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모.경.희.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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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20-01-17 13:20본문
근친은 재미있는 소재인 모양입니다. 해서는 안 된다고 인지하는 것에 대한 은근한 호기심일 수 있겠으나,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여파와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잘 와 닿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에 첫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어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재일 수 있는 근친에 대한 나의 경험을 많은 분들에게 펼쳐 보려고 하는데, 초자가 주제넘게도 많은 성원을 미리부터 기대해 봅니다.
우리 어머니는 대단한 여장부다. 골격도 큰데다가, 대체 아버지를 갈아 마시려고 결혼을 한건지 거의 아버지에게 한 순간이라도 큰 소리를 안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양반이다. 결혼 35년간 우리 사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그렇게 아버지와 아이들에게 그토록 소리를 치며 살아온 저력이 밖에서도 발휘가 되어, 어머니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 남매들은 대학 대학원도 마쳤다.
국내 굴지에 기업체에 취직이 되어 그런대로 평탄한 청년 시절을 구가하고 있던 나의 인생이 어찌 보면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어머니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항상 달고 살았다.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여자애들과 일부러 오래 사귀었고, 나이가 차올라 결혼을 종용하는 어머니 말이 옆집 개 짖는 소리 같았고, 그리고 어머니가 좋은 집안 아가씨로 소개한 여자애들은 반드시 사흘이내에 외박을 시켜주었다.
어머니가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던가 누구 결혼식을 한다고 이모에 설득에 넘어가 치마를 두르고 외출을 하려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구토를 심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뭐 프로이드인지 융인지 하는 심리학자가 어릴 적 모친의 모습에서 성의 방향성이 정립된다며 지껄였던 심리학 논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그만큼 어머니가 밉고 싫고 그리고 토하고 싶었다.
나는 외숙모가 좋았다. 어머니는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는데, 그 남동생조차도 나이 마흔의 나이에 사법고시를 패스시켜 변호사로 만들어 놓았으니 어머니의 ‘안 되면 되게 하는’ 정신은 가히 국보급이었다. 정말 체격도 볼품없고 뿔테안경에 대머리가 빛나는 우리 삼촌은 그 후 돈 좀 만지는 변호사로 변모하여 똥폼께나 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숙모는 외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딸이라 했다. 할아버지들이 동업을 하다 숙모 아버지가 큰 피해를 입혔데나 어쨌데나, 아무튼 못생긴 삼촌에게 시집온 배경이나 결혼한 후에도 언제나 우울한 얼굴의 이유를 우리 집 주위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외숙모의 이름은 경희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호출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돕는 일이 많았는데, 그야말로 숙모의 방문은 나에게 삶의 기쁨 그 자체였다. 주방일을 하기 위해 부엌골방에 곱게 접어둔 블라우스며 자켓에 묻어있는 숙모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고, 살색 커피색 스타킹에 쌓여 있는 숙모의 좁고 가녀린 발을 훔쳐 보는 게 흥분되는 일이었다. 자위행위의 대상은 항상 외숙모였다.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에 입술과 혀로 애무하고, 가슴과 그곳과 발가락을 쪽쪽 빠는 상상으로 하루 수업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숙모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삼촌부부가 둘째 사촌 동생을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로 기억되니까. 나이 서른 여덟에 힘도 좋다 했었다. 방과 후 집에 들어서자 현관에 참 반가운 신발 한 쌍과 하나도 안 반가운 신발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숙모와 삼촌이 와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참 가관이었다. 삼촌은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아들을 낳다니 참 신통하다’는 칭찬을 들어가며 부채질 서비스에 수박 화채를 입에 우겨 넣고 떠들고 있었다. 숙모는 아이를 안고 자신의 자랑스런(!) 남편과 시누의 대화에 상관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씨바 삼촌. 도대체 몇 살이유?”
씨바 란 말이 당연히 귀에 거슬렸을 테지. 가장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저 놈의 새끼는 삼촌한테 말하는 것 좀 봐. 니 삼촌 법관되면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하 누나. 놔 둬요. 혈기왕성할 때니 그렇지. 주혁아 이리 와 앉아라. 내가 니 엄마 빼앗아 가는 거 같으니 그렇지?”
하여튼 염장 지르는 것도 그렇게 남매가 한통속일 수 있을까. 너무나 짜증스러워 뒤뜰도 나왔다. 담배를 피워 물고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실까 생각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주혁이 너 화났어?” 숙모였다.
“엥? 앗 숙모. 깜짝 놀랐잖아요. 앗, 뜨거!” 대학생 나이에도 담배 피우다 놀라는 건 아직도 어머니를 의식하고 살기 때문이다.
“하하, 뭘 그리 놀래? 너 담배 멋있게 피운다. 나도 하나 줄래?”
“농담 마요. 이런 건 저런 망구한테나 어울리는 거지.” 어머니 방 쪽으로 턱짓을 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어머니잖아.”
“어이구 나이 들어서 하는 짓거리라고는..”
숙모가 피식 웃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예뻤다. 시집 와 아줌마 된지 5년이 넘었지만 나이 서른 네 살이 무색하리만큼 매력적인 미소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도저히 좁혀지지도 않을 숙모와의 나이 차이에 신경질이 나기도 했고, 나와 열 한살 차이가 나는 중년 여자의 성적, 심리적 요인에 대해 관심이 지대해 지기 시작했다.
집을 나서려는지 삼촌과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오오... 아니 이 사람 어디 갔어?”
“네 여기요 여깄어요.” 숙모는 뭐 잘못 한 사람마냥 놀래 뛰어갔다.
“아 거기서 뭐해? 주혁이랑 있었어? 젊은 놈 보니 좋냐?” 삼촌은 확실히 개새끼다.
“네? 아니 잠깐..”
“아니 젖먹이는 신랑에게 맡기고 사라지면 어떡해?” 어머니가 나선다.
“죄송해요.... 형님.”
“암튼, 운전 조심하고 잘들 가. 아이구, 우리 막둥이 신통하재, 아들도 낳고. 어디 고추 좀 만져보까, 얼마나 컸는지.” 삼촌만 보면 숙모 앞에서건 우리 앞에서건 꼭 하는 행사였다. 목욕시켜 업어 키웠다는 삼촌. 그들은 이 장면이 부끄럽지도 않아 보였다. 하긴 더 어렸을 땐, 어머니가 삼촌의 츄리닝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연신 주물럭대면서 TV를 보던 장면을 본 적도 있었다.
나는 삼촌이랑 성격이 정반대다. 닭처럼 물을 쪼는 삼촌과는 달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웃음 소리가 ‘히히히’가 아닌 “우허허‘며, 100m 달리기 11초대에 거기에다가 사람 웃기는 재주를 타고 났다. 집에서 제사라도 하는 경우엔 남자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보다,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깔깔거리며 상을 준비하는 부엌방이 더 좋았다. 주혁이 와서 뽕짝이라도 불러봐라, 정 주영 김 대중 흉내 좀 내봐라.. 이모들을 비롯해 이런 주문이 쏟아지면 못 이기는 채 부엌방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호호호호 중년 아줌마들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대신,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고 있는 숙모 경희밖에 없었다, 내 안중엔.
한번은 숙모가 내게 말했다. 넌 어쩌면 니 삼촌과 그렇게 다르니. 나 아프리카에서 입양해온 앤 거 몰랐우? 하하하 웃는 숙모에게 정말 다가가 키스를 퍼붓고 싶다 생각이 든 게 4년 전이었다. 마흔이 넘은 숙모는 여전히 예뻤다. 그리고 그 해 환갑을 맞은 나의 어머니는 여전히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요즘 시대에 환갑잔치 크게 하는 사람 이해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모친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줄이야.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그렇게 큰 경험을 가져다 줄 지 정말 몰랐었다.
환갑잔치를 집에서 했다. 친지 아주머니들 약 삼십명이 부엌에 투입되었고, 사업차 친구들 어머니의 사회생활 영역은 나의 상상을 불허했었다. 약 700백명의 손님들이 왔다갔다했고, 그 손님들을 받아내느라 부엌에선 원성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저녁 아홉시쯤 되어서 거래처 사람들이라는 사람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고, 우리 어버지와 형제들은 어디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삼촌은 술을 얼마나 퍼 마셨는지 소리를 지르다가 울기 시작했다. 숙모는 삼촌을 말리다가 ‘18년, 너 요즘 누구랑 떡치고 다니냐, 이 보지털 많은 년.’이라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듣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환갑잔치인지 아비규환인지 모를 자리였다.
새벽 한시에 잔치가 끝났다. 부엌에서는 일하는 아줌마들과 숙모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갔다. “이모들은요?”
“피곤하신가봐, 큰 이모는 집에 가셨고 작은 이모는 수혁이 방에 가 주무셔.”
“숙모, 이제 그만 해요. 일하러 왔나?”
“금방 끝날 거야. 괜찮아. 너 들어가 자라.”
“에이. 우리 이쁜 숙모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잠이 와?”
옆에서 아줌마들이 거든다. “조카가 신랑보다 낫네.”
어차피 삼촌은 곯아 떨어졌고 지금 집에 갈 수 도 없는 상황.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숙모와 처음으로 같이 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안의 방들은 모두 술 취해 자는 사람들로, 놀다지쳐 자는 아이들로 꽉 찼다. 내 계산이 맞다면, 숙모가 잠을 잘 수 있는 방은 삼촌과 작은 이모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내 동생 방 밖에 없다. 그곳에 들어가 누웠다. 심장이 뛰었다. 발기도 되고 옆에서 자고 있는 늙은 이모도 여자로 보였다. 삼촌과 이모가 내 앞에서 섹스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우리 어머니는 대단한 여장부다. 골격도 큰데다가, 대체 아버지를 갈아 마시려고 결혼을 한건지 거의 아버지에게 한 순간이라도 큰 소리를 안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양반이다. 결혼 35년간 우리 사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그렇게 아버지와 아이들에게 그토록 소리를 치며 살아온 저력이 밖에서도 발휘가 되어, 어머니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 남매들은 대학 대학원도 마쳤다.
국내 굴지에 기업체에 취직이 되어 그런대로 평탄한 청년 시절을 구가하고 있던 나의 인생이 어찌 보면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어머니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항상 달고 살았다.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여자애들과 일부러 오래 사귀었고, 나이가 차올라 결혼을 종용하는 어머니 말이 옆집 개 짖는 소리 같았고, 그리고 어머니가 좋은 집안 아가씨로 소개한 여자애들은 반드시 사흘이내에 외박을 시켜주었다.
어머니가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던가 누구 결혼식을 한다고 이모에 설득에 넘어가 치마를 두르고 외출을 하려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구토를 심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뭐 프로이드인지 융인지 하는 심리학자가 어릴 적 모친의 모습에서 성의 방향성이 정립된다며 지껄였던 심리학 논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그만큼 어머니가 밉고 싫고 그리고 토하고 싶었다.
나는 외숙모가 좋았다. 어머니는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는데, 그 남동생조차도 나이 마흔의 나이에 사법고시를 패스시켜 변호사로 만들어 놓았으니 어머니의 ‘안 되면 되게 하는’ 정신은 가히 국보급이었다. 정말 체격도 볼품없고 뿔테안경에 대머리가 빛나는 우리 삼촌은 그 후 돈 좀 만지는 변호사로 변모하여 똥폼께나 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숙모는 외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딸이라 했다. 할아버지들이 동업을 하다 숙모 아버지가 큰 피해를 입혔데나 어쨌데나, 아무튼 못생긴 삼촌에게 시집온 배경이나 결혼한 후에도 언제나 우울한 얼굴의 이유를 우리 집 주위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외숙모의 이름은 경희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호출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돕는 일이 많았는데, 그야말로 숙모의 방문은 나에게 삶의 기쁨 그 자체였다. 주방일을 하기 위해 부엌골방에 곱게 접어둔 블라우스며 자켓에 묻어있는 숙모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고, 살색 커피색 스타킹에 쌓여 있는 숙모의 좁고 가녀린 발을 훔쳐 보는 게 흥분되는 일이었다. 자위행위의 대상은 항상 외숙모였다.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에 입술과 혀로 애무하고, 가슴과 그곳과 발가락을 쪽쪽 빠는 상상으로 하루 수업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숙모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삼촌부부가 둘째 사촌 동생을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로 기억되니까. 나이 서른 여덟에 힘도 좋다 했었다. 방과 후 집에 들어서자 현관에 참 반가운 신발 한 쌍과 하나도 안 반가운 신발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숙모와 삼촌이 와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참 가관이었다. 삼촌은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아들을 낳다니 참 신통하다’는 칭찬을 들어가며 부채질 서비스에 수박 화채를 입에 우겨 넣고 떠들고 있었다. 숙모는 아이를 안고 자신의 자랑스런(!) 남편과 시누의 대화에 상관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씨바 삼촌. 도대체 몇 살이유?”
씨바 란 말이 당연히 귀에 거슬렸을 테지. 가장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저 놈의 새끼는 삼촌한테 말하는 것 좀 봐. 니 삼촌 법관되면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하 누나. 놔 둬요. 혈기왕성할 때니 그렇지. 주혁아 이리 와 앉아라. 내가 니 엄마 빼앗아 가는 거 같으니 그렇지?”
하여튼 염장 지르는 것도 그렇게 남매가 한통속일 수 있을까. 너무나 짜증스러워 뒤뜰도 나왔다. 담배를 피워 물고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실까 생각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주혁이 너 화났어?” 숙모였다.
“엥? 앗 숙모. 깜짝 놀랐잖아요. 앗, 뜨거!” 대학생 나이에도 담배 피우다 놀라는 건 아직도 어머니를 의식하고 살기 때문이다.
“하하, 뭘 그리 놀래? 너 담배 멋있게 피운다. 나도 하나 줄래?”
“농담 마요. 이런 건 저런 망구한테나 어울리는 거지.” 어머니 방 쪽으로 턱짓을 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어머니잖아.”
“어이구 나이 들어서 하는 짓거리라고는..”
숙모가 피식 웃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예뻤다. 시집 와 아줌마 된지 5년이 넘었지만 나이 서른 네 살이 무색하리만큼 매력적인 미소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도저히 좁혀지지도 않을 숙모와의 나이 차이에 신경질이 나기도 했고, 나와 열 한살 차이가 나는 중년 여자의 성적, 심리적 요인에 대해 관심이 지대해 지기 시작했다.
집을 나서려는지 삼촌과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오오... 아니 이 사람 어디 갔어?”
“네 여기요 여깄어요.” 숙모는 뭐 잘못 한 사람마냥 놀래 뛰어갔다.
“아 거기서 뭐해? 주혁이랑 있었어? 젊은 놈 보니 좋냐?” 삼촌은 확실히 개새끼다.
“네? 아니 잠깐..”
“아니 젖먹이는 신랑에게 맡기고 사라지면 어떡해?” 어머니가 나선다.
“죄송해요.... 형님.”
“암튼, 운전 조심하고 잘들 가. 아이구, 우리 막둥이 신통하재, 아들도 낳고. 어디 고추 좀 만져보까, 얼마나 컸는지.” 삼촌만 보면 숙모 앞에서건 우리 앞에서건 꼭 하는 행사였다. 목욕시켜 업어 키웠다는 삼촌. 그들은 이 장면이 부끄럽지도 않아 보였다. 하긴 더 어렸을 땐, 어머니가 삼촌의 츄리닝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연신 주물럭대면서 TV를 보던 장면을 본 적도 있었다.
나는 삼촌이랑 성격이 정반대다. 닭처럼 물을 쪼는 삼촌과는 달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웃음 소리가 ‘히히히’가 아닌 “우허허‘며, 100m 달리기 11초대에 거기에다가 사람 웃기는 재주를 타고 났다. 집에서 제사라도 하는 경우엔 남자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보다,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깔깔거리며 상을 준비하는 부엌방이 더 좋았다. 주혁이 와서 뽕짝이라도 불러봐라, 정 주영 김 대중 흉내 좀 내봐라.. 이모들을 비롯해 이런 주문이 쏟아지면 못 이기는 채 부엌방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호호호호 중년 아줌마들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대신,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고 있는 숙모 경희밖에 없었다, 내 안중엔.
한번은 숙모가 내게 말했다. 넌 어쩌면 니 삼촌과 그렇게 다르니. 나 아프리카에서 입양해온 앤 거 몰랐우? 하하하 웃는 숙모에게 정말 다가가 키스를 퍼붓고 싶다 생각이 든 게 4년 전이었다. 마흔이 넘은 숙모는 여전히 예뻤다. 그리고 그 해 환갑을 맞은 나의 어머니는 여전히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요즘 시대에 환갑잔치 크게 하는 사람 이해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모친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줄이야.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그렇게 큰 경험을 가져다 줄 지 정말 몰랐었다.
환갑잔치를 집에서 했다. 친지 아주머니들 약 삼십명이 부엌에 투입되었고, 사업차 친구들 어머니의 사회생활 영역은 나의 상상을 불허했었다. 약 700백명의 손님들이 왔다갔다했고, 그 손님들을 받아내느라 부엌에선 원성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저녁 아홉시쯤 되어서 거래처 사람들이라는 사람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고, 우리 어버지와 형제들은 어디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삼촌은 술을 얼마나 퍼 마셨는지 소리를 지르다가 울기 시작했다. 숙모는 삼촌을 말리다가 ‘18년, 너 요즘 누구랑 떡치고 다니냐, 이 보지털 많은 년.’이라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듣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환갑잔치인지 아비규환인지 모를 자리였다.
새벽 한시에 잔치가 끝났다. 부엌에서는 일하는 아줌마들과 숙모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갔다. “이모들은요?”
“피곤하신가봐, 큰 이모는 집에 가셨고 작은 이모는 수혁이 방에 가 주무셔.”
“숙모, 이제 그만 해요. 일하러 왔나?”
“금방 끝날 거야. 괜찮아. 너 들어가 자라.”
“에이. 우리 이쁜 숙모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잠이 와?”
옆에서 아줌마들이 거든다. “조카가 신랑보다 낫네.”
어차피 삼촌은 곯아 떨어졌고 지금 집에 갈 수 도 없는 상황.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숙모와 처음으로 같이 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안의 방들은 모두 술 취해 자는 사람들로, 놀다지쳐 자는 아이들로 꽉 찼다. 내 계산이 맞다면, 숙모가 잠을 잘 수 있는 방은 삼촌과 작은 이모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내 동생 방 밖에 없다. 그곳에 들어가 누웠다. 심장이 뛰었다. 발기도 되고 옆에서 자고 있는 늙은 이모도 여자로 보였다. 삼촌과 이모가 내 앞에서 섹스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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