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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회(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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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705회 작성일 20-01-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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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달려와 나를 일으키며 괜찮으냐고 물어보며 내 바닥에 깔린 여자의 안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고 진짜 큰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놀라서 바닥에 깔렸던 여자에게 괜찮으냐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잠시 기절해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뭐예요? 뒤에서 넘어지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이마가… 피나는 것 같은데? 저 피나요?”

놀란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며 뭔가 미끌거리는 것이 있자 주변사람들에게 피가 나느냐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넘어졌던 자리를 나는 쳐다봤다. 헐… 누군가 뱉은 가래침 위에 그녀가 넘어졌던 것이다. 그녀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만진 그 의문의 미끌거림은… 가래침….

“피는 안 나는데 뭐가 이상하네?”

주변사람이 그녀의 이마를 쳐다보며 뭐가 이상하다며 말을 한다. 나는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급한 마음에 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갔다. 달려가며 뒤를 힐끔 보니 이제야 자신의 이마에 묻은 의문의 미끌거림 정체가 가래였다는 사실에 그녀가 분노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최대한 빨리 도망치며 지하철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뚜뚜뚜-
저 멀리 내가 탑승해야 할 지하철이 다가온다. 이렇게 반가울 때가… 천천히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는 순간 지하철로 탑승을 했다. 빨리 문이 닫히고 아까 그녀가 이 지하철을 타지 않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빨리 닫아, 빨리.”

물론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은 기관사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명언이 있듯이 진심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치~ 소리와 함께 지하철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아멘,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너무 간절하게 기도했나보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앉아야 할 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하철 의자는 모두 만원, 내가 앉아서 편하게 갈 자리가 없어 다음 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동하며 찾으면 어딘가는 자리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한 칸, 두 칸을 이동하다보니 자리가 하나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저 빈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서둘러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선점해야 했다. 힘이 빠진 다리에 마지막 부스터의 힘을 이용해 최대한 빠른 잔걸음으로 그곳에 도달했다.

됐어! 이제 앉아 갈 수 있어. 나이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몸이 굳어가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 바로 옆에는 아까 내 밑에 깔려 가래침으로 이마를 도배한 그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뒤로 돌아 돌아온 칸으로 향하려 할 때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저기요!”

못 들었다. 나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을 것이다. 부르지 마라. 아무리 불러도 나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의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어 지하철 칸이 연결된 곳에서 주저앉았다.

“엄마야….”

나는 바닥에 구걸을 하듯 주저앉아 여자구두가 보이며 그 위로 청바지… 점점 시선이 위로 향하는데 아까 그녀가 맞았다. 이마에 묻은 가래침은 어떻게 할 거냐며 따질까봐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그녀가 손을 내밀어주고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혹시… 날 좋아하나? 성격 참 이상한 여자네.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이렇게 겁을 주나, 싶은 생각에 알지도 못하고 같이 웃어주었다. 그녀가 내민 하얀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까는 정말 미안했다며 경황이 없어 급하게 먼저 와서 죄송하다는 등의 핑계를 하고 있을 때 쯤…

“야, 원숭이. 맞지?”
“응? 어… 어.”

나를 안다? 나를 어떻게 알지? 그것도 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 곳 이어온 나의 별명을 어떻게 알지?

“맞구나. 아까 계단에서부터 너 같더라.”
“하하하. 그렇구나. 그런데… 누구…?”
“나 기억 안나?”

누구냐고! 너! 그걸 기억하면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서 당황하겠냐고? 모르니까 누구냐고 묻는 건데 그걸 또 나에게 모르겠냐고 질문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어. 기억이….”
“쳇, 한 번에 알아 볼 줄 알았더니.”
“세상을 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고 하다 보니 누가 누군지 잘 기억이….”
“안가인. 기억나?”
“안가인… 가인… 가인이?!”

생각났다. 오늘 동창회에 만나기로 한 동창생 가인이. 가인이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1997년 여름, 한 초등학교 운동장.
당시 유행하던 DJ.DOC의 ‘DJ.DOC와 춤을’이란 노래가 학교 운동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수돗가에서 친구들과 머리를 감으며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때 특수반에 다니던 좀 떨어지는 심영래라는 친구가 운동장에서서 땡볕을 받고 있었다.

“오동아 저 놈 뭐하는 거야?”
“응? 특이한 놈. 저러다 쓰러지고 말거야.”

나는 그 친구가 진짜 위험하다 생각되어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영래를 데리로 갔다.

“영래야, 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더위 먹어. 저쪽으로 가자.”
“싫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어. 그러니 가자.”
“싫어.”

아무리 얘기해도 영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힘이 좋았던 나는 영래의 팔을 잡고 그늘로 끌고 가기 위해 잡아 당겼다. 하지만 영래도 힘이 좋았다. 한 손으로 당기다 보니 내가 영래의 힘을 당할 수 없어 두 손으로 영래의 한 팔을 잡아 당겼다.

이 모습을 사정도 모르고 보면 마치 나와 영래가 서로 엉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 될 만한 그림이었다. 나와 영래의 신경전을 보건 친구들이 한심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기가 들렸다.

“원숭이!”

운동장 한쪽에 있던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분노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가인이었다. 가인이는 나에게 다가와 왜 애를 못살게 구냐고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너는 그냥 가라고 소리쳤다.

“뭐야? 너 싸움 좀 잘한다고 우리와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힘자랑 하냐?!”

그러면서 자기 머리를 나한테 들이밀며 자기도 때리라고 한다. 나는 가인이의 머리에 코를 부딪치고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던 다른 친구들이 달려와 왜 그러냐고 가인이에게 물었다. 가인이는 내가 영래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가인아,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야.”

이국이가 가인이를 보며 지금 땡볕에 서있는 영래를 내가 데리고 그늘로 가기 위해 몸싸움 중이라고 말했고 가인이는 자기가 오해한 사실을 알고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미안해. 원숭아… 난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과하는 가인이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두빈이가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피… 코피!”
“피?”

나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세상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가인이에게 소리쳤다.

“야, 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나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가인이라는 친구에 대한 향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눈에 서있는 가인이는 정말 미인이 되어 있었다. 잘 컸다는 말이 속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잘 성장했을까.

“이제 내 생각이 좀 나?”
“그래, 기억나. 너 정말 잘 컸구나. 하하하.”
“그럼 당연하지! 이정도면 퀸카지.”

어이없는 녀석. 자기가 자기 입으로 퀸카라니…. 그런데 정말 잘 컸다. 얼굴은 어느 정도 의술의 힘을 빌린 것 같고 얇은 목선, 풍성한 가슴, 홀쭉한 허리, 탱탱할 것 같은 엉덩이 그리고 잘빠진 허벅지와 종아리.

성인이 된 가인이의 모습을 훌터보며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동창이란 생각보다 여자로 보였나보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려 노력하였다.

“너 아까 왜 나 밀었어?”

가인이의 말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인이의 풍성한 가슴이 자꾸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멍하니 가인이의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가인이의 얼굴이 내 코앞까지 불쑥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깜짝 놀라며 가인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너 지금 어디 보냐?”
“보… 보긴 내가 어딜 봐!”
“나이 먹고 변태 아저씨 됐네. 우리 원숭이 아저씨, 호호호.”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이제 원숭이라고 부르지 좀 마라.”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 별명은 원숭이였다. 그 이유가 내 이름이 ‘원승이’다. 성이 원 씨고 이름이 승이. 우리 아버지 이름은 ‘원초련’이다. 무슨 기생도 아니고…. 내 동생 이름은 ‘원하진’이고.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처럼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고 있다.

“어때서, 부르기 편하고 좋은데. 킥킥킥.”
“한가인 짝퉁 주제에….”
“짝퉁이면 어떠냐? 이렇게 예쁜데.”

맞는 말 같다. 짝퉁이면 어떠하리요…. 내가 봐도 정말 잘 컸는데.

“너 왜 아까 나 뒤에서 밀었냐고? 일부러 그랬지. 나인걸 알고?”
“아니야, 진짜 진심으로 몰랐어.”
“그럼 왜 그랬어?”
“앞에서 어떤 여자가….”

너무 예쁜데 정신을 놓고 보다가 발이 걸려서 넘어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변명 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냥 발을 헛디뎠어.”
“하체가 그리도 부실해? 벌써 노안이냐?”

하체 얘기를 하는 순간 나는 버럭 했다. 내 하체는 유도로 단련된 튼튼한 허벅지와 주체 할 수 없는 힘의 근본이기에 여자의 입에서 내 하체를 모독하는 발언에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쓴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하자. 아무튼 반갑네.”
“그러게.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니.”

갑자기 가인이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의 볼을 잡더니 애기 만지듯 꼬집는데 아프면서 기분이 좋은 이유는 뭘까. 방긋 웃으며 내 얼굴의 볼을 잡고 있는 가인이가 마냥 곱게 느껴지며 남성호르몬이 신체에 흐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역은 명동, 명동입니다. 내리실 분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기내 방송이 울렸다. 벌써 약속장소에 도착한 것 같았다. 나는 가인이에게 내 볼을 그만 만지라며 손을 치는 순간 미끈거리는 내 얼굴의 기름이 가인이의 손에 묻자 가인이는 불쾌함을 표시하며 내 옷에 자기 손을 닦기 시작했다.

“야, 얼굴 세수는 했냐? 이게 웬 개기름?”
“―_―^”

개… 기… 름…. 지금 나에게 개기름이라고 한 것인가…. 비록 세수를 오랜만에 했다고 한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상처가 되어 가인이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잘 봐. 내 허벅지를….”

지하철 안에서 나는 허벅지에 힘을 잔뜩 주며 만져보라고 했다. 가인이는 한 손으로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지하철이 덜컹이며 사람들이 흔들렸고 가인이도 몸을 비틀대다 나의 가장 중요한 부위에 손이 얼려졌다.

“헉!”

가인이도 놀라 손을 때려 했지만 한동안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 나의 중심부를 손바닥으로 불러야 했다. 잠시 동안의 황홀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냥 좋았다. 왜 좋았냐고 물어보지 말고 그냥 좋았다. 좋다….

지하철이 다시 수평을 이루며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자 나의 중심부에 올린 손을 황급히 때며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가인이.

“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미안….”

사과를 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가인은 황당했다. 나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고 검은자 보다 흰자가 더 많이 보이며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인은 나의 표정에 당황하며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변태 아저씨, 이 아저씨 못 쓰겠네.”
“쓰읍, 아 미안. 잠시 넋을 잃었네.”
“변태 원숭이.”

원숭이어도 좋았다. 원숭이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남자일지어도 순간의 쾌락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그리고 지하철이 명동역에서 정차했다.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내렸다.

명동역을 빠져나오는 동안 가인이는 나에게 계속 변태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놀려댔고 그 때문에 나의 심기는 많이 불편해 졌다. 그렇다고 그 불편한 심기가 옆에 있는 가인이를 증오하거나 꼴도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나만의 투정? 이랄까….

“앞으로 내 옆에 바짝 붙지 마.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해.”
“쳇.”

가인이는 내 한 번의 실수를 꼬집으며 자기 곁에 바짝 붙지 말라는 말을 하며 장난으로 나와의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던 중 자전거 한 대가 가인이와 나를 향해 달려왔고 나는 옆으로 슬쩍 피했지만 둔한 가인이는 비병을 지르며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가인이의 손을 잡아 당겨 자전거와 부딪치지 않게 끌어당겼고 그 덕에 가인이는 자전거와 충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인이와 자전거가 무조건 부딪칠 거리는 아니었다. 가인이가 나를 테스트 해보기 위해 일부러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 일부러 쇼했지?”

나의 질문에 가인이가 엄청 화를 내며 어떻게 그렇게 자기를 매도할 수 있느냐고 서운하다며 또 다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가인이는 은근히 귀찮은 성격이었다.

“어떻게 이런 위험한 상항에 처한 나를… 도와준 것은 고마운데 정말 서운하다!”

이런 젠장… 내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쉽게 피할 수 있는 거리임에도 자기가 놀라 가만히 있었으면서 왜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좋아, 그렇게 나에게 화를 내고 삐져봐라.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할지 장담 못한다고!

나는 토라져 있는 가인이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 내 얼굴을 최강으로 망가트리고 초딩때 했던 원숭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비굴하다고? 후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가인이에게 호감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수놈의 본능이니까.

엉터리 같은 춤과 별로 웃기지도 않은 얼굴표정을 보며 가인이가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정말 웃겨서 웃는 웃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내가 노력하는 것에 대한 보상 웃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이정도 판별력은 있는 놈이다.

“푸하하. 너 여전히 까불고 웃기는 구나.”
“기분 좀 풀렸어?”
“응, 그런데 주변 좀 볼래?”
“주변?”

가인이가 내 주변을 좀 보라는 말에 얼굴을 망가트린 상태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주변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에 사는 원숭이 구경하듯 몰려 있지? 아… 맞다, 여기는 명동 한가운데 구나… 이런 곳에서 내가 왜 이런 흉내와 춤을… 절망적이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이 더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떠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 틈 사이에서 어디서 많이 본 여자 두 명이 보였고 그들은 입을 가린 채 놀란 표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가 된 듯한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에 부끄러워하며 숨어 있는 여자 두 명을 찾아내고 자세히 관찰했다. 헉! 이런 망할… 내 동생 하진이의 친구들이다. 오, 마이 갓….

아는 채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길 바랐다. 진심으로 그냥 지나가길 바라고 있는데 두 명중 한명인 수진이란 동생이 나에게 점점 다가오며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최대한 얼굴을 망가트리며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절도로 손바닥에 힘을 줬다.

“저… 저기… 오… 오빠?”

부르지 마! 그냥 가! 가벼려! 제발 나에게 아는 척하지마. 나는 지금 너희들이 알고 있는 하진이의 오빠 승이 오빠가 아니란 말이다! 수진이란 동생이 나에게 아는 척을 하려 하자 또 다른 동생인 승희라는 동생이 덩달아 아는 척을 하려 한다.

‘도망칠까? 그냥 이대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야하나… 창피해, 부끄럽다고!’

나를 정면에서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가인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오늘 동창회에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인아… 이렇게 만나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그만 먼저 사라질게.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동생 친구들이 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나의 발에는 불꽃 부스터가 피어나며 가인이를 등진 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달리자 모여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어 졌고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가인이가 당황하는 듯 했다.

비겁한 놈!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책임지지도 못할 여자를 사지에 몰아넣고 나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는 꼴이라니…. 한심하다, 한심해. 그래도 남자니 가인이에게 작별인사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에 달리다 말고 고개를 돌려 가인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모두 한 입으로 이렇게 소리를 냈다.

“어… 어, 어?!”

어? 이 소리는 무슨 뜻이지? 내가 지금 달리는 모습까지 우스운 것인가…. 나의 이미지가 이렇게 최하란 말인가. 지금까지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완전 망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얼룩진 삼십 년의 삶이 슬프게 느껴질 바로 그때….

쾅!

교통 표지판이 내 키 높이까지 흘러내려진 낮은 안내 표지판에 내 이마를 정확히 들이 박고 말았다. 말 그대로 내 눈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새와 수억만 개의 별이 보였다. 내 머리와 안내 표지판이 부딪치는 소리는 징이 울리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흐헉~~~.”

그런 모습은 나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에 포착되었고 가인이는 놀라며 나에게 달려왔다. 쓰러진 채 희미해지는 시야에 황급히 달려오는 가인이와 동생 하진이의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오… 오지 마,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마… 제발….’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었고 긴 겨울잠을 잔 듯한 느낌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여긴 어딜까… 저승이라면 평소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은 나를 천국에 보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지옥일 것이다. 내 귀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이고 시끄러웠다. 지옥이 맞나보다.

“정신이 들어?”

천사의 목소리… 지옥인데 왜 천사가 나에게 속삭일까. 천사가 지옥에 있는 내가 불쌍해 기회를 주기 위해 와준 것인가. 고마운 천사… 천사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지옥은 많이 힘들고 참기 어려운 곳이라 들었습니다. 구원해 주세요… 할렐루야….

“머리 조금 찢어졌데.”

머리가 찢어지면 어떠하리요… 내 옆에는 천사님이…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드니 이곳은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병원 응급실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시간을 다시 되돌려보자.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래도 기억해 보자…

안내 표지판과 부딪치고 나는 쓰러졌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세 명의 사람들,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 살짝 든 순간은 119 구조원들의 음성과 모습… 다시 정신줄을 놓았다 살짝 든 순간은 병원으로 실려 온 나의 모습… 다시 정신줄을 놓았다 든 순간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 깨어나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가인이가 있었다. 가인이는 음료수를 홀짝 마시며 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본다. 현재 시간 오후 7시.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시간이지만 나와 가인이는 그곳이 아닌 병원 응급실에 있다.

“이게 뭐야? 거기서 왜 도망쳤어?”
“그게… 갑자기….”
“참나, 아까 걔네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까 걔네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냐니…

“그건 무슨 소리야? 걔네가 누군데?”
“네 동생 친구들이라며.”

망할, 그 놈들이 날 봤구나… 아, 미치겠네.

“그…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걔네가 119 신고하고 여기까지 오는데 엄청 도와줬어. 그 중에 한명은 너 죽었다고 울고불고 완전 난리였어.”

응급실 침대에 앉아 있는 내가 비참하게 보였다. 앞으로 수진이와 승희를 무슨 나짝으로 본단 말인가…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미 이런 사실이 내 동생 하진이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다급하게 내 휴대폰을 확인했다. 열통의 부재전화 그리고 문자 한통.

부재전화번호를 확인해봤다. 세 통은 동규, 일곱 통은 역시나 하진이었다. 문자를 확인해봤다. 또 역시나 하진이었다. 뭐라고 보냈을까 궁금해 확인해 보았다.

‘너, 대가리 깨졌다며? 옷 찾아오라고 준 돈 가지고 명동에서 여자 꼬시고 있었다며? 집에 걸어들어 올 생각마라.’

꺄울~ 돌아버리겠다. 집에 들어갈 때 걸어 들어가지 기어 들어가냐! 이 무식한 년 같으니… 그리고 오빠한테 말하는 뽐새가 아주 4가지가 없어. 내가 동생을 잘 둔 탓이라 생각하고 말아야지 이런 걸 누구에게 말하겠어. 내 얼굴에 침 뱉기지…

콜록, 콜록이는 기침소리에 내가 고개를 드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울해 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가인이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 동창회에 만나기로 한 시간인데 나를 간병하기 위해 이렇게 있는 가인이가 너무 고맙고 아까보다 더 예뻐 보였다.

“가인아….”
“정신 차렸으면 난 간다. 몸 조리 잘하고.”
“엥?”

날 두고 가겠다는 것인가. 왜? 왜 가는데?

“너 아프니까 가서 술도 못 마시잖아. 내가가서 애들한테 말 잘할게. 너는 그냥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어.”

안돼! 이렇게 날 버리고 가면. 그리고 나 지금 집에 들어가면 죽는단 말이야… 술은 안 마셔도 친구들 얼굴이라도 보고 들어가면 안 될까.

“그러던가… 그런데 너 정말 괜찮겠어?”
“응,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다행이다. 난 평소에도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인지 가인이에 까지 버림받으면 왠지 슬퍼질 것 같았다. 갑자기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 라는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오 나를 바라보는 그대 눈빛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지막을 난 준비하려해. 오 나의 사랑을 속여 가며 웃음지려 한 건 뒤돌아 흘릴 눈물, 눈물 때문이야. 오우워~ 그대 내게 주었던 사랑 그보다 더 행복한 건 내겐 없었어. 오우워~ 그래, 나 이제 널 떠나보내 줄께 더 이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

나의 서글픈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라 그런지 왠지 모를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가인이가 보고 있다는 부끄러움에 눈물을 훔치며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인이가 벌써 봐버린 모양이다.

“변태 아저씨에 울보 아저씨구만.”
“아니야, 울지 않았어. 하품한 거라고.”
“알겠습니다.”

독한 년. 이런 모습을 보면 그냥 넘어가주지 꼴에 허물없는 초딩 동창이라고 저딴 씩으로 나올 줄이야. 서둘러 병원을 나가려 하자 간호사가 나에게 달려와 말한다.

“환자분, 치료비 납입하셔야 하는데요.”
“네? 치료비요?”

치료비 얘기에 가인이는 어딘가에 숨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까 은행에서 돈을 잔뜩 뽑아왔기에 병원비를 치루고 응급실 밖으로 나섰다. 병원 밖에는 가인이가 친구들과 문자를 나누며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약속장소로 갈까?”
“으응.”
“병원비는 냈어?”

그래 이년아. 병원비 냈으니 이제 가자.

“왜 욕을 하고 그래. 나는 생명의 은인인데.”

은인 좋아하시네.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는데, 지금! 너는 나에게 죽을 때까지 잘해야 할 것이다. 네가 그때 삐진 척만 안했어도 너의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원숭이 흉내도 안냈을 것이고 도망치다 안내 표지판에 헤딩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까.

“그래도 내 덕에 병원에서 잠시 쉬어가잖아.”

쉬어가는 거 좋아하네. 그 덕에 병원비만 나와서 다음 달 엄마에게 갚을 채무만 늘어났다. 도대체 빈병을 얼마나 주서모아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지니 가슴에 큰 돌덩이가 하나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네.

“기분 풀어, 내가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사줄게. 응? 기분 풀어잉~~”

그렇게 애교를 부리면 내가 화가 나다가도 풀리잖아… 애교 좀 부리지마. 나는 여자 애교를 보면 주체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특히 너처럼 예쁜 여자 애교는 나에게 쥐약이라고…

“그럼, 기분 풀고 저기서 아이스크림 먹고 약속장소로 가는 거다?”
“좋아!”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배낄까말까 31. 정말 많은 아이스크림이 있는 곳이다. 바닐라 맛과 초콜릿 맛을 골라 담고 가인이와 함께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약속장소로 이동하였다. 추운날 먹는 아이스크림은 무더운 여름보다 더 맛이 있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가인이와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이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전 사춘기 때는 골목길에서 여자 애들과 마딱 만 쳐도 부끄러워 먹던 아이스크림을 집어 던지곤 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도착한 술집, 지금 시간 저녁 8시.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이미 가인이가 문자로 나의 부상소식을 모두 알려 논 상태라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동창들이 우리의 도착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원숭아! 오랜만이야~”
“가인이도 안녕!”
“이야, 둘이 그러고 오니까 마치 연인같은데?”

우리의 늦은 등장에 농담을 하려던 전우성이란 친구의 말 한마디에 가인이가 말도 안 된다며 주먹으로 우성이의 등짝을 강타한다. 아무리 싫어도 내가 보고 있는데 그렇게 거부하면 내가 민망하잖아? 대충 부끄럽다고 끝내면 안 될까?

등짝을 강타당한 우성이가 숨을 못 쉬겠다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내가 병원에 다녀온 것을 보고 장난치는 행동이었다. 나는 정말 아픈 이마를 잡고 우성이에게 약 올리지 말라며 미소로 답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서먹서먹한 것보다 근황과 결혼여부가 가장 궁금해 졌다. 우성이의 경우 아직도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고, 두빈이는 작은 편의점을 차려 운영하는 사장님이 됐단다.

오동이는 예전부터 꿈꾸던 영어학원을 차리는게 꿈이라 말하고 대현이와 이국이는 동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업의 종류는 비밀이라며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동규는 그냥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다음 달에 결혼을 할 예정이란다.

어쩐지 느닷없이 연락해 동창회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결혼을 하니 축의금을 받기 위해 결혼식에 오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겠지. 망할 자식…

“동규가 결혼을 한다는데 우리 한잔씩 하자!”
“그래, 축하해 동규야!”
“고맙다!”

동규를 중심으로 우리는 술을 들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동규에게 전했다. 녀석들… 벌써 삼십 대가 되어 이렇게 사회에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술을 하게 될 줄이야. 곱게 잘 성장해준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두빈이가 흐뭇하게 웃고 만 있는 나를 보며 물어본다.

“넌 뭐하냐, 요즘?”
“나?”
“옷 입은 것 보니까 대기업 취업한 것 같은데?”
“내가?”
“아니면 사업?”

두빈이의 질문에 뭐라고 뾰족하게 대답해 줄 말이 없어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말도 안돼는 말을 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자 친구들이 모두 감탄하며 나를 뚜러지게 쳐다본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안하더니 나이 먹고 머리가 트였나보네.”

여자 동창생 호리가 나를 보며 놀랍다는 말로 나를 칭찬해 준다. 그런 말을 해주는 호리보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아라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집에서 졸업 앨범을 찾으며 비웃과 당연히 결혼도 못 갔을 것이라 확신한 공아라. 그런데 의술의 힘인지 성장의 힘인지 너무 곱게 잘 컸다. 가인이보다 훨씬 잘 컸다.


“아라야, 너 왜 이렇게 잘 컸냐?”
“나? 나 원래 이렇게 예쁘지 않았던가?”
“미친, 지랄하네.”

아라가 자기는 원래 예뻤지 않았던가라는 말에 내 옆에 앉은 이국이가 버럭하며 화를 냈다. 이국이의 화에 아라가 또 화를 내며 나보다 더 못생기고 찌질 했던 놈이라고 반박을 한다. 그 모습을 보기에 한심했던지 오동이가 둘 다 똑같았다고 그만하라고 했다.

그때 호리가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이렇게 싸울지 알고 졸업 앨범 가져왔다!”

호리가 가져온 졸업 앨범, 여자들은 ‘어우~ 야아!’라며 비명을 질렀고 남자들은 ‘야, 잘 봐봐. 너 완전 개짠따 였어’라며 자신들이 더 나았음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예전 졸업사진을 보던 애들은 폭소를 하고 사진속의 자신은 자기가 아니라며 부정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병신들… 도찐개찐인데 뭘 아니라고 변명들을 대고 있는지. 어렸을 적은 모두 철없고 찌질했는데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하면 안 되나? 웃긴 녀석들… 실소와 폭소를 연달아 달며 술집에서 분위기가 극도로 타올랐다. 이게 바로 동창회의 참 모습 아니겠는가.

못 마신다던 술을 벌써 두 병 이상 해치운 가인이가 비틀되고 아까 지하철에서 나와의 일을 설명하는데 창피해 죽는지 알았다. 더한 것은 내가 변태 아저씨가 된 사연을 말 할 때쯤 이었다.

“정말? 가슴을?”

내가 실수로 자신의 가슴을 본 사연을 너무 적나라하게 설명하니 친구들에게 나는 어느새 인간 말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니 극구 부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사도 정신 같은 것이 발휘 되었다.

얘기를 구석에서 한참동안 듣고 있던 아라가 취했는지 혀를 꼬며 나에게 말한다.

“야, 가슴 좀 보여줘~ 쟤 보니까 너무 오래 굶은 거 아니야?”
“꺄! 아라야!”

다른 여자동창생들이 아라의 적극적이 말에 비명을 지르며 부끄럽다고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으니 더 이상 아라에게 술을 주지 말라고 하는 둥 분위기가 이상하게 접어들었다. 물론 아라는 내 옆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런 아라에게 요상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라가 취해서 인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한쪽 허벅지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어른들이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꼭 바람이 난다는 말을 나는 이제야 체험하고 있다. 바람이 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오늘 그럴 것 같았다.

나는 아라의 손을 치우기 위해 아라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보고 커플이 탄생했다며 폭소를 날리고 있는데 왠지 기분은 좋았다. 아라의 손을 치우기 위해 어기적어기적 거리며 간신히 치운다는 분위기로 이러지 말라고 아라에게 말했다.

“아라야, 이 손 좀 치워봐.”
“싫어, 내가 친구 허리도 못 만지냐?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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