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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해치우다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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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46회 작성일 20-01-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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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해치우다아무렇지 않게 tv를 끄고, ps3에서 dvd를 꺼냈다. 궁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두 여자에게, 우선 테리우스를 소개했다.



"여긴, 테리우스 작가."

"이진명입니다. 테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런데, 누구야?"

"여긴, 우리 옆집 딸래미 임미연, 그리고 여긴 그 친구, 한정연."

"아까, 그 이야기는 뭐야? 형, 저 어린 아가씨랑 사귀는 거야?"

"아니. 어제 좋아하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도 양심이 있지. 너무 어리잖아."

"아저씨. 그런데, 유민영이랑 아는 사이에요? 요새 엄청 인기 많은데?"



테리우스가 뭔가 가볍게 입을 놀리려고 해서 일단, 내가 치고 들어갔다.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예전에 연예인이 아닐 때 잠깐 만났었는데, 뭐, 그 정도. 지금은 당연히 연락처도 모르고."

"그런데, 저런 비디오 있는 거 알면, 난리나는 거 아니야? 혹시 유민영 쪽에서 아저씨 찾으러 다니는 거 아니에요?"

"모르긴해도 그런 일은 없을 걸. 내가 저런 걸 인터넷에 공개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걸 민영이도 알테니까. 이건, 저 녀석이 반가운 기분이 가져온 거고. 저 장면이 나오기 전까진 그냥 즐거운 추억이었으니까."

"형, 핫델리라고 카레 전문점 내가 잘 아는 데가 있거든. 내일 거기 가자. 갑자기 카레 땡기네."

"내일은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작가미팅도 있고, 저녁도 아마 작가들이랑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누구랑?"

"선태 형이랑. 너도 끼던지."

"아니. 그 형은 나한테 너무 뭐라고 하니까. 자기가 선생님도 아니면서 계속 남을 가르치려 드니까. 몇 시에 끝나는데, 어차피 토요일은 출근 안하잖아. 그럼 내일 밤에 만나서 이박 삼일로 어디 갈까? 가을 바다 좋잖아. 속초에 우리 별장도 있는데, 거기 갈까?"

"너랑 둘이서 무슨 재미로?"

"이박 삼일동안 작품 준비를 해야지. 회의 겸해서 가자는 거야. 경포대 같은 데 가서 여자야 꼬시면 되지. 형이 또 그런데는 전문가 이상이잖아. 그냥 분위기 잡고 해변같은데서 책만 읽고 있어도 여자들이 달라붙잖아."

"됐다. 회의는 하자. 내일 일단 보고를 해서 결재가 떨어지면, 만나서 이야기나 짜자. 대충 생각해 놓은 거 있냐?"

"퓨전물을 해보려고. 현대물을 할까 하다가 역시 현대물은 제약이 많아서. 판타지는 지역이름이라던가 막 그냥 지어내면 되니까."



누가 어깨를 톡톡쳐서 봤더니 눈을 반짝이는 미연이가 있었다.



"아저씨. 간다는 거기 우리도 따라가면 안돼요? 어디 시원한 데 가보고 싶었거든요. 갈게요. 갈게요. 예"

"됐다. 형님한테 뭐라고 하고 가냐? 안그래도 자기 딸래미 누가 훔쳐갈까 신경이 곤두서 계시는데."

"아냐. 아빠야 내가 이야기 하면 되고, 엄마가 문제긴 한데. 아저씨랑 같이 가는데, 무슨 오해야 하려고요. 정연이도 같이 가는 건데. 내가 밥도 해줄게요. 가고 싶단 말이에요. 이웃끼리 이럴 수 있어요. 거기 작가님. 여행에 이쁜 여대생 두 명 껴주는 건 어때요?"

"나야. 언제나 환영이죠. 형, 그냥 데려가자. 저렇게 가고 싶어하는데. 둘보다는 넷이 재미있짆아."

"안 돼. 내가 널 모르냐. 니가 그냥 넘어갈 놈도 아니고. 괜히 아가씨들 혼삿길 망친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형, 그럼 나 간다. 정연이는 집이 어디야. 이 근처? 멀면 내가 태워다 줄게."

"예. 오빠."



아이돌을 보는 것 같은 사생팬 같은 얼굴로 테리우스의 뒤를 따르는 정연이를 보면서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난 미연이에게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말을 슬쩍 흘렸는데, 미연이는 어리고 젊을 때 즐기지 않으면 언제 그렇게 하냐는 말로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아는 눈치의 발언을 했다. 세 사람이 모두 나가고 난 테리우스가 가져온 dvd를 처음부터 한 장면 한 장면을 눈에 새기면서 봤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술집에 다니는 여자였지만, 착했고, 순진했고, 부끄러움이 많았다. tv화면을 보면서, 사라 이후에 누구도 사귀지 않고 이년의 시간을 보낸 것을 알게 됐다. 많이 좋아했었는데.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선량한 눈매에 언제나 바른 말투, 거기에 부끄러움이 많으면서도 늘 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했던 마음까지. 진짜로 좋은 여자였다.



늦게까지 dvd를 보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왔다. 테리우스였다.



"형, 이 여자애는 형수감이 아닌 듯. 탈락"



첨부된 사진은 정연가 씻고 있는 뒷 모습이었다. 나간지 한시간 반 정도였는데, 어젠 나와, 오늘은 테리우스와... 그런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무거운 마음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난 진짜 너무 생각이 많다. 좀 덜 예민해도 되는데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대신 선식을 데운 우유에 타서 먹고, 어제 테리우스가 가져다 준 배를 반개 깎아 먹었다. 진짜로 맛있었다. 언젠가 추석 전에 출하되는 배들은 모두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쓰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는데, 비싼 것을 좀처럼 먹어보지 못한 저렴한 입맛이라 그런지 몰라도 진짜로 맛있었다. 굉장히 큰 배의 반을 먹었기 때문에 속이 든든했다. 회사에 출근했더니,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렸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들어가자 나를 보며 수근거렸다. 기획부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경희씨가 나를 보며 반색하며 뛰어나왔다.



"선배님. 어제 토크쇼 보셨어요?"

"무슨 토크쇼? 어제 테리우스 와서 같이 있었는데. tv는 안봤어요. 다들 수근거리던데 무슨 일이에요?"

"어제 유민영이 나왔거든요. 애정의 계약에 승주로 나오는. 선배님이 만나셨다는 그 연예인이요."

"그런데요?"

"어제 선배님 책을 들고 나왔어요. 자기 첫사랑이 쓴 책이라고요. 난리에요. 영업부로 총판에서 계속 연락온대요. 이사님은 지금 인쇄소 가셨어요. 2만부 찍을 거라던데요. 사장님도 지금 들어오신대고요."



제일 처음 출판을 했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난 아이돌 가수들이나, 스타들에게 닥치는대로 소설을 보내곤 했었었다. 방송을 타야 메가 히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일단은 내 글에 힘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히트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기획을 하는 일보다는 글을 쓰는 크리에이티브한 쪽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원하지 않았었다. 그나저나 민영이는 무슨 생각으로 내 책을 소개한 걸까? 첫사랑이 나라고 밝혔으면, 나를 어떻게 만났을 지도 분명히 물어볼텐데. 나는 무슨 식으로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첫 통화는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이경민 작가님이세요? 레이디중앙 김소희 기자입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신지요?"

"아니요. 지금은 근무중이라서요. 괜찮은 시간을 알려주시면,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전 언제든 괜찮으니까요. 근일 내로 연락을 좀 주세요. 어제 방송은 보셨나요?"

"아뇨.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다른 전화가 오네요. 제가 주말 안으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기자들의 전화가 계속 쭉 이어지더니, 동생에게 전화가 오고, 엄마에게 전화가 오더니. 곧,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와 문자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일이 되지 않아, 전화를 꺼두었는데, 전화기를 끄자마자 이번에는 사장님부터 이사님들까지 쭉 날 찾았다. 사장님은 물이 들어올 때 배를 저어야 한다면서, 신작 이야기를 꺼내셨고, 이사님은 재판을 하는 것이니만큼, 원래 계약이었던 인세 9퍼센트가 아니라 10프로를 맞춰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하셨고, 작가 미팅을 하는 내내 화제는 유민영과 나의 관계였다. 작가와 점심을 먹으려고 나가려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직장인 타입의 사람이 찾아와 면회를 청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그 사람은 민영이가 소속된 기획사 대표였다.



"괜찮으시면, 점심을 같이 하시죠. 서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그러시죠."



사정을 설명하고, 밖으로 나와서 근처 부대찌개집으로 향했다. 의외로 화가 나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어제 그 일이 일어나고 나서, 아침까지 경민씨 프로필에 대해서 조사를 좀 했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친구들이 좀 있어서요. 괜찮은 분이시더군요. 어제 일은 저희로서도 갑작스런 일이었어요. 그냥 녹화 잘하고 왔다 해서 그런 줄만 알고 있었거든요."

"민영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성인인데, 연애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 있나요. 그것도 이미 지난 첫사랑인데요. 그래도 회사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터뜨리는 것 잘못한 거다 이야기하고 근신중이에요."

"제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여기 제가 스토리를 좀 만들어 왔습니다. 이대로 대답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아, 그리고 인터뷰같은 건 좀 고사해 주셨으면 하구요."

"네. 그러죠. 그 편이 좋겠어요. 이건 뭔가요?"

"500만원입니다. 그냥 받아두십시오. 원치 않은 일에 휘말린 댓가라고 생각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돈을 주고 받는 것은 서로간에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부정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어려운 결심을 하고 주는 돈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선뜻 내가 돈을 받자, 사장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비릿하게 웃었다.



"혹시, 급전이 필요하거나 하면, 제게 연락을 하세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이자로 서비스 해드릴테니까요."

"네. 그러죠. 민영이 잘 부탁합니다."



외모는 직장인 같았지만, 가슴팍이나 등짝에 문신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저 사람 역시 민영이가 예전 룸싸롱에 나갔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서로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뉘앙스 내내 난 그에게서 폭력의 향기를 느꼈던 것이다. 될 사람은 되고, 안될 놈은 언제든 안되는 게 인생이라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500만원이라는 돈은 아마도 민영이에게 접근을 하지 않는 것과 민영이의 과거에 대해 함구하는 조건으로 주는 돈이었다. 무척 좋은 여자였는데, 진짜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제 영상을 보는 내내 했었는데, 혹시 나로인해서 고초를 당하지 않을까가 걱정이었다.



난 나가자마자 전화기를 새로 사서, 전화번호를 바꿨다. 중요한 사람들에겐 따로 연락을 해서 번호를 알려줄 것이고, 외부와의 연결통로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나마 내가 좋아했었던 여자에게, 나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의 같았다.



출판사는 축제 분위기였다. 장르출판서적이 이렇게까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다 마이너한 감성을 주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씩 무협작가의 롤이 있지만, 대부분 그들은 가난하고 괴팍한데다, 알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전업작가로 책만 써서 살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대부분 다른 직업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꽤 고학력자들도 많았다. 여하튼 내 책 다정검객은 2만부로 증판되어 내달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 댓가로 난 한 번에 꽤나 많은 돈을 받게 되었지만, 기쁘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오래 가지 않을 물거품같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기도 가십도 어차피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소란스러운 것도 싫고, 부산스러운 것도 싫어서 난 팀장에게 휴가를 청했다. 어차피 여름휴가도 쓰지 않았으니까 연가도 충분했다. 난 내가 맡고 있는 작가들의 스케줄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휴가를 얻었다. 어차피 전화로 닥달을 하면 되는 일이라, 난 그러마 하고서는 오일의 휴가를 얻었다. 양쪽 주말을 끼면 열흘가까이나 휴가를 쓸 수 있어서, 여유가 생겼다. 500만원도 생겼고, 진짜로 좀 멀리가서 혼자서 있고 싶기도 했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수원의 동생네로 향했다. 외삼촌을 엄청 좋아하는 소윤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삼촌을 부르며 뛰어왔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거렸다. 난 소윤이와 소윤이 친구들 모두를 데리고 근처의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며 감자튀김이며 치킨 같은 것들을 잔뜩 사먹였고, 소윤이와 함께 동생네 아파트에 가서 뽀로로를 보면서, 동생과 김서방을 기다렸다. 여덟시가 넘어서야 동생은 퇴근했는데, 무척 지친 얼굴이었다. 난 준비해간 봉투에 담아간 백만원 권 수표 한장을 내밀었고, 정말로 오랜만에 오빠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은 갑자기 불거진 나와 연예인과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 했는데, 난 그냥 예전에 알던 애였는데, 2년이나 지나서 연예인이 될 줄은 몰랐다는 말로 얼버무렸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온 김서방과 함께 근처의 소주방으로 향했다. 술을 한 잔 하면서 난 동생이 지쳐보인다면서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두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했고, 김서방은 자기의 능력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내내 내 눈치를 보면서 유민영에 대한 것을 물었다. 별로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서 난 동새을 잘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나와서 동생네서 자지 않고, 근처의 모텔에 투숙했다. 물론, 김서방에게는 근처의 작가와 만난다는 핑계를 댄 후였다.



수원역 근처의 모텔은 무척 노골적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숙박할 것인지를 물은 다음, 아가씨를 넣어줄까를 물었다. 중국인 러시아인 모두 있다면서 외국 백마를 한 번 먹어봐야 한다는 아줌마의 말에 지금은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한 잠을 잔다음에 새벽에도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그 건 그 때가봐야 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아예 긴밤을 끊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럴 생각까지는 없다고 말한 후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몹시 피곤하거나 섹스를 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이런 상황이 아니면 쉽게 잠을 자지 못하는 내가 좀 이상했다. 정말 신경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술이 적당히 들어간 후여서 평소보다 깊이 잠이 들었다.



깼더니 2시가 좀 못된 시간이었다. 전화기를 켜봤는데, 오늘 등록을 했는데도, 스팸이 몇 개 들어와 있었다. 일일이 모두 스팸등록을 한 뒤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했다. 다시 잠을 잘까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하고 웅크려 있어야 하는 지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래, 그래 이건 별다른 일이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첫사랑과의 조우, 아니 만나지 않을 거니까 이건 아무 일도 아니다.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수원에 와서 수원갈비도 못 먹은 내가 좀 바보같이 느껴졌다. 새벽 두시에 뭘 먹으러 가긴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먹고 싶었다. 이럴 땐, 장르소설 기획자라는 게 좋게 느껴진다. 내 핸드폰의 목록에는 이 시간에 연락을 해도 받을 만한 사람이 서른 명도 넘게 있었으니까.



전화기를 뒤적거리다가 역시, 어제 일도 있고해서 테리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진명입니다."

"아, 테리, 나 경민이형."

"어디야? 휴가내고 내뺐다면서? 전화번호도 바꾸고, 나한테는 연락을 했어야지. 난 별장에 연락하고, 애들이랑 준비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고 지금 술푸고 있단 말이야. 어디야?"

"동생이랑 조카보러 잠깐 왔지. 너야말로 어디냐? 애들 같이 있는 건 아니지?"

"그 형네 옆집 사는 애는 들어가고, 정연이는 옆에 있지. 여긴, 우리 집이고. 형 동생네면 지방이야?"

"아니, 수원. 수원역 근처의 모텔에 있다. 술먹다가 피곤해서 잠깐 자러 들어왔거든."

"모텔은 왜?"

"동생네 아파트가 작아서, 손님방이 따로 없거든. 안방이랑 꼬맹이 방 밖에 없어서 내가 가서 잘 때마다 나랑 김서방이랑 자고, 동생이랑 조카랑 자고 그렇거든. 좀 그렇잖냐. 그래서 작가랑 미팅있다고 하고, 모텔 들어왔지. 잠도 푹 자고 싶고 해서."

"형, 잠깐만 기다려. 아니다. 형이 여기로 와라. 나 술을 좀 먹어서 움직이기 그렇다. 형이 와서 정연이 좀 데려가. 여기서 재울 수는 없잖아. 집에 보내야지."

"어제 잤을 거 아니야? 하루 데리고 자. 내일 보내면 되지."

"아니. 안 돼. 집에서 나 여자 문제로 사고치는 거 더는 못보겠대. 아침마다 우리집 아줌마가 내 아파트 치우러 오거든. 그런데, 여자 있으면 바로 직보야 직보. 그리고 어제도 안 잤어. 형 손탄 여자라는데 괜히 미안해져서. 어쨌거나 와."



동생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서, 역삼동에 있는 테리우스의 집으로 향하면서, 나도 참 내 편한대로 사는 녀석이구나라는 걸 거듭 생각했다. 어제 반강제적이지만 약속을 했으면, 일단 연락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난 내 생각에 빠져서 테리우스나 미연이 정연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은 역시 혼자라는 것과, 멀리 있는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는 당위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테리우스의 어제 자지 않았다는 말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여자가 그러고 있는데, 이미 다 벗겨놓고 안 먹어 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더구나, 정연이는 기회를 놓칠 아이가 아니다. 대단히 능숙했던 며칠 전의 정연이와의 하다만 섹스가 생각이 났다.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다가, 테리우스가 자기 집에서 장치를 조작해서 문을 열어줘서야 입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이미 많이 취한 테리우스가 문을 열어줬다.



"왜 이렇게 늦었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네. 형, 휴가라며, 내가 짐도 준비 다 해 놨으니까, 내일 진짜 속초에 가자. 준비도 다 해놨어. 진짜야. 준비도 다 해놨다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을 봐서는 진짜로 많이 취한 것처럼 보였다. 테리우스를 떠메고 들어갔는데, 나보다 키가 커서 자세가 어색했다. 거실에는 정연이가 테리우스보다 더 취한 꼴로 널부러져 있었는데, 옷의 상태를 보기만해도 방금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하얀 치마에 상의는 벗어놓고 있었는데, 브레지어 한 쪽이 내려가서 한 쪽 가슴이 보였는데, 젖꼭지가 침으로 번들거렸다. 침대에 테리우스를 떼려넣고, 나와서 술병이 가득한 테이블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입히려고 들어서 소파에 앉히는데, 벌어진 다리 사이로 예의 깨끗한 보지가 보였는데, 그 사이로 하얀 정액이타고 흘러서 허벅지에 말라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한번 잤던 여자지만, 보기가 싫었다. 티셔츠를 찾아 입히고, 팬티를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봤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가 그냥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선, 업고 내려가려다가 그러다간 뒤에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옆에서 부축을 하고 내려가는데, tv옆쪽에 디지털 캠코더가 보였다. 테리우스 이자식이. 뭘 찍었는지 몰랐지만, 혹시나 몰라서, 일단 캠코더를 가방채로 챙겼다. 정연인 완전히 정신을 잃어서 인사불성이었다. 정연이 집으로 가도 비밀번호도 모르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저번에 썼던 라꾸라꾸 침대에 정연이를 눕혀놓고 캠코더를 tv에 연결해서 틀어봤다.



한동안은 그냥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스킵을 하다가, 내 이름이 나와서 소리를 키우고 들었다. 무슨 진실게임을 하는 듯 했다. 질문은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았고, 미연이가 내 이름을 말했다.



"아저씨 좋아했지. 되게 오래 전부터 좋아했어. 고등학교 때부턴가. 처음부터 좋았거든. 나랑 별로 친한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뭘 해달라고 하면 늘 해줬거든. 구박하고, 말도 막하고, 그래도 늘 해줬거든. 그리고 아저씨 서재에는 진짜 책이 많은데, 그걸 모두 읽었다는 것도 좀 다르게 보이고. 여자도 별로 안좋아하고. 그래서 이번에 유혹을 해보려고 했거든. 다른 건 몰라도 처음은 아저씨에게 주고 싶어서. 그런데, 술취한 나두고 그냥 나가더라. 여자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는데도 모르더라. 난 아침에라도 볼까 해서 옷을 다 벗고 있었거든. 그런데, 엄마가 들어오더라.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봐. 내 생각 같은 건 다 알고 있어서."

"그렇지? 그런데 좀 소심한 것 같아. 선배 때문에 망치긴 했어도, 그래도 난 다시 잘 생각을 했었거든. 그런데, 딱잘라서 그냥 거절하고 집에 가더라. 이상했어. 어제 나 대하는 태도는 짜증이 났어. 원래 남자들 다 그런 거에요?"

"형이 좀 그렇지. 그냥 포기한 걸거야. 그래도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미연이 도와줄게. 형도 남자고 자지가 있는데. 기회가 생기면 포기하겠어."

"아휴. 야해. 그런 이야기 좀 하지마요."

"아. 자지 때문에? 그럼 자지를 자지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 기분도 그런데, 옷벗기 고스톱이나 칠까?"

"아니. 난 그만 들어갈래요. 저번에 그 꼴 엄마에게 들키고 나서 조심하고 있거든. 남자 방에서 빨개벗고 있었으니까. 나도 할 말도 없고."

"아, 보고 싶은데."

"내꺼봐요. 내꺼."



이미 잔뜩 취한 정연이가 티셔츠를 풀럭거리면서 자기 가슴을 보여주는 게 찍혀 있었다. 미연이가 앵글에서 사라지고 나서 둘은 술을 계속 마시더니, 테리우스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나랑 통화하는 거였다. 통화를 마친 후, 정연이가 테리우스에게 물었다.



"누구에요? 경민 오빠?"

"응. 온대."

"어디 있었대요? 그 연예인이랑 있었나?"

"아니. 동생네에 갔었다는데, 수원에 있는."

"왜 다들 나를 무시해요? 내가 안 예뻐요? 어제 왜 나 찼어요?"

"난 아무나랑 자는 놈이지만, 어젠 그럴 수가 없었어. 형수감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니가 나를 너무 쉽게 따라오고 금방 씻고 그러니까 내가 미친 놈 같더라. 원래 내가 미친 놈이긴 한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젠 아니라는 거 알았으니까 나랑 자요. 나 남자가 필요해요. 혼자선 너무 외롭거든."

"하긴, 나도 쓸쓸하긴 하더라. 사라, 진짜 좋아했었거든. 너무 좋아해서 자지도 않았었다. 술집 여자애랑 이차를 나갔는데 마음이 떨려서 건드리질 못했어. 그런데, 그 사라가 형을 좋아하더라. 형은 또 나때문에 그 여자랑 헤어지고. 이게 뭐냐?"

"경민 오빠도 오빠 여자를 뺏어갔으니까, 오빠도 나랑 자요. 나 어제그제 경민오빠랑 잤거든. 그러니까 나랑 자자구요. 씨발, 진짜 눈물나. 내가 여기 있다고. 왜 다들 그 여자만 보는건데. 그렇게 멍한 눈으로."



술에 취해 울던 정연이는 갑자기 테리우스에게 달려들어서 테리우스의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벗기고,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구역질을 하는 것처럼 힘들게 우욱우욱 하면서도 내내 자지를 입에 넣는 정연이가 안되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섹스를 했고, 내내 욕을 하면서 절정의 순간에 테리우스는 사라의 이름을, 정연이는 내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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