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할머니 근혜찡 대통령되고 나서 우신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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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90회 작성일 20-01-07 11:21본문
게이들아 새벽에 감성터져서 썰하나 풀어본다.난 일단 부산 쌍도 게이고,
이틀전에 투표하러 학교에서 한시간 걸려서 집에 갔다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시고 같이 투표장까지 갔었다외할아버지는 치매에 지체장애 2급이라 거동혼자 못하시고 외할머니도 얼마전에 척추수술받으면서 한걸음한걸음 걸을때마다 끙끙 앓으시면서도 투표 하러 가시는거 보면서 투표하는게자랑스럽던 내 자신이 부끄럽드라.근데 할머니가 투표장갈때부터 나오고 나서 개표방송까지 계속 기도만 하고 계시드라 아 참고로 나빼고 우리집 전부 천주교임할머니가 성당가서 기도하시다는거 겨우 말려서 집에서 티비보면서 계속 '하느님 아부지, 도와주이소, 도와주이소' 하는 거 계속 듣고있었음이게 좌좀들이 보면 맹목적인 종교니 뭐니 까고도 충분히 남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거 옆에서 정말 측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때는 6.25사변때, 북괴군이 밀려와서 외갓집이 있던 마을 점령하고, 마을에서 착취한 물자랑 부역자들 명단을 작성할 사람을 찾는데당시 외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고졸자였다. 너희같으면 어쩌겠냐, 옆에서 총부리 들이밀고 명단 작성도와라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북괴OUT' 이 지랄 절대 못할거다.결국 할아버지는 그 명단 작성 도와주고, 휴전 이후 이게 빌미가 되서 이적행위자(용어는 정확히 모른다 그냥 이적행위자라고 할게)로 분류됬음.그 당시 이적행위자로 분류되면 가족전체가 빨간줄 그여서 공무원은 커녕 회사도 들어가기 힘들었다고 함.결국 할아버지는 전쟁 전에 면사무소에서 일하셨는데 그걸 못하니 이런 저런 사업하시다가 계속 손해만 보시고 외가는 점점 쪼들려갔음.외할머니가 얘기해주는 거 들어보니, 엄마랑 외삼촌들 열심히 공부하는거 보고 있어도 나중에 빨갱이 가족이라고 취직 못할거 생각하면 매일 밤 우셨댄다.그러던 와중에 박정희 각하 시절 우리 외가 이적행위 그걸 모두 사면해주셨다드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그날 엄청 우시고.결국 외할아버지는 나이 쉰 넘으셔서 꿈에 그리던 공무원다시 하셨다. 법무사 시험을 쉰 셋에 합격하셨다드라.우리 외삼촌이 그 때 외할아버지랑 같이 합격공고 붙은거 보고 외할아버지가 외삼촌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면서"이제 너희 대학걱정은 덜었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생각만 하면 항상 우신다.외할머니는 말했다시피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서 소록도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촌인건 다 알지? 나병. 살 썩어서 떨어지는거육영수 여사가 거기서 나병환자들 고름 흐르는 손 장갑도 안끼고 악수하는것 보고, 환자들이랑 식사 맛있게하시는 거 보시고 그때부터 정말 성인이라고 느끼셨다고 한다.여튼 잡소리가 너무 길었고, 외할머니는 어제 그렇게 개표결과 보시면서, 편찮은 몸으로도 기도는 누워서 하는거 아니라고 꼿꼿이 앉아서 기도하시면서그네찡 당선되는 거 보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받은 은혜 조금은 갚았다고 눈물흘리시더라. 그리고 치매때문에 지금 상황 모르시는 외할아버지때문에같이 못 기뻐하는게 슬퍼서 또 우시고.나 솔직히 오유씹선비들이 어제 영감들 다 죽여야된다고 할때 우리 외할머니 떠올라서 진짜 빡쳐서 모니터 부술뻔했다.뭐 감성팔이 ㅁㅈㅎ 뭐 달게 받을게. 그냥 이런 분들도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어서 쓴 것 뿐이다. 뭐 새벽에 혼자 감성터져서 쓴것도 있지만...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좋은 밤 되라.
이틀전에 투표하러 학교에서 한시간 걸려서 집에 갔다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시고 같이 투표장까지 갔었다외할아버지는 치매에 지체장애 2급이라 거동혼자 못하시고 외할머니도 얼마전에 척추수술받으면서 한걸음한걸음 걸을때마다 끙끙 앓으시면서도 투표 하러 가시는거 보면서 투표하는게자랑스럽던 내 자신이 부끄럽드라.근데 할머니가 투표장갈때부터 나오고 나서 개표방송까지 계속 기도만 하고 계시드라 아 참고로 나빼고 우리집 전부 천주교임할머니가 성당가서 기도하시다는거 겨우 말려서 집에서 티비보면서 계속 '하느님 아부지, 도와주이소, 도와주이소' 하는 거 계속 듣고있었음이게 좌좀들이 보면 맹목적인 종교니 뭐니 까고도 충분히 남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거 옆에서 정말 측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때는 6.25사변때, 북괴군이 밀려와서 외갓집이 있던 마을 점령하고, 마을에서 착취한 물자랑 부역자들 명단을 작성할 사람을 찾는데당시 외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고졸자였다. 너희같으면 어쩌겠냐, 옆에서 총부리 들이밀고 명단 작성도와라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북괴OUT' 이 지랄 절대 못할거다.결국 할아버지는 그 명단 작성 도와주고, 휴전 이후 이게 빌미가 되서 이적행위자(용어는 정확히 모른다 그냥 이적행위자라고 할게)로 분류됬음.그 당시 이적행위자로 분류되면 가족전체가 빨간줄 그여서 공무원은 커녕 회사도 들어가기 힘들었다고 함.결국 할아버지는 전쟁 전에 면사무소에서 일하셨는데 그걸 못하니 이런 저런 사업하시다가 계속 손해만 보시고 외가는 점점 쪼들려갔음.외할머니가 얘기해주는 거 들어보니, 엄마랑 외삼촌들 열심히 공부하는거 보고 있어도 나중에 빨갱이 가족이라고 취직 못할거 생각하면 매일 밤 우셨댄다.그러던 와중에 박정희 각하 시절 우리 외가 이적행위 그걸 모두 사면해주셨다드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그날 엄청 우시고.결국 외할아버지는 나이 쉰 넘으셔서 꿈에 그리던 공무원다시 하셨다. 법무사 시험을 쉰 셋에 합격하셨다드라.우리 외삼촌이 그 때 외할아버지랑 같이 합격공고 붙은거 보고 외할아버지가 외삼촌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면서"이제 너희 대학걱정은 덜었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생각만 하면 항상 우신다.외할머니는 말했다시피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서 소록도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촌인건 다 알지? 나병. 살 썩어서 떨어지는거육영수 여사가 거기서 나병환자들 고름 흐르는 손 장갑도 안끼고 악수하는것 보고, 환자들이랑 식사 맛있게하시는 거 보시고 그때부터 정말 성인이라고 느끼셨다고 한다.여튼 잡소리가 너무 길었고, 외할머니는 어제 그렇게 개표결과 보시면서, 편찮은 몸으로도 기도는 누워서 하는거 아니라고 꼿꼿이 앉아서 기도하시면서그네찡 당선되는 거 보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받은 은혜 조금은 갚았다고 눈물흘리시더라. 그리고 치매때문에 지금 상황 모르시는 외할아버지때문에같이 못 기뻐하는게 슬퍼서 또 우시고.나 솔직히 오유씹선비들이 어제 영감들 다 죽여야된다고 할때 우리 외할머니 떠올라서 진짜 빡쳐서 모니터 부술뻔했다.뭐 감성팔이 ㅁㅈㅎ 뭐 달게 받을게. 그냥 이런 분들도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어서 쓴 것 뿐이다. 뭐 새벽에 혼자 감성터져서 쓴것도 있지만...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좋은 밤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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