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의 폭주 - 1부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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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860회 작성일 20-01-17 00:34본문
현빈의 발목을 압박하던 극심한 통증은 생각외로 빠르게 진정되어 갔다. 그러나 통증이 가라앉고 의식이 명확해 질수록 현빈의 마음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가득채워져만 갔다.
유미의 부축을 받아 유미의 침실까지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발목의 고통으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뻔뻔한 행동을 유미에게 발각되었던 그 순간에서부터, 혼자서는 움직일수 조차 없어 가녀린 유미의 몸에 기대다 시피 부축되어 늦은밤 여자혼자 사는 집 침실, 그방의 침대에 눕혀지기까지, 어쩌면 당연히 느꼈어야만 할 수치심과 죄책감은 그것을 억누르고 있던 고통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자, 일시에 파도 처럼 현빈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죽고싶다…나라는 추악한 존재…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어….)
현빈에게 남은 것은 절망 뿐이였다. 공허함만이 가득한 세상에 한줄기 광채와도 같았던 선생님의 존재… 그 소중한 존재에게 자신은 파렴치한 쓰레기로 낙인찍히게 되었다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순간, 유미가 얼음수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현빈은 황급히 유미가 들어온 방의 입구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장에라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발목은 살짝 힘을 주는것만으로도 부숴질 듯 아프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유미로부터 최대한 시선을 피하는 것 뿐이였다.
유미는 얼음수건을 손에 쥔채 자신의 침대맡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자신의 제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더욱 거세게 헝클어진다.
( 현빈이가 봤을까…? )
생각할것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였지만 유미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현빈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현빈의 상식밖에 행동에 대한 당황스러움 보다 앞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 지, 얼어붙은 유미의 입술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이 마구 뒤엉켜, 유미는 뭐가 뭔지 모를 상태로 그저 멍하니 현빈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였다.
( 현빈이는 선이 참 예쁘구나… )
몽롱한 의식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완전한 남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현빈의 몸…목뒷덜미에서 어깨로 거기에서 다시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여자처럼 매끈하다. 그러나 유미는 오히려 그런 것이 좋았다. 그간의 남성들에 대한 좋지 않았던 경험들로 인해 일반적이지 않은, 남성의 매력에 대한 기준이 형성된 것이다.
( 내가 지금 무슨생각을..! )
현빈의 뒷태나 감상하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혹시나 부러졌을지도 모를 현빈의 발목상태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였다. 유미는 정신을 차리고 일단 준비해온 얼음수건을 현빈의 발목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었다.
“선생님…..”
등을 돌린채 숨죽이고 있던 현빈이 그제서야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래 현빈아 좀 어떻니… 발목이 많이 부었어… 부러진건 아닌 것 같은데… 많이 아프니? 통증이 심하면 같이 병원에 가보지 않을래?”
“…………………”
현빈은 아무말이 없다.
유미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현빈의 발목을 바라보다 문득 시계를 보았다. 12시30분…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꽤나 늦은 시간이다. 현빈의 부모가 걱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아 부모님께 연락 드려야 하는거 아닐까? 부모님께 혼날 것 같아 걱정이라면 선생님이전화해줘도 되고…”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제가 집 밖으로 나와 있는것도 모르실꺼예요… 전화하지 마세요…”
건조한 목소리였다. 짧은 몇마디였지만 현빈의 목소리톤과 말투로 유미는 현빈의 집안 분위기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전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삼사일이 멀다하고 자식이 구타를 당하는데 학교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부모라니…
갑자기 유미는 현빈의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애처로운 마음으로 현빈의 쓸쓸한 등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 꺼주시면 안될까요?...”
은은한 조명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유미의 침실방에는 스탠드조명 한개뿐이였기 때문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 약간의 빛조차도 현빈은 피하고 싶었다.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어둠으로 가려 유미가 자신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미는 갑작스런 요구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현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사실은 유미 본인도 민망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불을 끄고 나면 대화가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았다. 유미는 스탠드의 스위치를 돌려 불을 껐다.
칠흙 같은 어둠…. 달빛조차 들지 않는 유미의 침실은 유난히도 더 어두웠고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온몸을 감싸자 현빈의 경직되었던 온몸의 근육들이 느슨하게 이완되는 듯 했다. 어둠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긴장이 가시자 약간의 용기가 솟아난다.
일단은 뭔가 해명을 하고 싶었다. 옆으로 돌아누운 어정쩡하고 불편한 이 자세부터 바꾸어야 할듯하다. 현빈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워보았다. 이불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통증을 참으며 다친 오른쪽 다리를 끌어당겨 보았다. 아프긴 하지만 참을만했고 왼쪽다리까지 접어 양반다리를 한 채 침대헤드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았다. 큰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신의 숨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린다.
“현빈아……”
마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하는듯 가까이 느껴지는 유미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현빈은 온몸을 순간 경련할 정도로 놀랐다. 지독한 어둠속에서 시각은 완전히 차단되고, 그로인해 청각은 거슬릴 정도로 예민했다.
(이 어둠속 어딘가에 선생님이 있어…. )
밀폐된 공간, 같은 어둠의 울타리 안에 그녀와 단둘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진정되었던 심장은 다시금 빠른 박동을 시작했다. 쿵,쿵 하고 뛰어 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자신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들릴 것 만 같다. 현빈은 유미의 부름에 짧게나마 대답하고 싶었으나 숨이 턱까지 차올라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현빈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자 유미는 안타까운듯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현빈아… 아까 창밖에서 있었던 일은…”
말을 잠시 멈춘 유미는 목이 타는듯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완전한 어둠속에서, 그 소리는 현빈에게도 유미 자신에게도 또렷하게 메아리쳤다.
그 소리에 스스로 당황해버린 유미는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곧 뭔가 다짐을 한 듯 말을 이어나간다.
“혹시.. 방안을 들여다 본거….?”
“아니예요 선생님! 아무것도 못봤어요!... 저는 … 저는 그저….”
유미의 질문을 질책으로 받아들인 현빈은 유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 부정의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해야 할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더듬을 뿐이였다. 결국은 모든 것을 다 보았다고 강하게 긍정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게…저는 ….그런게 아니고….... 죄송해요 선생님…… 용서해주세요….크흑…흑흑..”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결국 현빈은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소년의 울음. 유미는 망연했다.
(그 모습을… 그런 내 모습을…)
유미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얼굴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귓볼까지 뜨끈뜨끈 느낌이 전해져온다. 새빨간 사과처럼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짙은 어둠이 가려주고 있다는 사실 정도가 이 상황에서의 유일한 긍정적 요소였다. 그녀에게 있어 그날 하루는 모든 것이 최악이였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몇분인가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유미에게는 그 몇분이 몇시간처럼 느껴졌다. 현빈의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차츰 진정되어 갈수록 째깍째깍하는 시계초침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듯 느껴졌다. 울음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시계초침의 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매우는 듯 크게 퍼져 울리는 것을 느끼며 유미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괜찮아 현민아… 괜찮아…”
유미는 자신의 제자 앞에서… 비록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망정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조금 뻔뻔하게 만들었다.
“현빈이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에게는 어른들만의 비밀스런 행위가 존재한단다… 순수하고 착한 우리 현빈이의 눈으로 보기엔 비록 추하고 더러운 모습처럼 보였겠지만... 하지만........"
"하아.........이런모습을 보이게 되어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추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오히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웠어요…”
어둠속에서도 현빈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의외의 현빈의 대답에 유미는 당황했지만, 이내 가슴속에 안도감과 함께 따스한 감정이 뭉클거렸다. 그 감정은 유미의 가슴으로부터 시작하여 목을 타고 올라와 다시금 얼굴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좀전에 느꼈던 수치심으로 인한 화끈거림과는 틀렸다.
“선생님…몸이… 보고싶었니?”
“……………………………”
어둠속 맞은편의 소년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유미는 스스로가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을 만큼 민망함을 느낀다. 순진한 아이를 유혹하는 듯한 말을 던진 자신이 수치스럽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쉼호흡 소리가 들리고 억지로 목에 힘을 주어 말하는 듯한 현빈의 목소리가 건네져 온다.
“보고 싶어요 선생님… 선생님의….”
유미의 스커트속 그것이 보고 싶어 한달음에 이곳까지 달려와 위험한 모험까지 무릅썼던 현빈이다. 그러나 차마 짝사랑하는 자신의 담임앞에서 스커트속 맨살을 보여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미는 이미 이 매력적인 눈빛을 가진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대의 동의,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을지언정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약간의 이유만 있다면 충분했다. 잔잔히 피어오르던 유미의 흥분에 불이 붙는다.
( 하지만…..어쩌지… )
유미는 고민했다. 두사람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어둠이 방해가 된다. 그러나 이 어둠이 오히려 두사람의 의미없는 가식의 허물을 벗겨내어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어둠을 거두어 내면, 어렵게 벗겨낸 수줍은 본심이 다시금 가식의 가면을 덮어 쓸 것만 같았다.
순간, 무언가를 생각해낸 유미가 의자에 앉은채로 허리를 숙여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유미의 손끝에 둥글고 길쭉한 형태의 비상용 플래시가 닿았다.
유미의 부축을 받아 유미의 침실까지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발목의 고통으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뻔뻔한 행동을 유미에게 발각되었던 그 순간에서부터, 혼자서는 움직일수 조차 없어 가녀린 유미의 몸에 기대다 시피 부축되어 늦은밤 여자혼자 사는 집 침실, 그방의 침대에 눕혀지기까지, 어쩌면 당연히 느꼈어야만 할 수치심과 죄책감은 그것을 억누르고 있던 고통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자, 일시에 파도 처럼 현빈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죽고싶다…나라는 추악한 존재…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어….)
현빈에게 남은 것은 절망 뿐이였다. 공허함만이 가득한 세상에 한줄기 광채와도 같았던 선생님의 존재… 그 소중한 존재에게 자신은 파렴치한 쓰레기로 낙인찍히게 되었다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순간, 유미가 얼음수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현빈은 황급히 유미가 들어온 방의 입구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장에라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발목은 살짝 힘을 주는것만으로도 부숴질 듯 아프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유미로부터 최대한 시선을 피하는 것 뿐이였다.
유미는 얼음수건을 손에 쥔채 자신의 침대맡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자신의 제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더욱 거세게 헝클어진다.
( 현빈이가 봤을까…? )
생각할것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였지만 유미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현빈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현빈의 상식밖에 행동에 대한 당황스러움 보다 앞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 지, 얼어붙은 유미의 입술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이 마구 뒤엉켜, 유미는 뭐가 뭔지 모를 상태로 그저 멍하니 현빈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였다.
( 현빈이는 선이 참 예쁘구나… )
몽롱한 의식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완전한 남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현빈의 몸…목뒷덜미에서 어깨로 거기에서 다시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여자처럼 매끈하다. 그러나 유미는 오히려 그런 것이 좋았다. 그간의 남성들에 대한 좋지 않았던 경험들로 인해 일반적이지 않은, 남성의 매력에 대한 기준이 형성된 것이다.
( 내가 지금 무슨생각을..! )
현빈의 뒷태나 감상하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혹시나 부러졌을지도 모를 현빈의 발목상태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였다. 유미는 정신을 차리고 일단 준비해온 얼음수건을 현빈의 발목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었다.
“선생님…..”
등을 돌린채 숨죽이고 있던 현빈이 그제서야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래 현빈아 좀 어떻니… 발목이 많이 부었어… 부러진건 아닌 것 같은데… 많이 아프니? 통증이 심하면 같이 병원에 가보지 않을래?”
“…………………”
현빈은 아무말이 없다.
유미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현빈의 발목을 바라보다 문득 시계를 보았다. 12시30분…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꽤나 늦은 시간이다. 현빈의 부모가 걱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아 부모님께 연락 드려야 하는거 아닐까? 부모님께 혼날 것 같아 걱정이라면 선생님이전화해줘도 되고…”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제가 집 밖으로 나와 있는것도 모르실꺼예요… 전화하지 마세요…”
건조한 목소리였다. 짧은 몇마디였지만 현빈의 목소리톤과 말투로 유미는 현빈의 집안 분위기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전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삼사일이 멀다하고 자식이 구타를 당하는데 학교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부모라니…
갑자기 유미는 현빈의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애처로운 마음으로 현빈의 쓸쓸한 등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 꺼주시면 안될까요?...”
은은한 조명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유미의 침실방에는 스탠드조명 한개뿐이였기 때문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 약간의 빛조차도 현빈은 피하고 싶었다.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어둠으로 가려 유미가 자신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미는 갑작스런 요구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현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사실은 유미 본인도 민망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불을 끄고 나면 대화가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았다. 유미는 스탠드의 스위치를 돌려 불을 껐다.
칠흙 같은 어둠…. 달빛조차 들지 않는 유미의 침실은 유난히도 더 어두웠고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온몸을 감싸자 현빈의 경직되었던 온몸의 근육들이 느슨하게 이완되는 듯 했다. 어둠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긴장이 가시자 약간의 용기가 솟아난다.
일단은 뭔가 해명을 하고 싶었다. 옆으로 돌아누운 어정쩡하고 불편한 이 자세부터 바꾸어야 할듯하다. 현빈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워보았다. 이불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통증을 참으며 다친 오른쪽 다리를 끌어당겨 보았다. 아프긴 하지만 참을만했고 왼쪽다리까지 접어 양반다리를 한 채 침대헤드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았다. 큰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신의 숨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린다.
“현빈아……”
마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하는듯 가까이 느껴지는 유미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현빈은 온몸을 순간 경련할 정도로 놀랐다. 지독한 어둠속에서 시각은 완전히 차단되고, 그로인해 청각은 거슬릴 정도로 예민했다.
(이 어둠속 어딘가에 선생님이 있어…. )
밀폐된 공간, 같은 어둠의 울타리 안에 그녀와 단둘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진정되었던 심장은 다시금 빠른 박동을 시작했다. 쿵,쿵 하고 뛰어 대는 심장박동 소리가 자신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들릴 것 만 같다. 현빈은 유미의 부름에 짧게나마 대답하고 싶었으나 숨이 턱까지 차올라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현빈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자 유미는 안타까운듯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현빈아… 아까 창밖에서 있었던 일은…”
말을 잠시 멈춘 유미는 목이 타는듯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완전한 어둠속에서, 그 소리는 현빈에게도 유미 자신에게도 또렷하게 메아리쳤다.
그 소리에 스스로 당황해버린 유미는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곧 뭔가 다짐을 한 듯 말을 이어나간다.
“혹시.. 방안을 들여다 본거….?”
“아니예요 선생님! 아무것도 못봤어요!... 저는 … 저는 그저….”
유미의 질문을 질책으로 받아들인 현빈은 유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 부정의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해야 할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더듬을 뿐이였다. 결국은 모든 것을 다 보았다고 강하게 긍정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게…저는 ….그런게 아니고….... 죄송해요 선생님…… 용서해주세요….크흑…흑흑..”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결국 현빈은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소년의 울음. 유미는 망연했다.
(그 모습을… 그런 내 모습을…)
유미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얼굴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귓볼까지 뜨끈뜨끈 느낌이 전해져온다. 새빨간 사과처럼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짙은 어둠이 가려주고 있다는 사실 정도가 이 상황에서의 유일한 긍정적 요소였다. 그녀에게 있어 그날 하루는 모든 것이 최악이였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몇분인가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유미에게는 그 몇분이 몇시간처럼 느껴졌다. 현빈의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차츰 진정되어 갈수록 째깍째깍하는 시계초침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듯 느껴졌다. 울음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시계초침의 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매우는 듯 크게 퍼져 울리는 것을 느끼며 유미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괜찮아 현민아… 괜찮아…”
유미는 자신의 제자 앞에서… 비록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망정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조금 뻔뻔하게 만들었다.
“현빈이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에게는 어른들만의 비밀스런 행위가 존재한단다… 순수하고 착한 우리 현빈이의 눈으로 보기엔 비록 추하고 더러운 모습처럼 보였겠지만... 하지만........"
"하아.........이런모습을 보이게 되어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추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오히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웠어요…”
어둠속에서도 현빈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의외의 현빈의 대답에 유미는 당황했지만, 이내 가슴속에 안도감과 함께 따스한 감정이 뭉클거렸다. 그 감정은 유미의 가슴으로부터 시작하여 목을 타고 올라와 다시금 얼굴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좀전에 느꼈던 수치심으로 인한 화끈거림과는 틀렸다.
“선생님…몸이… 보고싶었니?”
“……………………………”
어둠속 맞은편의 소년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유미는 스스로가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을 만큼 민망함을 느낀다. 순진한 아이를 유혹하는 듯한 말을 던진 자신이 수치스럽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쉼호흡 소리가 들리고 억지로 목에 힘을 주어 말하는 듯한 현빈의 목소리가 건네져 온다.
“보고 싶어요 선생님… 선생님의….”
유미의 스커트속 그것이 보고 싶어 한달음에 이곳까지 달려와 위험한 모험까지 무릅썼던 현빈이다. 그러나 차마 짝사랑하는 자신의 담임앞에서 스커트속 맨살을 보여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미는 이미 이 매력적인 눈빛을 가진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대의 동의,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을지언정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약간의 이유만 있다면 충분했다. 잔잔히 피어오르던 유미의 흥분에 불이 붙는다.
( 하지만…..어쩌지… )
유미는 고민했다. 두사람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어둠이 방해가 된다. 그러나 이 어둠이 오히려 두사람의 의미없는 가식의 허물을 벗겨내어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어둠을 거두어 내면, 어렵게 벗겨낸 수줍은 본심이 다시금 가식의 가면을 덮어 쓸 것만 같았다.
순간, 무언가를 생각해낸 유미가 의자에 앉은채로 허리를 숙여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유미의 손끝에 둥글고 길쭉한 형태의 비상용 플래시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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