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밤이 지나면 - 단편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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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56회 작성일 20-01-17 12:37본문
스무밤이 지나면 - 두번째 밤
불쾌했던 첫번째 밤이 지나고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한 기억은 아주 사소한,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문득 누워 머리를 긁적이다보면 그녀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떠올랐고, 텅 빈 방 안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는, 언제나 꼭꼭 씹어 먹는 그녀의 올바른 식습관이 떠올랐다.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는 내 가슴을 간지르던 그녀의 입술과 손이,
면도를 할 때면, 면도기를 들고 천연덕스럽게
저기, 거기 털 밀어봐도 돼?
라고 묻는 그녀의 눈이, 입술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을 터트리게 만든 것은 그녀의 희디흰 육체도 아니고 검은 머리카락도 아니었다. 봉긋하게 은 육감적인 가슴도 아니었고, 매끈하게 빠진 다리, 초롱초롱한 눈, 부드러운 입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루가 끝나도 찾아갈 누군가가 없다는 간단한 단절, 그것의 체험이었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를 떨구고 혹여 누가 들을까봐
그리고 혹시나 누가 들으라고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처럼 더디던 두번째 밤이 화려하게 밝았다.
(2)두번째 밤 - 접시는 큰게 좋은가? 아름다운 것이 좋은가?
문제는 누가 접시를 하느냐였다. 그릇이라는 것은 본디 무엇을 담기 위한 도구이며 인류 문명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상징적인 형상이다. 그러나 그릇 중에서도 접시는 분명 그릇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무엇을 담는다기보다는 종종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현대에 와서는 그 역할 비중이 치장하고 장식하는 쪽으로 더욱 치중되고 있다. 때문에 접시는 이미 그릇 이전에 아름다워야 하며 그릇 위에 올려지는 내용물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접시가 될 것을 권했다. 마트에서 사온 싸구려 초밥일 지라도 아름다운 접시에 올려지게 되면 그 음식의 풍미가 어찌됐건, 사실 맛이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 쯤은 너와 나 내가 모두 알잖아? 따위의 논리였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흰 몸에, 봉긋이 솟은 가슴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골, 과하지 않은 복근과 앙증맞게 들어간 배꼽,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려 황망히도 자신의 내부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제모는 순전히 자신의 몸에 자라는 털이 싫고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어서 했다는 그녀의 변명과도 같은.
접시가 된 그녀를 아래 두고 장난스럽게 음식을 주워 먹는 나의 모습은 분명 아이처럼 천진하고 뱀처럼 탐욕스러울 것이다. 최대한 탐욕스러운 얼굴로 천진하게 나는
"절대 나는 아름다운 접시에 상처 내는 짓을 하지 않겠다. 때문에 젓가락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최대한 내추럴하게 먹을 것이다. 혀를 사용하는 것도 한 없이 본능적인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방법이겠지."
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본디 접시라는 것은 내용물을 담기 위한 도구라는 적확성을 강조했다.
"오빠가 황새라고 가정해봐요. 맛있는 수프가 넓적한 접시에 찰랑거리게 담겨있어요. 혀가 없는 오빠는 그 수프를 어떻게 먹을 수 있나요?"
유명한 이솝우화에서 부터
"그러니까 제 몸에 저런 싸구려 음식을 올려 놓고 음미하겠다는 오빠의 저질스러운 발상 자체가 싫다는 거에요."
라는 유치한 투정까지. 이어
"내 몸보다 오빠의 몸이 접시로 더 적합해요. 넓고 평평하니까. 내 몸에 올려 놓았다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거에요."
라는 협박까지.
"그리고 나는 현대인이니까 젓가락을 사용할 거에요. 나무젓가락 말고 쇠젓가락"
과 같은 덧붙임도 잊지 않았다.
나는 반대했고 그녀도 반대했다. 서로 접시가 되는 것을 싫어했고 서로 취식하는 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런 싸움에서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뭐해요? 누워요."
이미 깨끗이 씻고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터라 접시를 하기로 하자 망설일 건 없었다. 나는 살며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엔 내 몸이 흐릿하게 비치는 거울이 있었다. 이미 은 시절 운동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삶의 무게와 뱃살과 검푸르게 돋아난 음모와 성기만 생생하게 거울에 비출 뿐이었다. 아, 핑크색 젖꼭지가 유난히도 도드라져보이는 것은 조명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몸위에 초밥을 올렸다. 차가운 냉장초밥의 한기가 피부로 전해졌다. 몸서리칠 만큼은 아니어서 견딜만 했다. 그녀의 아기자기한 손놀림과 사뭇 진지하리만큼 집중한 그녀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그릇 따위는 그만 두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몸에 올려진 초밥, 일단 되기로한 접시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단순히 정해진 역할 길어야 수십분에 불과한 하나의 극이었지만 말과 행위와 약속이라는 것이 단순한 충동으로 쉽사리 깨지는 것은 아니었다. 성문화(成文化) 된 문자와 동일한 수준의 강제력은 아니었으나 지금, 그릇이라는 형태를 연기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와 나눈 말은 시작과 분명히 어느 정도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장식을 하는 것처럼, 그녀는 내 가슴과 배와 허벅지에 음식을 담았다. 거울로 비춰지는 그릇인 내 모습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와 그 끝에 봉긋하게 드러난 그녀의 엉덩이는 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풍경과 닮아 있었다.
초밥을 다 올리고 난 뒤,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양 손을 꼭 잡고 마치 기도하는 모습으로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섹시한데요?"
"그럴리가"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접시에 담긴 음식을 감상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예술작품을 완성, 혹은 감상할 때처럼 빛났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이기도 한, 또한 접시이기도 한 나는 그냥 그랬다.
냉장초밥은 내 피부에 닿아 조금씩 녹기 시작해 차가운 감촉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밥에 가미된 약간의 기름기가 내 피부를 침범하기 시작해 간지러움을 유발했다. 긁고 싶었고 꿈틀거리고 싶었으나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참기로 했다.
이윽고 한참 동안 감상하던 그녀가 젓가락을 들어 초밥을 집었다. 미리 준비해 온 듯한 쇠젓가락이 실수를 가장해 내 몸을 찔렀고 초밥과는 다른 차가움에 내 몸은 살짝 떨렸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감각을 참아내는 나를 보며 그녀는 모종의 계획을 세운 듯 음식을 집었다. 한손으로 음식물이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저그런 기성식품과 다를 바 없는, 마트의 냉장초밥마저도 그녀의 입에 들어가자 상당히 품격있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봉긋하게 은 가슴과 과하지 않은 복근, 앙증 맞은 배꼽, 침대 맡에 무릎꿀고 앉은 그녀의 허벅지는 살며시 움직이는 입과 합쳐저 욕정을 품는 내게 배덕감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도덕의 경계는 접시가 되기로 한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성기는 고개를 들었고 그녀는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었다.
팟팟하게 발기된 성기를 보고도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식사를 계속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멈춰있어야하는 나에게 그것은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빨리 먹어. 기다리다 죽겠다."
"기다려요."
그녀가 젓가락으로 나의 성기를 살짝 꼬집었다. 차가운 이물감에 놀랄 틈도 없이 누워있는 내 입에 키스를 하더니 씹고 있던 음식물을 내 입안으로 뱉어냈다. 평소 같으면 더럽다고 기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뱉은 음식물은 이상하게도 역하지 않았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어때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음식이 입안에 남아있는 중이었고 말을 하면 몸의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특별히 대답을 원하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잠시 처다보더니 그대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접시위에 초밥이 한 점 남았을 때,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발기된 나의 성기를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것도 먹을 까요?"
아마 나는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을 것이다. 아니 성기를 끄덕였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나의 반응이 웃겼는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혀로 나의 성기를 핥았다. 길어봐야 이십여분을 발기해있었을 뿐인데 그녀의 혀가 닿자 해방감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가 나의 성기를 삼켰다.
상황이 상황이어서일까. 그녀가 몇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쉽게 사정을 했다. 사정할 때 그녀의 머리와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꽤 많은 양을 사정했음에도 그녀는 정액을 흘리지 않았고 내가 사정을 끝내고 나서야 성기에서 입을 땠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평소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지만 입을 가득 채운 정액 때문에 심통난 어린애 처럼 볼이 부풀어 있었다. 꿀꺽.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그렇게 먹기 싫다고 강제로 입을 벌려도 뱉어냈었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그녀가 삼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액을 삼킨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입을 행구지 않고 바로 내 입에 키스했다. 그리고 말했다.
"음, 솔직히 초밥이 더 맛있네요."
두번째 밤, 그녀의 달콤한 말과 함께 출토된 기억은 입술에 비릿한 정액맛을 각인 시켰다. 씁쓸함과 비릿함이 대보름 달덩이 마냥 휘향찬란하게 요동쳤다.
불쾌했던 첫번째 밤이 지나고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한 기억은 아주 사소한,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문득 누워 머리를 긁적이다보면 그녀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떠올랐고, 텅 빈 방 안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는, 언제나 꼭꼭 씹어 먹는 그녀의 올바른 식습관이 떠올랐다.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는 내 가슴을 간지르던 그녀의 입술과 손이,
면도를 할 때면, 면도기를 들고 천연덕스럽게
저기, 거기 털 밀어봐도 돼?
라고 묻는 그녀의 눈이, 입술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을 터트리게 만든 것은 그녀의 희디흰 육체도 아니고 검은 머리카락도 아니었다. 봉긋하게 은 육감적인 가슴도 아니었고, 매끈하게 빠진 다리, 초롱초롱한 눈, 부드러운 입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루가 끝나도 찾아갈 누군가가 없다는 간단한 단절, 그것의 체험이었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를 떨구고 혹여 누가 들을까봐
그리고 혹시나 누가 들으라고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처럼 더디던 두번째 밤이 화려하게 밝았다.
(2)두번째 밤 - 접시는 큰게 좋은가? 아름다운 것이 좋은가?
문제는 누가 접시를 하느냐였다. 그릇이라는 것은 본디 무엇을 담기 위한 도구이며 인류 문명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상징적인 형상이다. 그러나 그릇 중에서도 접시는 분명 그릇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무엇을 담는다기보다는 종종 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현대에 와서는 그 역할 비중이 치장하고 장식하는 쪽으로 더욱 치중되고 있다. 때문에 접시는 이미 그릇 이전에 아름다워야 하며 그릇 위에 올려지는 내용물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접시가 될 것을 권했다. 마트에서 사온 싸구려 초밥일 지라도 아름다운 접시에 올려지게 되면 그 음식의 풍미가 어찌됐건, 사실 맛이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 쯤은 너와 나 내가 모두 알잖아? 따위의 논리였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흰 몸에, 봉긋이 솟은 가슴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골, 과하지 않은 복근과 앙증맞게 들어간 배꼽,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려 황망히도 자신의 내부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제모는 순전히 자신의 몸에 자라는 털이 싫고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어서 했다는 그녀의 변명과도 같은.
접시가 된 그녀를 아래 두고 장난스럽게 음식을 주워 먹는 나의 모습은 분명 아이처럼 천진하고 뱀처럼 탐욕스러울 것이다. 최대한 탐욕스러운 얼굴로 천진하게 나는
"절대 나는 아름다운 접시에 상처 내는 짓을 하지 않겠다. 때문에 젓가락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최대한 내추럴하게 먹을 것이다. 혀를 사용하는 것도 한 없이 본능적인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방법이겠지."
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본디 접시라는 것은 내용물을 담기 위한 도구라는 적확성을 강조했다.
"오빠가 황새라고 가정해봐요. 맛있는 수프가 넓적한 접시에 찰랑거리게 담겨있어요. 혀가 없는 오빠는 그 수프를 어떻게 먹을 수 있나요?"
유명한 이솝우화에서 부터
"그러니까 제 몸에 저런 싸구려 음식을 올려 놓고 음미하겠다는 오빠의 저질스러운 발상 자체가 싫다는 거에요."
라는 유치한 투정까지. 이어
"내 몸보다 오빠의 몸이 접시로 더 적합해요. 넓고 평평하니까. 내 몸에 올려 놓았다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거에요."
라는 협박까지.
"그리고 나는 현대인이니까 젓가락을 사용할 거에요. 나무젓가락 말고 쇠젓가락"
과 같은 덧붙임도 잊지 않았다.
나는 반대했고 그녀도 반대했다. 서로 접시가 되는 것을 싫어했고 서로 취식하는 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런 싸움에서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뭐해요? 누워요."
이미 깨끗이 씻고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터라 접시를 하기로 하자 망설일 건 없었다. 나는 살며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엔 내 몸이 흐릿하게 비치는 거울이 있었다. 이미 은 시절 운동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삶의 무게와 뱃살과 검푸르게 돋아난 음모와 성기만 생생하게 거울에 비출 뿐이었다. 아, 핑크색 젖꼭지가 유난히도 도드라져보이는 것은 조명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몸위에 초밥을 올렸다. 차가운 냉장초밥의 한기가 피부로 전해졌다. 몸서리칠 만큼은 아니어서 견딜만 했다. 그녀의 아기자기한 손놀림과 사뭇 진지하리만큼 집중한 그녀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그릇 따위는 그만 두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몸에 올려진 초밥, 일단 되기로한 접시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단순히 정해진 역할 길어야 수십분에 불과한 하나의 극이었지만 말과 행위와 약속이라는 것이 단순한 충동으로 쉽사리 깨지는 것은 아니었다. 성문화(成文化) 된 문자와 동일한 수준의 강제력은 아니었으나 지금, 그릇이라는 형태를 연기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와 나눈 말은 시작과 분명히 어느 정도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장식을 하는 것처럼, 그녀는 내 가슴과 배와 허벅지에 음식을 담았다. 거울로 비춰지는 그릇인 내 모습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와 그 끝에 봉긋하게 드러난 그녀의 엉덩이는 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풍경과 닮아 있었다.
초밥을 다 올리고 난 뒤,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양 손을 꼭 잡고 마치 기도하는 모습으로 접시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섹시한데요?"
"그럴리가"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접시에 담긴 음식을 감상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예술작품을 완성, 혹은 감상할 때처럼 빛났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이기도 한, 또한 접시이기도 한 나는 그냥 그랬다.
냉장초밥은 내 피부에 닿아 조금씩 녹기 시작해 차가운 감촉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밥에 가미된 약간의 기름기가 내 피부를 침범하기 시작해 간지러움을 유발했다. 긁고 싶었고 꿈틀거리고 싶었으나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참기로 했다.
이윽고 한참 동안 감상하던 그녀가 젓가락을 들어 초밥을 집었다. 미리 준비해 온 듯한 쇠젓가락이 실수를 가장해 내 몸을 찔렀고 초밥과는 다른 차가움에 내 몸은 살짝 떨렸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감각을 참아내는 나를 보며 그녀는 모종의 계획을 세운 듯 음식을 집었다. 한손으로 음식물이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저그런 기성식품과 다를 바 없는, 마트의 냉장초밥마저도 그녀의 입에 들어가자 상당히 품격있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봉긋하게 은 가슴과 과하지 않은 복근, 앙증 맞은 배꼽, 침대 맡에 무릎꿀고 앉은 그녀의 허벅지는 살며시 움직이는 입과 합쳐저 욕정을 품는 내게 배덕감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도덕의 경계는 접시가 되기로 한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성기는 고개를 들었고 그녀는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었다.
팟팟하게 발기된 성기를 보고도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식사를 계속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멈춰있어야하는 나에게 그것은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빨리 먹어. 기다리다 죽겠다."
"기다려요."
그녀가 젓가락으로 나의 성기를 살짝 꼬집었다. 차가운 이물감에 놀랄 틈도 없이 누워있는 내 입에 키스를 하더니 씹고 있던 음식물을 내 입안으로 뱉어냈다. 평소 같으면 더럽다고 기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뱉은 음식물은 이상하게도 역하지 않았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어때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음식이 입안에 남아있는 중이었고 말을 하면 몸의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특별히 대답을 원하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잠시 처다보더니 그대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접시위에 초밥이 한 점 남았을 때,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발기된 나의 성기를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것도 먹을 까요?"
아마 나는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을 것이다. 아니 성기를 끄덕였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나의 반응이 웃겼는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혀로 나의 성기를 핥았다. 길어봐야 이십여분을 발기해있었을 뿐인데 그녀의 혀가 닿자 해방감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가 나의 성기를 삼켰다.
상황이 상황이어서일까. 그녀가 몇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쉽게 사정을 했다. 사정할 때 그녀의 머리와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꽤 많은 양을 사정했음에도 그녀는 정액을 흘리지 않았고 내가 사정을 끝내고 나서야 성기에서 입을 땠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평소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지만 입을 가득 채운 정액 때문에 심통난 어린애 처럼 볼이 부풀어 있었다. 꿀꺽.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그렇게 먹기 싫다고 강제로 입을 벌려도 뱉어냈었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그녀가 삼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액을 삼킨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입을 행구지 않고 바로 내 입에 키스했다. 그리고 말했다.
"음, 솔직히 초밥이 더 맛있네요."
두번째 밤, 그녀의 달콤한 말과 함께 출토된 기억은 입술에 비릿한 정액맛을 각인 시켰다. 씁쓸함과 비릿함이 대보름 달덩이 마냥 휘향찬란하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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