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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아내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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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067회 작성일 20-01-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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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아내한 지붕 두 아내

이 글의 내용은 저의 앞 번 글인 한 지붕 두 남편이란 글을 읽으신 독자께서 역으로 한 번 쓰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쓴 글임을 사전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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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보다 복이 많은 놈이 있다면 나와 보라.

물론 예전에는 나보다 더 복이 많은 남자들이 수 두록하게 많았던 것으로 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14명을 거느렸던 성종이 있었고 11명을 거느렸던 태종이 계셨으며 세종대왕께서도 9명을 거느렸는데 이건 조선시대에 국한한 것이지만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면 태고 왕건의 경우 왕비만 6명이고 부인은 무려 23명이나 거느렸다고 합니다.또 모 언론인의 경우 밤의 황제라는 별명을 가졌고 머리를 얹어준 기생의 숫자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라는 말이 전하면 못 먹고 못 입으며 못 살던 5공 초기만 하더라도 임이라도 하나 중일 요량으로 딸을 첩으로 보내었기에 부자들의 경우 여러 명의 첩을 거느렸지만 축첩을 금지하기 시작하자 우리나라에서 첩은 사라졌습니다.

말 그대로 일부일처제가 실시가 되었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당하게 첩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도 나이어린 처제를 말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 사연을 적나라하게 밝히겠습니다.



내 나이 금년 35살로 중소기업에서 대리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아내는 31살이며 나는 일반 대학을 졸업한 반면 마누라는 간호대학을 졸업하여 간호사 국가고시 시험을 패스하고 지금도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하고 있다.



내가 마누라를 만나게 된 것도 병원에서였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병원이 바로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이었고 수술 후 입원한 병동이 아내가 근무를 하는 병동이었다.

엄마가 계시지만 당시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이 있었기에 집을 비울 수가 없었기에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엄마가 간병을 하였지만 주중의 낮에는 간병인을 두고 썼지만 밤에는 내가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어드렸다.

낮에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직장에서 업무를 배우고 상사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밤이면 병원에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수발을 들다보니 나의 건강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날 어머니가 병원에 가셔서 수발을 들던 중에 간호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간호사가 나중에 내 아내가 된 간호사였는데 내 사정을 엄마로부터 듣고는 일주일이면 한두 번 정도 영양제가 든 링거를 무료로 주사 해 주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아버지가 퇴원을 하시고 나서부터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데이트는 주간 근무를 하는 날과 비번인 날 그리고 주말에만 이루어졌다.

데이트를 하면서 술도 함께 마셨고 술을 핑계로 여관에 가자고 하기만 하면 헤어지자고 하는 바람에 결혼 전까지 진척인 된 것이라고는 고작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거기서 거기였고 제일 진척이 된 것이라고 하여 봤자 이마나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안하면서도 정신은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섹스는 결혼을 하고 나서나 이루어지면 그도 종족 보존 차원에서 하는 행위로 알고 있었다.

아내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행동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장인어른은 말 그대로 한량이었다고 하였다.

시골에서 사시던 장인어른은 선대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전답과 산을 상속받았고 전답 모조리 소작을 주었고 그 관리도 직접 하지 않고 마름을 두어 관리를 하였는데 소작료가 들어오게 되면 그 돈을 가지고 집을 나가서는 가지고 간 돈이 떨어져야 다시 집으로 오는 생활을 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기생집이나 아니면 돈이 궁한 여자들에게 생활비를 주어가며 소실 노릇을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런 소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숫자는 누구도 몰랐는데 돌아가시자 소복을 입고 찾아와 장인어른 영정 앞에서 통곡을 한 여자가 무려 여덟 명이나 되더라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이들까지 동반을 하여 온 여자들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장모님의 마음씨는 너무나 고와서 남편이 죽자 소복을 입고 와서는 함께 장례를 치른 여덟 명의 남편 소실들에게 구박을 하기는커녕 되레 장례를 치르고 갈 때 한 사람 앞에 논과 밭을 각각 한 마지기씩 주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내가 처갓집에 가기만 하면 처갓집 주변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도 없이 들어온 사실이다.



아내가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고 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너머 가겠다.

대학 일학년 여름방학 때 시골로 내려갔더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고 아내의 아버지 즉 나로서는 얼굴도 뵙지는 못 하였지만 장인어른께서 딸인 내 아내에게 걔를 보고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평소 바람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밖에서 난 아이를 집으로 들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아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엄마도 걔를 딸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결과 걔 엄마도 아버지의 소실이었고 걔는 아버지의 씨가 맞았다.

그런데 걔 엄마가 갑자기 죽어버리자 걔 엄마의 친정으로부터 첩 질을 한다며 인연이 끊긴 바람에 걔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고 의탁을 할 곳이 없게 되자 부득불 아버지가 걔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아내의 아버지 즉 얼굴도 뵙지 못 한 장인어른은 여복이 많아도 너무 많아 장모님과 아들딸에게는 골치 아픈 그런 분이셨다.

그런 장인어른을 장모님께서는 자신의 팔자로 돌리고 사시면서 그래도 한 지붕 밑에 측실을 두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내가 된 여자는 남자가 아무 곳에서나 여자와 붙어먹고 찍찍 싸서 씨를 뿌리는 짓을 보지 못 하였고 남자는 오로지 한 여자와 관계를 하되 그도 종족 보존차원 이외로의 섹스는 천박한 짓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런 여자를 결혼 전에 어떻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 할 일이었기에 난 결혼 이전에의 잠자리는 아예 포기를 한 상태였다.



아내는 대학에 다니면서 원룸아파트에서 자취를 하였고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를 하면서는 앞에서 언급을 한 아버지의 소실이었다가 엄마가 죽어버리자 아내의 엄마 즉 장모님이 거두어 키우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친동생처럼 키우면서 학교에 보냈기에 데이트도 길게 하지 못 한 것은 물론이고 야심한 밤에는 더더욱 곤란해 하였기에 오후 7시가 넘으면 안절부절 못하여 내가 더 피곤하져서 원룸아파트까지 데려다 주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할 경우 원룸아파트에 들어가면 당시 중학교 이학년 밖에 안 되던 걔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인대도 나더러 형부라고 부르며 따랐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마음씨는 착하고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내가 보기에는 붙임성도 좋았다.

아내가 사는 원룸아파트에 자주 드나들면서 본 결과 아내의 말대로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굳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언니인 아내의 말대로 아무리 공부에 관심이 없더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마지 못 해 학교에 다닌다고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나에게 말하여 아내가 걔 머리를 쥐어박으며 웃엇고 걔도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은 일이라고 배를 잡고 웃는 통에 나도 웃어야 하였다.



또 결혼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상견례를 하게 되었는데 고지식한 우리 아버지께서는 연로하시다 하지만 안사돈을 모시고 상견례를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연로하신 장모님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가족 전부가 아내의 시골집으로 가서 상견례를 하여야 하였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부터 시작이 된 데이트는 일 년을 줄다리기를 한 끝에 나와 그 여자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부부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제일 먼저 난관에 부착을 한 것은 아내가 종합병원에 근무를 하면서 친언니 이상으로 따르던 아버지의 소실 딸인 아내의 이복동생 영아 문제였다.

아내의 이복동생을 결혼과 함께 시골로 내려 보내기로 하였으나 문제는 영아가 죽으면 죽었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 아내는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묻는 자체가 데리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또 처갓집에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원룸아파트를 처분하고 일반 아파트를 살림집으로 사준 마당에 데리고 있지 못 하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마지 못 해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00군 00면에 사는 사람치고 작고하신 장인어른의 땅을 밟지 않고서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며 지금도 큰 처남이 그 많은 전답을 마름을 통하여 관리를 하고 있는데 큰 처남도 장모님을 닮아서인지 몰라도 천성이 착하여 그 많은 전답을 공평하게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내 아내도 제법 많은 전답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전답을 팔지는 못 하고 소작료를 받고 있다.



큰 처남이 형제들에게 나누어 준 전답은 소유는 형제들 각각에게 있지만 절대 매매를 할 수가 없도록 등기를 할 때 다른 형제들에게 돈을 빌린 것처럼 하여 저당을 잡혔기에 매매를 할 수가 없으며 다른 형지들의 전답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두었기에 남의 손에 넘어 갈 일은 없게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가을 수확 철이면 쌀과 콩 같은 양곡과 과일에 거금의 현금까지 아내의 통장으로 착실하게 지금도 입금이 되고 있으며 그 돈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가 있을 것이지만 아내는 간호사 일을 아무 불평불만 없이 수행하고 있기에 나도 마누라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입장이다.

그런데 장인어른의 소실에서 난 애들 중에 유일하게 영아는 아내처럼 약간의 전답을 상속 받았다.

장인어른께서 살아계실 때 영아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을 시켰기에 영아에게도 지분이 있었고 마음씨 고운 큰 처남과 아내의 형제들은 영아를 동기간으로 인정하고 상속하는데 반대를 하지 않았기에 상속을 받은 전답이 있었기에 그 전답에서 나오는 돈을 생활비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주었고 또 가을 수확 철이면 영아에게도 쌀과 콩 같은 양곡과 과일 등에 약간의 현금까지 입금이 되었기에 영아를 무시 할 수가 없었던 것이고 비록 장인어른의 소실 딸이지만 혹이 아니라 복덩어리나 마찬가지였기에 거두자고 하였던 것이다.



아내는 영아 목으로 들어온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영아 이름으로 저축을 했고 양곡과 과일 등이 오면 그것을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산지 가격으로 팔아서 그 돈도 저축을 하였기에 열 살부터 저축을 한 돈의 금액이 15살의 중학생 돈답지 않게 거금이 저축이 되어있었다.

어쩌면 그 많은 돈이 영아에게 공부에 대한 열의를 식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이유는 영아가 시집을 갈 나이가 되면 적어도 억이 훨씬 넘는 재산을 가지게 될 것인데 구태여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머리를 싸맬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의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나에게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동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본능이 있고 그 본능에 맞추어 살아가게 마련이 아닌가.

동물적 본능이라 함은 성에 대하여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종족 보존이라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사명도 함께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종족 보존 앞에는 성적인 본능이 우선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나와 판이하게 다르다.

남녀의 섹스는 종족 보존 왜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내와 섹스를 할 수 있을 때는 배란기 말고는 없는 것이다.

사람 특히 남자는 성적인 만족을 얻고 싶어 할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 평소 아내에게 한 번 하자고 사정을 하면 아내는 나를 마치 무슨 더러운 동물을 대하듯이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면서도 살아야 하였다.

아버지가 결혼 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결심이 서지 않으면 애당초부터 결혼을 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럴 자신이 있다면 승낙을 하시겠다고 하셨기에 절대 이혼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라고 서약까지 하였기에 이혼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아야 하였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기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5년이 지났지만 아내에게 아이가 들어서지 않은 것이다.

결혼 3년이 되자 엄마가 혹시 피임을 하느냐고 묻는 것이 손자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3년이 지나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틀 걸러서 한 번 꼴로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러고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엄마는 아예 며느리인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성화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5년이 되던 해에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아내와 함께 검사를 받았다.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이서 받는 게 창피하다면서 다른 병원이서 받은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나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나 아내에게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임신을 하기 어려운 자궁을 가지고 있었고 시험관 시술로도 아기를 가져질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의 난자와 내 정자를 수정을 시켜서 다른 여자의 자궁에 넣어서 키우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살기 좋은 세상에 자궁을 빌려줄 여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설령 있다고 치더라도 낳고 나서 못 주겠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을 뿐 더러 양육비를 요구하게 되면 골머리가 아파지는 일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기에 감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아내와 내가 머리를 마주대고 의논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의논을 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까지 발생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자궁을 대여 해 줄 여자를 구하겠다고 하였고 난 자궁을 대여 해 준 여자가 아기를 낳고 나서 못 주겠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을 뿐 더러 양육비를 요구하게 되면 골머리가 아파지는 일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기에 그 방법이 싫다고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둥빈둥 놀면서 언니가 직장에 간 사이에 살림을 살던 장인어른의 소실 몸에서 난 영아가 아내와 나의 이야기를 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형부, 그렇게 못 믿을 것 같으면 제가 언니 아기를 제 몸에서 키우게 되면 알 될까요?”아내가 야간 군무인 어느 날 퇴근을 하여 밥을 먹는데 느닷없는 제안을 영아가 한 것이다.

“뭐? 뭐라고 야~넌 처녀야 말 같은 말을 해, 아이 문제는 언니하고 형부가 알아서 해”따끔하게 말하자

“형부 자궁을 대여 해 준 여자가 아기를 낳고 나서 못 주겠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을 뿐 더러 양육비를 요구하게 되면 골머리가 아파지는 일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기에 그 방법이 싫다며? 내가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잖아? 형부 내가 할게, 부탁이야 언니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기도 하거든.”영아가 진지하게 말하였다.

“처녀 몸으로 아이를 낳고 어떻게 시집을 가려고? 그러니까 그럼 안 되겠지?”설득을 하였다.

“시집 왜 가? 언니형부하고 평생 같이 살면 되지”하기에

“그걸 말이라고 해”하고 언성을 높이자

“그래 알았어.”하고는 내 말을 따르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이틀 후 영아가 시골에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내려갔고 이틀 후 올라왔다.

“언니형부 내가 시골에 왜 다녀왔는지 모르지?”다녀온 직후 나와 아내를 불러 앉히더니 생뚱맞은 질문을 하자

“왜 갔었니? 기름 값도 비싼데”아내가 묻자

“큰오빠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었지”하고 배슬배슬 웃으며 말하기에

“무슨 허락?”하고 아내가 물었지만 나는 짐작이 가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형부네 잡에도 들러서 허락을 받았지.”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얘 생뚱맞게 무슨 허락이니?”의아스러운 눈으로 아내는 영아와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내 예감이 맞는다면 공부에는 머리를 쓰지 않았던 영아의 비상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큰오빠하고 사돈 어르신께서도 언니와 형부 아이 내 뱃속에서 키워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였고

“뭐? 뭐라고?”아내의 놀람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야 형부에게 언니 대신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고 했어”내가 들어도 생뚱맞은 말이라

“그.....그게 무슨 말이니?”놀라며 묻자

“형부가 큰오빠에게 언니가 잠자리를 하자면 한사코 피한다며, 그것도 허락을 했단 말이야, 단 언니와 형부의 아기 내 뱃속에 착상이 되었다는 확인만 된다면 그때부터 얼마든지”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랬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잠자리를 피하여 내 성욕을 풀길이 없자 난 처갓집에 갔을 때 큰처남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고민을 이야기하였고 그러자 큰처남도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한숨만 쉬었고 처갓집에 다녀오고서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하였었다.

큰처남이 그런 사정을 처남댁에게 이야기를 하였던지 처남댁으로부터 올라오면 내버려 두고 참으라고 이야기를 했다면서 안하면 죽기라도 하느냐면서 말이다.



“뭐? 큰오빠가 그런 말도 했단 말이야?”아내가 날카롭게 묻자

“내 말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큰오빠에게 전화해서 확인하고 형부도 사돈어른께 전화를 걸어서 여쭈어 봐요”당당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내일 당장 병원에 같이 가서 상의를 하자고, 알았지?”하고는 제 말은 다 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이 일어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뭐 저런 애가 다 있어”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오빠라는 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큰처남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께서 사돈처녀가 다녀갔고 며느리가 임신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며 자신이 언니 배를 대신하여 형부와 언니의 아기를 자기 뱃속에서 키울 것이니 이해를 해 달라고 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였더니 나의 큰처남과 통화를 하도록 하여 주었고 큰처남이 승낙을 하였으니 사돈어른께서도 승낙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바람둥이 아버지를 두었지만 아버지 대신에 동생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셨던 큰처남을 처남들과 처형처제들은 아버지 이상으로 무서워하였고 큰처남의 말이라면 아무리 자기 일이 바쁘더라도 뒤로 제켜놓고 형님이자 오빠였던 큰오빠이자 큰형인 큰처남의 말을 들어야 하였던 터라 자기 큰오빠하고 통화를 하고 나온 아내도 풀이 죽어 있었고 내일 셋이서 병원에 가 보자고 하고는 나더러 거실에서 자라고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다음 날 아내와 나 그리고 처제는 병원으로 갔다.

아내와 나는 검사를 받은 터라 처제만 검사를 하였는데 의사는 100% 가능하다면서 아내에게 배란을 시작하는 날짜를 알려주면서 나와 함께 오라고 하였다.

의사가 지정한 날에 나는 아내를 따라 병원에 갔고 아내 몸에서 난자를 추출하고 나의 정자도 추출을 하였다.

몇 칠 후 배아가 형성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처제가 병원으로 갔다 왔다.

아내는 내게 들으라는 듯이 완전히 착상이 될 때까지는 몸조심을 하라고 처제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어서 아내가 병원으로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하여 출근을 하고나자 처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맨살의 뱃가죽을 들어내더니 나의 팔을 다짜고짜로 잡고서는 손바닥을 자기 배에 대어주고는 뱃속에 언니와 형부 아기가 들어있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였고 아내에게서 느껴보지 못 하였던 성욕이 살아나 계속 처제의 배를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손을 밑으로 뻗히자 처제는 완전하게 착상이 안 되었으니 만지기만 하고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하였다.

아쉬웠지만 난 처제의 배와 보지둔덕 그리고 젖가슴을 주무르는 것으로만 만족을 하여야 하였다.

아내의 눈을 피하여 아내가 낮 근무가 아닌 오후 내지는 야간 근무 때면 내일 같이 만졌고 주무르기만 하였다.

빨고 싶었고 빨게 하고 싶었지만 아직 숫처녀인 처제가 쇼크라도 받게 된다면 아내에게서 무슨 추궁을 받을지 모르기에 쇼크를 받을 일은 가급적이면 피한 것이다.



아내의 난자와 내 정자로 만들어진 배아를 처제 뱃속에 넣고 두 달을 연달아 아내는 처제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첫 달에도 확실하지 않다면서 우회적으로 몸조심을 시키더니 두 달째 다녀와서는 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로 해도 된다는 것 같은 여운이 남는 말을 하고 출근을 하였다.



“형부 착상이 아주 잘 되었대요. 히히히 하고 싶었죠?”언니가 출근을 하는 모습을 보도니 배란다로 나가 언니의 차가 아파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쪼르르 내게 달려와 내 품에 안기며 말하였다.

“해도 된대?”지그시 끌어안으며 묻자

“응 나도 우리 엄마처럼 형부 소실로 살 거야”하고 말하였다.

“소.....소실이 뭔 줄 아니?”놀란 나머지 어깨를 잡고 묻자

“그럼 그것도 모를까봐 본처 외에, 혼인을 하지 않고 데리고 사는 여자를 소실이라고 하잖아”하고 말하며 다시 내 품을 파고들기에

“그렇게 살고 싶어”다시 어깨를 잡고 몸에서 때며 묻자

“언니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버렸어요. 나이가 들면 시집을 가려고 했는데......”하고 말을 흐리며 다시 안기려 들기에

“언니가 왜?”붙지 못 하도록 계속 어깨를 잡은 체 묻자

“착상을 시키고 와서 형부하고 진짜로 할 것이냐고 묻기에 대답을 안 했는데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혼잣말로 소실의 피는 못 속인다고 했고 그래서 소실이 뭔가 인터넷으로 봤더니 본처 외에, 혼인을 하지 않고 데리고 사는 여자라고 되어 있잖아. 나를 받아주어서 고맙게만 여겼던 언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내가 가만있겠어? 우리 엄마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안 그래? 형부”하고 말하더니 다시 내 품에 안겼다.

“정말 언니 입에서 소실이란 말이 나왔어?”하고 묻자

“응 확인 해 봐”하기에

“알았어, 잠시 기다려”하고는 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내는 영아가 들었다하더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자 제 팔자 제가 망가트리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냐고 하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준비 되었니?”아내가 승낙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영아 방으로 들어가며 물었는데 난 방으로 들어서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아 방에는 본래 아내가 살던 원룸아파트에서 아내가 사용하던 싱글침대가 놓여 있었으나 내가 들어갔을 때는 싱글침대가 아닌 더블침대였고 영아는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대 위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 언제 샀니?”하고 묻자

“착상 시키고 나서 언니의 소실 이야기를 듣고 큰 침대로 바꾸겠다고 했더니 통장을 주어서 이것만 사고 통장 다시 언니에게 맡겼어.”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재빨리 옷을 벗기 시작하였고 영아는 나의 알몸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를 하고 있는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고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 해”알몸이 되어서도 침대 위로 올라가지 않고서 물었다.

“이게 정말로 여기에 들어가?”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되레 나에게 물었다.

“그래 후회 안 하겠어?”다시 한 번 묻고는 침대에 오르자

“응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것부터 박아”덜렁거리는 내 좆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래 그러지”영아 몸 위에 몸을 포갰다.



“처음이라 아플 거야”하고 말하며 젖가슴을 짚고 좆을 보지구멍 입구에 가져다대며 말하자

“알아 박기나 해”자신의 젖가슴을 짚은 내 팔을 잡으며 말하였다.

“에~잇!”힘주어 쑤셨다.

“악! 아파 그대로 가만있어”비명과 함께 영아 눈에서는 닭 똥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침대 시트를 적셨다.

“그래 처음이라 아플 거야”하고 말하고는 나는 영아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고 영아가 입을 벌리자 혀를 영아 입안으로 보냈고 그러자 영아는 미간을 찌푸림 체 내 혀를 게걸스럽게 빨았다.

난 조심스럽게 보지구멍 안에 든 좆을 빼고 박기를 시작하였고 영아는 내 혀를 빨면서 미간만 찌푸렸다.

그렇게 하여 처제인 영아와 섹스를 시작하고는 아내도 인정을 하여 버렸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아내인 영아를 소실로 맞아들인 것이다.



아내도 영아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첫째 자신이 있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애정행각도 하면 안 된다.

둘째 자신이 없는 사이 어떤 짓을 해도 무방하지만 대신 흔적을 절대 남겨서는 안 된다.

셋째 영아와 단둘이서 외출을 하면 안 된다.

넷째 영아 자궁을 빌려 임신을 한 아기가 딸일 경우 그 이후 아들을 낳게 될 경우 영아는 그 아이를 양도하여 자신의 호적에 등제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달 수가 없다.

다섯째 영아와 관계를 계속하는 동안 영아는 따로 살림을 날 수가 없다.

여섯째 어떠한 환경에서도 영아는 자신을 언니로 부른다.

일곱째 영아는 따로 새 살림을 절대 나지 않는다

여덟째 위에 기재하지 않은 상황은 위의 가까운 조건에 부합이 되도록 한다.



이렇게 영아에게는 아주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영아는 군소리 없이 언니의 안에 동의를 하였고 그러자 나 역시 어쩔 수가 없이 동의한다고 서명을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각서에 동의를 한 후에 이번에는 역으로 아내가 나와 영아를 놀래게 만들었다.

그 각서를 가지고 큰오빠를 비롯한 자기 언니오빠동생들과 그들의 아내와 남편의 서명도 받았고 심지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까지 서명을 받아와서는 카피를 하여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소실을 둔지 벌써 삼 년.

아내의 난자와 나의 정자를 배아체로 만들어 소실이자 처제인 영아의 자궁에 착상을 시켰던 아이는 아들이었다.

지금 영아는 또 배가 불러있다.

내 아이고 영아의 아이인데 초음파검사 결과 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셋은 서로 신경전이 여간 아니다.

나와 본처 아내는 나의 호적에 올리고 싶어 하지만 영아는 자기 이름 밑에 올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 본처인 아내와는 거의 섹스를 하지 않고 있기에 법적인 부부인 반면 좆 맛을 아는 영아는 육체적인 부부이다.

또 하나 각서를 썼던 내용 중에 영아와 단둘이서 외출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영아가 임신을 하면서 그 조항은 아내도 묵인을 하게 되었기에 분위기를 좋아하는 영아를 데리고 바닷가 모텔이나 호텔에서 질퍽한 섹스를 즐기고 있는데 영아 나이 이제 겨우 23살이고 내 나이는 35살이니 영아와 나는 띠 동갑인 것이다.

그리고 명절에는 아버지 집으로 갈 때도 난 본처와 소실을 함께 동반하며 처갓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인데 아버지는 물론 처남들을 모조리 부러워하는 반면 엄마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은 시기를 하지만 정작 나의 본처인 아내는 시기를 하기는커녕 되레 그렇게 사는 것을 안쓰러워하고 있으나 영아 역시 언니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정답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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