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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선생의 정복기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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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944회 작성일 20-01-1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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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는 모습으로 교무실로 돌아 온 용식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쭉 기댔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 이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해본 일이지만 처음엔 약간 긴장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냥감이 예상치 못한 저항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용식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위기를 잘 넘겨왔고 이번에도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용식은 교무실 안을 슬쩍 둘러보다가 입구 쪽으로 자연스레 눈을 옮겼다. 유진이 어떤 표정을 지은 채 들어올지 절로 기대가 갔다. 이대로 내뺐을 확률? 우선 자신을 설득 시키고, 정 안되면 애원하기 위해서라도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애원하면 좀 김새는 일이긴 하겠지만 보통 이런 상황에선 열에 아홉은 울며불며 매달리는 게 보통이었다.

유진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용식이 지금까지 관찰하고, 조사해 온 유진이란 여자는 애원 같은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언제나 도도하고 까칠하며, 자기 할 말은 눈치 보지 않고 하는 재수 없는 년. 학생들에게는 친절한 척 하지만 주위 동료들과는 사적인 말 한마디 섞으려 들지 않는 건방진 년, 그런 유진이 용식에게 애원 하는 모습은 용식 자신도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유진이 들어왔다. 유진을 본 순간 어지간한 용식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유진은 살짝 눈가가 붉은 것만 빼고는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일을 당하면 자연스레 겉으로 기가 꺾인 모습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데 유진은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았다. 살짝 감탄한 용식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자리에 올 때까지 유진은 용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한번 매섭게 쏘아볼 법도 한데, 그러기도 싫은 것인지, 용식이 일부러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도 자기 앞에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런 유진의 행동에 용식은 화가 나기는 커녕, 오히려 즐거워졌다. 유진이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들어오면 어떡하나 은근히 걱정까지 한 그였다. 유진이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도도한 모습인 게 기특하기 까지 했다.

용식의 물건은 그런 만족감에 또 용솟음 쳤다. 용식은 자신이 택한 사냥감의 가치를 좀 더 높게 쳐주기로 마음먹었다. 몇 번 이나 살펴봐도 정말 멋진 사냥감이었다. 어느새 용식은 탐욕스러운 눈길로 유진의 옆모습을 ?고 있었다.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은 탐스런 머리칼, 성형수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오똑한 자연산코, 몇 시간이고 빨아 대고 싶은 도톰한 입술, 목까지 덮는 폴라를 입고 있어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 매끈한 일자쇄골은 얼마나 군침을 돌게 하는가....거기다 저 두꺼운 폴라 위에도 당당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슴은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주물러 대고 싶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유진의 몸매는 더한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 허리에서 골반까지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은 남성의 눈길을 사로잡는 마력, 그 자체였다. 다리는 또 어찌 그렇게 훔쳐볼 수밖에 없을 만큼 쭉 뻗어 있는지......
아마 유진이 남학교에 갔으면, 머리에 정액만 가득 들어차 있는 남학생들은 유진을 바로 덮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유진이 여학교에 들어와서 자기 같은 상식 있는 변태를 만난 게 어쩌면 유진에겐 행운 아니었을까? 용식은 갑자기 드는 우스운 생각에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런 용식이 당연히 신경 쓰였겠지만 유진은 자리를 피하지도 용식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음 수업준비를 할 뿐이었다. 용식은 한번 기지개를 늘어지게 편 후, 다음 즐거움을 위해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유진은 용식의 그런 행동에 반사적으로 뜨끔했지만, 딱히 어떻게 제지할수도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구석진 자리이긴 하지만 교무실엔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까부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머리 속은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차 터질 것 같았다.
용식이 앞으로 어떤 변태적인 요구를 해올지 걱정됐고, 그의 협박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의,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이런 범죄에는 보통 어떤 판결을 내릴까? 애인이 알면 자신을 예전처럼 대해줄까? 용식의 뒷조사를 해야 하나? 당장 오늘부터? 하지만 어떻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으나 지금은 조퇴를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도망친 줄 알고 용식이 바로 조치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유진은 지금 이 상황이 일종의 기싸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용식의 협박은 어쩌면 허풍일수도 있다. 자신은 그 기에 눌려서 지금 이렇게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유진이 예상밖으로 세게 나간다면 용식은 과연 어떻게 할까? 용식도 분명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까진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쪽에서 갈 때까지 가자는 식으로 간다면 어쩌면 용식이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유진은 좀 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분명히 언제든 용식이 자신을 불러낼 것이고 그 때가 이 난감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기회였다.
그 때, 유진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옆자리의 용식이 보낸 것인가? 유진은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무실을 나가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니 예상대로였다. 오늘 퇴근 후, 남의 눈을 피해서 구교사로 오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유진은 구교사 안에서 당한 그 수치스러운 일이 다시 생각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어차피 부딪칠 일이다. 그 어느 때 보다 더 침착하게 행동하리라 유진은 굳은 결심을 하였다.

입으로 설명을 하고, 손으론 쉴 새 없이 필기를 하는 수업 중에도 유진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는 지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다. 흡사 자신의 몸을 다른 이가 조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점점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유진은 침착해지기는 커녕, 가슴이 뛰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옆자리의 용식은 그런 자신과는 다르게 죽이고 싶을만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저 것도 허세일거야 하고 유진은 스스로 위로 해봤으나 가슴 한켠에 떠오르는 불안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나머지 업무라도 시키면 좋으련만, 하필 오늘은 아무도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유진은 마음속으로 크게 낙담하고 말 없이 가방을 챙겼다. 그런 유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식은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기세 좋게 말한 뒤 유유히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치고 싶었으나, 지금 도망친다면 죽도 밥도 안될 것이 뻔했다. 용식의 추한 몰골, 특히 그 흉측한 물건이 떠올라 유진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으나 지금 결판 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질질 끌려 갈 가능성이 컸다.

‘가자. 할 수 있어, 황유진!’

유진은 가방 속의 호신용 스프레이를 다시 한 번 확인 한 후, 구교사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자위하러 갈 때는 항상 은근한 기대감에 젖어, 뛰다시피 갔던 곳이나 지금은 발걸음에 하나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남이 볼까봐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갈 수밖에 없었다.

구교사가 가까워지자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약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악마같은 용식을 상대하기 위해선 최대한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유진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턱을 치켜든 다음, 눈에 힘을 준 채 구교사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해가 뉘엿뉘엿 지는 터라, 구교사 안은 다른 때보다 더 어두컴컴했다. 그런 음침한 곳에서 갑자기 용식의 추한 모습이 나타나 유진은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용식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유진마저 놀랄 만큼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용식은 아무 말 없이 유진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자고? 유진은 지금이라도 가방 속에 있는 스프레이를 꺼내 용식의 얼굴에 한바탕 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용식에겐 뭔가 저항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디로 가자는 거에요? 그냥 여기서 얘기하면 안돼요?”

유진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용식에게 말했다. 하지만 용식은 눈만 무섭게 부라린 채, 다시 한번 따라오라고 손짓만 할 뿐이었다. 좀 더 고집을 부려볼까 했지만, 갑자기 유진의 머릿속에 화장실에서 온 몸으로 체험한 용식의 무지막지한 완력이 떠올랐다. 할 수 없이 유진은 앞장서 걷는 용식을 조용히 뒤따라갔다.

처음엔 화장실로 데려 가는 줄 알았으나 용식이 가는 곳은 화장실과 정반대쪽 복도였다. 유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용식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갑자기 달려들거나 폭력을 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용식은 이미 구교사 안 구석구석이 익숙했는지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그가 멈춘 곳은 복도 끝자락에 있는 문 앞이었다.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든 용식은 어두운 곳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잠긴 문을 열었다.

문 안쪽 벽을 용식이 더듬더듬 하자 형광등이 팍 하고 켜졌다. 안은 장판도 깔려 있고 작은 소파와 탁자, 간이침대가 있는 게 마치 가정집 같았다. 거기다 누가 청소라도 했는지 꽤 깨끗했다. 그때 불현듯 유진에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평소 이 인간이 청소하는 건가? 잠깐......그러고보니 처음 화
장실을 갔을 때도, 예상과는 달리 깨끗했었지. 너무 지저분했다면 내가 거기서 자위를 안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야......거기다 처음에 구교사 정보를 넌지시 알려준 것도 이 인간이고.....
모든 게 다 이 인간 계획이었다면......내가 자위를 할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는 건데......“

유진이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 전에 어느새 소파에 앉은 용식이 말을 꺼냈다

“이제는 안 쓰는 숙직실이지. 자 이리와 앉으라고.”

용식이 바로 옆 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으나, 유진은 반대편 간이침대에 가 앉았다. 그러나 용식은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자기 옆자리로 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잠시 용식과 눈빛이 마주치자, 유진은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른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적막한 공기가 감도는 게 참기 힘들 정도로 불편했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심장소리가 귀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엄청 크게 느껴졌다.

용식의 관찰하는 듯한 눈길이 송곳처럼 자신을 찌르는 것 같아 유진은 당장 이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목을 덮은 폴라가 견딜수 없을 만큼 까끌까끌하게 느껴져 숨이막힐 지경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용식이었다.

“머리 굴리는 게 다 보여, 황선생. 어떻게 하면 여기를 무사히 빠져나갈까. 어떻게 하면 나
를 엿 먹일까. 어떻게 하면 밀리지 않을까......속으로 고민 무지 하고 있지, 안그래?“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한 용식의 말에 유진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흐리멍텅 해 보인다고 생각한 용식의 가자미눈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섬뜩하게만 보였다. 뭔가 반격을 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나올까봐 두려워지기 까지 했다.

하지만 유진은 용기를 내어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이게 다 김선생님 계획이었다는 건 알겠어요. 내가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구교사를 찾아가게 한 후, 거기다 미리 카메라를 장착해서 약점을 잡아내는 거 말이에요.”

“그래, 사실 구교사가 아니래도 상관은 없었어. 어차피 이 학교에 익숙치 않은 황선생이
그 짓 하러 갈 곳은 화장실밖에 없으니까. 구교사에 대한 정보를 흘려준 건 황선생이 그
쪽으로 가게 될 확률을 높이는 일이었지. 구교사 안 여자 화장실은 6칸인데 사실 처음엔
청소도구가 들어 있는 한 칸 빼고는 나머지 칸 모두에 카메라를 설치했지.
황선생이 어느 칸으로 들어갈지 모르는 거니까 말야.방향제 인형은 특이하긴 하지만 화장실에 걸려 있음직한 물건이니까 말야. 거기다 숨겼어. 밖에서 몰래 황선생 뒤를 밟은 나는 리모컨으로 카메라를 조작했고......참고로 그 카메라들 엄청나게 비싼 것들이라구.“

용식이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술술 말하자, 유진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 용식 말대로라면 구교사 아닌 다른 화장실에서 자위를 했어도 거기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을 것 아닌가? 용식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자위에만 열중한 자신도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런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용식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황선생이 의문을 품은 게 있을 거야. 그것도 말 나온 김에 가르쳐주지. 황선생이 그 짓을
할 지 어떻게 알고 내가 계획을 세웠는지 말야......사실 황선생이 그 짓을 하리라 예상한
게 아냐. 내가 그렇게 만든 거지.“

섬뜩한 용식의 마지막 말에 유진은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분명히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될 만큼 갑작스럽게 찾아온 성욕이긴 했지만......
곰곰히 생각에 잠긴 그녀는 예전에 가쉽잡지에서 읽은 한 기사를 떠올렸다. 술자리에서 여자를 억지로 흥분시키기 위해 몰래 돼지발정제를 술에 섞는 남자들에 관한 기사......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진을 용식은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황선생은 몸매관리를 위해서인지 물을 참 많이 먹더라고......아예 생수병을 끼고 살더군?
그런데 그런 소중한 생수병을 자기 자리에 아무렇게나 놔두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나,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지 않나......참 보기 안 좋았어. 그래서 내가 특별히 내 생수병으로
바꿔줬지. 정신 번쩍 들게 말야, 하하하......“

눈 앞이 아찔했다. 유진은 아무런 의심 없이 물을 마셨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분명 아무 맛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고 양도 딱 자신이 마신 것에서 늘거나 줄지 않았는데......그만큼 공을 들였단 말인가?

구교사에 들어오기 전 마음먹었던 것들은 다 어디가고, 유진의 가슴 속엔 강한 두려움과 절망감만이 남았다. 몰래카메라니, 최음제니 하는 것들은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물건인 줄 알았는데, 직접 당하고 보니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 남자 손아귀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놀아난 것이다. 분통이 터지고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그런 것들보다 눈앞의 남자에 대한 공포감이 훨씬 컸다. 허세라고 생각한 협박들이 이제는 사실로만 느껴졌다.

어떡해야 하나? 도무지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유진은 답답하기만 했다. 한순간, 용식에게 애원이라도 할까 하고 강렬한 유혹이 떠올랐으나, 이 인간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길 것 같았다. 또 그러기엔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지금은 한방 먹었으나 꼭 되갚아 주리라. 유진은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용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용식은 그런 유진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몰아붙였으면 기가 죽을 줄 알았는데,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 게 깜찍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라는 건 언제나 현실과 타협하는 법이다. 용식은 이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천천히 음미하기로 했다.

“자, 쇼를 시작하자고. 황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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