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의 그녀 - 2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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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742회 작성일 20-01-17 00:36본문
결코 가실 것 같지 않았던 여름철의 무더웠던 살인 더위도 어느새 한결 잠잠해진 듯,
빌라 입구를 걸어나오니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밤공기가 피부를 통해 생생히 느껴져왔다.
"날씨가 좀 추운데.... 이만 들어가세요. 저 갈게요."
"응. 가는거 보고 들어갈게."
빌라 입구까지 날 배웅하러 나와준 유경 누나 역시 차가운 밤바람에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간편하게 입고 나오느라 꽤나 얇은 옷차림 탓에 더욱 추워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덕분에 살짝 옷 위로 드러나는 누나의 타이트한 몸매로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내가 변태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남자이기 때문인가?
"택시타고 가. 많이 늦었는데."
"괜찮아요... 누나도 들어가세요. 많이 피곤하시잖아요."
아까 원룸에서 세상 모르게 잠들어있었던 유경 누나의 모습을 슬쩍 놀려버리는 듯한 그 말에
누나는 눈꼬리를 가늘게 뜨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하하...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려 근처에 보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심통이 난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귀여운 얼굴 위에 내 얼굴을 주저없이 마주 덮었다.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럽고 기습적인 입맞춤에 누나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그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굴려 주위에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느라 몹시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끝끝내 날 밀쳐내지는 않는 그 귀여운 모습이라니. 으흐흐.
이번에는 다른 때 하던 것처럼 혀를 얽어가는 그런 깊은 딥키스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불가능했지만,
살짝 입술만 데었다 떨어져나가는 이런 짧은 키스도 나쁠 것은 없었다.
"놀랬잖아..."
"흐흐, 놀래라고 한 거에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나는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건 내 착각일까?
뭐 사실 유경 누나는.... 안 그럴 것 같아도 알고보면 은근히 키스를 무척 좋아하니까.
"키스...라..."
키스라고 하면 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방금 했던 것처럼 짧은 입맞춤을 잠깐 나누어보았던 적이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하지만 정말이지 얄궂게도, 그 얼굴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유경 누나의 동생의 것이었다.
"그런데... 누나."
"응?"
키스 덕분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꽤 좋아진 듯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짓고 있던 유경 누나가 날 돌아보았다.
나는 이대로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는 마당에 이런 화제를 꼭 꺼내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두는게 좋을 것 같아 어렵게 입을 떼었다.
"윤아... 아무래도 많이 화난 것 같죠?"
"....."
유경 누나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화내는 건지... 전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괜찮을 거야. 윤아는 그렇게 오래 화내지는 않거든. 밝고 착한 애니까...."
"글쎄요...."
내가 알기로 요즘들어 윤아가 나에게 화가 나 있는 듯한 상태가 벌써 꽤 된 듯 싶은데....
"내가 들어가서 잘 말해볼게. 걱정말고 얼른 가.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하긴 내가 고민해봐야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알았어요... 누나도 들어가세요. 갈게요."
"응. 조심해서 가... 잘 자구."
빌라 건물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입구 쪽을 한번 돌아보니 유경 누나는 그 때 까지도 가만히 서서
내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는 마침 도로 저편에서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세웠다. 뒷좌석에 올라 몸을 기대고는 창문 너머로 빠르게 흘러 지나가기 시작하는 길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나는 금새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송윤아... 대체 왜 그러는거지?"
"그래. 우리 사귀고 있어."
윤아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유경 누나가 아닌 내 입에서 나오게 되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유경 누나를 대신해서 내가 직접 대답을 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경 누나의 동생에게 그 사실을 계속 비밀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굳이 그 사실을 애써 숨기기까지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유경 누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누나도 날 사랑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우리가 사귄다는데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는 것 아닌가. 공개적으로 밝히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어도.... 그렇기 때문에 유경 누나의 동생에게 굳이 비밀로 감추고픈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그 솔직한 대답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각한 충격을 받은 듯한 윤아는 잠시 아무런 말도, 미동도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침묵의 시간이 한참동안이나 영원처럼 계속되고나서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단 한마디 뿐.
"....사귀지 마."
그 차디 찬 한마디를 매몰차게 내뱉은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더 꺼내보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방 안으로 난폭하게 걸어들어가더니.... 마치 문을 박살내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냉랭한 한기가 싸늘하게 깔린 거실에 둘만 남게 된 나와 유경 누나는 영문을 몰라 그저 서로를
돌아보기만 할 뿐이었고.
생리통은 갈수록 서서히 심해지고 있었다. 윤아는 인상을 찡그리며 통증이 느껴지는 배와 허리 부근을
감싸쥐었다. 자궁이 수축하는 주기가 점점 심해지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비명을 지르듯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해왔다.
"이게 무슨 꼴이야... 진짜."
그런 와중에 그렇게 심하게 신경질을 부렸으니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까 전에도 결코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있는대로 그렇게 성질을 부리고나자 통증은 물론이고
불쾌한 기분과 예민한 신경까지 더욱 악화되었다. 이 꼴이 될걸 알면서도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인지....
"뭐야...나 왜 이래. 내가 지금 왜 화를 내고 있는 거지?"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이렇게나 화가 끓어오르는데도 그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이 화를 내는 것임에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이래서 제일 알기 힘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 이제 어차피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그녀는 제대로 알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지금 진정으로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를.
"나... 지금 언니가 남자랑 사귄다는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정말로?"
싫다. 이런 복잡한 생각은.
복잡한 생각을 할 만한 문제는 처음부터 만들지를 않고, 만약 생긴다면 고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혀서
행동으로 해결하는 성격의 윤아로서는 이런 부류의 고민은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었다.
마치 아무리 고민을 해도 정답을 찾아낼 수가 없는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 똑똑똑.
"윤아야. 들어갈게."
점점 생리통이 번지기 시작하는 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윤아는 유경의 노크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는 자신의 언니. 그를 배웅해주러 나가는 것 같더니 방금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저기... 윤아야. 아직도 화 안풀렸어?"
"....."
"언니가 정말 잘못했어. 내일부턴 진짜 진짜 안늦을거야. 응? 이제 화 풀면 안될까?"
윤아가 걸음마를 떼던 시절부터 그녀를 돌보아온 유경은 동생을 달래는 일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둘 사이에는 문제 자체가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럴 일도 별로 없었지마는
어쩌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한번씩 윤아가 삐지는 일이 있더라도 타이르듯이 좋게 달래면 금새 화를 풀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번만큼은 윤아의 굳은 표정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언니 때문에 화난거 아니라니까."
"그러면... 뭐 때문이야?"
잠시 표정만 굳히고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윤아. 유경은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차분한 시선을 받다 못한 윤아는 마침내 입을 떼었다.
"언니. 정말 그 오빠랑 사겨?"
"으응?"
되려 동생 쪽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오자 잠시 당황한 유경이었지만,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성재랑 사귀기로 했어."
침착한 대답.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긍정이었다.
"....언제부터?"
이미 아까 그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사실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언니에게서 그 말을 확인하고나니,
정말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고 기묘한 충격이 윤아의 뇌리 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언제부터 두 사람 서로 좋아하게 된 거야? 도대체?"
너무나도 이상한 질문. 윤아는 이런 질문을 언니에게 던지고 있는 자신의 꼴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이런 말을 꺼내고 있는 입이, 그리고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의 언니를 보고 있는 이 눈까지도,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지독한 괴리감에 치가 떨릴 정도였다.
"언니... 그 오빠 좋아해?"
유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윤아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굳어있는 동생의 표정은 어찌보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으응... 좋아해. 좋아하니까... 사귀지."
다시 한번 그 지독한 침묵이 윤아의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윤아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왜?"
"응?"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아는 언니는.... 남자라면 싫어하는 성격 아니었어?"
유경은 가만히 윤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언제나 상대방의 마음 속을 궤뚫어보는 듯한 언니의 그 고요한
호수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침대 위에서 몸을 돌려 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니의 시선에 거북함을 느끼다니.... 언제 이런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맞아.... 그랬지."
"....."
유경은 돌아앉은 윤아의 곁으로 다가가 침대 위에 자신도 조심스럽게 앉았다.
"예전에 나는 정말 그랬어... 남자라면 생각하기도 싫었잖아. 아마 너도 잘 알거야.
난 그게 내 모습인 줄 알았어. 평생 동안 안 바뀔 줄만 알았던 내 모습 말이야...."
"....."
"그런데... 윤아야, 그게 아니더라."
아무 말이 없는 윤아.... 유경은 의미 모를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난 말야.... 남자 싫어한게 아니었나봐. 정작 좋아하고 싶은 남자가 눈앞에 나타나니까....
정말로 놓치기가 싫어지더라. 나도 결국은 여자였던거야. 사랑도 해보고 싶고 연애도 해보고 싶은
그런 보통 여자 말이야.... 후훗. 이상해?"
".... 그래서 23 년 만에 처음 만난 이상형이 그 오빠라 이거야? 진짜 그래?"
"그래. 그런가봐."
"언니도 남자 취향 되게 특이하다, 정말."
윤아는 다시 몸을 돌리고는 이번엔 유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오빠랑 언니랑... 안 어울려."
전혀 예상치 못한 윤아의 그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유경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언니가 너무 아깝다는 얘기야."
윤아는 그 말을 끝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 먼저 씻고 자야겠어. 생리 때문에 피곤해. 언니도 일찍 자."
"저기, 윤아야..."
자리에서 일어서는 윤아의 모습에 유경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녀가 무어라 말려볼 틈도 없이
윤아는 이미 방문 손잡이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윤아야. 혹시 너..."
다급히 말을 꺼내는 유경. 그 말에 문을 열고 나가려던 윤아가 잠시 멈칫했다.
손잡이 위에 얹은 손을 더 움직이지 못하고 윤아는 가만히 서서 유경을 가만히 돌아본다.
"....혹시 뭐?"
"아, 아냐... 아무 것도."
"....잘 자, 언니."
윤아는 잠시 멈추었던 손을 움직여 방 문을 열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동생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도 유경은 끝내 아무런 말도 더 꺼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처음이리라.... 둘 사이에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는.
다음 날의 모의고사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굳이 결과를 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공부 한 자도 안한데다가 어제의 일로 체력까지 바닥으로 떨어진 마당에 당연히 시험을 잘 쳤을 리가 없었다.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을 화려하게 망쳐먹은 나는 점심시간이 찾아오자 밥 맛도 없는 식사를 억지로 꾸역꾸역
뱃 속에 밀어넣고는 교정 벤치로 나와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한숨만 푹푹 쉬어댔다.
"난 좆됐어. 언어를 발로 풀었다니까."
"야이 새꺄. 난 수리를 전부 3 번으로 찍었어."
"이제 좀 있음 외국언데... 아, 짜증난다. 진짜."
옆에서 친구들이 저마다 각각 자랑이라도 하듯 자신이 얼마나 시험을 망쳤는지에 대해 열띈 토론을
펼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대화에 참여할 의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에휴... 도대체 이래가지고 어쩌자는건지.
"조성재. 넌 잘 봤나보다? 아무 말도 없는 거 보니."
"참 나... 잘 보긴 개뿔이. 아마 오늘 친 게 내가 친 모의고사 중에 제일 못친 걸 거다."
모의고사를 치고 기운이 빠져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3학년들과는 달리 1, 2 학년 후배들은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축구공을 뻥뻥 차대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퍽이나 부러워지는건 나도 이젠
노땅이 다 됬다는 증거이려나?
"후... 저 때가 좋았지, 진짜."
"얌마, 좋긴 뭐가 좋냐? 저놈들도 1, 2 년만 지나면 우리 꼴 되는데."
"그렇긴해도 저 때로 돌아가면 공부 열심히해서 일류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미친... 꿈 깨, 임마. 넌 1년 더 줘봤자 놀기만 할 놈이야."
거 새끼, 말 한번 아름답게 하는구만.
"아, 이제 내년이면 고딩 끝이다. 대딩 되면 열라 좋겠지?"
"말 같잖은 소리 작작해. 좋긴 뭐가 좋냐?"
"왜 안좋아?"
"야, 대학을 가야 좋더라도 좋을거 아니냐. 그리고 고딩 졸업하면 못하는게 얼마나 많은 줄 알어?"
"뭐가 있는데?"
"너 임마, 가령 예를들어 스무살 넘어가는 순간부터 교복 입은 애들이랑 빠구리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여튼 이 새끼 머리 속엔 꼭 이런 거 밖에 없어요."
"뭐 이 자식아!? 인생에 여자 빼면 남는게 어딨어?"
곁에서 별 시덥지 않은 주제로 열을 올리는 친구들을 무시한채 나는 애꿎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후... 왜 이렇게 답답하냐."
문득 유경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늘 위에 누가 스케치라도 해놓은 듯 아른거리는 그 예쁜 얼굴.
아... 보고 싶다.
"젠장. 지금 무슨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안본지 몇시간 됬다고."
하지만 어쩌랴. 사랑이란게 다 그런 건데.
"윤아는 화가 좀 풀렸으려나..."
어제 그 기세로 봐서는 오늘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유경 누나가 어제 잘 말해본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좀 나아졌을지도...
"그래. 원래 성격은 밝은 애잖아. 누나 말대로..."
나도 모르게 2 학년 교정 쪽을 돌아보게 된다. 암만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래도 이젠 내 연인이 되는 사람의 동생인데.... 계속 나쁘게 지내봐야 좋을 거 하나 없잖아.
"한번... 가볼까?"
만약 아직도 화가 안풀렸다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는 커녕 말도 없이 고개를 홱 돌려버릴테지만...
"윤아, 양호실 갔는데요?"
"....엉?"
하지만 2 학년 2반 교실에서 윤아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한 2학년 후배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윤아가 교실이 아닌 양호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호실...?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그 건강하다 못해 힘이 팔팔 넘치는 애가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고.... 무슨 일이지?
고개를 흘끗 들어 그 교실의 벽걸이 시계를 올려다보니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꽤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 녀석 참.... 은근히 신경 많이 쓰인단 말야."
소식을 전해준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나는 곧장 2 반 교실을 떠났다.
등 뒤에서 그 후배가 계속해서 무어라고 수군수군 거리는 걸로 봐서는.....
아마 십중팔구는 내가 혹시나 윤아 남친이라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자기네들끼리 저마다 한마디씩 쑥덕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거 하여간, 여자들이란....
- 똑똑똑.
"아무도... 없나?"
양호실 문을 살짝 두드려보았지만 안쪽에서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소리 없이
돌려 열고는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섰다. 양호실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한 적막만이 깔려있을 뿐, 언제나 계시던
양호선생님은 지금 점심식사라도 하러 갔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윤아가 있긴 있으려나?"
양호실 한쪽에는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간이 침대가 너댓개 쯤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조심 다가가 침대의 커튼을 하나씩 살짝 걷어보기 시작했다.
"있구나."
딱 네번째 침대의 커튼을 걷어보았을 때, 나는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의 소녀가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조용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윤아 말고도 양호실에는 두어명 정도가 더 누워있었는데, 모두 잠들어있어서
그런지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오직 고요한 숨소리 뿐이었다.
"얘가 어디 아픈가... 아님 그냥 수업 땡땡이 치고 싶어서 자러 온건가?"
확실히 윤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지만 어쩐지 내 눈에는 잠들어있는 윤아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간이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놓고는 슬며시 걸터앉았다.
"자는 모습... 자기 언니랑 많이 닮았네."
어제 유경 누나의 자는 얼굴을 감상한 데 이어, 이렇게 윤아가 자고 있는 모습까지 유심히 살펴보니 둘은 꼭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그 모습이 퍽 많이 닮아있었다. 마치 아기처럼 잠들어 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언니나 동생이나 둘 다 잠버릇은 이쁘게 들었나보다.
"생긴 건 참 귀여운데... 성격도 얼굴만큼 귀여우면 오죽 좋을까."
볼 때 마다 늘상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으려니까 그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정말 성격만 괜찮으면 최고일텐데....
뭐 하긴... 나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뭘 봐?"
"으헉!"
한창 잡생각에 빠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홱 열리는 그녀의 눈꺼풀.
나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처럼 경악하여 순간 의자에서 앉아있던 그대로 뒤로 나자빠질 뻔 했다.
"아, 안자고 있었어?"
"....자고 있었는데 오빠가 깨웠잖아."
"내, 내가 언제..."
"그렇게 얼굴 들이대면 싫어도 깨게 되있어."
무덤덤하게 쏘아붙이는 윤아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세상 모르게 곤히 자고있던 애가 얼굴 좀 붙였다고 바로 깨냐...?
혹시 처음부터 안자고 있었던 거 아냐? 하긴 그러고보니까 새근새근 하는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안 들렸던 것도 같은데....!
"근데 왜 왔어."
"아니... 그게..."
어쨌든 정말 무지하게 놀랬다. 생각 해보라, 자고 있는 줄 알고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얼굴이 눈을 번쩍 뜨고 날 올려다보는 그 상황을.
윤아가 얼굴이 귀여워서 망정이지 그게 험악한 남자였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괴담이 될 수도 있다.
"그... 니가 좀 걱정되서. 니 친구가 양호실 갔다고 하길래... 어디 다쳤나해서 와봤지."
"....."
잠시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눈만 멀뚱히 올려다보던 윤아였지만 곧 옅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치... 오빠가 언제 내 걱정했다고."
"야, 무슨 말을 해도.... 그런데 도대체 뭔 일이야? 어디 아파?"
"어제 말했잖아."
"뭘...?"
"오빠 바보야? 요즘 생리라니까."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듯이 가볍게 내뱉아버리는 윤아....
"아, 그, 그거였어?"
난 그제서야 어제 윤아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그랬구나... 어제 생리 어쩌고 하더니... 그것 때문이었나.
"야... 근데 저기 누워있는 애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조심 좀 하고 말해."
"어쩌라고... 여자는 다 하는건데."
하긴 니 막나가는 성격을 누가 말리겠냐....
"그럼 그거... 때문에 아픈 거야?"
차마 생리통이라고 대놓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
"그거 많이 아파?"
"궁금하면 오빠도 해보던지..."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윤아는 침대에서 애써 몸을 일으켰다.
한 눈에 척봐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보이는데 왜 일어나는걸까?
"야, 왜 일어나? 아프면 좀 더 쉬지..."
"조퇴할래."
"....뭐?"
"집에 가서 잘래. 여기 불편해."
"....."
참 대단한 발상입니다요.... 정말 눈을 씻고 뜯어봐도 학생다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발견할 수 없는 윤아.
뭐 나라고 남말할 처지가 아니긴 해도....
"아, 짜증나..."
윤아는 걷기가 조금 어지러운지 침대에서 내려온 후에도 약간 힘들게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보아하니 집까지 제대로 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목검은 어디갔지? 그거라도 있으면 지팡이로 쓰면 될 텐데.
"오빠."
"으, 응?"
한 서너걸음 정도 떼었을까, 윤아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날 홱하고 돌아보았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던 것은 아마 내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나 좀 업어봐."
하, 하하... 이거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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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따끈한겨울입니다.
날씨가 많이 차갑네요.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저처럼 감기 걸려서 코 훌쩍이시는 일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
돈버는건 참 힘드네요. 마산에서 내려온지 이틀도 안되서 새 일을 구하러 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하다니...
그래도 집이 최고라는 말은 맞는지 집에 돌아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꽤 여유롭습니다.
다들 언제나 건강하세요... 미숙한 글을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무한히 감사합니다.
두달 동안 레스토랑 일만 했더니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틀린 점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문이 생길
노릇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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