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만난 여자친구.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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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0-01-07 12:01본문
군입대로 휴학을 앞둔 대학 2학년.후배신입생으로 들어온 L과 나는나의 방 두개짜리 자취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다.
한창 욕심이 강할때라 강의도 제끼고 밤낮없이 서로 껴안고 뒹구는게 일상였고 그렇게 새벽에 잠든 그애를 옆에두고 노트북을 열어 웹서핑을 하는게 소소한 재미였다.
개중에 내가 가장 열중해서 방문했던 사이트가 '딴지일보'다 지금의 일게이가 스스로 장애자임을 자처하듯황색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자조적 모토가 일단은 재미있었다.정치,사회,문화... 그간 알고있던 언론의 형식에서 탈피한 칼럼들은 당시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더더군다나 촉이 서있는 문체는 읽기에도 재미있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설을 탐독하는 내게 L은 늘 그런 지겨운건 보지말고 자기와 놀아달라며 어리광을 부렸다.마주보는 시간을 일각이라도 탐했던 그녀는 딴지가 곧 적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웃었다. 순결을 내게 준지 얼마지나지 않은 그녀였지만 내 똘똘이를 입술과 혀로 약올리는 법을 잘 알았다.나는 웃었다.
난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 제대로 된 편이여서 당시에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아니 인물은 아버지와 박정희였다. 다만, 당시의 딴지에 대한 나의 애정이어린 나의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정치적 가치관을 좌측으로 기울게 했음은 분명했고 나아가 '김근태'가 박정희의 자리를 탈환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에는급기야 학생운동, 저항에 대한 환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운동권 선배들과 만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김어준을 만나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너부리와 만나서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나의 변화를 L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같았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일찍 입대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그해 연말에 나는 의경에 입대를 하게되었다.영원히 함께 뒹굴 수 있을줄 알았던 그녀. L은 내가 상경(육군의 상병)을 달 즈음에 기다리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 듣자하니 학교에서 제법 집안이 유복한것으로 유명했던 어떤 선배와 공식 CC가 되었다고 했다. 더 이상 L과 관련한 것은 듣지 못했다. 듣고싶지도 않았고.
이후 전역한 나는 가산이 심각하게 기운 덕택에 학교를 관두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물론 의경복무가 나를 제대로된 애국보수로 거듭나게 한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살면서 느끼게된 단 하나의 진리.'잘 살려면 내가 잘 하면 된다.'좌좀식의 저항을 경멸하며 그렇게 살아왔다.지금의 나는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 상태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지 정확히 여덟해가 지난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 먼저 연락을 해온 L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아니 더욱 예뻐 보였다.최근 좋아하게 된 어떤 여자가 그순간만큼은 오징어가 되었다...미안하게도.
몇시간동안의 그런저런 뻔한 안부, 소회...그간 단 한번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던 내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를 슬프게 했던건
홍대 언저리에서 카페를 한다는 어떤 나이많은이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보다
박근혜가 당선된 미래를 걱정하는 그녀의 얼굴이었다.'정봉주'가 출소한다며 들뜬 어조로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이었다.무슨생각으로 여태 '나꼼수' 한번을 듣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사랑스레 내 똘똘이를 핥았던 그녀의 혀에서'총수'라는 단어가 나올줄이야...
'나는 일베한다 이 시발련아. 나는 수꼴 일게이다 이 좆같은 년아.'일갈하고 싶은 마음을 덮어놓고.
그저 나는.
8년전,노트북을 덮고 그녀에게 지어줬던 웃음만 지어주었다.오늘 함 주지 않을까 했던 일말의 기대도 덮어두고서...
끗.
3줄요약1. 여자떠났음2. 만났음3. 그년 나꼼충
한창 욕심이 강할때라 강의도 제끼고 밤낮없이 서로 껴안고 뒹구는게 일상였고 그렇게 새벽에 잠든 그애를 옆에두고 노트북을 열어 웹서핑을 하는게 소소한 재미였다.
개중에 내가 가장 열중해서 방문했던 사이트가 '딴지일보'다 지금의 일게이가 스스로 장애자임을 자처하듯황색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자조적 모토가 일단은 재미있었다.정치,사회,문화... 그간 알고있던 언론의 형식에서 탈피한 칼럼들은 당시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더더군다나 촉이 서있는 문체는 읽기에도 재미있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설을 탐독하는 내게 L은 늘 그런 지겨운건 보지말고 자기와 놀아달라며 어리광을 부렸다.마주보는 시간을 일각이라도 탐했던 그녀는 딴지가 곧 적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웃었다. 순결을 내게 준지 얼마지나지 않은 그녀였지만 내 똘똘이를 입술과 혀로 약올리는 법을 잘 알았다.나는 웃었다.
난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 제대로 된 편이여서 당시에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아니 인물은 아버지와 박정희였다. 다만, 당시의 딴지에 대한 나의 애정이어린 나의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정치적 가치관을 좌측으로 기울게 했음은 분명했고 나아가 '김근태'가 박정희의 자리를 탈환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에는급기야 학생운동, 저항에 대한 환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운동권 선배들과 만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다. 김어준을 만나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너부리와 만나서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나의 변화를 L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같았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일찍 입대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그해 연말에 나는 의경에 입대를 하게되었다.영원히 함께 뒹굴 수 있을줄 알았던 그녀. L은 내가 상경(육군의 상병)을 달 즈음에 기다리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 듣자하니 학교에서 제법 집안이 유복한것으로 유명했던 어떤 선배와 공식 CC가 되었다고 했다. 더 이상 L과 관련한 것은 듣지 못했다. 듣고싶지도 않았고.
이후 전역한 나는 가산이 심각하게 기운 덕택에 학교를 관두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물론 의경복무가 나를 제대로된 애국보수로 거듭나게 한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살면서 느끼게된 단 하나의 진리.'잘 살려면 내가 잘 하면 된다.'좌좀식의 저항을 경멸하며 그렇게 살아왔다.지금의 나는 어느정도 자리가 잡힌 상태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지 정확히 여덟해가 지난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 먼저 연락을 해온 L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아니 더욱 예뻐 보였다.최근 좋아하게 된 어떤 여자가 그순간만큼은 오징어가 되었다...미안하게도.
몇시간동안의 그런저런 뻔한 안부, 소회...그간 단 한번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던 내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를 슬프게 했던건
홍대 언저리에서 카페를 한다는 어떤 나이많은이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보다
박근혜가 당선된 미래를 걱정하는 그녀의 얼굴이었다.'정봉주'가 출소한다며 들뜬 어조로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이었다.무슨생각으로 여태 '나꼼수' 한번을 듣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사랑스레 내 똘똘이를 핥았던 그녀의 혀에서'총수'라는 단어가 나올줄이야...
'나는 일베한다 이 시발련아. 나는 수꼴 일게이다 이 좆같은 년아.'일갈하고 싶은 마음을 덮어놓고.
그저 나는.
8년전,노트북을 덮고 그녀에게 지어줬던 웃음만 지어주었다.오늘 함 주지 않을까 했던 일말의 기대도 덮어두고서...
끗.
3줄요약1. 여자떠났음2. 만났음3. 그년 나꼼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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