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만난 전라도출신 정일병과의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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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53회 작성일 20-01-07 19:16본문
북핵’문제에 부쳐....(1부) 2013/02/06 19:45추천 3 스크랩 0http://blog.chosun.com/ss8000/6831595 3월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가 1971년도이니 정국이 좀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치아에 얼마간의 문제(충치)가 발견되어 물경 17일 간을 치과소대에 환자 아닌 환자로 있었다.(당시는 이 기간 동안 복무로 인정이 안 됐음.)그런 우여곡절 끝에 28연대 훈병으로 고난(?)의 기초훈련을 마친 뒤 이등병 계급장을 받고 103보충대에 잠시 들려 다시 후반기교육 4주를 마치고 자대배치 됐을 때는 신록이 한창 무르 익어가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40년이 훌쩍 넘는 그날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자대 연병장은 미루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촘촘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로 고목을 반토막낸 듯한 간이의자(벤치)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거의 내 몸무게에 가까운 따블백을 메고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온몸이 젖은 채로 땀을 흘리며 나는 본 포대 행정반이 있는 막사(내무반)로 가고 있었다. 내무반은 부대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었고, 막사를 가기 위해서는 부대 식당을 거쳐야 했다. 물론 부대에 막 도착한 신병인 나는 그곳이 식당인 줄도 몰랐고, 앞에는 연병장의 것보다 더 굵고 키가 큰 미루나무가 빽빽하여 아주 훌륭한 그늘이 만들어져 통나무를 반 자른 벤치와 함께 서너 명의 군인이 위통을 벗은 채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훈련을 막 마치고 그야말로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기에 따블백을 얼른 내려놓으며‘타~안~켤!’을 외치며 경례를 붙이자 그 중의 한 사나이가 가까이 오라는 것이었다.그들은 하나같이 위통을 벗고 있었지만 계급장이 달린 군모는 쓰고 있었기에 나를 가까이 오라고 한 사나이의 계급이‘중사’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병장 하나 또 다른 중사(나중에 알았지만 이 사람이 취사반장) 하나가 있었지만, 나에 대한 모든 질문과 이런저런 자대에서의 생활과 군대의 요령을 이빨 까는 사람은 그 사나이였다. 어쨌든 그들과 헤어져 본부포대포대장님께 자대배치 신고를 마친 나의 군대생활은 시작 된 것이다. 본격적인 자대생활이 시작되며 선임 병들로부터 부대의 소식과 정보를 조금씩 듣고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배치되어 오든 날 나를 미루나무그늘 아래로 부른 사나이는 중사가 아닌 이병이며 취사병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도.....정xx(나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이하 정 이병), 짙은 전라도사투리를 쓰는 그는 목포 사람이었다. 나이 서른일곱. 탈영 4회. 정상적인 군대생활보다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생활이 더 길고, 워낙 아래쪽 꼴통이라 사령관을 뺀 부대 내의 모든 장병이 그놈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치만 볼뿐 감히 명령이나 제제를 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놈은 장교를 뺀 모든 계급장을 제 마음대로 달아도 누구하나 탓하지 않는 그런 놈이었고, 내가 자대에 배치되어 오던 날 중사계급을 달고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던 것이다. 또 주임상사를 제한 본포대장이나 인사계마저도 그놈보다 나이가 적었으니, 아무리 군대지만 놈을 막대하기 그러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놈의 행패도 행패지만 혹시 있을 놈의 또 다른 탈영으로 문책을 당하거나 진급에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국방부의 시계가 열심히 돌아가기만 일반병사보다 더 기다리며 노심초사 했던 게 분명했다.자대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정 이병‘이 나와는 같은 정보소속이라는 것과 취사병으로 간 것은 놈의 희망 반 협박 반으로 배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그와는 부딪칠 일이 없었고, 어쩐 일인지 나는 CP당번으로 배치되어 사령관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는데, 그러기를 얼마 뒤 아예 부대 밖의 사령관님 숙소당번병(소위 따까리)으로 영전(?)했으므로 그와 조우할 일이 전혀 없었다.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복무를 하는 동안 두 분의 사령관께서 임기를 마치고 타(상급)부대로 가셨고, 세 번째 사령관이 취임했을 때, 나의 군대 이력도 꽤 늘어나 고참병(병장)이 될 만큼 연륜과 세월이 흘렀다. 군 생활이 지루하고 꾀도 날 그때쯤이었다. 영외에 있는 숙소생활이 지겨워 새로 부임하신 사령관님께 영외거주 보다는 내무반 생활을 좀 하다가 제대를 하고 싶다며 간청을 드렸으나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불만스러운 나머지 몸이 불편하다며 본부 내무반에 며칠 처박혀 나름 스트라이크를 하던 중이었는데 , 마음의 병(?)이 깊었는지 그만 진짜 몸살감기로 된통 앓게 되었다.
내무반에는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나와는 같은 병과의 정보소속 후임이 둘 있었다. 당시의 군대관례라는 게 요즘 같지 않아 일반사병 간에도 상명하복의 질서유지와 군기가 삼엄하게 확립되어 있을 때였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같은 소속의 고참병이 지독한 감기몸살에 몸져 누워있다면 부대 앞 식당의 사식은 아니더라도 식사를 가져다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요 도리인 것이다.(실제 악랄한 고참병들은 소속 졸병들을 시켜서 삼시 세끼를 내무반에서 식사를 할 만큼 위세를 부리던 때다.)그런데 나의 후임 둘은 식사배달은 고사하고 얼굴 한 번 안 내밀고 의무대의 그 흔한‘APC’하나 타다 주질 않는 것이었다.사실 그들도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고참 이라고는 하지만 영외거주를 하며 사복을 입고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 없을 만치 어쩌다 본부에 올라와 노닥거리다 가고 했으니 살갑기는커녕 데면데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또 달랐다. 내가 저희들에게 악랄하게 고참병 노릇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다 죽어갈 정도로 몸이 아프면 같은 소속이 아니더라도 인간 적으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나의 아주 작은 바람이었던 것인데...결국 그런 생각들이 화가 치밀고 분노로 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막사 뒤편으로 집합(?)을 시켰다.지금도 그러하지만 내가 목소리가 좀 클 뿐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다. 즉 겁이 많다. 누굴 패고 그런 짓을 못한다. 두 후임 병을 불러 세웠으나 크게 할 말이 없다. 더욱이 후임 병을 팰 기운도 또 그럴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좀 섭섭하다 그리고 이게 꼭 나에게 국한된 것만 아니고 혹시 두 사람 중 누가 아프더라도 전우애를 발휘하여 보살펴 주는 게 좋겠다는 요지의 아주 간략한 잔소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던 것이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입맛도 없고, 식사도 그른 채 먹은 독한 감기몸살 약에 취해 쇠잔한 기운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취침점호는 끝났고(하긴 나는 이미 그런 정도의 점호는 열외가 될 정도의 고참 이었지만...)이미 내무반엔 소등이 되어 불침번을 위한 붉은 미등만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 내무반 저쪽에서 불침번과 다투는 듯한 소리가 있고, 갑자기“오병규! 오병규 이 개/새/끼 어디 있어!”라는 고함과 함께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내가 누워있는 침상 쪽으로 오는 기척이 들리며, 그 소란 속에 내무반은 다시 불이 켜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단잠이 들었든 전우들이 하나둘 일어나 영문도 모른 채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날벼락이다. 방금 켜진 형광등 아래로 뚜벅뚜벅 거침없이 다가오며‘오병규 개새끼!’를 외치는 사람은 나와는 정말, 진짜로 아무 상관도 없는‘정 일병(그때는 그가 일병으로 진급 된 때였음)’이었다. ‘저 양반이 왜 저러나?’식의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정 일병’은 침상으로 뛰어 오르더니 단단히 조여 맨 워커발로 사정없이 나를 조지기 시작했다. 등짝, 옆구리, 허벅지, 정강이...머리를 제한 온몸이‘정 일병’의 축구공이 된 것이다. 사람이 맞아도 이유나 알고 맞으면 변명도 하고 사정도 하며 덜 억울하겠지만, 이건 뭐‘오병규는 개새끼다!’라고만 외치며 불문곡직 사람을 조지는 것이었다.“아니!‘정 일병님!’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두어 차례 항의 아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대 앞 니나노 집을 다녀왔는지 놈은 역한 술 냄새를 뿜어대며 더욱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이제 하는 얘기지만, 그 때 그 시절 군대는 의문사 조사위원 같은 게 없었다. 죽는 놈만 억울한 그런 시기였다. ‘정 일병’으로부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며 이러다간 맞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아무리 못난 놈이지만 이유 없이 맞아죽어(지금은 쭈그렁 방탱이‘이외수’의 아방궁이 들어선...)이름도 없는 산골짜기(화천)의 원한 스린 몽달귀신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발바닥 저 아래로부터 용기가 불끈 솟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내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든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기왕 죽는 거라면 죽을 이유와 그 이유가 나와는 불심상관이라면‘찍’소리라도 한 번 외쳐보자는 오기 아닌 용기가 불끈 솟아 올랐던 것이다. 놈의 구둣발이 온몸으로 무질서하게 쳐들어올 때, 어떤 전우의 것인지 모르지만 잘 정리된 관물 대에 야전삽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 뽑아들고, 비록 약에 취해 힘은 없지만 놈의 대퇴부를 향해 내리 찍은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 살벌하고 아귀 같았던 놈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옳거니! 적의 약점을 알았으면 더 이상 망서 릴 것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두고 역전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너! 이 개새끼! 넌 죽었다!, 탈영병 주제에 나이 처먹었다고 개GR을 떨어!?”도망가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있는 욕 없는 욕 마구 퍼 부으며 놈을 따라 가자,‘정 일병’이 나를 조질 때는 감히 말리지도 못하던 전우들이 그때서야‘아이고! 오병장님! 참으십시오!’라며 뜯어 말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도망 간 놈을 더 이상 쫓을 기력도 없었고 설령 따라 붙었다고 해도 정말 그놈의 대갈통을 야전삽으로 내리 칠 용기도 없었을 것이며 또 그런 인간 같지 않은 놈을 상대했다가‘송장 치고 살인냈다.’는 억울한 누명을 받을 수는 더욱 없었던 관계로 못 이기는 척 주저앉아 그대로 다시 깊은 잠에 들었던 것이었다.다음날 아침 나는 사령관의 당번병이 아닌 부대 내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본포대장은 물론 인사계 심지어 군수참모, 인사참모까지 PX의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사들고 몸져 누워있는 내무반 침상으로 찾아와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눈에 가시 같았던 어쩌면 부대의 암적인 존재 언감생심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지저분한 꼴통을 잘 해치웠다는 묵시적 위로고 방문이었던 것이다.얼마 뒤 밝혀진 일이지만‘정 일병’의 난동은 이랬다. 몸이 아픈 나를 위해 물 한 모금 가져다주지 않은 같은 소속 후임 병들에게 약간의 훈계를 했든 것인데, 이놈들과‘정 일병’은 동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구타는커녕 전우애를 발휘하라는 나의 충고가 역겨웠는지 그 사실을 놈들은‘정 일병’에게 고해 바쳤고, 꼴통‘정 일병’은 고향 후배에게 시비(?)걸었다는 죄목을 들어 나를 조졌든 것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정 일병’의 코는 납작해지고 고분고분 병영생활을 했고 나는 얼마 뒤 포상휴가 일주일을 받는 대신 사령관 숙소를 빠져나와 내무반 생활을 하다가 예하부대의 OP로 쫓겨나(혹시 기회가 있으면 또...)그곳에서 전역을 했다는 것으로 장황한 썰을 끝맺는다.일개인의 시답잖은 병영생활을‘북핵’에 빗댈 수는 없지만, 경우가 그렇다. 북괴의 노는 꼬라지와 우리의 대처하는 모양이 꼭 그렇다. 북괴는‘정 일병’이다. 겨우 탈영병에 전과자가 깡패인연 그것도 무슨 힘이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휘두를 때, 그 누구도 그자의 만행에 충고도 조언도 못하고 전전긍긍했으니 오히려 놈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방조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놈을 제제 했다가 혹시 어떤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부대의 포대장 인사계 심지어 참모 등 모든 장사병은 미국과 같다. 놈의 만행이 있을 때 겨우 몇 마디 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좋게 좋게만 얘기 했을 것이다. 차라리 관심을 껐으면 어땠을까? 되지도 않는 유엔 제제니 뭐니 소리만 요란하게 뻥 튀겨 놓으니 내성(耐性)이 생긴 것이다. 결국 간덩이는 점점 더 커지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것이다.나는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슬픈 영화를 보거나 연속극을 보면 눈물을 마구 흘린다. 요즘은 아예 무슨 슬픈 프로나 연속극을 보면 마누라에게 미리 티슈 통을 달래서 옆에 두고 본다. 뱀이나 쥐를 그림으로 보아도 한 끼 정도 굶을 정도로 비위가 약하다. 그렇게 나약한 내가...그날 정말 죽을 각오로‘정 일병’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면 탈영병에 전과자인 놈은 나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놈의 기세가 그랬다. 아주 요절을 낼 듯 놈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왜 북괴의 만행에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억울하게 북괴의‘핵폭탄’에 당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미지근한 미국의 태도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심정으로 놈들의 어떠한 도발에도 전쟁을 불사하고 응징해야만 대한민국의 앞날이 보장 될 것이다. 내말 틀리?
요약 : 전라도출신들은 끼리끼리며, 좆같다!
내무반에는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나와는 같은 병과의 정보소속 후임이 둘 있었다. 당시의 군대관례라는 게 요즘 같지 않아 일반사병 간에도 상명하복의 질서유지와 군기가 삼엄하게 확립되어 있을 때였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같은 소속의 고참병이 지독한 감기몸살에 몸져 누워있다면 부대 앞 식당의 사식은 아니더라도 식사를 가져다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요 도리인 것이다.(실제 악랄한 고참병들은 소속 졸병들을 시켜서 삼시 세끼를 내무반에서 식사를 할 만큼 위세를 부리던 때다.)그런데 나의 후임 둘은 식사배달은 고사하고 얼굴 한 번 안 내밀고 의무대의 그 흔한‘APC’하나 타다 주질 않는 것이었다.사실 그들도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고참 이라고는 하지만 영외거주를 하며 사복을 입고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 없을 만치 어쩌다 본부에 올라와 노닥거리다 가고 했으니 살갑기는커녕 데면데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또 달랐다. 내가 저희들에게 악랄하게 고참병 노릇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다 죽어갈 정도로 몸이 아프면 같은 소속이 아니더라도 인간 적으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나의 아주 작은 바람이었던 것인데...결국 그런 생각들이 화가 치밀고 분노로 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막사 뒤편으로 집합(?)을 시켰다.지금도 그러하지만 내가 목소리가 좀 클 뿐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다. 즉 겁이 많다. 누굴 패고 그런 짓을 못한다. 두 후임 병을 불러 세웠으나 크게 할 말이 없다. 더욱이 후임 병을 팰 기운도 또 그럴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좀 섭섭하다 그리고 이게 꼭 나에게 국한된 것만 아니고 혹시 두 사람 중 누가 아프더라도 전우애를 발휘하여 보살펴 주는 게 좋겠다는 요지의 아주 간략한 잔소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던 것이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입맛도 없고, 식사도 그른 채 먹은 독한 감기몸살 약에 취해 쇠잔한 기운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취침점호는 끝났고(하긴 나는 이미 그런 정도의 점호는 열외가 될 정도의 고참 이었지만...)이미 내무반엔 소등이 되어 불침번을 위한 붉은 미등만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 내무반 저쪽에서 불침번과 다투는 듯한 소리가 있고, 갑자기“오병규! 오병규 이 개/새/끼 어디 있어!”라는 고함과 함께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내가 누워있는 침상 쪽으로 오는 기척이 들리며, 그 소란 속에 내무반은 다시 불이 켜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단잠이 들었든 전우들이 하나둘 일어나 영문도 모른 채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날벼락이다. 방금 켜진 형광등 아래로 뚜벅뚜벅 거침없이 다가오며‘오병규 개새끼!’를 외치는 사람은 나와는 정말, 진짜로 아무 상관도 없는‘정 일병(그때는 그가 일병으로 진급 된 때였음)’이었다. ‘저 양반이 왜 저러나?’식의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정 일병’은 침상으로 뛰어 오르더니 단단히 조여 맨 워커발로 사정없이 나를 조지기 시작했다. 등짝, 옆구리, 허벅지, 정강이...머리를 제한 온몸이‘정 일병’의 축구공이 된 것이다. 사람이 맞아도 이유나 알고 맞으면 변명도 하고 사정도 하며 덜 억울하겠지만, 이건 뭐‘오병규는 개새끼다!’라고만 외치며 불문곡직 사람을 조지는 것이었다.“아니!‘정 일병님!’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두어 차례 항의 아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대 앞 니나노 집을 다녀왔는지 놈은 역한 술 냄새를 뿜어대며 더욱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이제 하는 얘기지만, 그 때 그 시절 군대는 의문사 조사위원 같은 게 없었다. 죽는 놈만 억울한 그런 시기였다. ‘정 일병’으로부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며 이러다간 맞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아무리 못난 놈이지만 이유 없이 맞아죽어(지금은 쭈그렁 방탱이‘이외수’의 아방궁이 들어선...)이름도 없는 산골짜기(화천)의 원한 스린 몽달귀신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발바닥 저 아래로부터 용기가 불끈 솟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내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사즉필생(死卽必生)이라든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기왕 죽는 거라면 죽을 이유와 그 이유가 나와는 불심상관이라면‘찍’소리라도 한 번 외쳐보자는 오기 아닌 용기가 불끈 솟아 올랐던 것이다. 놈의 구둣발이 온몸으로 무질서하게 쳐들어올 때, 어떤 전우의 것인지 모르지만 잘 정리된 관물 대에 야전삽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 뽑아들고, 비록 약에 취해 힘은 없지만 놈의 대퇴부를 향해 내리 찍은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 살벌하고 아귀 같았던 놈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옳거니! 적의 약점을 알았으면 더 이상 망서 릴 것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두고 역전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너! 이 개새끼! 넌 죽었다!, 탈영병 주제에 나이 처먹었다고 개GR을 떨어!?”도망가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있는 욕 없는 욕 마구 퍼 부으며 놈을 따라 가자,‘정 일병’이 나를 조질 때는 감히 말리지도 못하던 전우들이 그때서야‘아이고! 오병장님! 참으십시오!’라며 뜯어 말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도망 간 놈을 더 이상 쫓을 기력도 없었고 설령 따라 붙었다고 해도 정말 그놈의 대갈통을 야전삽으로 내리 칠 용기도 없었을 것이며 또 그런 인간 같지 않은 놈을 상대했다가‘송장 치고 살인냈다.’는 억울한 누명을 받을 수는 더욱 없었던 관계로 못 이기는 척 주저앉아 그대로 다시 깊은 잠에 들었던 것이었다.다음날 아침 나는 사령관의 당번병이 아닌 부대 내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본포대장은 물론 인사계 심지어 군수참모, 인사참모까지 PX의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사들고 몸져 누워있는 내무반 침상으로 찾아와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눈에 가시 같았던 어쩌면 부대의 암적인 존재 언감생심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지저분한 꼴통을 잘 해치웠다는 묵시적 위로고 방문이었던 것이다.얼마 뒤 밝혀진 일이지만‘정 일병’의 난동은 이랬다. 몸이 아픈 나를 위해 물 한 모금 가져다주지 않은 같은 소속 후임 병들에게 약간의 훈계를 했든 것인데, 이놈들과‘정 일병’은 동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구타는커녕 전우애를 발휘하라는 나의 충고가 역겨웠는지 그 사실을 놈들은‘정 일병’에게 고해 바쳤고, 꼴통‘정 일병’은 고향 후배에게 시비(?)걸었다는 죄목을 들어 나를 조졌든 것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정 일병’의 코는 납작해지고 고분고분 병영생활을 했고 나는 얼마 뒤 포상휴가 일주일을 받는 대신 사령관 숙소를 빠져나와 내무반 생활을 하다가 예하부대의 OP로 쫓겨나(혹시 기회가 있으면 또...)그곳에서 전역을 했다는 것으로 장황한 썰을 끝맺는다.일개인의 시답잖은 병영생활을‘북핵’에 빗댈 수는 없지만, 경우가 그렇다. 북괴의 노는 꼬라지와 우리의 대처하는 모양이 꼭 그렇다. 북괴는‘정 일병’이다. 겨우 탈영병에 전과자가 깡패인연 그것도 무슨 힘이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휘두를 때, 그 누구도 그자의 만행에 충고도 조언도 못하고 전전긍긍했으니 오히려 놈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방조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놈을 제제 했다가 혹시 어떤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부대의 포대장 인사계 심지어 참모 등 모든 장사병은 미국과 같다. 놈의 만행이 있을 때 겨우 몇 마디 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좋게 좋게만 얘기 했을 것이다. 차라리 관심을 껐으면 어땠을까? 되지도 않는 유엔 제제니 뭐니 소리만 요란하게 뻥 튀겨 놓으니 내성(耐性)이 생긴 것이다. 결국 간덩이는 점점 더 커지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것이다.나는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슬픈 영화를 보거나 연속극을 보면 눈물을 마구 흘린다. 요즘은 아예 무슨 슬픈 프로나 연속극을 보면 마누라에게 미리 티슈 통을 달래서 옆에 두고 본다. 뱀이나 쥐를 그림으로 보아도 한 끼 정도 굶을 정도로 비위가 약하다. 그렇게 나약한 내가...그날 정말 죽을 각오로‘정 일병’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면 탈영병에 전과자인 놈은 나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놈의 기세가 그랬다. 아주 요절을 낼 듯 놈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왜 북괴의 만행에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억울하게 북괴의‘핵폭탄’에 당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미지근한 미국의 태도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즉필생(死卽必生)의 심정으로 놈들의 어떠한 도발에도 전쟁을 불사하고 응징해야만 대한민국의 앞날이 보장 될 것이다. 내말 틀리?
요약 : 전라도출신들은 끼리끼리며, 좆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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