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밤이 지나면 - 단편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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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061회 작성일 20-01-17 12:37본문
스무번째 밤을 보내고 나서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간 느꼈던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자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쉴수 있었다. 스무밤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녀와 공유하던 시간이 혼자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이었고, 메아리 조차 울리지 않는 정적이 주는 상처였다.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시작한 관계였다. 무언가를 소유하길 갈망하는 그녀와 끊임없이 욕구하는 나의 관계는 얼핏. 최상의 관계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갈망과 욕구의 비슷한 지점들이, 아주 조금씩, 서서히 관계를 어긋나게 했다.
크게 어긋나지도 않았고, 아주 작은 지점에서 사소한 다툼, 혹은 불만이 있었다. 욕구하는 나는, 사소한 부분은 내 욕구속에 묻어버렸지만, 갈망하는 그녀는 완벽한 소유를 위해 미세하고, 작은, 감정과 심리의 변화로 지속적인 관계의 저변에 선을 그었다.
또한, 불분명한 관계 속에 주도권과 결정권의 갈등은 서로의 몸을 섞는 순간에도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모니터의 불량화소 같은 틀어짐이 지속되자 그녀는 말없이 종언을 선고했고, 그녀의 결정에 나는 반박하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욕구한 만큼 소비된 감정에 대한 복구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해서, 순식간에 불타올랐던 나의 욕구는 그녀의 갈망, 침묵 앞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깜빡이는 메모장의 커서처럼 두근,
혹은 깜박.
소리를 치고 싶은 욕구를 감추는 첫번째 밤이 찾아왔다.
(1) 첫번째 밤 - 풍화되지 못한 시간의 찌거기
옛날 이야기 좋아하세요? 별로 관심없으셔도 들으세요.
까만 털이 인상적인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어요. 그 강아지는 자기가 고양이 인줄 알았죠. 아니, 그 반대였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건 자신의 신분을 모르는 한 개새끼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아, 고양이 새끼일 수도 있죠. 앞서 말했지만 중요한건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본질이니까요.
여하튼
까만 털이 인상적인 강아지는 항상 묶여있어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체구가 작아서 태어난지 한 두해 된 어린 강아지로 보이기도 했지만, 강아지를 묶고 있는 목줄이나 잘 정돈된 털이나 눈의 깊이는 꽤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이사한 지 얼마 안되는 터라, 마을의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나오는 만화책 방, 그 앞에 파란 대문, 철창이 듬성듬성 쳐져있는 그 사이로 항상 그 강아지가 보였어요. 도로 변이라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대도 짓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으니 집을 지키는 능력은 꽝이었죠. 순하다면 순한거고 멍청하다면 멍청한 그런 강아지였죠. 제겐 낯선 거리,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그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평소에 개를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히 동물을 사랑하거나 하는 그런 감정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철창 사이로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마음에 들었고 정돈된 털과 귀찮은 듯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죠. 저는 그 강아지를 갖고 싶었어요.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원하니. 까만 강아지가 생겼어요. 물론, 부모님께 졸라서 최대한 비슷한 종의 강아지를 들여왔죠. 나는 파란 대문, 철창 안의 강아지를 기대했고 강아지의 생김새는 완벽했죠. 잘 정돈된 까만 털, 사실 철창 안으로 힐끔 힐끔 본 것이 전부라 그냥 까만 강아지면 어떤 거라도 상관이 없었었을 거에요. 처음에는 내 강아지가 생겼다는 기쁨에, 매일 밤, 매날 낮, 매일 아침, 매일 저녁 강아지를 안고 킁킁 냄새도 맞고 발도 만지고 발바닥을 꾹 눌러 발톱도 만지고 그랬죠. 그러나,
그러니까,
정말 왜인지는 알 수 없죠.
이상하게,
나의 강아지는 철창안의 까만 강아지가 아니었어요. 항상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고, 항상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덤벙거리면서 집 안, 내 방안, 마당, 온 구석을 휩쓸고 다녔죠.
목줄이 필요했을까요?
그래서 목줄을 매었어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시기라 내가 쓰던 이불도 넣었구요.
그래도 까만 강아지는 까만 강아지가 아니더군요.
그때부터 나는 화가 났죠. 왜!
너는 왜!
처음엔 회초리로 때렸죠.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맞으면 아프긴 아픈가봐요. 가느다란 나무가지로 살이 많은 엉덩이부터 찰싹 찰싹 때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소심해서 피가 나거나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때리진 않았어요. 그리고, 때릴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간혹 까만 털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라도 하면 무서웠거든요. 한 번은 거의 물릴 뻔 했어요.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죠. 그래서 관심을 껐죠. 강아지를 세상에서 배제 시켰어요.
아주 작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게, 혹여 발버둥 치지 못하게 네 발을 꽁꽁 묶어서, 까만 강아지가 들어갈 만한 작은 통에 담아 가뒀죠.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옥상에 뒀어요. 그냥 뒀어요.
부모님이 찾아도 알려주지 않았죠. 강아지는 옥상에서 서서히 시간과 함께 잊혀질 거에요. 나는 가끔, 옥상에 올라가 강아지가 담긴 통을 열고,
아주 활기차게 인사했어요.
안녕?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처량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지만, 단 한 번도 짓지 않았아요. 그건 철창 안의 까만 강아지랑 똑같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어쩌긴 뭘 어째요.
굶어 죽었지.
첫번째 밤, 아직 풍화되지 못한 시간이 스스로 문을 열고 침대에서 고통을 구체화시켰다. 네 발이 묶인 강아지는 심하게 짓었고, 부패된 얼굴에선 살점이 바스러져 떨어져 나왔다.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시작한 관계였다. 무언가를 소유하길 갈망하는 그녀와 끊임없이 욕구하는 나의 관계는 얼핏. 최상의 관계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갈망과 욕구의 비슷한 지점들이, 아주 조금씩, 서서히 관계를 어긋나게 했다.
크게 어긋나지도 않았고, 아주 작은 지점에서 사소한 다툼, 혹은 불만이 있었다. 욕구하는 나는, 사소한 부분은 내 욕구속에 묻어버렸지만, 갈망하는 그녀는 완벽한 소유를 위해 미세하고, 작은, 감정과 심리의 변화로 지속적인 관계의 저변에 선을 그었다.
또한, 불분명한 관계 속에 주도권과 결정권의 갈등은 서로의 몸을 섞는 순간에도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모니터의 불량화소 같은 틀어짐이 지속되자 그녀는 말없이 종언을 선고했고, 그녀의 결정에 나는 반박하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욕구한 만큼 소비된 감정에 대한 복구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해서, 순식간에 불타올랐던 나의 욕구는 그녀의 갈망, 침묵 앞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깜빡이는 메모장의 커서처럼 두근,
혹은 깜박.
소리를 치고 싶은 욕구를 감추는 첫번째 밤이 찾아왔다.
(1) 첫번째 밤 - 풍화되지 못한 시간의 찌거기
옛날 이야기 좋아하세요? 별로 관심없으셔도 들으세요.
까만 털이 인상적인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어요. 그 강아지는 자기가 고양이 인줄 알았죠. 아니, 그 반대였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건 자신의 신분을 모르는 한 개새끼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아, 고양이 새끼일 수도 있죠. 앞서 말했지만 중요한건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본질이니까요.
여하튼
까만 털이 인상적인 강아지는 항상 묶여있어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체구가 작아서 태어난지 한 두해 된 어린 강아지로 보이기도 했지만, 강아지를 묶고 있는 목줄이나 잘 정돈된 털이나 눈의 깊이는 꽤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이사한 지 얼마 안되는 터라, 마을의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나오는 만화책 방, 그 앞에 파란 대문, 철창이 듬성듬성 쳐져있는 그 사이로 항상 그 강아지가 보였어요. 도로 변이라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대도 짓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으니 집을 지키는 능력은 꽝이었죠. 순하다면 순한거고 멍청하다면 멍청한 그런 강아지였죠. 제겐 낯선 거리,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그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평소에 개를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히 동물을 사랑하거나 하는 그런 감정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철창 사이로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마음에 들었고 정돈된 털과 귀찮은 듯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죠. 저는 그 강아지를 갖고 싶었어요.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원하니. 까만 강아지가 생겼어요. 물론, 부모님께 졸라서 최대한 비슷한 종의 강아지를 들여왔죠. 나는 파란 대문, 철창 안의 강아지를 기대했고 강아지의 생김새는 완벽했죠. 잘 정돈된 까만 털, 사실 철창 안으로 힐끔 힐끔 본 것이 전부라 그냥 까만 강아지면 어떤 거라도 상관이 없었었을 거에요. 처음에는 내 강아지가 생겼다는 기쁨에, 매일 밤, 매날 낮, 매일 아침, 매일 저녁 강아지를 안고 킁킁 냄새도 맞고 발도 만지고 발바닥을 꾹 눌러 발톱도 만지고 그랬죠. 그러나,
그러니까,
정말 왜인지는 알 수 없죠.
이상하게,
나의 강아지는 철창안의 까만 강아지가 아니었어요. 항상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고, 항상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덤벙거리면서 집 안, 내 방안, 마당, 온 구석을 휩쓸고 다녔죠.
목줄이 필요했을까요?
그래서 목줄을 매었어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시기라 내가 쓰던 이불도 넣었구요.
그래도 까만 강아지는 까만 강아지가 아니더군요.
그때부터 나는 화가 났죠. 왜!
너는 왜!
처음엔 회초리로 때렸죠.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맞으면 아프긴 아픈가봐요. 가느다란 나무가지로 살이 많은 엉덩이부터 찰싹 찰싹 때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소심해서 피가 나거나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때리진 않았어요. 그리고, 때릴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간혹 까만 털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라도 하면 무서웠거든요. 한 번은 거의 물릴 뻔 했어요.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죠. 그래서 관심을 껐죠. 강아지를 세상에서 배제 시켰어요.
아주 작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게, 혹여 발버둥 치지 못하게 네 발을 꽁꽁 묶어서, 까만 강아지가 들어갈 만한 작은 통에 담아 가뒀죠.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옥상에 뒀어요. 그냥 뒀어요.
부모님이 찾아도 알려주지 않았죠. 강아지는 옥상에서 서서히 시간과 함께 잊혀질 거에요. 나는 가끔, 옥상에 올라가 강아지가 담긴 통을 열고,
아주 활기차게 인사했어요.
안녕?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처량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지만, 단 한 번도 짓지 않았아요. 그건 철창 안의 까만 강아지랑 똑같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어쩌긴 뭘 어째요.
굶어 죽었지.
첫번째 밤, 아직 풍화되지 못한 시간이 스스로 문을 열고 침대에서 고통을 구체화시켰다. 네 발이 묶인 강아지는 심하게 짓었고, 부패된 얼굴에선 살점이 바스러져 떨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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