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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보던 노인.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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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61회 작성일 20-01-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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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십여 일 전이다. 
내가 민주당에 복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여의도에 들락거릴 때다. 
당사 나왔다 가는 길에 강남역으로 가기 위해 여의도에서 일단 전차(電車)를 갈아타야 했다.
여의도 모처에서 컴퓨터 클리닉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참신한 인물이 될 거 같아서 출마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노인의 태도가 굉장히 거만스러운 것 같았다. 
좀 고분고분히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사람 출마시키려고 하면서 우습게 보려오? 맘에 안 들면 다른 사람 찾아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출마나 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태도를 정할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간을 보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출마하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민주당 경선이 바쁘니 빨리 등록하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대선 날짜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생각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출마하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유권자가 좋다는데 무얼 더 생각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후보 찾아보우. 난 안 나가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민주당 경선에는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민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국민의 소리도 들어봐야지, 무조건 나가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생각하던 것을 숫제 접어버리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비공개로 트윗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간을 보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후보 등록 기간이 지나 버릴 것 같다. 
또, 얼마 후에 인터넷에 접속해 이리저리 검색해 보더니, 하겠다고 한다. 
사실, 결론은 아까부터 나 있던 거 아닌가.
경선을 놓치고 흥행에 실패한 민주당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치를 해 가지고 정치가 될 턱이 없다. 
당원들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증권거래소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욕심사나운 눈매와 통통한 볼살에 내 마음은 열불이 터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더욱 심해진 셈이다.
민주당에 와서 후보자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좋은 사람 찾았다고 야단이다. 
기존 인사들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쪽 사람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 보면, 너무 좌빨이면 국민들에게 의심을 사고, 수꼴이면 당연히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는다고 한다. 
요렇게 꼭 알맞은 후보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주투사는, 정치헌금이니 공천장사니 하는 말을 몰랐다. 
전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꼭꼭 숨겼다. 
그러나 요사이 자칭 민주투사들은, 비리가 한 번 드러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노빠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이 죽고 없는 지금 누가 진정한 노무현의 후계자인지 검증해 줄 사람은 없다. 
지금은 개나 소나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말만 난무한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과거를 밝힐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지지해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야당은 계파는 계파요 당권은 당권이었지만, 여당과 싸우는 그 순간만은 오직 한덩이가 되어 투쟁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정치를 했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정치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조차 입당을 못 시키면서 어떻게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목동에 있는 텐프로 룸살롱에서 거하게 대접하며 진심으로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다시 여의도로 가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미 새로운 당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울화통이 터지려고 했다. 
맞은쪽 증권거래소를 바라다보았다. 
오늘도 저 안에서 안랩의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겠지. 
아, 그 때 그 노인이 그걸 노리고 있었구나. 
열심히 간을 보다가 우연히 속내를 드러내 보이던 노인의 욕심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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