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사랑.....그리고 계속 ... -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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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030회 작성일 20-01-17 14:20본문
누나와의 사랑으로 내 생활은 윤택해졌다.
냉장고엔 항상 먹을게 채워져 있었고 집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 무엇보다 난 매사에 의욕적으로 변했다.
그 모든것이 누나와의 사랑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누나의 생활은 최악으로 흘러 갔다.
몇달이 흐르고 매형이 빚에 허덕이다 살던 집을 팔고
월세로 이사를 했는데 내가 봐도 아이 둘을 키울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정말 최악이었다.
거실 조차도 없는 딸랑 방 한칸짜리 월세집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남편이란 작자는 관심도 없고
시댁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이 미워도 손자들과 며느리를 그런식으로 박대 할 순 없는 것인데
참 모질고 생각없는 집안이었다.
난 이혼을 얘기했지만 누나는 무슨 미련 때문인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아이들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비도 제대로 없어 누나는 짬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가 많은 부분을 도와야 했다.
그때쯤 누나에게 나는 모든걸 맞기고 상의할 유일한 남자였다.
동생이면서 사랑하는 남자..........
누나는 많이 힘들어 했지만 꿋꿋이 버텨내면서 부지런히 살았다.
내가 아는 예전의 누나 모습이었다.
안 좋은 일은 갑자기 몰려오는 것인지
고향에선 아버지가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졌다.
의사의 말대로 정말 3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삼오제가 끝날때까지 매형도 누나의 시댁식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누나는 정말 화가 났고 그 일로 이혼을 결심했다.
나머지 가족들도 이번일로 모든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삼오제가 끝나고 난 혼자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누나와의 일을 고백했다.
비록 살아 계실 땐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고백해야 내맘이 편할 것 같아서 였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다 말했다.
둘 다 아버지 자식이니 보살펴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누나에게 조카들 핑계를 대고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리고 누나는 이혼을 했다.
물론 쉽게 한건 아니지만 매형이란 사람도
아이들 때문이라는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누나와의 처음 그 일이 있고 2년쯤 지났을 때 우린
남매가 아닌 완전한 연인이 돼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나는 나에 대한 호칭을 완전히 "자기야"로 바꿔 불렀다.
요즘은 부부끼리 쓰는 "당신"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사랑의 징표로 맞춘 반지를 끼운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지금은 누나집과 내 집을 오가면서 반 동거 상태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 둘이 당연히 연인인줄 안다.
그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안다고 해도 이젠 두렵지 않다.
우리 관계가 6년째로 접어 들었지만 서로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그 어떤 연인보다 금슬이 좋았다.
이젠 끝내는 게 더 힘들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조카들도 이젠 많이 커서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 됬다.
누나와 난 2,3년안에 아이를 하나 낳기로 했다.
누나가 더 나이 들기전에 해야 하기에 조금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 일에 따른 모든 문제는 이미 상의가 끝났다.
조카들도 엄마가 애인이 있는 줄 알고
(물론 나인줄은 모른다.)
동생이 생기는데 모두 찬성했다.
난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언제까지나 지킬것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놓았다.
누나를 위해서는 모든걸 버릴 준비까지도...............
냉장고엔 항상 먹을게 채워져 있었고 집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 무엇보다 난 매사에 의욕적으로 변했다.
그 모든것이 누나와의 사랑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누나의 생활은 최악으로 흘러 갔다.
몇달이 흐르고 매형이 빚에 허덕이다 살던 집을 팔고
월세로 이사를 했는데 내가 봐도 아이 둘을 키울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정말 최악이었다.
거실 조차도 없는 딸랑 방 한칸짜리 월세집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남편이란 작자는 관심도 없고
시댁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이 미워도 손자들과 며느리를 그런식으로 박대 할 순 없는 것인데
참 모질고 생각없는 집안이었다.
난 이혼을 얘기했지만 누나는 무슨 미련 때문인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아이들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비도 제대로 없어 누나는 짬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가 많은 부분을 도와야 했다.
그때쯤 누나에게 나는 모든걸 맞기고 상의할 유일한 남자였다.
동생이면서 사랑하는 남자..........
누나는 많이 힘들어 했지만 꿋꿋이 버텨내면서 부지런히 살았다.
내가 아는 예전의 누나 모습이었다.
안 좋은 일은 갑자기 몰려오는 것인지
고향에선 아버지가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졌다.
의사의 말대로 정말 3개월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삼오제가 끝날때까지 매형도 누나의 시댁식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누나는 정말 화가 났고 그 일로 이혼을 결심했다.
나머지 가족들도 이번일로 모든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삼오제가 끝나고 난 혼자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누나와의 일을 고백했다.
비록 살아 계실 땐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고백해야 내맘이 편할 것 같아서 였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다 말했다.
둘 다 아버지 자식이니 보살펴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누나에게 조카들 핑계를 대고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리고 누나는 이혼을 했다.
물론 쉽게 한건 아니지만 매형이란 사람도
아이들 때문이라는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누나와의 처음 그 일이 있고 2년쯤 지났을 때 우린
남매가 아닌 완전한 연인이 돼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나는 나에 대한 호칭을 완전히 "자기야"로 바꿔 불렀다.
요즘은 부부끼리 쓰는 "당신"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사랑의 징표로 맞춘 반지를 끼운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지금은 누나집과 내 집을 오가면서 반 동거 상태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 둘이 당연히 연인인줄 안다.
그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안다고 해도 이젠 두렵지 않다.
우리 관계가 6년째로 접어 들었지만 서로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그 어떤 연인보다 금슬이 좋았다.
이젠 끝내는 게 더 힘들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조카들도 이젠 많이 커서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 됬다.
누나와 난 2,3년안에 아이를 하나 낳기로 했다.
누나가 더 나이 들기전에 해야 하기에 조금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 일에 따른 모든 문제는 이미 상의가 끝났다.
조카들도 엄마가 애인이 있는 줄 알고
(물론 나인줄은 모른다.)
동생이 생기는데 모두 찬성했다.
난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언제까지나 지킬것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놓았다.
누나를 위해서는 모든걸 버릴 준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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