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생썰.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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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96회 작성일 20-01-07 16:51본문
태어날때부터 약했다. 유산기있는거 엄마가 간신히 살렸고 1분동안 숨도안쉬었는데 두드려서 간신히 숨쉬엇고
왼쪽에 눈물샘이 없어가지고 바늘로 인공적으로 뚫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울때도 눈물이 그렇게 많이 안나온다 아무리 울어도 왼쪽은 찔끔나오고 끝이더라)
지극정성으로 엄마가 나키우다가 나 돌지나고 독일로 유학가시고 3년후에 돌아오셨다.
어릴때라 기억은 안나지만 친가 외가 전전하면서 할머니 손에서 길려졌다.
시골에 먹을게 뭐가 있으랴 제때 영양분을 못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키도 제때안커서 초등학교때는 늘 앞자리는 기본이였고
저학년때는 키작은거가지고 뭐라 안했다 순수해서 그런가;;
4학년때부터 키도 안크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애들한테 무시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적표라는걸 처음으로 받아봣는데 반에서 34등했더라 36
애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유행하던 게임(크아)도 열심히 했다 못하긴했지만 노력이라도 했다
그나마 왕따는 아닌정도라서 반에서 찌질이 몇명과 같이 어울려지냈다.
6학년때 애들따라서 피씨방이라는걸 처음으로 접했다.
너무 신기하고 게임도 못하지만 애들이랑같이 게임하니깐 마냥좋고 신기했다
그당시 유행하던 카트라이더 스타 는 애들이랑 매일했던것같다.
공부는 나와는 거리가 너무 먼 얘기엿고 나는 허구한날 피방만 가서 담배연기에 절여서 집에왔다.
부모님은 눈치를 어느정도 채셧지만 나를 방치하셧다.
맞벌이를 하시고계셧고 든든한 누나가있기때문이였다.
누나는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특히 수학과학쪽에 특출나게 잘해서 경시대회에서 상타고오곤했다.
늘 아빠는 명절날 내려가면 누나 자랑하기 급급했고 그나마 할머니들만 나를 이뻐해주셧다 요녀석은 커서 잘될 대기만성형이라면서..
그리고 누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SKY입학하고 졸업했다.
누나가 이렇게 잘나가는동안 부모님은 나를 방치하신것이였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성적표가 나왔었다.
처음이라서 긴장도 했을뿐더러 공부란것도 문제집사서해봣다(물론 다풀진않았지만..)
반40명중에 16등했다.
난 내성적에 너무 자랑스러웠고 나랑 하위권을 다툴던 옛친구들도 내성적을 부러워했다.
마냥기분이 좋아서 성적표를 받자마자 집에일찍들어가 부모님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마치 주인을 오래기다린 개마냥 부모님을 보고 내성적표를 보여줬다.
기쁜표정을할줄알았지만 나에게 돌아온건 싸늘한 시선과 가혹한 한마디
'이것도 성적이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였다
오기를 부려서 기말고사때 기대에 부응하자고 중간고사 끝나고 피시방도 안가고 기말고사를 준비했다
기말고사 에서 난 반에서 8등했다
선생님도 성적이 왜이렇게 올랏냐면서 항상 수업시간에 딴짓하던나보고 칭찬한마디를 던져서 그날역시 기분이 좋게 집에들어갔다.
부모님반응은 똑같았다.
늘 누나 성적표에 찍히는 1이라는 숫자에 익숙하셔서 그런가 숫자8은 취급도 안해주나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때부터 나는 공부에 손을 놧다..
공부에 손을놓고 피씨방을 다시 들락거리자 싸움좀잘하는애들한테 찍혔다
만만하게도 생겻고 허약한색히였으니 미래의 빵셔틀의 향기가 났다보다..
방학때는 건드리지않았지만 2학기시작하고부터 난 일진들의 주기적인 빵셔틀이 되엇다.
학교앞 매점에서 돈이없어서 햄버거를 훔쳐서 바친적도있다.
이렇게 살다보니 공부는 들어오나?
중간고사성적이 나왓다
반에서 30등을했다
집에 들어가서 이제는 성적표를 숨기셧다.
어떻게 아셧는지 저녁먹고 방에서 만화책 몰래보다가 끌려 나갔다.
나보고 전학가랜다.. 남들앞에서 내얘기하기 쪽팔린다고 전학가시라고 그랬다.
게다가 유급까지 강제로 시키셧다.
그리고 나를 아무도 없는 외딴곳 전라도라는 외국기숙사학교로 유학갔다.
유급한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녔다. 너무 쪽팔렸다.
조용히 1학기 다니다가 내가 유급한사실을 선생이 수업도중에 언급했다.
수업도중에 졸았다고 유급한새끼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잠이오냐고...
그이후 난 혼자 조용히 숨어서 다녔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났을때 우리집은 축제였다.
누나가 SKY붙어서 아빠는 맨날 술에 취해들어오셧고 친척들불러서 밥을 사기도했다.
어느정도 커서 이젠알았다. 그자리는 내가 낄자리가 아니라는것을..
가끔원망도하고 자살시도도 했엇다. 왜누나만 좋은머리를 주냐고 나도 공부잘하고싶었는데..
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였다..
누나를 대학보내고 내가 쪽팔렸는지 중학교 2학년때 나를 조기유학으로 미국에 혼자 보냈다.
유학원에서 처음에 사기맞아서 한국인도 아예없는 외딴 시골학교에 좆같은 홈스테이를 배정받고 굶다시피 지냈다.
향수병도 너무 심했고 학교숙제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영어도못했고 학교가기가 너무싫엇다.
한국과는 연락이 두절됏고 혼자 고립되어서 방안에서 쭈그려 지냈다.
그렇게 나의 9학년은 지나가고
학교를 옮겼다(부모님이 성적보고 옮긴듯싶다)
이번엔 좋은학교다 한국인도있고 어느정도 안정된곳에서 살다보니 향수병도 나름 없어지고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공부라서 흥미가 생겼고 일년동안 영어붙잡고 씨름하다보니 애들말도 알아듣고 차츰차츰 말을 할수있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생활은 끝났다.
미국대학교에 붙었다. 가고싶은대학은 아니였지만 순전히 한국에 인맥이 잘 형성되어있다는 대학으로 아빠가 강제로 보냈다.
그리고 다니고있다.
미국와서 많이 성격이 나아졋지만 겉으로는 활발하고 많이 웃고 사람들을 웃기고하지만
방안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버려진느낌이 지워지지않는다
최근에 들어서야 부모님과 사이가 나아졌지만
애정이 전반적으로 결핍되어있는것같다.
여친을 사귀어도 충족되지가 않고 누구에게 칭찬을들어도 기분이 나아지지않는다....
친한친구에게 나의비밀을 다 털어놓아도 무언가 찝찝하고 공허하다
이번주 수요일날 전화가왔다
아빠가 신종플루에 걸리셧다고.. 죽는것과는 거리가멀지만 안아프던 아빠가 아프니깐 나도모르게 울적해진다.. 피는 못속이나 보다..
나도 효도하고싶다.. 매번 지나갈때 사소하지만서도 이쁜물건 (주방용기나 향수) 이런걸보면 아빠꺼랑 엄마꺼 누나꺼를 챙겨서 한국에 갈때 주지만
형식적인 인사로 마무리하신다..
유복한가정에서 태어나서 지냈지만 마음속 한구석 열등감과 우울함 그리고 부모님관심에 대한열망이 자리잡고있다..
나도 부모님께 인정받을날이 오겠지?
새해복많이받아라
왼쪽에 눈물샘이 없어가지고 바늘로 인공적으로 뚫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울때도 눈물이 그렇게 많이 안나온다 아무리 울어도 왼쪽은 찔끔나오고 끝이더라)
지극정성으로 엄마가 나키우다가 나 돌지나고 독일로 유학가시고 3년후에 돌아오셨다.
어릴때라 기억은 안나지만 친가 외가 전전하면서 할머니 손에서 길려졌다.
시골에 먹을게 뭐가 있으랴 제때 영양분을 못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키도 제때안커서 초등학교때는 늘 앞자리는 기본이였고
저학년때는 키작은거가지고 뭐라 안했다 순수해서 그런가;;
4학년때부터 키도 안크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애들한테 무시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적표라는걸 처음으로 받아봣는데 반에서 34등했더라 36
애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유행하던 게임(크아)도 열심히 했다 못하긴했지만 노력이라도 했다
그나마 왕따는 아닌정도라서 반에서 찌질이 몇명과 같이 어울려지냈다.
6학년때 애들따라서 피씨방이라는걸 처음으로 접했다.
너무 신기하고 게임도 못하지만 애들이랑같이 게임하니깐 마냥좋고 신기했다
그당시 유행하던 카트라이더 스타 는 애들이랑 매일했던것같다.
공부는 나와는 거리가 너무 먼 얘기엿고 나는 허구한날 피방만 가서 담배연기에 절여서 집에왔다.
부모님은 눈치를 어느정도 채셧지만 나를 방치하셧다.
맞벌이를 하시고계셧고 든든한 누나가있기때문이였다.
누나는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특히 수학과학쪽에 특출나게 잘해서 경시대회에서 상타고오곤했다.
늘 아빠는 명절날 내려가면 누나 자랑하기 급급했고 그나마 할머니들만 나를 이뻐해주셧다 요녀석은 커서 잘될 대기만성형이라면서..
그리고 누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SKY입학하고 졸업했다.
누나가 이렇게 잘나가는동안 부모님은 나를 방치하신것이였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성적표가 나왔었다.
처음이라서 긴장도 했을뿐더러 공부란것도 문제집사서해봣다(물론 다풀진않았지만..)
반40명중에 16등했다.
난 내성적에 너무 자랑스러웠고 나랑 하위권을 다툴던 옛친구들도 내성적을 부러워했다.
마냥기분이 좋아서 성적표를 받자마자 집에일찍들어가 부모님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마치 주인을 오래기다린 개마냥 부모님을 보고 내성적표를 보여줬다.
기쁜표정을할줄알았지만 나에게 돌아온건 싸늘한 시선과 가혹한 한마디
'이것도 성적이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였다
오기를 부려서 기말고사때 기대에 부응하자고 중간고사 끝나고 피시방도 안가고 기말고사를 준비했다
기말고사 에서 난 반에서 8등했다
선생님도 성적이 왜이렇게 올랏냐면서 항상 수업시간에 딴짓하던나보고 칭찬한마디를 던져서 그날역시 기분이 좋게 집에들어갔다.
부모님반응은 똑같았다.
늘 누나 성적표에 찍히는 1이라는 숫자에 익숙하셔서 그런가 숫자8은 취급도 안해주나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때부터 나는 공부에 손을 놧다..
공부에 손을놓고 피씨방을 다시 들락거리자 싸움좀잘하는애들한테 찍혔다
만만하게도 생겻고 허약한색히였으니 미래의 빵셔틀의 향기가 났다보다..
방학때는 건드리지않았지만 2학기시작하고부터 난 일진들의 주기적인 빵셔틀이 되엇다.
학교앞 매점에서 돈이없어서 햄버거를 훔쳐서 바친적도있다.
이렇게 살다보니 공부는 들어오나?
중간고사성적이 나왓다
반에서 30등을했다
집에 들어가서 이제는 성적표를 숨기셧다.
어떻게 아셧는지 저녁먹고 방에서 만화책 몰래보다가 끌려 나갔다.
나보고 전학가랜다.. 남들앞에서 내얘기하기 쪽팔린다고 전학가시라고 그랬다.
게다가 유급까지 강제로 시키셧다.
그리고 나를 아무도 없는 외딴곳 전라도라는 외국기숙사학교로 유학갔다.
유급한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녔다. 너무 쪽팔렸다.
조용히 1학기 다니다가 내가 유급한사실을 선생이 수업도중에 언급했다.
수업도중에 졸았다고 유급한새끼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잠이오냐고...
그이후 난 혼자 조용히 숨어서 다녔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났을때 우리집은 축제였다.
누나가 SKY붙어서 아빠는 맨날 술에 취해들어오셧고 친척들불러서 밥을 사기도했다.
어느정도 커서 이젠알았다. 그자리는 내가 낄자리가 아니라는것을..
가끔원망도하고 자살시도도 했엇다. 왜누나만 좋은머리를 주냐고 나도 공부잘하고싶었는데..
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였다..
누나를 대학보내고 내가 쪽팔렸는지 중학교 2학년때 나를 조기유학으로 미국에 혼자 보냈다.
유학원에서 처음에 사기맞아서 한국인도 아예없는 외딴 시골학교에 좆같은 홈스테이를 배정받고 굶다시피 지냈다.
향수병도 너무 심했고 학교숙제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영어도못했고 학교가기가 너무싫엇다.
한국과는 연락이 두절됏고 혼자 고립되어서 방안에서 쭈그려 지냈다.
그렇게 나의 9학년은 지나가고
학교를 옮겼다(부모님이 성적보고 옮긴듯싶다)
이번엔 좋은학교다 한국인도있고 어느정도 안정된곳에서 살다보니 향수병도 나름 없어지고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공부라서 흥미가 생겼고 일년동안 영어붙잡고 씨름하다보니 애들말도 알아듣고 차츰차츰 말을 할수있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생활은 끝났다.
미국대학교에 붙었다. 가고싶은대학은 아니였지만 순전히 한국에 인맥이 잘 형성되어있다는 대학으로 아빠가 강제로 보냈다.
그리고 다니고있다.
미국와서 많이 성격이 나아졋지만 겉으로는 활발하고 많이 웃고 사람들을 웃기고하지만
방안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버려진느낌이 지워지지않는다
최근에 들어서야 부모님과 사이가 나아졌지만
애정이 전반적으로 결핍되어있는것같다.
여친을 사귀어도 충족되지가 않고 누구에게 칭찬을들어도 기분이 나아지지않는다....
친한친구에게 나의비밀을 다 털어놓아도 무언가 찝찝하고 공허하다
이번주 수요일날 전화가왔다
아빠가 신종플루에 걸리셧다고.. 죽는것과는 거리가멀지만 안아프던 아빠가 아프니깐 나도모르게 울적해진다.. 피는 못속이나 보다..
나도 효도하고싶다.. 매번 지나갈때 사소하지만서도 이쁜물건 (주방용기나 향수) 이런걸보면 아빠꺼랑 엄마꺼 누나꺼를 챙겨서 한국에 갈때 주지만
형식적인 인사로 마무리하신다..
유복한가정에서 태어나서 지냈지만 마음속 한구석 열등감과 우울함 그리고 부모님관심에 대한열망이 자리잡고있다..
나도 부모님께 인정받을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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