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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산행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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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721회 작성일 20-01-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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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그녀의 칼을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이 년아,너 칼 쓸줄이나 아냐. 그걸로 뭐할래. 토끼나 잡겠냐." 그녀는 더욱 독기를 세웠다. "왜요. 못할게 뭐있어. 짧다구요? 길이 90미리미터,넓이 12미리미터. 이 정도면 충분해,아저씨." 사내가 턱을 만졌다. "나 이거 참. 어이없는 년일세.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토끼 가죽벗기기에 충분하다는 거야?" 그녀는 어수룩하지만 사내를 향해 똑바로 칼날을 세웠다. 마운티너로 사람을 겨눌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너무나 위험스럽고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아까 먹은 라면이 기어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봐요. 이거 우습게 보여도 12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칼이야. 위급시에는 수술용으로 사용될 정도라구요.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구요." 그녀는 최대한 많이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 많은 여자,이길 남자 없다고 하지 않던가. 주저리 주저리 시간을 끄는 것. 그것만이 지금 살 길이었다. "70년대에 봄베이에서 있었던 일이었죠. 비행기 안에서 사탕을 먹던 어린이 목에 사탕이 걸린 사건이 발생했어요. 아이는 곧 숨이 막혔죠." 사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이 년아. 누가 그런거 알고 싶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으나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칼의 전설은 그뿐만이 아니예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이번엔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일이죠. 드라이브 중에 부모의 실수로 차가 강물에 빠졌어요. 전자시스템이 정지했구요, 수압때문에 차문은 열리지 않았어요. 차 안에 있는 모든 도구로 유리를 때렸지만 강화유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죠. 그때 아이의 아빠가 빅토리녹스를 꺼냈어요." 사내가 또 인상을 쓰며 짜증을 냈다. "야,이 년아. 네가 거기 있었냐. 지금 영화찍냐. 뭘 그렇게 다 본것처럼 구라를 쳐.이거 진짜 말 많은 년이네." 그녀도 질세라 맞받아쳤다. "이 칼을 우습게 보지 말란 말야."



푸코는 말한다. 섹스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 즉 무엇에 따라오는 것, 이차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섹스는 성이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는 무엇에 따라오는 것일까. 푸코에 의하면 그 무엇은 권력이다. 부르조아 사회에서 섹스를 어떻게 장치하는가를 결정하는 권력,그리고 그 권력을 휘두르는 기법 안에서만,우리가 그렇게도 해보고 싶어 안달하는 섹스가 의미를 부여받는다. 쇼윈도우에 붙어있는 늘씬한 모델들의 포스터를 보라. 당신은 그들과 섹스를 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 늘씬한 여성을 모델로 선발하고, 선발된 모델에게 하늘하늘 거리는 옷을 입히고, 그것을 입이 떡 벌어지는 각도로 렌즈에 담고, 그 필름을 포스터로 인쇄해 당신 앞에 있는 유리창에 붙인 그 권력이 당신의 질 안으로 성기를 들이민 것이다. -성욕아래 모든 교양. 213쪽.위르겐 슈바인슈타이거 지음. 편두석 역.-



"그래,이 년아. 그 칼이 그렇게 좋으면 한번 찔러봐라." 사내가 상의를 잡아당겨 가슴 윗부분을 드러내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 서슬퍼런 기세에 그녀는 단박에 움츠러 들었다. 말이 그렇지 산 사람을 찌르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녀는 재빨리 작전을 바꾸었다. 칼을 거꾸로 잡고 자신의 목에 갖다댄 것이다. "움직이면 그을거야. 맘대로 해. 여기 피바다 만들고 그 속에서 죽은 년이랑 하는게 좋으면 그렇게 하든지." 사내가 입술 사이로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녀를 노려보는 사내의 미간이 깊게 패이며 좁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년."

한참을 풀풀거리며 혼자 웃다가 사내가 말했다. "이거 아주 재밌는 년일세. 이 년아. 그래, 시체보다는 산 년이 낫겠지. 그치만 말야, 난 시체랑 하는것도 상관없는 놈이야. 좋아,좋아. 네가 날 웃겼어. 너 참 재밌는 년이야..그래,네가 하겠다는 내기가 뭔지 한번 들어나보자." 그녀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조금씩 그녀의 페이스로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가 아까처럼 자신을 일방적인 강간대상으로 보지는 않는 듯 했다. "간단해요. 서로 상대방이 모를 만한 퀴즈를 번갈아 내는거야. 못맞히면 상대에게 기회가 넘어가는 거고, 만약에 맞히면 그걸로 내기 끝. 맞힌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간단하죠? 문제 낼 차롄데 낼 문제가 없어도 지는거구요.아..그래요,말도 안되는 문제를 내는 것도 안돼요. 예를 들어 내 조카 이름이 뭐냐, 또는 내가 기르던 강아지 이름이 뭐냐 이런 식으로요. 어디까지나 문제는 진짜 답이 있는 객관적인 퀴즈여야 해요." 사내가 피식거렸다. "그래..네 얼굴을 보니 똑똑한 년 같긴 하더구나.자신 있나부지? 썩을 년." 그녀가 다시 목에 댄 칼에 힘을 주었다. 칼날이 피부에 파묻혔다. "어쩔래요? 할래,말래." 사내가 그녀에게서 조금 물러나 앉았다. "그래,한번 잘난척하는 네 솜씨 좀 보자. 너부터 해봐,이 년아.지고나서 딴 소리하면 죽을줄 알아." 그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내가 할 소리예요. 지고나서 나한테 덤벼들면 그땐 너죽고 나죽고야." 칼을 쥔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보던 사내가 말했다. "이 년아,너 같은거 따먹는건 일도 아냐." 사내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그녀의 손목을 나꿔챘다. 사내의 쇠못같은 손가락이 그녀 손의 합곡혈을 눌렀고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칼을 떨어뜨렸다. 마운티너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내가 그것을 나꿔잡았다. 그녀가 새하얗게 질렸다. 사내가 칼을 손바닥에 얹어 무게를 대충 재더니 날을 거꾸로 잡아 움막의 벽을 향해 던졌다. 빅토리녹스는 무게 중심이 좋지않아 투검용으로 사용되지 않는 칼임에도 한번 반을 회전하며 빛살처럼 날아 정확히 움막 벽에 꽂혔다. 칼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붉은 손잡이를 부르르 떨었다. "시작해,이년아.난 내가 한말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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