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급하게 써 본 빡촌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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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98회 작성일 20-01-09 15:00본문
씻고 가는 것이 매너다. 안 씻고 간다고 아지매가 안 받아주거나 누나들이 왜 안 씻었냐고 면박을 주진 않지만 서비스 하는 분에게 최소의 예의는 지키고 싶었다. 난 이런 면에서 의식적으로 친절했는데, 예컨대 옷가게, 편의점, 술집, 음식점, 피시방 점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예를 갖춰 대했다. 편의점에서 껌을 사더라도 들어가고 나갈 때 인.사말을 꼭 했고 특히 옷가게 - 왜 하필 옷가게인진 모르겠으나 - 에선 주인이 나보다 웃어른인 ‘남자’인 경우 나갈 때 8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많이 팔라고 했다. 악의로 (혹은 무심코라도) 남들의 기분을 해치는 건 내 기분도 나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씻는 건 물론이고 유륜 주위의 난 털도 잘라야 했다. 내 젖꼭지 털은 남들보다 이상할 만큼 길었기에 상대방이 보고 혐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은 준비 된 서비스 중에....아니다. 실은 나도 거울로 볼 때 마다 징그럽다고 생각하니까. 아예 뽑아버리면 좋겠지만 고통이 지나치게 심했다. 그래서 코털 가위를 이용해 최대한 짧게 정리했는데 나중에 거울로 보니 그 꼴이 꼭 언저리에 시나몬을 길게 가니쉬한 핫케이크 같아서 웃겼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누구도 내 젖꼭지 털에 불평할 수 없을 걸?
길음역은 생각보다 멀었다. 평소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생각해서 괜히 설레곤 했는데 - 여유가 있고 원하기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달려갈 수 있으니까 - 처음 직접 가보니 집에선 꽤 먼 거리였다. 오히려 청량리가 가깝지 싶었다. 생각보다 먼만큼 가는 내내 긴장됐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되뇌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정의의 사도. 상남자. 원칙주의자. 피도 눈물도 없지. 겁도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존나 겁도 없고 존나 상남자지. 눈에 거슬리는 건 다 부숴버릴 거야. 나? 난 쫄보가 아니야. 또 누가 있더라? 슈퍼맨? 아니야, 너무 비현실적이야. 매튜 매커너히? 마이클 콜리오네? 토니 소프라노? 머릿속 싸움 끝에 길음역에 도착했다.
10번 출구였다. 입구에서 서성이고, 들어가선 한 바퀴를 돌아 나온 끝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왼쪽 꺾은 골목의 오른쪽 다섯 번째 집. 몇 살이야? 너무 어려 뵈는데. 아줌마가 말했다. 민증을 보여주니 노안이 와서 안 보인단다. 급기야 누나를 불러온다. 야, xx야, 이거 좀 읽어봐라, 도통 뭐 보여야지 원. 누나는 내 얼굴과 민증 사진을 번갈아본다. 그러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실눈을 뜬다. 본인 맞아요? 지금 완전 어려 보이는데, 고등학생 아녜요? 난 전역증을 보여주며 해명했다. 아지매의 노안과 서비스 누나의 ‘순수한’ 의심. 이 갑작스런 정겨움에 쉰 웃음이 나왔다. 보통 이런 상황엔 여자도 멋쩍게 웃어 주던 터라 누나의 웃음을 기대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만 한 번 더 받았을 뿐이다. 맞네,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어. 이건 보통의 서비스업이 아니었고, 내 의식적인 친절과 적당한 미모(웃을 때 콧구멍이 벌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치열이 꽤 고른 편이고, 솔직히 얼굴만 놓고 봐도 나쁘진 않지)도 소용없었다.
이후의 일은 생각보다 좋았다. 귀염상인 누나라 알맞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조여정을 닮았고 목소리가 예뻤다) 무엇보다 적당한 뱃살이 만족스러웠다. 과하지 않은 피하지방은 피부 결을 곱게 하여, 여성을 더욱 여성답게 하는 좋은 요소니까. 전희 중엔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이 제일 좋았다. 삽입과 피스톤 운동의 육체적 압박감보다 상대의 머리칼을 끝을 부드럽게 만지는 심리적 안정감이 훨씬 좋았다. 내가 고양이나 개를 쓰다듬길 좋아하는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묘한 정복감. 개나 고양이는 주인이 쓰다듬어 주길 원한다. 왜? 주인이 필요한 짐승이니까. 난 애완동물이 내게 굴종하는 순간이 좋았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알게 됐다. 확신컨대, 일반적인 남성에 비하면 난 성욕이란 게 없는 수준인 것이다. 혹은 욕구의 대상이 정상적인 길에서 조금 엇나간 걸지도 모르겠다.
끝을 못보고 말았다. 끝을 못보면 대개는 똥마려운 개처럼 불편해 하던데, 만족스러웠다. 헌데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느낄 뻔한 순간에 침대아래 흩어러져 있던 홀복을 주섬주섬 챙기며 누나가 말했다. 봐봐, 너무 짧잖아. 담엔 한 시간 하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놀자. 이 멘트가 식당 점원이 손님이 나갈 때 말하는 “또 오세요”처럼 음정의 높낮이도 없고 활기도 없어서 나는 그만 식겁해버렸다. 맞다. 난 손님이었고, 돈벌이였다. 이런 여자와 감정적 유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웃기지.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홀에 나가보니 다른 누나가 드라마 ‘킬미 힐미’를 보며 실실 쪼개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냉장고에서 빨대 꼽힌 요구르트를 하나 준다. 나는 허리를 약간 굽히며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아니면 원래 안 꼽혀있었는데 냉장고에서 꺼내며 빨대를 꽂은 건가? 빨대에서 삐익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요구르트를 빨고 신발 끈을 맸다. 마지막 구멍에 끈을 막 넣으려던 차에 나와 거사를 치뤘던 누나가 날 배웅하러 나왔다.
“또 올 거지? 다음엔 더 잘 해 보자. 시간도 길게 하구.”
나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수천 번 했을 환송 멘트가, 그리고 이 가장된 친절함에 맞춰주려 젖꼭지 털을 자른 내가 역겹게 느껴져 신발 끈을 채 매지 못하고 허둥지둥 나가버렸다.
그래서 씻는 건 물론이고 유륜 주위의 난 털도 잘라야 했다. 내 젖꼭지 털은 남들보다 이상할 만큼 길었기에 상대방이 보고 혐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은 준비 된 서비스 중에....아니다. 실은 나도 거울로 볼 때 마다 징그럽다고 생각하니까. 아예 뽑아버리면 좋겠지만 고통이 지나치게 심했다. 그래서 코털 가위를 이용해 최대한 짧게 정리했는데 나중에 거울로 보니 그 꼴이 꼭 언저리에 시나몬을 길게 가니쉬한 핫케이크 같아서 웃겼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누구도 내 젖꼭지 털에 불평할 수 없을 걸?
길음역은 생각보다 멀었다. 평소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생각해서 괜히 설레곤 했는데 - 여유가 있고 원하기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달려갈 수 있으니까 - 처음 직접 가보니 집에선 꽤 먼 거리였다. 오히려 청량리가 가깝지 싶었다. 생각보다 먼만큼 가는 내내 긴장됐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되뇌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정의의 사도. 상남자. 원칙주의자. 피도 눈물도 없지. 겁도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존나 겁도 없고 존나 상남자지. 눈에 거슬리는 건 다 부숴버릴 거야. 나? 난 쫄보가 아니야. 또 누가 있더라? 슈퍼맨? 아니야, 너무 비현실적이야. 매튜 매커너히? 마이클 콜리오네? 토니 소프라노? 머릿속 싸움 끝에 길음역에 도착했다.
10번 출구였다. 입구에서 서성이고, 들어가선 한 바퀴를 돌아 나온 끝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왼쪽 꺾은 골목의 오른쪽 다섯 번째 집. 몇 살이야? 너무 어려 뵈는데. 아줌마가 말했다. 민증을 보여주니 노안이 와서 안 보인단다. 급기야 누나를 불러온다. 야, xx야, 이거 좀 읽어봐라, 도통 뭐 보여야지 원. 누나는 내 얼굴과 민증 사진을 번갈아본다. 그러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실눈을 뜬다. 본인 맞아요? 지금 완전 어려 보이는데, 고등학생 아녜요? 난 전역증을 보여주며 해명했다. 아지매의 노안과 서비스 누나의 ‘순수한’ 의심. 이 갑작스런 정겨움에 쉰 웃음이 나왔다. 보통 이런 상황엔 여자도 멋쩍게 웃어 주던 터라 누나의 웃음을 기대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만 한 번 더 받았을 뿐이다. 맞네,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니었어. 이건 보통의 서비스업이 아니었고, 내 의식적인 친절과 적당한 미모(웃을 때 콧구멍이 벌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치열이 꽤 고른 편이고, 솔직히 얼굴만 놓고 봐도 나쁘진 않지)도 소용없었다.
이후의 일은 생각보다 좋았다. 귀염상인 누나라 알맞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조여정을 닮았고 목소리가 예뻤다) 무엇보다 적당한 뱃살이 만족스러웠다. 과하지 않은 피하지방은 피부 결을 곱게 하여, 여성을 더욱 여성답게 하는 좋은 요소니까. 전희 중엔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이 제일 좋았다. 삽입과 피스톤 운동의 육체적 압박감보다 상대의 머리칼을 끝을 부드럽게 만지는 심리적 안정감이 훨씬 좋았다. 내가 고양이나 개를 쓰다듬길 좋아하는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묘한 정복감. 개나 고양이는 주인이 쓰다듬어 주길 원한다. 왜? 주인이 필요한 짐승이니까. 난 애완동물이 내게 굴종하는 순간이 좋았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알게 됐다. 확신컨대, 일반적인 남성에 비하면 난 성욕이란 게 없는 수준인 것이다. 혹은 욕구의 대상이 정상적인 길에서 조금 엇나간 걸지도 모르겠다.
끝을 못보고 말았다. 끝을 못보면 대개는 똥마려운 개처럼 불편해 하던데, 만족스러웠다. 헌데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느낄 뻔한 순간에 침대아래 흩어러져 있던 홀복을 주섬주섬 챙기며 누나가 말했다. 봐봐, 너무 짧잖아. 담엔 한 시간 하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놀자. 이 멘트가 식당 점원이 손님이 나갈 때 말하는 “또 오세요”처럼 음정의 높낮이도 없고 활기도 없어서 나는 그만 식겁해버렸다. 맞다. 난 손님이었고, 돈벌이였다. 이런 여자와 감정적 유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웃기지.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홀에 나가보니 다른 누나가 드라마 ‘킬미 힐미’를 보며 실실 쪼개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냉장고에서 빨대 꼽힌 요구르트를 하나 준다. 나는 허리를 약간 굽히며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아니면 원래 안 꼽혀있었는데 냉장고에서 꺼내며 빨대를 꽂은 건가? 빨대에서 삐익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요구르트를 빨고 신발 끈을 맸다. 마지막 구멍에 끈을 막 넣으려던 차에 나와 거사를 치뤘던 누나가 날 배웅하러 나왔다.
“또 올 거지? 다음엔 더 잘 해 보자. 시간도 길게 하구.”
나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수천 번 했을 환송 멘트가, 그리고 이 가장된 친절함에 맞춰주려 젖꼭지 털을 자른 내가 역겹게 느껴져 신발 끈을 채 매지 못하고 허둥지둥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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