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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해치우다 -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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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191회 작성일 20-01-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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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해치우다이창동 선생이라.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안의 어떤 것이 깨어났다. 난 재빨리 타일을 주워, 구멍을 다시 막았다. 침대에 드러누워 이창동 선생을 기억했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로 부임한 지구과학 선생이었다. 키가 아주 컸는데, 거의 190센치미터가 되는 키에 몸무게가 70킬로 그램이 나가지 않는 아주 마른 몸매의 그를 우리는 소금쟁이라고 불렀었다. 이창동 선생이라.. 그래, 내가 그를 죽인거나 마찬가지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잊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난 선생님 복이 없었다. 스승이라 부르고 싶은 사람을 평생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세상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도 생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존경심이 생기질 않았다. 난 경제활동을 엄청나게 빨리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질을 생활의 방편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생과 제자라는 관계보다 어차피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같은 돈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먼저 들었었다.



기본적으로 선생님과 동격이라는 생각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어서, 난 언제나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질책의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난 기본적으로 성실한 학생이어서 그런 일 자체가 드물기도 했다. 이창동 선생과 내가 부딪친 것은 그 부분이었다.



이창동 선생은 신임교사였고, 큰 키에 비해 체력이 약했고, 거기다 목소리도 높게 갈라지는 편이어서 곧바로 아이들의 무시를 받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알아버리지만, 고등학교 아이들이 잔인한 건, 그런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창동 선생은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했지만, 자신보다 힘이 센 남자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절치부심하던 그가 처음 내놓은 방법은 자기의 파당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키는 컸지만, 얼굴이 잘생기지 않았던 그는 학교 유일의 총각선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에게조차 인기가 없었다. 이도저도 안되자 그는 자신의 취미였던 바둑의 취미를 살려서 바둑부의 고문을 맡으려고까지 하지만, 바둑부 아이들의 거부까지 당하고 나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애들 사이에 공공연히 언제 학교를 그만두나를 내기가 돌 무렵, 그와 내가 처음으로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쩌면 그는 만만해보이는 사람 하나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난 상습정체구간이었던 집 앞에서 컵라면과 커피를 팔았었다. 그 때 당시 500원 하던 육개장 사발면을 천원에, 커피를 한잔에 오백원에 팔았는데, 난 입담이 좋은 편이어서, 일부러 내가 장사하는 시간에 컵라면을 사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돈을 모은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먹는 장사를 했다. 학교 앞에 점포를 얻어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해서 닭염통꼬치와 떡꼬치를 팔았던 것이다. 인기가 꽤 좋아서 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이창동 선생이 발견한 것은 내가 하루 장사를 마친 아주머니와 그날의 매상을 계산하고 아주머니에게 일당을 주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었다. 선생이 나를 불렀다.



"어이, 거기 너, 이름이 뭐지?"

"2학년 이경민입니다."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

"여기가 제 가게라서요.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해서 제가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인사하시죠. 저희 지구과학 선생님이세요."

"아이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별 탈이 없이 넘어갈 것 같던, 이창동 선생은 다음날 바로 내 문제를 학교에 고발했다. 학생이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해도 되는 건가를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불려가서 그 문제로 질책을 들은, 난 자존심이 상했다. 지가 뭔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솔직히, 그 때 난 어렸었다. 내가 한 행동은 바로 가게를 접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가게에 써서 붙였다.



"오늘부로 가게를 접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창동 선생님이 가게를 하지 말라네요. 선배님들과 동기들, 후배들에게 맛있고 안전하면서도 싼 간식을 주고 싶어서 가게를 시작했는데, 죄송합니다. 일년 단위로 계약한 가게라서 저도 손해가 많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시던 아주머니도 졸지에 직업을 잃었습니다. 아주머니 수입으로 살던 일곱살 미진이에게도 미안합니다."



내 사과문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난 아줌마를 시켜 아이와 함께 학교 교무실을 찾기도 해서, 학교는 내내 내 장사가 옳은가 그른가를 가지고 시끄러웠다. 그 가운데서 난, 스스로의 힘으로 가게를 계약하고, 어른을 고용해 장사를 하는 수완가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질투해서 어린 아이의 눈물을 흘리게 한 찌질이로 포장되어 학교안에서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생각하면 별 일이 아니었다. 난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그다지 공부에 큰 관심도 없었다. 책을 좋아해서 늘 책을 읽었는데, 지구과학 시간에 소설책을 읽다 걸려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동시에 다른 여학생 하나도 다른 공부를 하다가 걸렸는데, 그야말로 이창동 선생이 폭발했다. 나와 그 여학생은 뺨을 맞고 걷어차였으며, 마대자루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맞았고, 광분한 이창동 선생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워낙 기세가 흉흉해서 누구도 선생님을 말리지 못했다. 폭행이 끝이 난 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어서였고, 쉬는 시간의 종이 울려도 계속되던 폭력을 말린 건 소동에 놀란 옆반에서 수업을 마친 다른 선생님 한 분이 오고나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폭행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여학생을 그렇게까지 무참히 때린 것은 의외였지만, 남자들은 수업시간에 맞는 것 정도는 여사로 여길 일이었다. 하지만, 난 특별한 학생이었다. 내가 상해 진단서를 끊고, 변호사를 만나는 것은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졌고, 내가 당시 다니고 있던 지역의 지방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를 만나려는 약속을 잡은 것이 알려지자, 학교 전체가 술렁였다.



이창동 선생은 사과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교장선생님까지 와서 내게 화해를 종용했기 때문에, 억지로 화해를 하긴 했지만, 난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난 그 복수의 모티브를 새의 선물이라는 은희경의 소설에서 찾았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었는데, 거기에는 주인공인 진희가 받은 연애편지가 궁금해서 푸세식 화장실에 빠지는 장군이란 의뭉스런 아이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난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창동 선생의 마음을 빼앗기로 마음먹었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가상의 어떤 여학생 하나를 만든다. 그 여학생으로 하여금 이창동 선생의 마음을 빼앗게 한다. 사랑에 빠진 이창동 선생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그 요구를 들어준 이창동 선생은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그리고 난 이창동 선생의 스토커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모든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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