴 눈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잠든 여자를 깨우지 않고 그녀의 원천으로 들어가려는 듯 근력을 끌어올려 팔에 힘을 주고 혜영을 불편하지 않게 틈을 배려해준다. 쉼 없이 허리 짓을 해 대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는지 혜영은 더욱 더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긴다.
“흐으으응...... 흐으으으응......”
“크으윽...... 울컥......울컥......”
연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강주의 엉덩이를 끌어당기고 있던 혜영의 눈이 뜨이고 강주의 사정을 느끼는지 목을 끌어안고 함께 경련을 일으킨다.
“아학, 으으으응...... 하아아아......”
아직도 강주는 혜영의 목덜미를 빨아대고 혜영은 그런 강주의 혀를 즐기며 고개를 꺾어가며 강주를 받아들이고 길을 안내해 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숨을 고르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혜영의 얼굴빛은 발그스레하고 다정한 눈길을 강주에게 보내고 있다.
“강주씨는 여자 경험이 많은가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
혜영은 다리를 들어 강주의 다리에 걸치고 가슴을 쓰다듬어 애정을 과시한다.
“으흠...... 나 자기랑 섹스를 한 게 아니고 편안히 안마를 받는 것 같았어요. 어쩜 그렇게 여자 기분을 잘 맞춰 줄 수가 있지?”
“그랬어? 그럼 이제 내 여자 할 거야?”
“피...... 그렇다고 누가 자기 여자 한댔나? 호호호...... 그렇다는 얘기지.”
“음...... 그런데 아침을 시원찮게 해서 그런지 배고픈데......장마담은?......”
“아이 씨...... 장마담이 뭐예요?
“뭐?...... 어쩌라고...... 내 여자 안 한다면서......”
“그런다고 장마담이라고 해요? 이름도 벌써 가르쳐 줬는데...... 칫......”
“그래, 그래...... 혜영아. 배 안 고프냐고......”
“그럼 밥 차려 줄 테니까 나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것만 말해줘요.”
“참 나...... 궁금한 것도 많네...... 비서실 통해서 알았지.”
“어머! 아직도 나를 아는 애들이 다 있나 봐?”
“그 애도 전해 들었다고 하긴 하더라......”
“그런데 왜 왔는데......응? 응? 자기야......”
의외로 강주가 고분고분 입을 열자 혜영은 바짝 들어붙으며 나머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강주는 단내를 풍기며 안겨오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아 준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후훗...... 혜영이 너...... 옛날에 전무 비서였다면서?”
“그런데...... 그래서?”
“너...... 혹시 그만둘 때 비밀스런 자료 가지고 위자료 받아냈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건 어디서 들었어? 그건 왜?”
강주는 혜영의 등을 쓸어주며 보라와의 일을 말해 주고 모두 들은 혜영은 강주의 가슴을 꼬집으며 웃는다.
“푸훗...... 그러면 그렇지.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럼 사실이 아니야?”
“그 무렵 전무가 점포 출점을 하기위해서 땅을 여기저기 많이 매입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자기가 제삼자를 통해서 매입해둔 땅이었더라 이거죠. 엄청나게 값을 튀겨서 떼돈을 벌고 있었는데 상무하고 시비가 생겼던 모양이에요. 뭐...... 둘 다 똑같은 도둑놈이니까......”
“응, 그래서......”
“그래서는 뭐...... 나도 그때 전무님이 첫 남자라서...... 후훗,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전무를 지켜주고 싶었거든.”
비웃는 듯 강주의 입 꼬리가 올라가며 웃음기를 머금자 혜영은 눈을 흘기며 강주의 불알을 쥐고 흔들며 앙탈을 부린다.
“죽을래? 나도 그때는 순정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지.”
“흐윽, 그래, 그래...... 누가 뭐래? 어서 말이나 해 봐.”
“자기가 기대하는 그런 거는 없어요. 전무한테 내가 말하길...... 술자리에 불러내서 상무가 마시는 술에 수면제를 많이 타서 잠들게 하고 부끄러운 사진을 찍자고 했거든. 좀 유치하지만 자기도 전무나 사장자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스캔들이 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까지 모델로 등장을 시키더라고...... 호호호...... 자기 딴에는 비서실 여직원이 등장하면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으응...... 그래서......”
“그게 전무 실수였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자기를 도와준 건 생각도 안하고 나까지 이상한 년 만들어서 내쫓는 분위기로 가는 것처럼 보여서...... 이렇게 하면 나도 상무 편에 붙어서 양심선언 할 수 있다고 공갈을 쳤지.”
“야...... 그래도 제법 간이 크네......”
“전무가 날 물로 본 거지. 그렇지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잖아. 금고 번호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얼마나 날 물로 봤으면 필름을 허술하게 그 안에다 뒀더라고...... 그걸 가지고 내가 내빼 버렸거든. 호호호......”
“바보 같은 게 정작 상무하고는 원만하게 합의가 됐는데, 이제 내가 숨어 버리니까 드러내 놓고 찾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나중에 필름을 돌려주고 사직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게 부인 명의로 올려둔 상가에 점포를 하나 주겠다고 하더라고......”
강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남아있을 테니 최고의 값어치가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았어?”
“아니, 잘못하면 그 마누라하고 매일 얼굴 마주 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지. 위자료로...... 그러면 필름을 주겠다고......”
“그래서 줬어?”
“그럼 줘야지. 돈을 받았는데......”
“에이 씨...... 아! 혹시 그 때, 그 통장은 가지고 있어?”
“치......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그게 여태 있겠어요?”
“번호도 모르겠지?......”
“으이그...... 차암......”
강주는 아쉬운 듯 다시 침대로 눕고 눈을 감는다. 후일을 위해 쓰일 수도 있는 아까운 정보가 허사가 되는 순간이지만 당장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시 보라를 통해 후임자를 소개받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술장사를 한 거야?”
“그야 그렇지만 그 돈이 밑천이 된 건 아니고 비서실에 있다가 보면 다른 회사 임원들도 많이 알게 되거든. 그 돈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서 대출을 받으려고 이 은행 저 은행 다니고...... 또 웬 서류는 그렇게 많이 떼어 오라는지......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우연히 은행에서 만난 거래처 노인네가 날 알아보고는 신촌에 조그맣게 술집을 하나 열어 주더라고. 그 노인네 모시고 한 오 년 살았나? 푸훗...... 그래서 그 때 이 길로 들어선 거예요. 그 때 전무가 준 돈은 결국 나중에 집 살 때 쓰긴 잘 썼죠. 호호호......”
“가만...... 혜영이, 너...... 대출 준비하던 서류는?”
강주는 다시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켜 혜영을 바라본다.
“서류?..... 어딘가 쳐 박혀 있긴 할 건데...... 그건 왜요?”
“찾아 봐. 얼른.......”
“차암...... 옛날인데...... 여기 말고 엄마 집에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락에 올려 둔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내가 비서 일을 해서 그랬는지 중요한 건지 모른다고 서류 같은 건 잘 안 버리니까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그러냐니깐......”
“대출 서류라면 통장 거래 내역서가 첨부되어 있을 거란 말이지. 보통 대출기관에서는 다 요구하는 서류니까...... 그러면 전무가 송금해 준 기록도 거기에 나와 있을 거 아냐?...... 그것만 있으면 나도 너처럼 써먹을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어머! 그런가?...... 그러면 한 번 찾아 봐야 하겠네?”
“하하...... 그래...... 까짓 거 없으면 말고......”
강주는 혜영과 얘기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회의가 느껴져서 그러는지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혜영은 그런 강주에게 핀잔을 준다.
“참......알 수가 없어요. 꼭 필요한 것처럼 놀라게 해놓고 금방 이렇게 김빠지는 소리를 한다니까......”
“으응? 그렇게 됐나? 하하하......”
“어머! 강주씨, 배고프다고 안 그랬어요? 우리 밥하기 싫은데 나가서 먹을래요?”
“그럼 그럴까?”
“그런데,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전화?......”
벗어놓은 옷 속에서 전화가 울리는 모양이다.
“네......”
“네, 소장님...... 저 미쓰김이에요.”
“아...... 이 망할 놈아. 나 휴가기간에는 찾지 말라고 그랬지.”
“호호호...... 소장님. 저도 소장님 목소리 안 듣고 싶답니다.”
“그런데 왜?......”
“택배가 왔는데...... 고가상품이라고 본인확인 좀 하겠다는데요?”
“아! 그게 왔나 보구나. 그래 바꿔줘 봐.”
전화통화를 마치고 옷가지 위로 다시 던져둔다.
“뭐예요? 강주씨?”
“음...... 별 거 아니고 택배로 주문한 물건이 매장에 도착한 모양이야.”
“그럼 가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게...... 일이 우습게 됐네. 내가 며칠 후에 가게로 갈 테니까 그 일은 며칠만 좀 참아 봐.”
“꼭 와야 해요.”
어느덧 해가 중천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다. 수원에 도착한 강주는 한 번 더 물을 뒤집어쓰고서야 매장으로 가기 위해 창고를 나선다.
“어머! 이게 뭐예요? 호호호...... 다른 사람 같아요. 소장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발가락을 꿰는 신발을 끌고 나오니 영락없는 백수 차림이다. 그나마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서 그런대로 봐 줄만 한 모습이니 매일 넥타이에 근무복 차림만 보던 주차장의 상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웃는다.
“아! 하하하...... 뭐...... 시원하고 좋은데 뭘 그러세요?”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 옆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고 미쓰김은 강주의 파격적인 모습을 보고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야, 인마...... 입에 파리 들어갈라.”
“어머...... 어머머......”
“자식...... 야, 너하고 나하곤 벌써 볼 일 다 본 사이에...... 이게 뭐 이상하니?”
“아유 참......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손님들 보면 안 창피해요? 소장님이...... 그렇게 입고 다니면......”
“허허...... 참, 야...... 소장이 무슨 벼슬이냐? 그러고 있지 말고 그쪽 좀 들어 봐. 주차장으로 나가자.”
“아이 참, 남직원들 안 시키고...... 끄응......”
휴가기간이니 복장이야 아무려면 어떻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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