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이었던 병신이 일베로 오게된 썰.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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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01-07 11:23본문
힘세고 좋은아침, 끼릭끼릭.
게이들아 그냥 내 얘기 좀 하려고 한다.
나는 일게이중에 중간정도 되는 연령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선배들이 OT때부터 미 제국주의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김건모 잘못된 만남이 라디오에서 나오던 시절, 입학하자마자 가르쳐주던 노래가 '바위처럼', '처음처럼'
그리고 좌빨들의 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곡들이었지. 아무생각없이 다 부르길래 따라부르곤 했었다.
그리고 그 해에 과도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면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유일하게 등록금을 돌려받았다...)
그 당시 선배들은 '너희 부모님이 피땀흘려서 버신 돈~'이라는 감성을 팔며 아이들을 설득했다.
재수가 없었는지, 나는 1학년때부터 과대를 맡게 되었고 똑같은 논리로 아이들을 선동하고 데리고 나와야만 했어.
근데, 그 당시의 아이들은 이미 운동권 논리에 염증이 생겼는지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더라.(재밌는 건 그때 아무것도 안하던 새끼들이 지금와서 다 투사인양 바뀌었다는 거다.)
그해 4월경에 법대 학우 한명이 시위중에 죽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영정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각목을 든채
시신이 든 관을 지키면서 경찰들하고 대치했다.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일베에 글을 싸지르는 이유는 관을 지키던 날 밤에 한 선배가 했던 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가 지금 너의 의지로 이러고 있겠지만, 정말 투쟁을 하고 싸워야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부터 해라.
공부하고 싸워도 늦지 않다." 라고 말해줬던 선배가 있었지.
그때부터 나는 진실을 알기위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닥치는대로 공부를 했지.
그해 여름, 한총련이 내가 강의를 받는 종합관을 부쉈다. 그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나오지 않았지.
건물은 흉물처럼 변해버렸고, 그 안에 나는 없었지만 내 여친이 있었다. 다른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갇힌거였지.
그 당시 아이들에게 더러운 좌빨 선배들은 '대학생으로 가져야하는 시대의식'과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강조했고
특정 학교에서는 그런 데 동참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 여친도 불구속 입건 됐다.
나는 그런 일들을 거치면서 불법적인 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겁게 자행하고도 반성이 없는 좌익들을 보아왔고,
아무리 맑스를 읽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공부하고, 68혁명을 붙잡고 늘어지고 해도
이 병신새끼들의 표리부동함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아주 고학번 선배들이라고 와서
투쟁을 독려하던 80년대 후반 무능한 새끼들하고, 취직했다고, 결혼했다고 한결같던 투쟁의식을 아주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렇게 투사같던 새끼들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한결같은 좌빨 새끼들이 낫다는 생각이 든건 그때부터다.
난 내 나름의 방식대로 저항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들을 떠나 병신같은 밴드 생활을 했다.
훗날 선배들은 '너에게 기대가 많았다' 고 하더라. 내가 민주투사라도 될 줄 알았나부지.
그래서 난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하고 아싸같은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학생운동이란 건, 이미 90년대부터는 명분을 잃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 학생회 간부 새끼들은 학생회비를 집행하면서 자기들끼리 권력에 도취되서 맛을 들이고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었던거다.
차를 샀다느니, 전세자금을 마련해 나왔다느니, 정계에 진출을 한다느니. 그딴 소리나 지껄이고
좌빨 보지랑 섹스했다는 거나 자랑하고 다니던 한심한 새끼들이었다는거다.
문제는 이 새끼들이 투쟁의 막바지에 서서 공부하라고 권해줬던 선배처럼 공부를 한 좌빨이 아니라,
그야말로 놀이처럼 학생회 활동을 하고, 공부도 안하던 새끼들이었다는게 현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들은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오직 사람 수를 늘리는데 치중했을 뿐이었고, 다양성도 존중하지 못했다.
그런 새끼들이 실패를 곱씹고 실력을 키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애새끼들 낳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무능함과 고단한 삶을 정치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30대 좌빨 새끼들은 제대로 공부한 새끼들도 드물고, 그때 투쟁에 선봉에 섰던 새끼들도 아니다.
먹고살만 하니까, 그때 정말 명분을 가지고 투쟁을 했던 놈들한테 미안한 감정으로 트윗질로 자위나 하는거지.
대기업 과장 부장하고 있는 놈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해서 누구보다 누리고 있는 새끼들이
자식 낳고 마누라도 있고 집도 있고 연봉 1억 가까이 받는 새끼들이
버러지같이 사는 나도 갓카 정권하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았는데 갓카탓을 하는 걸 보면
산업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좌파들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권위를 부르짖으면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 표리부동한 나의 선배들을 고발한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죄도 아니고, 늦은 나이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지만
병신들처럼 선동당하진 말아야지....
나는 여전히 병신이라 지잡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말로 외래교수요 그냥 강사 나부랭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정치적 부채의식이나 편향된 정치관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교수님들은 안그런 모양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실력을 키우면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기가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게 선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독재자의 딸' 따위를 말하고
'26년'을 보라고 선동하는 게 요즘 교수들이다.
나라도 열심히 산업화에 나서고 싶지만, 힘이 없다.
하지만 일게이 병신새끼들 보면서 힘을 조금씩 더 얻어간다.
인증은 없으니 민주화 줘도 상관없다. 96년 종합관 사태 검색해보면 사실이 나와있을거다.
고맙다. 힘내라 병신들아. 끼릭끼릭.
---------------------------(요약)-------------------------1. 좌빨 개새끼.2. 좌빨 꼰대, 늙은 좌빨 빨갱이2. 일베 병신들아 공부하자. 고맙다.
게이들아 그냥 내 얘기 좀 하려고 한다.
나는 일게이중에 중간정도 되는 연령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선배들이 OT때부터 미 제국주의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김건모 잘못된 만남이 라디오에서 나오던 시절, 입학하자마자 가르쳐주던 노래가 '바위처럼', '처음처럼'
그리고 좌빨들의 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곡들이었지. 아무생각없이 다 부르길래 따라부르곤 했었다.
그리고 그 해에 과도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면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유일하게 등록금을 돌려받았다...)
그 당시 선배들은 '너희 부모님이 피땀흘려서 버신 돈~'이라는 감성을 팔며 아이들을 설득했다.
재수가 없었는지, 나는 1학년때부터 과대를 맡게 되었고 똑같은 논리로 아이들을 선동하고 데리고 나와야만 했어.
근데, 그 당시의 아이들은 이미 운동권 논리에 염증이 생겼는지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더라.(재밌는 건 그때 아무것도 안하던 새끼들이 지금와서 다 투사인양 바뀌었다는 거다.)
그해 4월경에 법대 학우 한명이 시위중에 죽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영정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각목을 든채
시신이 든 관을 지키면서 경찰들하고 대치했다.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일베에 글을 싸지르는 이유는 관을 지키던 날 밤에 한 선배가 했던 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가 지금 너의 의지로 이러고 있겠지만, 정말 투쟁을 하고 싸워야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부터 해라.
공부하고 싸워도 늦지 않다." 라고 말해줬던 선배가 있었지.
그때부터 나는 진실을 알기위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닥치는대로 공부를 했지.
그해 여름, 한총련이 내가 강의를 받는 종합관을 부쉈다. 그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나오지 않았지.
건물은 흉물처럼 변해버렸고, 그 안에 나는 없었지만 내 여친이 있었다. 다른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갇힌거였지.
그 당시 아이들에게 더러운 좌빨 선배들은 '대학생으로 가져야하는 시대의식'과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강조했고
특정 학교에서는 그런 데 동참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 여친도 불구속 입건 됐다.
나는 그런 일들을 거치면서 불법적인 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겁게 자행하고도 반성이 없는 좌익들을 보아왔고,
아무리 맑스를 읽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공부하고, 68혁명을 붙잡고 늘어지고 해도
이 병신새끼들의 표리부동함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아주 고학번 선배들이라고 와서
투쟁을 독려하던 80년대 후반 무능한 새끼들하고, 취직했다고, 결혼했다고 한결같던 투쟁의식을 아주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렇게 투사같던 새끼들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한결같은 좌빨 새끼들이 낫다는 생각이 든건 그때부터다.
난 내 나름의 방식대로 저항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들을 떠나 병신같은 밴드 생활을 했다.
훗날 선배들은 '너에게 기대가 많았다' 고 하더라. 내가 민주투사라도 될 줄 알았나부지.
그래서 난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하고 아싸같은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학생운동이란 건, 이미 90년대부터는 명분을 잃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 학생회 간부 새끼들은 학생회비를 집행하면서 자기들끼리 권력에 도취되서 맛을 들이고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었던거다.
차를 샀다느니, 전세자금을 마련해 나왔다느니, 정계에 진출을 한다느니. 그딴 소리나 지껄이고
좌빨 보지랑 섹스했다는 거나 자랑하고 다니던 한심한 새끼들이었다는거다.
문제는 이 새끼들이 투쟁의 막바지에 서서 공부하라고 권해줬던 선배처럼 공부를 한 좌빨이 아니라,
그야말로 놀이처럼 학생회 활동을 하고, 공부도 안하던 새끼들이었다는게 현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들은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오직 사람 수를 늘리는데 치중했을 뿐이었고, 다양성도 존중하지 못했다.
그런 새끼들이 실패를 곱씹고 실력을 키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애새끼들 낳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무능함과 고단한 삶을 정치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30대 좌빨 새끼들은 제대로 공부한 새끼들도 드물고, 그때 투쟁에 선봉에 섰던 새끼들도 아니다.
먹고살만 하니까, 그때 정말 명분을 가지고 투쟁을 했던 놈들한테 미안한 감정으로 트윗질로 자위나 하는거지.
대기업 과장 부장하고 있는 놈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해서 누구보다 누리고 있는 새끼들이
자식 낳고 마누라도 있고 집도 있고 연봉 1억 가까이 받는 새끼들이
버러지같이 사는 나도 갓카 정권하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았는데 갓카탓을 하는 걸 보면
산업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좌파들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권위를 부르짖으면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 표리부동한 나의 선배들을 고발한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죄도 아니고, 늦은 나이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지만
병신들처럼 선동당하진 말아야지....
나는 여전히 병신이라 지잡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말로 외래교수요 그냥 강사 나부랭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정치적 부채의식이나 편향된 정치관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교수님들은 안그런 모양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실력을 키우면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기가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게 선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독재자의 딸' 따위를 말하고
'26년'을 보라고 선동하는 게 요즘 교수들이다.
나라도 열심히 산업화에 나서고 싶지만, 힘이 없다.
하지만 일게이 병신새끼들 보면서 힘을 조금씩 더 얻어간다.
인증은 없으니 민주화 줘도 상관없다. 96년 종합관 사태 검색해보면 사실이 나와있을거다.
고맙다. 힘내라 병신들아. 끼릭끼릭.
---------------------------(요약)-------------------------1. 좌빨 개새끼.2. 좌빨 꼰대, 늙은 좌빨 빨갱이2. 일베 병신들아 공부하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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