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삽입면허 - 3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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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69회 작성일 20-01-17 15:12본문
-33부-
“자, 어서 들어와. 이 가운데로 누워.”
“......”
기찬은 윤정을 방으로 불러들여 자리에 눕히려 했지만, 아직도 윤정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제 남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음을 확인했으니, 그것은 방안에 함께 있는 유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 유정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부자리 안에 누운 채 몸을 움직여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내고 있었다.
“어, 어머! 아가씨......”
“호홋! 언니도 참...... 뭐가 어때서 그래요? 어서 들어오세요.”
마치 시누이와 올케라도 된 듯 서로 불러 대는 호칭이 기찬의 성감을 더욱 일깨우고, 그것은 비단 기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기어이 윤정도 무너져 내리듯 이불 안으로 스며들고, 뒤따라 기찬도 윤정의 뒤로 몸을 누인다.
이미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 윤정의 가슴은 크게 기복을 일으키고 있었다. 차마 벗어버리지 못하는 옷가지는 기찬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있었지만, 윤정에게 정작 놀라운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 아가씨......”
“어머! 언니 가슴 정말 예쁘다.”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기찬마저 적잖이 놀란 것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유정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정의 옷을 벗겨내자 하얗게 드러나는 젖가슴을 대뜸 유정이 쓰다듬어 주무르고 있었으니 윤정은 달리 대응을 할 수도 없어 쩔쩔매고 있을 뿐이었다.
“후후, 그래...... 윤정 씨는 그냥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어. 아무래도 먼저 나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동생하고 내가 즐겁게 해 주지.”
“기, 기찬 씨...... 흐읍......”
조유정, 이미 기찬과는 항문성교를 통해 육체적으로 개방된 사이였으니, 굳이 몸을 사릴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와 함께 나타나는 여자들의 면면이며, 그가 일하는 곳이 카이로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런 변칙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가담해 주지 않고는 기찬의 마음을 살 수 없는 노릇이라고 내심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악...... 흐으읍......”
기찬이 윤정에게 몸을 실을 무렵, 윤정의 그 입술을 마저 빨아들이는 것도 유정의 몫이었으니, 이제 윤정은 당황스러워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그 입술을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동성의 입술을 접하는 것은 둘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윤정 역시 기찬의 성향이 변태적이며 극에서 극으로 치달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으니, 그 형수와 조카에 이어 이제는 친동생과의 잠자리에 자신마저 개입한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는 모양이었다.
“흐으으윽......”
입술이 덮여 제대로 호흡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에 기찬의 몸을 받아내야 했으니 그 긴장감이 주는 쾌감은 극으로만 윤정을 몰아가고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뭉치기라도 한 것처럼 돌처럼 단단해지는 윤정의 몸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두 여자로 인해 기찬은 결국 허리를 세워, 앉은 채 윤정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고, 두 여자는 서로의 가슴을 짓이겨가며 새로운 쾌락에 몰입하고 있었다. 상반신을 포기하고도 기찬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 이상의 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모두를 극도로 예민해지게 만들어 버리는 첫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악기란 그런 것이었다. 다루는 이에 의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단지 굉음에 불과한 소음을 토해내기도 하니, 이제 이들은 정숙함의 이면에 음탕함의 쾌락이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지도 모를 일, 낮과 밤이 주는 그 기운의 차이만큼이나 서로에게 숨겨져 있던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구하지 못할 즐거움일지도 모르는 것이니 마약처럼 스며드는 그것에 스스로 포로가 되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새 혼절한 듯 너부러져 있는 윤정을 곁에 두고 유정과 기찬은 재차 몸을 포개고 있었다.
“식사하세요...... 기찬 씨...... 아가씨도 일어나세요.”
간밤의 폭풍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지난 밤 윤정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 집안에 남편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는지, 기찬과 유정이 서로에게 몰입하고 있을 때를 틈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서는 바람에 두 사람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한참 뒤 샤워를 마치고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부랴부랴 벗은 몸으로 옷가지를 챙기러 왔던 윤정 때문에 모두가 소리죽여 웃었던 기억을 할 뿐이었다.
“남편은 나갔나 봐?”
“네, 호호...... 그러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죠. 아니면 아가씨까지 제가 불렀겠어요?”
“하하, 하긴......”
“저는 얼른 가구점에 나가봐야 하는데...... 식사는 식탁에 차려 뒀어요.”
“그래, 그럼...... 열쇠는 나중에 가구점으로 갖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나가 봐. 늦으면 형수한테 잔소리 들을 거 아냐?”
“네, 그리고 저건 제 혼수이불이니까 이사하더라도 꼭 가지고 가셔야 돼요. 알았죠?”
“후후, 그래. 알았어.”
“그러면 아가씨도 나중에 봬요.”
“네, 언니...... 수고하세요.”
그렇게 윤정과 헤어져서 막상 이삿짐을 옮겨야 했지만, 모든 일이 기찬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노량진 본가로 옮겨 둔다면 **와의 관계진전으로 인해서 다시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 형수 보라에게 자기와의 결혼계획을 밝힐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고, 그 경우에 **는 자세히 알고 있는 일들을, 정작 보라에게는 감춰왔다고 생각할 테니 보라로서는 서운해 할 일인데, 하물며 사기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 집에 다른 여자들을 숨겨두고 산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하게 된다면, 그 때에는 두 자매에게 물어 뜯긴다 해도 할 말이 없는 노릇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연경이 노량진으로 이사하기 전 살던 공간은 아직 비워져 있는 상태였으니, 집주인이 이사하기 전이라도 짐을 옮겨 둘 수 있는 공간이었고, 결국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기찬은 그리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자, 그럼 너희 아버지 일은 조만간 내가 만나서 풀어 볼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모른 척하고 있어. 남녀 간의 일에 있어 자식들이 나서서 관여한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네...... 저는 오빠만 믿고 있을게요.”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너희 아빠와 사귀는 여자도 소개를 해 주겠지만, 그 여자와 잘 지내두는 것도 너희 아빠에게는 고마운 일이 될 거야. 유산을 생각한다면 아무쪼록 지혜롭게 굴어야지.”
“네......”
윤정과의 일은 일단락된 셈이었으니 이사를 마친 뒤, 카이로로 돌아가 있을 생각이었으나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기찬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가구 납품이 이루어지고 있는 수원 공사현장에서 연속적으로 붙박이가구가 훼손된다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이었다.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같은 현상이 있었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이는 일이었으니,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진사장에게는 협박을 하다시피 수의계약을 이룬 상태였으니 딱히 떠오르는 경쟁회사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혹시 모를 일, 종전에 거래하던 가구회사에서 다시 영진과 거래를 하기 위해 기찬의 현장에 해코지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김비서에게 그런저런 당부를 해두고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천에서의 호출 때문이었다. 비록 예감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전화는 천하의 난봉꾼 기찬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 여보세요?”
“저...... 사돈총각...... 나 알겠어요?”
“아! 네...... 어, 어머니......”
자신에게 달리 전화를 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순식간에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관계를 고백하는 셈이었다.
“**에게 이야기를 모두 들었어요. 지금 시간 좀 낼 수 있겠어요?”
“네, 네...... 어머니, 지금 즉시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와 어느 정도 입은 맞춰 두고 있었고, 머지않아 결혼 사기단 사건도 뉴스에 공개될 터였으니 자신과 **의 관계에 대해 나름의 무게는 실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과천에서 기찬은 다시 한 번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형수?......”
보라 역시 소식을 들은 듯 아파트 밑에 내려와 있다가 기찬을 맞는다. **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모든 가족에게 사실대로 말을 했을 리는 없지만, 보라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소식을 접했다는 말이니,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닥뜨린 기찬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서 와요. 기찬 씨......”
“형, 형수...... 어떻게......”
“피...... 가게는 윤정 씨에게 맡겨두고 왔지.”
의외로 보라는 밝은 표정이었고, 냉큼 기찬에게 다가와 팔짱을 걸고 있었다.
“후훗, **한테 이야기 들었어.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라니?......”
“**가 그러더라고...... 차라리 자기랑 결혼하면 나에게도 더 좋은 일 아니냐고......”
“그, 그러면......”
“후훗, 정히 기찬 씨를 만나고 싶어서 못 참겠거든, 차라리 집으로 와서 자기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면 남들 눈에 뜨일 염려도 없고......”
“그러면 **가 우리 두 사람 관계도 인정해 주겠다는 거야?”
“그 대신 나도 두 사람 결혼 축복해 주기로 했어요. 엄마, 아빠를 설득하는 것도 도와주기로 하고...... 하지만, **에게는 미안한 일이니까 집으로 찾아가기는 싫어요. 가끔 밖에서 만나줘요. 자기는 가능할 테니까 아무도 모르게......”
보라는 말의 끝에 복선을 깔고 있었다. 이제 기찬이 수사관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아무도 모르게 조치하고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곧 기찬이 처음부터 계획 하에 자신의 몸을 취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형수, 사실은......”
“풋...... 괜찮아요. **가 당시 상황을 모르니까 오해할 수도 있어요. ** 생각에 자기가 처음부터 나를 좋아해서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어차피 내가 잘못 판단해서 박 사장하고 여관을 갔던 것인데...... 그리고 **를 그런 일에서 구해 준 것도 언니로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고...... 다만 이제는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동안 나를 속인 벌은 받아야 되지 않겠어요?”
“벌?......”
하얗게 눈을 흘기는 보라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기찬의 우려와는 달리 속 깊이 받아들여주는 것은 역시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기찬의 그것과 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와 결혼을 할 때까지는 모른 척 할 거예요. 그러니까 친한 척하기 없기...... 후훗......”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엉덩이를 우스꽝스럽게 흔들어 대는 보라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흐으읍...... ”
“아이! 미쳤어...... 여기 다 찍힌단 말이야.”
“후후후, 알았어. 너무 예뻐서 그랬어.”
다행히 **는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기 전에 보라와 상의를 했는지, 억지스럽게 임신을 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단지 **의 의견이었다면 펄쩍 뛰며 반대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도 보라까지 들어와 둘의 관계가 오래 된 연인이라는 등의 설명을 붙여가며 적극 권하는 일이어서 마음이 돌아선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간 놀고먹는 줄만 알았던 사돈총각이 군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뿌듯한 마음까지도 일었던 모양이니 사기결혼에 대한 일도 자연스럽게 풀리고 마음 상할 일도 피해간 셈이었다.
“호호호, 내가 겹사돈을 맺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그런 것은 다 남의 일로만 알고 살아 왔는데 이렇게 자네까지 사위로 맞게 되다니...... 그래, 이젠 이렇게 알았으니 숨기느라고 마음 끓이지 말고 둘이 잘 지내게. 서로 싸우지 말고......”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직 저희 어머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조만간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도련님, 어머니에게도 제가 어제 넌지시 말씀을 드려 놓았어요.”
보라가 나서며 기찬을 바라보고 말을 이어간다.
“네?......”
“호호, 뭐 어차피 말씀을 드릴 거잖아요? 일단은 도련님이 수사관이라는 말씀부터 드렸어요. 가족들도 모르게 비밀리에 하는 일이라서 그동안 신분을 감춰 왔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 그러면 **와의 일은......”
“그것도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수사관이라는 것을 저도 알게 되었다고...... 언젠가 도련님이 따로 말씀을 드릴 테지만, 어머니가 늘 도련님 걱정을 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지난 번 **가 선을 보는 것처럼 다녀간 뒤로는 부쩍 더 도련님 걱정을 하셨거든요.”
“아......”
“하지만, 나중에 도련님이 다시 직접 말씀을 드리세요. 아직도 어머니는 모르는 척하고 계실 테니까 여러 가지 속사정을 답답해하실지 모르잖아요.”
“아, 그건 그래야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형수님.”
이제 고개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하지만 일의 전개가 급물살을 이룰수록 빨리 노량진 집을 비워야 할 일이었다. 애경에게 당부했던 새로 얻은 집의 매매를 중단시키고, 모두를 이사시켜야 할 형편이었으니 가구공장의 일은 전적으로 김비서에게 맡기고, 유정의 아버지 조 사장의 일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는 것은 기찬과의 사랑으로 덮어 줄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만약 노량진 집을 원상회복했다는 것을 기찬의 형이 뒤늦게 알게 된다면 자신마저 속였다는 생각에 자칫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자신의 신분이며, **와의 관계를 형에게 알리기 전에 집을 최근에 회복한 것처럼 위장해서 형에게 알려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식구들을 새로 얻은 집으로 다시 이사를 보내고, 그 속에서 묻혀 지내기를 며칠이었다. 다시 노량진 본가는 처음의 상태로 회복되었고, 간혹 **나 보라가 틈틈이 다녀갈 뿐, 기찬조차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비워두는 형편이었다.
“자, 오늘은 모두 방배동으로 모이라고 하지? 이제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운영을 해야 할 테니까 미리 가동할 수 있는 여력이 어디까지 되는지 강희가 알아 둬야지.”
“네, 안 그래도 오늘 모두 모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카이로에서도 암중에 지원해 주기로 했으니까요.”
최강희, 미라의 올케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카이로에서 마담을 통해 접객요령 따위를 몸에 익혀오고 있었으니 이제 방배동 비밀요정의 오픈을 앞두고 사전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 일단 내일은 한금주의 남편이 손님들을 데리고 올 거니까 대접에 만전을 기해야 돼. 결국 그 사람들이 또 다시 꼬리를 물고 손님을 이끌어 와야 하니까......”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 있으니까...... 호호호......”
강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진 사장과 처음부터 불륜의 관계에 빠진 것이 자신의 끼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그럴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대강의 당부를 마친 기찬은 가구공장으로 모처럼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모두 한 놈 소행 같이 보인다는 말이지요?”
“네, 흠집이 나 있는 위치며, 사용한 도구가 모두 같은 것으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이지?”
“지금 경찰에도 사건을 의뢰해 뒀습니다. 저희들도 야간 경비를 강화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조만간 범인이 잡히든지, 해코지를 멈추든지 양단간에 무슨 수가 나겠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하여튼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면 즉각 내게 알려주시고......”
“네, 사장님.”
의례 경찰 조사라는 것이 미덥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니 기찬은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며칠 후, 의외의 장소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었으니 기찬은 즉시 차를 몰아 수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붙잡힌 녀석이 있다는 현장이 어디죠?”
“네, 신갈 방면으로 수원 외곽에 있는......”
“아! 알았어요.”
가구에 나 있던 흠집들은 모두가 조그만 칼에 의해 이루어진 상처들이었고, 붙잡힌 녀석은 주머니칼을 숨기고 있다가 현장 경비원에게 붙잡혔다는 보고였다. 사방이 어두운 건축 현장은 곳곳에 중장비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니 기찬은 도착 즉시 키를 받아 굴삭기 위로 뛰어 올라간다.
말없이 구덩이를 파내고 있는 기찬에게 질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제법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기찬은 일행을 바라본다.
“저 자식, 밀어 넣어버려.”
물론 건축 현장의 경비원들이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행위에 동조할 리 없는 일이었지만, 기찬과의 사전 교감이라도 있었던 듯, 발버둥을 치며 매달리는 녀석은 결국 맥없이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일촉즉발, 다시 흙을 덮으려는 듯 굴삭기가 움직이자 비로소 살려달라는 비명과 함께 실토하겠다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사무실로 녀석을 끌고 들어가 자세한 대답을 얻어낼 수가 있었지만, 기찬으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으흠......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과연 그랬단 말이지?”
녀석은 영진 사장으로부터 사주를 받았다는 말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갖고 있질 않아, 기찬의 속이 타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그 계약으로 인해 잦은 하자 발생 시 거래 자체를 중단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증거도 없이 영진 사장에게 들이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그는 발뺌을 할 것이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빌미가 되어 복잡한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범인을 위협해서 얻어 낸 증거는 어차피 그 효력도 없을 뿐이니, 기찬으로서는 단지 그 배후세력을 알아낸 것만을 소득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기찬의 생각이었을 뿐, 붙잡힌 녀석에게 아무리 입단속을 시킨다 한들 그 소식이 영진 사장에게 들어가지 않을 리 없는 일이었다.
“뭐요? 영진 사장이 나를 만나자고 하더란 말이죠?”
“네, 오늘 점심 때 그 문제로 뵙자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결국 영진 사장은 실질적인 오너이신 사장님과 담판을 지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범인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요?”
“하하, 네...... 물론입니다.”
김비서는 기찬에게 보고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 저녁이면 방배동 첫 영업을 시작하는데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하루가 공연한 일로 삐걱거리게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증거효력이 있든 없든 현장마다 해코지를 하고 다닌 녀석에게 나름대로 녹취도 받아뒀고, 각서도 받아 뒀으니 영진사장을 다그쳐 계약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영진사장도 강희라는 약점이 있었으니 기찬이 강하게 어필한다면 더 이상 버티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실례합니다.”
“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과 이 시간에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만......”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십시오.”
영진의 비서실, 김비서가 있던 자리는 미모의 여비서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 으응?...... 아, 아니...... 안녕하십니까?”
영진의 사장실로 들어서 반가운 척 인사를 하던 기찬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허허허...... 역시 자네로군. 뭘 보고 서 있나? 그리 앉게.”
“아! 네...... 의원님.”
고영준 의원이었다. 한금주의 시아버지였으니, 이미 그의 후원회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영진의 사장으로부터 적절한 소개가 있었을 테니 기가 막힌다는 듯, 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는 영진 사장에게 욕이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현직 국회의원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가는 군 수사관 신분증 따위는 당장에 휴지조각이 될 터였으니 조용히 꼬리를 말고 앉아있어야 할 형편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불렀네. 시간 괜찮겠지?”
“아! 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리고 앞으로는 잘 지내게. 여기 영진 사장께서는 내게 커다란 후원이 되는 분이고, 자네는 또한 내 며느리 친구의 동생이라면서...... 모두 가족 같은 사람들인데, 그런 것을 갖고 공갈이나 한다면 곤란한 일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 역시 젊은 사람이라 말귀가 빠르구먼.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테니까 더 이상은 영진 사장을 괴롭히지 말도록 해. 알았나?”
“네,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조정하겠습니다.”
“그래, 자, 함께 나가세.”
이제 다른 수가 없다. 영진에 대한 가구납품은 물 건너가 버렸으니, 속히 대체 거래선을 찾아야 할 일이고, 정상적인 영업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출혈은 방배동에서의 수입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돌을 씹는 기분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이었다. 영진 사장을 먼저 보낸 고의원은 기찬을 불러 세운다.
“자네......”
“아! 네. 의원님.”
“듣자니 자네...... 방배동에도 사업장을 갖고 있다지?”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니 그것 역시 할 수 없는 노릇, 고개를 끄떡여 버린다. 그 아들에게 협조를 받고 있었으니 행여 어수룩하게 굴었다면 여우같은 고의원이 사실을 포착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오픈을 합니다만......”
“내 아들 녀석이 관여를 한다지?”
“아! 네...... 도움을 조금 받기로 했습니다.”
“음...... 정치 공부를 하는 녀석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이력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네, 그 점에 대해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뭐, 알겠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내가 돌봐줌세. 그렇게 해 준다면 월 오천 정도는 내게 후원을 해 줄 수 있겠지?”
“네, 네?......”
“왜? 너무 부담스러운가? 내 자식과는 그 정도로 약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후광이 그녀석만 못하다는 것인가?”
“아! 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의원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을 제대로 하나 큼직하게 달고 가는 꼴이었다. 호사다마, **와의 일이 잘 풀려 걱정을 더는가 싶더니 고 씨 부자가 방배동 사업장을 통째로 삼키려 드는 꼴이었다.
“자, 어서 들어와. 이 가운데로 누워.”
“......”
기찬은 윤정을 방으로 불러들여 자리에 눕히려 했지만, 아직도 윤정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제 남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음을 확인했으니, 그것은 방안에 함께 있는 유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 유정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부자리 안에 누운 채 몸을 움직여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내고 있었다.
“어, 어머! 아가씨......”
“호홋! 언니도 참...... 뭐가 어때서 그래요? 어서 들어오세요.”
마치 시누이와 올케라도 된 듯 서로 불러 대는 호칭이 기찬의 성감을 더욱 일깨우고, 그것은 비단 기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기어이 윤정도 무너져 내리듯 이불 안으로 스며들고, 뒤따라 기찬도 윤정의 뒤로 몸을 누인다.
이미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 윤정의 가슴은 크게 기복을 일으키고 있었다. 차마 벗어버리지 못하는 옷가지는 기찬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있었지만, 윤정에게 정작 놀라운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 아가씨......”
“어머! 언니 가슴 정말 예쁘다.”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기찬마저 적잖이 놀란 것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유정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정의 옷을 벗겨내자 하얗게 드러나는 젖가슴을 대뜸 유정이 쓰다듬어 주무르고 있었으니 윤정은 달리 대응을 할 수도 없어 쩔쩔매고 있을 뿐이었다.
“후후, 그래...... 윤정 씨는 그냥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어. 아무래도 먼저 나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동생하고 내가 즐겁게 해 주지.”
“기, 기찬 씨...... 흐읍......”
조유정, 이미 기찬과는 항문성교를 통해 육체적으로 개방된 사이였으니, 굳이 몸을 사릴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와 함께 나타나는 여자들의 면면이며, 그가 일하는 곳이 카이로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런 변칙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가담해 주지 않고는 기찬의 마음을 살 수 없는 노릇이라고 내심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악...... 흐으읍......”
기찬이 윤정에게 몸을 실을 무렵, 윤정의 그 입술을 마저 빨아들이는 것도 유정의 몫이었으니, 이제 윤정은 당황스러워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그 입술을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동성의 입술을 접하는 것은 둘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윤정 역시 기찬의 성향이 변태적이며 극에서 극으로 치달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으니, 그 형수와 조카에 이어 이제는 친동생과의 잠자리에 자신마저 개입한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는 모양이었다.
“흐으으윽......”
입술이 덮여 제대로 호흡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에 기찬의 몸을 받아내야 했으니 그 긴장감이 주는 쾌감은 극으로만 윤정을 몰아가고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뭉치기라도 한 것처럼 돌처럼 단단해지는 윤정의 몸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두 여자로 인해 기찬은 결국 허리를 세워, 앉은 채 윤정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고, 두 여자는 서로의 가슴을 짓이겨가며 새로운 쾌락에 몰입하고 있었다. 상반신을 포기하고도 기찬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 이상의 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모두를 극도로 예민해지게 만들어 버리는 첫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악기란 그런 것이었다. 다루는 이에 의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단지 굉음에 불과한 소음을 토해내기도 하니, 이제 이들은 정숙함의 이면에 음탕함의 쾌락이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지도 모를 일, 낮과 밤이 주는 그 기운의 차이만큼이나 서로에게 숨겨져 있던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구하지 못할 즐거움일지도 모르는 것이니 마약처럼 스며드는 그것에 스스로 포로가 되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새 혼절한 듯 너부러져 있는 윤정을 곁에 두고 유정과 기찬은 재차 몸을 포개고 있었다.
“식사하세요...... 기찬 씨...... 아가씨도 일어나세요.”
간밤의 폭풍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지난 밤 윤정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 집안에 남편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는지, 기찬과 유정이 서로에게 몰입하고 있을 때를 틈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서는 바람에 두 사람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한참 뒤 샤워를 마치고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부랴부랴 벗은 몸으로 옷가지를 챙기러 왔던 윤정 때문에 모두가 소리죽여 웃었던 기억을 할 뿐이었다.
“남편은 나갔나 봐?”
“네, 호호...... 그러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죠. 아니면 아가씨까지 제가 불렀겠어요?”
“하하, 하긴......”
“저는 얼른 가구점에 나가봐야 하는데...... 식사는 식탁에 차려 뒀어요.”
“그래, 그럼...... 열쇠는 나중에 가구점으로 갖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나가 봐. 늦으면 형수한테 잔소리 들을 거 아냐?”
“네, 그리고 저건 제 혼수이불이니까 이사하더라도 꼭 가지고 가셔야 돼요. 알았죠?”
“후후, 그래. 알았어.”
“그러면 아가씨도 나중에 봬요.”
“네, 언니...... 수고하세요.”
그렇게 윤정과 헤어져서 막상 이삿짐을 옮겨야 했지만, 모든 일이 기찬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노량진 본가로 옮겨 둔다면 **와의 관계진전으로 인해서 다시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 형수 보라에게 자기와의 결혼계획을 밝힐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고, 그 경우에 **는 자세히 알고 있는 일들을, 정작 보라에게는 감춰왔다고 생각할 테니 보라로서는 서운해 할 일인데, 하물며 사기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 집에 다른 여자들을 숨겨두고 산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하게 된다면, 그 때에는 두 자매에게 물어 뜯긴다 해도 할 말이 없는 노릇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연경이 노량진으로 이사하기 전 살던 공간은 아직 비워져 있는 상태였으니, 집주인이 이사하기 전이라도 짐을 옮겨 둘 수 있는 공간이었고, 결국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기찬은 그리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자, 그럼 너희 아버지 일은 조만간 내가 만나서 풀어 볼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모른 척하고 있어. 남녀 간의 일에 있어 자식들이 나서서 관여한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네...... 저는 오빠만 믿고 있을게요.”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너희 아빠와 사귀는 여자도 소개를 해 주겠지만, 그 여자와 잘 지내두는 것도 너희 아빠에게는 고마운 일이 될 거야. 유산을 생각한다면 아무쪼록 지혜롭게 굴어야지.”
“네......”
윤정과의 일은 일단락된 셈이었으니 이사를 마친 뒤, 카이로로 돌아가 있을 생각이었으나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기찬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가구 납품이 이루어지고 있는 수원 공사현장에서 연속적으로 붙박이가구가 훼손된다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이었다.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같은 현상이 있었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이는 일이었으니,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진사장에게는 협박을 하다시피 수의계약을 이룬 상태였으니 딱히 떠오르는 경쟁회사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혹시 모를 일, 종전에 거래하던 가구회사에서 다시 영진과 거래를 하기 위해 기찬의 현장에 해코지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김비서에게 그런저런 당부를 해두고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천에서의 호출 때문이었다. 비록 예감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전화는 천하의 난봉꾼 기찬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 여보세요?”
“저...... 사돈총각...... 나 알겠어요?”
“아! 네...... 어, 어머니......”
자신에게 달리 전화를 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순식간에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관계를 고백하는 셈이었다.
“**에게 이야기를 모두 들었어요. 지금 시간 좀 낼 수 있겠어요?”
“네, 네...... 어머니, 지금 즉시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와 어느 정도 입은 맞춰 두고 있었고, 머지않아 결혼 사기단 사건도 뉴스에 공개될 터였으니 자신과 **의 관계에 대해 나름의 무게는 실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과천에서 기찬은 다시 한 번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형수?......”
보라 역시 소식을 들은 듯 아파트 밑에 내려와 있다가 기찬을 맞는다. **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모든 가족에게 사실대로 말을 했을 리는 없지만, 보라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소식을 접했다는 말이니,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닥뜨린 기찬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서 와요. 기찬 씨......”
“형, 형수...... 어떻게......”
“피...... 가게는 윤정 씨에게 맡겨두고 왔지.”
의외로 보라는 밝은 표정이었고, 냉큼 기찬에게 다가와 팔짱을 걸고 있었다.
“후훗, **한테 이야기 들었어.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라니?......”
“**가 그러더라고...... 차라리 자기랑 결혼하면 나에게도 더 좋은 일 아니냐고......”
“그, 그러면......”
“후훗, 정히 기찬 씨를 만나고 싶어서 못 참겠거든, 차라리 집으로 와서 자기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면 남들 눈에 뜨일 염려도 없고......”
“그러면 **가 우리 두 사람 관계도 인정해 주겠다는 거야?”
“그 대신 나도 두 사람 결혼 축복해 주기로 했어요. 엄마, 아빠를 설득하는 것도 도와주기로 하고...... 하지만, **에게는 미안한 일이니까 집으로 찾아가기는 싫어요. 가끔 밖에서 만나줘요. 자기는 가능할 테니까 아무도 모르게......”
보라는 말의 끝에 복선을 깔고 있었다. 이제 기찬이 수사관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아무도 모르게 조치하고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곧 기찬이 처음부터 계획 하에 자신의 몸을 취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형수, 사실은......”
“풋...... 괜찮아요. **가 당시 상황을 모르니까 오해할 수도 있어요. ** 생각에 자기가 처음부터 나를 좋아해서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어차피 내가 잘못 판단해서 박 사장하고 여관을 갔던 것인데...... 그리고 **를 그런 일에서 구해 준 것도 언니로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고...... 다만 이제는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동안 나를 속인 벌은 받아야 되지 않겠어요?”
“벌?......”
하얗게 눈을 흘기는 보라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기찬의 우려와는 달리 속 깊이 받아들여주는 것은 역시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기찬의 그것과 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와 결혼을 할 때까지는 모른 척 할 거예요. 그러니까 친한 척하기 없기...... 후훗......”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엉덩이를 우스꽝스럽게 흔들어 대는 보라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흐으읍...... ”
“아이! 미쳤어...... 여기 다 찍힌단 말이야.”
“후후후, 알았어. 너무 예뻐서 그랬어.”
다행히 **는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기 전에 보라와 상의를 했는지, 억지스럽게 임신을 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단지 **의 의견이었다면 펄쩍 뛰며 반대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도 보라까지 들어와 둘의 관계가 오래 된 연인이라는 등의 설명을 붙여가며 적극 권하는 일이어서 마음이 돌아선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간 놀고먹는 줄만 알았던 사돈총각이 군 수사관이라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뿌듯한 마음까지도 일었던 모양이니 사기결혼에 대한 일도 자연스럽게 풀리고 마음 상할 일도 피해간 셈이었다.
“호호호, 내가 겹사돈을 맺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그런 것은 다 남의 일로만 알고 살아 왔는데 이렇게 자네까지 사위로 맞게 되다니...... 그래, 이젠 이렇게 알았으니 숨기느라고 마음 끓이지 말고 둘이 잘 지내게. 서로 싸우지 말고......”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직 저희 어머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조만간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도련님, 어머니에게도 제가 어제 넌지시 말씀을 드려 놓았어요.”
보라가 나서며 기찬을 바라보고 말을 이어간다.
“네?......”
“호호, 뭐 어차피 말씀을 드릴 거잖아요? 일단은 도련님이 수사관이라는 말씀부터 드렸어요. 가족들도 모르게 비밀리에 하는 일이라서 그동안 신분을 감춰 왔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 그러면 **와의 일은......”
“그것도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수사관이라는 것을 저도 알게 되었다고...... 언젠가 도련님이 따로 말씀을 드릴 테지만, 어머니가 늘 도련님 걱정을 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지난 번 **가 선을 보는 것처럼 다녀간 뒤로는 부쩍 더 도련님 걱정을 하셨거든요.”
“아......”
“하지만, 나중에 도련님이 다시 직접 말씀을 드리세요. 아직도 어머니는 모르는 척하고 계실 테니까 여러 가지 속사정을 답답해하실지 모르잖아요.”
“아, 그건 그래야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형수님.”
이제 고개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하지만 일의 전개가 급물살을 이룰수록 빨리 노량진 집을 비워야 할 일이었다. 애경에게 당부했던 새로 얻은 집의 매매를 중단시키고, 모두를 이사시켜야 할 형편이었으니 가구공장의 일은 전적으로 김비서에게 맡기고, 유정의 아버지 조 사장의 일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는 것은 기찬과의 사랑으로 덮어 줄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만약 노량진 집을 원상회복했다는 것을 기찬의 형이 뒤늦게 알게 된다면 자신마저 속였다는 생각에 자칫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자신의 신분이며, **와의 관계를 형에게 알리기 전에 집을 최근에 회복한 것처럼 위장해서 형에게 알려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식구들을 새로 얻은 집으로 다시 이사를 보내고, 그 속에서 묻혀 지내기를 며칠이었다. 다시 노량진 본가는 처음의 상태로 회복되었고, 간혹 **나 보라가 틈틈이 다녀갈 뿐, 기찬조차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비워두는 형편이었다.
“자, 오늘은 모두 방배동으로 모이라고 하지? 이제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운영을 해야 할 테니까 미리 가동할 수 있는 여력이 어디까지 되는지 강희가 알아 둬야지.”
“네, 안 그래도 오늘 모두 모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카이로에서도 암중에 지원해 주기로 했으니까요.”
최강희, 미라의 올케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카이로에서 마담을 통해 접객요령 따위를 몸에 익혀오고 있었으니 이제 방배동 비밀요정의 오픈을 앞두고 사전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 일단 내일은 한금주의 남편이 손님들을 데리고 올 거니까 대접에 만전을 기해야 돼. 결국 그 사람들이 또 다시 꼬리를 물고 손님을 이끌어 와야 하니까......”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 있으니까...... 호호호......”
강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진 사장과 처음부터 불륜의 관계에 빠진 것이 자신의 끼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그럴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대강의 당부를 마친 기찬은 가구공장으로 모처럼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모두 한 놈 소행 같이 보인다는 말이지요?”
“네, 흠집이 나 있는 위치며, 사용한 도구가 모두 같은 것으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이지?”
“지금 경찰에도 사건을 의뢰해 뒀습니다. 저희들도 야간 경비를 강화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조만간 범인이 잡히든지, 해코지를 멈추든지 양단간에 무슨 수가 나겠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요. 하여튼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면 즉각 내게 알려주시고......”
“네, 사장님.”
의례 경찰 조사라는 것이 미덥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니 기찬은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며칠 후, 의외의 장소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었으니 기찬은 즉시 차를 몰아 수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붙잡힌 녀석이 있다는 현장이 어디죠?”
“네, 신갈 방면으로 수원 외곽에 있는......”
“아! 알았어요.”
가구에 나 있던 흠집들은 모두가 조그만 칼에 의해 이루어진 상처들이었고, 붙잡힌 녀석은 주머니칼을 숨기고 있다가 현장 경비원에게 붙잡혔다는 보고였다. 사방이 어두운 건축 현장은 곳곳에 중장비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니 기찬은 도착 즉시 키를 받아 굴삭기 위로 뛰어 올라간다.
말없이 구덩이를 파내고 있는 기찬에게 질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제법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기찬은 일행을 바라본다.
“저 자식, 밀어 넣어버려.”
물론 건축 현장의 경비원들이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행위에 동조할 리 없는 일이었지만, 기찬과의 사전 교감이라도 있었던 듯, 발버둥을 치며 매달리는 녀석은 결국 맥없이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일촉즉발, 다시 흙을 덮으려는 듯 굴삭기가 움직이자 비로소 살려달라는 비명과 함께 실토하겠다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사무실로 녀석을 끌고 들어가 자세한 대답을 얻어낼 수가 있었지만, 기찬으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으흠......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과연 그랬단 말이지?”
녀석은 영진 사장으로부터 사주를 받았다는 말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갖고 있질 않아, 기찬의 속이 타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그 계약으로 인해 잦은 하자 발생 시 거래 자체를 중단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증거도 없이 영진 사장에게 들이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그는 발뺌을 할 것이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빌미가 되어 복잡한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범인을 위협해서 얻어 낸 증거는 어차피 그 효력도 없을 뿐이니, 기찬으로서는 단지 그 배후세력을 알아낸 것만을 소득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기찬의 생각이었을 뿐, 붙잡힌 녀석에게 아무리 입단속을 시킨다 한들 그 소식이 영진 사장에게 들어가지 않을 리 없는 일이었다.
“뭐요? 영진 사장이 나를 만나자고 하더란 말이죠?”
“네, 오늘 점심 때 그 문제로 뵙자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결국 영진 사장은 실질적인 오너이신 사장님과 담판을 지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범인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요?”
“하하, 네...... 물론입니다.”
김비서는 기찬에게 보고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 저녁이면 방배동 첫 영업을 시작하는데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하루가 공연한 일로 삐걱거리게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증거효력이 있든 없든 현장마다 해코지를 하고 다닌 녀석에게 나름대로 녹취도 받아뒀고, 각서도 받아 뒀으니 영진사장을 다그쳐 계약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영진사장도 강희라는 약점이 있었으니 기찬이 강하게 어필한다면 더 이상 버티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실례합니다.”
“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과 이 시간에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만......”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십시오.”
영진의 비서실, 김비서가 있던 자리는 미모의 여비서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 으응?...... 아, 아니...... 안녕하십니까?”
영진의 사장실로 들어서 반가운 척 인사를 하던 기찬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허허허...... 역시 자네로군. 뭘 보고 서 있나? 그리 앉게.”
“아! 네...... 의원님.”
고영준 의원이었다. 한금주의 시아버지였으니, 이미 그의 후원회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영진의 사장으로부터 적절한 소개가 있었을 테니 기가 막힌다는 듯, 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는 영진 사장에게 욕이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현직 국회의원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가는 군 수사관 신분증 따위는 당장에 휴지조각이 될 터였으니 조용히 꼬리를 말고 앉아있어야 할 형편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불렀네. 시간 괜찮겠지?”
“아! 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리고 앞으로는 잘 지내게. 여기 영진 사장께서는 내게 커다란 후원이 되는 분이고, 자네는 또한 내 며느리 친구의 동생이라면서...... 모두 가족 같은 사람들인데, 그런 것을 갖고 공갈이나 한다면 곤란한 일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 역시 젊은 사람이라 말귀가 빠르구먼.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테니까 더 이상은 영진 사장을 괴롭히지 말도록 해. 알았나?”
“네,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조정하겠습니다.”
“그래, 자, 함께 나가세.”
이제 다른 수가 없다. 영진에 대한 가구납품은 물 건너가 버렸으니, 속히 대체 거래선을 찾아야 할 일이고, 정상적인 영업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출혈은 방배동에서의 수입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돌을 씹는 기분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이었다. 영진 사장을 먼저 보낸 고의원은 기찬을 불러 세운다.
“자네......”
“아! 네. 의원님.”
“듣자니 자네...... 방배동에도 사업장을 갖고 있다지?”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니 그것 역시 할 수 없는 노릇, 고개를 끄떡여 버린다. 그 아들에게 협조를 받고 있었으니 행여 어수룩하게 굴었다면 여우같은 고의원이 사실을 포착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오픈을 합니다만......”
“내 아들 녀석이 관여를 한다지?”
“아! 네...... 도움을 조금 받기로 했습니다.”
“음...... 정치 공부를 하는 녀석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이력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네, 그 점에 대해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뭐, 알겠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내가 돌봐줌세. 그렇게 해 준다면 월 오천 정도는 내게 후원을 해 줄 수 있겠지?”
“네, 네?......”
“왜? 너무 부담스러운가? 내 자식과는 그 정도로 약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 후광이 그녀석만 못하다는 것인가?”
“아! 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의원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을 제대로 하나 큼직하게 달고 가는 꼴이었다. 호사다마, **와의 일이 잘 풀려 걱정을 더는가 싶더니 고 씨 부자가 방배동 사업장을 통째로 삼키려 드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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