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인생 정리 ㅍㅌㅊ.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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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20-01-07 14:38본문
초딩들 깨기 전에 글 하나 싸지르고 퇴갤하련다.
감성팔이 아니고 필력 존망임을 미리 밝히면서..
난 1980년 생 외아들인데
아버님이 85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친가랑 외가가 형편이 좀 넉넉한 편이기도 했고
어머님이 막 건강한 편은 아니셔서
전업주부로 나랑 단둘이 살면서 키우셨다.
근데 삼촌. 외삼촌들이 전형적인 '사람은 좋은데
실속없는' 부류라서 보증서주고 이러다가
양쪽 집안이 쪽박을 차기에 이르렀다.
초중고 시절은 대구에서 자랐고,
엄한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사고는 안치고 공부는 평타치는 수준이었다.
집안 생각은 못하는 좆고딩 마인드로 인서울하고 싶어서
특차로 서울 사립대 공대에 원서 넣었고 합격했다.
경쟁률이 13대 1인가 그랬는데
예상커트라인보다 낮았던 내가 붙었다.
합격발표되고 어머님 표정 굳었던게 아직 생생하다. ㅋㅋ
암튼 바로 짐싸서 기숙사 들어가서 1년 신나게 놀았다.
알바도 안하고 용돈 받아쓰면서..
지금 생각하면 존나 철부지였지.
1학년 끝날때쯤 안되겠다 싶어서
군휴학 내고 대구행.
집안 살림 어려워져서 어머님은 2~3년정도
대구 외각에서 좀 크고 깔끔한 모텔을 하고 계실때였다. 잠시 단칸장에 어머니랑 살아야했을 정도로 상황이 안좋을 때도 있었다.
군대 신검애서 4급받고(허리디스크, 미필 인증 미안하노)
섬유공장에서 병역특례 근무했다.
그때부터 돈을 벌어야겠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 같다.
2003년에 2학년 복학해서는 알바도 좀 했는데
집안 사정은 풀릴 생각을 안해서 막막하드라.
그래서 어머님 상의없이 휴학해버리고는
노가다 시작했다.
클린룸이라고 엘쥐나 삼송 엘씨디 공장 내부 천장 만드는 일이었고 비교적 깔끔한 노가다였다.
구미 파주 천안 돌면거 2년 했고
비로소 좀 어른이 된 느낌? 이 들었다.
근데 노가다 해보면서 끝이 보이드라.
이길을 계속가도 노가다 씹장밖에 더하겠나 이런생각.
그래서 2006년에 3학년으로 복학.
교수하나 붙잡고 용돈 쇼부치고는 실험실 생활하면
공부 좀 열심히 했다. 동기가 거의 없었거든 ㅋㅋ
그렇개 2년 버티고 입학 9년만에 졸업을 했다.
그때 교수가 그러더라. 니 대학원 안오고 취업하는거
분명 후회할꺼라고. 그 말 이해는가던데 묵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기에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운좋게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 화학회사 연구소로 들어갔는데 3달만에 충남서산 공장으로 발령 내더라.
시발 존나 촌구석이었고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일을 할꺼같은 그런 보직이었다.
그랴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게 첨 구직활동 할때 서류합격한 회사 5개만 골라서 다시 자소서를 보냈다.
그 중에 한군데가 통과. 면접 두번 다 통과했다.
존나 구라쳐가면서 면접보러 댕겼던 생각하면 ㅅㅂ.
암튼 옮기게 된 직장이 지금까지 한 5년 정도 일하고 있는 곳이고 대기업 연구소다. 지역은 경남 어디쯤.
여기 와서 마누라 만나 사고쳐서 결혼도 하고
애는 4살됐다 ㅋㅋ
글 싸기 전에는 좀 파란만장 할꺼 같았는데
스킵을 많이해서 그런가 밋밋하네.
무튼 노력에 비해 운도 좀 따랐던거 같다.
아참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 안간거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데 2011년부터 석사과정 밟아서 담달에 학위 받는다.
인증할께 없어서 회사 시스템 화면 찍었다.
요약
1. 편모 밑에서 자란 게이다.
2. 어머님이나 나나 고생 많이 했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다.
3. 부심도 아니고 걍 써봤다. 욕은 하지 마라.
감성팔이 아니고 필력 존망임을 미리 밝히면서..
난 1980년 생 외아들인데
아버님이 85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친가랑 외가가 형편이 좀 넉넉한 편이기도 했고
어머님이 막 건강한 편은 아니셔서
전업주부로 나랑 단둘이 살면서 키우셨다.
근데 삼촌. 외삼촌들이 전형적인 '사람은 좋은데
실속없는' 부류라서 보증서주고 이러다가
양쪽 집안이 쪽박을 차기에 이르렀다.
초중고 시절은 대구에서 자랐고,
엄한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사고는 안치고 공부는 평타치는 수준이었다.
집안 생각은 못하는 좆고딩 마인드로 인서울하고 싶어서
특차로 서울 사립대 공대에 원서 넣었고 합격했다.
경쟁률이 13대 1인가 그랬는데
예상커트라인보다 낮았던 내가 붙었다.
합격발표되고 어머님 표정 굳었던게 아직 생생하다. ㅋㅋ
암튼 바로 짐싸서 기숙사 들어가서 1년 신나게 놀았다.
알바도 안하고 용돈 받아쓰면서..
지금 생각하면 존나 철부지였지.
1학년 끝날때쯤 안되겠다 싶어서
군휴학 내고 대구행.
집안 살림 어려워져서 어머님은 2~3년정도
대구 외각에서 좀 크고 깔끔한 모텔을 하고 계실때였다. 잠시 단칸장에 어머니랑 살아야했을 정도로 상황이 안좋을 때도 있었다.
군대 신검애서 4급받고(허리디스크, 미필 인증 미안하노)
섬유공장에서 병역특례 근무했다.
그때부터 돈을 벌어야겠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 같다.
2003년에 2학년 복학해서는 알바도 좀 했는데
집안 사정은 풀릴 생각을 안해서 막막하드라.
그래서 어머님 상의없이 휴학해버리고는
노가다 시작했다.
클린룸이라고 엘쥐나 삼송 엘씨디 공장 내부 천장 만드는 일이었고 비교적 깔끔한 노가다였다.
구미 파주 천안 돌면거 2년 했고
비로소 좀 어른이 된 느낌? 이 들었다.
근데 노가다 해보면서 끝이 보이드라.
이길을 계속가도 노가다 씹장밖에 더하겠나 이런생각.
그래서 2006년에 3학년으로 복학.
교수하나 붙잡고 용돈 쇼부치고는 실험실 생활하면
공부 좀 열심히 했다. 동기가 거의 없었거든 ㅋㅋ
그렇개 2년 버티고 입학 9년만에 졸업을 했다.
그때 교수가 그러더라. 니 대학원 안오고 취업하는거
분명 후회할꺼라고. 그 말 이해는가던데 묵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기에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운좋게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 화학회사 연구소로 들어갔는데 3달만에 충남서산 공장으로 발령 내더라.
시발 존나 촌구석이었고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일을 할꺼같은 그런 보직이었다.
그랴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게 첨 구직활동 할때 서류합격한 회사 5개만 골라서 다시 자소서를 보냈다.
그 중에 한군데가 통과. 면접 두번 다 통과했다.
존나 구라쳐가면서 면접보러 댕겼던 생각하면 ㅅㅂ.
암튼 옮기게 된 직장이 지금까지 한 5년 정도 일하고 있는 곳이고 대기업 연구소다. 지역은 경남 어디쯤.
여기 와서 마누라 만나 사고쳐서 결혼도 하고
애는 4살됐다 ㅋㅋ
글 싸기 전에는 좀 파란만장 할꺼 같았는데
스킵을 많이해서 그런가 밋밋하네.
무튼 노력에 비해 운도 좀 따랐던거 같다.
아참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 안간거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데 2011년부터 석사과정 밟아서 담달에 학위 받는다.
인증할께 없어서 회사 시스템 화면 찍었다.
요약
1. 편모 밑에서 자란 게이다.
2. 어머님이나 나나 고생 많이 했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다.
3. 부심도 아니고 걍 써봤다. 욕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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