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아줌마의 고백-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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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곰돌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889회 작성일 20-01-16 21:52본문
제 이름은 조영신 올해 57살. 1958년생 개띠 아줌마입니다. 결혼 31년차의 평범한 가정의 주부로 두 딸은 이미 결혼을 시켜 손주도 셋이나 본 할머니예요.
남편은 뭐하냐구요? 남편은 얼마전 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답니다. 아내는 안중에 없어서 시골 전원주택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한달에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희는 일반 중산층보다는 잘사는 수준인거 같아요. 남편은 대학교수로 퇴직했지 두 딸은 재력있는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갔으니 먹고사는 것을 넘어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해왔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그 이를 만나기 이전까지는요. 딸애들 교육에 신경쓰느라 저의 개인적인 삶은 포기를 했었고 딸애들을 다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제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노는 것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보수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영부영하다보니 50대가 되었고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는 갱년기 증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엘리트였습니다. 서울의 명문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33년전에 뉴욕으로 유학을 갔었으니까요. 뉴욕에서 유학중이던 남폄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커리어우먼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요. 결혼과 함께 제 꿈은 모두 반납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한 삶만 살아와야 했습니다.
제 인생에 후회가 밀려오고 공허한 마음이 생긴건 둘째까지 시집보낸 53세때 였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80평 큰 집에 혼자 남겨진 제 자신이 유난히 그날따라 쓸쓸해보였습니다.
‘가진 것도 많고 풍족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허전하고 허무한거야’
그날 이후로 그런 좋지 않은 감정은 저를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하나씩 갱년기 증상들도 찾아오기까지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 동창이자 미국 유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SNS로 30여년만에 근황을 알게 된 친구였어요. 프로필 사진만 봐도 저와 다르게 세련되 보이더라구요. 연예인 아줌마 처럼 세련되고 매력있어 보였습니다. 하긴 그 친구도 무용을 전공하고 유학가서 미국에 정착한 친구니 그 끼를 숨기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쪽지로 연락이 오고가면서 한번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습니다. 마침 조만간 한국에 나올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미숙이었는데 영어 이름은 자넷이라고 꽤 세련된 이름을 쓰더라구요. 저도 또래에 비해서는 관리를 잘 받은 편이라 젊게보인다고 자부하는데 미숙이는 5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잘 꾸민만큼 몸매도 탱탱했습니다. 운동 꽤나한듯한 탄탄한 엉덩이와 실리콘 좀 넣은것 처럼 보이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남편과 결혼하면서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잘 자리잡고 산 것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젊은 시절에는 저를 부러워 했다고 하더라구요. 미숙이라는 그 친구는 야망이 있었던 친구라 그때 당시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미숙이는 자신의 철학이 뚜렸했고 지금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계속 싱글로 살아왔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정서로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법적인 부부는 아니지만 부부처럼 지내는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신아 결혼이란게 좋아보여도 그게 결국 족쇄인거야. 결혼없이도 얼마나 행복하게 남자 만나고 살수 있다고 남자란게 많이 만나보고 결정해야하는 거고 그 결정도 나중에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니까?”
미숙이는 그렇게 결혼 회의론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50대가 지난 지금 그 의견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안정된 가정도 중요하지만 여자에게는 개인의 기쁨이 더 중요하다고요.
그럼 미숙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었습니다. 미숙이는 뉴욕에서 무용단 활동을 30대 초반까지 하고 이후에는 시간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쌓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40대에 접어들때는 현지인과 합작으로 사설 아카데미를 설립했는데 현지인 인맥이 많은 탓에 연예인들을 배출하는 등용문이 될 정도로 아카데미가 경제적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남편과 딸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제 삶과는 극과 극의 삶이었죠. 그래도 한때 같이 유학하고 꿈을 꾼 친구였는데 말이죠.
미숙이가 들려준 남자 스토리는 더 믿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결혼한 무렵에 미숙이도 같은 학교의 백인과 눈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후로 미숙이는 1년이 머다하고 남자를 바꿔탔다고 합니다. 황인,흑인,백인,멕시칸 가릴것 없이 다양하게 만나봤지만 하나같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인은 라이프 스타일은 비슷해서 코드는 맞았지만 백인,흑인을 맛본 다음에야 섹스자리가 시원치 않아 결혼상대로는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인,흑인,멕시칸들은 잠자리 궁합만으로 인생을 걸기에는 삶의 패턴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성격적인 부분에서 부딪히는게 많았다고 하네요.
오히려 그렇게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이어간게 나중에는 득이 됐다고 합니다. 30대가 지나고 40대가 되었을때 동년배 남자보다도 자연스럽게 연하남이 끌리게 되었다고 하니까요.
요즘 제가 듣기로 우리나라도 아줌마들이 연하남을 즐겨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숙이의 남자관계는 제가 알던 상식보다도 훨씬더 쇼킹했습니다. 그때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미숙이가 알려준 남자는 총 네명. 번갈아가면서 만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세사람이 아카데미에서 수강하는 원생이고 연예인을 꿈꾸는 10대였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사람은 디렉터였는데 풋볼 선수출신의 20대 후반의 건장한 흑인 남성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 남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습니다. 10대 소년 중 하나는 곱상하게 생긴 백인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대학생 같아보였습니다. 나머지 둘은 흑인 댄서였습니다. 그 흑인 디렉터라는 사람이 미숙이의 메인 남친인거 같았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고 하더라구요. 같이 지낸지는 6개월쯤 되었는데 50대가 되면서 새로운 욕구를 갈망하고 있는데 잘 채워주는 상대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보여준 그 남자의 팔뚝만한 자지는 쇼킹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게 느껴졌으니까요.
미숙이는 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상식에 사로잡혀서 살지마, 어차피 남녀는 섹스를 탐하는 거고 이왕이면 영(Young)한 남자가 좋잖아. 걔들도 우리같이 올드한 여자들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대화만 되면 쉽게 관계할 수 있어. 주변에 젊은 애들이 있다면 편견 가지지 말고 자연스럽게 친해져봐”
미숙이와의 만남은 보수적이고 무료하게 살던 제 삶에 영향을 줬습니다. 그 날 이후로 보이는 남자들. 특히 젊은 남자들에게 마음을 주고 싶었고 사소한 남자와의 접촉에서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택배 배달오는 것부터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마음만 가지는 것으로 뭔가 진행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30년 넘게 한남자만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이룰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죠. 때는 미숙이를 만난지 두달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데서 찾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같은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재태크로 상가매입을 준비중이었는데 해외출장이 잦은 터라 제가 계약을 도맡아서 했었습니다. 5층짜리 건물로 시가 50억 정도의 건물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36억에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까페와 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건물이었죠. 맨 윗층은 독서실이었습니다. 계약 이후에는 하루에 한번은 건물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곤 했습니다.
얼마정도 상가 입주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매출이라든지 대략적인 가게 상황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까페와 학원들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5층 독서실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독서실이 사양산업이라 하소연 하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였죠. 주인은 임대료 때문에 볼맨소리를 하루가 멀다하고 했습니다.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갈수록 적어졌고 고정적으로 오는 학생은 대략 하루 저녁에 다섯명 남짓밖에 안됐습니다. 40명 정도 공부할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수준이었죠. 저는 빨리 독서실 주인이 처분하고 나가길 바랬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부탁을 해서 며칠동안 데스크를 봐준적이 있습니다. 주간에는 알바가 서고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제가 데스크를 본거였습니다. 오는 사람 체크하고 CCTV로 특이사항이 없는지 체크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수월했죠. 그날부터 어떤아이들이 오는지 파악할 수도 있었고 왜 이 독서실이 장사가 안되는지 파악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역에 고교가 없어서 고등학생은 전혀 유치하지 못했고 공부와는 별 관계없는 중학생들 너댓명만 오는 것이었습니다. CCTV로 가만히 지켜보니 남학생 셋에 여학생 둘이었는데 대부분 와서 공부를 좀 하다가 엎드려 잤습니다. 밤 9시쯤 되자 이곳이 독서실인지 수면실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죠.
안되겠다 싶어 애들을 깨우러 갔습니다. 간섭하는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면 잠이라도 깨워야 했습니다.
“얘들아 공부하러 왔음 자지말고 공부해야지”
애들이 일어나긴 했습니다. 공부할 의욕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랑 눈이 마주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날 보더니 다시 잘 생각을 안합니다.
“아줌마가 오늘 대신 온거예요?”
약간은 당돌한 아이였습니다. 신상명세를 보니 이름은 한정민이었고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15살입니다.
“응, 내가 이건물 주인인데 며칠 저녁은 내가 보기로 했어. 학생들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해야지…응?”
“네…”
다시 저는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시계가 열한시쯤 되자 저도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올 사람은 없고 그래서 그냥 마음 놓고 졸았습니다. 한참을 잤을까요?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문닫는 시간 한시가 훌쩍 넘어 1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애들은 갔으려나?”
CCTV를 들여다보니 공부방에 책상이 깨끗합니다. 애들은 다 갔나 봅니다. 이제 불끄고 문단속하려고 공부방에 들어갔습니다. 다들 간거 같은데 아까 나를 당돌하게 쳐다봤던 정민이 책상에 아직 책가방이 걸려있었습니다.
“뭐지? 얘가 아직 안갔나?”
공부방에는 아무도 없어 혹시나 해서 나와봤습니다. 내일 가방 찾으러 오겠지 하고 저는 마무리하고 가려고 계단 쪽에 있는 화장실로 무심코 갔습니다. 여기 건물 화장실은 협소해서 남녀 화장실이 나뉘어져 있긴 해도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남자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상하다 아까 저녁에는 불이 꺼져있었는데 누가있나?”
가까이 가서 살짝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소변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있는 대변기에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정민이가 대변보나 보네”
저는 정민이가 대변보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다시 독서실 카운터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던 순간이었습니다.
“끄응...응 아아”
대변기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소년의 소리였다는 것은 대번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소리가 궁금해서 그 앞에서 계속 있어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대변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미세하게나마 탁탁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그 소리가 자위하는 소리라는 것을 확실했습니다.
그 건물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더 과감하게 남자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자위하고 정리해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했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포르노물을 켜놓은 소리가 났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자위 중이였나 봅니다.
한참이 지나도 자위가 끝날 생각을 안합니다.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가 지나고 있었고 저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얘는 고추가 멀로 만들었길래 싸지를 않아?’
혼자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정도면 정력하나는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평생 외도 경험이 없었던 저로써는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고 먼 발치에 서서 복도가 울리게 이야기 했습니다.
“한정민 학생? 화장실에 있어? 이제 독서실 문닫을거야”
“네 아줌마 곧 나가요”
그러고 10분 뒤에 나오더라구요. 제가 화장실에서 눈치 챈지 50분쯤 만에 나온거 였습니다. 정민이는 부끄러운지 급하게 공부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정리했습니다.
나오면서 정민이와 눈을 마주쳤는데 왠지모를 야릇함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도저히 남녀관계로 볼 수 없는 나이 차이였는데 말이죠. 정민이와 저는 39살 차이가 났습니다. 엄마 아들이 아닌 옛날 같았으면 손주급의 나이차이였죠.
“무슨 화장실을 그렇게 오래있었니?”
저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인채 물었습니다.
“배탈이 났었나봐요”
“그래? 음식 조심해라. 뭘 잘 못먹었나봐. 아무튼 오늘 수고했고 들어가봐 어서 늦었다”
“네 아줌마 수고하세요”
정민이는 인사를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정민이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저는 바로 화장실에 달려갔습니다. 원인모를 흥분감에 제 발걸음이 남자화장실 대변기 속으로 정민이가 자위했던 자리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불을 켜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밤꽃 향이 진동하고 대변기 앞 벽에 배출한지 얼마되지 않은 정액이 고스란히 묻어있었습니다.
“아~! 이게 정민이가 싼 그거야?”
저는 흥분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대변기에 앉아 자위를 시작했는데 제 머릿속에는 15살 소년 정민이의 자지가 상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묻은 정액을 만지고 냄새를 맞고 음미하기 시작했습니다. 싱싱한 정액이라 그런지 끈적지고 냄새는 아주 독했습니다. 평생을 통틀어 그렇게 흥분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 정민이~~아아아”
저는 넋을 거의 잃었습니다. 자위하면서 신음소리를 그렇게 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제손으로 느낀 자극보다도 코를 통해 들어오는 정민이의 정액냄새와 채취 그리고 정민이에 대한 상상을 하니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진한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도저히 이대로 끝낼수가 없었습니다. 본능은 자꾸 정민이를 오늘 만나야한다고 했습니다.
“아~! 정민아~~!!”
저는 자위를 끝냈지만 계속 눈을 지그시 감고 정민이의 이름을 대뇌였습니다.
그때 꿈인지 생시인지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정민아!”라고 말할 때 옆 대변기 칸에서
“네~아줌마”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정민아? 정민인거니?”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들었나 봅니다.
“에구 내가 미쳤지 정민이한테 완전히 미친거 같네 호호”
저는 잘못들었나 싶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대변기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들렸습니다.
“흐흐 아줌마 진짜 밝히네요”
그것은 진짜 정민이 목소리였습니다.
“야 너...정민이야? 진짜야?”
“네, 아줌마 놀랬죠?”
“너 왜 여태 안가고 있어. 언제 왔어?”
“아줌마가 내 이름 부르면서 울고 있을 때 들어왔져”
“아~~그럼 너 다 듣고 있었던거야? 어떡해”
“흐흐흐 아줌마 진짜 밝힌다”
저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적나라하게 자위하던 소리를 바로 옆 칸에서 듣고 있었다니 이 아이가 무슨 꿍꿍이 속으로 그랬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열다섯살 밖에 안 된 놈이 벌써부터 능수능란하게 저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 어떡하니.....정민아 어떡해”
“흐흐흐 어떡하긴 뭐 어떡해요...근데 아줌만 몇 살이예요?”
“나? 나 나이 많은데.....너 열 다섯이지? 음....엄마가 몇 살이니?”
“엄마요? 서른 일곱?날 스물둘에 나았댔나? 아마 그쯤 될껄요?”
‘(혼자 속으로)엄마야!!! 서른일곱이면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거야? 열일곱살? 엄마야....’
“난 올해 54살이야. 엄청많지?”
“와우~나 50대 아줌마는 아직 안만나봤는데 대박이네요.흐흐”
“만남? 너 아줌마 만나고 다니니?”
“넹,아줌마한테 배워서 아줌마 좋아해요”
“어머 세상에...열다섯에 그럼.....”
“아줌마도 한번 당해볼래요?참 아줌마 이름이 뭐예요?”
“나? 조영신”
“응 영신이 아줌마 우리 칸막이 옆에 있지 말고 빨리 나와서 봐요”
“내가 넘어갈까요?”
“응?응 그래 니가 넘어와”
왜 이렇게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옆칸에서 정민이가 넘어오는 그 순간 저는 두 다리에 힘이 다풀려버렸습니다. 변기에 앉아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똑똑똑하고 노크소리가 들렸고 제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긴장도 되고 힘이빠져서 도저히 열어주지를 못했습니다.
"아줌마? 오라면서요?"
"응....긴장되 못열겠어....너 옷입고 있어?"
"네 당연히 입었지요. 왜 그래요?"
"너무 이상해 너 애인데 왜이렇게 날 흥분시키지? 왜이렇게 잘다루는거야?"
"아줌마가 날 좋아하니까 그러는거겠죠? 흐흐"
"아 나 미쳐 빨리 들어와 정민아"
쾅!~~~!
정민이가 그순간 문을 발로 밀어 차서 열어버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꺄악 뭐야 ...정민아....문을 부수면 어떡해"
눈앞에 마주친 정민이를 보는 순간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민이의 기가 분명하게 느껴졌으니까요. 느껴지는 젊음. 정력..뭐랄까 여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에게서 받은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
오히려 제가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때 정민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제 볼을 만지더라구요. 그리고 뺨에 키스를 하고 볼부터 서서히 만지더니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보다도 서른아홉살이나 어린놈이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능수능란하게 애무를 하더라니까요.
"정민아...어떻게 이렇게 잘해?"
"아는 아줌마한테 섹스 과외받았으니까요.흐흐"
"아...미치겠어"
단지 젖가슴만 만졌을 뿐인데 저는 이미 아랫도리가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정민이가 그걸 알아차리더라구요.
"아줌마 벌써 쌌네요. 냄새가 나요."
"아 몰라 어떡해"
"아줌마 손줘봐요."
"응 손은 왜?"
제가 손을 주자 정민이가 제 손목을 잡고 바지 가랑이 사이로 넣었습니다. 정민이의 자지를 느끼게 한거죠.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남자 자지를 만져본건 남편 외에는 없었고 그것도 최근 10년 동안에는 제대로 섹스 한적도 없었던 여자였기 때문이었죠. 손에 느껴진 정민이 자지의 느낌은 놀라움 충격을 넘어 감동이었습니다.
"어머...세상에...정민아...어쩜...."
"아줌마 왜요...? 어떤데요?"
"몰라 정민아....생각했던거보다 훨씬 크고....단단해....그리고 뜨겁고"
단지 바지위로만 만졌을 뿐인데 느낌은 강렬했습니다.
바지위로 어루만지다 교복바지 지퍼를 내렸습니다.
아..이게 정민이의 자지인가
지퍼를 열자 장벽이 허물어 진거 처럼 눌려있던 자지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팬티 위로 솟아 나오는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처음 본 정민이의 자지는 경이로웠습니다. 15살이면 어린아이일 줄 알았는데...
상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크고 굵었습니다. 잡기가 무서울 정도로 컸어요. 저희 남편과 비교하면 남편이 애교 수준일 정도였죠.
"저정민아...대단하다. 놀라워....애가 아니라 어른이네 완전"
"후훗 아줌마도 좋아요? 우리 아줌마 애인은 사랑한다던데 흐흐"
"애인줄 알았는데...정민아...장난 아니다... 잠시만 기다려봐"
제가 문득 생각이 나서 호기심에 공구통에 있는 줄자를 가져와서 정민이 자지를 재어보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보는것 보다도 오래전에 남편 자지를 잰 기억이 있어서 비교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줄자를 가져오자 정민이가 부끄러운 듯이 웃습니다.
"아 아줌마 뭐하는 거예요?"
"에이 잠시만 있어봐 정민아"
저는 줄자를 가지고 정민이의 자지에 갖다 댔습니다.
"이십일센티!"
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남편이 팔팔할 때 쟀을때 12센티정도였으니 그때도 작은 사이즈가 아니라고 봤는데, 정민이의 것은 남편보다 거의 두배는 거대했습니다. 거기에 귀두는 거의 제 손목보다도 굵어보였습니다.
미숙아 드디어 나도 대박났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54년 평생을 외롭게 욕구를 억눌러가며 살았던 지난 과거가 떠오르며 조물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정민이의 자지를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한 것으로 생각하니 감격스럽고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정민이의 자지를 잡고 물었습니다. 내 평생 처음 물어본 외간 남자의 자지. 그것도 39살 연하의 미성년자의 우람한 자지를 입에 넣고 본능이 말하는대로 물고 빨았습니다.
"아 아아줌마..."
정민이도 자극 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정민이의 자지는 돌처럼 딱딱해졌고 손으로 잡고 빠는게 나중에는 팔이 아파질 정도로 강하게 발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어리니까 힘이 엄청 좋네"
"응 아줌마...꽃히면 더 좋을껄?흐흐"
정민이는 엄마보다 열일곱살이나 더 많은 나에게 자극적인 말을 숨기지 않고 내뱉었습니다.
"정민아 이제 못참겠어...박아줘"
"흐흐 아줌마 뭐라고? 잘 안들려"
짓궂은 장난을 쳤지만 저는 정말로 정민이의 자지에 박히고 싶었습니다.
"정민아 너 자지로 나한테 박아줘"
"내가 왜 할머니 한테 박아줘? 아줌마"
"이놈이...야 장난치지 말고 어서"
제가 몸집이 더 커서 완력으로 정민이를 눕히고는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빳빳하게 선 귀두위로 54년동안 남편이라는 한 자지만 받아온 저의 질구멍을 열고 서서히 앉았습니다.
"아~~~아~~!! 미치겠어....찢어질거 같애"
파고들어오는 정민이의 자지는 크기도 무지막지 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들어오는 동안 제 다리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뜨끈뜨근한 돌이었습니다.
경험많고 나이많은 내가 리드를 해야했지만 정민이의 자지의 위력앞에 제가 할 수 있는건 없었습니다. 그냥 박힌채로 전 소리지르며 오르가즘을 느꼈습니다. 30대 시절 남편에게 느낀 그느낌을 50대 중반이 다되서 다시 느꼈는데 정민이에게서 그 느낌을 받기까지는 삽입후 1분이 채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습니다.
그 이후 정민이는 다른 아줌마한테 배운 기술을 저에게 사용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황홀감에 취해 얼마나 쌌는지 카운트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정민이도 몇 번을 싼지 모릅니다. 그 좁은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저희는 쾌감의 절정을 맛보았습니다. 몇시까지 했는지 기억도 안나고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낫을땐 오전 9시 독서실 공부방 한가운데 나체로 자고 있었고, 질 안에서는 끈끈한 정민이의 정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정민이가 다시 와서 물어보니 화장실에서 하다가 제가 정신을 잃어 공부방으로 들어와서 문잠그고 더 했다고 하더라구요. 정민이는 그날 밤에도 덤벼들었습니다. 저는 한 2주 가까이 몸살을 심하게 했습니다. 15살의 정력을 54살 아줌마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정민이는 어리지만 아줌마 킬러의 기질이 있는 장차 카사노바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습니다. 내가 욕구가 살아있는한 이 아이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난다는 보장이 없을거 같아서 정민이에게 매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정민이는 고2입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계속 만날 수 있을지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3년을 만나면서 저같은 아줌마를 몇 명 더 엮어서 엔조이 상대로 지내오고 있어서 솔직히 질투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 입장에서 화를 낼수도 있는 입장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민이를 놓치기 싫어서 정민이의 여자로 남고 싶어서 제가 생각을 한 것이 있습니다. 평생 정민이의 흔적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두 달 있으면 아들을 출산입니다. 내 나이 57살. 지금 제가 다니는 산부인과에서도 선생님이 자신이 본 산모 중 최고령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신체나이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고 할 정도로 칭찬을 했습니다. 50대 초반에 건강검진때는 폐경직전의 아줌마에 불과했는데 정민이 덕에 진짜 회춘을 하게 된겁니다.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첫째 둘째딸 시집보내고 벌써 초등학교 들어간 손주 포함해서 손주만 세명을 본 할머니기 때문이었죠.
임신 사실이 드러나며 남편과도 별거한 상황이 되었고 딸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잃은게 많습니다. 그래도 정민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나보고 항상 "아줌마 최고"라고 말하는 정민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가족들이 외면해도 돈을 잃는다 해도 행복합니다.
"정민씨 나도 사랑해 영원히"
남편은 뭐하냐구요? 남편은 얼마전 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답니다. 아내는 안중에 없어서 시골 전원주택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한달에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희는 일반 중산층보다는 잘사는 수준인거 같아요. 남편은 대학교수로 퇴직했지 두 딸은 재력있는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갔으니 먹고사는 것을 넘어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해왔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그 이를 만나기 이전까지는요. 딸애들 교육에 신경쓰느라 저의 개인적인 삶은 포기를 했었고 딸애들을 다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제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노는 것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보수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영부영하다보니 50대가 되었고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는 갱년기 증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엘리트였습니다. 서울의 명문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33년전에 뉴욕으로 유학을 갔었으니까요. 뉴욕에서 유학중이던 남폄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커리어우먼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요. 결혼과 함께 제 꿈은 모두 반납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한 삶만 살아와야 했습니다.
제 인생에 후회가 밀려오고 공허한 마음이 생긴건 둘째까지 시집보낸 53세때 였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80평 큰 집에 혼자 남겨진 제 자신이 유난히 그날따라 쓸쓸해보였습니다.
‘가진 것도 많고 풍족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허전하고 허무한거야’
그날 이후로 그런 좋지 않은 감정은 저를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하나씩 갱년기 증상들도 찾아오기까지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 동창이자 미국 유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SNS로 30여년만에 근황을 알게 된 친구였어요. 프로필 사진만 봐도 저와 다르게 세련되 보이더라구요. 연예인 아줌마 처럼 세련되고 매력있어 보였습니다. 하긴 그 친구도 무용을 전공하고 유학가서 미국에 정착한 친구니 그 끼를 숨기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쪽지로 연락이 오고가면서 한번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습니다. 마침 조만간 한국에 나올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미숙이었는데 영어 이름은 자넷이라고 꽤 세련된 이름을 쓰더라구요. 저도 또래에 비해서는 관리를 잘 받은 편이라 젊게보인다고 자부하는데 미숙이는 5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잘 꾸민만큼 몸매도 탱탱했습니다. 운동 꽤나한듯한 탄탄한 엉덩이와 실리콘 좀 넣은것 처럼 보이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남편과 결혼하면서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잘 자리잡고 산 것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젊은 시절에는 저를 부러워 했다고 하더라구요. 미숙이라는 그 친구는 야망이 있었던 친구라 그때 당시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미숙이는 자신의 철학이 뚜렸했고 지금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계속 싱글로 살아왔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정서로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법적인 부부는 아니지만 부부처럼 지내는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신아 결혼이란게 좋아보여도 그게 결국 족쇄인거야. 결혼없이도 얼마나 행복하게 남자 만나고 살수 있다고 남자란게 많이 만나보고 결정해야하는 거고 그 결정도 나중에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니까?”
미숙이는 그렇게 결혼 회의론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50대가 지난 지금 그 의견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안정된 가정도 중요하지만 여자에게는 개인의 기쁨이 더 중요하다고요.
그럼 미숙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었습니다. 미숙이는 뉴욕에서 무용단 활동을 30대 초반까지 하고 이후에는 시간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쌓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40대에 접어들때는 현지인과 합작으로 사설 아카데미를 설립했는데 현지인 인맥이 많은 탓에 연예인들을 배출하는 등용문이 될 정도로 아카데미가 경제적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남편과 딸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제 삶과는 극과 극의 삶이었죠. 그래도 한때 같이 유학하고 꿈을 꾼 친구였는데 말이죠.
미숙이가 들려준 남자 스토리는 더 믿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결혼한 무렵에 미숙이도 같은 학교의 백인과 눈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후로 미숙이는 1년이 머다하고 남자를 바꿔탔다고 합니다. 황인,흑인,백인,멕시칸 가릴것 없이 다양하게 만나봤지만 하나같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인은 라이프 스타일은 비슷해서 코드는 맞았지만 백인,흑인을 맛본 다음에야 섹스자리가 시원치 않아 결혼상대로는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인,흑인,멕시칸들은 잠자리 궁합만으로 인생을 걸기에는 삶의 패턴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성격적인 부분에서 부딪히는게 많았다고 하네요.
오히려 그렇게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이어간게 나중에는 득이 됐다고 합니다. 30대가 지나고 40대가 되었을때 동년배 남자보다도 자연스럽게 연하남이 끌리게 되었다고 하니까요.
요즘 제가 듣기로 우리나라도 아줌마들이 연하남을 즐겨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숙이의 남자관계는 제가 알던 상식보다도 훨씬더 쇼킹했습니다. 그때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미숙이가 알려준 남자는 총 네명. 번갈아가면서 만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세사람이 아카데미에서 수강하는 원생이고 연예인을 꿈꾸는 10대였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사람은 디렉터였는데 풋볼 선수출신의 20대 후반의 건장한 흑인 남성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 남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습니다. 10대 소년 중 하나는 곱상하게 생긴 백인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대학생 같아보였습니다. 나머지 둘은 흑인 댄서였습니다. 그 흑인 디렉터라는 사람이 미숙이의 메인 남친인거 같았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고 하더라구요. 같이 지낸지는 6개월쯤 되었는데 50대가 되면서 새로운 욕구를 갈망하고 있는데 잘 채워주는 상대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보여준 그 남자의 팔뚝만한 자지는 쇼킹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게 느껴졌으니까요.
미숙이는 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상식에 사로잡혀서 살지마, 어차피 남녀는 섹스를 탐하는 거고 이왕이면 영(Young)한 남자가 좋잖아. 걔들도 우리같이 올드한 여자들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대화만 되면 쉽게 관계할 수 있어. 주변에 젊은 애들이 있다면 편견 가지지 말고 자연스럽게 친해져봐”
미숙이와의 만남은 보수적이고 무료하게 살던 제 삶에 영향을 줬습니다. 그 날 이후로 보이는 남자들. 특히 젊은 남자들에게 마음을 주고 싶었고 사소한 남자와의 접촉에서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택배 배달오는 것부터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마음만 가지는 것으로 뭔가 진행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30년 넘게 한남자만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이룰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죠. 때는 미숙이를 만난지 두달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데서 찾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같은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재태크로 상가매입을 준비중이었는데 해외출장이 잦은 터라 제가 계약을 도맡아서 했었습니다. 5층짜리 건물로 시가 50억 정도의 건물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36억에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까페와 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건물이었죠. 맨 윗층은 독서실이었습니다. 계약 이후에는 하루에 한번은 건물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곤 했습니다.
얼마정도 상가 입주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매출이라든지 대략적인 가게 상황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까페와 학원들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5층 독서실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독서실이 사양산업이라 하소연 하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였죠. 주인은 임대료 때문에 볼맨소리를 하루가 멀다하고 했습니다.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갈수록 적어졌고 고정적으로 오는 학생은 대략 하루 저녁에 다섯명 남짓밖에 안됐습니다. 40명 정도 공부할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수준이었죠. 저는 빨리 독서실 주인이 처분하고 나가길 바랬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부탁을 해서 며칠동안 데스크를 봐준적이 있습니다. 주간에는 알바가 서고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제가 데스크를 본거였습니다. 오는 사람 체크하고 CCTV로 특이사항이 없는지 체크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수월했죠. 그날부터 어떤아이들이 오는지 파악할 수도 있었고 왜 이 독서실이 장사가 안되는지 파악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역에 고교가 없어서 고등학생은 전혀 유치하지 못했고 공부와는 별 관계없는 중학생들 너댓명만 오는 것이었습니다. CCTV로 가만히 지켜보니 남학생 셋에 여학생 둘이었는데 대부분 와서 공부를 좀 하다가 엎드려 잤습니다. 밤 9시쯤 되자 이곳이 독서실인지 수면실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죠.
안되겠다 싶어 애들을 깨우러 갔습니다. 간섭하는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면 잠이라도 깨워야 했습니다.
“얘들아 공부하러 왔음 자지말고 공부해야지”
애들이 일어나긴 했습니다. 공부할 의욕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랑 눈이 마주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날 보더니 다시 잘 생각을 안합니다.
“아줌마가 오늘 대신 온거예요?”
약간은 당돌한 아이였습니다. 신상명세를 보니 이름은 한정민이었고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15살입니다.
“응, 내가 이건물 주인인데 며칠 저녁은 내가 보기로 했어. 학생들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해야지…응?”
“네…”
다시 저는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시계가 열한시쯤 되자 저도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올 사람은 없고 그래서 그냥 마음 놓고 졸았습니다. 한참을 잤을까요?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문닫는 시간 한시가 훌쩍 넘어 1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애들은 갔으려나?”
CCTV를 들여다보니 공부방에 책상이 깨끗합니다. 애들은 다 갔나 봅니다. 이제 불끄고 문단속하려고 공부방에 들어갔습니다. 다들 간거 같은데 아까 나를 당돌하게 쳐다봤던 정민이 책상에 아직 책가방이 걸려있었습니다.
“뭐지? 얘가 아직 안갔나?”
공부방에는 아무도 없어 혹시나 해서 나와봤습니다. 내일 가방 찾으러 오겠지 하고 저는 마무리하고 가려고 계단 쪽에 있는 화장실로 무심코 갔습니다. 여기 건물 화장실은 협소해서 남녀 화장실이 나뉘어져 있긴 해도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남자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상하다 아까 저녁에는 불이 꺼져있었는데 누가있나?”
가까이 가서 살짝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소변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있는 대변기에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정민이가 대변보나 보네”
저는 정민이가 대변보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다시 독서실 카운터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던 순간이었습니다.
“끄응...응 아아”
대변기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소년의 소리였다는 것은 대번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소리가 궁금해서 그 앞에서 계속 있어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대변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미세하게나마 탁탁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그 소리가 자위하는 소리라는 것을 확실했습니다.
그 건물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더 과감하게 남자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자위하고 정리해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했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포르노물을 켜놓은 소리가 났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자위 중이였나 봅니다.
한참이 지나도 자위가 끝날 생각을 안합니다.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가 지나고 있었고 저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얘는 고추가 멀로 만들었길래 싸지를 않아?’
혼자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정도면 정력하나는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평생 외도 경험이 없었던 저로써는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고 먼 발치에 서서 복도가 울리게 이야기 했습니다.
“한정민 학생? 화장실에 있어? 이제 독서실 문닫을거야”
“네 아줌마 곧 나가요”
그러고 10분 뒤에 나오더라구요. 제가 화장실에서 눈치 챈지 50분쯤 만에 나온거 였습니다. 정민이는 부끄러운지 급하게 공부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정리했습니다.
나오면서 정민이와 눈을 마주쳤는데 왠지모를 야릇함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도저히 남녀관계로 볼 수 없는 나이 차이였는데 말이죠. 정민이와 저는 39살 차이가 났습니다. 엄마 아들이 아닌 옛날 같았으면 손주급의 나이차이였죠.
“무슨 화장실을 그렇게 오래있었니?”
저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인채 물었습니다.
“배탈이 났었나봐요”
“그래? 음식 조심해라. 뭘 잘 못먹었나봐. 아무튼 오늘 수고했고 들어가봐 어서 늦었다”
“네 아줌마 수고하세요”
정민이는 인사를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정민이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저는 바로 화장실에 달려갔습니다. 원인모를 흥분감에 제 발걸음이 남자화장실 대변기 속으로 정민이가 자위했던 자리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불을 켜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밤꽃 향이 진동하고 대변기 앞 벽에 배출한지 얼마되지 않은 정액이 고스란히 묻어있었습니다.
“아~! 이게 정민이가 싼 그거야?”
저는 흥분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대변기에 앉아 자위를 시작했는데 제 머릿속에는 15살 소년 정민이의 자지가 상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묻은 정액을 만지고 냄새를 맞고 음미하기 시작했습니다. 싱싱한 정액이라 그런지 끈적지고 냄새는 아주 독했습니다. 평생을 통틀어 그렇게 흥분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 정민이~~아아아”
저는 넋을 거의 잃었습니다. 자위하면서 신음소리를 그렇게 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제손으로 느낀 자극보다도 코를 통해 들어오는 정민이의 정액냄새와 채취 그리고 정민이에 대한 상상을 하니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진한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도저히 이대로 끝낼수가 없었습니다. 본능은 자꾸 정민이를 오늘 만나야한다고 했습니다.
“아~! 정민아~~!!”
저는 자위를 끝냈지만 계속 눈을 지그시 감고 정민이의 이름을 대뇌였습니다.
그때 꿈인지 생시인지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정민아!”라고 말할 때 옆 대변기 칸에서
“네~아줌마”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정민아? 정민인거니?”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들었나 봅니다.
“에구 내가 미쳤지 정민이한테 완전히 미친거 같네 호호”
저는 잘못들었나 싶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대변기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들렸습니다.
“흐흐 아줌마 진짜 밝히네요”
그것은 진짜 정민이 목소리였습니다.
“야 너...정민이야? 진짜야?”
“네, 아줌마 놀랬죠?”
“너 왜 여태 안가고 있어. 언제 왔어?”
“아줌마가 내 이름 부르면서 울고 있을 때 들어왔져”
“아~~그럼 너 다 듣고 있었던거야? 어떡해”
“흐흐흐 아줌마 진짜 밝힌다”
저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적나라하게 자위하던 소리를 바로 옆 칸에서 듣고 있었다니 이 아이가 무슨 꿍꿍이 속으로 그랬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열다섯살 밖에 안 된 놈이 벌써부터 능수능란하게 저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 어떡하니.....정민아 어떡해”
“흐흐흐 어떡하긴 뭐 어떡해요...근데 아줌만 몇 살이예요?”
“나? 나 나이 많은데.....너 열 다섯이지? 음....엄마가 몇 살이니?”
“엄마요? 서른 일곱?날 스물둘에 나았댔나? 아마 그쯤 될껄요?”
‘(혼자 속으로)엄마야!!! 서른일곱이면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거야? 열일곱살? 엄마야....’
“난 올해 54살이야. 엄청많지?”
“와우~나 50대 아줌마는 아직 안만나봤는데 대박이네요.흐흐”
“만남? 너 아줌마 만나고 다니니?”
“넹,아줌마한테 배워서 아줌마 좋아해요”
“어머 세상에...열다섯에 그럼.....”
“아줌마도 한번 당해볼래요?참 아줌마 이름이 뭐예요?”
“나? 조영신”
“응 영신이 아줌마 우리 칸막이 옆에 있지 말고 빨리 나와서 봐요”
“내가 넘어갈까요?”
“응?응 그래 니가 넘어와”
왜 이렇게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옆칸에서 정민이가 넘어오는 그 순간 저는 두 다리에 힘이 다풀려버렸습니다. 변기에 앉아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똑똑똑하고 노크소리가 들렸고 제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긴장도 되고 힘이빠져서 도저히 열어주지를 못했습니다.
"아줌마? 오라면서요?"
"응....긴장되 못열겠어....너 옷입고 있어?"
"네 당연히 입었지요. 왜 그래요?"
"너무 이상해 너 애인데 왜이렇게 날 흥분시키지? 왜이렇게 잘다루는거야?"
"아줌마가 날 좋아하니까 그러는거겠죠? 흐흐"
"아 나 미쳐 빨리 들어와 정민아"
쾅!~~~!
정민이가 그순간 문을 발로 밀어 차서 열어버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꺄악 뭐야 ...정민아....문을 부수면 어떡해"
눈앞에 마주친 정민이를 보는 순간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민이의 기가 분명하게 느껴졌으니까요. 느껴지는 젊음. 정력..뭐랄까 여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에게서 받은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
오히려 제가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때 정민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제 볼을 만지더라구요. 그리고 뺨에 키스를 하고 볼부터 서서히 만지더니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보다도 서른아홉살이나 어린놈이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능수능란하게 애무를 하더라니까요.
"정민아...어떻게 이렇게 잘해?"
"아는 아줌마한테 섹스 과외받았으니까요.흐흐"
"아...미치겠어"
단지 젖가슴만 만졌을 뿐인데 저는 이미 아랫도리가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정민이가 그걸 알아차리더라구요.
"아줌마 벌써 쌌네요. 냄새가 나요."
"아 몰라 어떡해"
"아줌마 손줘봐요."
"응 손은 왜?"
제가 손을 주자 정민이가 제 손목을 잡고 바지 가랑이 사이로 넣었습니다. 정민이의 자지를 느끼게 한거죠.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남자 자지를 만져본건 남편 외에는 없었고 그것도 최근 10년 동안에는 제대로 섹스 한적도 없었던 여자였기 때문이었죠. 손에 느껴진 정민이 자지의 느낌은 놀라움 충격을 넘어 감동이었습니다.
"어머...세상에...정민아...어쩜...."
"아줌마 왜요...? 어떤데요?"
"몰라 정민아....생각했던거보다 훨씬 크고....단단해....그리고 뜨겁고"
단지 바지위로만 만졌을 뿐인데 느낌은 강렬했습니다.
바지위로 어루만지다 교복바지 지퍼를 내렸습니다.
아..이게 정민이의 자지인가
지퍼를 열자 장벽이 허물어 진거 처럼 눌려있던 자지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팬티 위로 솟아 나오는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처음 본 정민이의 자지는 경이로웠습니다. 15살이면 어린아이일 줄 알았는데...
상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크고 굵었습니다. 잡기가 무서울 정도로 컸어요. 저희 남편과 비교하면 남편이 애교 수준일 정도였죠.
"저정민아...대단하다. 놀라워....애가 아니라 어른이네 완전"
"후훗 아줌마도 좋아요? 우리 아줌마 애인은 사랑한다던데 흐흐"
"애인줄 알았는데...정민아...장난 아니다... 잠시만 기다려봐"
제가 문득 생각이 나서 호기심에 공구통에 있는 줄자를 가져와서 정민이 자지를 재어보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보는것 보다도 오래전에 남편 자지를 잰 기억이 있어서 비교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줄자를 가져오자 정민이가 부끄러운 듯이 웃습니다.
"아 아줌마 뭐하는 거예요?"
"에이 잠시만 있어봐 정민아"
저는 줄자를 가지고 정민이의 자지에 갖다 댔습니다.
"이십일센티!"
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남편이 팔팔할 때 쟀을때 12센티정도였으니 그때도 작은 사이즈가 아니라고 봤는데, 정민이의 것은 남편보다 거의 두배는 거대했습니다. 거기에 귀두는 거의 제 손목보다도 굵어보였습니다.
미숙아 드디어 나도 대박났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54년 평생을 외롭게 욕구를 억눌러가며 살았던 지난 과거가 떠오르며 조물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정민이의 자지를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한 것으로 생각하니 감격스럽고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정민이의 자지를 잡고 물었습니다. 내 평생 처음 물어본 외간 남자의 자지. 그것도 39살 연하의 미성년자의 우람한 자지를 입에 넣고 본능이 말하는대로 물고 빨았습니다.
"아 아아줌마..."
정민이도 자극 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정민이의 자지는 돌처럼 딱딱해졌고 손으로 잡고 빠는게 나중에는 팔이 아파질 정도로 강하게 발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어리니까 힘이 엄청 좋네"
"응 아줌마...꽃히면 더 좋을껄?흐흐"
정민이는 엄마보다 열일곱살이나 더 많은 나에게 자극적인 말을 숨기지 않고 내뱉었습니다.
"정민아 이제 못참겠어...박아줘"
"흐흐 아줌마 뭐라고? 잘 안들려"
짓궂은 장난을 쳤지만 저는 정말로 정민이의 자지에 박히고 싶었습니다.
"정민아 너 자지로 나한테 박아줘"
"내가 왜 할머니 한테 박아줘? 아줌마"
"이놈이...야 장난치지 말고 어서"
제가 몸집이 더 커서 완력으로 정민이를 눕히고는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빳빳하게 선 귀두위로 54년동안 남편이라는 한 자지만 받아온 저의 질구멍을 열고 서서히 앉았습니다.
"아~~~아~~!! 미치겠어....찢어질거 같애"
파고들어오는 정민이의 자지는 크기도 무지막지 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들어오는 동안 제 다리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뜨끈뜨근한 돌이었습니다.
경험많고 나이많은 내가 리드를 해야했지만 정민이의 자지의 위력앞에 제가 할 수 있는건 없었습니다. 그냥 박힌채로 전 소리지르며 오르가즘을 느꼈습니다. 30대 시절 남편에게 느낀 그느낌을 50대 중반이 다되서 다시 느꼈는데 정민이에게서 그 느낌을 받기까지는 삽입후 1분이 채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습니다.
그 이후 정민이는 다른 아줌마한테 배운 기술을 저에게 사용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황홀감에 취해 얼마나 쌌는지 카운트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정민이도 몇 번을 싼지 모릅니다. 그 좁은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저희는 쾌감의 절정을 맛보았습니다. 몇시까지 했는지 기억도 안나고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낫을땐 오전 9시 독서실 공부방 한가운데 나체로 자고 있었고, 질 안에서는 끈끈한 정민이의 정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정민이가 다시 와서 물어보니 화장실에서 하다가 제가 정신을 잃어 공부방으로 들어와서 문잠그고 더 했다고 하더라구요. 정민이는 그날 밤에도 덤벼들었습니다. 저는 한 2주 가까이 몸살을 심하게 했습니다. 15살의 정력을 54살 아줌마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정민이는 어리지만 아줌마 킬러의 기질이 있는 장차 카사노바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습니다. 내가 욕구가 살아있는한 이 아이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난다는 보장이 없을거 같아서 정민이에게 매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정민이는 고2입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계속 만날 수 있을지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3년을 만나면서 저같은 아줌마를 몇 명 더 엮어서 엔조이 상대로 지내오고 있어서 솔직히 질투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 입장에서 화를 낼수도 있는 입장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민이를 놓치기 싫어서 정민이의 여자로 남고 싶어서 제가 생각을 한 것이 있습니다. 평생 정민이의 흔적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두 달 있으면 아들을 출산입니다. 내 나이 57살. 지금 제가 다니는 산부인과에서도 선생님이 자신이 본 산모 중 최고령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신체나이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고 할 정도로 칭찬을 했습니다. 50대 초반에 건강검진때는 폐경직전의 아줌마에 불과했는데 정민이 덕에 진짜 회춘을 하게 된겁니다.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첫째 둘째딸 시집보내고 벌써 초등학교 들어간 손주 포함해서 손주만 세명을 본 할머니기 때문이었죠.
임신 사실이 드러나며 남편과도 별거한 상황이 되었고 딸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잃은게 많습니다. 그래도 정민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나보고 항상 "아줌마 최고"라고 말하는 정민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가족들이 외면해도 돈을 잃는다 해도 행복합니다.
"정민씨 나도 사랑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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