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넘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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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855회 작성일 20-01-17 00:56본문
3부.....
안녕 들 하세요~~
실로 오래간만에 찾아오게 됐네요.
절 기억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넘 오래간만에 찾아오게 됐네요.
그동안 치료를 해야 했기에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였고, 아픔 이였어요.
이제는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한 상태고 아픔도 전보단 느끼지 못하고
이제야 사는것을 느낍니다.
다 사랑 하는가족과 남편 이 있기에 ....
여보~사랑 해요~~감사 해요.
전에 연재 되었던 39부2장으로 막을 내리고,변화의어둠속에..도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한 연재 할께요. 먼저.
당돌한 넘 으로 다시 찾아 올려구요
여러분들도 아실거지만, 글을 쓴다는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에여
워드에다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 하기를 수차례....
읽어 보고 또 보고 그러다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
생각해가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고문아닌 고문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힘든걸 왜 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셔요.
굳이 답을 한다면
내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좋아 하니까.라고 답을 하고 싶어요.
한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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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앞뒤가 않맞고 해도 이해해 주시고
그냥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글의 내용 및 지역 그리고 이름은 가명이며 허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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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처음 들어 가던날.
노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운동장에 줄서서선생님 훈시를 듣고
선생님 소개도 받고,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들...
‘나도 이제 학생이되는구나’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아는 칭구들....
동네서 같이 뒹굴고 뛰어 놀던 소꼽친구..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변에는 부모님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었고,우리들은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서
선생님 애기를 듣는지 마는지 웅성 대기에 바빴고,
한편으로는 어떤 친구들이 있나,여자애들은 어떤가 하고 주변을 두리번
하기에 여념이 없다.
전부다 코흘리게 인가 보다.
전부다 가슴에 노란 손수건을 (노란색인지는 기억이 않나..그냥 노란손수건으로적음)
내 가슴에도 달려 있지만 실제로 내코에서는 누런 코가 자주 나오곤 했었다.
반을 소개받고 담임 선생님을 소개 받고 교실로 줄을 서서 따라 들어 가서
처음 으로 교실에들어와 봤다.
시골 학교라 몇반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학년은 사람이 많아서 인지 52명이나 됐다.
키작은 순서 대로 1번부터 52번 까지.
지금은 어떻게 순서를 정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키순서대로 번호를 정해었다.
우리집은 가난하여 가방은 고사하고 노트며 연필도 다 형 누나가 쓰던것을
내가 쓰곤했다.
지금은 유치원에서 한글뿐만이 아니라영어도 다른것도 다 배워서 오지만 그때는
그저 뛰어 놀기바빳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첫수업.
한글을 깨우치냐고 다들 정신이 읍다.
난 이미 한글도 영어도 산수도 다 알아서 넘 따분하고 지루했다.
자연스럽게 여자애들한테 눈길이 가고,
반전체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을 한번씩 처다 보는데.
‘딱’
‘아....’
누군가 내 머리를 몽둥이로 가격하는순간 나도 모르게 아프다는 소리를 냈다
올려다 보니 선생님이 날 때린거다.
“왜 때려요”
“이넘이 하라는 한글 공부는 않하고 왜 두리번거려”
“선생님.”
“전 이거 다 읽을줄 알고 쓸줄도 알아여..”
선생님은 놀래서 정말인지 아닌지 앞으로 나가서 칠판에 글을 써보라 하신다.
순간 교실에서는 애들이 떠들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선생님이 불러주는것을 쓰라고 하는게 정말이지 우습기 까지 했다.
“기역 니은....”
“가 나 다 라...”
불러주는것을 받아서 쓰다가 “선생님.이런거 말고 다른거 불러주세요”
라고 말하자 교실에서는 함성이 들렸다.
‘우와..’
자리로 돌아 오는동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으쓱해지는데
선생님이 머리를 쓰담아주면서 “잘했어” 하신다.
그뒤로는 내가 반장도 아닌데 짱 노릇을 하게 됐다.
단지 내가 부러운게 있다면 다른 애들은 갖가지 색상의 필통에 연필 끝에 지우개가
달려있는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게 젤 부러웠다.
2학년이 되자 구구단이 시작됐다.
못 외우는 애들은 남아서 외우고 가고 등하교길에서도 외우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젤 좋은 시간은 체육시간이다.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 놀고 공차고 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아니 그런 일이 있고 난뒤로부터
내 인생에 변환점이 되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일생 일대에 큰 사건이 2학년 봄에 터졌다.
다름 아닌 도둑질..
말이 도둑질이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아주 나쁜짓이다.
알면서도 그리 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도 저애들 처럼 몽땅연필이 아닌
볼펜에 꼽아서 쓰는 연필이 아닌 새것으로 쓰고 싶었다.
하여 머리를 쓴것이 하나만 훔처서 쓰는 것이였는데...
체육시간에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교실로 와서 연필 하나를 가지고 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새것을 사용 하니 기분이 넘 좋고 최고였다.
헌데 이또한 쓰다보니 달아서 짧아지고....
꼬리가 길면 잡힌다 고 누가 했던가...
이러기를 몇 번(한 6번정도)정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종례 시간에 다른 날과 달리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선생님의 얼굴에도
화가 난 표정이였다.
선생님이 훈계를 시작하기 하면서
내용의 전말이 밝혀 지는데..
지금 자수 하면 없던일로 해주겠다고 신신 당부 하시는데
과연 누가 자수를 한단 말인가?
전체 눈감고 있으라고 해서 전부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무도 자수를 않한다.
심장 박동 소리가 엄청크게 들려 들킬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다.
교단앞에 이르자마자 엄청난 힘의 무게가 실은 손으로 나의 뺨을
스처 지나갔다.
‘짝’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가며 놀란두눈으로 선생님을 다시 처다보는 순간 다시한번
‘짝’
엄청 아팠다.
순간 아파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서러움에 가난함에 더 슬퍼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뒤로 엄청 나게 두들겨 맞고 또 맞았다.
집에 오는길 내내 쩔룩 거리며 집에 와서 엄청 울었다.
‘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절대 부모님 처럼 가난하게 안살거야’ 다짐 하고 또 다짐하면서
울었다.
울다 잠이들고....
애들이라 그런지 금방 잊어 먹은건지 아니면 내색을 않한건지는 모르지만,
나를 평상시 처럼 애들이 대해주고 같이 뛰어 놀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4학년.
나도 모르게 신장과 체중이 크게 불어나 전체순번중에 뒷자리까지 내려 갔었다.
그때 당시 동네 형들의 모습은 깡패모습을 하고 툭하면 옆 동네랑 붙어서 한바탕 하고
시내에 나가서도 엄청나게 싸움을 하곤 했었다.
필요 한게 있으면 집안에 있던 빈병..낮..비닐...호미..
돈이 되는것이라면 머든지 들고 가서
하드(아이스께끼)-(아시는분 계실런지)-(장사꾼이 오면 나가서 교환해서 사먹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건달형네에 가서 놀던중 우연히 빨간책(성인물-소설)을 보게 되었다.
조금 읽어 내려 가는데도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차 오르는것이 이상하게
심장 이 두근두근 거렸다.
밖에서 소리가 나서 얼른 책을 뱃속에 숨기고 집에 와서 마저 읽던중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 했다.
갑자기 물건이 엄청 커지면서 아프기 시작 하더니 그냥 있으면 않될것 같아
누워서 움직이기를 수차례
엄청난 폭풍후가 몰려온듯 밑에서는 무엇인가가 바닥을 적시고
숨을 헐떡 거렸다.
이것이 나의 첫 경험이자 첫 번째 사정 이였다.
이것이 무엇인지도 나는 동네 형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이리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흥분상태와 그 황홀한 기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흐뭇한...기분
수건을 가져다가 바닥에 묻어 잇는 나의 분신물을 닦고, 책을 덮었다.
이른 나이에 첫 사정.
그 후론 집에만 오면 누워서 물건을 다리쪽으로 내리고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는
버릇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을때면 그리 했었다.
그러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름 책이 보고 싶은데 ...
하는수 없이 동네 형들 한테 가서 책을 살돈을 빌려서 천안 시내로 가서
책을 파는곳을 알아봤다.
아마 하루종일 천안 시내을 찾았을거다.
그러던중 어느 길가에 중년노인네가 물건들과 책을 늘여 놓고 파는것이 눈에
띠었다.
이곳이 삼도상가.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이곳이 젤 번화가였다.
옆에 역전이 있었고,영화관에 별의별것들이 다 있었다.
책을 둘러 보던중 그 노인네가
“학생..어떤거 찾어?” 이런다.
난 말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이넘 이걸 찾는가보네...어린넘이..”
하면서 표지가 빨간 색으로 되어있고 여자그림이 잇는것을 보여주신다.
값을 지불하고 집에와서 책을 읽어 나가면서 또 사정을 해 댄다.
학교에가서 여자애들을 볼때마다 그책의 내용들이 한 대묶여 보이기 시작하고
이상하게만 생각이 들었다.
주말 저녁이면 어김 없이 동네 공터에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 했는데 항상
내가 먼저 시작 하고 거의다 내가 말을 하고 주동이 되어 있었다.
시골애들이라서 그런지 성에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아서 인지 아니면 다들 알고 싶어서인지
내말에 두눈과 두 귀를 귀울이면서 듣고 질문을 해곤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토대로 애기 해주고 성의 지식등을 알려주었다.
생식기.임신.애기가 태어나는 과정등...
그러던 어느날,
남자 애들만 모여서 놀고 있었던중 한형이 오줌을 시원하게 싸고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알고 싶어 옆에 가서 처다보니 머라 하면서 계속 오줌을 내깔린다.
그게 화근이 돼서인지 전부 모여서 서로 물건이 크다고 자랑을 하고 급기야는
집에서 자를 가지고 와서 제보기로 햇다.
당연이 내가 1등을 차지 했고 그때부터 형들로 부터도 인정 받아 모이면 내가선동이되었다
여자애들은 애기낳는것이 젤 궁금 한듯 자주 물어왔었고...
오줌 구멍과 애나오는곳이 다르다고 하고 애기 나올때 엄청난 고통과 피가 나온다고
엄포를 줘도 서로의 얼굴만 처다볼뿐 계속 내 애기를 듣곤 했다.
엄청난 사건이 내게 터졌다.
5학년인가6학년인가 기억이 가물 하지만.....
그때 금산에서 인삼으로 때돈을 벌어서 이곳에 엄청난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있었다.
온산을 불도저로 밀고 포크레인으로 하고(난생 처음 이런 기계들을 봤다)
높던 산들이 평평해지고 그 위에 엄청난 수박을 심으셨다.
주위에는 곳곳에 원두막이 자리잡고 잇었고,
그 수박밭에서(수확이 어느 정도 끝난후) 공을 차기고 하고 그랬으니...
어느날,
우리들은 소꿉놀이를 하던중 옆집에 사는 형이 부부놀이 하자고 재안하여 우리들은
짝은 정하고 부부행세를 하였다.
호칭도 자기,또는 여보 라고 부르면서...
그러다가 원두막에 올라가 수박으로 맛잇는 상을 차리게 되었고,
결국 잠자리 라는 것꺼지 가게 되었는데....
옆을 보니 정말 부부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정말로 할려고 하고잇는걸 보았다.
물론 정상체위지만 정말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던중 그 형이 “넌 안해?”
“어?...어..해야지”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선 여자애를 눕히고 큰 물건을 작은 그녀의
속으로 밀어 늘려고 하는데 이상 하게 안들어 간다.
여자애는 아프다고만 하고..
저쪽도 아프다고만 연신 소리 지르고 이 여자애도 아프다고만 하지 좋아 하지 않는다.
반정도뿐이 안들어 갔는데 여자애는 아퍼서 죽는다고 울어 버렸다.
어쩔수 없이 부부놀이는 그 울음에 그만 두고 각자 집에 왔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내 밑에 깔린 지지배가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어서 엄마가 물어봤더니 우리들이 했던 부부놀이를 전부다 말해버린것이다.
그 엄마는 몽둥이를 가지고 집에쫒아와서는 나를 엄청나게 그 몽둥이로
때렸다.
물론 옆집형도 마찬가지로 엄청 두들겨 맞았다.
창피해서 그형과 함께 마을을 도망처 시내로 들어갔다.
무일푼으로 나와서 그런지,엄청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성한데가 없고,
배도 고프고 춥기 까지 했다.
동네서 도망칠때는 우리들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고 쫒겨났었다.
다른 동네 마당에 널려있는 옷을 대충 주서 입고 시내로 들어 선 것이다.
지금 생각 하면 엄청난 짓인데....(구속감이다-아니 특종감이였을것이다)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간 시간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중학교에 들어 가게 되고
중학교 다니면서 내 인생의 반환점이 시작 되고,반항아가 되어 가고
건달의 길과 운동부로써의 두 길을 걷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니 한반만 있었던 국민학교(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않되는 엄청난 애들이
3반씩이나 있었다.
한반에 48명이나...
이쁜년들도 엄청 많앗고,남자애들도 쬐금한넘들과 덩치가 엄청큰 넘들 다 모엿다.
1학년1반 42번.(기억이 생생하다.)
남녀공학이라서 한반에 남녀가 같이 짝을 이루고 앉아 배웠다.
첫 번째 여자 짝꿍이 못 생겼다.
실망이다.
이름은 정다빈
1년전에서야 중학교 동창생들과 연락이 왔닿고 1년에 두 번씩
모임도 갖는다. 30여년이 흐른뒤 모습들이란 실로 엄청난 시간인가보다
다들 너무나 변해 있었다.
여자애들은 다 시집 가서 애낳고 살고 있고,
남자 애들은 성공한놈과 그렇지 못한넘으로 구분되어 잇었다.
아직 장가도 못간넘이 더러 있었다.(병신들이지...나이가 몇인데.아직이라니..)-낼모래면 50을 바라보는데.ㅋ.
애들도 많았지만 선생님들도 엄청많았다.
김정문
이문정
이정식.등등 (이글에 나오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다들 어찌나 예쁘던지 여선생만 보면 흥분이 되고 미칠것 같았다.
특이나 짧은 치마를 입었을때와 브라우스를 입고 있을땐 속옷이 안보이나 시선이 그곳으로
만 쏠리게 되고 공부는 뒷 전이였다.
다행이 내가 좋아 하던 선생은 내가 젤 자신 있어 하던 영어선생님.
국어.국사 선생님들이다.
치마를 입고 오면 남자애들이 거울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 햇고
몇 번 들켜서 혼난적도 있었다(다들 해봤을거라....ㅋ.)
알면서도 모르는척 질문을 하여 여선생이 오게 만들고 ,그러면 주변 남자애들이
볼펜,지우개,연필등을 떨어 트려 줍는척 하면서 치마속을 들여다 보고,
거울을 가지고 치마속을 훔처보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헛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선망의 대상 이였다.
반드시 잠자기전에 자위를 하는데 항상 선생님을 상대로 상상 하면서 자위를 하곤 했다.
그럭저럭 중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타동네 애들이 텃새를 부린다나머라나..하면서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고
암튼 주인 행세를 하는게 내 눈에 성가셔서 싸움을 하기 시작 했다.
악바리라면 첫째라도 서러울정도의 나이고, 운동도 동네 형들한테 틈틈이 배우고 익혀서
싸움은 자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을 하고 그것도 모잘라 선배들 까지 같이 싸움질에 껴들고
학교 가면 학생과 선생님 한테 맞기 일쑤였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서 무엇 보다 반가운것이 버스다.
독자님들은 왠버스? 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버스를 처음 타보고
안내양도 처음 보고 무지 신기하고 생소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게 있었다.
등교 하는 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콩나물 시루는 저리가라 였다.
어찌 다 버스안에 사람을 아니 학생들을 태우던지...
안내양은 뒤에서 표를 받으면서 엄청나게 밀어 제꼈다.
그덕분에 운이 좋으면 여자에 뒤에 바짝붙어있었고, 운이 안좋으면 납자넘뒤에 있기도
했었다.
나는 등교 할때 만원 버스에 탈때가 젤 좋았다.
그리고 시내에 갔다가 집에 오는길에도 넘 좋았다.
우리때는 교복을 입고있었다.
남자애들은검은색의 교복과 모자.
여자애들은 검은차마에다가 브라우스.
언뜻보면 다 똑같이 생긴것 처럼 보였다.
성욕이 왕성할때라인지 아니면 내가 밝인넘인지 모르지만,
여학생 뒤에 있으면 넘 행복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움직일때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도로는 거진다 비포장이라 덜컹덜컹데서 버스안은 항상 지옥이였다.
어느날은 모르는 여학생 뒤에 바짝 붙어서 가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넘이 서서히 발기를 시작 한다.
속으로 난처 했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고고 말을 못하는게 말을 하면
더 이상 할것 같아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이리치이고 저리치우치고 할뿐.
그런데 더 이상한것은 이 여자애가 분명 느꼈을 텐데 아무 반응이 없다.
한손은 가방을 잡고 다른 한손은 손잡이를 잡고 콩나물 같은 버스안에서
버티고 있는터라 그런지 반응이 없다.
내 물건은 커질데로 커저서 이젠 그녀의 엉덩이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젠 그것이 무엇인지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서 나를 처다 보지만
아무말도 않하고 인상만 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상황에서 소리친다거나 말을 하면 더 이상할것 같은지 아무말도 않하고
고개를 차창밖으로 돌렸다.
속으로 쾌재를 지르면서 나는 더더욱 허리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엉덩이계곡이 내 물에 춤을 추기시작햇고,
난 계속해서 위아래로 문지르기를 수차례
이러다 사정 할것 같아 그만 두고 대신 손으로 만저 보기로 했다.
손바닥으로 엉더이를 살살 문지르다가 살짝 잡아보기도 하고 허벅지를 쓸어 내리기도 하고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였다.
그녀로써는 참기 힘든 시간이였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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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 생에 잇어서 정말이지 찬란한
당돌한넘 으로써 살아가는 고교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이글은 사실도 허구도 아닌 것이니 그냥 **소설로써 읽어 주시고
이글에 나오는 이름 은 전부 가명 임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지금 글을 쓰는 것은 전에 글을 썼던 현아 맞고요
지금도 남편하고 행복 하게 살아 가고 있어요.
몇 년만에 돌아오니 저 또한 기분이 넘 좋고요~~~
절 기억 하실 분이 아직 있을까 의구심도 들지만, 그래도 다른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과 함께
댓글도 달아 주시는 것을 생각 하면서
다음 글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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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제일!제일!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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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과 추천 많이 주세용~~~^^.
안녕 들 하세요~~
실로 오래간만에 찾아오게 됐네요.
절 기억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넘 오래간만에 찾아오게 됐네요.
그동안 치료를 해야 했기에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였고, 아픔 이였어요.
이제는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한 상태고 아픔도 전보단 느끼지 못하고
이제야 사는것을 느낍니다.
다 사랑 하는가족과 남편 이 있기에 ....
여보~사랑 해요~~감사 해요.
전에 연재 되었던 39부2장으로 막을 내리고,변화의어둠속에..도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한 연재 할께요. 먼저.
당돌한 넘 으로 다시 찾아 올려구요
여러분들도 아실거지만, 글을 쓴다는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에여
워드에다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 하기를 수차례....
읽어 보고 또 보고 그러다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
생각해가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고문아닌 고문이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힘든걸 왜 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셔요.
굳이 답을 한다면
내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좋아 하니까.라고 답을 하고 싶어요.
한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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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앞뒤가 않맞고 해도 이해해 주시고
그냥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글의 내용 및 지역 그리고 이름은 가명이며 허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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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처음 들어 가던날.
노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운동장에 줄서서선생님 훈시를 듣고
선생님 소개도 받고,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들...
‘나도 이제 학생이되는구나’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아는 칭구들....
동네서 같이 뒹굴고 뛰어 놀던 소꼽친구..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변에는 부모님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었고,우리들은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서
선생님 애기를 듣는지 마는지 웅성 대기에 바빴고,
한편으로는 어떤 친구들이 있나,여자애들은 어떤가 하고 주변을 두리번
하기에 여념이 없다.
전부다 코흘리게 인가 보다.
전부다 가슴에 노란 손수건을 (노란색인지는 기억이 않나..그냥 노란손수건으로적음)
내 가슴에도 달려 있지만 실제로 내코에서는 누런 코가 자주 나오곤 했었다.
반을 소개받고 담임 선생님을 소개 받고 교실로 줄을 서서 따라 들어 가서
처음 으로 교실에들어와 봤다.
시골 학교라 몇반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학년은 사람이 많아서 인지 52명이나 됐다.
키작은 순서 대로 1번부터 52번 까지.
지금은 어떻게 순서를 정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키순서대로 번호를 정해었다.
우리집은 가난하여 가방은 고사하고 노트며 연필도 다 형 누나가 쓰던것을
내가 쓰곤했다.
지금은 유치원에서 한글뿐만이 아니라영어도 다른것도 다 배워서 오지만 그때는
그저 뛰어 놀기바빳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첫수업.
한글을 깨우치냐고 다들 정신이 읍다.
난 이미 한글도 영어도 산수도 다 알아서 넘 따분하고 지루했다.
자연스럽게 여자애들한테 눈길이 가고,
반전체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을 한번씩 처다 보는데.
‘딱’
‘아....’
누군가 내 머리를 몽둥이로 가격하는순간 나도 모르게 아프다는 소리를 냈다
올려다 보니 선생님이 날 때린거다.
“왜 때려요”
“이넘이 하라는 한글 공부는 않하고 왜 두리번거려”
“선생님.”
“전 이거 다 읽을줄 알고 쓸줄도 알아여..”
선생님은 놀래서 정말인지 아닌지 앞으로 나가서 칠판에 글을 써보라 하신다.
순간 교실에서는 애들이 떠들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선생님이 불러주는것을 쓰라고 하는게 정말이지 우습기 까지 했다.
“기역 니은....”
“가 나 다 라...”
불러주는것을 받아서 쓰다가 “선생님.이런거 말고 다른거 불러주세요”
라고 말하자 교실에서는 함성이 들렸다.
‘우와..’
자리로 돌아 오는동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으쓱해지는데
선생님이 머리를 쓰담아주면서 “잘했어” 하신다.
그뒤로는 내가 반장도 아닌데 짱 노릇을 하게 됐다.
단지 내가 부러운게 있다면 다른 애들은 갖가지 색상의 필통에 연필 끝에 지우개가
달려있는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게 젤 부러웠다.
2학년이 되자 구구단이 시작됐다.
못 외우는 애들은 남아서 외우고 가고 등하교길에서도 외우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젤 좋은 시간은 체육시간이다.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 놀고 공차고 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아니 그런 일이 있고 난뒤로부터
내 인생에 변환점이 되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일생 일대에 큰 사건이 2학년 봄에 터졌다.
다름 아닌 도둑질..
말이 도둑질이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아주 나쁜짓이다.
알면서도 그리 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도 저애들 처럼 몽땅연필이 아닌
볼펜에 꼽아서 쓰는 연필이 아닌 새것으로 쓰고 싶었다.
하여 머리를 쓴것이 하나만 훔처서 쓰는 것이였는데...
체육시간에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교실로 와서 연필 하나를 가지고 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새것을 사용 하니 기분이 넘 좋고 최고였다.
헌데 이또한 쓰다보니 달아서 짧아지고....
꼬리가 길면 잡힌다 고 누가 했던가...
이러기를 몇 번(한 6번정도)정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종례 시간에 다른 날과 달리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선생님의 얼굴에도
화가 난 표정이였다.
선생님이 훈계를 시작하기 하면서
내용의 전말이 밝혀 지는데..
지금 자수 하면 없던일로 해주겠다고 신신 당부 하시는데
과연 누가 자수를 한단 말인가?
전체 눈감고 있으라고 해서 전부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무도 자수를 않한다.
심장 박동 소리가 엄청크게 들려 들킬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다.
교단앞에 이르자마자 엄청난 힘의 무게가 실은 손으로 나의 뺨을
스처 지나갔다.
‘짝’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가며 놀란두눈으로 선생님을 다시 처다보는 순간 다시한번
‘짝’
엄청 아팠다.
순간 아파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서러움에 가난함에 더 슬퍼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뒤로 엄청 나게 두들겨 맞고 또 맞았다.
집에 오는길 내내 쩔룩 거리며 집에 와서 엄청 울었다.
‘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절대 부모님 처럼 가난하게 안살거야’ 다짐 하고 또 다짐하면서
울었다.
울다 잠이들고....
애들이라 그런지 금방 잊어 먹은건지 아니면 내색을 않한건지는 모르지만,
나를 평상시 처럼 애들이 대해주고 같이 뛰어 놀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4학년.
나도 모르게 신장과 체중이 크게 불어나 전체순번중에 뒷자리까지 내려 갔었다.
그때 당시 동네 형들의 모습은 깡패모습을 하고 툭하면 옆 동네랑 붙어서 한바탕 하고
시내에 나가서도 엄청나게 싸움을 하곤 했었다.
필요 한게 있으면 집안에 있던 빈병..낮..비닐...호미..
돈이 되는것이라면 머든지 들고 가서
하드(아이스께끼)-(아시는분 계실런지)-(장사꾼이 오면 나가서 교환해서 사먹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건달형네에 가서 놀던중 우연히 빨간책(성인물-소설)을 보게 되었다.
조금 읽어 내려 가는데도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차 오르는것이 이상하게
심장 이 두근두근 거렸다.
밖에서 소리가 나서 얼른 책을 뱃속에 숨기고 집에 와서 마저 읽던중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 했다.
갑자기 물건이 엄청 커지면서 아프기 시작 하더니 그냥 있으면 않될것 같아
누워서 움직이기를 수차례
엄청난 폭풍후가 몰려온듯 밑에서는 무엇인가가 바닥을 적시고
숨을 헐떡 거렸다.
이것이 나의 첫 경험이자 첫 번째 사정 이였다.
이것이 무엇인지도 나는 동네 형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이리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흥분상태와 그 황홀한 기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흐뭇한...기분
수건을 가져다가 바닥에 묻어 잇는 나의 분신물을 닦고, 책을 덮었다.
이른 나이에 첫 사정.
그 후론 집에만 오면 누워서 물건을 다리쪽으로 내리고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는
버릇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을때면 그리 했었다.
그러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름 책이 보고 싶은데 ...
하는수 없이 동네 형들 한테 가서 책을 살돈을 빌려서 천안 시내로 가서
책을 파는곳을 알아봤다.
아마 하루종일 천안 시내을 찾았을거다.
그러던중 어느 길가에 중년노인네가 물건들과 책을 늘여 놓고 파는것이 눈에
띠었다.
이곳이 삼도상가.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이곳이 젤 번화가였다.
옆에 역전이 있었고,영화관에 별의별것들이 다 있었다.
책을 둘러 보던중 그 노인네가
“학생..어떤거 찾어?” 이런다.
난 말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이넘 이걸 찾는가보네...어린넘이..”
하면서 표지가 빨간 색으로 되어있고 여자그림이 잇는것을 보여주신다.
값을 지불하고 집에와서 책을 읽어 나가면서 또 사정을 해 댄다.
학교에가서 여자애들을 볼때마다 그책의 내용들이 한 대묶여 보이기 시작하고
이상하게만 생각이 들었다.
주말 저녁이면 어김 없이 동네 공터에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 했는데 항상
내가 먼저 시작 하고 거의다 내가 말을 하고 주동이 되어 있었다.
시골애들이라서 그런지 성에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아서 인지 아니면 다들 알고 싶어서인지
내말에 두눈과 두 귀를 귀울이면서 듣고 질문을 해곤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토대로 애기 해주고 성의 지식등을 알려주었다.
생식기.임신.애기가 태어나는 과정등...
그러던 어느날,
남자 애들만 모여서 놀고 있었던중 한형이 오줌을 시원하게 싸고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알고 싶어 옆에 가서 처다보니 머라 하면서 계속 오줌을 내깔린다.
그게 화근이 돼서인지 전부 모여서 서로 물건이 크다고 자랑을 하고 급기야는
집에서 자를 가지고 와서 제보기로 햇다.
당연이 내가 1등을 차지 했고 그때부터 형들로 부터도 인정 받아 모이면 내가선동이되었다
여자애들은 애기낳는것이 젤 궁금 한듯 자주 물어왔었고...
오줌 구멍과 애나오는곳이 다르다고 하고 애기 나올때 엄청난 고통과 피가 나온다고
엄포를 줘도 서로의 얼굴만 처다볼뿐 계속 내 애기를 듣곤 했다.
엄청난 사건이 내게 터졌다.
5학년인가6학년인가 기억이 가물 하지만.....
그때 금산에서 인삼으로 때돈을 벌어서 이곳에 엄청난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있었다.
온산을 불도저로 밀고 포크레인으로 하고(난생 처음 이런 기계들을 봤다)
높던 산들이 평평해지고 그 위에 엄청난 수박을 심으셨다.
주위에는 곳곳에 원두막이 자리잡고 잇었고,
그 수박밭에서(수확이 어느 정도 끝난후) 공을 차기고 하고 그랬으니...
어느날,
우리들은 소꿉놀이를 하던중 옆집에 사는 형이 부부놀이 하자고 재안하여 우리들은
짝은 정하고 부부행세를 하였다.
호칭도 자기,또는 여보 라고 부르면서...
그러다가 원두막에 올라가 수박으로 맛잇는 상을 차리게 되었고,
결국 잠자리 라는 것꺼지 가게 되었는데....
옆을 보니 정말 부부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정말로 할려고 하고잇는걸 보았다.
물론 정상체위지만 정말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던중 그 형이 “넌 안해?”
“어?...어..해야지”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선 여자애를 눕히고 큰 물건을 작은 그녀의
속으로 밀어 늘려고 하는데 이상 하게 안들어 간다.
여자애는 아프다고만 하고..
저쪽도 아프다고만 연신 소리 지르고 이 여자애도 아프다고만 하지 좋아 하지 않는다.
반정도뿐이 안들어 갔는데 여자애는 아퍼서 죽는다고 울어 버렸다.
어쩔수 없이 부부놀이는 그 울음에 그만 두고 각자 집에 왔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내 밑에 깔린 지지배가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어서 엄마가 물어봤더니 우리들이 했던 부부놀이를 전부다 말해버린것이다.
그 엄마는 몽둥이를 가지고 집에쫒아와서는 나를 엄청나게 그 몽둥이로
때렸다.
물론 옆집형도 마찬가지로 엄청 두들겨 맞았다.
창피해서 그형과 함께 마을을 도망처 시내로 들어갔다.
무일푼으로 나와서 그런지,엄청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성한데가 없고,
배도 고프고 춥기 까지 했다.
동네서 도망칠때는 우리들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고 쫒겨났었다.
다른 동네 마당에 널려있는 옷을 대충 주서 입고 시내로 들어 선 것이다.
지금 생각 하면 엄청난 짓인데....(구속감이다-아니 특종감이였을것이다)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간 시간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중학교에 들어 가게 되고
중학교 다니면서 내 인생의 반환점이 시작 되고,반항아가 되어 가고
건달의 길과 운동부로써의 두 길을 걷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니 한반만 있었던 국민학교(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않되는 엄청난 애들이
3반씩이나 있었다.
한반에 48명이나...
이쁜년들도 엄청 많앗고,남자애들도 쬐금한넘들과 덩치가 엄청큰 넘들 다 모엿다.
1학년1반 42번.(기억이 생생하다.)
남녀공학이라서 한반에 남녀가 같이 짝을 이루고 앉아 배웠다.
첫 번째 여자 짝꿍이 못 생겼다.
실망이다.
이름은 정다빈
1년전에서야 중학교 동창생들과 연락이 왔닿고 1년에 두 번씩
모임도 갖는다. 30여년이 흐른뒤 모습들이란 실로 엄청난 시간인가보다
다들 너무나 변해 있었다.
여자애들은 다 시집 가서 애낳고 살고 있고,
남자 애들은 성공한놈과 그렇지 못한넘으로 구분되어 잇었다.
아직 장가도 못간넘이 더러 있었다.(병신들이지...나이가 몇인데.아직이라니..)-낼모래면 50을 바라보는데.ㅋ.
애들도 많았지만 선생님들도 엄청많았다.
김정문
이문정
이정식.등등 (이글에 나오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다들 어찌나 예쁘던지 여선생만 보면 흥분이 되고 미칠것 같았다.
특이나 짧은 치마를 입었을때와 브라우스를 입고 있을땐 속옷이 안보이나 시선이 그곳으로
만 쏠리게 되고 공부는 뒷 전이였다.
다행이 내가 좋아 하던 선생은 내가 젤 자신 있어 하던 영어선생님.
국어.국사 선생님들이다.
치마를 입고 오면 남자애들이 거울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 햇고
몇 번 들켜서 혼난적도 있었다(다들 해봤을거라....ㅋ.)
알면서도 모르는척 질문을 하여 여선생이 오게 만들고 ,그러면 주변 남자애들이
볼펜,지우개,연필등을 떨어 트려 줍는척 하면서 치마속을 들여다 보고,
거울을 가지고 치마속을 훔처보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헛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선망의 대상 이였다.
반드시 잠자기전에 자위를 하는데 항상 선생님을 상대로 상상 하면서 자위를 하곤 했다.
그럭저럭 중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타동네 애들이 텃새를 부린다나머라나..하면서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고
암튼 주인 행세를 하는게 내 눈에 성가셔서 싸움을 하기 시작 했다.
악바리라면 첫째라도 서러울정도의 나이고, 운동도 동네 형들한테 틈틈이 배우고 익혀서
싸움은 자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을 하고 그것도 모잘라 선배들 까지 같이 싸움질에 껴들고
학교 가면 학생과 선생님 한테 맞기 일쑤였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서 무엇 보다 반가운것이 버스다.
독자님들은 왠버스? 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버스를 처음 타보고
안내양도 처음 보고 무지 신기하고 생소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게 있었다.
등교 하는 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콩나물 시루는 저리가라 였다.
어찌 다 버스안에 사람을 아니 학생들을 태우던지...
안내양은 뒤에서 표를 받으면서 엄청나게 밀어 제꼈다.
그덕분에 운이 좋으면 여자에 뒤에 바짝붙어있었고, 운이 안좋으면 납자넘뒤에 있기도
했었다.
나는 등교 할때 만원 버스에 탈때가 젤 좋았다.
그리고 시내에 갔다가 집에 오는길에도 넘 좋았다.
우리때는 교복을 입고있었다.
남자애들은검은색의 교복과 모자.
여자애들은 검은차마에다가 브라우스.
언뜻보면 다 똑같이 생긴것 처럼 보였다.
성욕이 왕성할때라인지 아니면 내가 밝인넘인지 모르지만,
여학생 뒤에 있으면 넘 행복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움직일때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도로는 거진다 비포장이라 덜컹덜컹데서 버스안은 항상 지옥이였다.
어느날은 모르는 여학생 뒤에 바짝 붙어서 가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넘이 서서히 발기를 시작 한다.
속으로 난처 했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고고 말을 못하는게 말을 하면
더 이상 할것 같아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이리치이고 저리치우치고 할뿐.
그런데 더 이상한것은 이 여자애가 분명 느꼈을 텐데 아무 반응이 없다.
한손은 가방을 잡고 다른 한손은 손잡이를 잡고 콩나물 같은 버스안에서
버티고 있는터라 그런지 반응이 없다.
내 물건은 커질데로 커저서 이젠 그녀의 엉덩이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젠 그것이 무엇인지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서 나를 처다 보지만
아무말도 않하고 인상만 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상황에서 소리친다거나 말을 하면 더 이상할것 같은지 아무말도 않하고
고개를 차창밖으로 돌렸다.
속으로 쾌재를 지르면서 나는 더더욱 허리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엉덩이계곡이 내 물에 춤을 추기시작햇고,
난 계속해서 위아래로 문지르기를 수차례
이러다 사정 할것 같아 그만 두고 대신 손으로 만저 보기로 했다.
손바닥으로 엉더이를 살살 문지르다가 살짝 잡아보기도 하고 허벅지를 쓸어 내리기도 하고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였다.
그녀로써는 참기 힘든 시간이였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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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 생에 잇어서 정말이지 찬란한
당돌한넘 으로써 살아가는 고교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이글은 사실도 허구도 아닌 것이니 그냥 **소설로써 읽어 주시고
이글에 나오는 이름 은 전부 가명 임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지금 글을 쓰는 것은 전에 글을 썼던 현아 맞고요
지금도 남편하고 행복 하게 살아 가고 있어요.
몇 년만에 돌아오니 저 또한 기분이 넘 좋고요~~~
절 기억 하실 분이 아직 있을까 의구심도 들지만, 그래도 다른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과 함께
댓글도 달아 주시는 것을 생각 하면서
다음 글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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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제일!제일!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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