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물받이에서 아들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223회 작성일 20-01-17 11:58본문
이렇게 내가 아들과 함께 살며 나의 친아들의 물받이로 전락을 한 것은 나의 어렸을 때에 잘 못 키운 우리 친정아버지의 탓이고
또한 내가 너무 내 아들을 애지중지 하여 키운 탓이기도 하기에 전남편이나 그 누구에게도 원망을 할 형편이 아니다.
내 나이 이제 사십을 훌쩍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자체도 후회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남 어려서부터 정말이지 외롭게 자랐다.
날 이렇게 나쁜 여자로 만든 것은 다 더러운 우리 엄마라는 년의 탓인지 모른다.
흥! 꼴에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하니 나의 결혼식장에 참석을 하여 뻔뻔스럽게도 엄마 자리에 앉아서
나의 결혼식을 지켜보려다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 이후로 난 그 년의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 하였다.
날 낳아 주었답시고 신부 엄마 자리에 앉은 년을 신부 입장을 하면서 보고는 많은 하객들이 있었지만 난
<여가가 어디라고 더러운 년이 그 성스러운 자리에 앉기는 앉아 썩 비키고 내 앞에서 사라져>라고 고함을 지르자
년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엄마라고 통사정을 하였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 못 하고 식장에서 나가야 하였다.
그랬다.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은 내가 3살이 되든 해에 모르는 사람도 아닌 아빠의 친구와 눈이 맞아 이혼을 하였다고 했다.
그런 친구도 친구라고 가까이 한 우리 아빠야 말로 정말 남자 천사일 것이다.
지금도 아빠가 친목계를 하면 내가 듣기로는 그 더러운 년은 아빠 친구를 따라 친목계에 참석을 한단다.
정말 뻔뻔한 여자이다.
어찌 전남편과 함께 계모임을 할 수가 있겠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이야기가 어쩌다 보니 다른 쪽으로 흘렀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그랬다.
난 3살부터 아빠 손과 할머니 손에 의하여 키워졌다.
할머니 집에서 있다가 주말이면 아빠가 할머니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와서 나를 아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빠는 지금도 여자라면 넌더리가 난다면 혼자 살고 계신다.
간혹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금도 한 번씩 가서 위로를(?) 해 주지만........
아빠는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하고 이혼을 하곤 줄곧 혼자서 살았다.
난 아빠의 집으로 가면 즐거웠다.
아빤 날 집으로 데리고 오면 제일 먼저 목욕을 시켜주었다.
물론 할머니도 이틀이 멀다하고 목욕을 시켜주었으나 아빠가 목욕을 시켜주면 어린 나이였지만
난 짜릿한 쾌감을 느끼곤 하였기 때문에 아빠가 주말 오후에 할머니 집으로 나를 데려다 놓기가 무섭게
난 다시 아빠가 오는 날만 기다리는 그런 아이였고 아빠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할머니 집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그런 아이였다.
목욕을 할 때도 아빠가 나의 사타구니를 씻어 줄 때가 항상 최고로 짜릿하였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아빠를 위로(?) 하러 가면 난 아빠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은 아들에게 몸을 맡기고 목욕을 하는 것이 더 짜릿한 느낌이 들지만...........
아빠 역시 내가 어려서부터 목욕을 시켜주길 좋아하였다.
내가 전남편하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도 울면서 아빠의 손에 의하여 목욕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몰론 목욕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눈물의 빠구리를 하였지만...........
이제 아빠의 물받이 시절 이야기부터 하겠다.
난 앞에서도 말을 하였지만 홀아버지 손에서 귀여움이란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랐다.
아빠는 주변에서 재혼을 권유하였지만 여자라면 넌더리가 난다며 나만 키우고 산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그건 내가 중학교를 졸업을 하던 해에도 우리 고모가 억지로 맞선을 보게 하여 나도 함께 따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빠는 중매를 선 아줌마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 맞선을 보러 온 아줌마에게 재혼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누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왔다며 용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그 아줌마는 웃으며 밥만 한 그릇
사주고 가시면 어떠냐고 하자 아빠와 난 그리고 그 여자가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우리 고모가 우리 집으로 와 그 아줌마가 아빠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하였으나 우리 아빠는
일언지하에 재혼은 절대 안 할 것이니 그리 알고 만약 다시 재혼 이야기가 나오면 나를 데리고
아주 먼 곳으로 도망을 간다고 하자 그 이후로 우리 고모의 입에서 재혼 이야기는 사라졌다.
그만큼 우리 아빠는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 때문에 여자와 담을 쌓고 살았었다.
난 여기서 분명히 밝히려한다.
내가 아들에게서 배운 요즘말로 아빠의 물받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하루 이틀의 생각으로 내린 결단은 절대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는 것이 좋게 말하면 섹스이고 흔하게 하는 말로 빠구리란 것에 대하여 알았다.
그리고 그 전에도 아빠가 나를 목욕을 시켜주고는 혼자서 씻으며 용두질을 치는 모습도 몇 번 봤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위라는 것도 몰랐고 더더구나 남자가 성욕을 참는 것은 어려운 이란 것은 3학년에 올라 와서야 알았다.
생각을 해 보라.
십 년을 넘게 혼자서 자위로 성욕을 달랜 우리 아빠의 심정을.........
그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눈이 퉁퉁 붙게 밤새도록 울었었다.
하지만 내가 아빠의 물받이가 되면 아빠의 일신상에 문제가 걱정이 되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기업의 과장인 입장에 어린 딸을 물받이로 삼아 즐기느라고 재혼도 안 하고 산다는 소문이 나면 그건 아주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고민을 한 중학교 3년이 나에게는 가장 힘이 들었던 시기 일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기로 하였는데 아빠는 무조건 인문계에 가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빠도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내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한다면 그 경비도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것을 알았고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 내가 해야 할 결혼의 경비는 내 스스로 벌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빠와의 줄 당기기에는 결국 내가 승자가 되었다.
다만 아빠는 나 때문에 폭주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면 아무리 취하였어도 거절은 안 하였다.
그 날도 그랬다.
아빠는 겨우 몸을 가눌 정도로 취하여 있었다.
“아빠 나 목욕”결전의 시간이라고 생각을 한 때는 중학교 졸업식을 하고 그 다음 날이었다.
“그래 그러자”아빠가 비틀거리며 욕실로 따라 들어왔다.
“아빤 옷 버려 벗고 와”하고 난 욕실에서 아빠를 밀어내었다.
“됐니?”아빠가 내 예상대로 팬티차림으로 들어왔다.
“팬티도 벗어”하며 다시 밀어버렸다.
“허~참 그 녀석”아빠는 욕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욕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앞은 가렸지만 난 아빠의 좆에 힘이 들어 간 것을 알았다.
기회만 노리며 된다고 생각을 하고 아빠에게 몸을 맡겼다.
물수건에 비누칠을 하여 등부터 씻기기 시작을 하였다.
“공주님 돌아서야지”등과 엉덩이에 비누칠을 하고 말을 하였다.
“응”하고 돌아섰다.
젖가슴부터 비누칠을 하였다.
비누를 묻힌 물수건이 털이 무성한 보지에 닿았다.
짜릿한 쾌감이 엄습을 하였다.
“공주님 이제 물로 비눗물 씻으세요. 난 나가요”하며 돌아서는 것을
“아빠 잠시”하고는 아빠를 다시 돌려세우고 순간적으로 아빠의 품에 안기며 좆을 잡고 보지에 대고
허리를 감았던 손을 내려 엉덩이를 당기며 아빠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며 밀착을 시켜버렸다.
“어~어 공주님 왜 이러시지?”하고 말을 하였으나
“악!”비눗물이 보지와 보지 털 주변에 묻은 탓에 아빠의 좆이 미끄럽게 내 보지 안으로 들어오며 통증을 안겨주었다.
“아니 너”아빠가 놀라며 나의 어깨를 잡고 밀었으나 이미 나의 처녀막은 거대한 아빠의 좆에 의하여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히히히 이제 난 아빠의 여자야 맞지”아빠가 곤혹스러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태연하게 웃으며 말은 하였지만 가랑이는 무척 아팠다.
“허~참 허~참”아빠는 무척 당황해 하며 자신의 좆에 묻은 피를 봤다.
“히히히”난 애써 아픔을 참으며 샤워기의 꼭지를 아빠의 좆에 향하게 하고 물을 뿌렸다.
그리고 나도 서둘러 비눗물을 씻어 내렸다.
난 아빠의 좆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아빠를 거실로 밀어내고 나의 몸의 물기도 닦았다.
그러나 보지 틈 사이에선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보지를 가리고 물수건을 하나 만들어 나왔다.
아빠는 거실에 없었다.
팬티는 그대로 있었다.
“아빠 또 그거 해”아빠의 방문을 열자 아빠는 용두질을 치고 있었다.
“너.......너......”아빠가 마치 얼어붙은 듯이 좆을 쥐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누워”난 아빠를 침대로 밀었다.
“술에 취하여서인지 내가 그렇게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힘없이 침대에 넘어졌다.
“수....순애야”아빠가 당황해 하며 몸을 돌리고는 좆을 움켜잡았다.
기회를 놓치면 만사가 허사란 생각을 하며 난 아빠 몸 위로 올라가 아빠의 손을 치우고 좆 근처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악!”다행히 아빠의 좆은 내 보지에 그대로 박혔지만 욕실에서 비눗물이 묻은 상태와는 전혀 달리 무서운 통증이 가랑이 사이에서 느껴졌다.
아빠의 가슴을 짚고 밑을 봤다.
확실하게 내 보지 안에 아빠의 좆은 잠적을 해 있었다.
“이제 순애 아빠 거지?”아픔의 눈물이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아~이거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야”아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난 아픔을 참으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빠가 용두질을 치다 만 상태였고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지만 너무 빡빡하여 바로 싸 버렸다고 하였듯이
나의 펌프질 몇 번 만에 다시 한 번 더 나의 보지를 무척 아프게 통증을 주며 뜨거운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빠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나를 사랑을 해 주었고 다행히 아빠는 얼마의 시일이 지나자
죄책감에서 풀려났고 난 요즘 말로 아빠의 물받이 역할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하기 시작을 하였고
방도 따로 안 쓰고 함께 썼으며 잠자리에 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즐기고 잠도 잤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때까지 함께 잠자리를 하였다.
그리고 취업을 나가자 아빠가 나에게 아예 일찍 시집을 갈 것을 권유하였다.
더 이상 함께 잠자리를 하다가는 지탄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취업을 나간 사무실에 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치근대기 시작을 하였다.
집으로도 찾아오며 아빠에게 사귀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빠는 바로 혼인을 하면 어떠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그렇게 해 준다면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마치 번갯불에 콩을 튀기듯이 나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척을 이루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일 년도 못 되어 나는 면사포를 쓰고 아빠와 이별을 하여야 하였다.
팔자가 그래서 그런지 말 그대로 허니문 베이비가 들어섰다.
분명히 아빠 아이는 아니었다.
아빠와 관계를 가진 시집오기 전에는 분명히 피임 좌약을 넣고 하였기에 단정을 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혈액형을 보니 분명히 그 사람의 아이가 맡았다.
아빠나 나는 같은 A형인데 그이는 B형이었고 우리 아들 역시 아빠를 닮아 B형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까지는 정말이지 남부럽지 않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아이가 돌이 지나자 남편이 집을 비우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외박을 하더니 점점 횟수가 늘어나다가는 이혼 직전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아지더니 급기야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을 하더니 남편은 나에게 이혼을 제의 하였다.
어지간하면 남편이란 작자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을 것이다.
이혼을 제의를 하던 날 남편이란 작자는 아예 작정을 하였던지 여자를 하나 끼고 집으로 와 이혼을 하자고 하였다.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였다.
시가집에 전화를 하였다.
시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왔다.
아이도 필요가 없으니 이것만 받고 이혼을 하라며 봉투를 하나 나에게 주었다.
이미 시어머니와도 상의가 된 모양이었다.
이혼을 안 해주고 버티어 봤자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을 분명한 일이었다.
치사하게 애걸복걸을 하기도 싫었다.
아이의 양육과 친권을 포기하는 조건에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때까지 양육비는 준다는 조건과 얼마간의 위자료를 받고 합의를 해줬다.
칭정 아빠에게 추한 골을 보이기는 싫었다.
위자료를 밑천으로 양품점을 열었다.
생각보다 장사는 잘 되었고 나의 아들도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아이가 5살이 되든 해에 아빠는 기어이 내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산단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난 아들만 믿고 살겠다고 하며 거절을 하였다.
대신 간혹 찾아가면 안아달라고만 하고 말이다.
아빠는 나의 고집을 알기에 더 이상 권유는 안 하였다.
대신 내가 섹스 생각이 나면 아이를 재워놓고 아빠에게 가면 안아주었다.
그러면서도 난 아빠가 나에게 목욕을 시켜 주었듯이 내 아들의 목욕을 내 손을 시켜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들은 내가 시켜주는 목욕을 거절하였다.
내 아들이 나에게서 떠나는 느낌이었다.
방황을 하기 시작을 하였다.
술과 눈물로 보냈다.
아들의 눈치는 빨랐다.
다시 나에게 씻겨달라고 하였다.
방황은 끝이 났다.
아들의 고추 주변에는 이미 거뭇거뭇하게 털이 자라고 있었다.
아들의 고추를 씻어주며 내가 아빠의 손에 보지 둔덕을 씻어 줄 때의 쾌감을 나는 느꼈다.
나는 아빠가 씻어주면 쾌감에 몸을 떨며 가만히 있었으나 남자아이인 내 아들은 달랐다.
내가 자신의 고추와 불알을 씻어주는 동안 내 아들은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에 올라서 부터였다.
말은 안 하고 어떤 행동도 안 하였지만 아들의 고추와 불알을 씻어주면서도 보지에서 물이 흘러
혼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들이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그도 부족하여 젖꼭지를 매만지면
나의 보지는 말 그대로 홍수로 범람을 한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물을 흘리며 쾌감만 느껴야 하였다.
3학년이 되자 아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가 궁금하였다.
아들이 학교에 간 틈을 타 가게를 여종업원에게 맡기고 집으로 달려와 아들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책상을 사면서 서랍의 열쇄가 3개인 것을 아들에게는 2개였다면 한 개를 숨긴 것을 잘 하였단 생각을 하였다.
프레이보이 잡지며 음란한 소설이 많았다.
제일 밑에는 나의 팬티가 있었다.
“앗!”난 그 팬티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라고 말았다.
나의 팬티 가운데 부분이 누렇게 얼룩이 져 있었다.
아들은 나의 팬티 가운데 부분에 자위를 한 흔적을 남겼었다.
팔자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행각이 들어 한숨만 나왔다.
일기장을 펼쳤다.
“어머머 얘가!”난 일기장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일기 내용 중에는 밤에 내가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나의 방에 몰래 잠입을 하여 팬티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지 구멍에도 넣어 봤다는 글도 있었고 손가락의 따스한 느낌이 아주 좋았는데 좆을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내용도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러 들어온 여선생님을 보면 모두 알몸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런 여선생님의 알몸을 상상하며 엄마인 나의 알몸을 생각하며 딸딸이를 몰래 친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자만 보면 잡아먹고 싶다는 내용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강간을 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인 나를 원망하며 차가운 교도소 철창 안에서 떨고 있을 모습이 그려졌다.
아빠에게 상의도 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몇 칠을 두고 아들을 관찰하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고민을 하였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방법이 없었다.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이번에는 컴퓨터를 열었다.
이곳저곳을 마구 뒤졌다.
컴퓨터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품점에 일을 하는 종업원에게 찾는 방법을 물어 보려고 달려가 물었다.
내가 데리고 있던 여종업원은 마우스를 시작에 대면 길게 여러 것이 나오는데 그 중에 검색이란 곳에
마우스를 대면 파일 또는 폴더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을 마우스로 누르면 무엇을 검색을 하겠습니까하는 말밑에
모든 파일 및 폴더를 누르면
무엇이 하나가 껌뻑껌뻑 하는 자리에 필요한 글을 적고 검색을 누르면 된다고 말을 하였으나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더니 종이에 적어 주기에 그 종이를 들고 다시 집으로 와서 그렇게 하자
적당한 찾을 것이 생각이 안 나 그냥 섹스라는 단어를 적었더니 뭔가가 주르르 나오기에 그 것을
여종업원에게 전화를 하여 어떻게 하면 볼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마우스를 그 것 위에 대고 두 번 연달아 누르라고 하였다.
“어머머 얘가!”난 놀라고 말았다.
일본여자로 보이는 여자가 아주 어린 남자아이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가 뭐라고 하자 자막이 한글로 나왔다.
<아들 앞으로 말 잘 들을 것이지?>여자가 남자아이의 좆을 보며 묻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자주 해 주면>남자아이가 여자의 유두를 매만지자 그런 자막이 떴다.
<호호호 내 귀여운 아들 물건도 참하지>여자가 남자아이의 좆을 입에 대며 위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빨면서 흔들어 대기 시작을 하였다.
컴퓨터를 닫았다.
아들의 책상에 엎드려 많은 생각을 하였다.
<저 정도라면 별 무리가 없이 학업에 전념만 한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고 가는데 마침 아들도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나란히 집으로 들어갔다.
“씻고 먹어야지?”하고 집의 현관에 들어서며 묻자
“응”하고 대답을 하며 가방을 던지고 옷을 벗기 시작을 하였다.
나는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옷을 벗기 시작을 하였다.
아들은 알몸이 되었고 나는 손바닥만한 팬티 한 장만이 은밀한 부분을 감추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 평소처럼 타월에 비누를 묻혀 등부터 씻기고 앞을 씻었다.
아들은 두 손으로 밑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아들의 물건이 발기가 된 것을 알았다.
아들이 나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신음을 참으며 샤워기를 틀어 비눗기를 제거하기 시작을 하였다.
그런 야한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아들의 손놀림은 여간이 아니었다.
미칠 기분이었다.
당장에 아빠에게 달려가고픈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어 아들의 가린 손을 치웠다.
“너 이 일 비밀이고 공부 잘해야 해, 알아?”컴퓨터에서 본 자막의 글을 떠올리며 말을 하였다.
“응”아들이 대답을 하였다.
난 욕탕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의 물건을 입에 넣고 빨기 시작을 하였다.
아들은 허리를 제키며 신음을 하였다.
빠르게 용두질을 치며 빨아주자 얼마 버티지를 못 하고 나의 목젖을 강하게 좆 물이 때렸다.
다 삼켰다.
“이 이상은 안 되는 것 알지?”아들에게 다짐을 받아야 하였다.
“응”일어서는 나의 유두를 만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상의 일은 더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몰라 잠을 잘 때면 항상 문을 걸고 잤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의 지금부터 한 달 전에 문제는 발생을 하고 말았다.
그 날은 마침 양품점에서 일을 하는 여종업원의 월급날이었다.
월급을 주고 가게에서 켄터키치킨을 안주삼아 맥주를 몇 병 비우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갔을 때는 나의 아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난 내 아들이 잔다는 것을 알고 문을 걸지 않고 속이 훤히 비치는 나이트가운차림으로 잠이 들었다.
“어머 뭐니?”몸에 무거움을 느끼고 눈을 떴다.
아~ 이일을 어쩐단 말인가.
이미 아들의 물건이 내 보지 안에 박혀 있었다.
아들의 가슴을 밀었지만 남자인데다가 나는 맥주까지 마신 처지이라 힘이 붙였다.
아들의 예전의 좆은 아빠의 좆처럼 내 보지 안에서 열심히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휴~ 엄마 좋아?”아들이 동작을 멈추고 나의 젖꼭지를 매만지며 물었다.
보지 안으론 아빠의 좆 물 대신 아들의 뜨거운 좆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답을 못 하고 외면을 하였다.
“공부 열심히 할게 대신에 일주일에 한 번만 줘 알았지?”아들이 나의 얼굴을 돌리고 빤히 보며 물었다.
“..............”난 그 말에 그만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그렇게 난 아빠의 물받이에서 아들의 물받이로 변하고 말았다.
오늘은 아들의 물받이가 되는 날이다.
앞 번엔 오르가즘을 느끼며 신음을 마구 하였는데 오늘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난 가게 문을 닫을 시간만 기다린다.
아들의 물받이 노릇을 하려고...........
그리고 그 이상의 물받이 노릇은 더 안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또한 내가 너무 내 아들을 애지중지 하여 키운 탓이기도 하기에 전남편이나 그 누구에게도 원망을 할 형편이 아니다.
내 나이 이제 사십을 훌쩍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자체도 후회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남 어려서부터 정말이지 외롭게 자랐다.
날 이렇게 나쁜 여자로 만든 것은 다 더러운 우리 엄마라는 년의 탓인지 모른다.
흥! 꼴에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하니 나의 결혼식장에 참석을 하여 뻔뻔스럽게도 엄마 자리에 앉아서
나의 결혼식을 지켜보려다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 이후로 난 그 년의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 하였다.
날 낳아 주었답시고 신부 엄마 자리에 앉은 년을 신부 입장을 하면서 보고는 많은 하객들이 있었지만 난
<여가가 어디라고 더러운 년이 그 성스러운 자리에 앉기는 앉아 썩 비키고 내 앞에서 사라져>라고 고함을 지르자
년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엄마라고 통사정을 하였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 못 하고 식장에서 나가야 하였다.
그랬다.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은 내가 3살이 되든 해에 모르는 사람도 아닌 아빠의 친구와 눈이 맞아 이혼을 하였다고 했다.
그런 친구도 친구라고 가까이 한 우리 아빠야 말로 정말 남자 천사일 것이다.
지금도 아빠가 친목계를 하면 내가 듣기로는 그 더러운 년은 아빠 친구를 따라 친목계에 참석을 한단다.
정말 뻔뻔한 여자이다.
어찌 전남편과 함께 계모임을 할 수가 있겠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이야기가 어쩌다 보니 다른 쪽으로 흘렀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그랬다.
난 3살부터 아빠 손과 할머니 손에 의하여 키워졌다.
할머니 집에서 있다가 주말이면 아빠가 할머니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와서 나를 아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빠는 지금도 여자라면 넌더리가 난다면 혼자 살고 계신다.
간혹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금도 한 번씩 가서 위로를(?) 해 주지만........
아빠는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하고 이혼을 하곤 줄곧 혼자서 살았다.
난 아빠의 집으로 가면 즐거웠다.
아빤 날 집으로 데리고 오면 제일 먼저 목욕을 시켜주었다.
물론 할머니도 이틀이 멀다하고 목욕을 시켜주었으나 아빠가 목욕을 시켜주면 어린 나이였지만
난 짜릿한 쾌감을 느끼곤 하였기 때문에 아빠가 주말 오후에 할머니 집으로 나를 데려다 놓기가 무섭게
난 다시 아빠가 오는 날만 기다리는 그런 아이였고 아빠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할머니 집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그런 아이였다.
목욕을 할 때도 아빠가 나의 사타구니를 씻어 줄 때가 항상 최고로 짜릿하였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아빠를 위로(?) 하러 가면 난 아빠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은 아들에게 몸을 맡기고 목욕을 하는 것이 더 짜릿한 느낌이 들지만...........
아빠 역시 내가 어려서부터 목욕을 시켜주길 좋아하였다.
내가 전남편하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도 울면서 아빠의 손에 의하여 목욕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몰론 목욕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눈물의 빠구리를 하였지만...........
이제 아빠의 물받이 시절 이야기부터 하겠다.
난 앞에서도 말을 하였지만 홀아버지 손에서 귀여움이란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랐다.
아빠는 주변에서 재혼을 권유하였지만 여자라면 넌더리가 난다며 나만 키우고 산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그건 내가 중학교를 졸업을 하던 해에도 우리 고모가 억지로 맞선을 보게 하여 나도 함께 따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빠는 중매를 선 아줌마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 맞선을 보러 온 아줌마에게 재혼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누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왔다며 용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그 아줌마는 웃으며 밥만 한 그릇
사주고 가시면 어떠냐고 하자 아빠와 난 그리고 그 여자가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우리 고모가 우리 집으로 와 그 아줌마가 아빠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하였으나 우리 아빠는
일언지하에 재혼은 절대 안 할 것이니 그리 알고 만약 다시 재혼 이야기가 나오면 나를 데리고
아주 먼 곳으로 도망을 간다고 하자 그 이후로 우리 고모의 입에서 재혼 이야기는 사라졌다.
그만큼 우리 아빠는 그 더러운 엄마라는 년 때문에 여자와 담을 쌓고 살았었다.
난 여기서 분명히 밝히려한다.
내가 아들에게서 배운 요즘말로 아빠의 물받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하루 이틀의 생각으로 내린 결단은 절대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는 것이 좋게 말하면 섹스이고 흔하게 하는 말로 빠구리란 것에 대하여 알았다.
그리고 그 전에도 아빠가 나를 목욕을 시켜주고는 혼자서 씻으며 용두질을 치는 모습도 몇 번 봤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위라는 것도 몰랐고 더더구나 남자가 성욕을 참는 것은 어려운 이란 것은 3학년에 올라 와서야 알았다.
생각을 해 보라.
십 년을 넘게 혼자서 자위로 성욕을 달랜 우리 아빠의 심정을.........
그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눈이 퉁퉁 붙게 밤새도록 울었었다.
하지만 내가 아빠의 물받이가 되면 아빠의 일신상에 문제가 걱정이 되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기업의 과장인 입장에 어린 딸을 물받이로 삼아 즐기느라고 재혼도 안 하고 산다는 소문이 나면 그건 아주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고민을 한 중학교 3년이 나에게는 가장 힘이 들었던 시기 일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기로 하였는데 아빠는 무조건 인문계에 가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빠도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내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한다면 그 경비도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것을 알았고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 내가 해야 할 결혼의 경비는 내 스스로 벌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빠와의 줄 당기기에는 결국 내가 승자가 되었다.
다만 아빠는 나 때문에 폭주를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면 아무리 취하였어도 거절은 안 하였다.
그 날도 그랬다.
아빠는 겨우 몸을 가눌 정도로 취하여 있었다.
“아빠 나 목욕”결전의 시간이라고 생각을 한 때는 중학교 졸업식을 하고 그 다음 날이었다.
“그래 그러자”아빠가 비틀거리며 욕실로 따라 들어왔다.
“아빤 옷 버려 벗고 와”하고 난 욕실에서 아빠를 밀어내었다.
“됐니?”아빠가 내 예상대로 팬티차림으로 들어왔다.
“팬티도 벗어”하며 다시 밀어버렸다.
“허~참 그 녀석”아빠는 욕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욕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앞은 가렸지만 난 아빠의 좆에 힘이 들어 간 것을 알았다.
기회만 노리며 된다고 생각을 하고 아빠에게 몸을 맡겼다.
물수건에 비누칠을 하여 등부터 씻기기 시작을 하였다.
“공주님 돌아서야지”등과 엉덩이에 비누칠을 하고 말을 하였다.
“응”하고 돌아섰다.
젖가슴부터 비누칠을 하였다.
비누를 묻힌 물수건이 털이 무성한 보지에 닿았다.
짜릿한 쾌감이 엄습을 하였다.
“공주님 이제 물로 비눗물 씻으세요. 난 나가요”하며 돌아서는 것을
“아빠 잠시”하고는 아빠를 다시 돌려세우고 순간적으로 아빠의 품에 안기며 좆을 잡고 보지에 대고
허리를 감았던 손을 내려 엉덩이를 당기며 아빠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며 밀착을 시켜버렸다.
“어~어 공주님 왜 이러시지?”하고 말을 하였으나
“악!”비눗물이 보지와 보지 털 주변에 묻은 탓에 아빠의 좆이 미끄럽게 내 보지 안으로 들어오며 통증을 안겨주었다.
“아니 너”아빠가 놀라며 나의 어깨를 잡고 밀었으나 이미 나의 처녀막은 거대한 아빠의 좆에 의하여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히히히 이제 난 아빠의 여자야 맞지”아빠가 곤혹스러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태연하게 웃으며 말은 하였지만 가랑이는 무척 아팠다.
“허~참 허~참”아빠는 무척 당황해 하며 자신의 좆에 묻은 피를 봤다.
“히히히”난 애써 아픔을 참으며 샤워기의 꼭지를 아빠의 좆에 향하게 하고 물을 뿌렸다.
그리고 나도 서둘러 비눗물을 씻어 내렸다.
난 아빠의 좆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아빠를 거실로 밀어내고 나의 몸의 물기도 닦았다.
그러나 보지 틈 사이에선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보지를 가리고 물수건을 하나 만들어 나왔다.
아빠는 거실에 없었다.
팬티는 그대로 있었다.
“아빠 또 그거 해”아빠의 방문을 열자 아빠는 용두질을 치고 있었다.
“너.......너......”아빠가 마치 얼어붙은 듯이 좆을 쥐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누워”난 아빠를 침대로 밀었다.
“술에 취하여서인지 내가 그렇게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힘없이 침대에 넘어졌다.
“수....순애야”아빠가 당황해 하며 몸을 돌리고는 좆을 움켜잡았다.
기회를 놓치면 만사가 허사란 생각을 하며 난 아빠 몸 위로 올라가 아빠의 손을 치우고 좆 근처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악!”다행히 아빠의 좆은 내 보지에 그대로 박혔지만 욕실에서 비눗물이 묻은 상태와는 전혀 달리 무서운 통증이 가랑이 사이에서 느껴졌다.
아빠의 가슴을 짚고 밑을 봤다.
확실하게 내 보지 안에 아빠의 좆은 잠적을 해 있었다.
“이제 순애 아빠 거지?”아픔의 눈물이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아~이거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야”아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난 아픔을 참으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빠가 용두질을 치다 만 상태였고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지만 너무 빡빡하여 바로 싸 버렸다고 하였듯이
나의 펌프질 몇 번 만에 다시 한 번 더 나의 보지를 무척 아프게 통증을 주며 뜨거운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빠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나를 사랑을 해 주었고 다행히 아빠는 얼마의 시일이 지나자
죄책감에서 풀려났고 난 요즘 말로 아빠의 물받이 역할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하기 시작을 하였고
방도 따로 안 쓰고 함께 썼으며 잠자리에 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즐기고 잠도 잤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때까지 함께 잠자리를 하였다.
그리고 취업을 나가자 아빠가 나에게 아예 일찍 시집을 갈 것을 권유하였다.
더 이상 함께 잠자리를 하다가는 지탄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취업을 나간 사무실에 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치근대기 시작을 하였다.
집으로도 찾아오며 아빠에게 사귀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빠는 바로 혼인을 하면 어떠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그렇게 해 준다면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마치 번갯불에 콩을 튀기듯이 나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척을 이루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일 년도 못 되어 나는 면사포를 쓰고 아빠와 이별을 하여야 하였다.
팔자가 그래서 그런지 말 그대로 허니문 베이비가 들어섰다.
분명히 아빠 아이는 아니었다.
아빠와 관계를 가진 시집오기 전에는 분명히 피임 좌약을 넣고 하였기에 단정을 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혈액형을 보니 분명히 그 사람의 아이가 맡았다.
아빠나 나는 같은 A형인데 그이는 B형이었고 우리 아들 역시 아빠를 닮아 B형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까지는 정말이지 남부럽지 않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아이가 돌이 지나자 남편이 집을 비우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외박을 하더니 점점 횟수가 늘어나다가는 이혼 직전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아지더니 급기야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을 하더니 남편은 나에게 이혼을 제의 하였다.
어지간하면 남편이란 작자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을 것이다.
이혼을 제의를 하던 날 남편이란 작자는 아예 작정을 하였던지 여자를 하나 끼고 집으로 와 이혼을 하자고 하였다.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였다.
시가집에 전화를 하였다.
시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왔다.
아이도 필요가 없으니 이것만 받고 이혼을 하라며 봉투를 하나 나에게 주었다.
이미 시어머니와도 상의가 된 모양이었다.
이혼을 안 해주고 버티어 봤자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을 분명한 일이었다.
치사하게 애걸복걸을 하기도 싫었다.
아이의 양육과 친권을 포기하는 조건에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때까지 양육비는 준다는 조건과 얼마간의 위자료를 받고 합의를 해줬다.
칭정 아빠에게 추한 골을 보이기는 싫었다.
위자료를 밑천으로 양품점을 열었다.
생각보다 장사는 잘 되었고 나의 아들도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아이가 5살이 되든 해에 아빠는 기어이 내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산단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난 아들만 믿고 살겠다고 하며 거절을 하였다.
대신 간혹 찾아가면 안아달라고만 하고 말이다.
아빠는 나의 고집을 알기에 더 이상 권유는 안 하였다.
대신 내가 섹스 생각이 나면 아이를 재워놓고 아빠에게 가면 안아주었다.
그러면서도 난 아빠가 나에게 목욕을 시켜 주었듯이 내 아들의 목욕을 내 손을 시켜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들은 내가 시켜주는 목욕을 거절하였다.
내 아들이 나에게서 떠나는 느낌이었다.
방황을 하기 시작을 하였다.
술과 눈물로 보냈다.
아들의 눈치는 빨랐다.
다시 나에게 씻겨달라고 하였다.
방황은 끝이 났다.
아들의 고추 주변에는 이미 거뭇거뭇하게 털이 자라고 있었다.
아들의 고추를 씻어주며 내가 아빠의 손에 보지 둔덕을 씻어 줄 때의 쾌감을 나는 느꼈다.
나는 아빠가 씻어주면 쾌감에 몸을 떨며 가만히 있었으나 남자아이인 내 아들은 달랐다.
내가 자신의 고추와 불알을 씻어주는 동안 내 아들은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에 올라서 부터였다.
말은 안 하고 어떤 행동도 안 하였지만 아들의 고추와 불알을 씻어주면서도 보지에서 물이 흘러
혼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들이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그도 부족하여 젖꼭지를 매만지면
나의 보지는 말 그대로 홍수로 범람을 한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물을 흘리며 쾌감만 느껴야 하였다.
3학년이 되자 아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가 궁금하였다.
아들이 학교에 간 틈을 타 가게를 여종업원에게 맡기고 집으로 달려와 아들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책상을 사면서 서랍의 열쇄가 3개인 것을 아들에게는 2개였다면 한 개를 숨긴 것을 잘 하였단 생각을 하였다.
프레이보이 잡지며 음란한 소설이 많았다.
제일 밑에는 나의 팬티가 있었다.
“앗!”난 그 팬티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라고 말았다.
나의 팬티 가운데 부분이 누렇게 얼룩이 져 있었다.
아들은 나의 팬티 가운데 부분에 자위를 한 흔적을 남겼었다.
팔자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행각이 들어 한숨만 나왔다.
일기장을 펼쳤다.
“어머머 얘가!”난 일기장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일기 내용 중에는 밤에 내가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나의 방에 몰래 잠입을 하여 팬티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지 구멍에도 넣어 봤다는 글도 있었고 손가락의 따스한 느낌이 아주 좋았는데 좆을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내용도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러 들어온 여선생님을 보면 모두 알몸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런 여선생님의 알몸을 상상하며 엄마인 나의 알몸을 생각하며 딸딸이를 몰래 친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자만 보면 잡아먹고 싶다는 내용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강간을 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인 나를 원망하며 차가운 교도소 철창 안에서 떨고 있을 모습이 그려졌다.
아빠에게 상의도 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몇 칠을 두고 아들을 관찰하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고민을 하였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방법이 없었다.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이번에는 컴퓨터를 열었다.
이곳저곳을 마구 뒤졌다.
컴퓨터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품점에 일을 하는 종업원에게 찾는 방법을 물어 보려고 달려가 물었다.
내가 데리고 있던 여종업원은 마우스를 시작에 대면 길게 여러 것이 나오는데 그 중에 검색이란 곳에
마우스를 대면 파일 또는 폴더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을 마우스로 누르면 무엇을 검색을 하겠습니까하는 말밑에
모든 파일 및 폴더를 누르면
무엇이 하나가 껌뻑껌뻑 하는 자리에 필요한 글을 적고 검색을 누르면 된다고 말을 하였으나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더니 종이에 적어 주기에 그 종이를 들고 다시 집으로 와서 그렇게 하자
적당한 찾을 것이 생각이 안 나 그냥 섹스라는 단어를 적었더니 뭔가가 주르르 나오기에 그 것을
여종업원에게 전화를 하여 어떻게 하면 볼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마우스를 그 것 위에 대고 두 번 연달아 누르라고 하였다.
“어머머 얘가!”난 놀라고 말았다.
일본여자로 보이는 여자가 아주 어린 남자아이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가 뭐라고 하자 자막이 한글로 나왔다.
<아들 앞으로 말 잘 들을 것이지?>여자가 남자아이의 좆을 보며 묻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자주 해 주면>남자아이가 여자의 유두를 매만지자 그런 자막이 떴다.
<호호호 내 귀여운 아들 물건도 참하지>여자가 남자아이의 좆을 입에 대며 위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빨면서 흔들어 대기 시작을 하였다.
컴퓨터를 닫았다.
아들의 책상에 엎드려 많은 생각을 하였다.
<저 정도라면 별 무리가 없이 학업에 전념만 한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고 가는데 마침 아들도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나란히 집으로 들어갔다.
“씻고 먹어야지?”하고 집의 현관에 들어서며 묻자
“응”하고 대답을 하며 가방을 던지고 옷을 벗기 시작을 하였다.
나는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옷을 벗기 시작을 하였다.
아들은 알몸이 되었고 나는 손바닥만한 팬티 한 장만이 은밀한 부분을 감추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 평소처럼 타월에 비누를 묻혀 등부터 씻기고 앞을 씻었다.
아들은 두 손으로 밑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아들의 물건이 발기가 된 것을 알았다.
아들이 나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신음을 참으며 샤워기를 틀어 비눗기를 제거하기 시작을 하였다.
그런 야한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아들의 손놀림은 여간이 아니었다.
미칠 기분이었다.
당장에 아빠에게 달려가고픈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어 아들의 가린 손을 치웠다.
“너 이 일 비밀이고 공부 잘해야 해, 알아?”컴퓨터에서 본 자막의 글을 떠올리며 말을 하였다.
“응”아들이 대답을 하였다.
난 욕탕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의 물건을 입에 넣고 빨기 시작을 하였다.
아들은 허리를 제키며 신음을 하였다.
빠르게 용두질을 치며 빨아주자 얼마 버티지를 못 하고 나의 목젖을 강하게 좆 물이 때렸다.
다 삼켰다.
“이 이상은 안 되는 것 알지?”아들에게 다짐을 받아야 하였다.
“응”일어서는 나의 유두를 만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상의 일은 더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몰라 잠을 잘 때면 항상 문을 걸고 잤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의 지금부터 한 달 전에 문제는 발생을 하고 말았다.
그 날은 마침 양품점에서 일을 하는 여종업원의 월급날이었다.
월급을 주고 가게에서 켄터키치킨을 안주삼아 맥주를 몇 병 비우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갔을 때는 나의 아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난 내 아들이 잔다는 것을 알고 문을 걸지 않고 속이 훤히 비치는 나이트가운차림으로 잠이 들었다.
“어머 뭐니?”몸에 무거움을 느끼고 눈을 떴다.
아~ 이일을 어쩐단 말인가.
이미 아들의 물건이 내 보지 안에 박혀 있었다.
아들의 가슴을 밀었지만 남자인데다가 나는 맥주까지 마신 처지이라 힘이 붙였다.
아들의 예전의 좆은 아빠의 좆처럼 내 보지 안에서 열심히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휴~ 엄마 좋아?”아들이 동작을 멈추고 나의 젖꼭지를 매만지며 물었다.
보지 안으론 아빠의 좆 물 대신 아들의 뜨거운 좆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답을 못 하고 외면을 하였다.
“공부 열심히 할게 대신에 일주일에 한 번만 줘 알았지?”아들이 나의 얼굴을 돌리고 빤히 보며 물었다.
“..............”난 그 말에 그만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그렇게 난 아빠의 물받이에서 아들의 물받이로 변하고 말았다.
오늘은 아들의 물받이가 되는 날이다.
앞 번엔 오르가즘을 느끼며 신음을 마구 하였는데 오늘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난 가게 문을 닫을 시간만 기다린다.
아들의 물받이 노릇을 하려고...........
그리고 그 이상의 물받이 노릇은 더 안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