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이런 감정 아냐?.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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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0-01-07 13:00본문
어릴때 가난했었다. 쌀독 바닥에 쌀알 몇톨만이 모래알처럼 굴러다니면 엄마는 나에게 쌀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슈퍼라는 어마어마한 간판을 달고있는 조그마한 동네 구멍가게에서 쌀을 됫박으로 샀었다. 한되. 혹은 두되.. 계란도 한알에 오십원 했었는데, 한알 두알로 샀었다. 저녁이 되고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파 할 무렵이면, 나는 생선파는 아줌마에게 가서 동태머리를 얻어오곤 했었다. 그옆의 채소와 콩나물 팔던 자리를 맴돌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시레기들을 줍고 콩나물을 주웠다. 그리고 집에가서 그것들로 찬을 만들어 먹었었다. 세들어 살던 집에는, 우리가족 외에도 4집이 세들어 살고있었다. 마당 한쪽에 변소가 있고, 마당 가운데 수도가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으례히 집안살림은 내몫이었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텅빈집에 9살이던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으니까. 마당의 수도에 쭈그려 앉아서, 빨래를 하고 운동화를 빨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갔었다. 안채쪽 큰방에 세들어 살던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고 착하다고 칭찬도 해주곤 했었다. 한겨울에 빨래를 하고나면 손이 얼어서, 한참을 아랫목 이불속에 손을 집어넣고 녹이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식을까봐 밥담고 뚜껑닫고 수건으로 돌돌 싸매어놓은 엄마의 밥공기가 만져졌었다. 나는 밥이 식기전에 엄마가 일마치고 오기를 바라다 잠이들곤 했다. 일요일은 그시절에도 달력에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지만 일요일은 쉬는날이 아니었다. 그시절엔 다들 그랬다. 엄마는 한달에 두번 격주로 쉬는 공장에 다니셨는데, 엄마가 쉬는날이 되면 손잡고 같이 시장을 가는게 어린 나에겐 큰 즐거움 이었다. 시장을 다니며, 엄마가 좀더 깍아달라 흥정하는 모습과, 덤 좀 더 달라 눙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에이.. 그냥 사지. 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장을 봐오면 엄마는 요술을 부리는듯이, 물김치와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을 뚝딱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면 2주동안은 그 반찬으로 모든 끼니를 해결했다. 라면이 너무 먹고싶을때면, 저금통을 뒤짚어 흔들어서 기어이 동전몇개를 빼내서는 가게에 가서 까만소 라면을 사와서 끓여먹었다. 나는 그때에 라면이 너무너무 좋았지만, 먹고 싶을때 먹기에는 너무 비싼 음식이었다. 가끔 엄마에게 고기가 먹고싶다고 졸라대면 엄마는 시장의 닭튀김집에서 파는 닭발을 사주셨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나도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마트에가서 20키로 짜리 쌀을 사고, 고기가 먹고싶으면 고기도 사고.. 매운탕을 먹어도 생선머리는 건들지도 않는다. 닭발은 이제 일부러 파는곳을 찾아가야만 먹을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나이든 내가, 나이든 엄마와 시장을 갈때면 화를 낼때가 있다. 엄마는 지금도 시장상인 에게, 한켠에 놓여진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동태 대가리를 달라고 조르신다. 난 그런 모습을 볼때면, 감정이 참 복잡해지다가 기어이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 엄마 왜그래, 부족하면 더 사면 되는걸 뭐하러 생선머리를 얻어? " " 애가 왜이래, 다 이러고 장보는 거지 어차피 저것들 다 쓰레기 될텐데 " " 그러게 쓰레기를 왜 얻어오냐고! " 나는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이제 생선머리를 먹지않아도, 몸통의 뽀얀 살들만 먹어도 배부르지 않냐고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지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질구질 하다고 보여질 정도로 살았기에, 지금 내가 배부르고 부족함 없이 살고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그리 살았던건 부끄러운게 아니라는걸 가난을 벗어난 지금에도, 엄마는 버려지는 동태 대가리를 아까워 한다는걸 자식들에겐 몸통만 발라주면서, 엄마는 생선은 머리가 맛있다며 엄마의 국그릇엔 동태 대가리만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 여기가 맛집이래 " 이제는 맛있는것 드시라고 모시고 다니면 " 이집이 맛있나?" 라는 질문보다 " 이집 비싼집 아니냐? " 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엄마. 항상 제일먼저 수저를 내려놓으시고 속이 불편하다고 안드시다가 자식들이 배부르게 먹고 난 다음에야, 다시 수저를 드시곤 얼마 남지않은 요리를 드시는 엄마. 사춘기때, 왜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 하게 살아야 하냐고 죄없는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부으며,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에 같이놀던 친구들끼리 " 야, 너 집에 안들어가도 되냐? " 라고 물으면 " 괜찮아. 울집에서 나 포기했어 ~ " 라는 대답이 들려오곤 했다. 그러면 애들이 " 이야 좋겠다 " 라고 부러움 섞인 맞장구를 쳐줬었다. 새벽까지 애들과 밖에서 난장을 부리고 있을때면 집 전화번호 뒷자리가 찍힌 삐삐에 음성메세지가 오곤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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