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나의 고3시절 이야기...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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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20-01-08 07:31본문
[스압]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나의 고3시절 이야기...SSUL
난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말이 많았던,...
공부는 하기 싫고 마냥 놀고 싶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도 별로 못하던 나였지만, 그것이 별로 부끄럽다거나, 힘들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부모님께서 많이 개방적이시고(아버지가 전교조이심) , 성적에 대해서 별 말씀 없으셨고,
그저 국립대학교에 가서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원하셨으니 말이다.
(사실 말씀만 그러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작년 1월즈음,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슬슬 아이들이 진로 얘기, 대학얘기를 시작할 시기였다.
그 때,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책상에 부산대 입시요강이 있는 것을 봤고,
부산대에 가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애는 평소에 성적 관리도 좀 하고 공부도 좀 하던 애라서, 잘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나도 부산대학교에 가고싶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 담임선생님께 부산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보러 갔더니,
선생님께선 '공부나 해라!'며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날 그냥 보내셨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부산대학교에서 눈에 띄는 과가 한두개 보였다.
신문방송학과, 예술문화영상학과
사실, 기자가 되기보단, 여러가지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은 나에게, 예술문화영상학과가 엄청나게 끌렸다.
예술대 중에서 유일하게 수능 100%를 보는 전형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목표는 정했다.
2013학년도에 수능100% 정시 나군을 통해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에 입학하는 것.
'그렇지만, 내가 가능이나한 걸까?'
가장 최근 모의고사의 성적이 언어8, 수리6, 외국어 4 탐구 죄다 5 등급...
생각보다 심각했다. 적어도 평균2등급은 맞아야 갈 수 있는 학교인데... 그 당시 성적으로는 물론 어림도 없었다.
거기다 수능은 열달도 채 남지 않았고, 내가 생각해도 지금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렇지만, 정말 가고 싶었다. 정말...
'나도 부산대에 합격했어!! 우와 너도 합격 정말 축하해! 이제 같은 학교대학생이구나 헤헤헤...'
그 애와 같이 부산대학교에 합격한다는게 너무나도 좋을 것만 같았다.
방법은 단 하나, 수능을 잘 치는 것.
그 날부터 수능공부를 스타트했다.
사실, 제대로 공부해본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나에게 공부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것...
난 정말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무식했다. 무작정 외우고 풀고 채점하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는 나한테 맞지 않았다.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던 나에게 그런 건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내가 원하는 과가 수리나형을 보기 때문에 수리를 나형으로 전환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이동할 때는 물론, 항상 단어장을 갖고 다니며 보면서 외웠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공부와 관련없는 얘기을 하실 때도 몰래 영어단어장을 보면서 외웠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항상 단어장을 챙겼다. 오줌을 누면서도 단어를 외웠다.
항상 손에 단어장을 들고 있었기에, 손에 단어장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였다.
항상 공부하려니 힘든 점들이 많았다.
지루하고 머리아프고 힘들었다.
여름에는 하루종일 앉아 있으니 엉덩이에 땀띠가 나서 앉을 때 마다 아팠다.
공부를 시작할 땐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 그래 열심히 잘해봐.'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과 말투만 보아도, '니가 열심히 해봤자지, 잘~해봐라.' 라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도 내가 열심히 하든 말든 별다른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가끔은 그게 가장 힘들고 서글펐다.
'성적도 낮은 애가 갑자기 공부 열심히 한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공부양에 비해 낮은 성적을 보며 부끄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따위것들 무서워서 공부를 포기하는 것만큼 부끄럽고 바보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공부했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거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2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고3이 되었다.
3학년 3월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 됐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며 떨리는 손으로 시험을 치뤘다. 매겨보니, 망했다...
수리는 나형으로 전환해서 잘쳤는지 일단 모르겠고, 언어와 외국어, 탐구영역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역시 난 안되나?'
하긴, 지금생각해보면 두달정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성적이 바로 오를리는 없었다.
매겨보니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아주 밝아 보였다.
'누구는 수학 몇점이라던데?', '누구는 외국어를 거의 다 맞았다더라.'
나빼고는 모두가 시험을 잘 치룬 것 같아서 무척이나 슬펐다.
다른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고 기분 좋게 학교 빆으로 놀러 기는데, 나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기숙사 방으로 걸어가, 내 침대에 누웠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좌절감과 절망감 뿐이었다. 한숨만이 나왔다.
그러다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내가 보았던 수리나형의 점수가 거의 1등급이고, 문과애들 100명 중 4등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수학을 가장 열심히 하긴 했는데, 수리가형6등급보다는 확실히 나은 결과였다.
수리가형에서 항상 2,3점 짜리 문제 끄적거리다 찍고 자던 애가 수리나형으로 전향하자마자 문과에서 4등을 했다는 소식이 애들 입을 통해 전해졌고, 많은 애들이 '문과에서 수리 4등 했다며?' 하고 묻곤 했다.
(그 이후로 내 별명이 문과새영이 된 거 같다.)
'아, 하면 되는구나!'
절망에 빠져있던 나에게 수학 점수가 오른 것은 한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다시 열심히 공부했다.
수리는 이제 어느정도 만족하니, 다른 부족한 부분, 수리 다음으로 올리기 힘든 외국어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틈만나면 외국어 ebs, 그리고 내가 만든 단어장을 보고 외우고 또 외우고 풀고 ...힘들었다.
'내가 이런다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불안한 만큼 더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6월 모의고사 날이 다가왔다. 전날 밤에는 정말 설레었다.
'다음 날 시험 꼭 잘쳐서, 꼭 잘쳐서...헤헤.'
다음 날이 내가 좋아하는 아이의 생일이기도 했고...생일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기대감과,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이 얼마나 오를까, 시험을 잘 치면 어떨기분일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차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는 큰 무리없이 문제를 풀었고, 매겨보니 정말 놀랬다.
외국어가 89점! 높은 2등급이었다. 4월달에 75점을 맞았던 외국어 영역의 점수가 크게 오른 것이다.
확실히 풀면서 ebs와 단어위주의 공부가 평가원시험을 푸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느꼈는데,
두 달만에 이렇게 엄청난 상승이 있을 줄이야.
'야! 너 외국어영역 열심히 하더니 엄청 올랐네! 축하해~'
그 아이의, 다른 친구들의 칭찬...
영어 선생님이신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엄청 칭찬해 주셨다.
다른 반에서 수업하실 때 내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반에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두달 만에 외국어 영역 성적이 14점이나 오른 학생이 있다'며 내 칭찬을 하셨고,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반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외국어 영역 공부를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른 과목에서도 언어4 수리 2 탐구 4~5등급이었지만,
앞으로 꾸준히 열심히 하면 충분히 다른과목들도 2등급까지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을 약 4달 정도 앞두고 정말 중요한 시기인 여름방학이 되었다.
물론 여름방학때에도 '열심히'는 하였다.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어와 탐구는 수리와 외국어보다 올리기 쉬울 것만 같았던 나는...
그렇게 여름방학은 언제 시작했냐는듯이 금방 끝났고, 9월 모의고사 전 날이 됏다.
나는 9월 모의고사 전 날에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잘 칠 수 있을까? 내일도 잘 칠 수 있겠지?'
그런데, 어째서 그랬을까? 문제가 조금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손에는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거의 벌벌 떨면서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언어4, 수리 가까스로2등급, 외국어 가까스로 3등급으로 떨어지고, 탐구도 4등급을 맞았다.
그성적으로는 당연히 부산대는 커녕 웬만한 국립대에도 노리기 힘든 성적이었다.
'아...'
정말 제대로 망했다...정말로...
'어떡하면 좋지? 으...'
'수능 까지는 거의 6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수시 원서 기간에 담임 선생님께 뭐라고 말했던가?
수시 원서기간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저는 내신이 거의 5등급이고 모의고사보다 별로니깐 수시는 그냥 아무데도 쓰지 않을게요. 정시를 노려볼게요.'
그렇게 써놓은 수시는 단 하나도 없고, 거기에 잘 칠 것만 같았던 모의고사를 망쳐버렸으니...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문제점을 찾기도 너무 어려웠다.
'담임 선생님께서 그렇게 내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다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때까진 운이었나?...역시 내가 공부는 무슨...'
가장 크게 드는 생각,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떡해야 하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떡하면 좋을까? 혼자선 도저히 방법을 못 찾겠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나는 무작정 친구의 폰을 빌려서 화장실로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울컥했다. 엄마에게 갑자기 엄청 미안해졌다.
'엄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고3 내내, 힘들어도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혼자 화장실에서 갑자기 펑펑 울었다.
울면서 어떻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엄마는 다큰애가 갑자기 우니깐 놀랬는지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돼지.'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시험을 못쳤는데도 되려 날 위로 해 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난 더 슬퍼졌고, 몇분동안 계속 운 것 같다.
정말...이 상황에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도 이렇게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9월 모의고사를 망치고 일주일 정도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해도 될 거 같지 않았고, 해도 또 망할 것만 같았다.
정말 무기력해졌고, 의욕이 없어졌다.
일주일 정도를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새영이 요즘 왜그라는데?" 그러다 언제 쯤 됏을까?
문득,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3월, 6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한 줄기 희망을 경험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하루 의미있게 보낸나에게 스스로 감사하던 내가 기억났다.
근데 지금 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내 자신이 참...한심해 보였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예전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 수능 때 이런 점수가 나오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이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어!'
'대학? 이젠 꼭 가지 못해도 좋다. 그냥 수능 날 까지 후회만 남기지 않도록 하자.'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수능을 못쳐서 재수를 하더라도, '작년에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만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그 날 부터, 수능을 약 50일 남겨두고 정말 미친놈처럼 공부했다.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가도, 위충에 방까지 가서 옷갈아입는 시간이 아까워서 기숙사에 가자마자 1층에서 바로 공부를 했다.
불 끄기 직전까지 공부를 해서, 꿈에서도 괴상한 수학문제를 푼 적도 있다.
(풀던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고 취침 시간이 데는 것만큼 잠이 안 올 때가 없었다.)
...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간 것 같다.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려보니 수능 바로 전 날이 되었다.
'내일이 드디어 수능 이구나.'
그 날은 학교를 일찍 마쳤다.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초콜릿을 주기도 했다.
'넌 진짜 잘쳐야 돼!'
'내일 수능 잘쳐~'
'선배 수능 대박 나세요!'
고맙기도 하면서도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날씨는 매우 밝았다.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낮에 하교를 하는 것 같았다.
학교는 일찍 마치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쁘지는 않았다.
시험을 치룰 학교에 미리 가보고, 그 날도 집에 안 가고 도서관에가서 9시까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으로 갔다.
의외로 엄마 아빠는 수능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하긴, 평소에도 난 수능에 대한 얘기를 일부러 부모님이랑 거의 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 표정만 보아도, 혹여나 내가 기분 상하진 않을까 말도 조심 조심 하시는 것이 보였다.
9월 시험을 제대로 못친 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조건이 안되는 나에게 그렇게 신경 써 주시는 부모님을 보고 더 죄송해졌다.
반드시 수능을 잘 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오늘은 일찍 잘게요. 저 깨지않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 그래 푹 자.'
방에 들어가 누웠다. 이불은 차가웠다. 그러면서도 포근했다.
9시 30분 정도에 누운 나는,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오늘 긴장해서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
'내일 듣기에서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시간이 다 됏는데도 마킹을 못 하면 어떡하지?'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와 정말 내일이 수능이야?'
올해 초부터 오늘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그러다 한시간도 안되서 갑자기 잠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창밖을 보니 밖엔 안개가 껴서 흐릿한 회색빛의 풍경이 보였다.
창문은 서늘했다.
'음...'
일어나보니 5시40분, 부모님은 먼저 깨 있으셨다.
'일어났니?'
일어나서 대충 씻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수능 날은 엄마의 생신이기도 했다.
'엄마, 오늘 생신이신데 저 미역국 안 먹어요?'
'원래 시험치는 날엔 미역국 안먹는거야. 엄만 괜찮아.'
'에이, 그냥 미신일 뿐인데요 뭘.'
참...엄마가 그만큼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득 느껴졌다.
'반드시 잘 치고 올테다.'
아무맛도 안느껴지던 아침밥을 먹고, 수험표와 준비물들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다 했다.
'엄마 아빠 저 갈 준비 됏어요.'
'오빠야 시험 잘 치고 와~'
밖은 생각보다 추웠다.
차 문을 열고 뒷자석에 앉았다.
차 시트가 서늘했다.
창 밖을 보니 여전히 안개가 많이 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수능 얘기는 거의 않으셨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별로 무섭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해 왔으니 빨리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험을 칠 고등학교인 와룡고에 도착했다.
'새영아 화이팅이다!'
'네~ 잘 보고 올게요.'
음...내가 시험 칠 장소가...
시험 칠 반에 도착하고, 시험 칠 준비를 했다.
'나는 로봇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자!'
감독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여러가지 설명을 해 주셨다.
'저것도 못알아들으면 언어영역 칠 자격도 없지.'
사실, 시험을 치는 동안의 기억은 별로 없다. 매 시간 최선을 다해 풀었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영역, 탐구영역...
'친구들은 시험을 잘 보고 있을까?'
4교시 탐구영역의 종이 울렸다.
'모두 멈추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책상에 올려두고 손 머리 위로 하세요.'
모든 시험이 끝났다.
휴...다행히 망한 것 같은 기분은 없고, 수리와 외국어도 잘 본 것 같았다.
무엇보다 후회는 없었다.
나가도 된다는 확인을 받은 뒤 소지품들을 챙기고 바로 나갔다. 엄마가 보였다.
'새영아! 여기!' 놀랍게도 엄마는 수능 시험 답지를 가지고 계셨다.
제일 무서워하던 시간이 다가왔다.
솔직히 수능 치기 전부터 수능치는 것보다는
'떨려서 가채점을 어떻게 할까'가 훨씬 무서웠다.
'잘 쳣겠지...'
집에 가는 차에서 가채점을 했다.
언어부터 가채점을 하는데, 이런, 이유는 모르겠는데 1번부터 틀리고말았다.
한 번도 1번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마킹실수를 했나??
그렇게 벌벌 떨면서 매겨보니, 다행히 점수들이 괜찮았다.
'엄마! 점수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걱정 안하셔도 될거 같아요!'
'그래??휴...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거의 우시다시피 눈물을 글썽이며 계속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내색은 안하셨지만, 엄마도 걱정을 정말 많이 하셨나 보네...시험을 잘 치른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집에 가니 아빠도 수능감독을 모두 마치시고 집에 오셨다.
난 바로 거실에서 티비를 키고 이비에스 채널을 켰다.
온 채널이 수능 얘기였다.
'이번에 언어는 쉽고, 수리와 외국어는 어려웠던 걸로...'
'엄마! 수리랑 외국어가 어려웠대요!'
사실, 외국어영역에서 90점을 맞긴 했지만,
풀 때 듣기도 그렇고 정말 쉽게 느껴져서 이번에도 작년처럼 1등급컷 98점이 나오지는 않을까 엄청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예상 1등급컷은 92~94점 이었다.
수리도 작년보단 1등급컷이 낮아져있었다.
'휴...정말 다행이다.'
엄마 아빠는 정말 좋아하셨다.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다 사줄게!
음...사실 뭐가 별로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막연히 치킨이 떠올라서 '치킨이요.'
그렇게 엄마는 치킨을 시켜주셨고, 7시 쯤 부모님은 배드민턴 동아리를 하러 나가셨다.
혼자 방에서 과탐을 매겨봤다.
지구과학이 48점, '오!' 근데 1등급 컷은 50점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9월보다 훨씬, 아니 내 인생의 모든 모의고사 중에서 가장 점수가 잘 나온 시험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게다가 이 시험은 모의고사가 아니라 수능!
그제야 실감이 나고 기뻣다.
기쁘다는 마음보단 안도의 마음이 컷다.
갑자기 올해 초 1월부터 11월까지 10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성적이 올라서 기뻣던 기억, 9월 모의고사를 망하고 운 기억...
여러가지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지만, 안도감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싱글벙글하며 학교에 갔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버스 안에서 혹시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죽으면 어떡할까 걱정이 많이 들었다.
'시험을 잘 쳤는데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참 뜬금없는 불안감이었다. (불안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내 자신이 얼마나 웃기던지,)
아무튼 그렇게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수능 가채점 결과를 적어서 실장에게 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께서 날 교무실로 부르셨다.
내심 시험을 잘 봐서 칭찬해주시려나 해서 기대하며 교무실로 가니,
의외로 담임선생님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야, 너 이거 가채점한거 장난으로 적은 거냐?'
'네?'
내 성적이 믿기지 않으셨는지, 나보고 장난으로 적었냐고 의심하시는 선생님.
갑자기 웃겼다.
어이없으면서도 갑자기 그 상황 자체가 얼마나 웃기던지,
'아닌데요 그거 진짜에요ㅋㅋ'
'어...그래? 그래 가봐.'
반에서 애들이랑 대충 얘기해보니, 생각보다 수능을 잘 친 아이보다는 못 친 애들이 더 많았다.
어떤 애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어쨋든 끝났으니 좋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평소 말 많고 재밌던 한 아이는 수능 다음날이 되자 갑자기 말이 사라지고 지금껏 본 것 중에 최고로 우울해 보였다.
재수를 마음먹은 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아이도 있었다.
성적이 오른 나에게 재수를 해보라고 권하는 아이도 있었고...
평소보다 시험을 잘 친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수능에 대한 말은 최대한 아꼈다.
'음...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구나. 지긋지긋했던 수능이 끝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줄만 알았어.'
아이러니하게도, 시험을 잘 쳐도 시험을 잘 못본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만약 수능을 망쳤다면? 아... 생각만 해도 정말 무섭다.'
그나저나 이게 끝인가? 시험을 이렇게 잘 봤는데...정말 이걸로 끝이야? 이제 난 뭘해야 하지? 음...
정말로 허무했다. 이걸로 끝이라니,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끝났다. 모든 결과가 정해졌고...
어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재수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대보다 학벌 좋은학교는 엄청나게 많으니깐...재수를 해서라도 친구들처럼 인서울을 노려볼까 생각도 해봤다.
'성적을 더 올리고 싶어...이대로 끝내긴 너무 아쉬워.'
수학공부를 끝낸다는것도 아쉬웠다. '문제 푸는것도 재미있었는데.
무엇보다 앞으로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자습할 수 없다는 것,
기숙사에서 잘 수 없다는 것, 친구들과의 야간자율학습이 없다는것...
뭔가 많이 아쉬었다. '수능만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던 난데,
막상 수능이 끝나니 뭘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문득, '그 애는 시험을 잘 봤을까?'하는 순간,
그 애는 나한테 성적을 물어봤다.
'최새영 시험 잘 봤나!?'
'어 좀 평소보다는 ㅋㅋ...'
가채점 결과를 보여주니 그 여자애는 정말 진심으로 기뻐해줬다.
평소에도 모의고사를 치면 항상 물어봐줬는데, 그때마다 정말 고마웠다.
(수리나형을 같이 치는것만으로도...뭔가 동질감이 형성될 것 같아 설레어했다...)
'와! 잘쳤네! 축하해!'
'나 잘하면 부산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기뻤다.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뻣었다...그랬었다.
나랑 2학년때 같은 반, 옆방, 기숙사 옆 자리, 또 3학년 때 같은 반이라서 많이 친하게 지낸, 볼 때마다 장난을 쳤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말해줘서 내가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지 알고 있었다.
'걔가 재미있는 애 좋아한다던데? 아 물론 닌 아님 ㅋ'
'아 ㅈㄴ 삼수생이가? 추리닝 좀 고마 입어라ㅋㅋ'
'언어영역 98점 맞았다. 아 물론 표준점수 ㅋㅋㅋ'
'오~ 공부 열심히 하네??그런다고 걔가 니 좋아해줄거 같나??ㅋㅋㅋㅋ'
ㅂㅅ같은 장난 짓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고 또 진지한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믿을 수 있고 괜찮다고 생각햇던 친구였다.
참 재밌던 놈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여자애랑 잘 지낼 수 있을까 조언도 많이 들었는데...
수능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애랑 친구랑 뭔가 사이가 특별해보였다.
'설마...아니겠지. 설마...'
금방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해줬다.
'야 저번에 시내에서 쟤랑 둘이 같이...'
'설마...아닐거야.'
얼마나 믿고 있었던 친군데, 얼마나 착했던 친군데...
얼마 안가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사람이 비참해질 수 있는 지...그 사실을 알았을 때엔, 그랬다. 음...
어떤것도 맛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든 것도 재미가 없었다.
혼자있고 싶었다.
'하긴...걔가 엄청 잘생기긴 했지. 그 애랑 잘 어울리더라...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많이 아팠다.
친구에게 정말 싫어하고 정말 증오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걔는 몇 년간 봐오면서 정말 재밌고 착하고 믿을만한 친구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화가났다.
그렇지만 그 여자애랑 사귀지도 않았던, 그랬던 내가 그자식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것 만큼 비참하고 슬픈 것이 없었다. 대뜸 욕을한다고 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자식에게 나쁜 짓을 하면, 그 여자애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몇년 간의 우정이 하루 아침에 깨지는 것도 두렵기도 했다.
'정말 괜찮은 친구였는데...'
'정말 좋아하던...애였는데, 여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하긴, 난 그애에게 그저 친구였구나.'
겨울 방학이 시작할 때 까지 힘들었다. 아무하고도 말 하기 싫어했을 정도였다.
더욱이 그 친구는 생긴것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그에비해 부족한 내 자신이 초라해보이고 비참해 보이기까지도 했다.
그 여자애를 이제 그만 잊고 싶었지만...
수학 공식, 영어단어는 그렇게 외우려고 해도 잘 잊던 난데...
기억하기 싫은 일은 잊으려고 하면 할 수록...
그러다 겨울 방학이 시작됏다.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에 집중하면서 점점 그 여자애는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만 갔다.
'이제 스무살이니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거야...그래, 그 애랑은 원래 친구로라도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나잖아!
그넘도 아주 멋지고 괜찮은 놈이니, 서로 잘 된 것이 어찌생각하면 정말 잘 된 일이야.'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방학 동안 일을 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루 쉬는 날엔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보곤 했다.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산대 발표가 나오기 전 벌벌 떨기도 했고,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맛있는 걸 사드리기도 했다.
스무살, 어른이 됏다는게 많이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유난히 추웠기도 한 것 같다.
그렇게 겨울방학은 엄청 짧았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애는 부산대에 가지 않았다.
우리학교에서 부산대에 가는 사람은 나하나밖에 없었다.
'음...? 잘들 살어.'
그렇게 겨울 방학이 끝나고,
우리는 금방 졸업을 했다.
그렇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던 나의 고등학교3학년은 끝이났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여자애덕에 난 참 얻은 것이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동기, 원동력, 대학교에 입학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나에게 마음의 아픔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몸소(?) 가르켜주고, 겨울 방학 때는 일에 집중하게 해줘서 일의 소중함도 알게 해 주었다.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그 여자애랑 비슷한 이름만 듣거나 보아도 뜨끔, 또 옛생각에 설레이기도 했다.
다른 여자애들에게는 솔직히 별 생각 들지도 않았다.
물론 좀 서글프기도 했고,
여자랑은 절대 친구는 될 수 없다는 트라우마?
이제는 '아~ 그 때 내가 좋아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애야.'
고맙다는 생각?고맙다는 생각이 전부다.
옛날엔 절대 그러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좋아했던 것도 이젠 추억으로 남길 수 있구나...
가끔은 그 사실마저 슬플때가 있다.
예전에 3년동안 같은 반이었던 걔한테, 작은 거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혹시 날 싫어하진 않을까 불안해하다가,
날 보며 밝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정말 안도하고 기뻐했던...
많은 일들 하나하나를 지금은 추억으로 떠올려볼 수 있다니, 음...
시간이 약이라는게 정말 사실이구나 싶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걔가 나랑 같이 부산대학교에 왔으면??
그래도 나 말고 딴 남자애랑 잘 사귀고 있겠지?ㅋㅋㅋㅋㅋ'
그 애에 관한 모든것은 모두 추억으로~ㅋㅋ
2012년, 아직도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드립치면서 마냥 재미있었던 일, 힘들 때 도와준 친구들...
그 때 들었던 음악, 그 때 먹었던 음식, 그 때의 날씨...바람이 차가웠던 아침점호, 포근했던 기숙사 방 침대,
그 때는 마냥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막상 오고나니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공부 외에는 별 걱정 없었던 그때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정말 행복하고 내 자신이 좋았던 그때가,
애들과 정말 재미있었던 그때가 많이 그립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 때 친구들이 힘든시절을 함께해서 그런지 나에겐 가장 소중하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서 애들과 장난을 치고 싶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게 가끔은 참 슬프기도 하다.
그래도 내 인생에 앞으로 펼쳐질 일은 너무나도 많다.
힘든 일, 슬픈 일, 기쁜일... 많은 일들이 있겠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에 대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옛날 추억들을 떠올릴 때 행복한 만큼, 앞으로의 대학,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겠지만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 END -
고3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치른 모의고사... 등급이 864545였지 싶다.
항상 갖고다녔던 단어장.. 10권정도 손수 만들었었는데 이젠 5권 밖에 없다...
난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말이 많았던,...
공부는 하기 싫고 마냥 놀고 싶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도 별로 못하던 나였지만, 그것이 별로 부끄럽다거나, 힘들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부모님께서 많이 개방적이시고(아버지가 전교조이심) , 성적에 대해서 별 말씀 없으셨고,
그저 국립대학교에 가서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원하셨으니 말이다.
(사실 말씀만 그러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작년 1월즈음,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슬슬 아이들이 진로 얘기, 대학얘기를 시작할 시기였다.
그 때,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책상에 부산대 입시요강이 있는 것을 봤고,
부산대에 가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애는 평소에 성적 관리도 좀 하고 공부도 좀 하던 애라서, 잘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나도 부산대학교에 가고싶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 담임선생님께 부산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보러 갔더니,
선생님께선 '공부나 해라!'며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날 그냥 보내셨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부산대학교에서 눈에 띄는 과가 한두개 보였다.
신문방송학과, 예술문화영상학과
사실, 기자가 되기보단, 여러가지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은 나에게, 예술문화영상학과가 엄청나게 끌렸다.
예술대 중에서 유일하게 수능 100%를 보는 전형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목표는 정했다.
2013학년도에 수능100% 정시 나군을 통해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에 입학하는 것.
'그렇지만, 내가 가능이나한 걸까?'
가장 최근 모의고사의 성적이 언어8, 수리6, 외국어 4 탐구 죄다 5 등급...
생각보다 심각했다. 적어도 평균2등급은 맞아야 갈 수 있는 학교인데... 그 당시 성적으로는 물론 어림도 없었다.
거기다 수능은 열달도 채 남지 않았고, 내가 생각해도 지금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렇지만, 정말 가고 싶었다. 정말...
'나도 부산대에 합격했어!! 우와 너도 합격 정말 축하해! 이제 같은 학교대학생이구나 헤헤헤...'
그 애와 같이 부산대학교에 합격한다는게 너무나도 좋을 것만 같았다.
방법은 단 하나, 수능을 잘 치는 것.
그 날부터 수능공부를 스타트했다.
사실, 제대로 공부해본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나에게 공부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것...
난 정말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무식했다. 무작정 외우고 풀고 채점하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는 나한테 맞지 않았다.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던 나에게 그런 건 생각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내가 원하는 과가 수리나형을 보기 때문에 수리를 나형으로 전환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이동할 때는 물론, 항상 단어장을 갖고 다니며 보면서 외웠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공부와 관련없는 얘기을 하실 때도 몰래 영어단어장을 보면서 외웠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항상 단어장을 챙겼다. 오줌을 누면서도 단어를 외웠다.
항상 손에 단어장을 들고 있었기에, 손에 단어장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였다.
항상 공부하려니 힘든 점들이 많았다.
지루하고 머리아프고 힘들었다.
여름에는 하루종일 앉아 있으니 엉덩이에 땀띠가 나서 앉을 때 마다 아팠다.
공부를 시작할 땐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 그래 열심히 잘해봐.'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과 말투만 보아도, '니가 열심히 해봤자지, 잘~해봐라.' 라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도 내가 열심히 하든 말든 별다른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가끔은 그게 가장 힘들고 서글펐다.
'성적도 낮은 애가 갑자기 공부 열심히 한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공부양에 비해 낮은 성적을 보며 부끄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따위것들 무서워서 공부를 포기하는 것만큼 부끄럽고 바보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공부했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거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2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고3이 되었다.
3학년 3월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 됐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며 떨리는 손으로 시험을 치뤘다. 매겨보니, 망했다...
수리는 나형으로 전환해서 잘쳤는지 일단 모르겠고, 언어와 외국어, 탐구영역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역시 난 안되나?'
하긴, 지금생각해보면 두달정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성적이 바로 오를리는 없었다.
매겨보니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아주 밝아 보였다.
'누구는 수학 몇점이라던데?', '누구는 외국어를 거의 다 맞았다더라.'
나빼고는 모두가 시험을 잘 치룬 것 같아서 무척이나 슬펐다.
다른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고 기분 좋게 학교 빆으로 놀러 기는데, 나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기숙사 방으로 걸어가, 내 침대에 누웠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좌절감과 절망감 뿐이었다. 한숨만이 나왔다.
그러다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내가 보았던 수리나형의 점수가 거의 1등급이고, 문과애들 100명 중 4등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수학을 가장 열심히 하긴 했는데, 수리가형6등급보다는 확실히 나은 결과였다.
수리가형에서 항상 2,3점 짜리 문제 끄적거리다 찍고 자던 애가 수리나형으로 전향하자마자 문과에서 4등을 했다는 소식이 애들 입을 통해 전해졌고, 많은 애들이 '문과에서 수리 4등 했다며?' 하고 묻곤 했다.
(그 이후로 내 별명이 문과새영이 된 거 같다.)
'아, 하면 되는구나!'
절망에 빠져있던 나에게 수학 점수가 오른 것은 한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다시 열심히 공부했다.
수리는 이제 어느정도 만족하니, 다른 부족한 부분, 수리 다음으로 올리기 힘든 외국어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틈만나면 외국어 ebs, 그리고 내가 만든 단어장을 보고 외우고 또 외우고 풀고 ...힘들었다.
'내가 이런다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불안한 만큼 더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6월 모의고사 날이 다가왔다. 전날 밤에는 정말 설레었다.
'다음 날 시험 꼭 잘쳐서, 꼭 잘쳐서...헤헤.'
다음 날이 내가 좋아하는 아이의 생일이기도 했고...생일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기대감과,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이 얼마나 오를까, 시험을 잘 치면 어떨기분일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차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는 큰 무리없이 문제를 풀었고, 매겨보니 정말 놀랬다.
외국어가 89점! 높은 2등급이었다. 4월달에 75점을 맞았던 외국어 영역의 점수가 크게 오른 것이다.
확실히 풀면서 ebs와 단어위주의 공부가 평가원시험을 푸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느꼈는데,
두 달만에 이렇게 엄청난 상승이 있을 줄이야.
'야! 너 외국어영역 열심히 하더니 엄청 올랐네! 축하해~'
그 아이의, 다른 친구들의 칭찬...
영어 선생님이신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엄청 칭찬해 주셨다.
다른 반에서 수업하실 때 내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반에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두달 만에 외국어 영역 성적이 14점이나 오른 학생이 있다'며 내 칭찬을 하셨고,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반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외국어 영역 공부를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른 과목에서도 언어4 수리 2 탐구 4~5등급이었지만,
앞으로 꾸준히 열심히 하면 충분히 다른과목들도 2등급까지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을 약 4달 정도 앞두고 정말 중요한 시기인 여름방학이 되었다.
물론 여름방학때에도 '열심히'는 하였다.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어와 탐구는 수리와 외국어보다 올리기 쉬울 것만 같았던 나는...
그렇게 여름방학은 언제 시작했냐는듯이 금방 끝났고, 9월 모의고사 전 날이 됏다.
나는 9월 모의고사 전 날에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잘 칠 수 있을까? 내일도 잘 칠 수 있겠지?'
그런데, 어째서 그랬을까? 문제가 조금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손에는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거의 벌벌 떨면서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언어4, 수리 가까스로2등급, 외국어 가까스로 3등급으로 떨어지고, 탐구도 4등급을 맞았다.
그성적으로는 당연히 부산대는 커녕 웬만한 국립대에도 노리기 힘든 성적이었다.
'아...'
정말 제대로 망했다...정말로...
'어떡하면 좋지? 으...'
'수능 까지는 거의 6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수시 원서 기간에 담임 선생님께 뭐라고 말했던가?
수시 원서기간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저는 내신이 거의 5등급이고 모의고사보다 별로니깐 수시는 그냥 아무데도 쓰지 않을게요. 정시를 노려볼게요.'
그렇게 써놓은 수시는 단 하나도 없고, 거기에 잘 칠 것만 같았던 모의고사를 망쳐버렸으니...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문제점을 찾기도 너무 어려웠다.
'담임 선생님께서 그렇게 내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다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때까진 운이었나?...역시 내가 공부는 무슨...'
가장 크게 드는 생각,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떡해야 하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떡하면 좋을까? 혼자선 도저히 방법을 못 찾겠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나는 무작정 친구의 폰을 빌려서 화장실로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울컥했다. 엄마에게 갑자기 엄청 미안해졌다.
'엄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고3 내내, 힘들어도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혼자 화장실에서 갑자기 펑펑 울었다.
울면서 어떻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엄마는 다큰애가 갑자기 우니깐 놀랬는지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돼지.'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시험을 못쳤는데도 되려 날 위로 해 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난 더 슬퍼졌고, 몇분동안 계속 운 것 같다.
정말...이 상황에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도 이렇게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9월 모의고사를 망치고 일주일 정도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해도 될 거 같지 않았고, 해도 또 망할 것만 같았다.
정말 무기력해졌고, 의욕이 없어졌다.
일주일 정도를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새영이 요즘 왜그라는데?" 그러다 언제 쯤 됏을까?
문득,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3월, 6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한 줄기 희망을 경험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하루 의미있게 보낸나에게 스스로 감사하던 내가 기억났다.
근데 지금 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내 자신이 참...한심해 보였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예전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 수능 때 이런 점수가 나오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이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어!'
'대학? 이젠 꼭 가지 못해도 좋다. 그냥 수능 날 까지 후회만 남기지 않도록 하자.'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수능을 못쳐서 재수를 하더라도, '작년에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만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그 날 부터, 수능을 약 50일 남겨두고 정말 미친놈처럼 공부했다.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가도, 위충에 방까지 가서 옷갈아입는 시간이 아까워서 기숙사에 가자마자 1층에서 바로 공부를 했다.
불 끄기 직전까지 공부를 해서, 꿈에서도 괴상한 수학문제를 푼 적도 있다.
(풀던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고 취침 시간이 데는 것만큼 잠이 안 올 때가 없었다.)
...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간 것 같다.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려보니 수능 바로 전 날이 되었다.
'내일이 드디어 수능 이구나.'
그 날은 학교를 일찍 마쳤다.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초콜릿을 주기도 했다.
'넌 진짜 잘쳐야 돼!'
'내일 수능 잘쳐~'
'선배 수능 대박 나세요!'
고맙기도 하면서도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날씨는 매우 밝았다.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낮에 하교를 하는 것 같았다.
학교는 일찍 마치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쁘지는 않았다.
시험을 치룰 학교에 미리 가보고, 그 날도 집에 안 가고 도서관에가서 9시까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으로 갔다.
의외로 엄마 아빠는 수능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하긴, 평소에도 난 수능에 대한 얘기를 일부러 부모님이랑 거의 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 표정만 보아도, 혹여나 내가 기분 상하진 않을까 말도 조심 조심 하시는 것이 보였다.
9월 시험을 제대로 못친 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조건이 안되는 나에게 그렇게 신경 써 주시는 부모님을 보고 더 죄송해졌다.
반드시 수능을 잘 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오늘은 일찍 잘게요. 저 깨지않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 그래 푹 자.'
방에 들어가 누웠다. 이불은 차가웠다. 그러면서도 포근했다.
9시 30분 정도에 누운 나는,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오늘 긴장해서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
'내일 듣기에서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시간이 다 됏는데도 마킹을 못 하면 어떡하지?'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와 정말 내일이 수능이야?'
올해 초부터 오늘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그러다 한시간도 안되서 갑자기 잠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창밖을 보니 밖엔 안개가 껴서 흐릿한 회색빛의 풍경이 보였다.
창문은 서늘했다.
'음...'
일어나보니 5시40분, 부모님은 먼저 깨 있으셨다.
'일어났니?'
일어나서 대충 씻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수능 날은 엄마의 생신이기도 했다.
'엄마, 오늘 생신이신데 저 미역국 안 먹어요?'
'원래 시험치는 날엔 미역국 안먹는거야. 엄만 괜찮아.'
'에이, 그냥 미신일 뿐인데요 뭘.'
참...엄마가 그만큼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득 느껴졌다.
'반드시 잘 치고 올테다.'
아무맛도 안느껴지던 아침밥을 먹고, 수험표와 준비물들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다 했다.
'엄마 아빠 저 갈 준비 됏어요.'
'오빠야 시험 잘 치고 와~'
밖은 생각보다 추웠다.
차 문을 열고 뒷자석에 앉았다.
차 시트가 서늘했다.
창 밖을 보니 여전히 안개가 많이 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수능 얘기는 거의 않으셨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별로 무섭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해 왔으니 빨리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험을 칠 고등학교인 와룡고에 도착했다.
'새영아 화이팅이다!'
'네~ 잘 보고 올게요.'
음...내가 시험 칠 장소가...
시험 칠 반에 도착하고, 시험 칠 준비를 했다.
'나는 로봇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자!'
감독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여러가지 설명을 해 주셨다.
'저것도 못알아들으면 언어영역 칠 자격도 없지.'
사실, 시험을 치는 동안의 기억은 별로 없다. 매 시간 최선을 다해 풀었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영역, 탐구영역...
'친구들은 시험을 잘 보고 있을까?'
4교시 탐구영역의 종이 울렸다.
'모두 멈추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책상에 올려두고 손 머리 위로 하세요.'
모든 시험이 끝났다.
휴...다행히 망한 것 같은 기분은 없고, 수리와 외국어도 잘 본 것 같았다.
무엇보다 후회는 없었다.
나가도 된다는 확인을 받은 뒤 소지품들을 챙기고 바로 나갔다. 엄마가 보였다.
'새영아! 여기!' 놀랍게도 엄마는 수능 시험 답지를 가지고 계셨다.
제일 무서워하던 시간이 다가왔다.
솔직히 수능 치기 전부터 수능치는 것보다는
'떨려서 가채점을 어떻게 할까'가 훨씬 무서웠다.
'잘 쳣겠지...'
집에 가는 차에서 가채점을 했다.
언어부터 가채점을 하는데, 이런, 이유는 모르겠는데 1번부터 틀리고말았다.
한 번도 1번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마킹실수를 했나??
그렇게 벌벌 떨면서 매겨보니, 다행히 점수들이 괜찮았다.
'엄마! 점수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걱정 안하셔도 될거 같아요!'
'그래??휴...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거의 우시다시피 눈물을 글썽이며 계속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내색은 안하셨지만, 엄마도 걱정을 정말 많이 하셨나 보네...시험을 잘 치른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집에 가니 아빠도 수능감독을 모두 마치시고 집에 오셨다.
난 바로 거실에서 티비를 키고 이비에스 채널을 켰다.
온 채널이 수능 얘기였다.
'이번에 언어는 쉽고, 수리와 외국어는 어려웠던 걸로...'
'엄마! 수리랑 외국어가 어려웠대요!'
사실, 외국어영역에서 90점을 맞긴 했지만,
풀 때 듣기도 그렇고 정말 쉽게 느껴져서 이번에도 작년처럼 1등급컷 98점이 나오지는 않을까 엄청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예상 1등급컷은 92~94점 이었다.
수리도 작년보단 1등급컷이 낮아져있었다.
'휴...정말 다행이다.'
엄마 아빠는 정말 좋아하셨다.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다 사줄게!
음...사실 뭐가 별로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막연히 치킨이 떠올라서 '치킨이요.'
그렇게 엄마는 치킨을 시켜주셨고, 7시 쯤 부모님은 배드민턴 동아리를 하러 나가셨다.
혼자 방에서 과탐을 매겨봤다.
지구과학이 48점, '오!' 근데 1등급 컷은 50점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9월보다 훨씬, 아니 내 인생의 모든 모의고사 중에서 가장 점수가 잘 나온 시험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게다가 이 시험은 모의고사가 아니라 수능!
그제야 실감이 나고 기뻣다.
기쁘다는 마음보단 안도의 마음이 컷다.
갑자기 올해 초 1월부터 11월까지 10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성적이 올라서 기뻣던 기억, 9월 모의고사를 망하고 운 기억...
여러가지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지만, 안도감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싱글벙글하며 학교에 갔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버스 안에서 혹시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죽으면 어떡할까 걱정이 많이 들었다.
'시험을 잘 쳤는데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참 뜬금없는 불안감이었다. (불안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내 자신이 얼마나 웃기던지,)
아무튼 그렇게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수능 가채점 결과를 적어서 실장에게 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께서 날 교무실로 부르셨다.
내심 시험을 잘 봐서 칭찬해주시려나 해서 기대하며 교무실로 가니,
의외로 담임선생님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야, 너 이거 가채점한거 장난으로 적은 거냐?'
'네?'
내 성적이 믿기지 않으셨는지, 나보고 장난으로 적었냐고 의심하시는 선생님.
갑자기 웃겼다.
어이없으면서도 갑자기 그 상황 자체가 얼마나 웃기던지,
'아닌데요 그거 진짜에요ㅋㅋ'
'어...그래? 그래 가봐.'
반에서 애들이랑 대충 얘기해보니, 생각보다 수능을 잘 친 아이보다는 못 친 애들이 더 많았다.
어떤 애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어쨋든 끝났으니 좋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평소 말 많고 재밌던 한 아이는 수능 다음날이 되자 갑자기 말이 사라지고 지금껏 본 것 중에 최고로 우울해 보였다.
재수를 마음먹은 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아이도 있었다.
성적이 오른 나에게 재수를 해보라고 권하는 아이도 있었고...
평소보다 시험을 잘 친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수능에 대한 말은 최대한 아꼈다.
'음...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구나. 지긋지긋했던 수능이 끝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줄만 알았어.'
아이러니하게도, 시험을 잘 쳐도 시험을 잘 못본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만약 수능을 망쳤다면? 아... 생각만 해도 정말 무섭다.'
그나저나 이게 끝인가? 시험을 이렇게 잘 봤는데...정말 이걸로 끝이야? 이제 난 뭘해야 하지? 음...
정말로 허무했다. 이걸로 끝이라니,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끝났다. 모든 결과가 정해졌고...
어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재수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대보다 학벌 좋은학교는 엄청나게 많으니깐...재수를 해서라도 친구들처럼 인서울을 노려볼까 생각도 해봤다.
'성적을 더 올리고 싶어...이대로 끝내긴 너무 아쉬워.'
수학공부를 끝낸다는것도 아쉬웠다. '문제 푸는것도 재미있었는데.
무엇보다 앞으로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자습할 수 없다는 것,
기숙사에서 잘 수 없다는 것, 친구들과의 야간자율학습이 없다는것...
뭔가 많이 아쉬었다. '수능만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던 난데,
막상 수능이 끝나니 뭘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문득, '그 애는 시험을 잘 봤을까?'하는 순간,
그 애는 나한테 성적을 물어봤다.
'최새영 시험 잘 봤나!?'
'어 좀 평소보다는 ㅋㅋ...'
가채점 결과를 보여주니 그 여자애는 정말 진심으로 기뻐해줬다.
평소에도 모의고사를 치면 항상 물어봐줬는데, 그때마다 정말 고마웠다.
(수리나형을 같이 치는것만으로도...뭔가 동질감이 형성될 것 같아 설레어했다...)
'와! 잘쳤네! 축하해!'
'나 잘하면 부산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기뻤다.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뻣었다...그랬었다.
나랑 2학년때 같은 반, 옆방, 기숙사 옆 자리, 또 3학년 때 같은 반이라서 많이 친하게 지낸, 볼 때마다 장난을 쳤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말해줘서 내가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지 알고 있었다.
'걔가 재미있는 애 좋아한다던데? 아 물론 닌 아님 ㅋ'
'아 ㅈㄴ 삼수생이가? 추리닝 좀 고마 입어라ㅋㅋ'
'언어영역 98점 맞았다. 아 물론 표준점수 ㅋㅋㅋ'
'오~ 공부 열심히 하네??그런다고 걔가 니 좋아해줄거 같나??ㅋㅋㅋㅋ'
ㅂㅅ같은 장난 짓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고 또 진지한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믿을 수 있고 괜찮다고 생각햇던 친구였다.
참 재밌던 놈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여자애랑 잘 지낼 수 있을까 조언도 많이 들었는데...
수능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애랑 친구랑 뭔가 사이가 특별해보였다.
'설마...아니겠지. 설마...'
금방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해줬다.
'야 저번에 시내에서 쟤랑 둘이 같이...'
'설마...아닐거야.'
얼마나 믿고 있었던 친군데, 얼마나 착했던 친군데...
얼마 안가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사람이 비참해질 수 있는 지...그 사실을 알았을 때엔, 그랬다. 음...
어떤것도 맛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든 것도 재미가 없었다.
혼자있고 싶었다.
'하긴...걔가 엄청 잘생기긴 했지. 그 애랑 잘 어울리더라...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많이 아팠다.
친구에게 정말 싫어하고 정말 증오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걔는 몇 년간 봐오면서 정말 재밌고 착하고 믿을만한 친구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화가났다.
그렇지만 그 여자애랑 사귀지도 않았던, 그랬던 내가 그자식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것 만큼 비참하고 슬픈 것이 없었다. 대뜸 욕을한다고 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자식에게 나쁜 짓을 하면, 그 여자애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몇년 간의 우정이 하루 아침에 깨지는 것도 두렵기도 했다.
'정말 괜찮은 친구였는데...'
'정말 좋아하던...애였는데, 여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하긴, 난 그애에게 그저 친구였구나.'
겨울 방학이 시작할 때 까지 힘들었다. 아무하고도 말 하기 싫어했을 정도였다.
더욱이 그 친구는 생긴것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그에비해 부족한 내 자신이 초라해보이고 비참해 보이기까지도 했다.
그 여자애를 이제 그만 잊고 싶었지만...
수학 공식, 영어단어는 그렇게 외우려고 해도 잘 잊던 난데...
기억하기 싫은 일은 잊으려고 하면 할 수록...
그러다 겨울 방학이 시작됏다.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에 집중하면서 점점 그 여자애는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만 갔다.
'이제 스무살이니깐,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거야...그래, 그 애랑은 원래 친구로라도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나잖아!
그넘도 아주 멋지고 괜찮은 놈이니, 서로 잘 된 것이 어찌생각하면 정말 잘 된 일이야.'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방학 동안 일을 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루 쉬는 날엔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보곤 했다.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산대 발표가 나오기 전 벌벌 떨기도 했고,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맛있는 걸 사드리기도 했다.
스무살, 어른이 됏다는게 많이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유난히 추웠기도 한 것 같다.
그렇게 겨울방학은 엄청 짧았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애는 부산대에 가지 않았다.
우리학교에서 부산대에 가는 사람은 나하나밖에 없었다.
'음...? 잘들 살어.'
그렇게 겨울 방학이 끝나고,
우리는 금방 졸업을 했다.
그렇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던 나의 고등학교3학년은 끝이났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여자애덕에 난 참 얻은 것이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동기, 원동력, 대학교에 입학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나에게 마음의 아픔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몸소(?) 가르켜주고, 겨울 방학 때는 일에 집중하게 해줘서 일의 소중함도 알게 해 주었다.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그 여자애랑 비슷한 이름만 듣거나 보아도 뜨끔, 또 옛생각에 설레이기도 했다.
다른 여자애들에게는 솔직히 별 생각 들지도 않았다.
물론 좀 서글프기도 했고,
여자랑은 절대 친구는 될 수 없다는 트라우마?
이제는 '아~ 그 때 내가 좋아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애야.'
고맙다는 생각?고맙다는 생각이 전부다.
옛날엔 절대 그러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좋아했던 것도 이젠 추억으로 남길 수 있구나...
가끔은 그 사실마저 슬플때가 있다.
예전에 3년동안 같은 반이었던 걔한테, 작은 거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혹시 날 싫어하진 않을까 불안해하다가,
날 보며 밝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정말 안도하고 기뻐했던...
많은 일들 하나하나를 지금은 추억으로 떠올려볼 수 있다니, 음...
시간이 약이라는게 정말 사실이구나 싶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걔가 나랑 같이 부산대학교에 왔으면??
그래도 나 말고 딴 남자애랑 잘 사귀고 있겠지?ㅋㅋㅋㅋㅋ'
그 애에 관한 모든것은 모두 추억으로~ㅋㅋ
2012년, 아직도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드립치면서 마냥 재미있었던 일, 힘들 때 도와준 친구들...
그 때 들었던 음악, 그 때 먹었던 음식, 그 때의 날씨...바람이 차가웠던 아침점호, 포근했던 기숙사 방 침대,
그 때는 마냥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막상 오고나니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공부 외에는 별 걱정 없었던 그때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정말 행복하고 내 자신이 좋았던 그때가,
애들과 정말 재미있었던 그때가 많이 그립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 때 친구들이 힘든시절을 함께해서 그런지 나에겐 가장 소중하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서 애들과 장난을 치고 싶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게 가끔은 참 슬프기도 하다.
그래도 내 인생에 앞으로 펼쳐질 일은 너무나도 많다.
힘든 일, 슬픈 일, 기쁜일... 많은 일들이 있겠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에 대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옛날 추억들을 떠올릴 때 행복한 만큼, 앞으로의 대학,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겠지만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 END -
고3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치른 모의고사... 등급이 864545였지 싶다.
항상 갖고다녔던 단어장.. 10권정도 손수 만들었었는데 이젠 5권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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