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좆이라고는-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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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20-01-16 23:56본문
초등학생 좆이라고는..........
저는 지금 미국에서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남편과는 미국 유학을 와서 만났고요 남편은 지금 미국 굴지의 기업 연구소에서 일을 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머리가 좋은 남자입니다.
시가집은 전라도의 한 작은 시골이고 친정은 강원도의 두메산골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곳입니다.
물론 시부모님들이나 남편의 형제들은 한국에서 있고 저희 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작년에 한국에 잠시 들러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데 시가집이나 친정 식구들은 원만하면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지금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만큼 대우를 해 주겠다는(물론 한국 경제와 미국 경제의 차이를 인정하기에 거기에 비례한 대우를 말함)기업이 나타나지를 않고 또 지금의 화사에서는 장래를 보장을 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를 못 하고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호호호 뭐라고요?
도미를 할 당시 숫처녀였냐고요?
지금 저하고 농담 따 먹기 하자는 겁니까?
인터넷을 통하여 현제의 고국 성풍속도를 알아 본 결과 초등학교에서도 숫처녀는 천연기념물 대우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제가 두메산골에 살면서 다니던 중학교 시절에 유행 한 것이 하나가 있었어요.
아니 유행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애가 되고 놀림감이 되었었죠.
그게 뭐냐고요.
원조교제!
원조교제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에 그 문제의 원조교제는 마치 전염병처럼 우리 또래 이상의 아이들에게 전염이 되고 있었습니다.
헤헤헤 저도 이학년 때 그 원조교제라는 전염병에 그만 감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학교 근처에 구둣방이 있었고 시골이다 보니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 신발이 달았다고 마냥 새 신발만 사 달리고 할 수가 없었기에 신발 굽이 달아버리면 구둣방에 가서 고무판을 엇대 붙여 신고 다녀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둣방 주인아저씨는 40세가 조금 넘은 저희 아빠와 비슷한 또래의 마음씨도 곱게 보였지만 키고 크고 얼굴도 미남이었습니다.
그날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으려다 보니 신발 밑창에 꿇려져 있지 뭡니까.
마침 단화 굽도 달아서 갈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운동화까지 말썽이자 저는 출석 체크만 하고 체육선생님에게 사정을 하고 수선을 하러 구둣방으로 갔습니다.
“나미 신발 수선하러 왔니?”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예 운동화도요”하고 단화와 운동화를 함께 드리자
“그래, 요즘 너희들 원조교제 많이 한다며?”아저씨가 달은 단화 밑창을 뜯으며 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헤헤헤 하는 애들이 많은가 봐요”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수롭게 대답을 하자
“너는?”아저씨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직”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생각은 있니?”밑바닥을 고무판에 대고 볼펜으로 그리며 물었습니다.
“헤헤헤 몰라요”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여기 안으로 들어가 앉아”신발을 수선하는 공간의 안으로 의자를 놓으며 말하였습니다.
구둣방의 수선 실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앞에 계단식으로 신발을 진열하고 그 뒤에 좁은 공간에 재봉틀이며 가위를 비롯하여 본드며 각종 도구들이 있고 신발 수선을 거기서 하는 곳인데 그 안쪽으로 들어가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아무런 의심도 없이 저는 아저씨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낮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어디 보자”고무판을 오리다 말고 갑자기 손을 씻지 뭐예요.
“..............”전 아저씨의 그런 행동에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미도 원조교제를 해도 될 것인지 아저씨가 먼저 조금만 볼까”하고는 갑자기 제 교복치마 안으로 손을 넣지 뭐예요.
정상적으로 했다면 고함을 지르거니 뛰쳐나와야 할 것인데 저는 이것이 원조교제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되레 가랑이를 벌려주었고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원조교제에 대한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는 팬티를 내렸고 저는 가랑이를 벌려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호~오 밋밋한 것이 먹을 만 하겠는 걸”아저씨가 제 보기 금을 손가락으로 벌려보며 말하였습니다.
“빠구리를 먹는다고 해요?”중학교 이학년이었지만 성에 대하여서는 남자가 좆을 보지구멍에 박는 것을 빠구리라고 하고 재수가 없으면 임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가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후후후 그래 나미 아저씨하고 원조교제 한 번 할래?”아저씨가 저의 보지둔덕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얼마 줄 건데요. 참 아저씨 소문나면 어떻게 해요?”아저씨와 아저씨가 쓰다듬는 제 보지둔덕과 아저씨의 손바닥을 번갈아보며 물었습니다.
“단화 두 켤레하고 십만 원 나미야 내가 너희 아빠하고 친한데 소문을 내겠니?”아저씨가 말하였습니다.
사실 아저씨와 우리 아버지는 아주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아버지의 구두도 아저씨 가게에서 맞추었고 장날이면 구두를 맞추거나 수선을 할 일이 없어도 구둣방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봤었습니다.
그러니 소문에 대한 문제만은 생길 이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헤헤헤 그런데 하고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요?”맞춤 단화 두 켤레와 십만 원이란 부분에서는 만족을 한 것입니다.
“이거면 돼”아저씨가 구두에 다는 쇠붙이 장식이 든 통을 꺼내더니 뒤졌고 그리고 그 안에서 캡슐 모양의 좌약 같은 것을 끄집어내어 저에게 주었고 그 작은 좌약에는 <노원>이란 글과 함께 피임약이란 글이 조그맣게 쓰여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 노원이란 피임약 이름은 흔히 들었던 이름이었기에 구태여 피임약이란 글이 적혀 있지 않았어도 저는 그게 피임약이란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때 넣고 해 볼까?”소문과 피임 문제가 해열 되자 아저씨가 하자고 하면 상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저씨가 제안을 하였습니다.
“오늘 한 번으로 끝이어요?”아저씨가 피임약을 가위로 뜯기에 그걸 보면서 묻자
“미나나 원하면 다음부터는 십만 원에 어때?”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좋아요 아~아파요”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저씨는 그 피임약을 제 보지구멍에 대고 눌러서 끼웠습니다.
“오늘만 아프고 다음부터는 아프지 않아”하고 말하더니 저를 일으켜 세우고 재봉틀 다이에 팔을 짚고 엎드리게 하더니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밑으로 내렸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아저씨의 좆을 받아들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셈이었습니다.
“!”아저씨고 제 보주구멍에 좆을 박을 준비를 하는데 전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게 좆도 좆이냐 하는 그럼 심정이지만요.
당시에 제 눈에 비친 아저씨의 좆을 좆이 아니라 아예 몽둥이 같았으니까요.
<저게 정말 네 보지에 들어가기나 할까?>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다음 수업 시작 하려면 시간 넉넉하지?”아저씨가 저의 치마 단을 허리 위로 올려 치마 끝말에 끼우고 엉덩이를 잡으며 물었습니다.
“예”대답을 하였지만 무척이나 떨렸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좆을 제 보지에 다고 문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저씨 이상하고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아요.”이상한 기분이 들며 뭔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아 말하자
“후후후 오줌이 아니라 보지구멍에서 나오는 물이야”아저씨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났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혼자서 가끔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거니 책걸상에 보지를 대고 비빌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오줌인가 싶어 보지 금을 문지르면 손에 묻어나온 것은 오줌하고는 색깔부터가 맑은 물이었지만 그게 무슨 물이고 무슨 자용을 하는지를 알지는 못 하였었습니다.
“이 물이 나오면 미끄럽게 잘 들어가져, 아저씨 좆이 이렇게 문질러도 처음처럼 까칠까칠 하지 않지?”아저씨가 좆으로 보지 금에 대고 상하로 문지르며 말하였습니다.
“예”하고 대답하자
“이제 박을 거야 처음엔 아파서 비명이 나올 수가 있거든 지금 한가하여 자나가는 사람도 안 보이지만 행여 몰라 그러니 손으로 입을 꼭 막아”하고 아저씨가 제 보지구멍 입구에 좆을 맞추고 말하자
“예”하고 대답을 하고는 재봉틀 다이에 팔꿈치를 대고는 의지하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읍~!”입을 막는다고 막았지만 막상 아저씨의 몽둥이 같은 좆이 보지구멍에 박히자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랫배로 포만감을 느껴지며 더부룩한 기분까지 생겼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아프지?”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예”하고 눈물을 훔치며 대답하자
“오늘만 참아”하고 말하면서 아저씨는 펌프질을 하였고 마침내 제 보지 구멍 안에 좆 물을 싸더니 한 번으로 끝마치기에는 제 보지의 느낌이 너무 좋다면서 좆을 빼지도 않고 다시 한 번 더 펌프질을 하여 연달아 두 번의 좆 물을 싸고는 돈을 주셨고 단화를 그냥 집으로 가져가면 의심을 할지 모른다며 아빠 편으로 선물처럼 두 번에 걸쳐 보내주겠다고 했고 그 후로도 아저씨에게만 원조교제를 계속 하면서 단화가 달은 것을 보면 아빠 편으로 선물처럼 위장하여 보내주었습니다.
아저씨와의 원조교제는 중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계속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한 바람에 인근 도시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고등학교 이학년이 된 여름방학 때 집으로 가려는 길에 구둣방 앞을 지나갔는데 문이 닫혀있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 아빠에게 구둣방 아저씨 이야기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구둣방 아저씨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과도 원조교제를 하였고 더욱더 놀라게 만든 것은 중학생뿐이 아니라 제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의 사학년 여학생하고도 원조교제를 하였고 그 여학생의 부모가 씀씀이가 헤퍼진 아이를 닦달하자 그 아이는 구둣방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한다고 실토를 하였고 그날로 구둣방 아저씨는 감옥으로 갔다고 말하며 혹시 너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고 하기에 아니라고 부인을 하며 넘기느라 몇 칠 간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책에 매달렸습니다.
전교 일등을 한 번도 양보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여 집안 형편으로 보면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할 입장이었지만 선생님들의 격려로 대입수능시험을 쳤습니다.
제가 유학을 나왔던 도시의 학생들과 재수생들 중에 최고의 성적이 나와 버렸습니다.
대학 등록금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역 유지들께서 서로 후원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학도 주선을 하고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대학 이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와서도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삼학년이 되던 해에 재미 교포 분이 유학을 온 촉망 받는 학생들과 유학을 왔다가 졸업을 하고 막 취업을 한 유망주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하여 교류회를 주선하였습니다.
거기에 저도 촉망 받는 학생으로 추천이 되어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를 유심히 관찰한 막 취업을 한 유망주 한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몰랐습니다.
“자취하세요? 하숙하세요?”교류회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려고 저택을 나서는데 한 남자가 따라오며 물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있어요.”하고 말하자
“그런 차도 없겠군요?”하기에
“예 없어요.”하고 대답하자
“여기 택시기사들 안심을 하지 못 해요, 언제 돌변을 할지 모르거든요.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싫다고만 안 하신다면”그 남자가 조심스럽게 제 눈치를 보며 말하였습니다.
그게 지금의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미국 유수의 기업 연구소에 근무를 하였고 마이클이라는 미국 이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미국 이름을 하나 가자라고 하면서 스잔이 어떠냐고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저는 스잔이란 미국식 이름을 그때부터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와서 공부만 하면서 기숙사와 학교만 오고가던 저에게 그 남자는 주말이면 발이 되어주고 밥도 사주었습니다.
사학년에 오르기 몇 칠 전 그가 저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이층을 세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일층에는 주인 내외와 나중에 등장을 한 아들이자 또 하나의 마이클이란 이름을 가진 애가 살고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은 날 저는 황당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집안으로 안내가 되었고 조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도중 그 남자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스잔 저는 당신과 이런 식으로 평생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싫다면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그냥 나가시면 되고요 이렇게 살아주시기를 원하신다면 이것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실오라기 한 롱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오더니 제 앞에 무릎을 꿇고는 등 뒤에 숨겨온 꽃다발을 제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마.....마이클.......”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내민 꽃다발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였습니다.
“선택은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하세요, 가시던지 이 꽃다발을 받으시든지”꽃다발을 제 턱 밑에까지 내밀며 말하였습니다.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유학을 왔고 대학을 졸업하면 귀국을 해야 할 입장에서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의 청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꽃다발을 받자마자 그 남자 아니 그이는 저를 번쩍 들더니 저를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잠간만”전 그이의 가슴을 밀쳤습니다.
6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미 6년 전에 순결을 단화 두 켤레와 십만 원의 돈과 바꾸었기에 숫처녀가 이님을 먼저 말을 해야 실망을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왜요? 저도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지금 스잔 나이또래에서 숫처녀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그이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저의 옷을 마구 벗겼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반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에~잇! 아~뿌듯하네요. 스잔 이 정도면 처녀나 다름이 없어요. 사랑해요”마이클이 좆을 제 보지에 박고는 제 젖가슴을 짚고 밑과 제 얼굴을 번갈아보며 흠족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고마워요 마이클”전 마이클의 목에 매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여 마이클이 좋다고 하여 한 것이지 저로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말 그대로 아주 밋밋한 빠구리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마이클의 여자가 되어버린 저는 기숙사에서 나와 마이클과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유학비용을 지원 해 주시는 독지가님에게 연락을 하여 곧 결혼을 할 것 같으며 결혼을 할 남자가 나머지 학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저에게 지원하셨던 돈을 다른 학생에게 지원을 해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과 그이 집에 우리가 결혼을 하겠다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이 집에서는 파란 눈의 며느리를 보지 않고 한국 며느리인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무조건 찬성을 하셨고 반면 우리 집에서는 남은 학기를 졸업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재작년 졸업을 앞두고 그이와 나는 어디서 어떻게 결혼식을 올리느냐로 많은 의논을 하였습니다.
시가집은 전라도의 작은 시골이고 우리 집은 강원도의 두메산골이라 어디서 하느냐가 제일 문제였습니다.
그이는 전라도의 작은 시골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와 박사학위까지 받고 미국 굴지의 기업 연구소에서 근무를 하는데 시가집 식구들의 경우 그런 아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자기 쪽에서 하자고 하였고 저희 집에서는 여자 집 근처에서 하는 것이 당연 것이 아니냐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곳에서 하자고 하였고 거기다가 더 기가 찬 것은 그이가 유학을 와 다녔던 학교의 선후배들과 직장동료들 그리고 제가 2 년 간 다녔던 대학의 선후배들도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라고 야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장소 문제는 미신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 덕에 아주 쉽게 풀려버렸습니다.
그이와 저의 사주와 이름을 가지고 철학관에 갔더니 둘 다 이상하게 세 번씩 결혼식을 올릴 팔자라고 나왔다고 했습니다.(이런 사주가 있겠습니까? 소설로 봐주시길......제보자님의 부탁임)
얼마나 우습든지 엄마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엄마도 우리의 사주를 달라고 하였습니다.(엄마는 무종교이지만 미시도 그리 좋아하지 않음)
다음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간 철학관에서도 같은 점괘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이가 우리 엄마하고 통화하던 전화기를 빼앗듯이 낚아채더니 처갓집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한 번 하고 자기 집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한 번 하고 미국의 돌료 내지는 선후배들이 원하는 곳에서 한 번 하면 세 번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엄마는 수화기에서 멀리 떨어져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저에게도 들릴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였고 그이가 시가집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시아버님은 영원히 잊지 않게 구식 결혼식을 준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봄 우리는 귀국을 하여 제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도시에서 많은 신부 측의 하객들의 축하와 신랑 측에서는 부모형제들만 참석하여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고 이틀 뒤 전라도의 작은 시골마을로 내려간 우리는 다시 전통혼례를 신랑 측의 많은 하객들과 우리 집의 부모형제가 참석을 한 가운데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 주일 후 우리는 다시 미국의 우리가 사는 곳의 작은 교회에서 아들 며느리 장 둔덕과 사위 딸을 잘 둔 덕에 시가집 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대하여 대학 선후배와 그이의 직장 동료들의 축복을 받으며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저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남편은 남편이 관계하는 화사의 임직원들과 골프모임을 가고 저 혼자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스잔 내가 누구?”갑자가 누군가가 등 뒤에서 제 눈을 가리며 물었습니다.
저 문제의 인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평소에도 저의 근처에만 오면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하던 집주인의 아들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마이클이었지만 그날의 스킨십은 평소와는 완전하게 차원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냥 눈만 가린 것이 아니라 마이클의 하체를 제 등에 밀착을 시키고 했기 때문이며 그도 뭔가 아주 딱딱한 것이 등에 닿은 것입니다.
초등학생이지만 키는 거의 저와 비슷할 정도이지만 장난꾸러기라 무슨 나무막대기를 가지도 와 등에 붙이고 장난을 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마이클 이게 뭐야?”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손을 뒤로 하여 딱딱한 그 무엇인가를 움켜잡고 돌아서 앉았습니다.
“오~마이 갓!”전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 손에 잡혀 있는 것은 나무막대기가 아니라 마이클의 좆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마이클의 좆 굵기였습니다.
남편의 좆은 제 손아귀에 너끈히 잡혔지만 마이클의 좆을 다 쥐어지지 않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남았으니 말입니다.
“스잔 볼래요?”개구쟁이답게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궁금하였지만 겨우 초등학생에게 보고 싶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잔 봐요”바지를 내렸다.
“오~마이 갓!”전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좆은 발기가 되어야 겨우 10Cm정도가 되는데 제 눈앞에 들어난 초등학생 마이클의 좆은 제 손 뼘으로 한 뼘이 훨씬 넘어 보였습니다.
다만 흠이라면 남편의 좆은 발기가 되면 분기탱천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인데 비하여 마이클의 좆은 축 늘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잔 이게 스잔 만 보고 생각하면 이렇게 돼요”마이클이 좆을 제 눈앞으로 들이밀며 말하였다.
“그래 어쩌라고”그렇게 말하면서도 저의 시선은 거의 야구방망이 수준의 마이클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스잔이 우리 집으로 오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어요.”마이클이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나와 마이클 여자 친구가 무슨 관계지?”물으면서도 시선은 마이클 좆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는 여자 찬구가 저의 섹스 상대였지만 섹스를 하지 못 해도 스잔만 생각하면 자위도 즐거워요”마이클 입이서는 제가 상상도 하지 못 하였던 말이 나왔습니다.
사실 가끔 집 주인 내외와 마이클 그리고 우리 부부가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그럴 경우 마이클은 항상 제 곁에 앉았습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제 남편의 미국식 이름도 같은 마이클이 아닙니까.
두 마이클이 함께 있을 경우 남편은 그냥 마이클이고 주인 아들 마이클을 스몰 마이클로 부릅니다.
그럴 경우 주인 내외는 농담처럼 스잔은 양 사이드에 마이클을 끼고 음식을 먹으니 행복하겠다고 놀렸습니다.
그러면 마이클은 대담하게 제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쓰다듬은 적이 골백번은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전혀 몰랐으나 그날 알아버린 것입니다.
“재작년이이면 마이클 사학년 때인데 그 나이에도 섹스를 했어?”놀라며 물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스잔”제 질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래서?”여전히 마이클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고 물었습니다.
“작은 마이클도 사랑을 해 주면 안 돼요?”하고 말하면서 저의 팔을 당겨 다시 좆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좋아 오늘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야 알았지?”굵고 긴 좆을 손으로 잡고 마이클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어디까지?”마이클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스잔은 이걸 빨고 난 스잔의 그걸 빤 후 마지막으로 섹스까지”초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말하자
“좋아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약속을 하면”하고 말하자
“스잔이 마이클을 찾지 않으면 오케이”당당하게 말하였다.
“좋아 벗어”저는 마이클의 좆을 놓으며 말하고는 옷을 벗어서 던져버렸습니다.
“오~스잔 보지 멋져요”제 알몸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호호호 그래 마이클 좆도 멋져”먼저 누운 마이클과 반대로 마이클 몸 위에 몸을 포갰습니다.
포개자마자 마이클을 제 가랑이를 벌리고 보지를 빨기 시작하였고 저는 겨우 초등학교 육한년 밖에 안 된 마이클의 좆에 난 노란 털을 신기하게 보다가는 마이클의 좆을 잡고 입을 벌리고 넣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거의 턱이 빠질 만큼 버려서 겨우 입안에 낳을 수 있었고 빨기 보다는 혀로 좆 대가리를 날름대며 용두질을 쳐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인 안까지 글어 온 것을 마이클의 좆 대가리가 전부였고 만약 좆 전체를 입안으로 박아버린다며 아마 마이클의 좆 끝이 제 위장까지 도달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길어보였습니다.
“웩! 꿀꺽~꿀꺽~”남편의 좆 물보다 냄새는 더 고약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코를 잡고 마이클의 좆 물을 모조리 삼켰습니다.
“마이클 좋았어?”몸을 바로하고 이번에는 제가 거실 바닥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습니다.
“스난 너무 좋았어요, 스잔은?”마이클이 제 젖가슴을 짚고 좆을 제 보지구멍 입구로 가져가며 물었습니다.
“너무 좋았어, 아~~너무 깊어 뿌듯하고”전 마이클의 팔목을 잡고 고개를 들고 밑을 봤습니다.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경우 하체를 조금만 밀착을 하여도 쫒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제 보지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마이클의 좆 끝이 자궁을 찌르고 있는데도 마이클의 좆은 거의 절반 정도는 제 보지구멍에 들어가 보지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얼마나 굵었던지 그 빡빡함은 예전에 구둣방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처음으로 하였을 때처럼 보지구멍이 찢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퍽퍽퍽,퍽-억-억, 퍽퍽퍽, 푸-욱, 퍽-으-억”마이클은 초등학교 육학년 답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펌프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아...보지가...꽈악...차는..거...같애...뿌듯해...”엉덩이는 자연스럽게 들썩여졌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초등학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흑!, 학학학, 악, 하학, 깊어. 악!, 여보 어서 보지 찢어지겠어.”숨을 헐떡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마구 내뱉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남편의 좆만 2년 동안 받아들이 제 보지구멍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아---------------------악!, 여-----보 아---악, 아! 좋아”보지구멍이 늘어나서 남편에게 타박을 받을 일은 나중 문제였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젊다는 것 아니 어리다는 것이 어째서 좋은 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학!, 여보 좋아, 너무 깊어. 학학학, 어서어서 너무 깊어 여보”자궁을 마구 찌르는 그 기분이 그렇게 짜릿 할 수가 없었습니다.
“퍽.. 퍽퍽퍽….퍽퍽퍽퍽!!!!!! 퍽.. 퍽퍽…스잔 안에 싸도 돼요”마이클이 천천히 펌프질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학, 여보 나, 나오려고 해, 어서 어서 싸서 넣어줘. 아학,학학, 지금 임신해서 안에 싸도 돼”마이클 몸에 매달리며 말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금년 초여름에 임신을 한 것을 알았습니다.
“퍽퍽퍽, 퍽퍼퍽파-팍파-악.퍽-퍽-퍽, 스잔 기분 좋아?”마이클이 저의 배를 쓰다듬으며 펌프질하며 물었습니다.
“아-학, 여보 어서 더 깊이 넣어줘. 학학학, 여보 사랑해, 어서 더 깊이”제가 죽일 년이란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을 한 년이 외간남자 그도 겨우 초등학교 육학년 밖에 되지 않은 마이클의 좆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다시 마이클의 펌프질이 빨라졌습니다.
“악!, 악!,악!, 학학학, 아 학-아앙,학아항”마이클의 좆 끝이 자궁을 찌를 때마다 악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퍽-----윽! 억,퍽 퍽 퍽퍽퍽퍽퍽!!!!!!!!!!!!!!!”대단한 마이클이었습니다.
“학학, 나 몰라, 아 더,학학학, 어서 학학학, 안돼, 엉엉엉 제발 안돼 “아아아,학학학,아학,학학,앙아학”저는 미쳐있었습니다.
“쩝쩝 쯔릅...쯔릅...음. 쩝... 쩝... 퍽.. 퍽퍽퍽….퍽퍽퍽퍽!!!!!! 퍽.. 퍽퍽…”마이클이 엎드리는가 싶더니 마이클이 제 젖을 빨면서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흑, 흐..응.., 아아! 여보 사랑해요”저는 마이클은 남편으로 오해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하였습니다.
“퍽.. 퍽퍽퍽….퍽퍽퍽퍽!!!!!!!!!!!!!!!!!!!!!!!!!!!!!!!!!!!”고개를 들더니 머리를 뒤로 제키고 빠른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아흑...아아아......처음이야...아아아....더..더...아아앙...여보.......아아아...”미친 듯이 도리질을 쳤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으~~~~~”마이클이 다시 젖가슴을 빨려고 머리를 숙이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클의 좆 물이 제 보지 안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장점이 있으면 한 가지 허물이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클의 경우 좆이 굵고 길어 자궁에 자극을 주고 보지구멍이 빡빡하게 느껴지는 장점을 가졌으나 길게 가지를 못 하였고 남편의 경우 짧고 가는 좆을 가진 것이 단점이었지만 반대로 아주 길게 제가 항복을 할 때까지; 해 주는 장점을 가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마이클과 빠구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손가락을 보지구멍에 넣어본 결과 제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보지구멍이 늘어 난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의 추궁과 타박을 받을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기를 닦고 새 팬티와 브래지어를 하기 위하여 방으로 들어와 팬티와 브래지어 등 내복을 넣어둔 박스를 열고서 걱정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신혼 초가 지나자 주말에 남편은 집에 붙어 있는 적이 드물었습니다.
동료직원 혹은 거래처 임직원 그리고 상사들과 주말이면 항상 골프모임이나 파티에 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남편에게 결혼을 괜히 한 것 같다고 푸념을 하였더니 남편은 조금만 참으라고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물건을 선물하였는데 그게 바로 인조 좆 아니 바이브레이터였다.
남편의 좆 굵기와 길이가 비슷한 것으로 말입니다.
전 옷을 갈아입은 후 집에서 거의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성인용품점으로 갔고(집 근처에도 있지만 행여 누가 볼세라......)거기서 남편의 좆 보다 굵고 긴 바이브레이터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남편이 저에게 올라와 좆을 보지구멍에 박더니 바로 빼고 제 보지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전 새로 산 바이브레이터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자주 안 올라와 굴고 긴 놈으로 사서 사용을 한다고 하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이클에게 처음이고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은 것과는 달리 남편이 골프모임에 나가기만 하면 제가 정원에서서 눈치를 보고 있던 마이클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려 올라오라고 하여 즐기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인이나 서양 사람들을 상대로 빠구리를 할 여성에게 조언을 드립니다.
미국이나 서양 남자들 한국 남자들과 달리 거의 조루입니다.
만족을 얻고 싶으시다면 필히 전회를 길게 아니 아주 길게 하여 거의 오르가즘이 최고조에 달해 갈 때 좆을 보지에 박게 하고 펌프질을 시키시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만족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남편과는 미국 유학을 와서 만났고요 남편은 지금 미국 굴지의 기업 연구소에서 일을 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머리가 좋은 남자입니다.
시가집은 전라도의 한 작은 시골이고 친정은 강원도의 두메산골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곳입니다.
물론 시부모님들이나 남편의 형제들은 한국에서 있고 저희 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작년에 한국에 잠시 들러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데 시가집이나 친정 식구들은 원만하면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지금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만큼 대우를 해 주겠다는(물론 한국 경제와 미국 경제의 차이를 인정하기에 거기에 비례한 대우를 말함)기업이 나타나지를 않고 또 지금의 화사에서는 장래를 보장을 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를 못 하고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호호호 뭐라고요?
도미를 할 당시 숫처녀였냐고요?
지금 저하고 농담 따 먹기 하자는 겁니까?
인터넷을 통하여 현제의 고국 성풍속도를 알아 본 결과 초등학교에서도 숫처녀는 천연기념물 대우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제가 두메산골에 살면서 다니던 중학교 시절에 유행 한 것이 하나가 있었어요.
아니 유행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애가 되고 놀림감이 되었었죠.
그게 뭐냐고요.
원조교제!
원조교제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에 그 문제의 원조교제는 마치 전염병처럼 우리 또래 이상의 아이들에게 전염이 되고 있었습니다.
헤헤헤 저도 이학년 때 그 원조교제라는 전염병에 그만 감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학교 근처에 구둣방이 있었고 시골이다 보니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 신발이 달았다고 마냥 새 신발만 사 달리고 할 수가 없었기에 신발 굽이 달아버리면 구둣방에 가서 고무판을 엇대 붙여 신고 다녀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둣방 주인아저씨는 40세가 조금 넘은 저희 아빠와 비슷한 또래의 마음씨도 곱게 보였지만 키고 크고 얼굴도 미남이었습니다.
그날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으려다 보니 신발 밑창에 꿇려져 있지 뭡니까.
마침 단화 굽도 달아서 갈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운동화까지 말썽이자 저는 출석 체크만 하고 체육선생님에게 사정을 하고 수선을 하러 구둣방으로 갔습니다.
“나미 신발 수선하러 왔니?”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예 운동화도요”하고 단화와 운동화를 함께 드리자
“그래, 요즘 너희들 원조교제 많이 한다며?”아저씨가 달은 단화 밑창을 뜯으며 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헤헤헤 하는 애들이 많은가 봐요”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수롭게 대답을 하자
“너는?”아저씨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직”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생각은 있니?”밑바닥을 고무판에 대고 볼펜으로 그리며 물었습니다.
“헤헤헤 몰라요”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여기 안으로 들어가 앉아”신발을 수선하는 공간의 안으로 의자를 놓으며 말하였습니다.
구둣방의 수선 실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앞에 계단식으로 신발을 진열하고 그 뒤에 좁은 공간에 재봉틀이며 가위를 비롯하여 본드며 각종 도구들이 있고 신발 수선을 거기서 하는 곳인데 그 안쪽으로 들어가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아무런 의심도 없이 저는 아저씨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낮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어디 보자”고무판을 오리다 말고 갑자기 손을 씻지 뭐예요.
“..............”전 아저씨의 그런 행동에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미도 원조교제를 해도 될 것인지 아저씨가 먼저 조금만 볼까”하고는 갑자기 제 교복치마 안으로 손을 넣지 뭐예요.
정상적으로 했다면 고함을 지르거니 뛰쳐나와야 할 것인데 저는 이것이 원조교제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되레 가랑이를 벌려주었고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원조교제에 대한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는 팬티를 내렸고 저는 가랑이를 벌려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호~오 밋밋한 것이 먹을 만 하겠는 걸”아저씨가 제 보기 금을 손가락으로 벌려보며 말하였습니다.
“빠구리를 먹는다고 해요?”중학교 이학년이었지만 성에 대하여서는 남자가 좆을 보지구멍에 박는 것을 빠구리라고 하고 재수가 없으면 임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가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후후후 그래 나미 아저씨하고 원조교제 한 번 할래?”아저씨가 저의 보지둔덕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얼마 줄 건데요. 참 아저씨 소문나면 어떻게 해요?”아저씨와 아저씨가 쓰다듬는 제 보지둔덕과 아저씨의 손바닥을 번갈아보며 물었습니다.
“단화 두 켤레하고 십만 원 나미야 내가 너희 아빠하고 친한데 소문을 내겠니?”아저씨가 말하였습니다.
사실 아저씨와 우리 아버지는 아주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아버지의 구두도 아저씨 가게에서 맞추었고 장날이면 구두를 맞추거나 수선을 할 일이 없어도 구둣방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봤었습니다.
그러니 소문에 대한 문제만은 생길 이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헤헤헤 그런데 하고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요?”맞춤 단화 두 켤레와 십만 원이란 부분에서는 만족을 한 것입니다.
“이거면 돼”아저씨가 구두에 다는 쇠붙이 장식이 든 통을 꺼내더니 뒤졌고 그리고 그 안에서 캡슐 모양의 좌약 같은 것을 끄집어내어 저에게 주었고 그 작은 좌약에는 <노원>이란 글과 함께 피임약이란 글이 조그맣게 쓰여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 노원이란 피임약 이름은 흔히 들었던 이름이었기에 구태여 피임약이란 글이 적혀 있지 않았어도 저는 그게 피임약이란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때 넣고 해 볼까?”소문과 피임 문제가 해열 되자 아저씨가 하자고 하면 상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저씨가 제안을 하였습니다.
“오늘 한 번으로 끝이어요?”아저씨가 피임약을 가위로 뜯기에 그걸 보면서 묻자
“미나나 원하면 다음부터는 십만 원에 어때?”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좋아요 아~아파요”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저씨는 그 피임약을 제 보지구멍에 대고 눌러서 끼웠습니다.
“오늘만 아프고 다음부터는 아프지 않아”하고 말하더니 저를 일으켜 세우고 재봉틀 다이에 팔을 짚고 엎드리게 하더니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밑으로 내렸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아저씨의 좆을 받아들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셈이었습니다.
“!”아저씨고 제 보주구멍에 좆을 박을 준비를 하는데 전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게 좆도 좆이냐 하는 그럼 심정이지만요.
당시에 제 눈에 비친 아저씨의 좆을 좆이 아니라 아예 몽둥이 같았으니까요.
<저게 정말 네 보지에 들어가기나 할까?>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다음 수업 시작 하려면 시간 넉넉하지?”아저씨가 저의 치마 단을 허리 위로 올려 치마 끝말에 끼우고 엉덩이를 잡으며 물었습니다.
“예”대답을 하였지만 무척이나 떨렸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좆을 제 보지에 다고 문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저씨 이상하고 오줌이 마려운 것 같아요.”이상한 기분이 들며 뭔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아 말하자
“후후후 오줌이 아니라 보지구멍에서 나오는 물이야”아저씨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났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혼자서 가끔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거니 책걸상에 보지를 대고 비빌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오줌인가 싶어 보지 금을 문지르면 손에 묻어나온 것은 오줌하고는 색깔부터가 맑은 물이었지만 그게 무슨 물이고 무슨 자용을 하는지를 알지는 못 하였었습니다.
“이 물이 나오면 미끄럽게 잘 들어가져, 아저씨 좆이 이렇게 문질러도 처음처럼 까칠까칠 하지 않지?”아저씨가 좆으로 보지 금에 대고 상하로 문지르며 말하였습니다.
“예”하고 대답하자
“이제 박을 거야 처음엔 아파서 비명이 나올 수가 있거든 지금 한가하여 자나가는 사람도 안 보이지만 행여 몰라 그러니 손으로 입을 꼭 막아”하고 아저씨가 제 보지구멍 입구에 좆을 맞추고 말하자
“예”하고 대답을 하고는 재봉틀 다이에 팔꿈치를 대고는 의지하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읍~!”입을 막는다고 막았지만 막상 아저씨의 몽둥이 같은 좆이 보지구멍에 박히자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랫배로 포만감을 느껴지며 더부룩한 기분까지 생겼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아프지?”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예”하고 눈물을 훔치며 대답하자
“오늘만 참아”하고 말하면서 아저씨는 펌프질을 하였고 마침내 제 보지 구멍 안에 좆 물을 싸더니 한 번으로 끝마치기에는 제 보지의 느낌이 너무 좋다면서 좆을 빼지도 않고 다시 한 번 더 펌프질을 하여 연달아 두 번의 좆 물을 싸고는 돈을 주셨고 단화를 그냥 집으로 가져가면 의심을 할지 모른다며 아빠 편으로 선물처럼 두 번에 걸쳐 보내주겠다고 했고 그 후로도 아저씨에게만 원조교제를 계속 하면서 단화가 달은 것을 보면 아빠 편으로 선물처럼 위장하여 보내주었습니다.
아저씨와의 원조교제는 중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계속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한 바람에 인근 도시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고등학교 이학년이 된 여름방학 때 집으로 가려는 길에 구둣방 앞을 지나갔는데 문이 닫혀있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 아빠에게 구둣방 아저씨 이야기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구둣방 아저씨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과도 원조교제를 하였고 더욱더 놀라게 만든 것은 중학생뿐이 아니라 제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의 사학년 여학생하고도 원조교제를 하였고 그 여학생의 부모가 씀씀이가 헤퍼진 아이를 닦달하자 그 아이는 구둣방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한다고 실토를 하였고 그날로 구둣방 아저씨는 감옥으로 갔다고 말하며 혹시 너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고 하기에 아니라고 부인을 하며 넘기느라 몇 칠 간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책에 매달렸습니다.
전교 일등을 한 번도 양보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여 집안 형편으로 보면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할 입장이었지만 선생님들의 격려로 대입수능시험을 쳤습니다.
제가 유학을 나왔던 도시의 학생들과 재수생들 중에 최고의 성적이 나와 버렸습니다.
대학 등록금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역 유지들께서 서로 후원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학도 주선을 하고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대학 이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와서도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삼학년이 되던 해에 재미 교포 분이 유학을 온 촉망 받는 학생들과 유학을 왔다가 졸업을 하고 막 취업을 한 유망주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하여 교류회를 주선하였습니다.
거기에 저도 촉망 받는 학생으로 추천이 되어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를 유심히 관찰한 막 취업을 한 유망주 한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몰랐습니다.
“자취하세요? 하숙하세요?”교류회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려고 저택을 나서는데 한 남자가 따라오며 물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있어요.”하고 말하자
“그런 차도 없겠군요?”하기에
“예 없어요.”하고 대답하자
“여기 택시기사들 안심을 하지 못 해요, 언제 돌변을 할지 모르거든요.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싫다고만 안 하신다면”그 남자가 조심스럽게 제 눈치를 보며 말하였습니다.
그게 지금의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미국 유수의 기업 연구소에 근무를 하였고 마이클이라는 미국 이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미국 이름을 하나 가자라고 하면서 스잔이 어떠냐고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저는 스잔이란 미국식 이름을 그때부터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와서 공부만 하면서 기숙사와 학교만 오고가던 저에게 그 남자는 주말이면 발이 되어주고 밥도 사주었습니다.
사학년에 오르기 몇 칠 전 그가 저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이층을 세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일층에는 주인 내외와 나중에 등장을 한 아들이자 또 하나의 마이클이란 이름을 가진 애가 살고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은 날 저는 황당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집안으로 안내가 되었고 조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도중 그 남자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스잔 저는 당신과 이런 식으로 평생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싫다면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그냥 나가시면 되고요 이렇게 살아주시기를 원하신다면 이것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실오라기 한 롱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오더니 제 앞에 무릎을 꿇고는 등 뒤에 숨겨온 꽃다발을 제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마.....마이클.......”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내민 꽃다발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였습니다.
“선택은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하세요, 가시던지 이 꽃다발을 받으시든지”꽃다발을 제 턱 밑에까지 내밀며 말하였습니다.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유학을 왔고 대학을 졸업하면 귀국을 해야 할 입장에서 제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의 청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꽃다발을 받자마자 그 남자 아니 그이는 저를 번쩍 들더니 저를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잠간만”전 그이의 가슴을 밀쳤습니다.
6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미 6년 전에 순결을 단화 두 켤레와 십만 원의 돈과 바꾸었기에 숫처녀가 이님을 먼저 말을 해야 실망을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왜요? 저도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지금 스잔 나이또래에서 숫처녀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그이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저의 옷을 마구 벗겼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반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에~잇! 아~뿌듯하네요. 스잔 이 정도면 처녀나 다름이 없어요. 사랑해요”마이클이 좆을 제 보지에 박고는 제 젖가슴을 짚고 밑과 제 얼굴을 번갈아보며 흠족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고마워요 마이클”전 마이클의 목에 매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여 마이클이 좋다고 하여 한 것이지 저로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말 그대로 아주 밋밋한 빠구리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마이클의 여자가 되어버린 저는 기숙사에서 나와 마이클과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유학비용을 지원 해 주시는 독지가님에게 연락을 하여 곧 결혼을 할 것 같으며 결혼을 할 남자가 나머지 학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저에게 지원하셨던 돈을 다른 학생에게 지원을 해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과 그이 집에 우리가 결혼을 하겠다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이 집에서는 파란 눈의 며느리를 보지 않고 한국 며느리인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무조건 찬성을 하셨고 반면 우리 집에서는 남은 학기를 졸업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재작년 졸업을 앞두고 그이와 나는 어디서 어떻게 결혼식을 올리느냐로 많은 의논을 하였습니다.
시가집은 전라도의 작은 시골이고 우리 집은 강원도의 두메산골이라 어디서 하느냐가 제일 문제였습니다.
그이는 전라도의 작은 시골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와 박사학위까지 받고 미국 굴지의 기업 연구소에서 근무를 하는데 시가집 식구들의 경우 그런 아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자기 쪽에서 하자고 하였고 저희 집에서는 여자 집 근처에서 하는 것이 당연 것이 아니냐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곳에서 하자고 하였고 거기다가 더 기가 찬 것은 그이가 유학을 와 다녔던 학교의 선후배들과 직장동료들 그리고 제가 2 년 간 다녔던 대학의 선후배들도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라고 야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장소 문제는 미신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 덕에 아주 쉽게 풀려버렸습니다.
그이와 저의 사주와 이름을 가지고 철학관에 갔더니 둘 다 이상하게 세 번씩 결혼식을 올릴 팔자라고 나왔다고 했습니다.(이런 사주가 있겠습니까? 소설로 봐주시길......제보자님의 부탁임)
얼마나 우습든지 엄마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엄마도 우리의 사주를 달라고 하였습니다.(엄마는 무종교이지만 미시도 그리 좋아하지 않음)
다음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간 철학관에서도 같은 점괘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이가 우리 엄마하고 통화하던 전화기를 빼앗듯이 낚아채더니 처갓집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한 번 하고 자기 집에서 원하는 장소에서 한 번 하고 미국의 돌료 내지는 선후배들이 원하는 곳에서 한 번 하면 세 번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엄마는 수화기에서 멀리 떨어져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저에게도 들릴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였고 그이가 시가집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시아버님은 영원히 잊지 않게 구식 결혼식을 준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봄 우리는 귀국을 하여 제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도시에서 많은 신부 측의 하객들의 축하와 신랑 측에서는 부모형제들만 참석하여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고 이틀 뒤 전라도의 작은 시골마을로 내려간 우리는 다시 전통혼례를 신랑 측의 많은 하객들과 우리 집의 부모형제가 참석을 한 가운데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 주일 후 우리는 다시 미국의 우리가 사는 곳의 작은 교회에서 아들 며느리 장 둔덕과 사위 딸을 잘 둔 덕에 시가집 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대하여 대학 선후배와 그이의 직장 동료들의 축복을 받으며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저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남편은 남편이 관계하는 화사의 임직원들과 골프모임을 가고 저 혼자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스잔 내가 누구?”갑자가 누군가가 등 뒤에서 제 눈을 가리며 물었습니다.
저 문제의 인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평소에도 저의 근처에만 오면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하던 집주인의 아들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마이클이었지만 그날의 스킨십은 평소와는 완전하게 차원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냥 눈만 가린 것이 아니라 마이클의 하체를 제 등에 밀착을 시키고 했기 때문이며 그도 뭔가 아주 딱딱한 것이 등에 닿은 것입니다.
초등학생이지만 키는 거의 저와 비슷할 정도이지만 장난꾸러기라 무슨 나무막대기를 가지도 와 등에 붙이고 장난을 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마이클 이게 뭐야?”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손을 뒤로 하여 딱딱한 그 무엇인가를 움켜잡고 돌아서 앉았습니다.
“오~마이 갓!”전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 손에 잡혀 있는 것은 나무막대기가 아니라 마이클의 좆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마이클의 좆 굵기였습니다.
남편의 좆은 제 손아귀에 너끈히 잡혔지만 마이클의 좆을 다 쥐어지지 않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남았으니 말입니다.
“스잔 볼래요?”개구쟁이답게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궁금하였지만 겨우 초등학생에게 보고 싶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잔 봐요”바지를 내렸다.
“오~마이 갓!”전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좆은 발기가 되어야 겨우 10Cm정도가 되는데 제 눈앞에 들어난 초등학생 마이클의 좆은 제 손 뼘으로 한 뼘이 훨씬 넘어 보였습니다.
다만 흠이라면 남편의 좆은 발기가 되면 분기탱천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인데 비하여 마이클의 좆은 축 늘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잔 이게 스잔 만 보고 생각하면 이렇게 돼요”마이클이 좆을 제 눈앞으로 들이밀며 말하였다.
“그래 어쩌라고”그렇게 말하면서도 저의 시선은 거의 야구방망이 수준의 마이클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스잔이 우리 집으로 오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어요.”마이클이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나와 마이클 여자 친구가 무슨 관계지?”물으면서도 시선은 마이클 좆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는 여자 찬구가 저의 섹스 상대였지만 섹스를 하지 못 해도 스잔만 생각하면 자위도 즐거워요”마이클 입이서는 제가 상상도 하지 못 하였던 말이 나왔습니다.
사실 가끔 집 주인 내외와 마이클 그리고 우리 부부가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그럴 경우 마이클은 항상 제 곁에 앉았습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제 남편의 미국식 이름도 같은 마이클이 아닙니까.
두 마이클이 함께 있을 경우 남편은 그냥 마이클이고 주인 아들 마이클을 스몰 마이클로 부릅니다.
그럴 경우 주인 내외는 농담처럼 스잔은 양 사이드에 마이클을 끼고 음식을 먹으니 행복하겠다고 놀렸습니다.
그러면 마이클은 대담하게 제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쓰다듬은 적이 골백번은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전혀 몰랐으나 그날 알아버린 것입니다.
“재작년이이면 마이클 사학년 때인데 그 나이에도 섹스를 했어?”놀라며 물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스잔”제 질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래서?”여전히 마이클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고 물었습니다.
“작은 마이클도 사랑을 해 주면 안 돼요?”하고 말하면서 저의 팔을 당겨 다시 좆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좋아 오늘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야 알았지?”굵고 긴 좆을 손으로 잡고 마이클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어디까지?”마이클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스잔은 이걸 빨고 난 스잔의 그걸 빤 후 마지막으로 섹스까지”초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말하자
“좋아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약속을 하면”하고 말하자
“스잔이 마이클을 찾지 않으면 오케이”당당하게 말하였다.
“좋아 벗어”저는 마이클의 좆을 놓으며 말하고는 옷을 벗어서 던져버렸습니다.
“오~스잔 보지 멋져요”제 알몸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호호호 그래 마이클 좆도 멋져”먼저 누운 마이클과 반대로 마이클 몸 위에 몸을 포갰습니다.
포개자마자 마이클을 제 가랑이를 벌리고 보지를 빨기 시작하였고 저는 겨우 초등학교 육한년 밖에 안 된 마이클의 좆에 난 노란 털을 신기하게 보다가는 마이클의 좆을 잡고 입을 벌리고 넣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거의 턱이 빠질 만큼 버려서 겨우 입안에 낳을 수 있었고 빨기 보다는 혀로 좆 대가리를 날름대며 용두질을 쳐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인 안까지 글어 온 것을 마이클의 좆 대가리가 전부였고 만약 좆 전체를 입안으로 박아버린다며 아마 마이클의 좆 끝이 제 위장까지 도달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길어보였습니다.
“웩! 꿀꺽~꿀꺽~”남편의 좆 물보다 냄새는 더 고약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코를 잡고 마이클의 좆 물을 모조리 삼켰습니다.
“마이클 좋았어?”몸을 바로하고 이번에는 제가 거실 바닥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습니다.
“스난 너무 좋았어요, 스잔은?”마이클이 제 젖가슴을 짚고 좆을 제 보지구멍 입구로 가져가며 물었습니다.
“너무 좋았어, 아~~너무 깊어 뿌듯하고”전 마이클의 팔목을 잡고 고개를 들고 밑을 봤습니다.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경우 하체를 조금만 밀착을 하여도 쫒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제 보지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마이클의 좆 끝이 자궁을 찌르고 있는데도 마이클의 좆은 거의 절반 정도는 제 보지구멍에 들어가 보지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얼마나 굵었던지 그 빡빡함은 예전에 구둣방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처음으로 하였을 때처럼 보지구멍이 찢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퍽퍽퍽,퍽-억-억, 퍽퍽퍽, 푸-욱, 퍽-으-억”마이클은 초등학교 육학년 답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펌프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아...보지가...꽈악...차는..거...같애...뿌듯해...”엉덩이는 자연스럽게 들썩여졌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초등학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흑!, 학학학, 악, 하학, 깊어. 악!, 여보 어서 보지 찢어지겠어.”숨을 헐떡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마구 내뱉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남편의 좆만 2년 동안 받아들이 제 보지구멍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아---------------------악!, 여-----보 아---악, 아! 좋아”보지구멍이 늘어나서 남편에게 타박을 받을 일은 나중 문제였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젊다는 것 아니 어리다는 것이 어째서 좋은 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학!, 여보 좋아, 너무 깊어. 학학학, 어서어서 너무 깊어 여보”자궁을 마구 찌르는 그 기분이 그렇게 짜릿 할 수가 없었습니다.
“퍽.. 퍽퍽퍽….퍽퍽퍽퍽!!!!!! 퍽.. 퍽퍽…스잔 안에 싸도 돼요”마이클이 천천히 펌프질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학, 여보 나, 나오려고 해, 어서 어서 싸서 넣어줘. 아학,학학, 지금 임신해서 안에 싸도 돼”마이클 몸에 매달리며 말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금년 초여름에 임신을 한 것을 알았습니다.
“퍽퍽퍽, 퍽퍼퍽파-팍파-악.퍽-퍽-퍽, 스잔 기분 좋아?”마이클이 저의 배를 쓰다듬으며 펌프질하며 물었습니다.
“아-학, 여보 어서 더 깊이 넣어줘. 학학학, 여보 사랑해, 어서 더 깊이”제가 죽일 년이란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을 한 년이 외간남자 그도 겨우 초등학교 육학년 밖에 되지 않은 마이클의 좆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다시 마이클의 펌프질이 빨라졌습니다.
“악!, 악!,악!, 학학학, 아 학-아앙,학아항”마이클의 좆 끝이 자궁을 찌를 때마다 악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퍽-----윽! 억,퍽 퍽 퍽퍽퍽퍽퍽!!!!!!!!!!!!!!!”대단한 마이클이었습니다.
“학학, 나 몰라, 아 더,학학학, 어서 학학학, 안돼, 엉엉엉 제발 안돼 “아아아,학학학,아학,학학,앙아학”저는 미쳐있었습니다.
“쩝쩝 쯔릅...쯔릅...음. 쩝... 쩝... 퍽.. 퍽퍽퍽….퍽퍽퍽퍽!!!!!! 퍽.. 퍽퍽…”마이클이 엎드리는가 싶더니 마이클이 제 젖을 빨면서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흑, 흐..응.., 아아! 여보 사랑해요”저는 마이클은 남편으로 오해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하였습니다.
“퍽.. 퍽퍽퍽….퍽퍽퍽퍽!!!!!!!!!!!!!!!!!!!!!!!!!!!!!!!!!!!”고개를 들더니 머리를 뒤로 제키고 빠른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아흑...아아아......처음이야...아아아....더..더...아아앙...여보.......아아아...”미친 듯이 도리질을 쳤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으~~~~~”마이클이 다시 젖가슴을 빨려고 머리를 숙이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클의 좆 물이 제 보지 안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장점이 있으면 한 가지 허물이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클의 경우 좆이 굵고 길어 자궁에 자극을 주고 보지구멍이 빡빡하게 느껴지는 장점을 가졌으나 길게 가지를 못 하였고 남편의 경우 짧고 가는 좆을 가진 것이 단점이었지만 반대로 아주 길게 제가 항복을 할 때까지; 해 주는 장점을 가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마이클과 빠구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손가락을 보지구멍에 넣어본 결과 제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보지구멍이 늘어 난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의 추궁과 타박을 받을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기를 닦고 새 팬티와 브래지어를 하기 위하여 방으로 들어와 팬티와 브래지어 등 내복을 넣어둔 박스를 열고서 걱정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신혼 초가 지나자 주말에 남편은 집에 붙어 있는 적이 드물었습니다.
동료직원 혹은 거래처 임직원 그리고 상사들과 주말이면 항상 골프모임이나 파티에 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남편에게 결혼을 괜히 한 것 같다고 푸념을 하였더니 남편은 조금만 참으라고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물건을 선물하였는데 그게 바로 인조 좆 아니 바이브레이터였다.
남편의 좆 굵기와 길이가 비슷한 것으로 말입니다.
전 옷을 갈아입은 후 집에서 거의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성인용품점으로 갔고(집 근처에도 있지만 행여 누가 볼세라......)거기서 남편의 좆 보다 굵고 긴 바이브레이터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남편이 저에게 올라와 좆을 보지구멍에 박더니 바로 빼고 제 보지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전 새로 산 바이브레이터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자주 안 올라와 굴고 긴 놈으로 사서 사용을 한다고 하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이클에게 처음이고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은 것과는 달리 남편이 골프모임에 나가기만 하면 제가 정원에서서 눈치를 보고 있던 마이클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려 올라오라고 하여 즐기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인이나 서양 사람들을 상대로 빠구리를 할 여성에게 조언을 드립니다.
미국이나 서양 남자들 한국 남자들과 달리 거의 조루입니다.
만족을 얻고 싶으시다면 필히 전회를 길게 아니 아주 길게 하여 거의 오르가즘이 최고조에 달해 갈 때 좆을 보지에 박게 하고 펌프질을 시키시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만족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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