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 헬레나 - 1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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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106회 작성일 20-01-17 15:12본문
맨앞에 선 시녀가 들고 있는 쇳덩어리, 은색으로 빛나고 있는 팬티 모양의 그 물체는 바로 정조대였다. 말로만 듣던 그 정조대를 처음 본 실비아는 너무 놀라서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리기만 했다.
"여, 여보?"
애원하는 눈동자로 남편을 쳐다보았지만, 조나단은 차갑게 외면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도 시녀들은 자기들이 할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침대 위로 다가오는 시녀들을 보면서 실비아는 뒤로 물러나면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시녀들은 곧 이불을 확 밀쳐내고 도망치려는 실비아의 몸을 붙잡았다.
겉보기엔 날씬해 보여도 빨래, 청소, 설거지 등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단련된 육체를 지닌 시녀들이었다. 태어난 이후로 피아노 치기나 자수보다 힘든 일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데다 유난히 가냘프고 연약한 실비아는 시녀들의 힘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시녀 한 명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양팔을 결박했으며, 두 명은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이어서 마지막 한 명이 정조대를 든 채 실비아의 앞에 섰다.
평소에는 실비아의 목욕, 화장, 드레스 착용 등을 도와주면서 그녀의 알몸을 볼 때마다
"어머나,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황태자비님."
"세상에, 진짜 여신이 강림한 것 같다니까. 이 젖가슴, 이 허리, 진짜 완벽한 몸매네요."
"부러워라. 저도 황태자비님의 절반이라도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는 감탄사를 발하면서 온갖 아첨을 늘어놓던 시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실험동물 보듯이 실비아의 알몸을 차갑고 조용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상전이 아니라 그저 임무 수행을 위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런 시선에 더욱 공포를 느낀 실비아는 나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 그래도 새하얀 그녀의 피부는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지경이었고, 코발트 블루의 눈동자에서는 물기가 넘쳐흘렀다. 실비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몸부림쳤다.
"아악! 제발 그만둬요! 제발, 제발, 내게 이러지 말아요......."
놀랍게도 그렇게 날뛰는 실비아의 모습은 아까 조나단의 품 속에서 쾌락에 몸부림치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낯뜨거운 괴성, 방정맞게 출렁이는 알몸뚱이, 펄럭이는 은발, 흘러내리는 눈물, 뜨거운 애원의 목소리, 모든 게 기이할 정도로 똑같았다.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쾌락에 의한 것이냐, 슬픔과 고통에 의한 거이야 하는 차이였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절대로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착용시켜라."
"예."
아내의 이런 모습에 늘 흥분을 느껴 왔던 조나단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무뚝뚝하게 명령했고, 명령에 따라 정조대를 든 시녀가 실비아 앞으로 다가갔다.
실비아는 분노로 가득 찬 코발트 블루의 눈동자로 남편을 노려보았다. 네일린 왕국의 공주로 태어나서 왕궁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자 귀염둥이로 대접받다가 펜트 제국의 황태자에게 시집와서 황후 다음가는 지위를 누려왔던 그녀였다. 언제나 남들의 아첨과 떠받듬만 받았던 그녀에게 이런 모욕은 난생 처음이었다. 특히나 그렇게 사랑해왔던 남편에게 배신당한 것이 너무나 충격저이었다.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동안 그렇게 당신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황태자비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당신이 날 믿지 못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으흐흑........"
그녀는 극채색의 모욕감과 증오와 눈물이 범벅이 된 눈동자로 남편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너갔지만, 곧 숨을 삼켜야 했다. 어느 새 그녀의 다리 사이로 정조대가 다가온 것이었다. 분노와 증오는 금세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대신 지독한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공포에 질린 실비아는 파들파들 떨면서 어떻게든 저 무서운 물건을 피해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뒤로 돌려져서 결박당한 양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양쪽으로 크게 벌려진 다리도 어서 좁혀지라는 주인의 의지를 배반했다.
"안 돼, 안 돼, 으흐흑........ 이럴 순 없어, 이건 아니에요. 아악!"
미칠 듯한 심정의 실비아와는 달리 그 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시녀가 정조대를 평소에는 팬티가 입혀지던 그 부분에 갖다 대고, 찰칵 소리와 함께 채웠다. 피부에 느껴지는 너무나 차가운 느낌, 시야에 분명히 잡히는 그녀의 허리와 보지 부근에 채워진 쇳덩어리,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실로 엄청난 충격에 실비아는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있던 시녀들이 물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실비아는 더 이상 아까처럼 발광하지 않았다. 그저 푹신한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조나단이 실비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길고 풍성한 은발을 슬쩍 쓸어올렸다. 그의 반대쪽 손에는 열쇠 하나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우리 펜트 황실에서 특별히 만든 정조대야. 여성의 정절을 가장 확실히 담보하는 방법이지. 뭐, 이러쿵 저러쿵 말로 사랑을 맹세하고, 감시인을 두고 해도 완벽하진 못하거든. 하지만 이건 완벽해. 정조대를 채워두면 아예 섹스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섹스 외의 다른 생리작용에는 문제가 없도록 정밀하게 설계해 두었으니까 일상 생활에서 별로 불편한 점은 없을 거야. 아, 그리고 열쇠는 이거 하나뿐인데, 내가 가져갈 거니까 혹시 딴 생각을 품어봤자 소용 없을 거야."
실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넋이 나간 여자처럼 멍하니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남편의 손길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조나단은 그녀의 젖가슴과 허리, 엉덩이를 차례로 쓰다듬다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맞췄다. 평소 같으면 조나단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마주 입술을 빨고 혀를 내밀 실비아였지만,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살결만 아니었다면, 동상을 애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쿡, 슬픈가? 그래, 슬프겠지. 하지만 이게 황태자비로서 네가 짊어져야 할 짐이야. 넌 너무 아름답고 요염해서 혼자 두고 가기엔 너무나 불안하거든.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다시 에전처럼 귀여워해 줄 테니까 그 때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도록 해."
조나단은 마지막으로 비웃듯이 실비아의 볼을 툭툭 친 뒤 침실을 나갔다. 조나단과 시녀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실비아는 여전히 시체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로 핑크빛의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정조대로 중요한 부위만 가렸을 뿐, 새하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은발머리를 사방으로 펼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눈물로 이불을 적시면서 실비아는 환한 햇살이 침실을 가득 채울 때까지 그저 멍한 얼굴로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열여섯 살 소녀일 때, 처음 조나단을 만나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고, 그 품에 안겨서 사랑을 맹세한 후로는 언제나 사랑하고 떠받들어 왔던 남편, 그 남편에게 불신당하고, 급기야는 배신당해야 했던 사건, 이 사건은 실비아의 정신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이후 그녀의 인생 자체를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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